또 다른 나 - 시드니 셀던 자서전
시드니 셀던 지음, 최필원 옮김 / 북앳북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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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또 다른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 시드니 셀던이 인생의 황혼기를 맞아 스스로 자신의 지난 인생을 돌아본 자서전입니다. 시드니 셀던이 무슨 간디처럼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위인도 아니고, 헤밍웨이처럼 존경 받는 작가도 아닌데 웬 자서전? 하실 분도 분명히 계시겠지만 꼭 역사책에 나오는 어마어마한 위인만이 자서전을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시드니 셀던은 1970년 <벌거벗은 얼굴>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18권의 소설로 전세계에서 3억부를 팔아치웠다지만 분명히 후세에 길이 남을 문호라고는 부를 수 없는 작가입니다. 당대 대중의 기호를 정확히 읽어 잘 팔릴 만한 대중소설을 기획해 충실하게 소설화해낸 상업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위에도 말했듯이 꼭 위인만이 자서전을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기나긴 인생의 여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을 만한 교훈을 줄 수 있다면 누가 쓴들 어떻겠습니까. <또 다른 나>는 적어도 저에게만은 큰 교훈을 주었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많은 힘을 준 작품이므로 당당하게 추천합니다.

 

시드니 셀던은 1917년 시카고에서 출생했습니다. 본명이 시드니 샥텔인 그는 가난한 이민자 부모의 장남으로 그의 가족은 대공황 때 극심한 빈곤의 늪에 빠지고 맙니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인 그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과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대학교를 어쩔 수 없이 그만 두고 열일곱 살에 호텔 카지노 휴대품 관리소, 약국 점원, 공장 직원 등으로 살아갑니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작가의 꿈은 멀어져가기만 하자 그는 자살을 결심합니다. 일하던 약국에서 수면제를 몰래 빼돌리고 자살을 결행하려 하는 순간, 아버지에게 발각된 시드니 샥텔. 아버지는 절망에 빠진 아들과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시드니, 넌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

그제야 나는 아버지의 말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건 어제 얘기였어요."

"그럼 내일은?"

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 인생이란 원래 소설 같은 거 아니겠니?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있잖아. 페이지를 넘기기 전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요."

"그걸 어떻게 알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페이지인 거야, 시드니. 곳곳에 깜짝 놀랄만한 일이 숨어 있다고. 페이지를 넘기기 전까진 그 누구도 알 수 없어."

 

과연 그렇습니다. 인생은 기나긴 장편소설. 페이지를 넘기기 전까진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앞페이지가 우울했다고 해도 뒷장까지 절망적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결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소설을 보고 우리가 크나큰 희망을 느끼는 것처럼 이 자서전에는 마술 같은 희망과 용솟음치는 용기가 가득합니다. 더구나 결말을 알 수 없어 가슴 졸이며 보게 되는 소설과 달리 우리는 이 자서전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온갖 좌절과 고난을 넘어 결국 성공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게 되는 시드니 셀던의 현재 모습을 익히 알고 있기에 편안히 페이지를 넘기면 되는 것이지요. 참으로 간만에 하게 되는 흐뭇한 독서인 셈입니다. 

 

시드니는 발음하기 어려운 성을 셀던으로 고치고 헐리우드로 날아갑니다. 물론 어떤 비전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는 MGN이나 20세기 폭스 등의 거대한 스튜디오들의 전성기. 스튜디오 안에 광대한 촬영지와 150여명의 전속 작가 등을 갖추고 영화를 생산해냈습니다. 실로 미국 영화의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기였죠. 시드니는 먼저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시나리오 리더로 일하게 됩니다. 그럴싸한 소설을 읽고 대강의 내용 요약과 느낀 점들을 정리하면 되는 일이었죠. 이 일자리를 잡는 과정 역시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타이프라이터도 버스비도 없는 그에게 저녁 6시까지 4백 페이지 소설을 읽고 30장짜리 페이퍼를 작성해오라고 요구하는 스튜디오. 그는 무조건 말합니다. "물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근처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는 사촌의 전부인을 무작정 찾아가 도와달라고 말합니다. 사촌이 바람펴서 끝난 사이기 때문에 사실 거기 가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사촌의 전부인은 그의 불굴의 의지를 높이 평가해 점심도 굶고 타이프를 쳐줍니다. 시드니 셀던은 당연히 채용되었죠.

