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사둔지는 꽤 되었는데, 소설이란 걸 알면서도 도대체 '뱀이 깨어나는 마을'이란 게 뭘까,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뱀은 뱀..을 말하는걸까? 마을에 뱀이 나타난다니, 그걸로 이야기가 된단 말인가, 하고 자꾸 읽기를 미뤄뒀달까. 아아, 그러나 너무나 지루하고 진도가 안나갔던 코렐리의 만돌린 다음에 읽게된 이 책은 진짜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러분, 독서가 지지부진 하다면, 뱀이 깨어나는 마을을 읽으세요. 다시 독서의 환상적 세계로 안내합니다... 으하하하핫



클래라는 수의사로 일하며 조용한 마을에서 산다. 혼자 있고 싶어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불편해한다.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건 정말이지 그녀가 싫어하는 일이고,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 역시 정말 별로다. 그래서 친구도 만들지 않았고 연애도 하지 않는다. 이런 성격은 책의 초반부터 너무 잘 보여지는데, 와, 어쩌면 이런 캐릭터를 이렇게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작가 천재... 나는 감탄하며 읽어갔다.



그렇지만 그녀는 두려움에 맞서려는 용기를 가지고 있고(책 속에서도 다른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누구보다 용감하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작고 약한 존재에 대해 보살피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비록 다른 사람의 시선을 똑바로 받아내는 걸 힘들어하지만,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능력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뒤돌아서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사는 마을에 뱀이 나타난다. 숲과 함께하는 마을이니 풀뱀이 어쩌다 보이는거야 이상할 게 없지만, 이 뱀들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에 나타나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처음 그녀가 집 안의 뱀을 보게된 것도 마을 주민의 신고 때문이었는데, 갓난 아기의 몸 위에 살모사가 잠들어 있었던 것. 단순히 겨울잠에서 깨어난 뱀이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뱀이 '집 안'에 들어오는데, 이에 클래라는 이 원인을 찾고 해결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이 마을의 50년전 끔찍한 사건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거다.



와, 진짜 뱀이라니. 게다가 어떤 집에는 뱀이 수십마리가 들어와 모든 방안에 있다. 나는 이 '혼자 있고자 하는' 생생한 캐릭터의 클래라와, 그리고 그녀가 세상과 사람을 보는 방식에도 매력을 느꼈지만, 정말 뱀이 나타나는 마을에 대해서도 자꾸만 그 이야기가 궁금해져 책장 넘기기를 멈추기가 힘들었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데, 하면서 아홉시에 자려고 마음먹었던 노동절에, 아홉시 십분전에 이 책을 집어드는 바람에 열 시가 되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자정이 되어버린 사건... 자정 즈음에 다시 갈등했다. 끝까지 읽고 잘까, 내일을 위해 이쯤에서 잠들어야 할까. 나는 결국 후자를 택했는데, 그러나 잠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잠을 자면 꿈에 뱀을 볼 것 같아서 너무 무서운거다. 게다가 뱀이 한 마리도 아니고 수십마리가 나와서 꿈틀댈 것 같아 너무 무서운 거야.


여러분, 이 책은 자기 전에 읽지 마세요!! ㅠㅠ




그렇지만, 자기 전에 침대에 앉아 책 읽는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책장을 덮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서,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침대에 앉아 잠들기 전에 좋은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앞으로 남은 삶들을 살고 싶다고. 혼자라면 혼자인대로, 누군가와 함께라면 함께인대로, 내가 잠들기 전에 책 읽는 시간은 계속 가져가고 싶다. 크-


이 시간에서 행복을 느낀 건 이 책이 '좋은'책이었던 게 참 크다.



클래라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어하는 사람이었지만, 잘못된 걸 바로 잡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한다. 고립되고 싶었지만 의지와 다르게 자꾸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면서,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그저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으로 대해주려고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세상 속에 섞이는 것이 반드시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할 목표인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클래라가 이제 세상을 좀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해나간다는 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상처를 천천히 극복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아, 그리고 로맨스..

나는 이 소설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러나 뻔한 로맨스로 끝나버릴까봐 너무 두려웠다. 어떤 면에서 로맨스가 끼어들기를 바랐으면서도, 그러나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너무 뻔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달까. 그러나 우리의 샤론 볼턴은 이야기를 뻔하게 만들지 않았고, 세상 속으로 발을 디딘 클래라가 다른 식으로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보다 나는 그녀의 책 《희생자의 섬》을 먼저 읽었는데, 희생자의 섬 주인공도 의사였고, 이 책에서 주인공은 수의사다. 혹시 이 작가는 의학을 전공하였나 싶어 작가 소개를 봤는데, 그런 말은 적혀 있지 않았다. 춤, 연기, 경영, 홍보를 공부했다고 하는데(대단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의학은 거기 없었다. 그렇다면 의사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기 위해 그리고 이 책에서처럼 수의사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녀는 또 얼마만큼의 취재와 공부를 한걸까. 약간 불안한 장면들이 없진 않았지만(왜 남자가 예쁘다고 해주는 걸로 좀 나아지는 걸까?), 기본적으로 처음부터 참 좋다, 너무 좋다 이러면서 읽었고 나중엔 '천재인가...' 막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어. 샤론 볼턴이 매해 책을 내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 국내에 번역된 건 두 권 밖에 없다. 출판사, 힘내! 더 내줘요, 더!

