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법칙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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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어느 순간에 한 번쯤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경우가 있다.

쫓기고 쫓기다가 앞이 꽉 막힌 곳까지 쫓기는 경우가 있다.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고...

그래서 여기가 끝이구나 하는 막막함...

누군가가 있어서 손이라도 잡아 주었으면 좋겠는데...

아니, 손을 못 잡아 주면...

얼마나 힘드니?

얼마나 괴롭니?

이렇게 따스한 말 한 마디라도 던져줬으면 좋겠는데...

혹시나 손을 잡아 주다가 자신까지 그 막다른 골목에 갇힐까봐 사람들은 외면한다.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라는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던질 뿐이다.



이 소설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두 명의 여자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첫 번째는 윤세오라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은둔생활을 한다.

집밖으로 나가기를 꺼려하고, 사람들을 만나기를 무서워한다.

어느 날 아버지가 그녀에게 백화점에 가서 옷을 찾아오라고 한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그녀의 옷을 사고, 백화점에 맡겨 놓은 것이었다.

옷을 입고 돌아오는 날 그녀의 집은 불에 타고 있었다.

경찰은 빚에 쫓기던 아버지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를 죽게 한 사채업자를 찾아나선다.


두 번째는 신기정이라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교사라는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이복동생인 신하정이 죽었다가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녀는 동생의 죽음을 추정하다가 동생이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려던 사람이 윤세오라는 것을 안다.

그녀는 동생이 마지막 순간에 어떤 마음으로 전화를 했는지 궁금해 한다.

그리고 윤세오를 찾아 나선다.

자신이 외면했던 동생의 삶을 알기 위해....


소설은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던 윤세오와 신하정이, 그리고 그들의 친구인 조미연과 부이라는 남자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서서히 드러내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이 흔히 거마대학생이라고 불렸던 다단계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 준다.

막다른 골목인 줄 알면서도 나갈 수밖에 없었던 삶...

내가 살기 위해서...

아니, 너무 외롭기에 다른 사람까지 끌어 들일 수밖에 없었던 삶...

그 막다른 골목에서 그들은 함께 있었고...

또 그렇게 헤어졌다.



내가 편혜영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2014년 이상문학상작품집을 통해서이다.

그 작품집에 실린 [몬순]과 [저녁의 구애]라는 두 단편 소설 역시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작품집에 실린 작가의 작품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작가의 작품론이었다.

작가는 학창시절 때 구청에서 가구별 통계조사를 정리하던 아르바이트를 하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 조사표에서 자신의 가정의 것도 발견했다.

친구들은 그 조사표를 보고 자신의 가정을 알게 되었다고 동질감을 표시했지만

작가는 그런 외적인 것들로 진정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작가에게 있어서 외부에서 보는 몇 가지 조사와 통계로 그 삶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자 폭력이었다.

작가는 자신이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것이 그때가 아니었나 회상한다.

소설을 통해 통계와 수치로 이해할 수 없는 진짜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그런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담담하게 이야기 하는 신기정과 윤세오, 신하정, 부이의 삶에서...

나는 통계나 수치로 알 수 없는 밑바닥의 삶을 보게 되었다.


몇 년 전 일본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인 [화차]라는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어느 날 사라진 약혼녀의 찾아가는 미스테리 소설인데...

그녀를 찾아갈수록 빚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처참한 삶이 드러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조이고, 답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삶...

빠져 나올 수 없는 삶...

그래서 막다른 골목에서 막다른 선택을 하는 삶...


그런 삶이 있다.

우리가 통계와 수치로 쉽게 판단하고 외면하는 그런 삶이 있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막막함에 가슴으로 인해 쓰러져 있지만...

그리고 그런 삶에 통계와 수치를 들이댄다.

우리의 이야기가...

통계와 수치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 소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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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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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하루키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을 많이 읽었지만...

그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읽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 우연한 기회에 하루키가 성장기를 보낸 고베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데뷔작의 배경지를 방문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어쩌면 하루키 자신일지도 모르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주인공은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방학이면 고향 바닷가 마을로 돌아 온다.

방학동안은 주로 바닷가의 J바에서 쥐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와 시간을 보낸다.