 

그 다음부터 시드니 셀던의 부침 많았던 인생이 재현됩니다. 추간판 탈출증으로 며칠씩 쓰러져있는가 하면, 브로드웨이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뮤지컬을 올리기도 하고, 조울증으로 비정상적인 언동을 보였으며,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두 번의 결혼으로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를 얻었고, 누구보다 소중한 첫째 딸을 낳았으며, 태어나자마자 병으로 죽은 둘째 딸을 가슴에 묻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아흔에 가까운 노작가의 인생을 깊이 있게 볼 수 있으며, 그가 가졌던 꿈과 희망에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됩니다. 이런 장면도 있으니까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시나리오 리더로 일하고 싶어 찾아갔을 때, 문전박대 당한 그가 나중에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사장 자리를 제의받게 되는...

 

초창기 미국의 연예 비즈니스계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도 유용한 책입니다. 데이비드 셀즈닉 같은 타이쿤 프로듀서가 활개를 쳤던 스튜디오 전성기부터, TV의 도래로 연예계의 무게추가 TV로 옮겨갔던 시대까지 두루 현장에서 활동했던 사람답게 뛰어난 기억력으로 당대 명사들의 흔적을 재현해놓고 있습니다. 마릴린 먼로와 데이트했던 이야기와 벤자민 '벅시' 시걸의 애인과 데이트하다 죽을 뻔했던 일들은 아주 재미있고, 프레드 아스테어, 버스터 키튼, 세실 B 드밀, 주디 갈란드,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의 유명인들도 다수 출현합니다. 심지어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시드니 셀던의 집 파티에서 설거지를 도맡았다는 이야기는 그 아니면 누구도 말하지 못할 일화겠죠. 시드니 셀던이 그 유명한 캐리 그랜트를 감독했던 것도 정말 몰랐던 일로 우리 생각보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연예계 종사자였나를 깨닫게 만들어줍니다.

 

웬만한 소설보다 이 이야기들이 훨씬 재미있는 건 역시 실화기 때문이겠죠. 자서전이 보통 용비어천가가 되기 쉬운데 반해 이 책은 비교적 균형적입니다. 그가 받았던 온갖 혹평도 가감없이 실려 있고, 그가 행했던 선행들(예를 들어 작가 생활 초창기에 그는 일을 잡으면 비슷한 처지의 가난한 시나리오 지망생과 항상 공저를 했습니다), 매커시 선풍을 맞아 용기있게 저항했던 일들을 그다지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정작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70년대 이후의 인생은 그리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18편의 책을 어떻게 구상했으며, 어떻게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는가를 공개한다면 작가지망생들에게 참 도움이 될텐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게 바로 제가 속편을 기대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짐작컨대 "물론 할 수 있습니다"일 것입니다. 시드니 셀던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네버 기브업 정신으로 많은 문제들을 헤쳐나가 왔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성공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일테죠. 나약한 정신 상태로 '나는 안 돼', '못 해'만 일삼는 저같은 사람에게 깊은 반성과 귀감을 준 책으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만약 작가지망생이라면 시드니 셀던의, 영화에서 갈고 닦인 듯한 뛰어난 장면 전환 기법이나 진지함과 유머를 어떻게 황금비율로 조화시키는가 등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작가로서의 정신 자세를 확실하게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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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6-09-23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겠군요.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감사.

jedai2000 2006-09-23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와 소설에 관심 많은 저에게는 최고의 자서전이었지만 사마천님이 보시기에 어떨지 몰라 조심스럽네요. 아마도 분명히 재미있어 하실 거라 믿습니다. ^^

sayonara 2006-12-21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드니 셀던이 최근에는 건강문제로 모든 글을 구술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도 시드니 셀던이 팔팔하던 10년 전쯤에 직접 썼다면 얼마나 더 흥미진진했울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저에게도 가장 재미있는 자서전이었습니다.

