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주말에 자원봉사활동 차 자살예방 전문 상담기관인 한국 생명의 전화가 주최하는 '생명사랑 밤길 걷기' 행사에 참가했다. 오후 6시에 대구 스타디움을 출발하여 수성못을 거쳐 다시 되돌아오는 코스를 해 뜨는 새벽까지 걷는 것이다. 이 때 걸었던 코스의 길이는 총 34km이다. 군대 시절 때 했던 유격행군에 비하면 34km 걷는다는 게 쉽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34km의 거리가 꽤 길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긴 거리를 완주했다는 기쁨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지만 장기간 걷기에서 비롯되는 육체적 고통과 피로감 또한 감당해야 한다.

 

아마도 인간의 삶 절반은 걷기가 많이 차지할 것이다. 살다보면 가끔 정처 없이 걷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정처 없음은 목적지가 없다는 뜻이므로 또한 쓸쓸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왕 걷는 것이라면 도달하고자 하는 곳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쓸쓸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야 할 곳이 어디쯤인지
벅찬 가슴을 안고 당도해야 할 먼 그곳이
어디쯤인지 잘 보이는 길이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가로막는 벼랑과 비바람에서도
물러설 수 없었던 우리
가도 가도 끝없는 가시덤불 헤치며
찢겨지고 피 흘렸던 우리
이리저리 헤매다가 떠돌다가
우리 힘으로 다시 찾은 우리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는 길 힘겨워 우리 허파 헉헉거려도
가쁜 숨 몰아쉬며 잠시 쳐다보는 우리 하늘
서럽도록 푸른 자유
마음이 먼저 날아가서 산 넘어 축지법!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이제부터가 큰 사랑 만나러 가는 길이다
더 어려운 바위 벼랑과 비바람 맞을지라도
더 안 보이는 안개에 묻힐지라도
우리가 어찌 우리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우리 앞이 모두 길인 것을...

 

 

저번 밤길 걷기를 했던 것도 있었지만 이성부 시인의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를 읽으면서 느꼈던 사실은 결국 걷는다는 행위는 경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들보다 빨리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면 승리하는 경보를 제외하고 태초에 인류가 처음으로 직립보행을 하기 시작했던 오랜 역사를 통틀어 걷기의 행위는 남들과의 겨룸도 아니고 자신을 이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빨리 가고자 하면 걷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목표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달리는 것뿐이다. 오를 때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 걸으면 보인다. 미세한 것들, 아름다운 것들이, 걷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걸음으로써 볼 수 있다. 그래서 걷는 것이 행복하다.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걷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다는 것, 고단한 마음을 잠시만 잊고 작은 것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그것이 걷는 자의 행복이다. 걷기의 행복을 느끼게 된다면 길게만 느껴지는 거리도 어느새 축지법 쓰듯이 완주하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 류시화 제3시집
류시화 지음 / 문학의숲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의 시련으로부터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이 남자가 사는 법

 

 

 

 

 

 

 

빈센트 반 고흐  「귀가 잘린 자화상」 1889년

 

 

 

37세의 젊은 나이에 넓은 보리밭 한가운데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을 버리지 못했던 한 사나이가 있었다. 자신의 가슴을 향해 총을 겨눈 지 이틀 만인 1890년 7월 29일 동생이 지켜보는 앞에서 눈을 감았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정신질환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눈을 감은 뒤에야 세상은 그를 알아주기 시작했다. 그가 바로 인상주의의 거장, 빈센트 반 고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서양화가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고흐는 정말 '불행'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릴 정도로 온갖 시련과 고통을 겪었다. 사랑하던 여인과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하고 아버지까지 사망하자 큰 상실감에 빠진다. 광적인 신앙을 갖기도 했고 자기 학대를 일삼기도 했다. 술과 담배, 정신질환으로 몸과 마음은 쇠약해져만 갔다. 고흐는 잘 알려진 대로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았고 아를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고흐에게 정신병원은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병동에 생활하는 동안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흐는 "삶이 다른 데가 아닌 정원에서 펼쳐진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슬프지 않다"라고 털어놓기도 한다.

