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윈도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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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내가 본 것이 항상 실재 상황이고, 내가 기억하는 것이 항상 진실이라고 언제나 확신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 놓이고 이로 인해 몸이 아프거나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압박을 받을 때는 정신이 혼미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때 내가 보고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의심이 들 때가 있다. '그땐 내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잘못 봤나 보다!' '그땐 내가 너무 스트레스가 많아서 왜곡되게 생각했나 보다!'라고 넘길 때가 많다. 심지어 주변 사람까지 그렇게 말할 때가 있다. 그래도 나는 내가 본 것을 끝까지 믿어야 할까.

 

[우먼 인 윈도] 속의 여주인공은 흔히 말하는 '광장공포증'을 겪고 있는 '애나'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한때 잘나가는 소아 정신과 의사였지만, 지금은 어떤 사건의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문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오직 혼자 집 안에 갇혀서 창문으로만 세상을 내다본다. 남편과 딸아이와도 별거 중이어서 오직 전화로만 대화한다. (사실은 전화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지만, 이 부분은 나중에 밝혀진다) 하루 종일 커튼으로 창문을 가리고, 오직 니콘 카메라의 망원 렌즈를 통해서 이웃집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유일한 바깥세상과의 통로이다. 때로는 인터넷의 SNS를 통해 이웃들을 들여다본다.(이것 역시 가상 공간이라는 의미나 빼면 창문으로 바깥세상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는 하루 종일 혼자서 스릴러 고전영화를 보고 의사가 준 여러 가지 약물을 절대로 함께 먹지 말라는 술과 함께 여러 신경안정제들을 먹으며 하루를 보낸다. 극도로 폐쇄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친구가 생긴다. 이웃집에 이사 온 알리스타 러셀과 제인 러셀의 가정을 반듯한 소년인 이선이라는 아이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그녀의 집에 이사 선물을 전해 주러 왔다가 그녀와 대화를 한다. 이선은 대화 중에 친구들과 떨어져 먼 곳으로 혼자 왔다며 갑자기 외로움을 드러내며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그런 이선에게 잃어버렸던 정신과 의사로 직업의식과 함께 모성애를 느낀다. 그리고 그에게 따스하게 대한다. 얼마 후 이선의 어머니인 제인 러셀도 그녀의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병이 발병한 후 처음으로 타인과 오랜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한다. 그런데 얼마 후 우연히 러셀의 집의 창문을 보다가 제인이 칼에 찔리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녀는 급하게 911에 신고를 하고 제인을 살리기 위해 집 밖으로 뛰어나가지만 광장 공포증으로 인해 순간 정신을 잃게 된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의사와 형사, 그리고 이웃집의 러셀과 아들 이선까지 아무 일이 없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분명히 칼에 찔린 것을 보았던 제인 러셀이라는 사람은 전혀 다른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녀가 알던 제인 러셀이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으로 판명된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헛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광장공포증으로 신경 안정제와 여러 가지 약물을 와인과 함께 먹으며 하루 종일 고전 스릴러를 보는 여자가 본 것을 누가 믿겠는가?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이제 그녀도 자신이 본 것을 의심하게 된다.

 

"락트인 증후군 원인으로는 뇌졸중, 뇌간 상, 다발성경화증, 독극물 등이 있다. 신경학적 증상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과적인 증상이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말 그대로 감금되어 있다. 문은 잠겼고, 창문은 닫혀 있다. 빛이 무서워서 웅크리고 있는 동안, 공원 건너편에서는 한 여자가 칼에 찔렸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암도 그 사실을 모른다. 나를 제외하고는. 가족과 별거 중인 데다, 술에 절어 세입자와 섹스를 해대는 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아웃 사람들에게는 내가 이상해 보이겠지. 형사들은 농담하는 줄 안다. 의사는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물리치료사는 나를 그저 가여운 사람으로 여긴다. 갇혀 있는 여자, 영웅도 탐정도 아니다. 나는 갇혀 있다. 세상 밖에." P 338

 

