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웁니다


빗방울에 내 간절한
바람과 그리움을 담아
당신의 마음에 떨어질 수 있도록 빕니다.
하지만...
그대를 향한 빗방울은
어느새 눈물이 됩니다
그래서 내 가슴은 웁니다

나의 통증을 씸어 삼키며
지워보려 해도 잊을 수 없는 당신
그래서 내 가슴은 웁니다.

그대가 보여준 그 마지막 웃음이
그대가 숨이 끊어질 때까지
나에게 힘들게 했던 그 말들이
내 가슴을 울게 합니다

당신 때문에 울보가 된 나
그래서 나는 웁니다.

그래서...
그래서...

 

 

written by cy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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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雪夜)

                                               김광균


어느 먼-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먼-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우에 고이 서리다.




... 겨울날의 하얀 추억, 그 결정(結晶) 위에 수정(水晶)처럼 고이 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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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떠나간 여름이 남기고 간 깃털일까,

 

아니면 한 번에 9만 리나 날아다닌다는 전설의 붕새(一)가 남긴 거대한 깃털일까.

 

 

- cyrus 2012.10. 29  어느 가을날 -

 

 

 

 

 

 

 

 

 

 

 

 

 

 

 

 

 

 

 

 

 

 * 붕새 (一) : 『장자』〈소요유〉편에 나오는 상상 속의 새. 한번에 9만 리를 날아오르는데 날개는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고 파도가 3천 리에 이를 정도로 큰 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거대한 크기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마음껏 누리는 위대한 존재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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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
휘엉청 달빛은 더 밝아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종일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 서정주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

 

 

 

환한 달빛 미소에 수줍어 구름 사이에 숨은 보름달을 반갑게 맞이하여 웃음이 가득한 행복한 추석 보내시기 바랍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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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9-29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정주 시인은 푸른 풋콩 넣은 송편의 기억이 있나 봐요.^^
마지막 문장 보며 싱긋~ 넉넉하게 입꼬리가 올라가요.
사이러스 님도 행복한 추석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제 음식하러 가봐야겠어요.~~~

saint236 2012-09-2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도 행복한 추석 보내시길...
지갑은 어쩐지 몰라도 마음만은 풍요로운 명절이 되세요..
 
백석 문학전집 1 - 시 서정시학 문학전집 3
백석 지음, 최동호 외 엮음 / 서정시학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백석의 시는 언제나 읽어도 은은하고 구수하고 슬프고 아름답다. 먹고 입고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외로워하고 그리워하는 우리 모든 삶이 시 속에 정감어린 토속어로 녹아 있다. 그의 시는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며, 시인의 시선은 속속들이 깊으면서도 좁은 곳에 얽매어 있지 않다. 한국의 시인 중에 백석처럼 전통과 현대가 제법 잘 어울릴 정도로 공존하고 있는 시를 쓰는 이가 보기 드물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 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p 121) -

 

추운 겨울, 하얀 함박눈이 내릴 때면 뜨끈한 어묵과 사케 그리고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함께 떠올린다. 이국적인 이름의 여인 나타샤 그리고 토속적인 분위기의 흰 당나귀. 전통과 현대가 오묘하게 어울리고 있다. 이 시는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반복해서 읽어도 전혀 차갑지도 않으며 쓸쓸하지도 않다. 어느 눈 내리는 밤, 소주를 마시면서 한 청년이 아름다운 나타샤를 기다린다. 그는 소주잔을 앞에 놓고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나타샤'는 가난한 화자(백석)로 하여금 낭만적 사랑의 도피행을 꿈꾸게 하는 견고한  뮤즈(Muse)이다. 일체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출출이(뱁새)만 외로이 우는 마가리('오막살이'의 평안 방언)로 숨어 들어가려는 사내의 의지에 나타샤가 적극적인 호응을 한다. 그녀는 사내의 귀에 대고 자신들의 사랑이 세상에 져서 쫓겨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속악한 세상을 거부하는 적극적 행위라고 속삭인다.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화자의 겨울은 춥지도 않으며 곤궁하지도 않다. 나와 나타샤가 만들어 내는 사랑의 열기는 추운 겨울을 더욱 포근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을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백 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p 185~186) -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신의주 남쪽 지역에 이는 마을인 유동에 화자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의 주인 이름이 박시봉

* 삿 : 삿거리,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 쥔을 붙이었다 : 주인을 정하여 세 들었다

* 누긋한 : 메마르지 않고 눅눅한

* 딜옹배기 : 질흙으로 빗은 옹배기(둥글넓적하고 아가리가 벌어진 작은 그릇)

* 북덕불 : 짚이나 풀, 나무 부스러기 등이 뒤섞여 엉쿨어진 뭉텅(짚북데기)로 태운 불

* 굴기도 : 구르기도

* 나줏손 : 저녁 무렵

* 바우섶 : 바위 옆

 

 