 

고흐는 정신병원 내부에 마련된 정원을 거닐면서 정원의 아름다운 모습을 캔버스에 담아냈다. 오히려 세상과 단절된 정신병원에서의 생활은 고흐의 예술혼을 꺾지 못했다. 정원에 있는 꽃과 나무에 둘러싸인 채 홀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고흐에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정신병원에서 놓여나자마자 들판으로 달려나가 꽃핀 나뭇가지마다 찾아 다니며 온종일 그림만 그렸을 고흐의 모습이 상상된다. 지독한 삶의 시련으로부터 만신창이가 된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그림에 몰두했던 것이 그를 화가로서의 삶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Vecent, Now I think I know.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돈 맥클린의 노래 'Vecent'의 아름다우면서 슬픈 멜로디와 가사는 고흐의 불행한 사연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고흐가 불행한 삶의 고통들을 어떻게 극복했고 견뎠는지 잘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리고 고흐가 왜 삭막하고 음침한 정신병원 내부의 정원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여러 점 그렸는지도.

 

고흐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정원 속에 들어가면 꽃과 나무와 대화를 나눈다."라고 했다. 세상에 의해서 고집스럽고 괴퍅한 '아웃사이더'로 낙인 찍힌 채 살아가야만하는 고흐의 서글픈 심정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만약에 고흐가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않은 채 홀로 남의 정원 한가운데서 꽃 한 송이 앞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면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상만 해도 짐작이 간다.  

 

고흐는 꽃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자신의 예술을 알아주지 못한 세상에 대한 자조 섞인 비애를 뱉어냈을까 아니면 사랑하는 연인과 밀애를 나누듯이 꽃의 아름다움을 높이 사는 감미로운 표현을 했을까? 그가 정확하게 어떤 말을 했을지 확인하는 방법은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고흐는 어떻게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게 된 자신의 처지를 꽃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했을 것이다. 불행한 삶을 살다간 고흐의 인생을 연상시키게 하는 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류시화 시인이 쓴 <오월 붓꽃>이다. 이 시에는 고흐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붓꽃과 그를 심은 화자가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빈센트 반 고흐 「붓꽃」 1889년

 

 

 

 

봄눈이 내리던 날

오월 붓꽃을 심었지요

병을 앓고 난 끝이었는데

당신은 말했지요

아직 눈이 몇 차례 더 내릴 거라고

그 덕에 뿌리가 강해질 것이라고

늘어진 쥐똥나무 가지를 바람에 묶어 놓고

잠이 덜 깬 흙을 어루만져 주자

당부할 필요도 없이

봄은 말하는 듯했지요

잎을 내기 위해서는 상처를 견뎌야 한다고

 

(중략)

 

신비에 가까운 보라색 얼굴

겨우 겨울을 넘긴 가난과 화려

일시적인 소유에 기뻐하는 순간이 지나면

마지막 꽃잎을 떨구면서 오월 붓꽃은

속삭이는 듯했지요

나는 당신이에요, 나는 죽지 않아요

또 여러 번의 봄이 지나고

이곳에 나 혼자 남는다면

그래도 혼자 남는 게 아니라는 걸

오월붓꽃이 말해 주겠지요

 

(생략)

 

 

- <오월 붓꽃> 부문, p 58~59 -


 

 

