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영화 '타워'를 극장에서 보면서 훌쩍 거리는 몇몇 사람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궁금한 점. 과연 '타워'를 보면서 눈물 흘렸던 사람들 중에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채 순직한 소방관들의 뉴스에 진정 눈물을 흘리는 이가 과연 몇 명이 있을까? 작년에 일간지 오피니언에 실렸던 내 아는 동생이 쓴 칼럼의 내용이 생각난다.

 

 

 

눈물 흘릴 때만 격려하지 말라  

(윤석현 /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3학년)

# “소방관은 보험을 제대로 드는 것도 어렵데이.” 의무 소방원으로 배치받은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한 소방관이 말했다. 정작 보험에 가입되더라도 혜택의 제한이 많거나 보험료가 비싼 경우가 허다하단다. “하긴 하루에도 몇 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직업인데 누가 보험을 받아주겠노.” 보험도 들기 힘들다는 그의 말에서 씁쓸함이 묻어났다.

# 모든 국민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올림픽 참가 선수를 응원하고 있던 지난 1일 오후 10시. 50대 소방관이 화재가 난 부산 신발 공장에서 추락사했다. 그는 3남매의 자랑스러운 아버지이자 80대 노모를 모시던 효자였다. "이번 여름에는 꼭 가족 여행 가자”는 그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혹시라도 대피하지 하지 못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공장으로 들어간 영웅은 돌아나오지 못했다.

올해만 벌써 두 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의무소방원으로서 현장에서 소방관을 보조하는 필자에게 이런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올 때마다 남 일 같지 않아 가슴이 아프다. 또한 이런 일이 짤막한 기사 한 줄로 소개되고, 대중들의 관심이 반짝 일다가 사라지는 것 같아 더욱 슬프다.

현장에서 바라본 소방관의 복지 실태는 밖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심각했다. 많은 소방관이 목숨을 걸고 매일 화재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도 이들을 위한 위험수당은 고작 월 5만원에 불과하다. 이들의 열악한 상황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유일한 기회는 동료 소방관이 순직했을 때 잠시뿐이다.

대선을 앞두고 수많은 복지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민을 보호하는 ‘소방’, 그리고 그 책임을 수행하는 ‘소방관’들을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소방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낮기에 정치권에서도 따로 정책을 세우지 않는 듯하다.

얼마 전 이기환 소방방재청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방공무원 예산 2조4000억원 가운데 1.8%만이 중앙정부의 지원”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 수준에선 한계가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소방 분야에 대한 장기적인 예산 지원과 소방관에 대한 복지 확대가 시급하다.

어디선가 생명을 바쳐 불을 끄는 소방관도 한 사람의 아버지이자 아들이다. 그들의 무거운 방화복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는 방법은 잠시의 박수가 아니다. 더 이상 눈물 흘릴 때만 격려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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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01-28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끔합니다...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네요.

cyrus 2013-02-03 21:50   좋아요 0 | URL
이진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고 계시죠? ^^ 저도 아는 동생이 쓴 글 읽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oren 2013-01-29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타워' 보면서 알바하던 대학생이 뉴스 전광판으로 '청소부 엄마'를 떠올리던 장면에서 눈물을 왈칵 흘렸더랬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소방관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이 많이 쓰이더군요. 제 고향 친구들 가운데 특히나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바로 119 구조대 소속이었거든요. 그 친구는 대구농고를 졸업하자말자 공수부대에서 10년 가까이 직업군인 생활을 마친 뒤 다시 소방공무원으로 20 년쯤 근무했답니다. 오랫동안 '일이 너무 힘들고 위험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친구는 정말 무사히 안전하게 희망퇴직을 했어요. 그리고 꿈에 그리던 '귀농'을 해서 지금은 '고향'에서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답니다.
http://blog.aladin.co.kr/oren/5903921

그 친구가 서울에서 근무할 때 참 자주 술잔도 나누고 전화통화도 자주 했는데, 걸핏하면 전화 통화 중에도 느닷없이 사이렌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출동이다'를 외치며 전화를 끊곤 현장으로 달려가곤 했어요. 저도 그 친구 덕분에 소방서에도 몇번 가보고 다른 소방관들과 술잔을 나눈 적도 가끔씩 있었답니다.

저는 그래서 '타워' 속에 등장하는 소방관들이 제가 듣고 알아 왔던 '실제'보다 너무 '영화적'이어서 오히려 몰입이 덜 되더라구요.


cyrus 2013-02-03 21:5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영화 보면서 주연보다는 조연에 눈이 가더군요. 그리고 소방관 관련 칼럼을 쓴 동생이 지금 의무소방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로부터 소방관의 실제 모습을 듣고 영화를 보고나니 오렌님처럼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노력 없이 쓴 글은 대게 감흥 없이 읽힌다.