한문으로 된 제목, 짧지 않은 내용의 문장들. 쉽게 기억되지 않을 이 낯선 제목 탓인지 그 밖의 백석의 대표작들처럼 자주 읽는 편이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무엇보다 시를 끌고 가는 유장한 호흡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가야 하는 한 외로운 사내가 흥얼거리듯 고백하는 '슬픔과 어리석음'이 읽을 때마다 나에게는 서러운 노랫소리로 들려온다. 거의 모든 행에서 쉼표를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그 쉼표는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처지에 선 자의 안간힘이었을까. 쉼표 하나 하나에 화자의 참을 수 없는 '슬픔이며 어리석음'이 아프게 고여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순간에 화자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행동을 취한다. 상실의 끝판에서 마지막 희망을 찾으려는 화자의 몸짓이다. 감당하기 힘든 자신의 삶을 운명에 귀속시키고 체념한 화자는 다시 고통을 안겨줄지 모르는 외부의 시련에 맞서 자신을 지켜줄 상징적 표상을 설정한다. 그것이 바로 '굳고 정한 갈매나무'다. 어둠 속에 눈을 맞으면서도 의연한 자태를 유지하는 깨끗하고 바른('정한') 갈매나무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는다. 인간 누구나 상실의 체험과 극복의 과정을 겪는다. 그러기에 이 시는 상실의 고통에 힘겨워할 때 공감을 주고 지친 마음에 위안을 준다.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중략)

 

 밤이 깊어 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 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 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 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멫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멫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묵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 백 석 [여우난곬족](p 52~54) -

 

 

* 여우난곬 : '여우가 자주 나오는 골짜기'라는 뜻에서 유래한 마을이름

* 아배 : '아버지'의 방언

*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 아르간 : 아랫간

* 조아질 : 공기놀이

* 쌈방이 : 주사위와 같은 평북 지방의 놀이 도구

* 바리깨돌림 : '바리깨'는 주발 뚜껑, 이것을 팽이처럼 돌리며 노는 일

* 호박떼기 :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한 줄로 늘어서서 상대 대열의 끝에 붙어 있는 아이호박을 대열로부터 떼어 놓는 놀이

* 제비손이구손이 : 서로 마주 앉아 다리를 엇갈리게 끼우고 손으로 다리를 차례로 세며 노래를 부르는 평안도 지방의 놀이

* 화디 :나무나 놋쇠 같은 것으로 만든 등잔을 얹어놓는 기구

* 사기방등 : 사기로 만든 등잔

* 홍게닭 : 새벽에 자주 우는 붉은 수탉

* 텅납새 : '추녀'의 평안 방언

* 무이징게국 : 징게미민물새우에 무를 썰어 넣은 끓인 국

 

명절날, 여우가 나오는 골짜기의 진외갓집에 일가친척이 한데 모여 소박하고 풍요로운 공동체적 삶을 누리는 모습을 노래한, 참으로 솔직하고 흥겨운 시이다. 먹을 것과 놀이기구가 태부족이던 옛날이었지만 마음만은 풍요롭던 명절이었다. 그 시절은 그랬다. 밤늦도록 온갖 놀이를 벌이며 떠들어도 어른들 눈치 보지 않아 좋았고,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뒤엉겨 자면서도 사뭇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나 여우가 난 골에 여우가 사라졌듯이 가족들 간의 훈훈하고 푸근한 유대감 또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오늘날의 풍경이 아쉽게 느껴진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 백 석 [흰 바람벽이 있어] (p 165~166) -

 

 

* 때글은 : 때가 묻어 검게 된

* 앞대 : 평안도에서 볼 때 남쪽 지방을 가리키는 말

* 개포 :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

* 이즈막하야 : 아슥한 시간이 되어서

* 울력하는 : 힘을 북돋는

* 눈질 : 눈으로 흘끔 보는 것

* 귀해하고 : 귀하게 여기고

* 바구지꽃 : 박꽃

* 짝새 : 뱁새

 

백석이 노래한 바람벽은 추위를 막아주는 단순한 벽이 아니라 삶의 풍파를 막아주는 울타리였다. 그곳은 김이 피어오르는 더운 대구국을 앞에 놓고 지아비와 지어미, 어린 것들이 마주 앉은 정겨운 공간이다. 백석은 그 평화로운 공동체를 그리워했다. 시인에게 흰 바람벽은 조국이며, 사랑하는 여인 자야였으며, 훈김 피어나는 가족의 체취이며, 고향이었다

 

백석의 시 속에서 등장하는 화자는 어렵고 지친 자신의 처지를 담담히 바라보는데, 그렇다고 절망에서 끝나지 않는다. 운명의 짐을 하늘이 부여한 몫으로 선선히 받아들이되 꿋꿋함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조용히 길어 올린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이제는 볼 수 없는, 영영 사라져버린 일상생활의 추억을 발견할 수 있다. 백석의 시 전집은 한 권의 앨범이기도 하다. 시 속에서 묘사된 생활의 풍경 속에서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이웃, 가족들 간의 소박한 정(情)을 발견할 수 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게 된 백석의 시가 독자들, 특히 마음이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가 되어주는 '힐링 포엠'(Healing Poem)으로 오랫동안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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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9-26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이 부분도 좋고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이 부분도 좋아요.
좋아하는 시예요. 탄생 100주년이라 책이 쏟아지는구나..

되게 영화화하고 싶은 장면의 시들이 많아요.

cyrus 2012-09-27 23:17   좋아요 0 | URL
백석의 시를 읽으면 정말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인상 깊은 장면이 발견할 때가 있어요.
사실 이 시들 이외에도 '여승'이라는 시도 좋아합니다. 좋아한다기보다는
내용이 슬퍼서 백석 시집 읽으면 꼭 빠뜨리지 않고 반복해서 읽어요 ^^
이 책 말고도 다른 역자의 전집도 나왔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