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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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문학이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게 된 것은 그의 장편소설인 [상실의시대]가 출간된 후 일 것이다.

그 후 하루키의 인기를 타고 그의 소설과 수필들이 수없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나만의 생각인지 몰라도 그의 어떤 작품에서도 [상실의 시대]와 같은 감성을 만나지 못했다.

작품은 난해해지고 세계관은 정교해졌지만, 예전의 감성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여자없는 남자들]이란 그의 단편소설집을 읽게 되었다.

하루키의 단편소설들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들에서 내가 그리워하던 하루키의 감성을 발견했다.

희미해져가던 상실에 대한 감성이 여러 편의 단편소설 곳곳에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제목이 왜 여자없는 남자들일까?

조금은 궁상맞은 이 제목은 얼핏 생각하면 도시적 감성을 이야기 하는 하루키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다보니 이 제목이 상실에 대한 하루키의 감성을 그대로 표현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단편소설들은 대부분의 남성 주인공의 입장에서 여성과의 만남에 상실은 다룬다.

특이한 것은 이 소설의 여자들은 대부분은 남편을 있는데도 외도를 하거나, 애인을 두고도 따른 남자를 만난다.

혹시 하루키는 여성에게 이런 아픔을 당한 적이 있을까?

항상 소설만 읽다보면 작가와 주인공을 혼동시키는 개인적인 버릇이 또 나왔다.

예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은희경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도 작가와 주인공을 혼동하고는 했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하루키의 감성을 느꼈던 작품은 두 번째에 수록되어 있는 [예스터데이]라는 작품이다.

마치 [상실의 시대]의 축소판을 읽는듯한 느낌이었다.

상실의 시대에서 존 레논이 작사한 비틀즈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이미지를 소설 전반에 흐르듯이, 이 작품에서도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라는 노래가 소설 전반에서 흘러나온다.

특이한 것은 노래 가사가 간사이 사투리로 번역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말로 비유하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정도 될까?

(일본 문화, 특히 간사이 문화를 모르기에 정확히 추정할 수는 없다.)

주인공의 친구 기타루는 특이한 친구이다.

간사이 사투리로 예스터데이를 부를 뿐 아니라, 간사이 사투리도 아주 멋드러지게 사용한다.

그런데 그는 간사이출신이 아닐 뿐아니라, 간사이에 살아본 적도 없는 도쿄 토백이이다.

단지 한신타이거즈가 좋아서 그곳에서 응원할 때 왕따 당하기가 싫어서 간사이 사투리를 배웠다고 한다.(하루키 역시 한신 타이거즈 펜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그것도 아주 치밀하게...

그래서 평상시에도 간사이 사투리를 그 지방 사람보다 더 잘 사용한다.

그런 가타루에게는 '구리야 에리카'라는 어린 시절부터 사귀었던 여자 친구가 있다.

가타루는 대학에 떨어져 삼수생이고, 에리카는 대학생활 중이다.

그는 자신의 친구인 주인공에게 대신 에리카와 사귀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렇게 심드렁하게 말하는 가타루에게서 에리카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엿본다.

결국 가타루와 에리카는 헤어지고...

주인공도 가타루뿐만 아니라 에리카와 연락이 단절된다.

그리고 아주 오랜 후에 다시 에리카를 만난다.

주인공은 에리카의 만남으로 옛추억을 생각하게 된다.

마치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와 죽은 친구, 그리고 친구의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첫 번째 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마치 은희경작가의 [아내의 상자]를 떠올리게 하는 단편소설이었다.

주인공 가후쿠는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아내는 정기적으로 다른 남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아내가 암으로 죽었다.

주인공은 아내의 죽음보다 아내가 왜 자신과의 관계에 만족하지 못했는지를 더 마음 아파한다.

그리고 아내가 생전에 만났던 젊은 남자를 만나 친구가 된다.

그를 통해 자신과 아내의 관계에 무엇이 상실되었는지를 알아보려하지만 알지 못한다.


[기노]라는 작품은 가장 하루키적인 작품이었다.

운동제품 외판원인 기노는 출장에서 일찍 돌아오던 날 아내와 회사 동료가 바람을 피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듯 집을 나와 혼자 생활한다.