이 책은 뉴욕타임스에서 40주 동안 베스트셀러로 1위를 한 작품이다. 게리 올드먼과 같은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어서 곧 개봉할 예정이기도 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이유를 알 것 같다. 소설은 현대인의 심리를 매우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잔혹한 환경에 의해 상처받고 세상과 사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며 스스로를 가두어 두고 있는 현대인의 심리를 너무 잘 표현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내가 쇼크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쇼크는 두려움이 되었다. 두려움은 변형되어 공포가 괴었다. 그리고 필딩 박사가 등장할 때쯤, 나는 극심한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었다. 박사는 그렇게 간단하고 효율적인 단어로 내 상태를 표시했다. 나는 이 집이 제공하는 익숙한 경계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나는 저 거대한 하늘 아래에서, 외계의 야만의 땅에서 이틀 밤을 보냈기 때문이다." P 456

 

소설을 읽는 동안 스스로를 가두고, 술과 약물, 그리고 과거의 상처에 의해 스스로 무너져가고 있는 한 여성의 심리를 내밀하게 접하게 된다. 그리고 내 안에도 이렇게 무너져가고 있는 마음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마저 잃어버리면 스스로 무너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유명한 철학적인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말한 데카르트 역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실제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쩌면 악마가 모든 것을 환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비록 내가 환상을 보고 있더라도, 그것을 보고 생각하는 나란 존재는 결코 부정할 수 없다고,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는 이상 자신이 존재하며, 그 존재만큼은 진실이라고 확신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진실이라면 자신이 보고 있는 것도 진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소설을 읽으며 결국 나마저 나를 믿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 봤다.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라고, 그럼에도 내가 나만은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마저 나 자신을 믿지 못힌디면 결국 마지막 기둥마저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아의 붕괴일 것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끝까지 자신이 본 것을 믿었다. 남들이 계속해서 자신이 본 것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스스로에게도 확신이 없는 순간에도, 그녀는 자기 자신을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무너져 가는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다. 그런데 정말 그녀가 본 것이 진실이었을까. 궁금한 사람은 소설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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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내가 죽은 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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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전에 종영을 했지만 한국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던 [킬미 힐미]라는 드라마가 있다. 배우 지성과 황정음이 열연을 했던 드라마이다. 지성이 다중인격자인 대기업 재벌 2세로 등장하고 황정음이 그의 주치의로 나오면서 로맨스와 함께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드라마이다. 다중인격과 어두운 과거를 대면하는 부분이 조금 섬뜩하기는 했어도, 뻔한 재벌 로맨스 드라마가 아니어서 무척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에 둘이 한때 같은 집에서 살았으며, 학대를 경험했던 지하실을 기억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충격적이었다.

 

하기시노 게이고의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계속 예전에 보았던 이 [킬미 힐미]라는 드라마가 떠올랐다. 차이가 있다면 드라마는 오랜 시간을 두고 진행이 되지만, 이 책은 하룻밤의 사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대학의 과학부의 조교로 있는 나카노는 어느 날 오래전 애인인 사야카라는 여성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둘은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6년을 사귀었다. 그리고 어느 날 사야카의 일방적인 선언으로 헤어졌다. 그런 사야카가 헤어진 지 7년 만에 다시 전화를 한 것이다. 자신과 함께 가 주어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이다.

 

사야카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남편과의 사이는 별로였고, 하나 있는 딸아이를 극도로 학대하며 분노와 자기혐오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런 이유가 어렸을 때의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초등학교 이전의 기억이 없다면서 그 기억을 찾고 싶다고 말한다. 사야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지도와 열쇠를 보여주며 호숫가의 어느 시골 별장을 같이 찾아가자고 권유한다. 그리고 그들은 인적이 드문 어둡고 음침한 한 시골 별장을 찾아간다. 그 별장은 이상하게 문이 모두 폐쇄되었고, 샤아카의 아버지가 남긴 창고를 통해 지하실을 통과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일단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이후로는 절대로 이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할 정도로 소설은 매우 긴장감 있고 속도감 있게 결말까지 향해 간다.