마음의 병으로 괴로워하는 화자는 봄눈이 내리던 5월에 붓꽃을 심었다. 그는 애초부터 남은 삶을 더 이상 연명하기를 바라지도 않을 정도로 회의적이다. 그러던 중 화자는 우연하게 자신이 심은 붓꽃의 작은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붓꽃은 화자에게 말을 건넨다.  "아직 눈이 몇 차례 더 내릴 겁니다. 그 덕분에 뿌리가 강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따뜻한 봄을 맞이하게 되면 이파리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 때까지 차디찬 겨울, 즉 삶이 안겨준 시련으로 인해 생긴 상처의 고통을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 힘든 시간이 지나가고나서야 붓꽃은 화려한 보라색을 발하면서 아름다운 꽃 한송이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붓꽃도 화무십일홍(花無十一紅)이라는 불변의 과정을 거스를 수 없는 법. 화려했던 보라색 꽃이파리가 하나씩 땅으로 떨구어지기 시작하면서 붓꽃은 낙화(落花)를 눈 앞에 두게 된다. 그러면서 붓꽃은 자신을 심어주고, 보살펴주고 아껴준 화자에게 애정이 담긴 말 한 마디를 남긴다. "나는 당신이에요, 나는 죽지 않아요."  자신의 죽음 때문에 삶의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붓꽃이 화자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였다.

 

붓꽃의 꽃말은 '기쁜 소식'이다. 아름다움을 발산하기에는 붓꽃에게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붓꽃은 낙화의 시간이 다가온다고해서 절대로 절망하지 않는다. 붓꽃의 생은 여기서 한 번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내년 봄에 다시 개화하기 때문이다. 꽃봉오리가 활짝 펴기 전까지 이어지게 될 추운 겨울철을 견대내면 된다. 붓꽃 한 송이가 피고 지는데까지의 시간적 과정은 인간의 흥망성쇠를 압축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는 기쁜 일, 불행한 일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줄곧 행복한 삶을 살다가 갑자기 불행이 찾아올 수도 있다. 우리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행 앞에서 스스로 괴로워하고 비탄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불행한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다시 찾아오게 될 희망을 기다린 채 살아간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세상으로 받은 정신적 상처를 혼자 치유한다고해서 빨리 낫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의 정신적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먼저 따뜻한 구원의 손길을 건내줄 수 있고 '공감'과 '연대'로 끌어안아야 한다. 고흐는 운이 좋게도 자신의 외골수적인 성격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행복함을 맛볼 수 있었다. 동생 테오 반 고흐, 닥터 가셰 박사, 우체부 룰랭 씨 그리고 넓은 정원 속에서 그가 먼저 말 걸어오기를 기다렸던 수많은 꽃과 나무들. 

 

 

  

 

 내 인생의 화연영화는 바로 너와 함께 하고 있는 그 순간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사자성어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의미한다. 영화 탓인지는 몰라도 어쩐지 슬픔이 묻어 있는 느낌이다. 아름다운 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는 아쉬움, 그래서 더 깊게 묻어나는 애잔함까지. 그래서 나는 한 때 잠시나마 화양연화는 별도로 '존재해서는 안되며' 삶의 모든 시간은 이른바 '전성기'이든 아니든 모두 똑같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류시화 시인의 <화양연화>를 읽는 순간, 그런 인식은 단지 화려했던 시간 뒤에 찾아오는 아쉬움과 후회를 어떻게든 잊어버리기 위한 자기합리화적인 위선이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마르크 샤갈  「생일」 1915년

 

 

 


 스물두 살의 봄이었지

 새들의 비밀 속에

 내가 너를 찾아낸 것은

 책을 쌓아 놓으면 둘이 누울 공간도 없어

 거의 포개서 자다시피 한 오월  

 내 심장은 자주 너의 피로 뛰었지

 나비들과 함께 날들을 세며

 

 다락방 딸린 방을 얻은 날

 세상을 손에 넣은 줄 알았지

 넓은 방을 두고 그 다락방에 누워

 시를 쓰고 사랑을 나누었지

 슬픔이 밀려온 밤이면

 우리는 조용한 몸짓으로 껴안았지

 

 어느 날 나는 정신에 문제가 찾아와

 하루에도 여러 번 죽고 싶다. 죽고 싶다고

 다락방 벽에 썼지

 너는 눈물로 그것을 지우며

 나를 일으켜 세웠지

 난해한 시처럼 닫혀버린 존재를

 

 내가 누구였는지 아는 사람은

 너밖에 없었지

 훗날 인생에서 우연히 명성을 얻고

 자유로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그 때가 나의 화양연화였지

 다락방 어둠 속에서 달처럼 희게 빛나던

 그 이마만이 기억에 남아 있어도

 

