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 이해인 기도시집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우리가 늘 기도의 명수, 사랑의 명수이길 바란다. 아무에게나 함부로 털어 놓기 힘든 어둡고 아프고 슬픈 이야기도 우리에겐 마음 놓고 쏟아놓으며 거듭거듭 기도를 부탁할 때가 많다. 많은 경우에 수녀는 늘 심부름 잘하는 세상의 천사이길 바라는 것 같다.”

 

시인이 이 책의 서문에서 고백하는 이야기이다. 수녀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흔히 ‘수녀’하면 떠오르는 고결하고 성스러운 이미지가 짐스럽고 무거울 때도 있겠지만, 그들이 바치는 신에 대한 사랑만큼 인간에 대한 사랑도 넘쳐나길 바라는 것이 바로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이다.

 

이 시집은 수도자로 자신을 봉사와 헌신 속에 던진 시인이 세상에서 느끼는 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아름다운 시어들로 표현하였다. 이 시집에는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내적 고민과 번뇌,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수도자적 태도 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단상들도 아름다운 시어 속에 담겨 드러난다.

 

 

풀잎처럼 내 안에 흔들리는

조그만 생각들을 쓰다듬으며

욕심과 마음을 모르는

작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행복한 나라를 꿈꾸어본다

 

작은 것을 아끼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보이지 않게 심어주신

나의 하나님을 생각한다

내게 처음으로 작은 미소를 건네며

작은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가장 겸허한 친구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 「작은 노래」중에서 -

 

 

이처럼 자신을 낮추어 ‘풀잎처럼 자신 안에서 흔들리는 조그만 생각들’을 쓰다듬는 것은 단지 수녀에게만 부여되는 짐이 아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바로 겸손이고, 욕심과 미움을 버리는 것이다. 이 시집이 가톨릭 신자만을 위한 기도 시집이 아닌 대중적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삶의 자세 때문이다.

 

 

내일은

나에게 없다고 생각하며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모든 것을 정리해야지.

 

사람들에겐

해지기 전에

한 톨 마음도

남겨두지 말아야지.

 

찾아오는 이들에겐

항상 처음인 듯

지극한 사랑으로 대해야지.

 

잠은 줄이고

기도 시간을 늘려야지.

 

늘 결심만 하다

끝나는 게,

벌써 몇 년째인지.

 

하루가 가고

한숨 쉬는 어리석음.

 

- 「후회」-

 

 

그녀가 하는 삶의 고민들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와 같이 결심은 많이 하고 이루지 못하여 후회하는 마음, 행복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찾아 헤매면서 정작 가까이에 있는 행복은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어리석음.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후회와 미련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녀의 고민 속에는 그 고민과 성찰을 통한 발전이 담겨 있다. 그녀는 자신의 내적 고뇌를 사랑의 정신으로 승화시켜 표현할 줄 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의 정신적 성숙과 순수성을 느끼게 하고 그녀를 닮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너무 작게 숨어 있다고

불완전한 것은 아니야

내게도 고운 이름이 있음을

사람들은 모르지만

서운하지 않아

 

기다리는 법을

노래하는 법을

바람에게 배웠기에

기쁘게 살 뿐이야

 

푸름에 물든 삶이기에

잊혀지는 것은 두렵지 않아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 「풀꽃의 노래」중에서 -

 

 

자그마한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삶의 기쁨을 찾는 소박한 삶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인이 우리들에게 전하고 싶은 삶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풀꽃처럼, 조개처럼, 바람처럼, 노래처럼 작은 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을 얼마나 많이 잊고 바쁘게만 달려 왔는지...

 

이 시집을 읽다 보면 이러한 반성의 마음과 함께 자신을 최대한 낮추었을 때에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름다운 시 한 편과 함께 자연 앞에서 겸손할 수 있는 소박한 마음 한 자락을 얻는다면, 도시의 복잡하고 답답한 일상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금단의 땅, 죽음의 땅, 유령마을. 어느덧 3년째가 된 일본 원전 사고 지역을 표현한 말이다. 도저히 불과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어져 버린 곳,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부에서 일어난 지진은 예상치 못한 비극을 불러왔다. 지진에 이은 쓰나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방사능이 대량 유출된 것이다.