jedai2000 2006-12-30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구술이었군요. 머 지금도 충분히 재미있긴 한데 본인이 직접 썼으면 더 좋았겠죠. 구술이라도 좋으니 작가생활을 다룬 속편이 꼭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종말의 바보
이사카 고타로 지음, 윤덕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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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일 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사카 고타로의 최신작. 예전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좋은 영화의 조건을 '20자로 요약 가능할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확실히 그의 영화는 '외계인과 우정을 나누는 지구 꼬마'. '현대에 부활한 공룡' 등 20자 미만으로 쉽게 요약될 수 있다. 이른바 '하이 콘셉트'라는 것으로 내용 요약이 짧게 가능하다는 건 그만큼 중심 내용이 분명하고, 소구점이 명확해 보는 사람들이 골머리 썩히지 않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종말의 바보]는 전형적인 하이 콘셉트의 법칙을 따른다. '지구의 종말이 3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20자를 넘지 않는다. 심리 테스트나 심심풀이용 100문100답에나 나올 듯한 뻔한 질문이지만 막상 답변하기는 어렵다. 닥치는 대로 폭음, 폭식, 폭연애(?)를 하면서 되는 대로 막 살 수도 있겠고, 쭉 해왔던 일을 묵묵히 수도자처럼 해나갈 수도 있겠다. [종말의 바보]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8명의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머릿 속으로 슬며시 생각해보고 책장을 넘기도록.

 

비교적 다작 작가인만큼 신선도와 필력이 빨리 소진되지는 않을까 팬으로서 항상 걱정되는데 [종말의 바보]는 어깨에 힘을 완전 빼고 쓴 작품임이 느껴진다. 아마도 잡지에 연재하지 않았을까 추측되는 짤막한 8개의 단편들은 다소 평범한 느낌이다.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이나 이리저리 꼬인 플롯이 하나씩 맞아가는 짜릿한 구성의 재미를 느끼기는 어렵고, '종말'에 맞닥뜨린 사람들의 심리를 비교적 정공법으로 그리고 있다. 만약 이사카 고타로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종말이라는 소재 자체가 주는 흥미와 이사카 고타로의 또하나의 장기인 피식 새어나오는 유머,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경쾌하게 풀어내는 능력에 감탄하고 말 것이다. 물론 이사카 고타로의 오랜 팬들이 보기엔 전작들의 재기를 별로 느낄 수 없어 약간 심심하겠지만.

 

거대한 운석이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카운트다운은 벌써 시작되었고, 남은 시간은 이제 단3년. 폭력과 살인으로 울분을 풀던 시민들도 이젠 지쳐 적당히 평화가 찾아온다. 서서히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 믿기지 않는 현실을 앞두고 일본 동북지방 센다이 시(이사카 고타로의 모든 소설 배경은 센다이다. 아마도 고향인 듯)에 위치한 센다이 힐스타운 아파트에 사는 8명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죽음을 앞두고 소원해진 가족과 화해하는 남편도 있고, 임신한 아이를 낳을 것인지 말 것인지(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의 수명은 단 2년에 불과하니까) 고민하는 부부도 있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당신의 선택지도 채워져 있을 것이다.

 

8개의 단편 중에는 그저그런 것도 있고, 꽤 그럴싸한 것도 있다. 개인적으로 <강철의 킥복서>나 <소행성의 밤> 같은 것이 좋았고 <형제의 복수> 같은 건 시간낭비였다. 짤막한 만큼 쉽게 읽히고 제법 감동도 있다. 읽고 나서 크게 후회할 수는 없는 단편집이다. 다만 이 정도의 감동 소설은 다른 작가들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사카 고타로라면 종말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좀더 독특하고 재기발랄하게 요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열성팬의 투정을 마지막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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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9-19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다 좋은 작품만 쓰면 괴물이겠죠^^;;;

jedai2000 2006-09-1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쁜 작품이라는 건 아니구요. 좋은 작품인데, 이사카 고타로의 팬으로써 그 사람 색채가 별로 안 나는 게 좀 섭섭해서 투정을 해봤습니다. ^^
 
