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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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스티븐킹의 소설을 잡으면 쉼없이 읽어내려가기 바쁘다.

그만큼 그의 소설은 사람을 끌어다니는 흡입력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무려 세 번을 포기했다.

그리고 겨우 네 번째에야 다 읽었다.

소설의 묘사가 너무 끔찍하고 사실적이여서 읽다가 내려 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런 소설에 열광하는 마니아들은 좋아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잔인한 묘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읽는 동만 읽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다행인 것은 4편은 중편이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의 작품 중에서 제일 앞에 나오는 [1922]라는 작품 외에는 심하게 잔인한 묘사가 없었다.

오히려 뒤에 실린 작품들은 잔인한 묘사보다는 스토리와 반전이 훌륭한 작품들이었다.


이 책의 처음 작품의 [1992]라는 작품이다.

1920년대 미국의 한 시골농장에서 한 농부가 아들과 함께 아내를 살해하는 내용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몇 번을 책을 내려 놓아야 할만큼 잔인한 묘사들이 나온다.

가장 읽기 힘들었던 부분은 남편이 아내가 살해하는 장면이다.

술취한 아내를 이불로 덮은 후 칼로 살해하는 장면인데 그 장면의 묘사가 끔직한다.

다른 부분은 죽은 아내를 우물에 던져 놓은 부분인데...

아내의 시체에서 쥐가 나오는 장면이다.

여기에 인용구로 그 묘사를 적어 넣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다행히 소설 앞 부분의 잔인한 묘사가 지나고 나서는 이야기가 급진전 된다.

당시의 미국의 시대상과 아내를 죽인 후 죄책감과 두려움, 그리고 마지막에는 후회를 하는 남자의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소설의 마지막은 남자가 아내를 죽이면서까지 했던 선택이 결국엔 다 물거품이 되었고, 아내의 선택을 따랐더라면 오히려 좋지 않았을까 하는 여운으로 끝난다.


두 번째 작품은 [빅드라이버]라는 작품이다.

한 여성 추리소설 작가가 외딴 길을 운전하다가 강간을 당하고 살해를 당한다.

범인은 주인공이 죽은 줄 알고 하수구에서 던져 놓지만, 주인공은 살아서 그곳을 빠져 나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복수를 계획한다.

이 소설의 압권은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의 주인공의 심리묘사이다.

마치 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을 읽는듯한 주인공의 내면의 심리 묘사가 아주 탁월한 작품이다.

물론 이 책의 작품 중 유일하게 통괘한 복수를 끝맺기도 하는 작품이다.


세 번째 작품은 [공정한 거래]라는 작품이다.

오래 전 인기를 끓었던 우리나라 텔레비젼 '인생극장'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다.

암에 걸려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주인공이 우연히 어느 가게에 들르게 된다.

신비적인 분위기를 띄는 주인이 있는 가게에서 파는 것은 무엇인든지 '연장'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생명을 연장시키는 거래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대가는 자신의 애인을 빼앗아 간 친구의 인생을 파멸시키는 것이다.

이 소설은 기적적으로 암에서 완치된 주인공이 계속해서 행운을 누리는 것에 대비해서 점점 파멸해 가는 친구의 삶을 그리고 있다.


네 번재 작품은 [행복한 결혼 생활]이라는 작품이다.

자상한 남편이 알고보니 연쇄살인범이라는 내용의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네 작품 중에서 가장 스토리 전개가 빠르고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저자는 이 책의 후기에서 절박한 사람들의 복수에 대해서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별도 없는 한 밤에]를 쓰면서 나는 어떤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 또 그들이 선택할지도 모르는 행동 방식을 기록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등장인물들은 희망을 아예 잃어버린 사람들은 아니지만, 우리의 가장 간절한 희망조차도 (그리고 우리가 동료 시민들에게, 또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하여 품고 있는 가장 간절한 소망조차도) 때로는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런 경우는 빈번하다. 그럼에도 내 생각에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 싶다. 고결함이란 성공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깃드는 것이며....... 우리가 그 노력을 다하지 않았을 때, 또는 그러한 도전으로부터 일부러 고개를 돌릴 때, 바로 그때 우리 앞에 지옥문이 열린다고. (P600)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절박한 상태에서 복수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다.