 

소설의 대부분은 그들이 이 집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까지 이 집의 비밀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숲속의 한정된 어두운 공간에서 과거를 찾는 과정이 섬뜩하면서도 무척 긴장감이 있게 전개된다. 집은 오랫동안 사람들이 살지 않은 것처럼 텅 비어 있고, 시계들은 특정 시간에 멈추어져 있다.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단서를 찾는 중 유스케라는 아이의 일기가 발견된다. 그리고 그 일기장에서 유스케가 '그 녀석'이라고 불리는 사람에게 당한 학대가 끔찍하도록 기록되어 있다. 도대체 유스케는 누구이고, 유스케를 학대한 사람은 누구일까? 또 유스케와 사야카는 어떤 관계일까? 추리소설마다 반전이 있지만, 이 소설은 읽으면서 점점 이 집에 관련된 어두운 비밀들과 유스케의 어두운 과거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결국에는 사야카에 대한 반전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유의 치밀한 구성과 반전으로 인해 이 소설은 처음부터 수많은 복선들이 깔려져 있고, 결말에 이르면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그 복선들이 모두 맞아떨어지게 된다. 무엇보다도 소설의 제목이 흥미롭다.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이다. 사실 이 제목 때문에 읽으면서 [식스센스]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혹시 사야카가 유령이 아닐까 하는... (진짜로 이런 결말이었다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스포로 인해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욕을 엄청 먹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야카는 유령은 아니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 책의 제목이 엄청난 복선이었음을 알게 된다. 소설은 단순히 흥미로운 추리소설로 끝나지는 않는다. 성장과정에서 가정의 학대를 당한 한 남자가 같은 경험을 한 여자를 공감하는 과정까지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로 나 역시 예전에 살던 집을 떠올리는 일이 많아졌다. 키워준 부모와 함께 살던, 그 오래된 집을. 낳아준 어머니와 키워준 부모 사이에서, 누구와 함께 살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았던 집. 얌점하고 순종적인 아들을 연기해야만 했던 집. 인간은 모두 혼자라는 걸 일깨워줬던 집. 어쩌면 나 역식 그 오래된 집에서 죽은 게 아닐까. 어릴 적 나는 그 집에서 죽었고, 그대로 내가 맞이하러 오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누구에게나 옛날에 자신이 죽은 집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곳에서 그저 죽어 있는 자신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모르는 척할 뿐." (P 309-10)

 

이 소설은 1994년에 출간된 책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방과 후]라는 작품으로 에도가와란포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것이 1985년이니 데뷔한지 거의 10년 후에 지은 작품이다. 그렇지만 이미 30년 전에 쓰인 소설이다. 그럼에도 지금 읽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치밀한 구성과 세련된 문체로 쓰여 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나카노와 사야카의 심리, 그리고 일기로만 대면하는 유스케의 심리를 묘사하는 방법이 매우 치밀하다. 조금 오싹한 부분이 읽어서 여름에도 읽기 좋은 추리소설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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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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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고, 야비하게 돈을 갈취해 보이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증거가 없다. 아니, 증거는 있는데 그 증거들이 이리저리 꼬여서 합당한 증거로 쓰일 수가 없다. 결국 뻔히 죄인인 줄 아는데도 그를 무죄로 선고해야 한다. 그럴 때 그 무죄를 선고하는 판사의 입장은 어떠할까?

 

도진기 작가는 판사라는 특이한 경력과 함께 한국에서는 매우 드문 추리소설 작가이다. 그것도 인기작가이다. 그의 소설에서는 범죄에 대한 예리함과 함께 사람에 대한 따스한 감성이 묻어나는 소설이 많다. 이번 소설은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법정 소설에 가깝다. 아마 저자의 경험이 많이 담긴 소설일 것이다. 소설의 내용은 현민우 판사가 세간의 이목을 끈 젤리 사건이라 불리는 사건을 배당받으면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나오는 젤리 사건이란 얼마 전 언론에 많이 언급되었던 낙지 살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남성이 여성과 여행을 가서 모텔에서 낙지를 안주로 술을 마시다가 여성이 낙지를 먹다가 질식사를 했다. 모두 우연인 줄 알았던 사건이 남성이 여성 앞으로 들어 논 거액의 보험금을 타면서 세간에 드러났다. 여러 가지 정황증거에 불구하고 남성은 무죄로 판결되었다. 소설에 나오는 젤리 사건은 남성과 여성이 바뀌었고, 낙지가 젤리로 바뀌었을 뿐 대부분은 상황은 비슷하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주인공은 피고인인 김유선이 유죄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정황증거뿐이고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를 않는다. 당시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죽은 남성을 장례했기에, 부검이나 확실한 검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판사로서의 주인공의 고뇌가 시작된다.