토끼와 잠수함 타인의 방 굴뚝과 천장 타인의 얼굴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30
최인호.박범신 외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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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창작과 비평사에서 '20세기 한국소설'이라는 이름으로 펴낸 50권 묶음집 중에 제30권이 최인호, 박범신, 한수산 등의 단편집이다. 이 한국소설선은 이광수부터 김연수, 배수아까지 한국소설 100년의 명단편들이 두루 실려 있는 대표적인 단편소설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많은 한국의 문인들의 수작들을 전부 수록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작가 한 사람마다 한두 편씩의 대표 단편 소개에 그치고 있으나 이는 분량상 그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50권 중에 한 권을 골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누구의 것을 고를까 고민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는 김유정, 이상, 김승옥, 손창섭, 이문열, 황석영 등인데 웬지 이 작가들은 전집으로 깊이 있게 읽고 싶어 넘어가고, 월북작가라 거의 읽어볼 기회가 없었던 이태준의 작품을 고르고 싶었지만 역시 전작을 읽고 싶어 다음으로 기회를 돌렸다. 제30권에 최인호의 이름이 보이길래 몇 년 전 <상도>의 기막힌 재미를 생각하며 그것을 골랐다. 더구나 같이 수록된 작가 중에 박범신, 한수산 등의 이름이 보여 더욱 좋았는데 예전 중고등학교 때 서점을 가면 매대에 꽂혀 있는 대부분의 책이 이 세 사람의 책이었던 까닭이다. 70, 80년대 대표 베스트셀러 작가들이라 할 수 있는데 많이 팔린 만큼의 재미를 보장해줄 것 같아 흥분했었다.

 

최인호의 작품은 <타인의 방>과 <깊고 푸른 밤>이다. <타인의 방>은 70년대 초기 단편으로 출장을 다녀온 남자가 외딴 방에서 홀로 고립되다 마침내 사물화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70년대 초반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인간이 기계화, 사물화되어가는 풍경을 구체적인 물건(이를테면 찾잔, 스푼, 샤워기)을 제시하며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지금이야 사람이 사람 같지 않고, 조립 라인에서 기계처럼 구르고 또 구르는 매일이 일상이 되었다지만 그런 전조를 최초로 발견한 70년대 초의 작가에겐 심상치 않은 일이었으리라. 안성기가 나온 영화로도 유명한 <깊고 푸른 밤>은 대마초로 나락에 빠진 전직가수와 분노를 표출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지식인이 한국에서 도피해 LA 여행을 하는 이야기다. 본인 같이 젊은 사람이 당시의 어두운 현실을 어떻게 알겠는가마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의 절망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깊은 탄식이 배어나오게 된다.

 

유명세는 거의 누리지 못했던 오탁번이라는 작가의 <굴뚝과 천장>은 4.19 혁명 당시의 대조적인 두 대학생을 통해 지식인 사회의 풍경을 그린다. 현실주의자이자 체제에 어느 정도 순응하는 '나'와 끝없이 현실을 개탄하고 바꿔보고 싶어했던 친구의 대조적인 삶의 방식이 잘 표현되고 있다. 마침내 혁명에 성공하지만 더 큰 혼란과 위선으로 혼탁한 세상을 바라보는 친구의 깊은 좌절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한수산의 <타인의 얼굴>은 자전적인 소설로 보여지는데, 학창시절 깊은 깨달음을 주었던 교수가 암에 걸리자 그와의 지난 날을 반추해보는 일종의 회상기라 할 수 있다. 문장이 아주 섬세하고 촘촘한 느낌을 주지만 실상 교수가 어떤 깨달음을 주었는지, 그래서 어쩌자는 건지, 뭘 말하고 싶은건지 모르겠다. 한 인간의 죽음을 통해 삶의 비애를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내가 과문해서 그렇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거의 공감할 수 없었던 앙상한 감동의 작품이었다.