아내를, 범인과 그의 가족을, 그리고 남편을 죽인다.

그런데 [1922]에서는 아내를 죽인 후 살인이라는 것이 사람의 내면을 어떻게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이야기 하는 반면, 다른 작품에서는 살인이 오히려 상황을 정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과연 범인이나 남편을 죽인 여주인공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살인이 그토록 사람의 내면을 피폐하게 만든다면.......


잔인한 묘사가 마음에 걸리지만 스토리상으로만 봤을 땐 '역시 스티븐 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고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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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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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장면을 묘사하는 듯한 스티븐킹의 섬뜩한 묘사가 일품인 작품입니다. 작품의 섬뜩한 이미지가 계속 떠올라 읽는 내내 쭈볏한 느낌이 드는 책이네요. 역시 스토리와 묘사의 대가인 스티븐킹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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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10-04 0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못 읽을 것 같네요~~~ㅠㅠ

가을벚꽃 2015-10-04 16:4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솔직히 여성분들이나 저같이 심약?한 분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입니다^^ 사실 저도 몇 번이나 내려놨다가 다시 잡고 읽고 있는 중입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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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학교때 지방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었다.

당시에는 남학교에서는 폭력이 당연시 되는 분위기였다.

매일같이 선생님들은 학생을 때렸고, 학생들끼리도 힘센 아이가 약한 아이를 때리며 물건등을 갈취했다.

특히 매달 마다 치르는 모의고사 후에는 선생님의 매질이 시작되었다.

학급간 순위를 매겨서 성적이 우수한 반 담임에게는 보너스가 주어지고, 성적이 나쁜 반 담임은 시말서를 써야 했다. 

그러기에 시험성적이 발표되는 날이면 성적이 나빠서 반 평균을 깍아 먹었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모든 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빨가 벗겨 엎드리게 한 후 대걸래 자루로 매질이 시작되었다.

물론 아이의 성적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매질이 시작되다 보면 어느 순간 선생님이 이성을 잃고 주먹과 발로 아이를 무차별로 폭행하기가 다반사였다.

그런 모든 장면들이 어린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성인이 되어 우연히 그 학교에 운동장을 간 적이 있었다.

그 학교의 운동장과 주변의 교실들을 보았을 때 다시금 다가오는 압박감이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그 압박감이 생각났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내내 주인공의 압박감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이 책의 남자 주인공은 어린 시절 학교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친구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그리고 소년원과 형무소를 거쳐 이제는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 폭력의 기억은 계속해서 그를 쫓아다닌다.

특히 주인공이 살해 한 친구의 어머니는 집요하게 그를 쫓아다닌다.

그에게 자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라며 친근하게 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가 사는 곳이나 일하는 곳마다 찾아다니며 그가 전과자라는 사실을 소문내고 다닌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는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한다.

또 다른 폭력이 그를 쫓아다니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묵묵히 그 폭력을 감당한다.

그는 세상을 하나의 패턴으로 본다.

그리고 그 패턴이 매우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서 이 패턴이란 어쩌면 세상의 부당한 폭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그 세상의 패턴은 묵묵히 받아들인다.


주인공 남자에게는 보람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여자친구아 있다.

무슨.. 과찬의 말씀을^^ 항상 삶과 연관이 있는 비비아롬나비모리님의 글을 잘 읽고 있습니다.

출판사 편집실에서 일하던 그녀는 우연히 그가 투고한 작품을 통해 그를 다시 만난다.

그녀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았었다.

그리고 지금은 출판사라는 직장에서 보이지 않는 학대를 받고 있다.


소설에서 남자는 자신 안에 '우주 알'이라는 것이 들어와 과거와 현재, 미래를 패턴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우주 알이란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남자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의 운명, 그리고 여자와의 만남의 운명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초연한듯이 행동한다.