 

 - <화양연화> 부분, p 68~69 -

 

 

 

이 시는 제목과 내용만 본다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 그 중에서 뜨겁게 사랑을 나누던 과거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는 분명 '사랑 노래'이다. 연시(戀詩)는 대개 실연의 상처를 노래하거나 사랑의 대상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함으로써 임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자의 고독과 상처를 드러내는 특징을 갖는다. <화양연화>의 전체적 내용을 본다면 과거 사랑을 나누었던 임과의 행복했던 시절을 읊조리고 있지만 마지막 5연에서 화자는 지나간 과거의 시절이 자신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화자가 그리워하는 '사랑'이란 단순히 상대에게 성적으로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화자는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동떨어진 채 살고 있는 '난해한 시'인이다. 어떻게 보면 <화양연화> 속 화자야말로 주류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던 예술가 반 고흐의 삶과 가깝게 느껴진다. 시인인 화자는 자신의 문학성이 널리 알려지지 못한 현실에 대해서 좌절감에 시달리다 못해 정신적으로 큰 문제로 고민하게 되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 직전까지 오게 된다. 하지만 화자에게는 본인의 슬픔을 이해해줄 수 있는 연민의 눈물을 흘릴 줄 알며 나락에 빠진 불쌍한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너'라는 연인이 존재하고 있다. 시 속에 등장하는 '나'의 연인 '너'는 화자가 쓴 난해한 시마저도 이해할 정도로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더 정확하게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시의 마지막 연에서도 암시하고 있듯이 '나'는 현재 '너'와 단절된 상태 중이다. 그리고 또 다시 그 아무도 돌봐주지도 않는 외톨이 시절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후회한다. 시인 '나'에게 있어서 화양연화는 유명한 시인이라는 직함이 만들어주는 명예와 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화자의 진정한 화양연화는 자신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고 힘들 때마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안아주고 보살펴 주었던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늦었으리. 이제는 '너'의 존재가 남기고 간 다락방 안에서의 추억은 '고독'이라는 어두운 감정에 지배당해 점점 기억의 망각 속으로 퇴색되어질 뿐이다.   

 

 

 

 

 우리는 '류시화'의 시가 더 필요하다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 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떠나지 않을 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침묵할 것이 아니면 말하지도 않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이면, 미워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디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 번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 <옹이> 전문, p 12 -

 

 

 

동양적 자연관에 비추어 보면 인간은 자연과 조화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즉, 자연을 자신과 분리시킨 객관적 관찰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그 속에서 자연과 합일된 삶을 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상태를 물아일체(物我一體) 등으로 표현한다.

 

두 번째 시집 발표 이후 무려 15년 만에 쓴 류시화 시인의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에 수록된 시들은 대체적으로 '물아일체'의 자연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주체인 '화자'와 객체인 '자연', 즉 꽃, 옹이, 뭉돌, 반딧불이 등 일체 및 조화를 이루었다는 감정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물아일체적이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동양적인 자연관과 상통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시인이 단지 '인간 대 자연'이라는 범위의 틀 속에서 조화만을 강조하고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물아일체적 사상을 좀 더 '인간 대 인간'으로 전위함으로써 현대사회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공감'과 '연대' 그리고 '조화'를 그리워하고 있다. 시인은 과거의 시간으로부터 '공감'과 '연대'의 감정을 끄집어내어 시를 통해 감정이 빈곤한 독자들을 위해 환기시켜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고통, 불행, 시련을 견뎌줄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기도 한다.  