쥐는 꽤 부유한 집안의 출신이고, 주인공과는 술을 마쉬고 차를 운전하다가 공원의 원숭이 우리에 부딪히면서 친해졌다.

주인공과 쥐는 모두 인생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그 고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만 않지만 둘 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쥐는 자신이 부자인 것을 비롯해서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다니던 대학도 포기한다.

주인공 역시 그런 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현실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히 술에 취해 쓰러진 여자를 집에 데려다 준다.

그리고 얼마 후 레코드 가게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를 만난다.

주인공은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 점점 그녀의 아픔을 알게 된다.


사실 이 소설은 일관된 스토리는 없다.

마치 하루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이것 저것을 이야기하는 식이다.

주로 쥐와 바닷가 카페에서 만나 여자와의 관계를 이야기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와 생각, 그리고 자신이 만났던 세 명의 여자의 이야기를 회상한다.

한 명의 고등학교때 사귄 여자친구였고...

다른 한명의 길거리에서 만난 가출 히피 여자였으며...

마지막 한 명의 대학때 여자 친구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살을 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두 가지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데릭 하트필드'라는 작가이다.

이 작가는 책의 처음과 끝에 언급된다.

주인공이자 저자는 그에게서 글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그는 생전에 별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쓸쓸히 죽었고, 그의 묘지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곳에 묻혀 있다고 말한다.


또 하나는 '켈리포니아 걸스'라는 노래이다.

어느 날 주인공에게 라디오 디제이가 전화를 걸어 어떤 여자가 그에게 이 노래를 선물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녀가 고등학교때의 친구였음을 알았다.

(그녀가 하루키의 고등학교때 연인인지, 단순히 고등학교때 만나 여자인지는 소설에서 정확히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주인공은 계속해서 그녀를 만나려고 했지만 끝내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녀의 이미지와 함께 계속해서 이 노래가 회상된다.



이 책은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알게 해 주는 열쇠와 같은 책이다.

이 책의 여주인공들은 대부분 그의 소설에서 다시 한 번씩 언급이 된다.

또한 J라는 친구, 그리고 J의 여자 친구도 다시 언급이 된다.

이 책은 하루키가 왜 작가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쓰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해 준다.


물론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이 하루키의 감성이 최고조로 녹아 있다는 것이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바람소리처럼 들려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일본의 고베에 있었기에

책을 읽는 내내 계속해서 바닷가 냄새가 났고...

바닷가 바람을 맞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바닷가 냄새가 났고...

바람이 하루키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 같았다.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듣고 싶은 사람들은 꼭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방문했던 소설의 배경 장소 사진을 몇 장 올려 본다.





하루키 소설의 배경이 된 고베의 바닷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J카페의 배경이 된 하프타임 재즈카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친구 쥐가 술취한 채 차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공원의 원숭이 우리...

그 원숭이는 오래 전에 죽었지만 하루키를 기념하기 위해 원숭이 우리만을 남겨 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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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거짓말 -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
정문순 지음 / 작가와비평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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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신경숙 작가의 표절문제 때문이었다.

이 부분에 대한 기사를 관심있게 보던 중 신경숙 작가의 표절문제가 최근에 대두된 것이 아니라, 오래 전 부터 계속해서 제기 되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문제 제기를 한 사람 중에 정문순 평론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평론이 실린 작품이 이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는 이 책은 다루고 있는 책들이 주로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신경숙, 은희경, 공지영과 같은 여성 작가들이라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1990년대 이전에는 주로 역사소설을 많이 읽었었다.

태백산맥과 토지를 비롯한 보통 한 편이 10권 정도 되는 역사소설을 읽으며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졌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역사소설들이 사라지고 여성작가들의 작품들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시대의 흐름상 나 역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읽게 되었고, 그 중 몇 몇 작가들의 작품은 무척 좋아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작가들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 있었다.

'혹시 내가 그때 생각없이 작품들을 읽고 좋아하지 않았었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문제제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2000년대 초반까지 정문순 평론가가 10년 가까이 쓴 평론을 묶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주로 1990년대 문학환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먼저 이 책에서는 1990년대에 여성작가들의 작품이 인기를 끌 수 밖에 없었던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저자는 1990년대의 문학환경을 '무주공산'이란 단어로 표현한다.