그리고 그 모든 운명을 패턴으로 받아들인다.


소설은 다소 복잡한 구성과 남자 주인공의 난해한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관심을 가졌던 것은 구성이나 언어가 아니었다.

남자 주인공이 느끼는 세상의 패턴들......

아무렇지 않게 그 패턴들을 묵묵히 받아들이기에 더 무거움으로 다가왔던 주인공의 압박감.....

우리는 진정 그 세상의 패턴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일까?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은 필연이었을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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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1Q84 1~3 세트 - 전3권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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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하루키를 접한 것은 우리나라에 아직 하루키의 열풍이 불기 전이었다.

처음 그의 작품 [상실의 시대]를 접하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내가 하루키의 작품으로 위로를 받았다는 것은 하루키의 작품의 주제나 그 속의 메세지에 감명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사실 하루키의 작품을 읽으면 읽을 수록 도대체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더욱 더 모호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비오는 날 쓸쓸한 마음으로 집 밖에 나와서 도시의 뒷골목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말없이 내 옆에 와서 함께 걸어주는 기분이었다.

비오는 날 도시의 뒷 골목은 비릿내도 나고, 여러가지 네온들로 인해 분위기도 심란하지만 그래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함이 있다.

하루키의 소설의 분위기가 그랬다.

때로는 마음이 쓸쓸하거나 심란할 때 읽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함을 주는 소설이었다.


그러다가 군대에 있을 때 정도에 하루키의 인기가 쏟으며 [태엽갑는 새]가 발표 되었다.

나는 지금도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하루키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인생관이 여기에 다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을 몇 권을 더 읽은 후 그의 소설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하루키의 작품도 드물게 발표되었지만, 그 소설을 읽을만한 여유도 없었다.

당연히 몇 년 전 오랫만에 하루키의 장편소설인 [1Q84]가 출간하고 떠들석 했을 때도 이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거이 10년만에 다시 하루키의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예전에 하루키에게 느꼈던 그만큼의 감성은 느끼지 못했다.

구성은 더 치밀해졌고, 묘사는 더 사실적이 되었다.

마치 이 소설에서 고마쓰가 덴코가 고쳐 쓴 [공기 번데기]를 향하여 한 조언을 하루키가 들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독자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것을 소설 속에 끌어들일 때는 되도록 상세하고 정확한 묘사가 필요해. 생략해도 괜찮은 것, 혹은 반드시 생략해야 하는 것은 대부분의 독자가 이미 목격한 적이 잇는 것에 대한 묘사야" (1권 P370)


이 소설은 [태엽갑는 새]를 더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묘사해 놓은 소설 같았다.

그럼에도 예전의 하루키의 그 쓸쓸하고도 공허한 표현이 조금은 퇴색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그의 여전히 모호한 세계관과 그 세계 속에서의 걸음은 계속되지만...

아직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통해 하루키가 이야기하는 세계와 상실의 의미가 조금은 더 손에 잡힐 듯 하다.





이 소설은 아오마메라는 여성과 덴코라는 남성의 시각에서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3권에서는 우시카와라는 인물이 끼어들기는 하지만 주된 흐름은 아오마메와 덴코가 이끌어간다.


아오마메는 한 때 소프트볼 팀에 속해 있었던 스포츠 클럽 강사이다.

그녀는 마르지만 근육이 있는 체형에 간결하고 깔끔하 성격의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겉으로는 스포츠 클럽 강사지만 여성을 학대하는 남성들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는 일을 한다.

개인적으로 개발한 아이스픽이라는 작은 침으로 자연사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아오마메가 한 남성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러 가기 전에 교통체증으로 인해 고가도로 위의 택시 안에 갇히는 것으로 시작된다.

차에서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라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운전사는 급한 일이면 고가도로와 일반도로를 연결하는 비상 사다리가 있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사다리로 다른 세상으로 내려간다.


그녀가 다른 세상에 도착해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경찰관 제복이 바뀌어 있고, 무기도 자동소총으로 바뀌어져 있다.

