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문
렌죠 미키히코 지음, 김현희 옮김 / 더블유출판사(에이치엔비,도서출판 홍)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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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 <연문>은 한자로 戀文이라고 씁니다. 사모하는 글, 즉 연애편지를 말하는 거지요. 제목 그대로 아름답고 그만큼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를 다룬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입니다. 84년 제 91회 나오키 상 수상작이고, 이듬해 영화화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2003년에 드라마화되서 다시 한 번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하네요. 그만큼 일본인들의 마음 속에서는 잊을 수 없는 연애소설의 고전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연애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연문>만큼은 정말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연문>에 실린 첫 번째 작품은 제목과 같은 의미인 <러브레터>입니다. 철없는 연하의 남편을 둔 아내가 있습니다. 장난을 잘 치는 남편은 어느날 평소처럼 가벼운 말투로 말합니다. '미안해'라고..그 말을 남겨두고 남편은 떠납니다. 알고보니 남편이 결혼 전 사귀던 여자가 백혈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고, 그는 그런 그녀의 곁을 보살펴주기 위해 떠난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 일을 계기로 병든 남편의 옛애인을 만나게 되고, 뜻밖에 마음이 통하는 친구 사이가 됩니다. 이 작품은 연애편지와 그것에 쓰인 사랑의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사랑은 정말로 상대방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자유를 줄 수 있는 용기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여지껏 본 가장 눈물나는 러브레터가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붉은 입술>은 정말 좋은 작품입니다. 아내를 병으로 잃은 중고차 판매점 직원에게 장모가 찾아옵니다. 아내가 죽음으로 해서 인연이 끝어졌다고 생각했는데, 튼튼한 장모는 씩씩하게도 집안일을 도맡아하며 옛사위의 삶에 침투합니다. 옛사위가 새로 사귀는 여자를 품평하기도 하며 훼방을 놓기도 하지요. 기묘하지만 따뜻한 관계가 지속되다가 남자는 장모의 옛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과거와 현재의 사랑 이야기가 붉은 입술 연지 하나를 매개로 교차하며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줍니다. 머리속에서 구체적으로 장면을 그려보면 엄청나게 눈물나는 작품이지요.

 

<13년 만에 부르는 자장가>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재혼한 어머니의 새남편은 주인공보다 3살이나 어린 32살. 당연히 주인공은 그를 싫어하지요. 하지만 그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붙임성 좋고 싹싹한 새남편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새남편은 주인공의 속도 모르고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부탁합니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지요. 묘하게 아버지라는 이름에 집착하는 새남편과 주인공의 가족사와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이 펼쳐지다 따뜻하게  마무리됩니다.

 

<피에로>는 아내를 위해 언제나 헌신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늘 남을 웃기는 걸 좋아하는 친절하고 재미있는 남편은 아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합니다. '난 괜찮아.'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서서히 외로움을 느낍니다. 심지어 자신이 다른 남자를 만나 바람 직전까지 가는 상황에서도 남편은 '난 괜찮아'로 일관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의미와 가치를 잃고 나서야 깨닫는 안타까움의 정서가 작품을 지배합니다. 늘 소중한 건 잃어봐야 그 소중함을 아는 법이니까요...

 

마지막 작품인 <재회>는 감정이 고장난 사람을 제외한 독자 모두를 눈물나게 만들 애절한 사랑이야기입니다. 성공만을 쫓는 불나방같은 인생을 사는 카메라맨 주인공을 그의 사촌 누이는 사랑합니다. 남자가 아직 어른이 되기 전, 거짓말만 만들어내는 어른이 되기 전부터 그를 알았던 사촌 누이는 마침내 사랑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친척이고 결혼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눈을 피해 평생 도피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공의 꿈을 꾸는 남자는 받아들일 수 없었죠. 누이는 남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합니다. 다섯 장의 사진을 남기고 떠나간 누이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3년 뒤에 사망합니다. 20년이 지나서야 주인공은 다섯 장의 사진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숨겨야 했던, 하지만 너무도 알리고 싶던 사랑의 의미가 담긴 사진을 말입니다.

 

이상 다섯 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좋습니다. 작가 렌죠 미키히코의 작품을 처음 읽어보는데 감탄에 감탄을 곱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다섯 편의 작품 모두 특색이 있고, 기품이 있습니다. 원래 추리소설작가로 데뷔했던 사람답게 작품마다 나름의 미스터리를 깔아두고 있습니다.(사람이 죽거나 하는 범죄적인 것이 아닌, 인생과 사랑의 미스터리를 말입니다.) 주인공들의 행적에 알수 없는 미스터를 깔아둠으로 독자의 호기심과 집중력을 이끌어가다 결말에 이르러 모든 비밀이 밝혀지면 둔중한 감동의 망치로 가슴을 세게 때립니다. 깊은 여운과 넓은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진짜 감동을 만들어내는 진짜 작가입니다.