이모에게 건물을 임대받아 작은 술집을 경영한다.

그곳에서 그를 찾아오는 신비적인 인물인 가미타가라는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가 외면했던 상실이 그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고, 그는 가키타가의 조언대로 그 위협을 피해 도망다닌다.

이 작품에서는 하루키가 좋아하는 재즈음악, 고양이, 신비적 감성 등이 모두 등장한다.


마지막 소설 [여자없는남자들]은 하루키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열쇠와 같은 작품이다.

주인공은 한밤 중에 자신이 알던 여자친구의 남편에게 전화를 받는다.

그녀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의식은 그녀와의 만남의 과거의 시간대를 여행한다.

주인공의 의식 속에서 하루키가 그의 소설 전반에서 이야기하는 '상실'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이 소설들에서는 여전히 하루키 소설의 중심 주제인 '상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상실은 주로 여성들과 관련이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다른 소설들에서는 그 여성과의 상실이 담담하게 표현되어 있다면, 이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여성들과의 상실을 겉으로는 담담히 받아들이지만 내면에서는 깊은 상실임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실이 주인공의 삶을 다른 세계로 이끌고 간다.


오랫만에 하루키의 감성을 다시 만나게 하는 소설들이었다.

또한 하루키를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주는 소설들이었다.

만약 [1Q84]와 같이 난해한 하루키의 소설들에 대해 거리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소설을 먼저 읽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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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드 카본 2 밀리언셀러 클럽 89
리처드 K. 모건 지음, 유소영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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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드카본은 인간의 자아가 프로그램처럼 저장되고 복사되는 시대를 배경으로 미래시대를 배경으로 한 SF소설이다.

1편에서는 주로 미래적 세계관과 함께 스릴러적인 요소가 넘쳐났다면,

2편에서는 조금 더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 접근한다.

인간의 자아가 새로운 육체를 입을 때, 과연 그 자아가 같은 자아일까?

소설 속에서는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오래전, 누군가를 알고 있었다고 하자, 생각을 나누고 서로를 깊은 곳까지 빨아들인 사이, 그러던 관계는 멀어지고 인생의 행로가 다른 방향으로 갈리면서 결속이 약해진다. 혹은 외적인 상황 때문에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세월이 흐른 뒤 그 사람을, 같은 몸으로 다시 만난면, 그때부터 그 모든 것을 다시 겪게 된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끌렸을까? 같은 사람이 맞나? 같은 이름, 거의 같은 육체적 외양을 갖고 잇겠지만, 그렇다고 그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변화한 것들은 중요핮 않거나 부차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은 변하기 마련인지만, 얼마나 변하는가? 어렸을 대 나는 인간에게는 본질, 일종의 인격적인 핵심 같은 것이 있어서 주위의 표면적인 요소가 진화하고 변화하면서도 그 사람의 원래 모습 자체는 손상을 입지 않는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후 나는 인지 오류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인격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저 물결의 어느 한 시점의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보다 인간적인 속도에 맞추어 비유하자면, 변화는 모래 사구의 한 형태라고나 할까.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형태, 바람, 중력, 교육, 유전자지도, 이 모든 것은 침식과 변화를 겪게 마련이다.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영원히 스택 상태로 있는 것 뿐이다.(P120)"


2편에서는 배경이 더 암울해졌고, 주제 역시 더 묵직해졌다.

내용 역시 가상현실의 대화, 자아의 복사와 같은 복잡한 미래배경으로 인해 더 이해하기가 힘들어진다.

여기에 스릴러적인 요소까지 가미해서 몇 번의 반전이 일어나면 나중에서 집중도가 상당히 떨어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전반부보다 못한 후반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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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드 카본 1 밀리언셀러 클럽 88
리처드 K. 모건 지음, 유소영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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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온 밀리언셀러 클럽을 즐겨 읽는다.

주로 아포칼립스적인 종말소설이나 스릴러를 즐겨 읽는다.

우연히 인터넷서점에서 이 소설을 발견했다.

밀리언셀러클럽 목록을 거이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은 낯설었다.

밀리언셀러클럽에서 SF소설은 거이 출판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필립K딕을 기리는 필립K딕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안 읽을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보통 SF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소설의 세계관은 아주 먼 미래이다.

