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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 공동묘지 - 상 ㅣ 밀리언셀러 클럽 33
스티븐 킹 지음, 황유선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월
평점 :
작명소에서 비싸게 돈을 들여 자녀들의 이름을 짓는 분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솔직히 이름이 뭐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자녀가 잘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작명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있으니 그 이름, 바로 미국의 스티븐 킹이다. 이름에 킹(King)이 들어가는 작가답게 스티븐 킹은 작가로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으니 아마 현존하는 작가 중에 가장 많은 책을 팔았을 것이다. 그의 소설은 누적 판매 부수가 3억부를 넘고 대부분 영화화되었다. <캐리> <스탠 바이 미> <샤이닝> <돌로레스 클레이븐> <쇼생크 탈출> <드림 캐처>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아마 그의 소설이든 영화든 한 편도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원래 호러소설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일까.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았다. 중학교 때 It이라는 작품을 보다가 내던진 기억도 난다. 공포소설이라는데 무서운 장면이 안 나오길래, '귀신은 언제 나와'를 수십번 외치다가 결국 포기했었다. 유일하게 읽은게 <사계>라는 단편집이었는데 여기 수록된 작품들이 <쇼생크 탈출> <스탠 바이 미> <죽음보다 위험한 비밀 Apt Pupil> <생매장>이다. 이 뛰어난 단편집은 일반 소설에 가까운데 스티븐 킹이 머리 식히는 의미에서 가볍게 썼다는 말을 듣고 경악했던 기억이 있다. 이 작가는 진짜 본인 자체가 괴물인 것을 알고나 있을까. 거의 처음으로 접한 스티븐 킹의 본격 호러소설 <애완동물 공동묘지>를 읽고난 지금의 심정 역시 비슷하다. 한 마디로 대단하다.
미국 남부의 한적한 도시로 이사한 크리드 일가는 행복하다. 남편 루이스는 대학에서 근무하는 의사로 벌이도 괜찮고 존경도 받는다. 아내 레이첼과의 사이도 좋고, 유치원에 다니는 귀여운 딸 엘리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갓난쟁이 아들 게이지와 함께 커다란 집에서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옆집에는 아버지를 일찍 여윈 루이스에게 유사 부자 관계로 다가오는 저드라는 현명한 노인도 산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그러던 어느날, 딸 엘리가 너무나 귀여워하는 고양이 윈스턴 처칠이 교통사고로 죽게 되자 루이스의 주름살이 깊어진다. 딸이 상심할텐데, 걱정하는 그에게 저드는 이 마을의 애완동물 공동묘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그곳에 죽은 애완동물을 묻으면 그날 다시 부활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루이스는 처칠을 애완동물 공동묘지에 묻고 고양이는 부활한다. 그러나 총명했던 처칠의 몸놀림은 굼뜨고, 몸에서는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 무엇보다 가장 충격적인 변모는 처칠에게 새로 생긴 취미였다. 까마귀나 쥐를 잡아 머리를 자르고 내장을 파내는 취미에 빠진 처칠을 보고 루이스는 경악한다. 그럼에도 루이스 일가의 삶은 아직까지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아들 게이지가 교통사고로 죽기 전까지는. 마르지 않는 슬픔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루이스의 선택을 예상해 보라. 루이스는 생각한다. 고양이가 부활한다면 사람도 부활할 것이 아닌가...
호러 제왕의 작품답게 이 작품은 시종일관 소름끼치고 독자를 덜덜 떨게 만든다. 무엇보다 설득력있는 이야기 전개가 압권이다. 특히 아들을 잃은 루이스의 절절한 슬픔을 묘사하는 장면들은 공포소설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필력이었다. 아들 게이지가 커가면서 이룰 수 있었던 가능성에 대해 루이스가 상상하는 모습들. 게이지는 커가며 수영을 즐기고, 나아가 국가대표 선수가 되서 금메달을 딸 수도 있었다. 수영 모자를 쓰고 단상에서 금메달을 수여받는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게이지. 그러나 현실에는 아무 것도 없다. 어린 게이지의 모자는 피로 가득차 있었고, 이제 수영은커녕 차디찬 무덤에서 쓸쓸히 잠들어야만 한다. 아니 아들이 수영은 못해도 좋다. 바보라도 좋다. 그저 곁에서 바라볼 수만 있다면 하고 바라는 루이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말았다.
루이스는 처칠의 변화를 통해 이미 학습했다. 애완동물 공동묘지에서 부활한 존재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파국을 이미 예상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아들을 살려내야만 했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너무 깊었기 때문에, 한 번만이라도 다시 봤으면 하는 욕망 때문에.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본질적으로 금기에 대한 매혹적인 열망, 구역질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유혹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 이래 미국의 뛰어난 소설가들은 공포소설이라는 외피를 통해 인간의 어두운 면을 천착하고 있다. 스티븐 킹은 선대의 위대한 소설가들에 비교해 전혀 부족할 것이 없는 작가다. 에드거 앨런 포, 헨리 제임스 등의 작가와 비교해 그가 떨어지는 것이 무엇인가. 3억부를 팔았기에 대중소설가로 굳어져 있지만 그의 필력과 작품 세계는 이미 후대에도 빛날 거장의 풍모를 갖추고 있다.
스티븐 킹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건 거의 처음이지만 이 정도의 수준과 재미를 다른 작품이 보장한다면 나는 언제든지 그의 작품을 잡을 것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은 조여오는 불안감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심리적인 공포에 능한 작가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애완동물 공동묘지>에는 공포영화나 공포소설의 팬들이 익숙한 여러가지 장치들도 자주 등장한다. 취미로 까마귀의 머리를 찢는 고양이가 등장하는 작품인데 무엇이 부족하겠는가. 긴 분량의 작품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뒷이야기를 살짝 노출시키면서도 김이 빠지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그의 필력은 과연 선수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었다.
"올림픽 수영 팀도 없었고, 대학에서 3.0을 받는 일도 없었고, 성당을 다니는 어린 여자 친구나 개종도 없었고, 아가왐 캠프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게이지의 운동화는 찢겨져 있었다. 점퍼는 안팎이 뒤집혀 있었다. 그가 사랑하는 조그만 아들의 몸, 그렇게 튼실했던 몸은 거의 갈기갈기 찢어졌다. 아이의 모자에는 피가 가득 차 있었다...그는 침대 위에서 몸을 앞뒤로 흔들며 얼굴을 손으로 감싼 채 흐느끼면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어떤 일이라도."
별점: ★★★★ 1/2

<호러의 제왕, 스티븐 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