 

아비규환이던 당시에 대한 기억도 어느새 제3자들은 잊어가고 있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잊혀져가는 기억 속에서 3자인 우리는 스스로를 자위한다. '자연이 입힌 상처는 치유되기 마련이다'라면서.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과 상처도 있다. 바로 인간의 오만이 남긴 상처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함을 자랑하던 일본 원자력 발전의 몰락과 함께 이 지역을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만들었다. 앞으로 몇십 년이 걸릴 지 모르는 자연의 재생을 그저 바라만 보게 만들었다. 이미 후쿠시마 원전 반경 20㎞는 인간이 정한 '죽음의 땅'이 돼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점차 흐릿해져 가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남의 나라 일, 남의 지역 일이라며 우리들 대부분은 스스로를 달랜다. 아프지 않게 달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죽음'이 속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년이란 시간 동안 간간이 들려 온 백혈병 환자 발생 소식도 더 이상 충격적이지는 않다. 인간이 살아 있음에 우리는 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망각의 귀퉁이에 버려진 동물들에게 현세의 지옥과도 같은 그 곳은 현재진행형이다. 얼마 있으면 풀리겠지 싶던 긴급 대피령에 남겨 두고 온 반려동물과 가축들은 하릴없이 주인을 기다리며 죽음과 대면해 왔다. 그들의 소외, 굶주림은 오만한 인간이 만든 자화상이다.

 

쓰나미가 뭔지, 방사능 수치가 뭔지도 모르는 동물들은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 채 죽어가야 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20km 내에 거주하는 시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려 사람들은 마을을 모두 떠났다. 동물을 돌볼 이가 없다는 의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지진과 쓰나미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동물들이 굶어죽거나 먹이를 찾아 떠돌며 야생화되었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죽거나 떠도는 동물들. 죄 없는 생명들의 이 비참함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떠도는 동물 중에 살아남은 수가 몇이나 될까? 아마도 죽음의 땅에서 오지도 않는 가족을 기다리다가 굶어 죽었을 것이다.

 

 

 

 

 

쓰나미에 온 가족이 쓸려나간 가운데 개 한마리가 살아남았다.

카메라에 잡혔다.

조용한 바다를 배경으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무엇인가 말하고 싶다고, 그 눈은 말한다.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좌로 다시 우로 돌린다.

 

누구일까, 개로 하여금 하고 싶은 말을 못하게 하는 그는.

또 사람한테 개의 말을 들을 능력을 갖지 못하게 한 그는.

 

- 신경림 「누구일까」-

 

 

죽음의 땅을 목격한 시인은 말한다. 이런 끔찍한 지옥을 만들어낸 그들은 누구일까. 시인의 질문 속에는 참혹하게 죽어가는 작은 생명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배어 있다. 눈에 눈물이 고인 채 고개를 돌리기만 하는 개의 모습은 스페인 화가 고야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프란시스코 고야 「개」 1820~1823년 

 

고야가 그린 ‘검은 그림’ 연작의 한 작품인 「개」는 천진한 무방비함의 초상이다. 화가는 광대한 배경에 몹시 조그만 개 한 마리를 떨어뜨려놓았다. 창백한 황색 허공과 암갈색 바닥은, 형체와 스케일을 헤아릴 수 없어 더욱 위압적이다. 개의 네 다리를 집어삼킨 어둠은 쓰나미에 불어난 진흙 같기도 하다. 사방을 둘러봐도 개를 구해줄 지푸라기 하나 없다. 순종의 표시로 귀를 뒤로 젖힌 개가 주시하는 오른쪽 허공에는 어렴풋한 음영이 보인다. 개가 그토록 기다리던 주인일까. 아니면 가엾은 생명에 차가운 손길을 내밀려는 죽음의 신일까. 희미한 음영의 정체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다. 개의 눈빛을 보라. 원망도 호소도 없다. 그저 영문을 모른 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채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죽을 때까지 죽음을 들여다보며 붓질했던 고야는 쓰나미처럼 덮쳐오는 거대한 멸망의 공포 앞에서 텅 빈 눈동자를 힐끔거리는 개의 대가리를 그렸다. 200여 년 전 그린 그 개의 모습은 인간이 만든 재앙이 덮친 후쿠시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고야는 개의 가엾은 눈망울을 그린 것이 아니다. 죽음의 땅을 만들게 한 장본인, 바로 오만한 인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개의 눈망울을 그린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관집 이층 창비시선 370
신경림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네 서점에 시집을 사러 갔더니 매대에 신경림 시인의 신작 시집이 없었다. 지방도시라서 아직 시집이 오지 않았나 해서 서점 주인장에게 여쭈어봤다. 보내온 시집이 다 팔려 재고가 없다고 한다. 질박한 서정과 꾸밈없는 언어로 시대의 상처와 아픔을 다독이는 시를 써온 그를 지역의 독자들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다른 서점으로 가서 시집을 샀다.

