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읽어주는 여자 -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 찾는 법
민지혜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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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왜 레드카펫에서는 늘 패션테러리스트가 탄생할까

 

매 시즌이 바뀔 때마다 잡지, 인터넷 곳곳에서 ‘이번 시즌 유행아이템’에 대한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이중 어떤 것이 진짜 유행할 지 또 어떻게 스타일링해야 할지 간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우리들이 늘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연예인 스타일이다. 연예인이 입으면 순식간에 유행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옷을 입든 전문 스타일리스트들이 연출해주기 때문에 확실히 눈여겨볼만한 패션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연예인 패션을 쉽게 엿볼 수 있는 곳은 스타들의 결혼식이다. 하객패션이라고 해서 평범하게 입기보다는 포인트를 줘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리고 영화제나 시상제의 레드카펫 위에서도 연예인들은 패션에 신경을 쓴다. 남자 연예인은 말끔하게 차려진 수트룩, 여자 연예인은 몸매를 부각시켜주는 화려하면서도 섹시한 드레스룩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은 선보인다.

 

그러나 연예인들에게는 이러한 공식석상이 부담스럽다. 평소 패셔니스타로 유명한 스타들도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패션으로 이른바 ‘굴욕사진’을 남겨 대중들에게 회자되기 때문이다. 어떤 배우는 멋진 모습으로 시선을 모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패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레드카펫 위의 패션에 대해 인터넷에서는 ‘코디가 안티’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가설이 퍼지기도 한다. 연예인의 옷을 담당하는 스타일리스트가 악의를 품지 않고서야 누가 봐도 이상한 옷을 입히지는 않았을 거라는 상식에서 나온 주장이다.

 

물론 각자의 개성을 ‘패션테러리스트’ 같은 단어를 쓰며 야유를 보낼 필요는 없다. 큰 영화제의 레드카펫에서 시선을 모으고 싶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왜 유독 레드카펫에서는 자기 자신 외에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패션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을까. 큰 무대와 환호성에 익숙한 스타들도 이런 모습을 종종 선보이는 것을 떠올려보면. 레드카펫의 중압감은 생각 이상으로 큰 것일지도 모르겠다.

 

 

 

 Scene #2  명품만 치장한다고 해서 무조건 패셔니스타? 

 

연예인 패션 못지않게 대중이 제일 관심을 가지는 것이 바로 명품이다. 이제는 옷만 잘 입어서 패셔니스타라는 명함을 당당히 내밀 수 없는 세상이다. 몸에 걸치는 시계, 가방 심지어 안경까지도 스타일링 필수 아이템이다. 옷은 잘 입었는데 가방이나 안경 하나라도 ‘옥에 티’가 된다면 한순간 패션테러리스트가 된다. 그래서 연예인이 들고 있거나 몸에 걸치는 명품 아이템이 TV에 노출되는 순간, 다음 날 완판(완전판매의 줄임말, 매진)이 된다. 이뿐만 아니라 옷도 마찬가지다. 가격이 저렴한 것부터 일반인도 구경할 수 없는 값비싼 것까지 유명 연예인이 입었다면 ‘명품’이 된다.

 

국내 연예인이 가장 많이 구매하고 애용하는 고가 패션 브랜드라면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 등이 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품 사랑이 유별나서 진품과 유사한 ‘짝퉁’ 유통이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짝퉁’의 사전적 의미는 가짜나 모조품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일반적으로는 고급 브랜드의 명품을 본떠 만든 위조상품을 일컫는 말이다. 경제적으로 명품을 구입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짝퉁 상품을 구입해 ‘명품’처럼 들고 다닌다.

 

짝퉁은 신제품 개발에 대한 창의성 등 기업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를 깨뜨린다. 일부 상인은 단기간에 이익을 볼지 모르지만 이를 방치하면 국가신인도 추락, 국제통상마찰 등 대외 문제로까지 번지게 된다. 짝퉁 판매가 얼마나 심했으면 ‘짝퉁공화국’, ‘짝퉁코리아’라는 오명이 따라다닌다.