1980년대 문학이 가지고 있었던 시대적인 문제제기와 이를 통한 문학적 낙관주의가 사라지고, 문학을 통한 문제 해결에 대한 회의가 팽배한 가운데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1990년대에 여성 중산층이 출판시장의 주 독자가 되면서 상업적인 부분과 맞아 떨어져서 여성 작가들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배경속에서 등장한 여성 작가의 작품을 저자는 '감정의 낭비와 허위의식'이라고 비판한다.

즉 이전의 소설이 사회 문제에 대해 다루었다면, 여성 작가들의 소설은 개인의 삶과 감정 문제에 치우쳤다는 것이다.

저자의 평론에 여러 번 등장하고 있는 신경숙 작가의 [외땅방]의 한 구절이 이런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몰라, 오빠. 나는 그런 것들보다 그때 연탄불은 잘 타고 있었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방을 나간 오빠가 어디 길바닥에서나 자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 중략 - 그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무우국을 끓이려고 사다놓은 무우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이었어"


외딴방에서 주인공은 정치적인 문제보다 개인적인 소소한 문제가 더 중요한 여성적 입장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은희경 작가의 [마이러니티]에서도 이와 비슷한 부분을 인용한다.


"써머타임이 실시되고 있었으므로 퇴근 시간인데도 거리는 대낮처럼 환했다. 시위군중들도 가득 메워져 있는 거리였다. 월급쟁이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안 그래도 심사가 좋지 않은 두환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저건 또 뭐 하는 부대냐, 하며 혀꼬부라진 소리로 중얼거리자 내가 넥타이부대라고 알려 주었다. 우리 네 사람도 옷차림에서만은 넥타이 부대의 정규군 차림이었다. 우리는 시위대 썪여서 걸었다. 적당한 술집을 찾아 퇴계로나 명동 쪽으로 가고 있었으므로 시위대와 행로가 비슷했다. 조국과 도환은 취했다. 어깨동무를 한 그들은 시위대가 구호를 외칠때마다 자기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뒷부분은 따라하고 복창했다."


저자는 작가가 역사적인 날을 친구의 아내의 장례식날로 설정함으로서 의미없는 날로 격상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저자는 공선옥 자가에 대해서는 대단히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녀가 여성성을 강조하면서도 1980년대의 문제의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지영작가에게는 반쪽정도의 점수밖에 주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그녀가 80년대의 문제의식을 이어오면서도 당시 문학의 문제적인 낭만주의가 뭍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신경숙 작가의 작품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어떻게 표절했는지를 자세히 언급한다.

이 책에 인용한 두 책의 글들은 요즘 한참 언론에서 등장하고 있는 글이었다.

저자는 신경숙 작가의 [전설]이 단순히 [우국]의 한 문장을 표절한 것이 아니라 모티부까지 모두 유사하다고 말한다.


"[전설]은 명백히 일본의 극우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표절작이다. 일제 파시즘기 때 동료들의 친위 구테타 모의에 빠진 한 장교가 대의를 위해 자결한다는 [우국]의 내용과 한국전쟁 때 한 사내가 전쟁터에 자원입대하여 실종되는 [전설]은, 남편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릴 때 남은 아내의 선택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점에서 주요 모티브부터 유사하다. [우국]의 아내는 남편 따라 죽는 데 일호의 주저도 없으며, [전설]의 여자는 남편의 실종 통보를 받고도 평생을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보낸다. 또 10여 개의 비슷하거나 거의 동일한 문구는 물론이고 남편의 죽음이나 참전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아내의 태도, 역순적 사건 구성, 서도에 역사적 배경을 언급한 전개 방식 등의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나 영향 관계로 해석될 여지를 봉쇄해 버린다.(P30)"


또 작가는 이런 표절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당시의 문단의 분위기가 당대의 작가들을 표절 유혹에 빠지게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나름 90년대 문학을 많이 읽고 잘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 이 책에서 인용되는 책들 중 읽은 책이 몇 권 안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녀들의 작품에 다시금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신경숙 작가의 작품들은 거이 읽어보지를 않았다.

유난히 반골?성격이 강해서인지 다른 사람들이 좋거나 재미있게 보았다는 소설이나 영화는 왠지 정이 가지 않는다.