 

- 새뮤얼 존슨 -  

 

 

 

올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감흥을 주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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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창작 본능을 발산하고 싶은 분들은 여기 SNS 유일 대한민국 청춘들을 위한 창작 소셜 페이지 브라이터(B_Writer)를 주목해주세요!

여기서 브라이터란?

'Bright'(밝히다)와 'Writer'(작가, 저술가)를 결합한 신조어로써, 창작 능력을 마음껏 발산하여 따분하고 지루한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크리에이티브(creative)한 사람을 뜻합니다. 창작을 사랑하는 각 분야의 청춘 아마추어들, 우리는 그들을 '브라이터'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무언가 쓰고 싶고,
무언가 그리고 싶고,
무언가 만들고 싶다면,
당신이 바로 브라이터입니다.

글, 그림, 사진, 동영상 등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물, 좋습니다. 누구나 오셔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업로드하고 공유하면서 서로 칭찬해요. 자신의 창작 능력을 자랑하고 싶은 분들, 환영합니다. ^_^

http://www.facebook.com/B2writer

 

 

P.s) 2013년에 같은 학교 다니는 지인과 같이 야침차게 개설한 페이스북 페이지입니다. 개설된지 얼마 안 되어서 많이 미흡하지만 대학생들의 무한한 창작 욕구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20대 청춘' 알라디너 또는 이제 곧 대학 새내기가 될 예비 청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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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슈미트의 『근대회화의 혁명』를 읽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근대미술의 선구자로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오노레 도미에(1808~1879)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도미에는 대상의 특정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왜곡하거나 변형시키는 데포르마시옹(déformation) 기법을 통해 프랑스 사회의 어둡고도 진실된 면을 신랄하게 묘사했다. 슈미트는 도미에의 회화적 기법을 기존의 관습을 탈피하는 획기적인 시도로 평가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도 근대회화의 선구자 또는 시조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미술사가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근대회화 또는 근대미술의 시점 역시 의견이 분분한데 일반적으로 프랑스 혁명 이후 시민사회가 성립된 19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이 때 등장한 미술사조가 바로 인상주의다. 인상주의 미술을 지향하는 일명 인상파 화가들은 자연을 하나의 색채현상으로 보고,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미묘한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고자 했다.

 

 

 

 

클로드 모네  「인상 : 해돋이」 1872년

 

 

전통적인 회화기법과 사물의 고유색을 부정하고 색채ㆍ색조ㆍ질감 자체에 관심을 두는데, 특히 시간의 변화에 따른 색채의 변화와 자연에서 순식간적으로 일어나는 인상을 포착하려고 했다. 그래서 인상주의의 본질은 서양미술의 뿌리인 ‘대상 재현적 사실주의’의 전통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모방론의 원리인 원근법과 명암법을 파괴하는 것이다. 클로드 모네가  「인상 : 해돋이」를 1874년 제1회 인상파전에서 출품된 시점, 다시 말하자면 인상주의의 서막을 알리는 이 시기를 근대회화의 출발점과 동등하게 평가하기도 한다.

 

 

 

 

에두아르 마네  「팔레트를 든 자화상」 1879년

 

 

하지만 나는 근대회화의 진정한 선구자를 도미에, 모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든 위대한 작품을 먼저 남긴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이다. 마네가 1863년에 살롱에 출품한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프랑스 미술계를 떠들석하게 할 정도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는데 이 때야말로 근대회화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마네는 도미에와 모네에 비해 제작 활동을 빨리 한 편이며 이들보다 먼저 유명세를 탔다. 모네가 1874년 인상파전에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에 비하면 마네는 이미 9년 전에 화가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살롱에서 보수적인 프랑스 미술계를 뒤흔들었다. 도미에는 1830년에 시사 주간지 『라 카리카튀르』(La Caricature)의 삽화가 활동으로 미술 활동을 시작했지만 판화, 유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는 1879년이다.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1863년

 

 