 

시집의 추천사를 쓴 이문재 시인은 우리에게는 시가 더 필요하며 더 많아져야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내'가 '나'를, '내'가 '너'를 만나기 힘들어진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속세의 명예와 부에 대한 탐욕을 놓지 않으면서도 감정의 빈곤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요즘, 우리에게는 '류시화'의 시가 더 필요하다. 네 번째 시집이 언제 발간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빛나는 문장들이 벌써부터 나오기를 기다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정현종

그래 살아 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사람의 인생이란 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른다.
성공이라는 파랑새를 잡기 위해 무심코 쫓아가다가는
재수 없게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다.
행복은 항상 우리 곁을 지켜주는 오랜 동지가 되지 못한다.
갑자기 그가 등을 돌리는 순간 박복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와
때때로 우리를 괴롭힌다.

하지만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생 앞에서 절대로 무기력해서는 안 된다.
공기 빠진 구멍 난 공처럼.

왜 데이비드 베컴이 프리킥의 달인이 될 수 있었는가?
단순히 선천적으로 뛰어난 신체조건만이 이유가 아니다.
그가 찬 공은 공중 위로 떠올라 골대 안으로 정확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이 좋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없다.
골을 넣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오른쪽 축구화 발 끝에 담은 채
공을 찼기에 가능하다.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으려는 활력에 찬 의지만 있다면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삶의 궁극적인 목표지점을 향하여 도약할 수 있다.

어디로 튈지도 모르는 울퉁불퉁한 세상 속에서 삶의 목표지점만을 향해
힘차게 튀어 올라 쉽게 떨어지지 않는 Golden boal이 되자.

 

.

.

.

.

.

To. 삶의 권태감과 매너리즘에 빠진 친구에게
      그리고 언제 어디서 튈지도 모르는 울퉁불퉁한 삶을 살고 있는 나
      그리고 친애하는 모든 이들에게...

 


- 2012. 5.20 my facebook & Kakaostory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2-05-22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또 다른 닉이 짬뽕공이어서 말이죠, 이 시 좋아하는데~.
바람 빠지면, 깁고 재정비하면 돼죠, ㅋ~.
잘 지내시죠?^^

cyrus 2012-05-26 10:54   좋아요 0 | URL
이제서야 나무꾼님 댓글 확인하게 되었네요 ㅠㅠ
나무꾼님도 잘 지내고 계시죠? 그런데 왜 닉네임이
'짬뽕공'인지 궁금하네요 ^^
 

 

 

 

 

 

 

에스메랄다 (Rose. Esmeralda)

 

 

 

 

 

 

 

빅토르 휴고 (Rose. Victor Hugo)

 

 

 

 

 

 장미 한 송이

 

                                                          용혜원


 장미 한 송이 드릴
 님이 있으면 행복하겠습니다.

 

 화원에 가득한 꽃
 수많은 사람이 무심코 오가지만


 내 마음은 꽃 가까이
 그리운 사람을 찾습니다.

 

 무심한 사람들 속에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장미 한다발이 아닐지라도
 장미 한 송이 사들고
 찾아갈 사람이 있는 이느 행복한
 사람입니다.

 

 꽃을 받는 이는
 사랑하는 님이 있어 더욱 행복하겠습니다.

 

 

 

오늘은 로즈데이(Rose). 연인들 간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장미꽃을 주고 받는 날이다. 아직까지도 모태솔로 부대를 전역하지 못한 혹자들은 5월 14일의 로즈데이를 장미꽃 판매 수익을 올리기 위한 상업주의가 만들어 낸 기념일이라고 '열폭'(열등감 폭발)하고 있다. 하지만 로즈데이의 유래가 어떻든 간에 연인 간의 사랑을 꽃 선물로 표현하고 전달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요즘에는 연인들끼리 주고받는 선물들이 점점 물질화되어 간다지만 가끔은 이런 아름다운 꽃도 사랑의 감정을 듬뿍 담아 선물해주는 것도 좋을 듯하다. 특히 오늘 같이 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첫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에는...

 

 

 

 

 

 

 

 

 

 

 

 

 

 

 

 

 

 

 

아름다운 장미 사진을 찾기 위해서 검색해봤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한 품종이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웠다. 꽃잎 색깔도 다양해서 그 중에 이쁜 장미 한 송이 고르느라 나름 고심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한다는 마음으로 장미 이미지 두 장을 골랐으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부디 용서해주시길. 서재 이웃님들.  하필 내가 고른 장미 품종 이름이 '에스메랄다'와 '빅토르 위고'다. '에스메랄다'는 위고의 대표작 『노트르담 드 파리』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이다.