 

이렇듯 짝퉁을 사면서까지 우리는 패션에 목숨을 건다. 사람들의 시선을 고정하게끔 만드는 값비싼 명품으로 치장하면 TV에서 나오는 연예인처럼 패셔니스타가 되고 싶어 한다.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옷을 잘 입으면 자신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준다. 명품이 곧 스타일인 것이다.

 

그러나 수년 간 패션 산업의 이곳저곳을 종횡무진 가까이서 취재를 해온 저자는 ‘명품=패셔니스타’라는 공식을 반박한다. 그녀뿐만 아니라 이 책에 수록된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진짜 패셔니스타는 유행을 쫓아 명품으로만 치장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명확히 알고 그걸 자연스럽게 소화시킬 줄 안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럭셔리 브랜드 회사 소속 관계자는 자신의 회사 브랜드만 선호할까. 의외로 그렇지 않다. 회사에 대한 자부심으로 회사 브랜드만 선호한다거나 정말 명품만 선호하는 명품족도 있겠지만, 어떤 이는 동대문 시장에 가면 흔히 구할 수 있는 만 원 이하의 저렴한 옷과 장신구로 스타일링하기도 한다. 언뜻 보기에는 명품 같지만 알고 보면 우리도 구할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을 애용한다. 그들이야말로 저자와 디자이너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진짜 패셔니스타다. 럭셔리 옷이든 동대문 싸구려 옷이든 내 스타일에 맞게 연출할 줄 안다. 그렇다고 어색하지도 않으면서 톡톡 튀지 않는다. 신기하게 명품을 치장하지 않았는데도 창의적이고 멋진 패션 디자인이 된다.

 

 

 

 Scene #3  '패션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폴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 짧은 말 한 마디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축약하고 있다. 패셔니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자신감’이란 내가 뚜렷하게 선호하는 패션만 줄곧 고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찾기 위해서 여러 번 옷을 입고, 장신구를 착용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아무리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을 가진 인간이라도 단번에 그걸 찾기란 힘들다. 이리저리 입어  보고 사람들 앞에 선보여야 한다.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패션테러리스트’라고 비아냥거려도 크게 실망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동경하는 유명 패셔니스타들도 나름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였다.

 

 제 아무리 능력 좋은 타율 높은 4번 타자도 가끔 삼진이나 뜬공으로 물러난다. 패셔니스타들이 가끔 패션테러리스트 소리를 듣는 이유에도 이러한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나름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다가 가끔 시대에 맞지 않거나 혹은 시대에 앞서간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이들은 그러한 대중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지금도 어떤 패션을 연출할까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탁월한 패션테러리스트’가 되라고 조언한다. 이들은 형편에 맞게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과 장신구로 스타일링한다. 여기서 소개되는 가장 대표적인 ‘탁월한 패션테러리스트’는 놀랍게도 연예인 패셔니스타로 둘째가라도 서러운 빅뱅의 지드래곤에게 패션을 당당하게 지적질하는 정형돈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저 남들보다 튀고 웃기는 여자 방송인으로만 보이는 김나영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들을 ‘패션테러리스트’라고 지적해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항상 패션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감이 넘친다. 방송에서는 촌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자신을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개성을 부각시킨다. 남의 패션 스타일만 따라하는 우리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프라다’의 패션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의 말처럼 패션은 ‘자기표현이자 선택’이다. 연예인이 입었거나 선호한 명품을 추종한다면 절대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지 못한다. 나에게 어울리는 패션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패션에 관한 특별한 팁을 알기 위해서 이 책을 선택한다면 차라리 패션 전문 잡지를 읽을 것을 권한다. 멋진 패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한 비법은 소개하지 않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패션에 대한 인식의 고정관념을 바꿔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패션에 자신 없는 독자에게는 일말의 희망을 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에 무조건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짝퉁도 스타일링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명품을 선호하는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힘든데다 짝퉁에 대한 문제점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충격적이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좀 씁쓸했던 내용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여자들에게 잘 보이려는 남성들을 위한 팁이다.