무엇보다는 저녁마다 달이 두 개씩 뜬다.

그녀는 자신이 속해있던 1984년과 지금의 세상이 다르다는 의미에서 지금의 세상을 1Q84라고 부른다.



덴코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리키는 임시 강사이면서, 소설을 쓴다.

물론 그의 소설은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다.

단지 고마쓰라는 편집자가 부탁하는 잡일을 하면서 그의 지도를 받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고마쓰는 후카에라라는 소녀가 쓴 [공기번데기]라는 작품을 덴코에게 개작할 것을 제안한다.

이 작품은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만 문장은 형편이 없기 때문이다.

덴코는 처음에는 이 제안을 거부하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후카에라를 만나고 공기번데기를 개작하게 된다.


아오마메와 덴코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전혀 상관이 없는 두 남녀의 이야기처럼 흐른다.

그러다가 덴코의 어린시절 회상에서 자신의 손을 잡아주던 증인회 소속의 여자 아이를 떠올린다.

그리고 1권 말미에서 그 여자 아이가 아오마메임을 암시한다.



둘은 점점 선구라는 종교단체에 다가가면서 일치점을 찾아간다.

아오마메가 최종적으로 다른 세상으로 보내려는 남자는 선구의 지도자이다.

덴코 역시 [공기번데기]라는 작품을 통해 선구라는 종교단체에 접근해 간다.

[공기번데기]라는 작품은 실상 후카에라가 선구라는 종교단체 속에서 경험한 이야기이고,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리틀피플을 [공기번데기]라는 작품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여기서 리틀피플이 무엇인지...

그들이 어떻게 선구의 지도자나 후카에라, 덴코와 연결되어 있는지는 무척 모호한 단어들로 설명을 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오마메는 덴코를 만나 함께 1Q84의 세계를 빠져 나오게 된다.





하루키의 다른 소설처럼 이 소설에서 상징적인 단어들, 모호한 설명, 그리고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보통 하루키 소설에서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관문이 등장한다.

우물 속에 빠지는 것과 같은 순간적인 경험들이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 무언가를 상실하게 된다.

아니면 상실했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든지...


하루키가 말하는 '상실'이 무엇인지는 나로서는 아직 알 수 없다.

아마 안다고 해도 그것은 글로 표현하기 모호한 것임에 분명하다.

그것을 글로 표현한다고 하면 아마 하루키가 이야기하려는 '상실'과는 다른 것일 테니까...


이 소설에서도 아오마메는 고가도로를 내려가는 경험을 통해...

(고가도로이지만 무언가 아래로 내려간다는 부분에서는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다른 세계로 가게 된다.

그리고 그 세계는 무언가가 상실된 세계이다.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의 상실은 단순히 어떤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 묘사 되지는 않는다.

어떤 기묘한 만남을 통해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그 만남을 리틀피플과의 만남으로 묘사한다.

리틀피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 소설은 계속해서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

이 소설을 읽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도대체 리틀피플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루키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리틀피플이 뭐냐?'가 아니라 '리틀피플과의 만남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리틀피플과의 만남으로 세계는 무엇을 상실했고, 나는 무엇을 상실했냐는 것이다.

하루키는 이 세계가, 그리고 이 세계의 사람들이 이런 상실 속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상실 속에 묻혀서 살아간다고 본다.


그럼에도 아오마메와 덴코는 그 상실된 세계에서 앞으로 나가려 한다.

올바른 길도 모른다.

해결책도 없다.

하루키는 아예 처음부터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가정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의 소설은 모호한다.


사람들은 자신만이 아는, 아니 안다고 생각하는 길이나 해결책이 있기에 글과 소설을 쓰려고 한다.

글을 통해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길과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키는 그런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그런 상실의 세계 속에서 길을 찾아 나선다.

그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최고의 몸부림을 친다.

그것이 그의 소설이고, 그 주인공이 아오마메와 덴코이다.

아아마메와 덴코, 그리고 하루키는 상실의 세계 속에 살고 있고, 그 속에서 앞으로 걷고 있다.