 

<붉은 입술>에서 장모의 사랑을 상징하는 반딧불이를 도시의 자동차 불빛으로 형상화낸 대목이나, 슬롯머신 유리창에 비친 눈물의 의미를 말하는 대목은 쓸쓸하고 삭막한 도시 생활에 윤기를 주는 명장면들입니다. <재회>에서의 다섯 장의 사진은 눈 앞에 있는 듯 생생하게 그려지고요. 원래 시나리오를 공부했다는 사람답게 활자를 마음 속의 영상으로 바꾸어 주는 마술사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들이 영화화되고 드라마화되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의 관찰력과 감수성, 상상력에 모두 경의를 표합니다. 작가 후기를 읽어보니 자전적인 이야기도 있고, 부모님의 이야기, 실제에서 약간 부풀린 이야기들이 섞여 있지만 전부 현실 속에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공의 이야기가 아닌 실제의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 있습니다.

 

작가 렌죠 미키히코는 1948년생으로 원래 <戻り川心中>라는 추리소설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면서 명성을 떨쳤습니다. 언급한 작품은 일본추리소설의 걸작 리스트에서 항상 상위권에 위치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연문>같은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도 기품있게 잘 쓰시네요. 이런 작가의 작품을 더 볼 수 없다는 건 진짜 비극입니다. 겨우 단편집 하나 읽고 좀 너무 나갔다 싶은 생각도 있지만 이분이야말로 현재 일본 최고의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분간 이 생각이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네요...

 

 

 

작품 속에 나온 몇 마디의 대사들은 실제로 현실 속에서 제가 직접 들은 것들입니다. 이 책은 그렇게--- 제게 소박하지만 멋진 명장면과 명대사를 주신 만만찮은 아마추어 명배우들에게 제가 보내는 '러브레터입니다.'

 

- 렌조 미키히코 (작가의 말 중에서)

 

 

그럼 난 보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는 여자를 울릴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이 내가 할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눈물이 나올 만큼 감동을 전하는 그런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까?... 술 취한 눈에 비치는 하얀 원고지가 마냥 눈부시기만 하다.

그래, 하고 머릿속에서 번쩍인다. 그것을 하면 된다, 나를 울렸던 <재회>를...

"렌죠 씨, <재회>를 주세요."

이것이 바로 원작자에게 보내는 엉터리 시나리오 작가의 '러브레터(戀文)'입니다.

 

- 시나리오 작가 아라이 하루히코  (작품 해설 중에서)

 

 

올 겨울은 유난히도 따스했다.

하지만 느지막히 찾아온 추위는 싸락눈을 찬바람에 태우고 살며시 이 도시에 내려앉았다.

눈부실 정도로 하얗게 쌓이지는 않았지만

1월의 눈송이가

조용히 땅 속으로 녹아 스며들었듯 러브레터(戀文)의 감동도 그렇게 오래도록 스며들 것 같다.

 

- 옮긴이 김현희 (옮긴이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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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메일 - 저주받은 메일의 주문
야마다 유우스케 지음, 정창열 옮김 / 이가서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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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일본 공포소설이다. 페이지도 220쪽에 불과해 가볍게 읽어볼까 하고 잡았는데 정말 너무 가벼워 1g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졸작이었다. 띠지에 일본에서 가뿐히 100만부를 넘기고 영화화 중이라는 말이 있던데, 권당 10엔 씩에 팔지 않고서는 100만부를 팔 수 있을 작품이 아니었다. 설마 띠지에 거짓말을 쓰지는 않았을테지만...

 

내용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고등학교 교사와 그의 절친한 친구인 형사가 불가사의한 죽음의 비밀을 밝혀낸다는 내용이다. 도쿄에서 원인불명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는 전부 여성으로 불임으로 고통받거나 성관계를 하지 않는 등 실제 임신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부 임신이 되어 있다. 그런데 죽은 피해자들은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고, 탯줄은 끊어져 있다. 여자들이 임신한 아기는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아이를 가져간 것일까? 그런데 피해자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죽기 한 달 전에 정체불명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 '베이비 메일'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베이비 메일이 주인공의 애인에게 날아들자 화들짝 놀라 메일의 비밀을 밝혀낸다는 <링>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다.