 

명품을 선호하는 여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명품만 사는 것이 아니라 ‘특A급’ 짝퉁까지 사주는 남자 이야기다. 너무나도 고급스러운 명품을 입고 치장하다가 잘못하면 흠집이 날 수 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 명품과 정말 비슷한 ‘특A급’ 짝퉁을 대신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남자들이 소위 여자들이 말하는 센스 있고, 여자들에게 사랑 받을 줄 안다. 명품만 사주거나 혹은 값이 저렴하면서 그래도 품질 좋은 브랜드의 제품을 사주는 남자들의 입지가 곤란스러워지게 됐다. 요즘 남자들,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이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인데 여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패션뿐만 아니라 이성의 패션 취향도 신경 쓰는 것도 쉽지 않은데 좋아하는 이성이 멋진 패셔니스타가 되도록 ‘1+1’ 구매를 해야 되다니. 이 방법이 여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팁이 될 수 있어도 과연 패셔니스타가 되기 위한 팁을 알려주는 이 책에 소개될 필요가 있을까. 도리어 짝퉁을 패션의 일부로서 긍정적으로 보는 논리는 짝퉁 판매의 문제점을 간과할 우려가 있다. 아무튼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패셔니스타가 되는 길은 참 멀고도 험하다.  패셔니스타가 되기 위한 왕도(王道)는 없다. 패셔니스타가 되기 보다는 우선 패션테러리스트 소리를 안 듣는 것이 먼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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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들어주는 아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사계절 저학년문고 26
고정욱 지음, 백남원 그림 / 사계절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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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11년 전에 ‘느낌표 선정도서’라는 광고 문구를 본 것도 있지만 초등학생 시절 고정욱 작가의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을 읽은 이후로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나 동화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사람은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나 한편, 흔히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거나 낯선 것들에는 지독한 적대감을 드리운다. ‘다름’은 어느새 쉽게 ‘옳지 않음’으로 바뀌어 공동체 안에서 공존하지 못하고 배척당한다.

 

책 표지에 파스텔톤으로 그려진 그림을 통해서 『가방 들어주는 아이』의 내용을 선명히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주 독자가 초등학생이 되리라라는 걸 감안했는지 책 표지 왼쪽엔 커다랗게 양쪽 어깨에 가방을 맨 아이가 못 쓰는 양발대신 양손에 목발을 의지한 채 힘겹게 뒤따라오는 장애인 친구를 약간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실쭉하게 쳐다보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2학년이 되는 새 학기 첫날 주인공 문석우는 엄마와 함께 목발을 짚고 교실에 들어온 민영택과 한 반이 되고 첫날부터 다리가 불편한 영택이와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일 년 동안 영택이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임무를 맡게 된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임무에 조금 얼떨떨하면서도 석우는 선생님의 명령이기에 어쩔 수 없이 영택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게 되고 그러한 석우에게 미안해하는 영택과 어색한 첫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원치 않지만 매일 등하굣길을 같이 하는 친구가 된다.

 

아이들에게 '찔뚝이'라고 놀림 받는 영택이와 함께 다니게 되면서 찔뚝이 친구라는 말이 듣기 싫고 때로는 하굣길에 축구라도 하며 놀고 싶어도 자신이 맡은 임무 때문에 마음놓고 놀 수도 없게 된 석우는 가방 들어주는 일이 귀찮게 느껴지다가도 얼마 안 있어 주변 사람들에게 몸이 불편한 친구를 도와주는 착한 아이라는 칭찬도 받게 되고 청소를 빠지는 '특권'도 누리면서 점차 친구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일에 적응해 가기 시작한다.

 

또한 가정 형편이 전보다 어려워져 학용품 살 돈도 제대로 타지 못하는 석우에게 학용품 살 돈을 주시기도 하고 초콜릿 같은 간식도 주시는 영택의 어머니의 배려로 차츰 가방 들어주는 일의 '장점'도 누리게 된다.