태엽에 감기어 계속해서 걸어가는 새처럼....


아오마메와 덴코가 그 상실의 세계에서 빠져나왔는지는 소설 끝에서도 여전히 모호하다.

어쩌면 다른 상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한다.

그러나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상실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상실의 세계 속에 있고, 그 세계에서 걸어가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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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도미난스 - 지배하는 인간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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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국문학에 있어서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벽이 무척 두껍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스티븐킹과 같은 경우 스릴러작품을 많이 쓰는데도 문학적으로도 매우 인정을 받고 있고, 일본의 경우 미유베미유키 같은 경우는 추리소설을 쓰고 있지만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 대해서 매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순수문학이라는 틀이 너무 두꺼워서 일반 대중들이 점점 문학에 대해서 멀어져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다행이도 요사이 젊은 작가군에서 기존의 틀을 깨는 신선한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김성중 작가의 [국경시장]이나, 김연수 작가의 [원더보이], 요사이 인기를 얻고 있는 김중혁 작가의 작품들까지...... 기존의 한국문학에서 보지 못했던 틀을 깨는 신선한 작품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장강명 작가의 [호모도미난스]라는 작품 역시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벽을 허무는 신선한 작품이었다.

 

장강명 작가는 [한국이 싫어서]라는 작품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사회를 보는 새롭고도 실랄한 시각, 그리고 시니컬한 언어들이 마음에 들어 다른 작품들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호모도미난스]는 내가 생각하던 작가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한 작가가 쓴 같은 작품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혀 새로운 작품이었다.([호모도미난스]가 먼저 쓰여진 작품이니 [한국이 싫어서]가 새로운 작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작품은 언어를 통해 타인을 지배하는 새로운 능력을 가진 '호모도미난스'라는 신인류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스릴러같기도 하고, SF소설 같기도 하다. 영화 엑스맨시리즈를 연상시키기거나 많은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마이클세이키의 [브릴리언스]라는 책의 분위기도 풍긴다.

 

이 책에서는 호모도미난스를 '흰원숭이'라고 부른다. 중국인 의사 류잉춘은 우연히 흰원숭이가 된 후 이들의 능력이 세상의 혼란을 가져오고, 결국에는 인류를 멸망시킬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백원단'이란 단체를 만들어 흰원숭이들을 통제하려 한다. 하지만 흰원숭이가 된 후에 후유증으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능력을 물려 줄 인물을 찾던 중 한국인 안시현을 발견하게 된다.

 

안시현은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혼자 중국에 의료봉사를 하러 왔다가 우연히 사람을 구하게 된다. 류잉춘은 안시현에게 흰원숭이의 능력을 선하게 사용할 본성을 발견하고 그에게 자신의 능력을 물려준다. 이 소설은 흰원숭이가 된 안시현이 다른 흰원숭이들의 음모나 폭주를 막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찌보면 재미를 추구하는 스릴러와 SF소설같지만, 소설은 타인을 복종시키는 무한한 능력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들춰낸다. '내 말 한 마디에 타인이 무조건적으로 복종한다면 나는 어떻게 변할까?' 그때는 아마 인간 안에 있는 본성이 들어날 것이다. 자신의 욕망과 분노와 같은 모든 것이 여과없이 드러날 것이다. 작가는 이런 모든 본성 밑에는 결국 허무와 권태가 있다고 말한다. 결국 흰원숭이가 된 사람들은 자살충동에 휩쓸리게 된다. 모든 것을 얻은 후에 오는 것은 허무와 권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을 복종시키는 자신의 권력은 결국 자신을 죽음을 내몬다고 말한다.

 

요즘들어 한 때 존경했던 인물들이 타인을 지배하는 권력을 얻은 후에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권력이 그를 변하게 했는지, 아니면 그 안에 감추어 있던 본성이 권력을 얻은 후에 드러나는 것이지 모르겠다. 다만 그런 주위사람들을 볼 때마다 인간에 대한 씁쓸한 마음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며 마냥 재미있게만 읽을 수 없었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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