 

참고로 붉은색 장미의 꽃말은 '욕망, 열정,기쁨, 아름다움'이다. 세상 사람들이 멸시하던 꼽추 콰지모도와의 사랑으로 비극적으로 끝나버렸지만 추한 외모보다는 내면의 감정에 매료된 집시 여인 특유의 아름다우면서도 열정적인 사랑을 품었던 에스메랄다와 잘 어울린다.

 

비록 나는 장미 한 다발 줄 수 있는 '님'은 없지만 로즈데이라고 해서 꼭 연인들끼리 장미를 주고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같은 특별한 날에는 바쁜 일상 속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장미 꽃 한 송이가 주는 아름다움과 고혹적인 향기를 느껴봤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마그리트의 그림과 작년 나가수 1기 때 김범수가 불렀던 민해경의 '그대 모습은 장미' 동영상으로 마무리하겠다.

 

서재 이웃분들 모두 오늘 하루,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가득하기를... ^_^  

 

 

 

 

 

 

 

르네 마그리트  「레슬러의 무덤」 1960년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리시스 2012-05-14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요? 맞다, 오늘 로즈데이구나..(기념일과 좀 동떨어져 살거든요)
예쁘다, 이름이 <파리의 노트르담>.. 오, 제가 좋아하는 건데..저는 몰랐..

꽃한 송이 택배로 부탁해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2-05-17 16:24   좋아요 0 | URL
이제야 댓글 확인했어요 ㅜㅜ
제가 학생 신분이 아니라 돈 버는 사회인이었다면
정말 장미 한 다발 정도는 택배로 전해드리고 싶어요 ^^;;

잘잘라 2012-05-15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스메랄다, 예뻐요^^
김범수의 장미도 좋네요^^

cyrus 2012-05-17 16:25   좋아요 0 | URL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메리포핀스님도 예쁘고 좋아요 ^^

카스피 2012-05-15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로즈데이란 날이 있는지도 몰랐네요^^

cyrus 2012-05-17 16:26   좋아요 0 | URL
ㅎㅎ 사실 저도 이런 날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성격인데,,
무슨 특별한 날, 기념일 같은 거 한 번 보게 되면 잊혀지지 않더라고요.^^;;

마녀고양이 2012-05-17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장미 선물 기쁘게 접수합니다~
사이러스님께 즐거운 일이 가득하시기를!

cyrus 2012-05-20 22:12   좋아요 0 | URL
마고님도요. 그리고 팬더님과 코알라에게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

맥거핀 2012-05-18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즈데이에 장미'만' 주면 안되는 거 아시죠? ㅋ

그래도 장미 사진이 너무 이쁘네요.^^

cyrus 2012-05-20 22:13   좋아요 0 | URL
에이~~~!! 잘 알죠 ㅋㅋㅋㅋ
 
목계장터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육필시집
신경림 지음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야, FTA가 뭐고?"

 

최근에 중간고사 끝난 뒤에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만나 나들이 할 겸 팔공산에 갔다 온 적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팔공산까지 차로 운전해서 가는데만 1시간 이상 족히 걸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 날이 어버이날이 다가오는 이틀 전인 주말이었고 나들이하기에는 엄청나게 좋은 날씨였다. 수많은 차량 행렬들이 팔공산 쪽으로 몰려 있다보니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시간이 지체되었다. 거의 한 시간 동안 한증막 같은 차 안에 있었던 친구 일행들은 여행길의 무료함을 달래기에는 수다의 재미로는 약발이 떨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뒷좌석에 자리잡은 친구들은 벌써 잠에 빠져들었고 재수없게 운전석을 앉아야하는 이 불행한 친구는 계속 운전만 열심히 했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간만에 여유롭게 창 밖의 풍경을 빤히 쳐다봤다. 차 밖 풍경은 똑같았다. 넓은 밭, 산 그리고 시골 마을이 보였을 뿐이었다.