 

하지만 석우가 장애인 친구 영택이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선물은 진정으로 장애인 친구를 이해하게 되는 일이다. 아무 생각 없이 영택이의 장애에 대해 툭툭 내던지는 사람들의 빈정거림에 대해 대신 분노하기도 하고 반 아이를 거의 다 생일잔치에 초대해도 왠지 장애인이라는 '떨떠름함'때문에 생일잔치에 오지 않는 반 친구들에 대한 서운함을 공유한다.

 

그리고 일 년이 흐르고 3학년이 된 첫 날 석우는 지난 일 년 동안 몸이 불편한 친구를 위해 가방을 들어준 공로로 모범상을 받게 되지만 석우는 차마 그 상을 받을 수가 없다. 바로 모범상을 받게 되는 날 아침 등굣길에 다른 반이 된 영택이의 가방을 들어주려다 주위 아이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라는 수군거림으로 인해 슬그머니 영택이네 집 앞을 지나쳤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장애인을 위해 '가방 들어주는 아이'같은 착한 아이가 많아야 한다는 교훈을 일방적으로 심어주려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고통 못지않게 1년 동안 장애인을 위해 봉사했으면서도 가끔은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장애인을 모른 척 하고 싶어질 때도 있는 주변인의 고통을 생생하게 다루었다는 데 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아쉬움과 바람이 있다면 후속작으로서는 장애인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겪어나가는 장애인과 주변인의 에피소드를 담은 내용이 아니라 장애인으로 인해 세상이 더욱 발전하고 변화해가는, 장애인의 의지가 주체가 된 작품을 써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애인 면전에서도 장애인에 대해 험한 말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저급했던 예전에 비해 얼마 전부터는 장애인이라는 말 대신 장애우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운동도 일 정도로 우리의 장애인문화는 성숙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영택이를 '찔뚝이'라고 놀리는 영택이의 반 친구들처럼 우리의 인식 속에는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배려가 정립되어 있지 못한 실정이다. 한 나라가 선진국인지를 알려면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에게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알아보라는 말도 있다.

 

부디 이 소설이 더욱 널리 읽혀진다면 우리나라엔 장애인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가방 들어주는 아이들'도 많아질 것이고 우리나라가 장애인에 대해 배려하는 문화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린 친구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를 읽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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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평화론 (외) 범우문고 269
안중근 외 지음 / 범우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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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그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님을 주장하는 바이다" 

 

올해도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부활을 노리는 일본 우익의 망령은 그칠 줄을 모른다. 지난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104주년이 되는 날이다.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쾌거였다. 최근 일본의 우익교과서 문제와 독도 문제로 한일 간의 불신의 골이 갈수록 깊어가는 시점에서 안 의사의 거룩한 순국정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아울러 시대를 훨씬 앞서 일본의 군국주의가 동양평화의 가장 큰 위협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경고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안 의사의 의거는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었다. 그의 거사 목적은 보다 크고 넓은 동양평화와 세계평화의 구현에 있었다. 그는 뒷날 재판정에서도 이렇게 당당히 진술했다.

 

한.일 두 나라의 친선을 저해하고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힌 장본인이 바로 이토이므로 나는 한국의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그를 제거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희망은 일본 천황의 취지와 같이 동양 평화를 이루고 5대주에도 모범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잘못하여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님을 주장하는 바이다. (‘최후 공판기록①’ 중에서, 47~48쪽)

 

이토가 한일 간의 진정한 우의뿐 아니라 나아가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처단했다는 것이다. 안 의사가 이미 백여 년 전에 이렇게 분명한 교훈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안 의사의 의거 이후 조선을 강점하고 중국을 침략하고 마침내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망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시간이 흘렀는데 또다시 군국주의, 제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려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날조하고 왜곡한 우익교과서 채택 흉계와 독도 영유권 억지주장이 이를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

 

 

 Scene #2  동양평화론은 지금도 유효하다

 

세상에 글도 많지만,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 같은 글이 있을까.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사살 후 사형선고를 받고, 항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집필시간을 얻어 이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일주일 만에 사형을 당했다. 아쉽게도 ‘동양평화론’은 서문과 전감(前鑑) 두 부분만 쓰인 채 미완성으로 남게 된다. 이 글은 단순한 민족주의론이나 타국의 독립을 무시하는 일본적 아시아주의론을 넘어, 각국의 독립과 주체적 참여를 전제로 한 국제평화주의의 틀을 세운 것이다.