무엇보다 남자가 구원해주는 서사 될까봐, 너무 좋았으니까 제발 그런 식으로 끝내지 말아줘... 했는데 흙흙 ㅠㅠ 샤론 볼턴님, 제가 앞으로 님 책은 닥치고 다 읽을게요!



어제 갑작스레 여차저차하여 친구랑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운동을 또! 못갔고 ㅠㅠ 아니 근데 5월이라 시간표 바뀐 거 인지하지 못한 부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양꼬치가 구워지는 테이블 앞에서 나는 내가 이 책에 밑줄 그은 부분을 친구에게 읽어주었다. 세 단락쯤 읽어줬는데, 친구는 너무 좋다고, 자기도 읽고 싶다고 했다. 정말이지 모처럼 책에 흥분해서 막 읽어줬네. 그런데 나 책 좀 잘 읽는듯? 아무튼 나는 이런 시간들도 너무 좋다. 책의 어느 구절이 좋아서 누군가에게 읽어주는 일, 그걸 듣고 친구 역시 궁금해 하는 일. 책 이야기 나누는 거 진짜 짱인 것 같아. 정말이지, 책 읽으면서 사는 삶을 쭉 이어나가고 싶다.




그러다보니 생각나는데, 며칠전에 혼자 술을 마시면서 <세계테마기행: 호주편>을 보게 됐다. 바다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배를 몰아주는 선장의 인터뷰가 잠깐 등장했는데, 그는 그 일을 아주 오래 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매우 좋아하고 있었다.



"나는 내 직업이 좋고 특히 다른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아요."



백발의 선장님은 이렇게 말했는데, 사람들이 저마다 세상을 사는 방식은 다양하구나, 새삼 느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다니. 많은 친구가 좋다고 말하는 선장님인 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다양한 곳, 내가 있는 곳과는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자신이 움직여 다른 곳으로 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들이 있듯이, 선장님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거다. 바다낚시를 하기 위해 다른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모이는데, 와, 너무 근사하잖아?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그러나 세계 곳곳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세계 곳곳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방법'은 이렇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소화해낼 수 있구나. 역시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살아가는 방식은 너무나 다양해! 뭔가 짜릿해지는 거다.



그는 오래, 열심히 일했고, 그래서 꿈에 그리던 집에 살게 됐다고 했다. 넓은 초원 위에 있는 집은, 와, 너무 근사해서, 포치에 앉아서 초록초록한 자연을 보며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아주 많은 시간들을 멍때릴 수도 있고!!




저 가운데 사진 보면, 이게 선장님 포치에 앉아서 보는 풍경인거다. 세상에..... 해가 질 때나 해가 뜰 때는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하겠지.



나는 언제나 포치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던 터라, 저 집이 너무 이상적으로 느껴졌다. 얼마나 돈을 모으면 저런 데서 사는 게 가능할까. 내가 살아생전 저런 집에 사는 게 가능할까? 일생의 어느 순간만큼은 저런 곳에서 저런 풍경을 보며 한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초저녁이면 저런 곳에서 조용히 먹고 마시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다가, 밤이면 침대로 쏙 들어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마무리할 수 있다면, 으- 천국.....





어제 뱀이 깨어나는 마을을 다 읽고 자, 다음 책은 뭐가 좋을까 하고 책장 앞에 가 섰는데, 내 책장에 내가 사두고 안읽은 책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다음 읽을 책은 없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래서 역시 사람은 책을 사야해...하게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꺼내들고 온 책은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의 《가난한 사람들》인데, 오늘 출근길에 앞에 조금 읽고 깜짝 놀랐다. 아니, 정말 가난하고도 가난한 사람들의 얘기잖아? 아아.. 제목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뱀이 깨어나는 마을은 정말 뱀이 꿈틀대는 이야기였고, 가난한 사람들은 정말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야...





9시가 되면 커피나 사러 다녀와야지.









"오늘밤부터 당장 뱀 포획에 나서서 녀석들을 잡아야죠" 키치가 말했다. 나는 홀 안을 둘러보았고 흔들림 없이 주목하는 사람들, 고개를 끄덕거리는 이들, 그리고 흉측하게 번뜩이는 눈동자들을 확인했다. 자신보다 약한 대상을 주저 않고 학대하려 드는 사람들의 모습과 별다르지 않았다. 인간은 얼마나 자주 합법적인 이유를 들어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고 벌이는 것일까?" - P58

나는 위엄 있는 분위기를 풍기는 그가 환경청이나 환경식품농무부에서 나온 인물인지 궁금했다. 그가 어디에서 왔든 자리를 기꺼이 양보하고 계단에서 내려갈 마음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하는 인물이었다. 반면에 나는 남들이 함부로 쳐다보게 만드는 쪽이었다. - P60