배경은 온 우주로 확장되지만 주 무대는 지구이다.

이 소설의 세계에는 인간의 자아가 (영혼이라는 말을 쓰면 소설의 시각과는 많이 벗어나기에 자아라는 말을 쓴다.) 컴퓨터 하드에 저장되듯이 저장 되었다가 필요에 따라 다른 육체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한 시대이다.

인간은 돈만 있으면 자신의 저장된 자아를  다른 사람의 젊은 육체든지, 배양한 육체든지, 합성한 조잡한 육체에 옮길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육체 속에 들어가 있는 자아의 저장소를 스택이라고 한다.

스택이 파괴되지 않는 한 인간은 계속 육체를 바꾸어 가며 영원히 살 수 있다.

물론 부자들은 자신의 스택을 다른 곳에 복사해 둔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클라우드개념처럼 자아를 동기화해서 큰 서버에 보관해 두는 것이다.

그래서 부자들은 더 안전하게 영원한 삶이 가능해 진다.

이렇게 오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메트족(무드셀라의 이름에서 따왔다)이라고 부른다.

오래 전 인기를 끌었던 일본 에니메이션 감독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를 생각하면 이해가 좀 쉽다.



주인공 다케시 코마치는 이런 바뀌어진 육체를 입고 행성간에 전투에 임하는 특파대원이다.

무슨 실수인지가 정확히 나와있지 않지만 그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사살 당하고, 그의 스택은 얼터드카본이란 감옥소에 저장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지구의 부자권력자인 메트족인 로렌스 뱅크로프트에게 소환된다.

그는 코바치에게 우수한 육체를 구입해 주며 자신의 살해 사건을 해결해 달라고 고용한다.

뱅크로프트는 얼마전 스택까지 파괴되는 살해를 당했다.

다행히 자신의 자아를 다른 저장소에 복사해 두었기에 다른 육체로 부활할 수 있었다.

저장 전 24시간의 기억은 알지 못한다.


코마치는 뱅크로프트의 사건을 조사해 가며 여러 가지 복잡한 일에 얽힌다.

우선 그를 쫓아다니는 여자 경찰인 오르테가와 만난다.

그는 코마치에게 게속해서 뱅크로프트는 자살한 것이라고 말하며 사건에 관여하지 말 것을 권한다.

그리고 사건 현장마다 나타나 코마치의 육체를 지켜 준다.

알고보니 코마치가 입은 육체가 오르케가의 애인의 육체였다.

또 뱅크로프트의 관능적인 아내인 미리엄 뱅크로프트 유혹이다.

그녀는 코마치가 사건에 손을 땔 것을 요구하며 그를 유혹한다.

300년 된 자아가 20대의 젊은 육체를 입고 그를 유혹하는 것이다.



일그러진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필립K딕의 일그러진 세계관과 데니스 루헤인이나 마이클코넬리의 묵직한 하드스릴러의 형식이 합쳐진 듯한 느낌을 가진 소설이다.

다분히 매트릭스적인 철학적인 분위기도 품긴다.

'기계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과 함께...

영원히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나온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반복된 질문이 있다.

과연 육체와 분리된 영혼이 분리될 수 있느냐는 중세기에 반복되었던 철학적인 질문이다.

자신의 육체를 떠나 다른 육체로 들어간 영혼, 또는 육체를 분리된 자아를 진정 그 자신의 영혼이나 자아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21세기 SF소설이나 영화에서 단골로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자아가 컴퓨터의 자료처럼 저장되거나 복사되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저장되거나 복사된 자아가 전에 가졌던 자아아 동일한 자아일까?

저장되거나 복사된 자아가 자신이 전의 자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그 자아는 영혼이 빠져나간 데이터적인 자료의 가치밖에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오래 전에 보았던 게리 시나이즈가 주연한 임포스터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게리 시나이즈가 주연한 주인공 스펜서는 지구의 과학자인데 어느 날 외계인 복제인간으로 오해를 받는다.

당시 지구는 외계인과 전쟁 중이었는데 그 외계인들이 지구의 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실제 지구인과 똑같은 외계인을 만들어 지구로 보낸 것이다.