 

안 의사가 여순(旅順)을 중립화하여 동북아 평화의 거점으로 삼자고 한 것은, 유럽의 철과 석탄의 산지 루르. 자르 지역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루르. 자르 지역에 대한 장악 경쟁이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으나, 2차대전 후 유럽철강석탄동맹으로 공동관리한 결과 유럽경제공동체(EEC)로,유럽연합(EU)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20세기 초 여순은 러시아의 해양 진출기지이면서, 일본의 대륙침략의 거점이기도 하며, 당시 구 만주지역 전체의 향방과도 맞물려 여순 반도의 소유권을 포기할 수 없었던 중국 사이에서 동북아 분쟁의 도화선이었다. 이 지역을 중립화하고 공동관리함으로써동북아의 평화와 연대의 길을 열자는 게 안 의사의 주장이었다. 지금 이러한 여순에 해당하는 지역이 한반도인 셈이고, 한반도가 동북아평화와 균형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안중근의 국제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는 동북아 각국의 개별적 노력과는 별도로 동북아 공동의 국제적 접근을 중시한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공동안보체제 혹은 국제평화군의 유지와 연결시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안 의사가 일찍이 주창한 동북아개발은행 구상도 매우 주목된다. 북한 개발은 동북아 전체의 개발구상과 연계하는 것이 좋고, 그 경우 동북아개발은행을 통해 각국 정부자금과 함께 세계의 유휴자본을 끌어들여 개발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개발수요자금을 국제은행 등에서 지속적으로 조달할 수 없는 일이고, 정부 역시 특정 재벌그룹을 통한 방식 같은 것은 더 이상 쓸 수 없다. 미국정부 또한 직접지원 방식보다 개발은행을 통한 방식을 선호할 것이다.

 

동양평화회의는 각국 정부도 참여하지만 오히려 새로운 시민의 적극적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각 국가와 인민을 구별해 시민참여형 공동평화회의를 상정한다. 고대문화의 공유나 인종주의적 아시아론이 아니라 새로 등장하는 인민 혹은 시민세력이 주도하는 동양평화회의다. 한·중·일 시민 수억 명이 가입하고 1인당 회비 1원씩 내면 수억 원을 모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구미 제국주의와 시민을 구별해 구미 시민들과 제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동양평화의 주체를 일본으로 보고, 일왕을 신뢰하는 등 사상적 한계점 역시 드러낸다. 사형집행을 앞둔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마지막 시간동안 집필했기 때문에 현실성 떨어지는 공상 정도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안중근 의사가 주창한 동양평화에 대한 지론은 현 시점에서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오늘날 중국과 일본의 패권주의로 말미암아 ‘중국의 아시아’ 혹은 ‘일본의 아시아’가 될 위험성이 크다. 그것을 안중근이 구상한 ‘아시아의 중국’, ‘아시아의 일본’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를 연결시키는 아시아보다 세계 시민을 연결시키는 ‘시민적 아시아’, 양자주의적 접근의 아시아가 아니라 다자주의적 접근의 아시아를 구상한 안중근의 탁견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Scene #3   동양의 평화, 합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

 

안 의사는 사형을 언도받고서도 항소하지 않았다. 이는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의지가 있었다.