좋아하던 작가의 작품도 그 작가가 인기를 얻고 대중화가 되어 너도 나도 좋다고 하면 읽기가 싫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90년대 여성 작가 중에서 가장 앞서 나갔던 신경숙 작가의 작품은 거이 접하지를 못했었다.

이제 그녀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독자들이 그녀에게서 멀어졌으니 다시 그녀의 작품을 읽으려 한다.

(이건 내 자신도 이해 못하는 심리이다.ㅠㅠ)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기 전에 하퍼 리의 [앵무새죽이기]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왜 우리에게는 약자를 이렇게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책들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 약자를 억압하는 대상 역시 증오가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놀랐다.

자신의 주장을 반대하고, 자신을 해하려 했던 마을 사람들을 미워하는 자녀들에게 그들 역시 우리와 함께 사는 마을 사람임을 따스한 마음으로 가르치고 있는 아버지의 시각에 눈물이 났다.


나는 90년대 문학의 사회적인 문제보다 개인적인 감정문제에 치우쳤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런 문제제기를 한 작가의 날카로운 시각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그 시각이 또한 너무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는 않았는지 생각이 든다.

개인의 감정의 문제에 치우쳤던 90년대 여성작가들 역시 우리의 이웃이었고...

그들의 감정문제에 동감했던 90년대의 중산층 여성들 역시 우리의 이웃이었다.

90년대의 문학이 한 부분으로 치우쳤지만, 그 치우쳤던 부분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일부분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감정에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이 그런 소설로 위로와 힘을 얻었었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삶과 마음에 동감하던 사람도 있었다.

물론 나도 그 중에 하나이다.


문학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가지고 다시금 1990년대 한국 문학과 주변 환경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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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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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살아 온 인생에서 요사이 깨닫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품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반면 가장 쉬운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편을 가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편과 네편으로 나누기를 좋아하며, 내가 어느 한 편에서 서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특히 내가 속한 편이 좋은 지점을 점하고 있거나, 승리를 잡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두들 열심히 승리자의 편에 서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내가 승리자의 편 속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렇지 않은 상대에 대해서 비하하고 업신여긴다.

그럼으로서 비로서 안정감을 느낀다.

내가 저들과 다르다는 것, 저들 위에 있는 것에 대해서...


드디어 하퍼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읽었다.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그런데 읽고 나서는 무언가 뿌듯한 감정보다는 씁쓸하고 아쉬운 감정이 더 생긴다.



1930년대의 미국 남부의 작은 도시인 메이콤이라는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스카웃 핀치라는 어린 소녀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스카웃 피치는 막 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한 어린 소녀로서 네 살 위의 오빠인 젬 핀치와 아빠인 래들리 핀치와 흑인 가정부인 캘퍼니아 아줌마와 살고 있다.

핀치 가문은 그 지역에서는 꽤 유서 깊은 가문이고, 아버지 래들리 핀치는 명망있는 변호사였다.


이 책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스카웃의 시각에서 메이콤 마을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핀치 가문의 사람들에게 대한 묘사가 대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 래들리 핀치가 강간 혐의를 받고 있는 톰 로빈슨이라는 흑인 청년을 변호하면서 핀치 가문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2부에서는 1부에서 시작한 어두운 그림자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아버지는 흑인 청년을 변호하면서부터 '깜둥이 애인'이란 비하적인 별명으로 불리게 되고,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신변의 위협까지 느낀다.

스카웃 역시 오빠와 함께 학교에서 놀림을 당한다.

그리고 재판이 시작되자 모든 정황상의 증거가 톰 로빈슨이라는 흑인 청년의 무죄로 드러난다.

그러나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은 톰 로빈슨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로빈슨은 감옥을 탈출하다가 총에 난사당해 처참하게 죽는다.

소설은 이 모든 과정을 8세의 어린 소녀인 스카웃의 시각으로 묘사하고 있다.


먼저 이 소설의 가장 뛰어난 점은 작가의 묘사력일 것이다.

1930년대의 미국 남부의 작은 도시를 어린아이인 스카웃의 시각에서 묘사하고 있는 시각이 너무 뛰어나다.

물론 이런 묘사력을 좋은 문장으로 변역한 번역가의 공로도 클 것이다.

그 묘사가 너무 자연스럽고 재미있어서 소설이 술술 읽혀진다.


