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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법칙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평점 :

인생의 어느 순간에 한 번쯤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경우가 있다.
쫓기고 쫓기다가 앞이 꽉 막힌 곳까지 쫓기는 경우가 있다.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고...
그래서 여기가 끝이구나 하는 막막함...
누군가가 있어서 손이라도 잡아 주었으면 좋겠는데...
아니, 손을 못 잡아 주면...
얼마나 힘드니?
얼마나 괴롭니?
이렇게 따스한 말 한 마디라도 던져줬으면 좋겠는데...
혹시나 손을 잡아 주다가 자신까지 그 막다른 골목에 갇힐까봐 사람들은 외면한다.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라는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던질 뿐이다.
이 소설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두 명의 여자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첫 번째는 윤세오라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은둔생활을 한다.
집밖으로 나가기를 꺼려하고, 사람들을 만나기를 무서워한다.
어느 날 아버지가 그녀에게 백화점에 가서 옷을 찾아오라고 한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그녀의 옷을 사고, 백화점에 맡겨 놓은 것이었다.
옷을 입고 돌아오는 날 그녀의 집은 불에 타고 있었다.
경찰은 빚에 쫓기던 아버지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를 죽게 한 사채업자를 찾아나선다.
두 번째는 신기정이라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교사라는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이복동생인 신하정이 죽었다가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녀는 동생의 죽음을 추정하다가 동생이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려던 사람이 윤세오라는 것을 안다.
그녀는 동생이 마지막 순간에 어떤 마음으로 전화를 했는지 궁금해 한다.
그리고 윤세오를 찾아 나선다.
자신이 외면했던 동생의 삶을 알기 위해....
소설은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던 윤세오와 신하정이, 그리고 그들의 친구인 조미연과 부이라는 남자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서서히 드러내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이 흔히 거마대학생이라고 불렸던 다단계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 준다.
막다른 골목인 줄 알면서도 나갈 수밖에 없었던 삶...
내가 살기 위해서...
아니, 너무 외롭기에 다른 사람까지 끌어 들일 수밖에 없었던 삶...
그 막다른 골목에서 그들은 함께 있었고...
또 그렇게 헤어졌다.
내가 편혜영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2014년 이상문학상작품집을 통해서이다.
그 작품집에 실린 [몬순]과 [저녁의 구애]라는 두 단편 소설 역시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작품집에 실린 작가의 작품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작가의 작품론이었다.
작가는 학창시절 때 구청에서 가구별 통계조사를 정리하던 아르바이트를 하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 조사표에서 자신의 가정의 것도 발견했다.
친구들은 그 조사표를 보고 자신의 가정을 알게 되었다고 동질감을 표시했지만
작가는 그런 외적인 것들로 진정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작가에게 있어서 외부에서 보는 몇 가지 조사와 통계로 그 삶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자 폭력이었다.
작가는 자신이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것이 그때가 아니었나 회상한다.
소설을 통해 통계와 수치로 이해할 수 없는 진짜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그런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담담하게 이야기 하는 신기정과 윤세오, 신하정, 부이의 삶에서...
나는 통계나 수치로 알 수 없는 밑바닥의 삶을 보게 되었다.
몇 년 전 일본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인 [화차]라는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어느 날 사라진 약혼녀의 찾아가는 미스테리 소설인데...
그녀를 찾아갈수록 빚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처참한 삶이 드러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조이고, 답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삶...
빠져 나올 수 없는 삶...
그래서 막다른 골목에서 막다른 선택을 하는 삶...
그런 삶이 있다.
우리가 통계와 수치로 쉽게 판단하고 외면하는 그런 삶이 있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막막함에 가슴으로 인해 쓰러져 있지만...
그리고 그런 삶에 통계와 수치를 들이댄다.
우리의 이야기가...
통계와 수치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 소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