 

팔공산으로 향하는 내내 20분 동안 침묵의 시간이 이어져오다가 갑자기 운전하던 친구 녀셕이 뜬금없이 침묵을 깨뜨리는 질문 한 마디 했다. "야, FTA가 뭐길래 농민들이 왜 반대를 하노?"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던 나는 운전하고 있는 친구의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질문에 몇 초 간 당황했다. 갑자기 웬 'FTA'?  

 

그래도 친구의 질문에 나름 내가 알고 있는 FTA에 관한 모든 내용들을 쉽게 설명해주었다. 사실 질문했던 친구가 시사상식에 많이 약한 녀석이라 어렵지 않은 용어로 설명하려고 했다. 무역을 통해 거래하는 국가 간의 무역장벽을 제거하여 모든 상품들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무역협정이며 이 협정 체결로 인해서 이익을 보는 업종이 있는 반면에 반대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업종이 있다고 간략하게 설명해서 대답해주었다. 거기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업종'으로 농업 및 축산업으로 예를 들어 설명했다. 친구는 내 설명이 끝나자마자 '그렇구나, 알았다'라고 간단하게 이해했다는 의미로 대답해버렸다. 20분 만에 침묵을 깨뜨린 대화는 단 3분 만에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우리 모르게 잊혀져가고 있는 농민들의 삶 그리고 울분

 

지금 다시 그 때의 대화를 돌이켜보면 과연 그 친구가 'FTA'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있는 'FTA'는 그 협정 자체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여당이 날치기로 통과해야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던 아주 중요한 경제협정이며 정부의 체결 추진에 대해서 반대적 여론이 많았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FTA'에 대해서 기본적인 내용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FTA' 협정 자체의 내용만을 순전히 이해했다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DTA' 협정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건 그 협정 'FTA'로 인해서 경제적 손실을 받아야하는 수많은 농민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해본 적이 있으며  또한 그들이 내는 절망의 목소리를 들어봤냐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3월 5일, FTA가 정식적으로 발효된 이후로는 하늘을 찌를듯한 FTA 반대 여론의 목소리가 잠잠해졌다. 게다가 중요한 총선이 진행되었고 국민들이 내린 결과를 받아들인 여야는 총선이 끝난 지금까지도 불협화음이 멈추지 않고 있다. 정치적 파행이 이어져나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어느새 FTA 문제 현안은 점점 뒤로 밀려나간 듯 하다. 비단 FTA 문제뿐만이 아니다. FTA 때문에 울어야했던 농민들 역시 잊혀져가고 있다.

 

우리나라에 신경림처럼 고단한 민중의 삶에서 시재(詩材)를 찾으며, 농민의 피로와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시인이 없을 것이다. 특히 급속도로 변해나가는 도시화 및 경제성장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신경림처럼 농촌 현실을 그려내는 젋은 시인이 등단하는 모습을 이젠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신경림의 시는 문학사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

 

특히 1971년에 발표한 그의 처녀작이면서도 대표작이 된「농무(農舞)」속 농촌의 비극적 현실과 오늘날 농촌의 현실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1960~1970년대 산업 사회에서 한국 사회는 큰 변화에 직면했다. 근대화를 주도하였던 정부는 공업화, 산업화 정책을 채택했고, 이에 따라 농업은 한국 사회의 주변부로 밀러나기 시작했다. 저곡가 정책에 따라 농민들은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값으로 그들의 피와 땀이 바쳐진 농작물을 싼값에 내다 팔아야 했고, 이를 견디지 못한 농민들은 도시로 이주하여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고 나섰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삶도 녹록치 않았다. 그들은 도시의 주변부에서 빈민층을 형성하거나 싼값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농촌 현실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을 뿐이다. 이번에 FTA 협정으로 인해 외국 농작물들의 수입이 늘어나게 됨으로써 우리나라 땅에서 자라난 국내 농작물들뿐만 아니라 안 그래도 산업화로 인해 소외된 농민들의 입지가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농민들은 오랫동안 해온 농사일에 대한 보람이 사라질 것이다, 농촌 현실에 대한 뿌리 깊은 좌절감과 울분만이 남을 뿐이다.     