 

작가 야마다 유우스케의 문장력은 정말 형편없다. 속도감있는 문체의 소유자라고 작가 소개에는 적어 놓았지만 그보다는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낼 수 없는 아마츄어 수준의 작가다. 실제로 작품에는 어떤 근사한 비유나 섬세한 심리 묘사,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서술이 없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취미로 공포소설을 쓰는 아마츄어의 글을 보는 듯 하다. 좋은 공포소설이라면 마치 피아노를 치듯이 읽는이의 심리를 이리저리 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휘둘러 마침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 궁극적으로는 소름끼치는 공포감을 유발해내야 할텐데 작가의 역량이 기대 이하라 어떤 긴장감이나 공포감도 생기지 않는다.

 

대사라는 것도 전부 이런 식이다. 실제 본문에서 발췌한다. 형사가 하는 대사다.

"부인께서 임신했을 리가 없다. 그러나 부인의 뱃속에는 아이가 있었다. 제 애인은 임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4개월이 지났다. 있을 수 없는 임신이었다. 두 사람 모두 베이비메일을 받았다."

조각조각 기워진 누더기같은 대사들이다. 형편없는 번역 탓도 크지만 기본적으로 원문에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정말 웃긴 것은 220페이지라는 짧은 분량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주인공인 선생과 형사는 사건을 수사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도움을 요청하면서 베이비 메일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게 한 번쯤 나오면 사건을 되짚어주는 효과가 있지만, 계속 나오니까 분량 늘리려는 욕심으로 밖에 안 보인다.

 

예컨대 주인공들이 A씨를 만났다.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베이비메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베이비 메일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어쩌구저쩌구..."

B씨를 만나도...

"혹시 아내가 베이비 메일을 받지 않았나요? 받으셨다구요? 베이비 메일이란 어쩌구저쩌구~~"

C씨한테도...

"베이비 메일은 해괴하고 위험한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구저쩌구..."

 

A씨와 B씨, C씨는 물론 베이비 메일의 정체를 모르니 들을 때 흥미롭겠지만 3번씩 듣는 독자는 괴롭다. 도대체 기본도 모르는 작가 같다. 220 페이지라는 짧은 분량에서 이 정도의 결점을 드러내는 작가라면 미래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단 한 번의 공포스런 장면도 없어, 내내 졸면서 봤다. 내가 이 책을 꿈에서 봤는지 실제 봤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졸면서 이 책의 뒷장면을 꿈꿨는데 실제 책 내용과는 달랐다. 하지만 내 꿈이 더 재미있었다.

 

엄청나게 불량스런 번역과 교정 상태로 220페이지에 오타도 엄청 많고, 잘못된 문장 부호까지 총체적으로 문제점이 많은 책이다. 애서가로써 이런 말은 하기 싫지만 어떻게든 피해야할 작품이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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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02-14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포소설인데 하나도 안 공포스러우면 망했죠..^^;;

panda78 2006-02-14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낼 책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걸 골라서 냈을까요. 쩝.

jedai2000 2006-02-14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제가 원래 정말 무서움 잘 타거든요. 좋아하는 서지혜 양이 나오는 <여고괴담4>도 못보고 있습니다. 혼자 보기 무서워서요. 그런 제가 봐도 하나도 안 무섭더군요..^^;;

판다78님...사기 당했겠죠, 뭐. ^^;; 출판 에이전시에서 출판사에 자료를 보내주는데 팔아먹을라고 무슨 작품이든 다 재미있고 뛰어난 것처럼 요약해 보내 줍니다. 그 자료 보고 혹해서 계약하면 망하는거죠. 뭐 그러다 의외로 좋은 작품을 만나기도 하지만요..^^;;

한솔로 2006-02-14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결코 에이전시만 믿고 사면 개피 보기 쉽상이죠. 물론 좋은 소설을 골라주는 에이전시도 있지만... 근데 에이전시들도 쎈 타이틀 아니면 소설은 잘 안 할려고 하는 거 같아요.

jedai2000 2006-02-14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제가 출판사에 있을 때도 에이전시 자료 갖고는 한 번도 계약 안 한 거 같습니다. 하긴 소설이 잘 안 팔리니까 에이전시에서도 별로 내켜하지 않겠죠.