 

올해 여든, 내년이면 환갑을 맞는 원로 시인의 문장은 여전히 따뜻했다. 언 손을 녹일 수 있는 것이 작은 핫팩이라면, 시인의 시집은 겨울바람 같은 냉소에 얼얼해진 심장을 녹이는 따뜻한 문장들로 채운 핫팩이다. 하룻저녁 내내 아껴가며 읽은 시집에는 사실 새로울 것도, 유별난 것도 없었다. 현란한 비유도 없고, 어려운 축약도 없다.

 

 

아무래도 나는 늘 음지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개선하는 씨름꾼을 따라가며 환호하는 대신

패배한 장사 편에 서서 주먹을 부르쥐었고

몇십만이 모이는 유세장을 마다하고

코흘리개만 모아놓은 초라한 후보 앞에서 갈채했다

그래서 나는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나를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나는 그러면서 행복했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러려니 여겼다

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

큰 손이 있다고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

 

-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32쪽) -

 

 

이 시는 시인이 1993년 펴낸 시집 『쓰러진 자의 꿈』에 실으려다 마음에 차지 않아 빼 놓았다가 다시 써 낸 것이다. 그래도 시인은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는 시인 신경림이 아직 살아 있음을 독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보여 준다. 그의 삶은 중국 시성(詩聖) 두보를 닮았다. 인간의 고통를 늘 가슴에 품어 연민의 시어로 위로하고, 평탄치 않은 삶의 불우에 매몰되지 않아 '우리시대의 두보'라 불린다.

 

 

나는 깨지 않으리 이 꿈에서,

비록 이 꿈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일지라도.

 

- 「몽유도원」 마지막 부분 (39쪽) -

 

 

시인은 이미 인생의 먼 길을 와서 ‘사불휴(死不休, 시로 독자들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죽어서도 쉬지 않겠다는 두보의 말)’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름다운 시는 오만과 독선을 버린 시”라는 팔순 시인의 시집을 읽어 보면 오히려 그의 눈이 맑아지고 귀는 순해졌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이웃 가게들이 다 불을 끄고 문을 닫고 난 뒤까지도 그애는 책을 읽거나 수를 놓으면서 점방에 앉아 있었다. 내가 멀리서 바라보며 서 있는 학교 마당가에는 하얀 찔레꽃이 피어 있었다. 찔레꽃 향기는 그애한테서 바람을 타고 길을 건넜다.

 

꽃이 지고 찔레가 여물고 빨간 열매가 맺히기 전에 전쟁이 나고 그애네 가게는 문이 닫혔다. 그애가 간 곳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오랫동안 그애를 찾아 헤매었나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애가 보이기 시작했다. 강나루 분교에서. 아이들 앞에서 날렵하게 몸을 날리는 그애가 보였다. 산골읍 우체국에서, 두꺼운 봉투에 우표를 붙이는 그애가 보였다. 활석 광산 뙤약볕 아래서, 힘겹게 돌을 깨는 그애가 보였다. 서울의 뒷골목에서, 항구의 술집에서, 읍내의 건어물점에서, 그애를 거듭 보면서 세월은 가고, 나는 늙었다. 엄마가 되어 있는, 할머니가 되어 있는, 아직도 나를 잊지 않고 있는 그애를 보면서 세월은 가고, 나는 늙었다.

 

하얀 찔레꽃은 피고,

또 지고.

 

- 「찔레꽃은 피고」 (22~23쪽) -

 

 

한국인의 정서에 각인된 찔레꽃의 이미지는 순박, 소박, 고향, 슬픔이다. 때로는 그 옛날 어린 시절 가난한 고향의 산야에서 만났던 순한 첫사랑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찔레꽃을 소재로 만들어진 노래도 많다. 향기가 진해서 오히려 서러운 찔레꽃! 그래서 장사익은 목이 터지도록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라고 노래를 불렀던 것일까?

 

 

 

 

장사익의 찔레꽃은 노래를 듣고 있는 당신이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야말로 순박한 찔레꽃이라고 자꾸 최면을 걸어쌓니 거기에 안 넘어가고 배기겠는가. 신경림의 찔레꽃은 순박했던 첫사랑을 가슴 속에 품은 당신이다.