 

박범신의 <토끼와 잠수함>은 유신체제 시절의 혹독한 정치 현실을 알레고리 형식으로 비판한 작품이다. 사소한 교통위반으로 잡혀온 일군의 사람들, 도시를 돌며 위반자들을 태워 즉결재판소로 데려가는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경찰은 아이가 죽어간다는 행상 여인의 눈물도 무시하고, 염천의 더위 아래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창문 좀 열자고 호소하는 소리도 무시한다. 이런 비인간적이고 가혹한 통치는 결국 파국을 맞는다는 메시지를 결말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흰 소가 끄는 수레>는 완벽한 자전소설이다. 실제로 작가는 글쓰기의 한계를 느끼고 절필을 선언했다는데, 문학의 사망선고를 받은 작가가 실제 자신에게도 사망선고를 내리기 위해 죽으러 간다. 눈이 몹시 쌓인 산 중에서 그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만나는데, 남자는 웬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작가의 지난 날의 이야기가 회상의 형식을 빌어 소개되며, 결국 깊은 깨달음을 얻은 작가는 그동안의 자신의 글쓰기가 허식에 다름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이렇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자꾸 글을 쓰고 싶으니...눈물겹다." 아름답고 시적인 문장과 솔직한 내면의 고백, 반성과 회환의 정조까지 모두 인상적인 정말 좋은 단편이다.

 

당대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작품답지 않게 재미보다는 문학성에 기울어졌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을 주로 선정한 듯 하다. 책 뒤에는 평론가의 작품 해설도 실려 있는데, 수록된 작가들이 처음에는 신선했는데 대중소설, 통속소설, 상업소설화 되면서 망가졌다는 느낌의 평을 한다. 역시 평론가란 먹물은 어쩔 수 없는 존재인 듯, 그 놈의 대중소설/순문학 구분은 이제 제발 사라져줬으면 한다. 그게 바로 오늘의 한국문학의 초라한 현실을 낳게 만든 주범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존경하는 일본소설가 다카무라 가오루가 이런 말을 했단다. "책은 책이고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순문학이나 통속문학이니 나는 모른다. 나는 그저 소설을 쓸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최인호 작품의 공은 (아마도 평론가들은 공감하지 않겠지만) 70,80년대 그 어두웠던 시절에, 놀것 하나 재미거리 하나 없던 그 시절에, 재미와 감동을 겸비한 소설들로 숱한 대중들에게 불면의 밤을 선물했다는 것이다. 책 읽는 재미를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작가라고 불리려면, 자기 이야기만 쏟아내는 것도 좋지만 자기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잘 들어줄까 하는 '포장의 고민'도 해야 한다. 당연한 걸 모르는 기본도 안 된 작가가 요즘 너무 많고, 그래서 한국 문학의 위기가 온 것이다.

 

 

P.S/ 평론가의 해설과 단어풀이까지 수록되어 있어 수험생을 겨냥한 듯 하다. 그러나 단어풀이는 맨 뒤에 실려 읽는 도중 흐름을 깨기 일쑤였다. 계속 앞뒤로 왔다갔다하니 말이다. 게다가 '여우비' '돌개바람' '일갈' 등의 단어들도 뜻풀이를 해준다. 수험생에게 공부를 시키고 싶다면, 이런 단어쯤은 사전 찾아 해결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식의 밥떠먹여주기가 한국 수험생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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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5
이종호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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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와 열대야로 전국민이 신음하는 요즘, 체온을 떨어트려줄 수 있는 무언가가 간절하다. 필요하면 얻게 된다고 마침 출간된 <이프>가 꽤 무섭고 재미있다는 이야기가 들려 무더운 밤에 펼쳐보았다. 약 50쪽을 읽고, 바로 덮어버렸다. 밤에 읽기 무서웠기 때문이다(사실 본인이 겁이 좀 많다).

 

영화화된 <분신사바>로 유명한 작가 이종호 님은 몇 편의 공포소설을 꾸준히 발표해, 척박한 한국 공포소설계의 든든한 버팀목 같은 존재로 활약하고 있다. 오랜만에 발표한 신작 <이프>는 어떤 작품일지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이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상당히 괜찮아 만족했다. 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호러의 본고장, 일본에 내놓아도 부족한 점이 없을 듯하다.