한솔로 2006-02-14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전 회사 있을 때 계약했던 소설 타이틀이 몇 건 있었고, 제가 매조지 못하고 그냥 나왔지만 그중에 달랑 하나 나왔는데 그건 좀 반응이 있더군요. 그 경우야말로 진짜 운 좋은 경우지만...
여기 옮긴 이후로 이것저것 슬쩍 이야기를 꺼내보는데, 오퍼 넣기까지의 과정이 꽤나 냉혹하네요. 그렇다면 제가 좀 구라라도 잘 쳐야 하는데 그것도 잘 안되고-_-;;
이 장르 소설 시장에서에 대해서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고민이 많은 요즘입니다.
그래도 알라딘에 블로그를 장만하고 눈에 보이는 동류항의 사람들을 만나니 힘은 얻습니다^^

jedai2000 2006-02-14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한솔로님께서 계신 곳처럼 큰 출판사에서 의욕적으로 장르문학을 선보여야 시장이 확 살텐데 말예요. 그래도 장기적으로 보면 희망적인 것 같아요. 여기 알라딘 님들처럼 정성과 안목을 겸비한 독자님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 말입니다. ^^;;
한솔로님께서도 더욱 힘을 내셔서 좋은 작품 많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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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종차별이 꼭 미국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농촌의 총각들이 국내에선 배우자 찾기가 힘들어 베트남이나 필리핀 등의  처녀들과 국제 결혼을 통해 부부로 살게 된 것도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필연적으로 혼혈 자녀들이 태어나게 되는데, 그 아이들이 검은 피부색과 한국 사람과는 다른 외모로 인해 놀림을 받고 심하게는 차별대우까지 받고 있는 것을 TV 다큐멘터리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것은 향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다분한 한국 사회의 고약한 암세포 중 하나이다. 대체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동남아시아의 노동자나 먹같이 까만 피부를 가진 흑인들만 보면 나도 모르게 움찔하는 사람이나, 무식하고 가난한 나라 사람이라고 경멸하는 사람들에게 <앵무새 죽이기>라는 책을 권해주고 싶다.

 

 

<앵무새 죽이기>는 1960년에 출간된 하퍼 리의 자전적 장편소설로 출간 당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문학 부분 퓰리처상을 탄 작품이다. 위에서 인종 문제를 들먹이며 거창하게 소개했지만 한 편의 성장소설로도 따뜻하고 품위있는 작품이라 남녀노소 누가 봐도 좋을 듯하다.

 

작품의 배경은 1930년대 초, 대공황의 여파로 움츠러들대로 움츠러든 미국 남부의 앨러배마 주이다. 이 작품은 변호사인 아버지를 둔 오빠 제레미(젬) 핀치와 여동생 스카웃(진 루이즈) 핀치 남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통해 미국 남부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직은 어린 스카웃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순과 편견이 작품의 주제를 극명하게 형상화하는 듯 하다.

 

여름방학을 맞아 젬과 스카웃 남매는 사방으로 놀러다니며 온갖 놀이에 빠져 정신이 없다. 그러다 옆집 이모네 머물러 온 딜이라는 소년을 만나 세명의 아이는 삼총사가 되어 신나는 나날들을 보낸다. 그런데 스카웃 집 앞에는 래들리씨의 집이 있다. 그 집에는 부 래들리라는 남자가 사는데, 그는 일종의 정신병에 걸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산다. 그런데 부 래들리를 둘러싼 소문은 흉흉하기 그지없다. 부 래들리가 그의 엄마에게 가위를 휘둘러 부상을 입히기도 했다는 등의 소문이 퍼진다. 이 소문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아이들은 부 래들리 놀이를 집 마당에서 하며 논다. 고딕 멜로드라마같은 엉터리 연극 말이다. 그런데 방학이 끝나고 학교 갔다 집에 돌아온 스카웃과 젬은 집 앞 나무등걸 속에 츄잉검과 고장난 시계, 행운의 동전 등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스카웃 남매는 그 해 여름, 부 래들리의 존재를 도처에서 느끼게 된다.

 

여기까지가 1부의 내용이다. 2부에서는 아빠가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혐의를 받은 흑인 톰 로빈신의 변호를 해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아빠는 백인 남성들의 테러 위협을 받기도 하고, '깜둥이 애인'이라는 세상 사람들의 모욕을 받지만 정의롭고 진중한 변호사로서 질게 뻔한 변호에 최선을 다해 임한다. 그러나 누가 봐도 톰 로빈슨이 무죄임이 분명하지만, 백인 배심원들의 판결로 인해 유죄를 받게 된다. 이제 어느 정도 '사내'아이가 된 젬은 분노하지만 아빠는 그게 어쩔 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쓸쓸하게 가르친다. 

 

"젬, 무슨 일이냐?"

"그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말이에요?"

"나도 몰라.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했어. 전에도 그랬고 오늘 밤도 그랬고, 앞으로도 또다시 그럴 거다. 그럴 때면 -- 오직 애들만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구나. 잘 자거라."