 

찔레꽃을 담은 장사익은 찔레꽃 가시로 우리들의 가슴을 찔렀다면, 시인은 찔레꽃 향기로 세월의 모진 풍상에 찌든 우리들의 가슴을 살짝 건드린다. 몇 달 뒤에 피게 될, 세월에 잊고 있었던 그 아름다운 찔레꽃 향기의 감각을 살린다.  

 

찔레꽃이 슬픔의 이미지로 한국인들에게 각인된 것은 전쟁이 갈라놓은 생이별, 그리고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저 홀로 고고하게 하얗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찔레꽃. 세월의 바람에 첫사랑의 기억과 함께 점점 희미해져만 가는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프다. 한국인의 감성 유전자에 그렇게 새겨놓은 것일 게다.

 

 

그의 가난과 추위가 어디 그만의 것이랴.

그는 좁은 어깨와 야윈 가슴으로 나의 고통까지 떠안고

역 대합실에 신문지를 덮고 누워 있다.

아무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간혹 스치는 것은 모멸과 미혹의 눈길뿐

마침내 그는 대합실에서도 쫓겨나 거리를 방황하게 한다.

 

찬 바람이 불고 눈밭이 치는 날 그의 영혼은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걸어올라가 못 박히는 대신

그의 육신은 멀리 내쫓겨 광야에서 눈사람이 되겠지만.

 

그 언 상처에 손을 넣어보지도 않고도

사람들은 그가 부활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을 것이다.

다시 대합실에 신문지를 덮고 그들을 대신해서 누워 있으리라는 걸.

 

그들의 아픔, 그들의 슬픔을 모두 끌어안고서.

 

- 「나의 예수」 (85쪽) -

 

 

석가모니도, 예수도 길에서 태어나고 길에서 생을 마감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보여 주었던 그 삶은 역시 그들이 가려는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이다. 시인은 서울에 예수가 있다고 믿는다. 한 달 전에 이성의 지식인이라는 사람은 집 없는 사람들을 '좀비'라고 돌직구 같은 말을 했다면, 감성의 지식인은 이 세상의 고통을 떠안고 아파하는 '예수'라고 표현했다.

 

비탄과 절망의 현실을 뻔히 눈뜨고 보면서도 도리어 선을 긋고 침묵하고 고개 돌리고 저 멀리 비켜간다면, 자기 말과 행위의 진정성과 인간애를 진실하게 살피며 새롭게 살기를 도모하지 않는다면, 과연 이 시대에 소통을 갈구하는 것은 잘한 일일까? 상처 입고 고통 받는 모든 존재들을 외면하는 것은 소통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음으로 통하는 소통이 아니라 냉소적인 외면일 뿐이다. ‘나의 예수’는 이 땅의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해 연민의 손길마저 내밀지 못하는 이 시대, 이 땅에서 ‘가난과 추위’와 동거하는 그들의 아픔, 슬픔을 끌어안을 수 있는지 독자들에게 자문하게 만든다.

 

시인은 언어를 잃어도 맨 몸뚱어리로 세상에 부딪히는 사람들이다. ‘늙은 시인’이라면 더 그렇다. 하지만 우리 나이로 팔순을 맞이한 시인의 나이를 감안하면 새로운 시집 출간을 향한 축복보다 “이번이 마지막 작품이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앞서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시인이 말미에 남긴 “얼마 남지 않은 내일에 대한 꿈도 꾸고 내가 사라지고 없을 세상에 대한 꿈도 꾼다”는 고백은 그래서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추억과 따뜻함 그리고 인간애를 동반한 애틋함이다.

 

짧은 인생 동안 정들었던 수많은 거리와 인연을 다 음미하고 또 가슴에다 남겨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말 소중한 것은 적어도 가슴 한 켠에 남아서 가끔 슬퍼지거나 외로워질 때 순간순간 떠오르게 된다. 흑백사진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남루하지는 않고, 조금은 코끝이 찡해지는 그런 순간들이다. 하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 시절이기에 시인은 시로 그 시절 그 사람들을 다시 불러내 살려낸다. 망각의 강 속에서 시인은 추억의 시어(詩語)를 건진다. 추억의 시어는 어느새 냉소로 트다 못해 갈라진 우리들의 마음에 바르는 ‘희망’이라는 연고가 된다. 이 ‘희망’의 연고가 세상과 세월의 풍파 앞에 ‘쓰러진 자들’의 아픔, 슬픔 모두 끌어안을 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인을 체포하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시인을 체포하라 - 14인 사건을 통해 보는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
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Scene #1  동요 속에 숨겨진 민중의 소망