재미있게도 마네는 인상파전에는 단 한 번도 자신의 그림을 출품한 적이 없다. 모네와 일부 화가들과의 약간의 교류만 있을 뿐 마네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살롱전 출품을 고집했다. 그러나  전형적인 기성회화를 압축하고 있는 살롱에서 그 당시 새로운 근대적 회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1863년 살롱전에 출품된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당시 미술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며 엄청난 비난에 휩싸였다. 정장 차림의 두 남자들 사이에 한 여인이 벌거벗고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그 도발적인 모습은 비평가들은 물론 관람객들까지 몹시 불편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후 이 그림에 말할 수 없는 혹평이 쏟아졌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별 것 아닌지만, 아카데미 풍의 작품들을 선호하던 19세기 중반의 보수적인 시각으로 볼 때, 이 그림은 전통 양식에 대한 불손한 도전이자 보는 이들의 눈을 어지럽히는 외설에 지나지 않았다. 살롱에서 낙선한 이후 마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림은 '목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전시회에 선보여졌지만, 이번에는 대중들의 비웃음을 샀다.

 

이 그림에서 핵심은 나체 여인이다. 하지만 아카데미풍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몸매가 아니라, 균형감 없는 몸매로 투박하고 천한 느낌을 주는 누드라서 우선 불쾌감을 주었다. 고전적인 누드화처럼 서 있거나 누워있지도 않고 제멋대로 앉아 있는 자세도 왠지 선정적이어서 호감을 주지 못했다. 한마디로 이상적인 여체의 모습이 아닌 사실적인 여인의 나체가 불쾌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장 차림의 신사들을 등장시킨,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구도로 말미암아 많은 이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음란하고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파문을 몰고 왔지만, 실은 부르주아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면서 비난은 더욱 증폭되었다. 일견 신사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매춘을 즐기는 부르주아의 가식과 이중성에 대한 마네의 고발이라는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이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구도 보다 화가의 의도라는 비평이 주를 이루면서 마네는 부르주아를 자극해서 유명세를 타고 싶어한다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따라서 당대에 이 그림은 매우 '부적절하고 위험한 욕구'를 지닌 그림으로 평가되었다.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년

 

 

마네가 근대회화의 선구자일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풀밭 위의 점심 식사」논란이 종식된 지 얼마 안 되어 마네는 자신이 그린 누드화 한 점으로 '이슈메이커'가 되었다. 이슈의 중심이 된 그 작품이 바로 「올랭피아」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전통적으로 인식되어 왔던 여성 누드의 스타일을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출품한 지 2년 후, 「올랭피아」를 살롱에 출품했는데 2년 전 논란에 맞먹을 정도로 대형 스캔들이 일어났다. 마네는 「올랭피아」를 제작하기 위해 과거 고전주의 화가들의 누드화를 참고했는데 대표적인 그림으로는 티치아노(1488?~1576)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앵그르(1780~1867)의 「그랑 오달리스크」등이 있다. 그러나 마네는 선배 화가들의 도상학적 주제를 참고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누드화를 선보였다.

 

 

 

 

베첼리오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년

 

 

마네 이전의 나체는 신화와 역사 속 인물인 비너스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는 현실의 나체이기보다는 인간이 이상으로 삼아야 할 추상적 존재의 나체상인 것이다. 마네는 이런 고정관념이 지배하는 경직된 사회에서 남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 동시대 여성의 누드화를 그린 것이다. 이상과 추상적 존재의 전통 누드화인 비너스와는 확연히 다른 세속적인 나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마네는 현실 속 여성, 즉 매춘부를 통하여 차갑고 세속적인 프랑스 사회의 리얼리티를 선사했다.

 

이 두 작품 때문에 미적 양식을 고양하고 아름다움에 심취하려던 사람들의 심리를 거스르고 되레 그들에게 모욕감을 안겨주었다는 이유로 당대에 마네는 퇴폐적이고 불경스런 화가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전통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회화 양식으로 인해 오늘날 그는 '최초의 근대 화가' 내지는 '현대 회화의 시조'로 평가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고전적 구조를 벗어나 회화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올랭피아」는 근대성을 상징하고 있으며, 야외 회화에 대한 마네의 선구자적 안목으로 인해「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모네보다 먼저 인상주의 출현을 예고한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마네는 신화나 관념의 세계에서 해방되어 일상의 가치를 환기시키며 회화 전통과도 결별을 고했다. 그의 업적은 '근대회화의 혁명을 알린 선구자'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부여해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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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1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1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르네상스 미술의 정의

 

 

 

 

 

 

 

 

 

 

 

 

 

 

 

 

 

 

르네상스(Renaissance)는 ‘재생’ 또는 ‘부활’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15~16세기 유럽에서 고전 학문과 그 가치에 대한 관심이 미술로 확대되는 시기를 의미한다. 이 시대에는 그리스, 로마 미술과 문학을 재평가하였고, 해부학이나 투시원근법과 같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인체와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당시 봉건제의 몰락, 상업의 성장, 인쇄술․항해술 등과 같은 혁신적인 신기술의 등장 및 발명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신에 대한 관심은 점차 식어가고 인간에 대한 탐구가 활발해지며 새로운 인문주의 정신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미술가들은 미술의 소재를 인간에서 구하여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1475~1564), 라파엘로(1483~1520)등 세 사람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술가로서 크게 명성을 떨쳤다.