 

 

 

 

 

 

 

 

 

 

 

 

농무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pp 12~15)

 

 

「농무」에서는 농민의 한(恨)은 신명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신명은 분노를 삭이면서 형설된 역설적인 의미를 지닌다. 표면적으로는 흥겨움의 표현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살의가 느껴질 정도의 분노의 감정이다. 흥겨워야 할 춤사위는 슬프고 처절하다. 그것은 농민이 온몸으로 겪은 농촌의 현실이었다.

 

 

 겨울밤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 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명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뱃다더라, 어떡할거나.

 술에라도 취헤 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 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는 닭이라도 쳐 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 다오 우리를 파묻어 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편지라도 띄워 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 볼거나.


 (pp 8~11)

 

 

「겨울밤」은 「농무」처럼 현실에 대한 절망을 직설적으로 표출하기보다는 담담한 어조로 그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 오히려 암울한 현실에서 느껴지는 고뇌와 분노를 새하얀 '눈'으로 덮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혼자서 분노에 차더라도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다.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잘 아는 사람은 농민 본인들 밖에 없다.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일수록 겨울 밤을 보내는 농민들의 고뇌는 더욱 새까맣게 타들어가 깊어져만 갈 뿐이다.

 

 

 

 

 농민들의 처절한 몸짓을 밝혀 줄 '작은 불꽃'마저 사그라진다면...

 

 

 

 

 

 

 

 

파장(罷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고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 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pp 16)

 

 

옛날에는 현실에 대해서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농무」)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마음놓고 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도 없는 일처럼 꾹꾹 덮어두는 게 제대로 세상을 사는 방식임을 가르치고 또 익히던 시절. 그야말로 가난이 죄라서 문학예술마저 그 가난을 드러내기를 주저했고, 오히려 외면했던 시절이었다.

 

'농무'라는 시에서 조근조근 따지듯이 되새겨낸 세계는 현실의 사실적 묘사 하나만으로도 크나큰 문학사적 ‘사건’이 될 만했다. 당대의 사회적 현실을 문학적인 방식으로 고발할 수 있었다. 얻어 쓴 조합 빚과 술집 색시의 분 냄새와 담뱃진내 나는 화투판이 소외의 장막을 활짝 걷어 젖히고 신선한 시어가 되어 한국문단의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파장」)은 화두를 접한 '못난 놈'들이 비로소 소줏잔을 들이키며 당당히 어깨를 흔들 수 있게 되었다. 한국현대사에서 '민중'에 대한 본격적인 인식은 이렇게 신경림의 시에서 비롯된 현실에 저항하기 위한 '작은 불꽃'에서 피울 수 있었다. 이 '불꽃'을 통해서 우리 대중들은 농민들의 처절한 몸짓을 보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의식에 공감할 수 있었다.

 

시골에서는 농업에 종사하는 노년층 농민들이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고 농촌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은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 도시로 향하고 있다. 더 이상 농민들의 현실은 더욱 암울해질 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경림의 시가 만들어 낸 '작은 불꽃'만큼은 절대로 사그라져서는 안 된다. 이것 또한 잊혀진다면 놈민의 감정과 의식을 대변해주고 농촌의 암울한 상황을 대중들에게 환기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언어가 사라지게 되리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2-05-13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이 구절만으로도 기억에 콱 박히는 시입니다.처음 읽을 때 이 구절이 그렇게 재밌어서 혼자 웃었어요.

cyrus 2012-05-13 23:48   좋아요 0 | URL
시구만 본다면 재밌지만 막상 그 의미를 현실을 비추어 헤아려보면
씁쓸하죠? ^^;; 이런 시가 오랫동안 읽혀지고 알아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