 

‘맛동(薯童, 서동) 도령’. 어머니가 용의 정기를 받아 낳았고, 익산에서 자랐다. 생계를 위해 늘 마를 캐 팔러 다녔기에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때는 6세기말. 신라 26대 진평왕에게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셋째 딸 선화 공주가 있었다. 소문은 이웃나라 산골에 사는 서동의 귀에도 들렸다. 서동은 스님으로 변장해 서라벌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마를 공짜로 나눠주는 대신, 자신이 직접 만든 동요 하나를 부르게 한다. 일연의 『삼국유사』가 전하는 가장 오래된 4구체 향가인 ‘서동요’이다.

 

‘선화 공주님은 / 남몰래 정을 통해 두고 / 맛동 도련님을 / 밤에 몰래 안고 간다’

 

불과 25개의 한자로 이루어진 노래였지만 위력은 대단했다. 노래를 듣고 대노한 진평왕은 딸을 쫓아냈고, 서동은 큰 힘 안들이고 그녀를 아내로 맞았다. 이에 서동이 길목에 나와 그녀를 기다리다가 함께 백제로 돌아가서 ‘무왕’(武王)이 되고 선화는 왕비가 된다.

 

그러나 무왕이 생존했던 백제가 여전히 신라와 갈등 관계에 있었던 사실을 보면 한창 마를 캐던 서동이 지은 동요가 아닐 수 있다. 서동과 선화는 향가 내용대로 부부의 정을 통하는데 성공했지만, 신라와 백제는 서로 평화를 유지하는 정을 통하지 않은 것 같다. 선화 공주는 무왕에게 간청하여 미륵사지 석탑을 창건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국이자 적국인 신라에게 향하는 평화의 랜드마크가 될 수 없었다. 무왕이 신라 서쪽 국경을 여러 번 침공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일연은 이 서동 설화가 계략과 모함에 대한 비난이 아닌 국경을 뛰어넘은'역사적 로맨스'로 남길 바랐다. 이후 무왕이 신라에 얼마나 적대적이었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서동요’의 목적이 노래를 이용한 유언비어로 여자 차지하기였다면, 일연에게는 설화적 기록을 통한 국민화합이 목표였지 않았을까. 후삼국으로 다시 찢어진 나라를 하나로 통합한 고려의 최우선 국가 과제가 사회 통합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따라서 서동 이야기와 서동요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고대부터 전승된 설화에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뒤섞이며 만들어질 수 있다. 백제와 신라가 서로 우호적인 관계로 지내기를 원하는 그 당시 민중의 소망 또한 서려 있는 것이다.

 

 

 

 Scene #2   “아! 저기 그가 있어. 매춘부 사생아가!”

 

이제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보자. 여기 서동요처럼 짧은 시와 노래의 위력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이 있다.

 

1749년 프랑스, 루이 15세를 비방하는 시를 퍼뜨린 혐의로 한 의대생이 체포된다. 시의 내용이 자세히 전해지지는 않지만, 해군과 왕실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모르파 백작을 해임하고 유배시킨 루이 15세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매춘부 사생아가 / 궁정에서 출세하네. / 사랑에서나 술에서나 / 루이는 손쉬운 영광을 바라네. / 아! 저기 그가 있어, 아! 여기 그가 있네. / 근심걱정 하나 없는 그 사람. // 보기만큼 어리석은 것이 틀림없어 / 백성들은 염려하네. / 그의 얼굴에 드리운 운명을. / 아! 저기 그가 있네, 등등. (‘매춘부 사생아’ 중에서, 177~178쪽)

 

의대생의 자백 후 시를 암송하고 퍼뜨린데 일조했다고 여겨지는 14인이 줄줄이 체포됐다. 이른바 '14인 사건'이다. 왕을 조롱하는 시가 당시로선 왕권모독이나 역모에 해당됐을 터였다. 하지만 체포된 사람들은 혁명이나 권력투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음에도 경찰은 14인을 체포하는 데 많은 시간과 힘을 쏟아 부었다.