 

원인불명의 연쇄자살사건을 조사하는 기자 도엽의 시점으로 주로 전개되고 있는데, 뭐에 홀린 듯이 원치 않는 자살을 감행하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도 병행되어 지루할 틈이 별로 없다. 쓸데없이 길기만 하지도 않아, 압축적이고 효과적으로 독자를 공포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도 칭찬할 만하다. 불필요한 잔가지는 일체 배제하고, 불길한 분위기, 기묘한 사건, 사건의 조사 과정에만 집중해 만족스런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전 세계를 떨게 만든 전설의 공포소설 <링>에서는 비디오를 본 사람들이 죽음을 맞았다. <링>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형편없었던 다른 일본 공포소설 <베이비메일>에서는 핸드폰으로 전송되는 사진이었다. 그렇다면 <이프>는? 이메일이다. ‘스벵가리의 선물’이라는 이메일을 본 사람은 모두 자살하게 된다. 도대체 이메일의 정체는 무엇이길래, 하는 독자의 호기심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겨우 풀린다. 

 

공포소설에서 사용되는 중요한 장치 중 하나가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무언가인데, 이를테면 귀신이나 좀비, 흡혈귀 등의 실제 존재하지 않는 무엇 말이다. 그렇지만 <이프>에서는 나름대로 이 기묘한 사건의 비밀을 현실적으로 말이 되게끔 해명하려 노력한다. 그런 점에서 공포 코드를 사용한 일종의 미스터리 소설이나 스릴러 소설, 혹은 미스터리 기법을 차용한 공포소설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현대사회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고, 첨단화되다 보니 공포작가들에겐 일종의 시련이 온 셈이다. 이제 우리를 떨게 만들었던 예전의 괴담들은 그 시효를 다한 듯 하다. 산 속 공동묘지에서 머리 푼 귀신? 온 사방이 불빛으로 휘황찬란하고, 개발로 인해 묘지터는 점점 사라져가는데 귀신이 발 붙일 곳이 어딨나. 필연적으로 공포소설가들은 우리가 늘 손에서 놓지 않는 첨단기기들을 이용해 공포소설을 전개해나갈 수밖에 없다. 비디오, 핸드폰, 이메일 등으로 말이다. 더구나 이것들의 확산 속도는 그야말로 ‘공포’스러울 정도다. 이런 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발빠른 작가라고 할 수 없겠다. 위에서 <링>과 <이프>의 소재 상의 유사점에 대해 말했는데, 사실 요즘 나오는 웬만한 공포소설을 두고 <링>의 영향을 빼고 말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워낙 공포소설 장르의 마스터피스였기 때문이다. <대부> 이후에 나온 모든 갱스터영화가 <대부>에 빚을 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스벵가리의 선물’을 조사하던 기자 도엽이 너무 느닷없이 사건의 본질을 깨닫는다는 점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외 거의 부족한 것이 없는 한국 공포소설의 수작이다. 

 

 

- 읽은 분만

 

p.s1/ 어제 술을 많이 마시고, 내려야 하는 지하철 역에서 못 내리고 종점에서 내렸다. 낯선 동네에서 당황하고 있는데 눈에 들어오는 중국집 '신기루'. 좀 오싹했다. ^^

 

p.s2/ 자신이 공포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있다는 환상에 빠졌던 선우. 이 사람, 최면에 제대로 걸렸구나, 하고 생각했다. 척박한 한국 공포소설 시장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니. 하고보니 이건 좀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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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6-08-09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함 읽어봐야겠는걸요. 요즘 날이 너무 더워서요 -_-;;

jedai2000 2006-08-1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시나마 무더위를 싹 잊으실 겁니다. ^^

 
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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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그네>로 제131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오쿠다 히데오의 최신작입니다. 전작에서 다양한 강박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독특한 방법으로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내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이번 신작 <남쪽으로 튀어>도 아주 유쾌하고 훈훈한 가족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네요. <공중그네>와 <인 더 풀>의 이라부 시리즈가 나오키상 수상작 치고는 좀 가볍고 허무맹랑했다는 불만이 있으신 분들도 이번 작품에서는 충분히 만족하실 겁니다. 그만큼 재미있고 감동적인 성장소설+가족소설+풍자소설이거든요.