 

이런 대목도 있다. 흑인 톰 로빈슨을 열렬히 변호하는 아빠의 모습에 감동받은 흑인들이 십시일반 먹을 것을 놓고 가는 감동적인 대목 말이다.

 

우리는 아빠를 따라나갔다. 부엌 테이블에는 가족 모두를 파묻고도 남을 만한 음식이 가득 쌓여 있었다.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며, 토마토며, 콩이며, 심지어는 머루까지 있었다...

캘퍼니아 아줌마가 말했다.

"오늘 아침에 와 보니 뒤쪽 계단 주위에 놓여 있었지요. 저들은 -- 변호사님께서 하신 일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저들이 주제넘은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니죠?"

아빠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려 잠시 동안 말을 잊지 못하셨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정말 우리 바로 옆에서 살아 숨쉬는 듯한 생생함을 보여준다.  아빠 애티커스 핀치의 정의감과 신중함, 따뜻함은 특히 돋보이고, 천방지축 스카웃은 정말 내 여동생같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조금씩 머리가 커가는 젬 도령은 또 어떤가. 거짓말쟁이 딜도 무지 귀엽다. 모디 아줌마의 사려깊음과 밉살맞지만 사실은 멋진 인생을 사셨던 듀보스 할머니, 미스터리를 간직한 부 래들리까지 어느 한 사람 허투루 나오는 인물이 없다. 이렇게 따뜻한 인물들이 사는 마을을 만들어낸 작가 하퍼 리의 필력은 정말 대단해 존경심이 절로 우러난다.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라고 분명히 외치는 힘이 있는 작품이며, 어린 소녀가 자신의 눈만이 아닌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 마음을 배우게 되는 감동적인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이것 저것 다 떠나서 스카웃과 젬의 어린 날의 한 순간은 우리 모두의 어린 날을 생각나게 만든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었던 어린 날의 순수한 모습 말이다. 우리는 어느덧 컸지만 어린 날의 그 용기와 순수를 모두 잃고 말았다. 아쉬운 일이지만 세상 물정에 우리는 이미 익숙해져 버렸다. 이 책을 통해 옳지 않은 일을 보면 울먹여야 했던 어린 날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한 번 미소지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가져보시길...

 

작가 하퍼 리는 <앵무새 죽이기>를 통해 미국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부상했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의 샐린저처럼 두 번 다시 작품을 내지 않고 있다. 인터뷰를 통해 밝히길 '첫 작품이 그렇게 성공하면 두 번째는 내려올 수 밖에 없다'고 했다는데 <앵무새 죽이기>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작품을 낼까봐 글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실제로 두 번째 작품을 쓰고 있다고 하는데 40년이 지난 지금도 발표하지 않(못하)고 있다. 작가로서의 또 하나의 업적은 동향의 작가 트루먼 카포티를 도와 그의 걸작 <차가운 피>의 집필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트루먼 카포티는 <앵무새 죽이기>의 사랑스러운 거짓말쟁이 꼬마 딜의 모델이라고 한다.

 잊을 수 없다...생생하다...품위 있고 설득력 있는 유머와 숭고함이 넘친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라는 희망의 메시지. 그리고 삶 속에서 넘치는 속도와 힘 - 보스턴 헤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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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의랑데뷰 2006-02-03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작부터 대박을 치고 내려온 작가들이 뜨끔하겠는데요. 여러 명이 있겠지만, 전 아이라 레빈을 우선순위에 꼽고 싶습니다;;;;;

한솔로 2006-02-03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소설을 <알라바마에서 생긴 일>(<앵무새 죽이기>의 영화판 제목이기도 한)이란 책으로 읽었어요^^

jedai2000 2006-02-03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복의 랑데뷰님...전 <로즈마리 베이비>가 <죽음 전의 키스>보다 낫던데요..-_-;;
데뷔작에서 다 보여주면 향후 괴로우니까 역량의 80%만 발휘해야겠는걸요..-_-;;

한솔로님...영화가 보고 싶네요. 애티커스 역에 그레고리 펙(!!)이고, 악당 버리스 이웰 역을 로버트 듀발(!!!)이 맡았더라구요..^^;;

메이즈리크 2006-02-17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 하퍼 리는 <앵무새 죽이기>를 통해 미국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부상했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의 샐린저처럼 두 번 다시 작품을 내지 않고 있다.