 

“내가 불공평한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도 공소권을 포기한 것은 복죄(복죄)했다고 생각지 마시고. 나는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 않을 뿐이오. 상급법관 역시 일본인이니 그 결과가 뻔한 것 아니겠소.” (7쪽)

 

선각적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인간적 배경, 암흑의 시대 한 가운데서도 잃지 않은 고결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런데 매우 통탄스럽고 안타까운 사실은 아직까지 그의 무덤과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좋은 글을 널리 읽혀지지 않고 있다. 과연 안 의사가 옥중에서 남긴 이 미완의 생각을 기억하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가 안 의사를 동양평화론의 창시자보다는 이토를 죽인 위인으로만 기억한다면 선열의 순국 정신을 제대로 되새긴다고 볼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우리는 참으로 못난 후손이다. 아직도 극일은커녕 일본의 거듭되는 망언망동에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안중근 의사께 면목이 없다. 안중근 의사 같은 선열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이처럼 피눈물을 흘리고 목숨을 바쳐 싸웠건만 그동안 우리 못난 후손들은 무엇을 했던가. 안중근 의사의 시신은커녕 무덤도 찾지 못하고 있으며 그저 남북으로 갈라져 헛된 싸움질만 되풀이하며 통일도 못 이루고 있지 않은가.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지 몰라도 그 역사를 낳은 지정학은 바뀔 수 없다. 오늘의 한국이 대한제국일 수는 없으나, 오늘날 한반도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방안은 구한말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제의 식민지배는 조국의 분단을 낳았으며, 분단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어져 그 후유증으로 한반도 재통합은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불가에 문자반야(文字般若, 만물의 실상을 깨닫는 지혜)란 말이 있으나, 안 의사의 글은 문자천고(文字天鼓, 글이 천둥소리라는 뜻)라 할만하다. 그러나 이 글은 영원한 미완성이며, 우리 후인들이 두고두고 완성해야 할 영원한 정신이다. 안 의사가 오늘을 사는 세대에게 전하기를 원하는 무언의 교훈은 한민족이 하나 되어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특정 패권국가가 좌지우지하는 동양평화가 아닌 한중일이 협조하여 공동선의 체계를 이루어 가는 새로운 ‘동양평화’를 창조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양평화론의 근본 취지는 강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주권국가가 상호 협조하여 공존 공영하는 동북아 평화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합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로 시작하는 ‘동양평화론’은 이토가 말하는 서구의 방식을 흉내 낸 국권침탈을 통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이토는 평화의 약탈자였다. 그의 저격은 테러가 아닌, 지금도 살아있는 ‘평화의 메시지’였다. 그래서 안중근 의사가 목숨 바쳐 염원한 동양평화는 100년 전 어느 독립운동가의 이념만이 아닌, 우리 후손들이 앞으로 실현해야 할 과제다. 옥중에서 못다 이룬 평화주의자로서 안 의사의 생각의 숨결을 살려야할 때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못난 나라, 역사의 뼈저린 교훈을 망각하는 정신이 썩은 겨레에 무슨 밝은 미래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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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3-29 0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웃 일본이 망언망동을 하지 않더라도,
한국사람은 아직도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면서
이런 '일본말'을 '전문용어'라고 여기곤 하기도 하고,
교과서에도 신문방송에도... '일본 말투'는 널리 나타나요.

말을 슬기롭게 깨우치지 못하니
역사도 제대로 못 보지 않느냐 싶습니다.
굳이 프랑스나 덴마크나 스웨덴이나 핀란드 같은 나라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들 나라는 '제 나라 말'을 지키면서 '제 나라 역사'를 함께 지켰으니까요...

cyrus 2014-03-2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함께살기님. 맞습니다. 여전히 일제 시대부터 생긴 잘못된 일본말이 우리말인 것처럼 사용하고 있죠. 선진국의 역사 인식을 부러워만 할 때가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었던 역사를 기억하고 지켜나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인식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둡시다. 나에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24~25쪽 -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시인처럼 온통 책과 문자의 세계에 빠져 살아왔다. 그러다가 특별한 기회로 처음으로 제주도를 포함한 몇 몇 지역을 4박 5일 동안 여행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여행이라고 해봤자 당일치기 혹은 1박 2일이 고작이었다. 특히 제주도는 정말 좋았다. 워낙에 유명한 관광지라서 그 곳에 가본 횟수가 많은 사람이라면 이제는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겠지만, 역시 사람들이 왜 제주도를 찾는지 알 것 같다. 단순히 그 곳 날씨가 따뜻하고 풍경이 좋아서만 찾는 것이 아닐 것이다. 여행을 가본 사람들은 안다. 여행이라는 삶의 행위 자체가 자유라는 것을. 자유로운 경유 과정에서 마주하는 특별한 풍경은 여행자를 자유 그 자체다. 4박 5일의 여행은 도시의 속박을 잊게 만들며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어서 행복하다. 제주도의 사진을 다시 보면서 푸른 하늘과 대기가 충만했던 자유로운 시간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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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4-03-28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멋져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 제주 바다인가요?