원래 지구인은 살해를 하고 그 사람의 생각과 기억까지 그대로 복사한 외계인을 만들어서 지구로 보내고 중요한 순간에 폭탄으로 변해서 육체가 폭발한다.

문제는 복제된 인간은 자신이 진짜 인간인지, 복제된 인간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스펜서는 자신이 진짜 스펜서라고 확신을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죽은 진짜 스펜서를 발견하고 폭파장치가 가동되어 폭파되는 끔찍한 결말을 맞는다.

(이미 오래 전에 개봉한 영화이니 스포가 발설되도 상관이 없을테니까...)

영화에서는 복제된 스펜서가 진짜 스펜서인가 하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자아가 저장되고, 육체로 이동되고, 결국 복제까지 된다면... 그 자아는 진정한 자신일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그런 질문이 든다.

물론 이 소설은 그런 질문과 무관하게 너무나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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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정지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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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발표되는 유명 문학상 작품집을 빠지지 않고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이런 수상작품집이나 문학 계간지에 실린 단편소설을 읽는 것은 내게는 마치 헌 책방에서 좋은 책을 득탬하는 기분이 든다.

모든 작품이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뛰어난 몇 몇 작품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짧은 내용이지만 읽고 나서는 한 참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작품들을 만나기도 한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처음 대면한다.

사실 읽으면서 조금 충격이었다.

얼마 전 또래 사람들끼리 모여서 대화를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대문을 열어 두는 바람에 순시간에 무서운 중2와 초등학생들이 몰려 들어왔다.

한동안 그들의 대화와 사고를 이해하지 못해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수상작들은 대부분 내 나이와 비슷하거나 조금 적은 나이들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생소한 구성과 문장,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결말로 인해 당황스러웠다.

내가 김훈 작가나 은희경 작가 같은 서사성이 있는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인가 보다.

이런 실험적인 작품은 나를 당황케 한다.



나를 가장 당황케 한 작품은 대상 수상작인 정지돈 작가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라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난관을 만났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이구'라는 구한말 황족에 대한 취재형식, 또는 전기형식의 작품인 것 같은데...

처음에는 이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이구와 관련된 건축학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다시 김중업과 같은 사진작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얽혀 있는 건축과 문예사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수많은 외국인물들과 그들의 저서나 음악 등이 언급된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작가노트와 해설을 읽었지만 이 부분을 읽고나니 더 당황스럽다.

같은 동료가 이야기 하는 '후장사실주의'를 처음 들어보는 용어이기도 했고..

도대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정신없이 글을 써 놓았다.

결국 내가 무식하다는 자학? 비슷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남의 탓?을 하자면 젊은 작가의 과도한 열정이 만들어 낸 지적 허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젊은 교수가 한 번의 강의에 모든 것을 가르치려는 열정 때문에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상황, 또는 신인이 자신의 연기에 모든 것을 담으려 하기에 관중들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상을 시상하는 심사위원 입장에서는 이 작가의 실험적인 이런 부분을 높이 평가하고 대상을 주었을테니 나보다 그들이 더 정확했을 것이다.



사실 이 작품집에서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부분은 김금희 작가의 [조중균의 세계]라는 작품이다.

한 출판사의 수습사원인 주인공이 같은 수습사원이며 경쟁자인 해란씨와 그 출판사에서 거이 왕따를 당한 오랜 경력을 가진 교정부의 일을 하는 조중균씨와의 관계를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조중균은 조금 특별한 인물로 나온다.

사회의 부당함에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맞서는 인물로 나온다.

그러기에 회사에서도, 사람들에게도 왕따가 된다.

그런 조중균씨를 해란씨만이 따스하게 대한다.

주인공 역시 그런 조중균씨에 대한 부당함을 알지만 회사측 편에 선다.

결국 주인공은 정사원이 되고...

해란씨는 탈락을 하고...

조중균씨는 퇴사를 한다.


소설보다 더 인상이 깊었던 것은 작가 노트에서 한참 후에 조중균씨를 다시 만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그때 주인공은 작가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 주인공이 김금희 작가일지도 모르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한다.

주인공이자 작가는 작가가 된 것을 축하는 조중균씨의 말에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계속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왜 그녀는 작가가 된 것이 부끄러웠을까?

그리고 왜 계속 눈물란 흘렸을까?