 

 

 

 융합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르네상스 미술

 

 

 

 

 

 

 

 

 

 

 

 

 

 

 

 

 

특히 메디치 가문은 금융업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화가, 조각가, 건축가, 철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가와 과학자들을 후원했다. 또한 이들이 피렌체에서 만나 서로 전문지식을 교류하면서 공동 작업을 할 수 있게 지원했다. 그 결과 피렌체는 여러 학문과 문화가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예술가와 학자들을 아낌없이 후원함으로써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데 기여한 메디치 가문의 혜안과 통찰력은 개방을 통한 ‘융합’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융합의 원리는 르네상스 미술가들의 작품에서도 읽을 수 있다. 르네상스의 미술은 단순히 회화 한 분야에만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분야의 학문들의 융합을 통해 매우 독창적인 표현이 창출되었다.

 

 

 

 과학과 미술의 융합,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에 따른 인체 비례도> 1487년경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B.C. 80년경~B.C 15년경)의 저서를 접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이를 드로잉으로 그린 것이다.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선 남성의 인체를 원과 정사각형의 선으로 둘러 그 안에 인체가 완벽히 합치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 드로잉을 통해 인체 비례에 대한 관심과 인간을 우주의 원리와 연결시키려는 과학적인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림에 가장 이상적인 인체를 담아내기 위해 아름다움을 정확한 수학적 비례를 통해 규명하고자 했다. 훗날 르네상스의 과학적 사고는 원근법과 명암법 탄생의 근간이 되었다. 인체를 만물의 척도로 바라보는 관점은 르네상스의 인간 중심주의를 반영한 것이다. 이 드로잉은 인간 중심의 과학이 예술과 어떻게 융합되었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문학과 미술의 융합, 보티첼리

 

 

 

 

 

 

 

 

 

 

 

 

 

 

 

 

 

 

 

 

 

 

 

 

 

 

 

 

 

 

 

 

 

 

 

 

 

 

 

 

 

 

 

 

 

 

 

르네상스 미술 작품들 대부분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 많다. 하지만 그 당시에 출판되어 유행한 문학 작품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보티첼리의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다. 총 4개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탈리아의 작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근대적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산드로 보티첼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첫 번째 그림, 1483년경

 

 

그림 속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스타조란 청년은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거절당해 크게 실의에 빠진다. 그림에는 두 명의 나스타조가 등장하는데 가장 왼쪽에 이제 막 숲에 들어선 나스타조는 젊은 시절 모습이고, 옆의 나스타조는 시간이 약간 지난 후 모습이다. 그는 심란한 마음을 달래며 숲속을 산책하면서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다. 백마를 탄 기사가 칼을 들고 한 여자를 쫓아오고, 사냥개들이 여자에게 달려들어 물어뜯고 있다. 나스타조는 급한 대로 나뭇가지라도 들고 그녀를 도와주려 한다. (첫 번째 그림)

 

 

 

 

 

 

 

산드로 보티첼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두 번째 그림, 1483년경

 

 

 

 

결국 여자는 땅에 쓰러지고 기사는 말에서 내려 그녀의 등을 갈라서 내장을 꺼낸다. 그리고 개들에게 그녀의 내장을 던져준다. 왼쪽에는 질겁하고 도망가는 나스타조가 있다. 그러나 나스타조가 목격한 장면은 환상이다. 그 여인이 살아있을 때 그 기사의 청혼을 거절했다가 그 벌로 매일같이 기사에게 쫓기며 개들에게 내장을 뜯기는 저주에 걸린 것이다. (두 번째 그림)

 

 

 

 

 

 

 

산드로 보티첼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세 번째 그림, 1483년경

 

 

 

 

나스타조는 꾀를 내서 자신의 고백을 거절한 여자와 그녀의 가족들을 초대한다. 장소는 바로 잔인한 장면이 벌어졌던 그 숲이다. 어김없이 쫓기는 여자와 기사, 사냥개들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고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나스타조가 바라보는 여성이 짝사랑한 여자이고 둘은 시선을 마주치고 있다. 즉 나스타조는 “너도 나랑 결혼하지 않으면 평생 이 꼴로 만들어주겠다”라는 일종의 경고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세 번째 그림)