 

"재판에서의 결정은 오늘 점심 메뉴는 뭘로 할까 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가 다른 회사를 제치고 시장점유율을 높일까 하는 제로섬 게임도 아니다. 점심이 맛없어 봤자 잠깐이면 지나가고, 회사가 시장 공략에 실패한다 해도 그만큼 다른 회사가 이익을 보는 셈이니 원론적으로는 사회 전체로 보아 손해가 아니다. 판결은 다르다. 잘못하면 모두가 손해를 본다. 진범을 놓치고 무고한 이의 인생을 망가뜨린다. 되돌리기 어려운 파탄을 초래한다. 나쁜 놈 이야기를 듣고 나쁜 놈이라 욕하는 건 쉽지만 의심을 매단 채 함부로 무기징역! 사형! 외칠 수는 없다. - 중략- 재판이란 게 인간의 권한을 넘어서는 무겁고도 무자비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판사는 겸손해야 하지만 판사의 일까지 겸손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 일을 진진하고 또 진지하게 여겨야 한다. 판결이 갖는 위험을 생각하면 재판을 절대 우리 사회의 컨베이어 벨트의 한 단계로만 볼 수 없다." (P 113)

 

재판 과정에서 여러 증거들이 맞서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비구 폐색의 증거이다. 비구 폐색이란 타인이 인위적으로 코와 입을 막아 상대를 숨지게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지금까지의 경험상 반드시 입이나 코 주변에 상처가 남게 된다. 살해당하는 사람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살기 위해 반항을 하기 때문이다. 반대고 기도폐색은 젤리나 낙지와 같은 것이 목에 막혀 숨지는 사인으로 상처가 없다. 문제는 죽은 남자의 입 주변에는 상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 피고인은 무죄로 굳어간다. 배심 판사들 역시 피고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주인공 혼자만 유죄를 주장한다. 그리고 결국 배심 판사들의 반대와 결정적인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이런 선고에는 법에 대한 그동안의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그는 오래전 자신이 법과 정의의 강의를 떠올린다.

 

"그럼 정의는? 이렇게 물의 시겠죠. 사실 법 입장에선 난감합니다. 사람들의 기대와 실제 모습이 다르거든요. 분칠한 경극 배우 같다고나 할까요. 화장을 지우면 상상치도 못했던 민낯이 드러나는...... 아무튼 그래서 법은 이 곤란한 물음을 무마하기 위해 '절차적 정의'라는 애매모호하고 편의적인 말을 등장시킵니다. 무슨 말이냐. 절차만 정의로우면 된다.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그뿐이다. 그 나머지는 우리가 모르고, 알 수도 없다. 결과의 정당성까지는 ㅅ우리가 손댈 수 없다...... 이런 애깁니다. 이 절차에 따르다 보니, 결과적으로 어떤 좋은 사람이 착착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에 끼어 기름이 쫄쫄 짜이고, 어떤 나쁜 사람이 그 바로 아래에서 입을 벌기고 냠냠 받아먹는 상황이 와도 법은 어쩔 수 없다고 혀를 한 번 쯧쯧 차고는 끝인 겁니다. 우리는 '정의'를 원하지만,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법치'에 불과합니다. 냉정하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법치는 결론보다 절차에 관심이 있습니다. 공정한 결론보다 공정한 절차, 그걸 추구하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 (P 184)

 