 

 도쿄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지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로 머리가 복잡한 소년입니다. 그 나이 또래에 겪는 몽정이나 스물스물 피어나는 성욕도 그렇지만, 돈을 가져오라고 협박하는 악마 같은 중학교 불량배도 무시 못할 고통이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자칭 과격파 운동권 출신인 그는 '혁공동(아시아 혁명 공산자의자 동맹)'의 열혈 투사였습니다. 그러나 단체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내홍에 질린 그는 탈퇴 후 좌익과 우익을 모두 거부하는 극렬 아나키스트로 자처합니다. 세금? 절대 안 내죠. 아들의 학교? 다닐 필요 없대요. 국민연금? 국민연금을 낸다면 국민 관두겠답니다. 한 마디로 국기 기관 입장에선 '공공의 적'입니다.

 

놀라운 건,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랑스런 어머니 역시 '오차노미즈 대학의 잔다르크'라는 별명을 가진 투사 출신이라는 겁니다. 이제는 철지난 투쟁의 깃발을 여전히 높이 들고 21세기를 사는 이 부부의 아들은 지로는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눈을 돌리지 않는 부모(특히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전2권으로 이뤄진 이 작품의 1권에서는 우에하라 가족의 도쿄 생활기가 펼쳐지고, 2부에서는 국가의 모든 억압을 떠나 따뜻한 남국의 섬에서 자급자족의 생활을 하는 남쪽 생활기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지배자의 압박은 지상 낙원과도 같은 섬에까지 뻗쳐오고 맙니다. 우에하라 일가의 집터에 호텔을 짓겠다는 자본가와 관청이 연합해 그들의 집을 강제 철거하려고 합니다. 타고난 투사인 아버지가 가만히 있을 리 없겠죠?

 

격렬했던 60년대 일본의 대학 투쟁을 바탕에 깔고 전개되는 일종의 후일담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식의 재미없고, 패배주의적이거나, 혹은 자화자찬 식의 그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문학이 아니죠. 이 작품의 말미에서도 결국 강력한 정부의 공권력에 아버지 이치로는 패퇴하고 맙니다. 한 인간의 의지와 열정으로는 바꿀 수 없는 세상의 비애가 그려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최후까지 투쟁하는 굳센 아버지의 모습은 그런 비애감을 뛰어넘는 위대한 인간의 정신을 보여줍니다. 여기가 이 작품의 진짜 감동이 숨어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적고보니 마치 이 소설이 화염병이나 던지고 각목을 휘두르는 투쟁담에 불과한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남쪽으로 튀어>는 소년 지로의 눈에 비친 삭막한 도쿄의 현실이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지배자의 폭압, 어른들의 위선 등을 아주 '유머러스'하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다루고 있는 현실이 암담할수록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유머의 가치는 더욱 높아집니다. 진지한 주제지만 유머라는 당의정을 입혀 누구나 쉽게 접근하게 만드는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부분이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유머는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지로와 여동생 모모코는 의절한 엄마의 부모, 그러니까 외할머니 댁을 몰래 방문합니다. 뜻밖에 어마어마한 부자인 외가집을 보고 모모코는 말하죠.

"울 엄마,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란 딸이었네." 모모코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가 보다."

"야반도주만 하지 않았으면 나도 저 집 아이가 됐을 텐데."

"바보, 엄마가 아버지하고 도망치지 않았으면 너는 태어나지도 않았어."

초등학교 4학년은 아직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을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좀더 풍자적인 예를 찾아볼까요. 2권 남쪽 섬을 철거하려는 정부, 자본가 세력과 우에하라 일가의 대결을 취재하는 매스컴 관계자들의 싸움입니다.

"어이, 아이들은 끌어들이지 마!" 다른 기자가 옆에서 거칠게 소리쳤다. "아이들 코멘트는 따지 않기로 합의했잖아."

"내가 언제 코멘트를 받았다고 그래? 나는 우에하라 씨에게 연락을 좀 해달라는 것뿐이야." 즉각 사납게 대든다. 모모코가 겁에 질려 지로의 등 뒤에 숨었다.

