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vard Munch 「despair」 1892

 

 

 

철길 너머에서 기차가 온다

 

간이역에서 노을이 탄다

 

그 다음 노을은 기차를 놓친다

 

밀림 끝에서 물소 떼가 풀을 뜯는다

 

강 건너편의 노을이 한 번 더

 

기차를 세운다 먼 우렛소리를 세운다

 

머뭇거리는 기차의 유전자를 지나

 

철없는 부들이 키를 세운다

 

아르니카 꽃이 한 동안 피어 있다

 

 

- 유병근 ‘뭉크에게 보내는 문자메시지’-

 

 

 

 

 

 

 

Giorgio de Chirico 「The Melancholy Departure」 1914

 

 

 

뭉크는 일그러진 존재의 형상과 짙은 색조를 통해 인간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보여준 화가다. 그런 뭉크에게 문자 메시지로 전송하는 시인의 풍경 또한 불안한 기운이 감돈다. 흡사 조르지오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회화를 연상시킨다. 생의 간이역엔 어둠이 내리고 기차는 놓치기 십상이다. '너머' '끝' '건너편' '먼'이란 아득하고 두려운 공간에서 큰 소리 치거나 소외된 채 서로 어긋나는 존재들. 그들이 보내오는 메시지를 받아 판독해내는 것, 그것이 세상과 삶의 내면을 드러내는 그림 혹은 시다. 그나저나 오늘이 뭉크 탄생 150주년인데, 생일을 축하할 겸 이 시를 하늘에 있는 뭉크에게 보내고 싶은데 과연 마음에 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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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 천양희  '뒤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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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사람이 사랑이라 믿고 살다 보면 온몸에 상처가 나고, 뒤틀린 형태와 내 삶의 옹색한 크기가 정해지게 마련이다.

 

다들 그렇게 살아야겠지만, 잠시 거기에서 벗어난 내 사랑을 온전히 보고 싶다면

 

지금 헐벗은 자기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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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3-11-08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자신이 단단해져야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상대방도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cyrus 2013-11-08 21:01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디킨슨의 짧은 시를 읽으면서 그동안 느꼈던 사랑에 대한 제 생각에 대해서 반성할 수 있었어요.
 

 

 

 

 

 

빈센트 반 고흐  「요양원 정원」 1889년

 

 

 

 

 

 

 

 

 

 

 

 

 

 

 

 

 

 

 

요양원 정원의 테라스에 초점을 둔 이 작품에는 소나무와 돌 벤치, 시든 장미 옆을 걷는 환자 셋이 그려져 있다. 빈센트는 번개를 맞고 부러진 나무의 그루터기에 특히 매혹되었다. 그의 문학적 상상력은 이를 우쭐대는 남자의 패배로 보았다. 그림에서 그는 은근히 분노를 표현할 수 있었다. (랄프 스키 『반 고흐의 정원』87쪽)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주어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

반 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주어를 잃고 헤매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된 시인의 시를 읽다가 요양원 한가운데 부러진 나무 그루터기로 남은 네덜란드 사내가 생각났다.

 

 

201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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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11-04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흐의 그림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군요.
기형도 님의 시였나요?

사이러스님, 평온하고 즐거운 한주되세요.

cyrus 2013-11-04 21:2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맞아요. '병'이라는 제목의 기형도 시인이 쓴 거예요. 알라딘 중고샵에서 발행기간이 조금 오래된 기형도 시집을 발견했어요. 오랜만에 시집을 읽고 있었는데 예전에 눈에 들어오지 못했던 이 시를 읽다가 고흐의 그림이 생각났어요. 마고님 말씀처럼 비록 고흐는 자신을 잘려진 그루터기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강인한 생명력과 예술혼은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물론 시인이 남긴 시들 또한 마찬가지고요 :)
 

 

 

 

 

 

 

 

 

 

 

 

 

 

 

 

거울 

 

                                    구석본 

 

 

그가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 한 남자가 죽어 있다

죽은 남자가 웃는다 ‘웃음’이 죽었다

‘좋은 아침’이라고 죽는 남자가 말하자

‘좋은 아침’이 죽었다

남자는 ‘웃음’과 ‘좋은 아침’의 죽음을 보지 못한 채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향수를 뿌리고

로션을 가볍게 바르고는 다시 웃는다

웃음이 두 번 죽지만 남자는 여전히 보지 못한다

이번에는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이 핑그르 돌다가 죽어버린다

남자는 쌓이고 쌓인

그들의 죽음을, 남자의 죽음을, 오늘의 죽음을,

끝내 보지 못한 채 떠난다

남자가 떠난 후,

시취(尸臭)가 향수처럼 한동안 맴돌다가 사라지자

비로소 거울 속에는 복제된 어제의 풍경들이

속속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제 죽음은 일상에 미만해 있다. 일상의 죽음은 그렇게 거울 속 허상에게도 검은 손아귀를 내민 셈이다. 가히 ‘죽음의 죽음’이라 할 사건이 우리가 아침마다 마주하는 거울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웃음’이 죽고, ‘좋은 아침’도 죽었다. 그가 부는 휘파람마저 “핑그르 돌다가 죽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내 이 모든 죽음을 끝내 보지 못하고 떠난다. 그는 이 모든 죽음의 근원이자 이유를 알지 못하고 떠나지만, 우리는 그 답을 시의 결미에서 보게 된다. 이 모든 죽음은, 그러니까 모든 것이 “복제된 어제의 풍경들”이라는 점이 근본 이유이다. 즉, 실체는 이미 죽어 부재하며, 거울 속 같은 허상들만 속속 살아나고 있는 것이 우리가 매일 죽음처럼 반복하는 일상이라는 전언이다.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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