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정지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마다 발표되는 유명 문학상 작품집을 빠지지 않고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이런 수상작품집이나 문학 계간지에 실린 단편소설을 읽는 것은 내게는 마치 헌 책방에서 좋은 책을 득탬하는 기분이 든다.

모든 작품이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뛰어난 몇 몇 작품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짧은 내용이지만 읽고 나서는 한 참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작품들을 만나기도 한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처음 대면한다.

사실 읽으면서 조금 충격이었다.

얼마 전 또래 사람들끼리 모여서 대화를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대문을 열어 두는 바람에 순시간에 무서운 중2와 초등학생들이 몰려 들어왔다.

한동안 그들의 대화와 사고를 이해하지 못해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수상작들은 대부분 내 나이와 비슷하거나 조금 적은 나이들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생소한 구성과 문장,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결말로 인해 당황스러웠다.

내가 김훈 작가나 은희경 작가 같은 서사성이 있는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인가 보다.

이런 실험적인 작품은 나를 당황케 한다.



나를 가장 당황케 한 작품은 대상 수상작인 정지돈 작가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라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난관을 만났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이구'라는 구한말 황족에 대한 취재형식, 또는 전기형식의 작품인 것 같은데...

처음에는 이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이구와 관련된 건축학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다시 김중업과 같은 사진작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얽혀 있는 건축과 문예사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수많은 외국인물들과 그들의 저서나 음악 등이 언급된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작가노트와 해설을 읽었지만 이 부분을 읽고나니 더 당황스럽다.

같은 동료가 이야기 하는 '후장사실주의'를 처음 들어보는 용어이기도 했고..

도대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정신없이 글을 써 놓았다.

결국 내가 무식하다는 자학? 비슷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남의 탓?을 하자면 젊은 작가의 과도한 열정이 만들어 낸 지적 허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젊은 교수가 한 번의 강의에 모든 것을 가르치려는 열정 때문에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상황, 또는 신인이 자신의 연기에 모든 것을 담으려 하기에 관중들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상을 시상하는 심사위원 입장에서는 이 작가의 실험적인 이런 부분을 높이 평가하고 대상을 주었을테니 나보다 그들이 더 정확했을 것이다.



사실 이 작품집에서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부분은 김금희 작가의 [조중균의 세계]라는 작품이다.

한 출판사의 수습사원인 주인공이 같은 수습사원이며 경쟁자인 해란씨와 그 출판사에서 거이 왕따를 당한 오랜 경력을 가진 교정부의 일을 하는 조중균씨와의 관계를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조중균은 조금 특별한 인물로 나온다.

사회의 부당함에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맞서는 인물로 나온다.

그러기에 회사에서도, 사람들에게도 왕따가 된다.

그런 조중균씨를 해란씨만이 따스하게 대한다.

주인공 역시 그런 조중균씨에 대한 부당함을 알지만 회사측 편에 선다.

결국 주인공은 정사원이 되고...

해란씨는 탈락을 하고...

조중균씨는 퇴사를 한다.


소설보다 더 인상이 깊었던 것은 작가 노트에서 한참 후에 조중균씨를 다시 만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그때 주인공은 작가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 주인공이 김금희 작가일지도 모르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한다.

주인공이자 작가는 작가가 된 것을 축하는 조중균씨의 말에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계속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왜 그녀는 작가가 된 것이 부끄러웠을까?

그리고 왜 계속 눈물란 흘렸을까?

글에는 나와 있지 않다.

마치 조중균씨와 해란씨가 왜 그런 삶을 사는지에 대한 대답을 내릴 수 없었던 것처럼...

작가나 주인공 역시 자신이 왜 우는지에 대한 대답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소설과 함께 해설이 돋보이는 작품도 있었다. 최은미 작가의 [근린]이란 소설을 해설하는 이재형의 [그 여자의 사정]이라는 글이다.

[근린]이라는 소설은 한 공원에 소형 비행체가 추락하면서 한 여자가 죽은 사건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그리고 소설은 사건 전으로 되돌아가 근린공원을 중심으로 세 명의 여성 노인과 몸빼 바지를 입은 중년여인,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와 딸의 일상이 기록된다.

당연히 나같은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 중에서 누가 과연 사고로 인해 죽은 여인이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작가는 떡밥?으로 꿈을 판 노인과 꿈을 산 노인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꿈을 판 노인은 꿈을 판 것을 후회하며 불안해 한다.

그러나 비행체 사고로 죽은 여인이 누구인지는 끝내 소설에서 나와있지 않다.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들며 해설을 읽었는데 해설을 읽으며 작가의 의도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공원에 무인정찰기가 추락하고, 한 여자가 죽는다. 누군가 말한다. '그 여자가 그렇게 죽을 줄은 몰랐다'고, 소설은 추락지점에 새겨진 X, '그 여자'가 누군인지를 추적해보겠다는 듯 한 달 전으로 돌아가 차례 차례 후보군을 소개한다. 젊은 여자, 늙은 여자, 중년 여자, 아이와 엄마, 그리고 이들 사이에 끼어들 적절한 조연인 맥도날드 라이더까지, 하지만 결말은 어떤가. 사고 시각 사고 현장에 있었던 것은 공교롭게도 그들 전부이고, 사망자가 누구인지는 끝내 묘연하다.

 '그여자가 누구인가'라는 우리의 질문에 소설은 대답을 마련해 두지 않았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귀결일 터,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이 지도가 아닌 도면이라면, 설열 그 위에 의뭉스러운 좌표가 하나 찍혀 있더라도 크게 연연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문제는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 그 위에 그려진, 이리저리 움직이며 뒤섞이고 갈라진 선들 - 동선들과 시선들-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평면도를 읽는 일은 곧 '근린'의 관계도를 읽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P197)



이 외에도 성소수자의 아픔과 그것에 공감하지 못한 사람의 아픔을 다룬 이장욱작가의 [루카]라는 작품이나 다른 계간지에서 이미 읽었던 손보미작가의 [임시교사]라는 작품등이 인상에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