 

백성들 사이에 이런 노래가 떠돈 사실을 안 루이 15세가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프랑스인들은 이런 노래와 시를 주고받으면서 권력을 풍자하고 비판했다. 노래 속에는 왕과 퐁파두르 부인의 은밀한 관계, 모르파 백작의 몰락 등 공적인 사건들에 관한 뉴스가 가득했다. 불륜과 근친상간, 평민 출신 애첩 퐁파두르 부인에게 보석과 성채를 퍼주느라 왕국이 거덜났다는 주제의 노래와 시가 왕에게 전달됐다. 그 가운데 일부는 국왕 시해를 주장할 정도로 과격했다.

 

왕은 파리 시민이 주고받는 말과 노래에 몹시 민감했다. 파리 시민이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래도 프랑스 국민은 베르사유의 가장 내밀한 안식처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었다.

 

 

 

 Scene #3  루이 15세의 ‘불통 태도’가 주는 교훈 

 

 

 

 

프랑수아 부셰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 1756년

 

 

서동요는 참요(讖謠)다. 참요란 미래의 어떤 징후를 암시하는 노래를 말한다. 참요는 여론의 일종으로서 역할로 변환된다. 서동요나 루이 15세를 비방하는 시처럼 어떤 사람이 특별한 목적을 갖고 퍼뜨리기도 한다. 신라의 진평왕은 대궐에까지 퍼진 서동의 노래에 노하여 선화 공주를 내쫓을 수 있었지만, 루이 15세는 속으로 분노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미모와 재치를 겸비한 애첩이며 이미 왕정의 인사에 손 뻗칠 정도로 권세를 누리고 있는 퐁파두르 부인을 단번에 내쫓을 수 있었을까.

 

 루이 15세에게는 자신을 향한 조롱의 시와 노래가 유언비어라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그 속에는 강력한 군주를 원하는 국민들의 소망이 담겨져 있다. 어쩌면 무능한 왕이 폐위되기를 염원했을지도 모른다. 이토록 간절한 바람이 언제 실현될지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자신들의 목소리가 왕의 귀에 전해질 거라 믿었다. 그들의 마음이 ‘매춘부 사생아’ 마지막 연에서 엿볼 수 있다.

 

거만한 검열관이 이 노래를 / 제멋대로 비판하고 반박할지도 모르지 / 그 비판의 화살이 실수를 들춰내고 / 왕좌까지 꿰뚫을지도 모르지. (‘매춘부 사생아’ 중에서, 180~181쪽)

 

결국 노래는 무능한 매춘부 사생아가 앉아 있는 왕좌를 꿰뚫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비판의 화살이 평범한 14인의 파리 시민들에게 엉뚱하게 향했다. 말 그대도 제멋대로 죄없는 시민을 체포하는데 그친 궁색한 반박이었다. 결과적으로 14인이 퍼뜨린 노래는 서동요처럼 미래의 일을 예언하고 실현된 셈이다.

 

만약에 루이 15세가 자신과 함께 모욕의 대상이 된, 아니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지탄받게 만든 주범인 퐁파두르 부인을 궁궐에서 쫓아냈다면 혼란스러운 국정이 회복되었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1764년에 죽을 때까지 퐁파두르 부인은 프랑스 정치를 좌우할 정도로 권력을 누렸다. 게다가 루이 15세는 퐁파두르 부인 이외에 또 다른 애첩을 맞을 정도로 왕권은 크게 실추되었다. 실제로 왕이 사망했을 때 아무도 그를 애도하고 존경하지 않았다니, 그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경찰은 수사력을 총동원해 나라 안을 헤집었지만 시의 원작자는 잡지 못했다. 애초에 단 한명의 시인을 쫓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을 것이다. 최초에는 한사람의 생각과 입을 통해 나온 시었을 지라도 결국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덧붙여지고 변형된 집단창작물의 성격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게 여론이다. 권력자에게 여론이란 흐름을 파악해 대중의 생각을 읽어야 하는 것이지, 배후를 찾아 헤매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현대인의 눈은 스마트 기기에 향한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SNS에 들어가 소식을 주고받으며, 소셜 커머스에서 필요한 물건을 산다. 하지만 몇 분도 안 되는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정보가 현대 사회만의 전유물일까.