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해설인 것 같습니다. 샐린저는 적지 않은 단편들을 써 단편집도 몇권 되잖아요. 하퍼리는 정말 앵무새 죽이기 밖에는 쓰지 않은 걸요. 언젠가 샐린저가 무척 많은 소설을 이미 써놓고 사후에 출판하기를 계획하고 있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jedai2000 2006-02-17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렇군요. 저 부분은 번역자 김욱동 교수가 쓴 해설을 그대로 옮겨온 부분입니다. 저는 정말 그런줄 알았네요. 김욱동 교수 분께서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고 쓰셨나 봅니다. 저도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고 그래도 옮겼구요. 그런데 샐린저는 왜 사후에 출판하기를 계획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그 사람 심리는 정말 알 수 없겠는걸요. ^^;;

메이즈리크 2006-02-19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다이님께 뭐라 그런게 아니라, 옮기신 분의 해설에 관해 꼬투리를 잡은 것이었어요. 사실 저도 똑같은 책으로 앵무새 죽이기를 갖고 있거든요.

중력의 무지개와 V를 쓴 토마스 핀천도 샐린저와 비슷한 계획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시무시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이 두 작가의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jedai2000 2006-02-22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욱동 교수의 번역은 읽는데 무리없고 괜찮았는데 해설에서 실수를 하셨네요.

토마스 핀천이나 샐린저 같은 문호들은 왜 사후 출판을 계획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혹시 악평을 받을까봐 두려운 걸까요? 정상에서 내려올까봐 말예요...
 
전차남 - 에르메스와 사랑에 빠진 전차남 이야기
나카노 히토리 지음, 정유리 옮김 / 서울문화사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2004년 일본을 뜨겁게 달군 <전차남> 열풍이 한국에도 찾아 왔습니다. 일본에서 <전차남>은 책도 100만부가 넘게 팔리고 영화, 드라마를 비롯한 온갖 매체로 재생산되면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과연 <전차남>은 어떤 작품이기에 전일본을 뒤집어 놓을 수 있었을까요?

 

우선 <전차남>은 소설 형식의 책은 아닙니다.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에 올라온 내용들이 순서대로 나열될 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모티콘으로 도배된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이 생각나는 형태입니다. 그러나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이 순수 창작이라면, 이 작품은 실화라는 데 그 매력이 있습니다.

(실화인지 아닌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화로 가정하겠습니다.)

 

일본에서도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기묘한 오타쿠들이 모여 그들만의 언어와 문화로 독자적인 공간을 꾸려 나가는 '투채널'이란 사이트가 있습니다. (웬지 '디시 인사이드'가 생각나는군요. ^^;;)

'투채널'에는 애니메이션이나 음란 영화를 비롯해 심지어 자살 사이트까지 있을 정도로 폐쇄적이고 음침한 공간인데, 그곳에 <독남毒男이 뒤에서 총 맞는 게시판-위생병 불러>라는 게시판이 있습니다. 애인하나 없는 독소같은 남자라는 뜻의 독남毒男과 외로운 남자라는 뜻의 독남獨男이 중의적으로 쓰인 게시판입니다.

 

한 마디로 솔로부대원들의 집결지라 이겁니다. 저도 여기 가입해야겠네요..T.T

그런데 이곳에 독남들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는 한 방의 폭탄이 떨어집니다. 어느날, 전차남이라는 아이디의 한 남자가 자신의 사연을 적습니다. 지하철에서 술에 취해 여자들에게 못되게 굴던 아저씨를 우여곡절끝에 자신이 물리치게 됐는데, 그중 한 아가씨가 감사의 표시로 찻잔 선물 세트를 보내왔다, 이런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전차남은 전형적인 오타쿠로 아키하바라를 내 집처럼 드나들고, 19금 에니메이션을 즐기며, 외모는 촌스럽기 서울역에 그지없고, 단 한 번도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는 초절정 독남이었던 것입니다.

 

전차남은 여자의 친절에 당황합니다. 물론 어여뻤던 그 여자에게 끌린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쑥맥인 그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합니다. 독남들은 전차남에게 조언을 하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그 찻잔의 상표가 뭐냐고 묻자, 전차남은 에르메스라고 답합니다. 여자의 별명은 이제 에르메스가 되었습니다. 독남들은 전차남과 에르메스의 사랑을 맺어주기 위해 온갖 조언과 격려와 꾸짖음을 다합니다. 전차남 역시, 기존의 찌질한 인생에서 벗어나 점점 자기 주관과 용기를 가진 진정한 매력남으로 거듭나구요. 전차남의 성장에 놀란 독남 중 한 사람은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뭔가 이 여유는? 이것이, 이것이 그때의 그 전차남이란 말인가!!?

우리는 이 어처구니없는 괴물을 세상에 내보내게 된 거란 말인가아아아아!!"

 

전화하는 것도, 손을 잡는 것도 우물쭈물 망설이기만 하던 전차남이 에르메스의 사랑을 얻기 위해 눈부신 용기를 발휘하자 독남들은 감동하기 시작합니다.