글에는 나와 있지 않다.

마치 조중균씨와 해란씨가 왜 그런 삶을 사는지에 대한 대답을 내릴 수 없었던 것처럼...

작가나 주인공 역시 자신이 왜 우는지에 대한 대답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소설과 함께 해설이 돋보이는 작품도 있었다. 최은미 작가의 [근린]이란 소설을 해설하는 이재형의 [그 여자의 사정]이라는 글이다.

[근린]이라는 소설은 한 공원에 소형 비행체가 추락하면서 한 여자가 죽은 사건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그리고 소설은 사건 전으로 되돌아가 근린공원을 중심으로 세 명의 여성 노인과 몸빼 바지를 입은 중년여인,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와 딸의 일상이 기록된다.

당연히 나같은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 중에서 누가 과연 사고로 인해 죽은 여인이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작가는 떡밥?으로 꿈을 판 노인과 꿈을 산 노인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꿈을 판 노인은 꿈을 판 것을 후회하며 불안해 한다.

그러나 비행체 사고로 죽은 여인이 누구인지는 끝내 소설에서 나와있지 않다.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들며 해설을 읽었는데 해설을 읽으며 작가의 의도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공원에 무인정찰기가 추락하고, 한 여자가 죽는다. 누군가 말한다. '그 여자가 그렇게 죽을 줄은 몰랐다'고, 소설은 추락지점에 새겨진 X, '그 여자'가 누군인지를 추적해보겠다는 듯 한 달 전으로 돌아가 차례 차례 후보군을 소개한다. 젊은 여자, 늙은 여자, 중년 여자, 아이와 엄마, 그리고 이들 사이에 끼어들 적절한 조연인 맥도날드 라이더까지, 하지만 결말은 어떤가. 사고 시각 사고 현장에 있었던 것은 공교롭게도 그들 전부이고, 사망자가 누구인지는 끝내 묘연하다.

 '그여자가 누구인가'라는 우리의 질문에 소설은 대답을 마련해 두지 않았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귀결일 터,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이 지도가 아닌 도면이라면, 설열 그 위에 의뭉스러운 좌표가 하나 찍혀 있더라도 크게 연연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문제는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 그 위에 그려진, 이리저리 움직이며 뒤섞이고 갈라진 선들 - 동선들과 시선들-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평면도를 읽는 일은 곧 '근린'의 관계도를 읽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P197)



이 외에도 성소수자의 아픔과 그것에 공감하지 못한 사람의 아픔을 다룬 이장욱작가의 [루카]라는 작품이나 다른 계간지에서 이미 읽었던 손보미작가의 [임시교사]라는 작품등이 인상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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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2 - 7月-9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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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젊은 날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다.

군대시절 휴가를 나오면 꼭 서점에 들려 하루키의 책을 사들고 부대에 들어갔었다.

 

내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문체나 스토리가 아니었다.

글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의 책들을 읽고 있으면 내 마음의 생각을 그가 글로 표현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군대시절과 힘든 젊은 시절에 그의 책을 읽는 것이 낙이었다.

 

그리고 거이 20년이 지나서 다시 하루키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예전에 내가 알던 하루키는 어디로 간 걸까?

도저히 이 작품에서는 예전의 하루키를 찾을 수 없다.

내가 변한 건가? 하루키가 변한 건가?

 

1Q84 1권을 읽으면서 예전의 하루키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2권에서는 그런 느낌을 더욱 더 받았다.

아직 3권을 읽지 않았으니 뭐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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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1권에 이어서 아오마메와 덴코의 이야기가 계속 진행된다.

아오마메는 노부인의 지시를 받아 종교단체 선구의 지도자를 암살하려는 일을 진행해 나간다.

그가 종교단체 안의 어린 여자아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햇기 때문이다.

노부인과 아오마메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드디어 선구의 지도자와 단 둘이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런데 아오마메가 선구의 지도자를 죽이려는 순간...

의외로 선구의 지도자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충격적인 이야기...

이 부분에서 선구의 지도자의 입을 통해 1권부터 이어지는 선구, 리틀피플, 후카에리... 등의 비밀이 어느 정도 밝혀진다.

선구의 지도자는 후카에리의 아버지였다.