cyrus 2014-03-28 21:03   좋아요 0 | URL
네, 우도에서 찍은 겁니다. 제주도 중에서 가장 경치 좋고, 구경거리 많은 곳을 고르라면 우도를 최고로 꼽고 싶어요. ^^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 - 당당한 나를 위한 관계의 심리학
크리스토프 앙드레 & 파트릭 레제롱 지음, 유정애 옮김 / 민음인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Scene #1  “난 아무것도 아니야...”

 

공포증이란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국한돼 공포를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무서워하는 대상이나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 하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두려움이 유발되는 것이다. 공포증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특정 사물이나 상황에 공포를 느끼는 것은 과거의 경험에 기인한다. 신경학적으로는 불안을 매개하는 신경회로의 이상이 특정 공포증의 발병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학습 이론적으로는 부모나 타인으로부터 공포반응을 배워서 체득한 것이라고도 알려진다.

 

공포증의 종류 중에 ‘사회공포증’이라는 것이 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바보스러워 보인 사회 불안이나 창피를 경험한 후 상황을 회피하게 되는 것이다. 당했던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사회공포증'이라는 증상이 나타난다. 많은 사람 앞에서의 발표나 갑작스러운 주위의 시선에 대해 얼굴이 붉어지는 경험 때문에 사람을 회피한다. 증상에 특징의 차이가 있지만 이와 유사한 불안의 형태가 ‘회피성 인격장애’가 있다.

 

사람의 됨됨이를 나타내는 인격은 일상생활 가운데 드러나는 개인의 정서적이고 행동적인 특징의 집합체를 이른다. 실제로 인격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그러니까 사회적 관계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문제는 인격이라는 것이 간혹 자신에게만 국한돼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를 정신의학계에서는 ‘인격 장애’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인격 장애는 청소년기 또는 초기 성인기에 시작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여러 상황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장애현상이라고 분석한다.

 

 

 

 

만화 <피너츠>에 나오는 찰리 브라운이 회피성 인격장애 증상에 가깝다. 그는 조용하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아이다. 어디서나 튀려하지 않고 자신보다는 상대방에 맞추려 하며 항상 친구들을 위한 모습을 보인다. 회피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부끄러움이 많고 자신감과 자존감이 없으며, 다른 사람이 자신을 싫어할까 봐 항상 눈치를 본다. 자칫하면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지금 내 욕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데 나는 이성들 앞에 서면 작아진다. 바짓가랑이에 위치하고 있는 ‘그것’이 커지지 못해서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작아지고 위축된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가 나 역시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증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성 공포증’이라고 해야 되나.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소개팅을 해본 적도, 아직 여자 한 명 제대로 사귀어 본 적이 없다. 이성 앞에만 서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초조해진다.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할까, 내가 이런 옷을 입고 왔는데 마음에 들어 할까, 갑자기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면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까 등등 쓸데없는 불안감에 앞서 이성 만나기가 불편했던 적이 있었다. 작년에 한 번 관심 있는 이성이 있어서 먼저 연락처를 알아내서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고, 단 둘이서 식사를 하는 등 이성 공포증에서 벗어나도록 나름 노력했지만 두려움이 재발하고 말았다.