또한 어린 아이의 시각에서 본 어른들의 성품, 특히 위선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변론을 구경갔다가 톰 로빈슨이 사형을 구형받는 장면을 목격한 스카웃과 젬은 낙심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스카웃은 분명히 무죄인 사람이 어떻게 사형을 구형받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흑인이란 이유로 그들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마을 사람들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집에서는 고모가 교회 선교회 사람들을 불러 놓고 다과회를 하고 있었다.

멀리 아프리카의 한 마을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며 그들을 돕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가까운 흑인들을 경멸하며 톰 로빈슨이 사형을 당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또한 학교 스카웃의 학교 선생님은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을 만행으로 여기며 '우리 민주주의'라고 칠판에 쓰며 미국인은 그렇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흑인의 사형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그를 욕한다.

어린 스카웃과 오빠인 젬에게는 이런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젬은 어린 나이로 깨달은 세상의 모습을 스카웃에게 이야기 해 준다.


"스카웃, 그거 알아? 난 이제 모두 알겠어. 요즘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알아낸 거야. 이 세상에는 네 부류의 인간이 있어, 우리나 이웃 사람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있고, 숲 속에 사는 커닝햄 집안 같은 사람들(가난한 집안)이 있고, 쓰레기장에 사는 유얼 집안 사람 같은 사람들(술주정뱅이 가장으로 인해 정부의 지원으로 사는 집안)이 있고, 흑인들이 있어...... 솔직히 말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커닝햄 집안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커닝햄 집안 사람들은 유얼 집안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고, 유얼 집안 사람들은 흑인들을 증오하며 얕보지" (P418)


스카웃의 고모는 스카웃이 요조숙녀가 되기를 바라며 커닝햄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 것을 이야기 한다.

왜 커닝햄 집안 아이들과 어울려서는 안 되는지를 계속해서 묻는 스카웃에게 고모는 따끔하게 이야기 한다.


"놀아선 안 되는 이유를 말해 주지, 왜냐면, 그 애는......... 쓰레기 같은 애니까. 그러니까 너는 그 애하고 놀아선 안되는 거야. 난 네가 그 애하고 어울리며 행동거지나 본받고 다른 이런저런 것들을 배우게 그냥 나두지 않을 테야"(P415-6)


이 부분을 읽으며 너무 마음이 아팠다.

젬이 말하는 세상, 고모가 말하는 구별....

이것을 스카웃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니라,

결국 스카웃도 네 살 많은 오빠가 이해하는 세상을 곧 이해하게 되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어쩌면 그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스카웃과 젬과 함께 법정 구경을 같던 친구 딜이 흑인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검사의 태도에 놀라 속이 메스꺼워서 밖으로 나가자, 돌퍼스 레이먼드라는 아저씨가 그에게 콜라를 주며 이렇게 말한다.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 봐. 글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지도 않고 울지도 않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옳지 않은 일을 봐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먹어 봐, 그렇게 될 테니" (P372)


다행히 스카웃과 젬에게는 아버지 레들리 핀치가 있었다.

그는 흑인의 변호를 맡는 것에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가르쳐 온 양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과 아이들을 증오하는 세상에 대해서도 아이들에게 적대감을 가지지 않게 한다.

세상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래들리 핀치가 스카웃과 젬에게 가르치는 교훈이다.



얼마전에 지방에 내려가서 몇 년간 산 적이 있었다.

그곳은 신도시가 조성되며 같은 단지에 분양아파트와 임대아파트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는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옛 주거지들이 있었다.

빈민가라고 까지는 부르기는 뭐 하지만 무척 낙후된 주거지였다.

그 곳에서 분양아파트 사람들은 임대아파트 사람들 사이에 담을 설치한다.

그리고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분양아파트 아이들의 놀이터에서 놀면 항의를 하고 쫓아낸다.

아파트단지 밖의 아이들이 분양아파트나 임대아파트에 놀러와도 마찬가지이다.


더 우스운 것은...

그곳은 동구라고 불리는 곳인데...

서구사람들은 동구사람들을 못 산다고 무시하며,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 쪽 아이들가 놀지 말 것을 권유한다.

그리고 그 도시는 또 서울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한다.

서울 사람들 안에는 다시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어진다.

강남 안에도 다시 구별이 나누어진다. 