 

스마트기기를 통해 언제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현대사회와는 달리 정보를 쪽지에 필사해 전하거나 암기해 전하기 때문에 정보의 확산 속도는 너무나도 느렸다. 그래도 18세기 중엽에도 국민들이 서로 의사소통하고 공통된 정보를 공유하는 정보사회라 부를 만한 구조는 갖추고 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권력자를 괴롭히던 프랑스의 시와 노래는 오늘날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 이렇게 되풀이되고 있다. SNS 이전에 18세기 프랑스에 유행한 시와 노래는 오늘날의 SNS처럼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내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시민과 나란히 사회 변화의 주역이 되기도 한다.

 

작년 말에 대통령은 “SNS등을 통해 퍼져나가는 잘못된 유언비어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팩트를 왜곡하는 유언비어가 떠도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진실을 외면하고, 갈등의 불에 기름을 붓는 유언비어나 비방적인 말은 올바른 비판 여론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의 생각과 다른 모든 견해를 유언비어로 보고 이를 척결한다면 임기 초기 전에 많이 지적받았던 대통령 특유의 ‘불통 철학’이 반복될 수 있다. 정부 정책과 다른 비판 여론이 있다면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홍보에 힘을 쏟으라는 지시를 내놓는 게 대통령의 역할이다. ‘14인 사건’에 대처하는 루이 15세의 ‘불통 태도’가 여론의 힘을 무시하는 권력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자신을 희화화하고, 풍자하는 여론에 대통령 각하께서는 당황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은빛 2014-02-05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폐하께옵서는 웬만한 일에는 당황하지 않을 듯 보여요.
자신이 연루된 일 임에도 마치 남의 일처럼 이리 무관심하시니 말예요.

cyrus 2014-02-05 23:08   좋아요 0 | URL
무관심한 척하면서 내심 겁먹을 겁니다. 국민들의 자잘하고도 진실한 여론마저 외면하고 귀를 닫는다면, 임기 말 아니면 임기 끝나고 나서도 엄청 괴로워질거에요.
 

 

 

 

 

 

피터르 브뤼헐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1558년경

 

 

 

그는 하늘을 나는 마법에 도취돼 더 높이 올라갔다.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에 가까이 가는 바람에 날개가 녹아 바다에 빠져 죽었다.

 

검푸른 물빛이 내게로 달려들었다. 순간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에 빠져 발버둥치는 이카루스를 보았다. 나, 아니 세상사람 모두가 광활한 삶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또 하나의 이카루스였다.

 

 

피터르 브뤼헐의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졌다. 푸른 바다엔 배도 떠있고 섬도 있다. 언덕에선 목동이 양을 치고, 비탈 밭에선 농부와 소가 밭을 갈고, 또 한사람은 바다에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 전경은 너무나 평화스럽다. 화폭 사분의 일이 하늘이고 나머지가 바다다.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러나 한 생명이 광활한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갈색의 막대기처럼 보이는 두 다리만 보일 뿐이다. 한 인간의 예기치 못했던 재난 앞에서 세상은 꿈쩍도 않는다. 그림에는 어부, 농부, 양치기 세 사람이 등장한다. 그도 아니면 물에 '풍덩' 하고 빠지는 소리를 그들 중 하나는 분명 들었을지 모른다. 물에 빠져 살려 달라는 이카루스의 절규를. 그러나 모두들 자기들 일에만 몰두 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이카루스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나고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했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러나 세계적인 경영 구루 세스 고딘은 이카루스 신화의 교훈을 반박한다. 날개를 만든 발명가이자 이카루스의 아버지인 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너무 높게 날지 말라는 말만 한 것이 아니었다. 너무 수면 가까이 날아 날개가 물에 젖지 않도록 주의를 줬다.

 

이 이야기를 교훈 삼아 적은 것에 만족하고 겸손한 태도로 사는 사람이 '안전하다'라는 착각에 빠져 현실에 안주하는 것에 대한 경종을 울린다. 그는 새로운 틀을 구축하고 정해진 규칙 없이 시도하는 것을 '아트'(Art)라 말한다.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용기와 통찰력, 결단력을 갖춘 사람을 ‘아티스트’라 일컫는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날 때부터 아티스트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상은 위험한 곳이라는 과장된 정보와 줄밖으로 벗어나면 먹고살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일상적인 불안을 안고 산다. 이 같은 채찍과 더불어 보상이라는 당근을 사용하는 산업사회 시스템에 완전히 길들여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자존감 따위는 생각지도 말아야 한다. 꿈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 둬선 안 된다. 줄을 맞춰 지시대로 움직여야 한다.