결국 주인공은 절차적 정의를 무시하고 정의를 추구하지만, 그런 주인공의 판단은 예기치 못한 일들로 이어져 간다. 이 소설은 기존의 저자의 소설처럼 재미있고 속도감 있게 읽혔지만, 전작에 비해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최근에 국민의 법 감정과 다른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로 인해 많은 공분들이 있다. 여성을 강간한 남성에게 예상외의 가벼운 판결을 내릴 때 '자신의 딸이 이런 일을 당해도 그럴 수 있느냐?'라는 분노들이 있다. 흉악범이 10년 정도 있다고 출소한다고 하자,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판결을 내렸냐며 울분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판사들의 고뇌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들이 울분에 의해서 판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시스템이다. 그들 역시 그 시스템에 의해 움직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런 시스템에서 벗어나 정의를 추구하면 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시스템이 무너지고 감정적인 판결들이 난무할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접하는 딜레마이다. 읽는 내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이상과는 얼마나 다른지를 느끼게 하는 동시에, 판사만이 가지고 있는 고뇌를 느끼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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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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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유전자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인간의 유전자를 통해 개인의 정보는 물론 개인의 가족관계나 조상의 정보까지 알 수 있는 기술들이 발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유전자를 통해 범죄자는 잡는 기술들까지 발달한다. 그런 전 국민의 유전자의 정보를 국가가 손에 넣으면 어떨까? 쉽게 생각하면 범죄자나 성 폭력범 등이 쉽게 잡힐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무언가 끔찍하고 무서운 일도 생길 수 있지 않을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은 흥미와 재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사회적인 문제 등을 예리하게 다루고 있다.  [미등록자]란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미등록자는 일단은 유전자와 다중인격이라는 두 가지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소설을 진행시킨다. 모두들 SF 영화나 스릴러 영화의 단골 소재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이런 흥미로운 소재뿐만 아니라, 국가가 개인들의 유전자 정보를 모두 관할할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를 아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 '가구라'는 유전자를 통해 범죄자를 잡는 연구원이자 경찰 조직인 과학경찰연구소 소속이다. 그는 어렸을 때 도예가인 아버지가 도예 위조품을 구별하지 못하고 모욕을 당하고 죽는 과정을 보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가구라에게는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인간은 마음이나 정신이 없는 오로지 유전자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로 인해 유전자를 연구하고 유전자로 범인을 잡는 연구를 하게 된다. 또 하나는 인격인 분리된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의 충격으로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류'라는 다른 인격이 활동하게 된다.

가구라의 유전자 연구를 통해 일본의 범죄자 검거율은 순식간에 완벽에 가깝게 올라가게 된다. 그런데 여성들을 성폭행 하고 권총으로 살해하는 엽기적인 연쇄살인이 일어난다. 여성의 몸에서는 남자의 정액까지 나왔다. 경찰들은 이제 쉽게 범인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리 유전자의 정보를 검색해도 범인이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유전자 정보에 없는 미등록자가 생긴 것이다. 유전자 정보는 단순히 개인 정보뿐만 아니라, 가족이 정보들까지 유추해 내기에 유전자 정보에서 발견되지 않는 사람은 이론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시스템의 오류일까.

가구라의 도움을 받기 위해 자신의 유전자 연구를 돕는 다테시나 남매를 찾아간다. 두 남매는 대인관계를 기피하면서도 수학에 천재적인 능력이 있어서, 수많은 유전자 정보를 입력하고 구별해 낼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들은 철저한 보안이 이루어지는 7층 연구소에서 있었고, 가구라의 연구소는 5층에 있다. 마침 다테시나 남매를 찾아가는 날 가구라의 인격 대신 류의 인격이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날 다테시나 남매가 살해된다. 당연히 경찰들은 다테시나 남매의 살해 현장을 철저히 조사하고 유전자를 특정할 수 있는 머리카락을 발견한다. 가구라는 이 유전자를 조사하다가 깜짝 놀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컴퓨터를 통해 발견한 유전자의 주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가구라는 자신이 다른 인격인 류가 다테시나 남매를 죽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가구라는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되고, 사건의 숨겨진 부분을 파헤치려 한다. 그러다가 이 사건에 숨겨져 있는 국가의 엄청난 음모를 발견하게 된다. 단순히 시스템의 오류나 사이코패스의 연쇄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한 두 사건이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그곳에서는 국민이 유전자를 통제하려는 국가의 엄청난 음모가 숨어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재미로 인해 항상 순식간에 읽게 된다. 그러나 읽고 나면 항상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어떤 것이 정의인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사회정의의 이면에 숨은 어두운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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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18-11-16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곧 영화화될거 같은 예감 드는 스토리네요^^ 잘 읽고 갑니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캐런 M. 맥매너스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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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날씨의 오후, 수업이 다 끝난 미국의 부유한 학교인 베이뷰 고등학교의 3층으로 5명의 학생이 모여든다. 이들이 모든 곳은 학교에서 고지식하기로 유명한 에이버리 선생님의 실업실이다. 이들이 에이버리 선생님의 수업에 핸드폰을 가지고 왔기에 방과 후에 벌을 받는 디테션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이  다섯 명 모두 개성이 강한 인물이다.