........

"아무튼 부부 이외에는 취재하지 않는다는 게 규칙이니까 그렇게 해달라고. 그걸 지키지 않으면 공동회견 떄는 뺄 거야."

"이 새끼, 총무 한 번 맡더니 이래저래 제멋대로 하고 있어."

"이봐, 말조심해." 기자가 얼굴을 붉혔다.

"제1선은 우리야. 나중에 왔으면서 무슨 잔소리냐고."

"이봐, 어지간히 해. 아이들 앞에서 어른들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다시 다른 기자가 끼어들었다.

"부끄러운 줄 알라고? 너희 회사지, 그 가게 삼각김밥을 몽땅 사들인 게?"

결국 기자 간의 취재 에티켓에 대한 논의는 삼각김밥으로 귀결되고 말았네요. ^^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작품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지로는 우에하라 일가의 조상으로 짐작되는 아카하치에 대한 동화를 발견합니다. 아카하치는 아버지 이치로와 마찬가지로 타고난 반골에, 물러서지 않는 투사 기질을 가지고 있는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카하치는 동화 속에서 서양에서 온 배의 선원과 일본의 무녀 사이에서 난 아이였습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순수 일본인이라고 할 수 는 없는 거였죠. 그러고 보니 아버지 이치로도 눈썹이나 머리 색깔이 붉습니다. 작가는 이제 토종 일본인 중에는 이런 기백있는 인물이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섬나라 일본인의 편협함, 용기없음 등을 비꼬려고 했다는 건 제 억측에 불과할 뿐일까요?

 

<남쪽으로 튀어>를 읽다보면 정말 모든 강요된 국가의 통제를 넘어 따뜻한 남쪽섬으로 가고 싶습니다. 세금도, 교육도, 전쟁도 없는 평화롭고 경치좋은 곳으로 말예요. 국가라는 것이 결국은 지배자의 배를 불리기 위한 수단은 아닐까 생각해보게도 되고요.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은 인간의 행복에 꼭 국가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투쟁을 보고 한뼘쯤 커버린 지로의 성장기로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로 이어져 있는 가족의 사랑을 그리는 가족소설로도, 현대사회에 대한 풍자소설로도, 유쾌한 재담으로 가득찬 유머소설로도 모두 만족스런 소설입니다. 반드시 읽어보시길...

 

마지막으로 여기나 거기나 일부 운동권의 폐해는 똑같이 심각한가 봅니다. 예전의 기억에 젖어 자랑질만 일삼는, 사회에 별 도움 안 되는 쓸모없는 운동권 잔당들에게 작품에 등장하는 이 대사를 바칩니다. 지로의 남쪽섬 친구 나나에의 대사입니다.

"아니, 상관없어. 멀쩡한 어른이 제대로 일도 안 하면서 반대운동은 무슨 반대운동이야?"

"그래?"

"글쎄, 초등학생에게는 제대로 설명을 못하겠다만, 뭐랄까, 일하기 싫은 거, 돈 못 버는 거, 출세하지 못한 거를 무슨 간판처럼 내세우는 것 같아. 무조건 정의만 부르짖으면 다들 아무 말도 안할 줄 아나 봐."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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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8-06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다양한 소재에 대한 안목이 부럽더군요. 쉽고 재미있게 읽게 만드는 능력도요.

비로그인 2006-08-07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섬으로 가고 싶어요~!

jedai2000 2006-08-07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맞습니다. 이런 작가가 하드보일드 추리소설까지 썼다니 빨리 보고 싶을 뿐입니다. ^^

비숍님...모든 걸 잊고 떠나보시죠. ^^

oldhand 2006-08-07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

Koni 2006-08-07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재가 미묘해서 망설이던 책인데, jedai2000님 리뷰를 보고 읽기로 결정했어요.^^

jedai2000 2006-08-07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읽어보신 분들이 대체로 모두 만족하시는 분위기네요.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죠, ^^

냐오님...오, 영광입니다. 냐오님께 만족을 드릴 수 있는 작품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