 

"설사 에르메스랑 잘 안 된다고 하더라도 전차는 이미 毒이 아니예요.

눈부시게 빛나고 있어요. 전차."

 

사랑을 하면서 점점 성장해 나가는 전차남의 멋진 모습과 모든 게 서툰 그를 따뜻하게 배려해주는 상냥한 에르메스의 연애담도 즐겁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가장 큰 감동은 추운 겨울도 녹일 듯한 독남들의 따뜻함입니다. 정말 이 책을 읽다 보면 성선설을 믿게 됩니다.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전차남의 성공을 기원하며 하나로 굳게 뭉친 그들의 모습은 더이상 인터넷 폐인이 아닌, 아름다운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심지어 그들 자신들도 의아해합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된 거지, 하고 말예요. ^^;;

 

전차남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마침내 사랑을 고백하러 간다며 새벽 일찍 게시판에 글을 남깁니다. 독남들은 초조한 마음을 안고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전차남은 꼬박 하루가 지나도록 게시판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과연 잘 될까, 잘 안 되서 전차남이 상처받지나 않을까 초조가 극에 달합니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전차남을 응원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이는 36시간이 넘도록 게시판을 바라보고, 어떤 이는 회사에서도 10초에 한 번씩 리로드를 합니다. 저도 전차남을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저는 버스에서 책을 읽으면 멀미가 나는 체질이라 읽지 않는데, 버스 바닥에 토하는 한이 있어도 전차남을 응원하겠다, 이런 각오로 책을 잡았습니다. 사람 마음이란 다 똑같은가 봅니다. 열정을 가진 누군가가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는 마음 말입니다.

 

전차남은 마침내 성공을 거두고 돌아오고, 그 순간부터 작품의 진정한 하이라이트가 터집니다. 거의 20페이지 가까이 독남들의 축하글들이 쏟아지는데 진심으로 감동적입니다. 공들여 준비한 온갖 이모티콘과 감동적인 축하 메시지들, 독남들의 진심이 느껴져 너무너무 흐뭇한 독서였습니다. 책으로 읽어도 이 정도인데, 그 당시 직접 그 순간을 함께한 독남들은 얼마나 황홀했을까요..^^;;

 

그러곤 대망의 마지막 장...전차남은 이제 커플이 됐으니 커플게시판으로 가야 합니다. 전차남 게시판 글도 이제 100개만 더 올라오면 종료입니다. 그런데 독남들과 전차남 모두 서로에게 정이 잔뜩 들어 헤어지는 걸 안타까워 합니다.

 

"전차 빨리 가~ 간신히 붙잡은 에르메스의 손을 놓지 마. 뒤돌아볼 것 없어.

두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 그게 바로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줘."

 

"으아, 이제 100개 밖에 안 남았어. 정말로 눈물나기 시작했는데.

어쩌지? 이렇게 아쉬운 것도, 눈물나는 것도, 축하하고픈 것도 처음인데."

 

"우리들을 친구라고...

고마워요."

 

"꺼이꺼이, 어째서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떠나는 것이 이렇게 슬프다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작품은 끝이 납니다. 피와 살이 아닌, 전기와 회선에 불과한 차가운 인터넷 공간이지만 진심이 통한다면 세상 무엇보다 뜨거운 만남이 될 수도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말입니다. 인터넷에 얽힌 이런저런 사회 문제도 많지만, 그래도 이런 흐뭇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음에 인터넷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번쯤 사랑에 빠지고 싶게끔 만드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와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수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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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워치 - 상 밀리언셀러 클럽 26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지음, 이수연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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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판타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추리소설도 가장 좋아하는건 사회 병리 현상을 심각하게 다루는 사회파 추리소설이고, 일반소설도 개인 내면에만 치중하는 것보다 사회 문제를 다루는 책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현실과는 좀 동떨어지는 느낌이 나는 판타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우연히 러시아 판타지 소설 <나이트 워치>를 읽게 됐다.

 

좋은 판타지의 필수요건이란 무엇일까? 아무래도 판타지라 함은 환상세계를 그리는 거니까 현실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상을 그럴듯하게 창조하는 게 가장 우선시되야 하지 않을까 싶다. 50년대에 나온 톨킨과 루이스의 '중간계'나 '나니아'가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가 많은 사랑을 받는 걸 보면 과연 그런 것 같다.

 

세르게이 루키야넨코라는 길고 긴 이름을 가진 러시아 작가가 창조한 세상은 '어스름의 세계'다.

