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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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문학이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게 된 것은 그의 장편소설인 [상실의시대]가 출간된 후 일 것이다.

그 후 하루키의 인기를 타고 그의 소설과 수필들이 수없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나만의 생각인지 몰라도 그의 어떤 작품에서도 [상실의 시대]와 같은 감성을 만나지 못했다.

작품은 난해해지고 세계관은 정교해졌지만, 예전의 감성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여자없는 남자들]이란 그의 단편소설집을 읽게 되었다.

하루키의 단편소설들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들에서 내가 그리워하던 하루키의 감성을 발견했다.

희미해져가던 상실에 대한 감성이 여러 편의 단편소설 곳곳에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제목이 왜 여자없는 남자들일까?

조금은 궁상맞은 이 제목은 얼핏 생각하면 도시적 감성을 이야기 하는 하루키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다보니 이 제목이 상실에 대한 하루키의 감성을 그대로 표현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단편소설들은 대부분의 남성 주인공의 입장에서 여성과의 만남에 상실은 다룬다.

특이한 것은 이 소설의 여자들은 대부분은 남편을 있는데도 외도를 하거나, 애인을 두고도 따른 남자를 만난다.

혹시 하루키는 여성에게 이런 아픔을 당한 적이 있을까?

항상 소설만 읽다보면 작가와 주인공을 혼동시키는 개인적인 버릇이 또 나왔다.

예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은희경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도 작가와 주인공을 혼동하고는 했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하루키의 감성을 느꼈던 작품은 두 번째에 수록되어 있는 [예스터데이]라는 작품이다.

마치 [상실의 시대]의 축소판을 읽는듯한 느낌이었다.

상실의 시대에서 존 레논이 작사한 비틀즈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이미지를 소설 전반에 흐르듯이, 이 작품에서도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라는 노래가 소설 전반에서 흘러나온다.

특이한 것은 노래 가사가 간사이 사투리로 번역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말로 비유하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정도 될까?

(일본 문화, 특히 간사이 문화를 모르기에 정확히 추정할 수는 없다.)

주인공의 친구 기타루는 특이한 친구이다.

간사이 사투리로 예스터데이를 부를 뿐 아니라, 간사이 사투리도 아주 멋드러지게 사용한다.

그런데 그는 간사이출신이 아닐 뿐아니라, 간사이에 살아본 적도 없는 도쿄 토백이이다.

단지 한신타이거즈가 좋아서 그곳에서 응원할 때 왕따 당하기가 싫어서 간사이 사투리를 배웠다고 한다.(하루키 역시 한신 타이거즈 펜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그것도 아주 치밀하게...

그래서 평상시에도 간사이 사투리를 그 지방 사람보다 더 잘 사용한다.

그런 가타루에게는 '구리야 에리카'라는 어린 시절부터 사귀었던 여자 친구가 있다.

가타루는 대학에 떨어져 삼수생이고, 에리카는 대학생활 중이다.

그는 자신의 친구인 주인공에게 대신 에리카와 사귀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렇게 심드렁하게 말하는 가타루에게서 에리카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엿본다.

결국 가타루와 에리카는 헤어지고...

주인공도 가타루뿐만 아니라 에리카와 연락이 단절된다.

그리고 아주 오랜 후에 다시 에리카를 만난다.

주인공은 에리카의 만남으로 옛추억을 생각하게 된다.

마치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와 죽은 친구, 그리고 친구의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첫 번째 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마치 은희경작가의 [아내의 상자]를 떠올리게 하는 단편소설이었다.

주인공 가후쿠는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아내는 정기적으로 다른 남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아내가 암으로 죽었다.

주인공은 아내의 죽음보다 아내가 왜 자신과의 관계에 만족하지 못했는지를 더 마음 아파한다.

그리고 아내가 생전에 만났던 젊은 남자를 만나 친구가 된다.

그를 통해 자신과 아내의 관계에 무엇이 상실되었는지를 알아보려하지만 알지 못한다.


[기노]라는 작품은 가장 하루키적인 작품이었다.

운동제품 외판원인 기노는 출장에서 일찍 돌아오던 날 아내와 회사 동료가 바람을 피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듯 집을 나와 혼자 생활한다.

이모에게 건물을 임대받아 작은 술집을 경영한다.

그곳에서 그를 찾아오는 신비적인 인물인 가미타가라는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가 외면했던 상실이 그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고, 그는 가키타가의 조언대로 그 위협을 피해 도망다닌다.

이 작품에서는 하루키가 좋아하는 재즈음악, 고양이, 신비적 감성 등이 모두 등장한다.


마지막 소설 [여자없는남자들]은 하루키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열쇠와 같은 작품이다.

주인공은 한밤 중에 자신이 알던 여자친구의 남편에게 전화를 받는다.

그녀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의식은 그녀와의 만남의 과거의 시간대를 여행한다.

주인공의 의식 속에서 하루키가 그의 소설 전반에서 이야기하는 '상실'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이 소설들에서는 여전히 하루키 소설의 중심 주제인 '상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상실은 주로 여성들과 관련이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다른 소설들에서는 그 여성과의 상실이 담담하게 표현되어 있다면, 이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여성들과의 상실을 겉으로는 담담히 받아들이지만 내면에서는 깊은 상실임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실이 주인공의 삶을 다른 세계로 이끌고 간다.


오랫만에 하루키의 감성을 다시 만나게 하는 소설들이었다.

또한 하루키를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주는 소설들이었다.

만약 [1Q84]와 같이 난해한 하루키의 소설들에 대해 거리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소설을 먼저 읽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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