그는 자신의 딸을 통해 리틀피플이 이 세상에 들어왔으며...

자신의 딸은 목소리를 드는 자인 '퍼시버'가 되었고...

자신의 깨닫는 자인 '리시버'가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딸과 어린 여자아이들을 성폭행 했다는 말에 그들은 실체가 아닌 그림자인 '도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덴코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아오마메는 지도자를 죽이게 된다.

 

 

덴코의 주변에도 점점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2편부터는 우시카와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상하게 기분 나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이다.

(하루키의 소설에는 꼭 이런 남자들이 나온다. 태엽갑는 새에서는 주이인공의 아내의 오빠, 즉 매형이 그런 존재였다.)

그 남자는 덴코에게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주는 거액의 후원금을 제안한다.

덴코는 그 단체가 선구와 연관되어 있음을 감지하고 우시카와의 제안을 거부한다.

 

2편에서는 덴코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장면이 몇 번 나온다.

어린시절에 일요일이면 그를 데리고 수금하러 나갔던 NHK 수금원인 아버지...

아버지에게서 정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고...

그래서 덴코는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에 나와서 아버지와 의절하고 혼자 힘으로 살아왔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와 있다.

그는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아버지가 자신의 친아버지가 아니었음을 직감한다.

그러자 그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사라진다.

 

덴코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부분에서 [고양이 마을]이라는 소설이 계속해서 복선으로 나타난다.

어떤 남자가 아무도 찾지 않는 시골의 기차역에 도착하다가 고양이가 살고 있는 마을에 들어간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이 책을 통해 덴코와 아오마메가 1Q84년이라는 다른 세상에 들어왔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2권 후반부부터 덴코는 아오마메를 찾기로 결심한다.

그는 아오마메와 같이 달이 두 개라는 부분을 발견하고...

그것이 그가 쓴 [공기번데기]에서 리틀피플이 등장할 때 생기는 현상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렇게 두 개인 달을 유심히 보고 있는 덴코를 아오마메가 발견하다.

아오마메는 덴코를 쫓아가나 만나지는 못한다.

 

 

2권에서는 1Q84의 세계관이 조금 더 복잡해지면서, 동시에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다.

역시 하루키가 즐겨 쓰는 어린 여성, 고양이, 상실의 이미지등이 계속 등장한다.

2권까지 읽으면서 하루키가 이야기하는 1Q84의 세계관을 몇 가지로 추론해 봤다.

 

첫 번째 1Q84는 덴코가 쓴 책 속의 세상이라는 추론이다.

덴코는 달이 두 개가 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것이 자신이 쓴 소설에 묘사된 것과 똑같은 상황임에 놀란다.

자신이 쓴 소설의 내용을 현실로 접한 것이다.

또한 아버지의 병상에서 공기번데기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10살짜리 아오마메를 발견한다.

공기번데기 역시 그가 소설에서 묘사한 것과 똑같은 모습이다.

아오마메 역시 덴코가 쓴 [공기번데기]라는 책을 읽고 자신이 덴코 속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책 속의 세상이라는 것은 하루키의 구성상 너무 뻔하다.

 

두 번째 추론은 1Q84가 우리가 사는 세상과 평행상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상이라는 추론이다.

영화 [소스코드]에 보면 아인쉬타인의 이론에 따라 우리가 사는 세상과 계속 평행해서 움직이는 여러 가지 세상이 나온다.

그 다른 세상에는 또 다른 내가 있다.

어쩌면 1Q84 속의 세상은 현실과 다른 또 다른 현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키가 과학이론을 기초로 이런 소설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 추론은 1Q84가 하루키의 마음 속에, 더 정확히 이야기 하면 심리 속에 존재하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하루키 뿐만 아니나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그 마음이라는 것은 상실의 마음이다.

우리가 상실을 경험하는 순간 우리는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상실 이전의 세상과 이후의 세상은 같은 세상이지만 다른 세상이다.

하루키의 소설 속에는 이런 비슷한 암시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면 그 상실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존재하는 세상을 바꾸어 버리는 상실...

하루키는 그 많은 소설 속에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마 밝힐 수가 없어서 일 것이다.

그가 이야기 하는 상실을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이 세 번째 추론이 하루키가 1Q84에서 묘사하는 세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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