 

 

 

 Scene #2  관계에 대한 불안도 심하면 병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 증세를 일시적인 증상으로 가볍게 여기기 쉽다. 혹은 자신이 심각한 불안 증세에 시달리는 것을 알면서도 정신치료를 부담스럽게 여겨서 피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심각한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면서 증상이 어느 정도 완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일생동안 증상이 지속된다. 결국은 불안한 것이다. 불안하니 자꾸 그 상황을 회피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사회활동에까지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 불안은 또 스스로의 마음을 더욱 닫게 해서 우울증을 초래하거나 심하면 공황발작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사실 이런 증상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관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진짜 자신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평범한 학생, 직장인부터 유명 연예인과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범위는 광대하다.

 

사회 공포증의 원인은 다양하다. 대뇌의 편도에 문제가 있는 경우 도파민, 세로토닌 등 신경 전달 물질의 이상 등의 생물학적 원인이 있다. 어린 시절 부모의 과잉보호 등으로 사회 기술을 배울 기회가 부족했던 경우, 지나치게 내성적인 성격, 어린 시절 주변으로부터 받은 놀림이나 창피를 당한 경험이 큰 충격으로 남은 경우 등의 심리적 원인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발표 차례가 다가올 때, 동료의 비난에 대응하고 싶을 때 말도 못하고 심장박동만 빨라지는 것은 모두에게 완벽하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관계 불안을 가진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명확한 근거 없이 자신에 대한 타인의 반응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낮으며 자신을 과소평가로 단정 짓는다. 이렇게 내면적으로 위축된 심리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것은 관계 불안을 야기하는 자신의 단점을 타인에게 들키기 않으려고 혼자서 발버둥치는 꼴이다. 남을 의식하고, 남에게 자신을 완벽한 인간으로 잘 보이려고 한다. 불안한 상황을 일시적으로 극복할 수 있어도 지속적인 증상을 고칠 수는 없다. 단점을 최대한 가리면서 남들한테 성격의 결함이 없는 완벽한 존재로 보이려고 애쓴다면 계속 남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심리적으로 피곤함만 가중할 뿐이다.

 

관계 불안을 초래하는 원인을 알았다면 그것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내면에 자리 잡은 감정의 원인을 마주하는 것을 두렵거나 자꾸 숨기면 증상만 더 악화된다. 불안도 심하면 병이 되고, 정신 건강에 해롭다. 사회공포증이나 회피성 인격 장애는 전문가의 상담과 처방이 필요하다.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등의 약물을 복용하는 약물치료와 대인공포증과 관련된 환자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들을 이해하고 교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시행하는 행동치료가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각종 자율 신경계 증상(얼굴 붉어짐, 떨림 등)을 숨기려 하지 말고 오히려 상대에게 보이고자 노력하는 치료인 노출 기법도 활용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상황의 불안감을 인식한 상태에서 그 상황을 직접 스스로 노출시킨다. 말 그대로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나의 의식을 지배하는 불안의 원인을 잡기 위해서 내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자기주장 기법도 있다. 직면해야 할 특정 상황에 자신의 주장을 표현할 수 있도록 훈련한다.

 

 

 

 Scene #3  치료도 남의 눈에 의식하면 절대로 고칠 수 없다   

 

예방하기 위해서는 대인 관계를 비롯한 사회적인 상황에서는 다소의 긴장이나 불안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히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불안이나 가볍게 동반되는 수치심을 매우 치욕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공포증으로 발전하기 쉽다. 따라서 어려운 상황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다소 힘들더라도 피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지나친 걱정 등 잘못된 생각에 그 근본원인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고 스스로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자신을 향한 타인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은 현실이 아닌 자신이 만든 왜곡된 인지 형태이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다고 해서 붉어지지 않게 하는 게 아니라 부끄러우면 붉어지는 게 당연하다는 걸 자각시키는 것이다. 경직된 생각을 한 번에 제거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오랫동안 방치한다면 심각한 증상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내면의 두려움을 직시하고 두려운 상황에 자신을 반복적으로 노출하고 연습함으로써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마음의 병을 고치는 것도 남의 눈에 의식한다면 절대로 고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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