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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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살아 온 인생에서 요사이 깨닫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품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반면 가장 쉬운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편을 가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편과 네편으로 나누기를 좋아하며, 내가 어느 한 편에서 서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특히 내가 속한 편이 좋은 지점을 점하고 있거나, 승리를 잡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두들 열심히 승리자의 편에 서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내가 승리자의 편 속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렇지 않은 상대에 대해서 비하하고 업신여긴다.

그럼으로서 비로서 안정감을 느낀다.

내가 저들과 다르다는 것, 저들 위에 있는 것에 대해서...


드디어 하퍼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읽었다.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그런데 읽고 나서는 무언가 뿌듯한 감정보다는 씁쓸하고 아쉬운 감정이 더 생긴다.



1930년대의 미국 남부의 작은 도시인 메이콤이라는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스카웃 핀치라는 어린 소녀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스카웃 피치는 막 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한 어린 소녀로서 네 살 위의 오빠인 젬 핀치와 아빠인 래들리 핀치와 흑인 가정부인 캘퍼니아 아줌마와 살고 있다.

핀치 가문은 그 지역에서는 꽤 유서 깊은 가문이고, 아버지 래들리 핀치는 명망있는 변호사였다.


이 책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스카웃의 시각에서 메이콤 마을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핀치 가문의 사람들에게 대한 묘사가 대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 래들리 핀치가 강간 혐의를 받고 있는 톰 로빈슨이라는 흑인 청년을 변호하면서 핀치 가문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2부에서는 1부에서 시작한 어두운 그림자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아버지는 흑인 청년을 변호하면서부터 '깜둥이 애인'이란 비하적인 별명으로 불리게 되고,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신변의 위협까지 느낀다.

스카웃 역시 오빠와 함께 학교에서 놀림을 당한다.

그리고 재판이 시작되자 모든 정황상의 증거가 톰 로빈슨이라는 흑인 청년의 무죄로 드러난다.

그러나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은 톰 로빈슨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로빈슨은 감옥을 탈출하다가 총에 난사당해 처참하게 죽는다.

소설은 이 모든 과정을 8세의 어린 소녀인 스카웃의 시각으로 묘사하고 있다.


먼저 이 소설의 가장 뛰어난 점은 작가의 묘사력일 것이다.

1930년대의 미국 남부의 작은 도시를 어린아이인 스카웃의 시각에서 묘사하고 있는 시각이 너무 뛰어나다.

물론 이런 묘사력을 좋은 문장으로 변역한 번역가의 공로도 클 것이다.

그 묘사가 너무 자연스럽고 재미있어서 소설이 술술 읽혀진다.


또한 어린 아이의 시각에서 본 어른들의 성품, 특히 위선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변론을 구경갔다가 톰 로빈슨이 사형을 구형받는 장면을 목격한 스카웃과 젬은 낙심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스카웃은 분명히 무죄인 사람이 어떻게 사형을 구형받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흑인이란 이유로 그들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마을 사람들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집에서는 고모가 교회 선교회 사람들을 불러 놓고 다과회를 하고 있었다.

멀리 아프리카의 한 마을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며 그들을 돕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가까운 흑인들을 경멸하며 톰 로빈슨이 사형을 당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또한 학교 스카웃의 학교 선생님은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을 만행으로 여기며 '우리 민주주의'라고 칠판에 쓰며 미국인은 그렇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흑인의 사형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그를 욕한다.

어린 스카웃과 오빠인 젬에게는 이런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젬은 어린 나이로 깨달은 세상의 모습을 스카웃에게 이야기 해 준다.


"스카웃, 그거 알아? 난 이제 모두 알겠어. 요즘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알아낸 거야. 이 세상에는 네 부류의 인간이 있어, 우리나 이웃 사람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있고, 숲 속에 사는 커닝햄 집안 같은 사람들(가난한 집안)이 있고, 쓰레기장에 사는 유얼 집안 사람 같은 사람들(술주정뱅이 가장으로 인해 정부의 지원으로 사는 집안)이 있고, 흑인들이 있어...... 솔직히 말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커닝햄 집안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커닝햄 집안 사람들은 유얼 집안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고, 유얼 집안 사람들은 흑인들을 증오하며 얕보지" (P418)


스카웃의 고모는 스카웃이 요조숙녀가 되기를 바라며 커닝햄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 것을 이야기 한다.

왜 커닝햄 집안 아이들과 어울려서는 안 되는지를 계속해서 묻는 스카웃에게 고모는 따끔하게 이야기 한다.


"놀아선 안 되는 이유를 말해 주지, 왜냐면, 그 애는......... 쓰레기 같은 애니까. 그러니까 너는 그 애하고 놀아선 안되는 거야. 난 네가 그 애하고 어울리며 행동거지나 본받고 다른 이런저런 것들을 배우게 그냥 나두지 않을 테야"(P415-6)


이 부분을 읽으며 너무 마음이 아팠다.

젬이 말하는 세상, 고모가 말하는 구별....

이것을 스카웃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니라,

결국 스카웃도 네 살 많은 오빠가 이해하는 세상을 곧 이해하게 되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어쩌면 그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스카웃과 젬과 함께 법정 구경을 같던 친구 딜이 흑인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검사의 태도에 놀라 속이 메스꺼워서 밖으로 나가자, 돌퍼스 레이먼드라는 아저씨가 그에게 콜라를 주며 이렇게 말한다.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 봐. 글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지도 않고 울지도 않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옳지 않은 일을 봐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먹어 봐, 그렇게 될 테니" (P372)


다행히 스카웃과 젬에게는 아버지 레들리 핀치가 있었다.

그는 흑인의 변호를 맡는 것에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가르쳐 온 양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과 아이들을 증오하는 세상에 대해서도 아이들에게 적대감을 가지지 않게 한다.

세상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래들리 핀치가 스카웃과 젬에게 가르치는 교훈이다.



얼마전에 지방에 내려가서 몇 년간 산 적이 있었다.

그곳은 신도시가 조성되며 같은 단지에 분양아파트와 임대아파트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는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옛 주거지들이 있었다.

빈민가라고 까지는 부르기는 뭐 하지만 무척 낙후된 주거지였다.

그 곳에서 분양아파트 사람들은 임대아파트 사람들 사이에 담을 설치한다.

그리고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분양아파트 아이들의 놀이터에서 놀면 항의를 하고 쫓아낸다.

아파트단지 밖의 아이들이 분양아파트나 임대아파트에 놀러와도 마찬가지이다.


더 우스운 것은...

그곳은 동구라고 불리는 곳인데...

서구사람들은 동구사람들을 못 산다고 무시하며,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 쪽 아이들가 놀지 말 것을 권유한다.

그리고 그 도시는 또 서울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한다.

서울 사람들 안에는 다시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어진다.

강남 안에도 다시 구별이 나누어진다. 


문제는 어느 순간 이런 것들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그것들이 우리의 세계관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관이 자녀들에게 이어지고...

그 자녀들이 또 그 자녀들에게...


왜 미국고등학교에서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히고 있는지 우리도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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