 

 

 

 

 

 

 

산드로 보티첼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네 번째 그림, 1483년경

 

 

결국 나스타조는 원하는 여인과 결혼식을 올린다. 신부는 바로 왼쪽 테이블에 나스타조와 마주보고 앉아있다. (네 번째 그림)

이 그림은 원래 명문가의 부탁을 받고 그린 것으로 신혼부부의 방에 걸러져 있었다고 한다. 그림 속에 나타나 있는 이야기의 주제와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신부를 위한 그림으로 원하지 않는 결혼이라도 참고 견뎌야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신의 도상을 중심으로 회개를 강조하는 그림보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문학 작품을 통해 인간적 삶의 교훈을 전달하는 그림들이 등장했다.

 

 

 

 철학과 미술의 융합, 라파엘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베드로 성당의 '서명(署名)의 방'을 꾸미기 위해 철학, 신학, 시학(詩學), 법학 등 당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4개 분야의 학문을 주제로 하는 벽화 제작을 라파엘로에게 주문했다. 그 중에 철학 즉 '인간의 학문'을 주제로 하는 그림이 바로 <아테네 학당>이다.

 

 

 

 

 

라파엘로 산치오 <아테네 학당>  1510~1511년

 

 

 

길이가 8m에 달하는 거대한 이 작품에는 54명의 고대 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들이 등장한다. 화면 중앙의 두 인물은 서구 문화사에 있어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상가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플라톤은 왼손에는 그의 저서 『티마이오스』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고 있다. 플라톤이 들고 있는 책은 세계의 본질을 논하는 형이상학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은 인간의 지혜로운 처신을 논하는 윤리학이다. 플라톤이 현상을 초월하는 본질인 이데아(idea)를 추구했던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은 현상에 내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이들이 취한 자세는 현실의 문제를 바라보는 두 철인의 철학을 상징하고 있다. 그 외에도 고대의 걸출한 사상가들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특징적인 상황설정과 함께 묘사했다. 주요 인물만 예를 들어보면, 화면의 좌측 상단에서 녹색 옷의 소크라테스가 무리들 틈에서 열심히 토론하고 있고, 맨 앞줄 좌측에는 쭈그리고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수학자 피타고라스다. 오른쪽에는 컴퍼스로 도형을 그리는 유클리드가 있다. 라파엘로는 이 그림을 통해 당시 이탈리아와 고대 그리스를 서로 대응시켜 두 시대의 위인들을 향한 작가의 존경심을 표현하면서 고대의 부활에 의한 인문주의의 찬미를 드러내고 있다.

 

 

 

 르네상스 미술에서 찾는 창조적 역량

 

최근 우리 사회에 각광받고 있는 키워드는 융합이다. ‘통섭’(統攝)이라 불리기도 하는 융합은 하나의 분야에 다른 것들을 접목하고, 섞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융합은 이미 수백 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 르네상스의 진원지인 피렌체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융합의 사고를 지닌 인물을 ‘르네상스 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르네상스 맨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우리는 그를 미술가로 알고 있기도 하지만 천재적인 과학기술자로도 알고 있다. 실제로 그는 미술, 수학, 물리학, 공학을 망라한 다양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가 시대에 앞선 천부적인 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상식을 벗어나 새로운 영역으로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융합의 사고는 꼭 학문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예술 분야에서도 필요하다. 사회가 다양해질수록 해결해야 할 새로운 융합주제는 끊임없이 늘어난다. 어려서부터 복합적으로 사고하고, 다른 분야에 눈을 돌릴 줄 아는 훈련이 된다면 창조적 예술 역량을 이끌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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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11-22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뜬금없지만) 혹시 <데카메론>을 읽었나요? 우리 같이 시작, 하고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읽어보는 게 어때요? 혼자는 시작을 못하겠어요(!) 자주 와요. 자주!!!

cyrus 2012-11-23 18:23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연말 학교 생활이 더 바빠서 글도 자주 올리지 못하게 되었네요. ^^;; 데카메론은 아직 안 읽어봤어요. 아이리시스님과 같이 읽는다면 당장 책 구입해서 읽을 수 있어요~!! ㅎ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11-27 00:59   좋아요 0 | URL
그럼 우리 내년에 해요ㅎㅎㅎ(미루기 대마왕!!)

cyrus 2012-11-27 11:2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내년 1월 1일부터 시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