문제는 어느 순간 이런 것들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그것들이 우리의 세계관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관이 자녀들에게 이어지고...

그 자녀들이 또 그 자녀들에게...


왜 미국고등학교에서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히고 있는지 우리도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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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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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은 처음 접한다.

처음 접하지만 그의 이름과 소설들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들어서 나에게는 낯설지가 않은 작가이다.

그러기에 오래 전부터 그의 작품을 읽고 싶어했다.

그러나 막상 이 책에 나오는 그의 단편들을 몇 편 읽고 나서 책을 덮었다.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이유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무언가가 심장을 누르는 묵직함을 느꼈다.

한 참을 지난 후에야 다시 그의 작품들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금 심장을 누르는 묵직함...

소설을 다 읽은 지금에서야 그 묵직함을 레이먼드 카버라는 소설가가 느꼈던 삶의 무게라고 말하고 싶다.

그나마 내가 찾은 가장 비슷한 표현일 것이다.



이 책의 처음 등장하는 소설은 [깃털들]은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홍보영상 같은 느낌이다.

그의 소설들에 담겨 있는 불행에 대한 맛보기 소설처럼 느껴진다.

주인공 잭과 아내 프랜은 잭의 회사동료인 버드네 집에 초대를 받는다.

그리고 그 집에서 버드의 아내 올라와 그의 아기, 그리고 조이라고 불리는 공작새를 만난다.

시골에 있는 버드의 집은 정신이 없었다.

아기는 울어대고, 공작새는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올라는 그 공작새를 집 안으로까지 들여 놓으려 했다.

그러나 주인공 잭에게 그 순간은 모두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지나갔다.

잭은 그 순간을 그리워하며, 그리고 지금의 불행을 한탄하며 이야기를 맺는다.

잭이 지금 어떤 불행을 겪고 있는지...

왜 그 순간이 그리운 것이진...

소설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레이먼드 카버의 다음 소설들은 그 불행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어지는 [셰프의 집]에서는 술주정뱅이 웨스와 주인공인 아내가 나온다.

(이 소설만이 유일하게 아내가 화자인 소설이다.)

이어지는 그의 소설 대부분에서 주인공은 술꾼이거나 알콜 중독자이다.

웨스는 술을 끊기 위해 바닷가의 셰프의 집으로 이사를 가고, 그곳으로 아내를 부른다.

아내는 웨스가 실패할 것임을 알면서도 그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 해 여름 그들은 짧은 행복을 맛본다.

그리고 그 행복은 사라진다.


레이먼드 카버는 그의 소설에서 잃어버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아내와 행복했던 시절...

미래외 자녀들에 대한 꿈이 있었던 시절...

그런데 그 시절은 금새 지나간다.

남자는 술주정뱅이가 되고...

아들은 반항적이 되며...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지만, 이미 그 기다림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남는 것은 철저한 삶의 무게 뿐이다.


이런 삶의 무게를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는 소설은 [보존]이라는 소설이다.

남편은 실직하고, 아내는 직장을 다닌다.

실직한 남편은 하루 종일 소파에서 누어서 생활한다.

어느 날 아내가 돌아왔을 때 냉장고는 고장 나 있고, 음식을 모두 상해 있었다.

남편은 여전히 소파에 누워있었다.

설정만 보아도 숨이 턱턱 막히는 상황이다.


[굴레]라는 소설에서는 삶의 구석에 몰린 한 가정의 상황을 잘 묘사한다.

경마를 통해 모든 것을 잃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홀리츠 가족은 미네소타의 한 여관에 머문다.

그 여관에는 홀리츠 가족처럼 여기 저기 떠돌다 온 사람들이 생활한다.

어느 날 홀리츠는 술을 먹고 물에 뛰어내리려다가 크게 다친다.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려 하자 그는 술주정처럼 말한다.


"난 더 못가겠어!"


이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나 무거운 마음을 느꼈다.




정작 이 책의 대표소설이라고 하는 [대성당]이란 작품에서는 큰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소설 전반에 흐르는 삶의 무게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것은 레이먼드 카버가 살았던 삶의 무게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느껴보지 않았던 삶의 무게를 어떻게 소설로 쓸 수 있을까?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레이먼드 카버에 대해서 깊은 동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삶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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