위에 언급한 작가들만큼이나 독창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어스름 세계에는 마법사와 변신자, 흡혈귀, 마녀 등이 산다. 하지만 배경은 현대다. 자본주의 유입으로 빠르게 변해가는 현재 러시아에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다른 존재'들이 사는 것이다. 그들은 밝은 세력과 어두운 세력으로 나뉘어 유사 이래 긴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기나긴 전쟁으로 지친 측은 협정을 맺고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밝음의 편에 선 다른 존재들은 나이트 워치(야간 경비대)라는 이름으로 밤에 돌아다니며 불법으로 인간을 사냥하는 흡혈귀나 마녀, 주술사 등을 물리치는 업무를 담당한다. (그러나 일정수의 인간들은 협정에 따라 정당하게 흡혈귀들의 먹이가 되야 한다.)

 

그러나 어둠의 편에도 데이 워치(주간 경비대)가 있다. 그들 역시 야간 경비대들이 협정을 위반하면 공격할 권리가 있다. 이 외에 주간 경비대와 야간 경비대의 분쟁에 재판을 해주는 심문관 들이 있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시스템이지 않나?

 

다른 존재들은 현실 세계를 뛰어넘는 어스름 세계로 들어갈 수도 있다. 어스름 세계는 일종의 영혼계로 인간들은 실체가 아닌 영기로 보이고, 그 안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왜곡되어 빠른 이동도 가능하고 잠긴 문도 무사 통과할 수 있다.

 

참으로 흥미로운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작품은 시작된다. 주인공은 야간 경비대의 안톤. 그는 우연히 온 러시아를 폭발시킬 수도 있는 강한 저주를 받고 있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여인을 둘러싸고 벌이는 야간 경비대와 주간 경비대의 두뇌싸움이 치밀하게 펼쳐진다. 총3개의 장, <나만의 운명> <아군 속의 아군> <오직 내 사랑을 위하여>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판타지로 분류되지만 사실 첩보소설의 향수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요즘 첩보소설이 거의 쓰이지 않게 된게,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양강 체제 속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공작들이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밝은 세력과 어두운 세력은 여전히 냉전 체제다. 이 작품엔 두 강대한 세력이 서로를 꺾어 누르려 끝없이 물밑 작업과 신경전을 벌이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거대한 힘을 가진 여인을 서로 빼앗기 위해 계략을 쓰는 내용은, 옛날 첩보소설에서 핵무기 제조 공식을 빼앗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그것으로 치환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주인공 안톤은 상대 조직에 의해 살인(사람은 아닌데..ㅋㅋ) 누명을 쓰기도 한다. 완전 CIA와 FBI의 첩보전 아닌가.

 

정말 잘된 첩보소설처럼 주인공 안톤은 배신과 음모에 휘말리기도 하며, 심지어 같은 편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도 봉착한다. 첩보소설의 영원한 고전 존 르 까레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의 주인공처럼 안톤 역시 회의에 빠진다. 우리는 빛의 편인데 거짓말과 음모로 점철된 공작을 펼치고 있는 것에 말이다.

 

그러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처럼 이 작품 역시 그 모든 거짓들을 뛰어넘는 인간(?)의 사랑의 위대함을 역설하며 끝을 맺는다. 최종장에서 안톤과 그가 사랑하는 스베타, 나이트 워치 수장 헤세르와 데이 워치 수장 자불론은 모두 각자의 사랑을 선택하며 음모와 배신으로 점철된 세계를 벗어난다. 좋은 결말이다.

 

끊임없이 암투와 음모, 반전과 역전이 펼쳐져 지루할 틈이 없는 한 편의 첩보소설이자 흥미로운 세계관을 보여주는 잘된 판타지 소설이다.

 

별점: ★★★★

 

p.s/ 자국에서 300만부나 팔리며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보는 내내 <퇴마록> 생각을 했다. <퇴마록>도 그쯤 팔렸을텐데 말이다. 국내 판타지 소설 중 아직 <퇴마록> 만 한 게 안나오는 것 같다. 아쉬운 일이다.

 

p.s의 p.s/ 영화화되서 현재 개봉중이다. 영화는 액션을 더 강조했다고 들었는데 평은 그다지 좋은 평은 아니다. 그래도 러시아에서는 꽤 히트했다고 알고 있다.

 

p.s의 p.s의 p.s/ 속편 <데이 워치>와 <더스크 워치>도 출간된다고 한다.

 

 

 

 

 

 

<영화 사진들. 그다지 재미있어보이지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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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6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없더라구요, 영화 orz

jedai2000 2005-12-16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재미없어 보이더라구요..^^;; 보지 말아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