먼저 학교에 '어바웃 댓'이라는 학교 소식통 앱을 운영하는 사이먼이 있다. 사이먼은 학생들의 뒷조사를 하며 그들의 성적 일탈이 나 마약, 또는 부정행위 등을 올린다. 그러기에 사이먼의 눈에 걸리면 학교에서 평판은 순식간에 바닥을 치고, 왕따가 된다.

반면 사이먼과는 정반대의 브론윈이라는 여학생이 있다. 이쁘고, 모범생이다. 예일대를 졸업한 부유한 사업가 부모님을 두고 있는 브론윈은 역시 예일대의 입학을 예정하고 있다.

학교의 최고의 인기남인 쿠퍼도 끼어있다. 쿠퍼는 고등학교 야구 선수로 최근에 놀라운 실력으로 인해 대학가 프로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 그는 뛰어난 외모와 함께 학교에서 가장 이쁜 여학생과 연인 관계를 맺고 있다.

쿠퍼와는 정반대 스타일의 네이트라는 학생도 와 있다. 그는 수많은 여학생들과 아무렇지 않게 사귀고, 여러 가지 말썽을 일으키며, 최근에는 마약을 팔다가 보호관찰까지 받았다.

마지막으로 에디라는 여학생이 있다. 학교 인기남인 제이크와 사귀고 있고, 덕분에 제이크와 함께 학교 최고의 커플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자신이 제이크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언제 제이크에게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하며, 무조건 제이크에게 순종적으로 맞춰주려 한다.

공통점이라고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이들은 우연히 가방에 자신의 핸드폰이 아닌 처음 보는 핸드폰이 들어있었고, 그로 인해 방과 후에 받는 벌칙인 디테션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지만, 에이버리 선생님은 이들에게 손글씨로 작문을 쓰는 벌을 내리고 잠시 교실을 비운다. 그 사이 물을 마시던 사이먼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구급차가 도착하지만 사이먼은 사망하고 만다. 단순한 알레르기 사고였지만 사건이 점점 복잡해진다.

평상시 땅콩 알레르기가 있던 사이먼이 마시던 컵에 누군가가 알레르기 성분을 넣어두었던 것이다. 방안에는 사이먼과 네 명의 학생들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네 명 중의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이야기인데... 무언가 각자 비밀을 감추고 있는듯한 분위기를 품기는 네 명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하나씩 비밀이 드러난다. 겉으로 완벽해 보이고 싶었던 그들이 숨기고 싶었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비밀들을 사이먼이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비밀을 그가 만든 학교 소식통의 앱에 올리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넷 중에 누군가가 이 사실을 알고 사이먼을 죽였던 것일까?

처음 이 소설을 접할 때는 영 어덜트 소설로 알고 읽었다. 영 어덜트 소설이나 미국에서 청소년이나 성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로서 주로 청소년들이 주인공이 되어, 그들의 시각에서 사회의 문제나 사람과의 관계 등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대표적인 소설로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헝거게임]이나 [메이즈러너]같은 SF 소설 등이 있다. 주로 SF 소설이 대세이던 영 어덜트 소설이 최근에는 스릴러 장르 등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이 소설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영 어덜트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수위가 조금 높은 부분들이 있다.

미국 고등학교가 한국보다 성적으로 자유롭고, 총기나 마약의 문제 등으로 더 문제가 많은 것은 알지만, 소설의 내용은 조금 충격적인 부분들이 많다. 성적인 일탈이나 동성애, 심지어는 마약까지... 온갖 문제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도 청소년 특유의 타인들에게 잘 보이려는 자존심까지... 이런 문제들이 얽히고설킨 문제를 만들고, 결국 사이먼의 죽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비록 픽션이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미국 고등학교 안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듯한 생각이 들 정도로, 미국 고등학교의 모습을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단순히 영 어덜트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수위가 높은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도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무척 속도감 있고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네 명이 모두 범인으로 몰리면서 동료 학생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배척 당하는 상황이나, 이런 상황에서도 블로윈과 네이트가 서로 끌리며 서로 사랑하는 과정 등이 매우 재미있게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영 어덜트 소설을 접하고 싶은 독자라면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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