 

자유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려는 의지를 말한다. (36쪽)

 

이제 세상의 시선에 눈치 보지 않으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 아티스트의 시대가 시작했다. 아티스트는 어떤 선입견 없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남을 따라하지 않는다. 백지상태에서 최초로 시도하려는 자유의지가 강하다.

 

지도 없이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무모하고 두려운 일이다. 세상은 개인의 도전과 실패, 그리고 그 고통과 아픔에 귀기울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위험이야말로 진짜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이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카루스는 어리석지 않다. 태양에 가까이 가고 싶은 욕망! 이카루스의 도전은 아티스트 본연의 모습이다. 정해진 일만 하면서 안락한 생활을 추구하는 낚시꾼, 농부, 양치기는 아티스트가 될 수 없다.

 

태양을 향한 이카루스의 날개는 아름다웠다. 도전과 추락은 전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날아 갈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림 왼쪽 덤불에 있는 시체는 ‘사람이 죽어도 경작은 계속된다’라는 플랑드르의 옛 속담을 상징한다. 죽을 때까지 현실에 안주하면서 삶의 경작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하늘을 나는 이카루스가 될 것인가.

 

 

 

 

※ 책에 관한 쓴소리 : 감정노동이 아트를 위한 최선의 능력이 될 수 있을까?

 

최근 페이스북에서 이 책에 대한 간략한 평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의 주장을 계속 반복하고 사례만 열거하는 세스 고딘의 글쓰기 때문에 책을 구입한 돈이 아깝다는 혹평도 있었고, 번역의 문제를 제기한 내용이 있었다. 인용된 문제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 자신이 하나의 신화적 존재인 조지프 캠벨은 이렇게 못을 박았다. (중략) 신화는 우리 인간이 신 또는 전설적인 존재의 옷을 걸치고 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이야기다... 우리가 좋아하는 인물 또는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104~105쪽)

 

처음에 읽었을 때 별다른 느낌은 없었는데 인용된 문장만 봐도 잘못된 문장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어법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한 번에 읽고,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문제 제기하고 싶은 번역의 수준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저자답지 않은 억지스러운 내용의 글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내가 인용한 문장을 읽어보라.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과 감사하는 마음을 얻고, 그들의 영혼 깊숙이 파고들려면 감정노동을 통해 다가서야 한다. 기존의 경제는 확장 불가능한 육체노동의 성실함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여기서 ‘육체노동’이라는 말은 인간의 근육이나 두뇌를 써서 하는 반복적인 작업을 가리킨다. (중략) 아트는 감정노동을 통해, 즉 위험과 기쁨, 두려움, 사랑을 통해 이룰 수 있다. 감정노동은 ‘좀 더 많은 노력으로 때로는 엄청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장 가능하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는 육체노동이 아니라 감정노동으로 형성된다. (75쪽)

 

 

‘감정노동(Emotion work , Emotional labor)’. 책의 원문을 이 ‘감정노동’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궁금하다. 세스 고딘은 ‘감정노동’을 아트를 위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새롭고도 긍정적인 노동의 한 형태로 봤다. 미국에서는 감정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잘 되어 있을지 몰라도, 우리나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상황도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의 감정노동은 실제 자신의 감정을 숨기면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감정노동으로 생긴 감정적 부조화는 감정노동을 행하는 조직 구성원을 힘들게 만든다. 감정노동으로 생긴 문제가 적절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경우엔 심한 스트레스(좌절이나 분노, 적대감)가 나타난다. 육체노동을 하면 할수록 건강에 좋지 않다. 감정노동 또한 거의 육체노동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정신적 상태에 악영향을 주는 문제점이 부각되고 있다. 과연 ‘감정노동’이 신뢰와 사랑을 형성할 수 있는 잠재적인 가치의 능력으로 볼 수 있을까?

 

‘감정노동’이라는 용어는 최근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세상에 나온지 지금으로부터 무려 21년이나 되었다. 미국 출신의 사회학자 앨레 러셀 혹실드가 1983년에 처음으로 『managed heart: commercialization of human feeling』이라는 책에서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감정노동’으로 번역됐다.

 

사실 세스 고딘이 말하는 ‘감정노동’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이에 대한 부연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사례 또한 언급되지 않았다. 세스 고딘은 ‘감정노동’의 원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걸까? 이렇듯, 아무리 영향력 있는 저자라고 해서 그의 주장에 무조건 동의할 수 없는, 의문이 들 때가 간혹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