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거짓말 -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
정문순 지음 / 작가와비평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신경숙 작가의 표절문제 때문이었다.

이 부분에 대한 기사를 관심있게 보던 중 신경숙 작가의 표절문제가 최근에 대두된 것이 아니라, 오래 전 부터 계속해서 제기 되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문제 제기를 한 사람 중에 정문순 평론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평론이 실린 작품이 이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는 이 책은 다루고 있는 책들이 주로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신경숙, 은희경, 공지영과 같은 여성 작가들이라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1990년대 이전에는 주로 역사소설을 많이 읽었었다.

태백산맥과 토지를 비롯한 보통 한 편이 10권 정도 되는 역사소설을 읽으며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졌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역사소설들이 사라지고 여성작가들의 작품들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시대의 흐름상 나 역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읽게 되었고, 그 중 몇 몇 작가들의 작품은 무척 좋아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작가들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 있었다.

'혹시 내가 그때 생각없이 작품들을 읽고 좋아하지 않았었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문제제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2000년대 초반까지 정문순 평론가가 10년 가까이 쓴 평론을 묶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주로 1990년대 문학환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먼저 이 책에서는 1990년대에 여성작가들의 작품이 인기를 끌 수 밖에 없었던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저자는 1990년대의 문학환경을 '무주공산'이란 단어로 표현한다.

1980년대 문학이 가지고 있었던 시대적인 문제제기와 이를 통한 문학적 낙관주의가 사라지고, 문학을 통한 문제 해결에 대한 회의가 팽배한 가운데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1990년대에 여성 중산층이 출판시장의 주 독자가 되면서 상업적인 부분과 맞아 떨어져서 여성 작가들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배경속에서 등장한 여성 작가의 작품을 저자는 '감정의 낭비와 허위의식'이라고 비판한다.

즉 이전의 소설이 사회 문제에 대해 다루었다면, 여성 작가들의 소설은 개인의 삶과 감정 문제에 치우쳤다는 것이다.

저자의 평론에 여러 번 등장하고 있는 신경숙 작가의 [외땅방]의 한 구절이 이런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몰라, 오빠. 나는 그런 것들보다 그때 연탄불은 잘 타고 있었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방을 나간 오빠가 어디 길바닥에서나 자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 중략 - 그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무우국을 끓이려고 사다놓은 무우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이었어"


외딴방에서 주인공은 정치적인 문제보다 개인적인 소소한 문제가 더 중요한 여성적 입장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은희경 작가의 [마이러니티]에서도 이와 비슷한 부분을 인용한다.


"써머타임이 실시되고 있었으므로 퇴근 시간인데도 거리는 대낮처럼 환했다. 시위군중들도 가득 메워져 있는 거리였다. 월급쟁이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안 그래도 심사가 좋지 않은 두환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저건 또 뭐 하는 부대냐, 하며 혀꼬부라진 소리로 중얼거리자 내가 넥타이부대라고 알려 주었다. 우리 네 사람도 옷차림에서만은 넥타이 부대의 정규군 차림이었다. 우리는 시위대 썪여서 걸었다. 적당한 술집을 찾아 퇴계로나 명동 쪽으로 가고 있었으므로 시위대와 행로가 비슷했다. 조국과 도환은 취했다. 어깨동무를 한 그들은 시위대가 구호를 외칠때마다 자기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뒷부분은 따라하고 복창했다."


저자는 작가가 역사적인 날을 친구의 아내의 장례식날로 설정함으로서 의미없는 날로 격상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저자는 공선옥 자가에 대해서는 대단히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녀가 여성성을 강조하면서도 1980년대의 문제의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지영작가에게는 반쪽정도의 점수밖에 주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그녀가 80년대의 문제의식을 이어오면서도 당시 문학의 문제적인 낭만주의가 뭍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신경숙 작가의 작품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어떻게 표절했는지를 자세히 언급한다.

이 책에 인용한 두 책의 글들은 요즘 한참 언론에서 등장하고 있는 글이었다.

저자는 신경숙 작가의 [전설]이 단순히 [우국]의 한 문장을 표절한 것이 아니라 모티부까지 모두 유사하다고 말한다.


"[전설]은 명백히 일본의 극우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표절작이다. 일제 파시즘기 때 동료들의 친위 구테타 모의에 빠진 한 장교가 대의를 위해 자결한다는 [우국]의 내용과 한국전쟁 때 한 사내가 전쟁터에 자원입대하여 실종되는 [전설]은, 남편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릴 때 남은 아내의 선택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점에서 주요 모티브부터 유사하다. [우국]의 아내는 남편 따라 죽는 데 일호의 주저도 없으며, [전설]의 여자는 남편의 실종 통보를 받고도 평생을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보낸다. 또 10여 개의 비슷하거나 거의 동일한 문구는 물론이고 남편의 죽음이나 참전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아내의 태도, 역순적 사건 구성, 서도에 역사적 배경을 언급한 전개 방식 등의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나 영향 관계로 해석될 여지를 봉쇄해 버린다.(P30)"


또 작가는 이런 표절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당시의 문단의 분위기가 당대의 작가들을 표절 유혹에 빠지게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나름 90년대 문학을 많이 읽고 잘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 이 책에서 인용되는 책들 중 읽은 책이 몇 권 안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녀들의 작품에 다시금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신경숙 작가의 작품들은 거이 읽어보지를 않았다.

유난히 반골?성격이 강해서인지 다른 사람들이 좋거나 재미있게 보았다는 소설이나 영화는 왠지 정이 가지 않는다.

좋아하던 작가의 작품도 그 작가가 인기를 얻고 대중화가 되어 너도 나도 좋다고 하면 읽기가 싫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90년대 여성 작가 중에서 가장 앞서 나갔던 신경숙 작가의 작품은 거이 접하지를 못했었다.

이제 그녀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독자들이 그녀에게서 멀어졌으니 다시 그녀의 작품을 읽으려 한다.

(이건 내 자신도 이해 못하는 심리이다.ㅠㅠ)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기 전에 하퍼 리의 [앵무새죽이기]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왜 우리에게는 약자를 이렇게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책들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 약자를 억압하는 대상 역시 증오가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놀랐다.

자신의 주장을 반대하고, 자신을 해하려 했던 마을 사람들을 미워하는 자녀들에게 그들 역시 우리와 함께 사는 마을 사람임을 따스한 마음으로 가르치고 있는 아버지의 시각에 눈물이 났다.


나는 90년대 문학의 사회적인 문제보다 개인적인 감정문제에 치우쳤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런 문제제기를 한 작가의 날카로운 시각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그 시각이 또한 너무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는 않았는지 생각이 든다.

개인의 감정의 문제에 치우쳤던 90년대 여성작가들 역시 우리의 이웃이었고...

그들의 감정문제에 동감했던 90년대의 중산층 여성들 역시 우리의 이웃이었다.

90년대의 문학이 한 부분으로 치우쳤지만, 그 치우쳤던 부분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일부분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감정에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이 그런 소설로 위로와 힘을 얻었었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삶과 마음에 동감하던 사람도 있었다.

물론 나도 그 중에 하나이다.


문학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가지고 다시금 1990년대 한국 문학과 주변 환경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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