"스크러피, 얌전히 있어!"
"괜찮아요." 내가 작게 말했다. 스크러피의 복슬복슬하고 성격 좋아 보이는 얼굴을 보면서 사람을 용모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 개들이 얼마나 상냥한지, 동물만 있는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지 생각했다. - P70

"난 문 앞을 지킬게. 미안해, 친구들. 뱀은 정말 질색이라."
"병신!" 비웃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발음이 거셌다. 그들은 너무 시끄러웠다. 남자들이란, 조금 전까지 겁쟁이였다가 금세 용감한 척 허세를 부린단 말인가. 겁먹은 한 떼의 무리들이 이제는 모험에 나선 소년 일당이 되어 있었다. - P79

계단을 가볍게 뛰어오르는 발소리가 들리자 나는 극도로 안도했다. 남의 도움을 기다리는 내 모습은 이날 밤 가장 실망스러웠던 일이었다. 어른이 된 후로 한 번도 남자에게 의지해본 적도 없고 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데 아주 익숙한 나인데 처음으로 진짜 위험을 맞닥뜨리게 되자 감상적으로 변해버렸다. - P90

"조금 불안해 보이는 군요. 내가 운전을 할까요?" 맷이 말했다.
나는 시동을 걸면서 어떤 그럴듯한 변명을 들먹여야 할지 생각했다. 나는 야생동물을 다루는 일을 한다. 가장 외딴 마을에서 가장 적막한 거리의 맨 끝에 살고 있다. 의도적으로 이웃들의 이름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다. 쇼핑도 우편 주문만 이용했다. 혼자 있기 위해 뭘 더 해야 한단 말인가? - P103

나는 병원까지 십 킬로미터를 가는 동안 아무 말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침묵이 필요해 다른 사람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싶을 때 쓰는 익숙한 기술이 있었다. 나는 머릿속의 어느 한 곳으로 숨을 수 있다. 세상과 격리된 그곳에 있을 때면 바로 옆에서 누가 말을 걸어도 들리지 않았다. 필요할 때마다 사라질 수 있는 기술인 것이다. - P104

나는 로저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에든버러에서 공부할 당시 강의를 들었으며, 그의 열정은 내가 파충류 연구를 선택하게 된 요인 중 하나였다. 그는 늘 하던 대로 두 뺨에 입을 맞추었다. 호의는 잘 알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싶었다. 다른 사람이 얼굴을 건드리는 게 정말 싫으니까. - P113

"오소리, 여우, 각종 사슴, 온갖 종류의 영국 새, 또 요즘 갈수록 많아지는 뱀도 돌봐요."
내가 짜증이 난 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파충류 전문가에게는 역시 이상한 선택 같군. 큰 동물원에서 일하는 게 낫지 않아?"
사람들은 왜 그럴까? 생전 처음 만난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려 드는 이유가 뭘까? 당연히 나는 전에도 이런 질문을 받았었고, 보통은 동물원 수의사 자리가 빈 곳이 거의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 P122

나는 그녀를 쳐다보고 다시 바이얼릿에세 고개를 돌렸다. "그를 묶었던 건 이해할 수 있어요. 특히 그가 폭력적으로 굴었다면요. 그런데 굶긴 이유는 뭐죠? 그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어요?"
"기도를 위해서라고 그랬어." 바이얼릿이 대답했다. "사람들이 그 집으로 가거나 아니면 그를 교회에 데려갔거든. 목사님이랑 다른 몇몇이. 그들 역시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서 그와 함께 몇 시간이고 기도를 했어. 악마를 몰아내려고. 그렇지만 소용없는 것 같았어. 며칠이 지나서 얼프레드는 여전한 상태로 멍든 손목에서 피를 흘리고 절뚝거리며 돌아다녔으니까."
"아, 정말 황당해요. 말도 안 된다고요. 그는 악마에 씐 게 아니죠. 아팠던 거예요. 병원에 보냈어야죠." 샐리는 인내심이 바닥났다.
"맞아. 그게 옳아 보이지 않았거든. 그런데 목사님과 많은 남자들이,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그렇게 확신하는 것 같았어. 나 같은 사람이 뭘 할 수 있었겠어?" 바이얼릿이 말했다. - P283

많은 사람들은 평범한 미래를 이야기하며 나를 격려하려 했다.
‘사람들이 전부 외모에만 집착하지는 않는단다, 클래라. 너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거야.‘ 마치 볼썽사나운 외모를 가진 사람은 저절로 더 좋은 내면을 지니게 된다는 듯, 아니면 외모의 결함을 내면의 뭔가로 당연히 보충해야 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친절한 사람들은 틀렸다. 나의 내면은 아름답지 않다. 사람들이 나를 기피하고, 주정뱅이들은 나를 안줏거리 삼아 짓궂은 농담을 하고, 길에서 십 대들이 조롱하고 놀리며 따라오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옷가게에서 옷을 사려 할 때 점원조차 다가오지 않는데 어떻게 평범해질 수 있단 말인가? 평생 그런 대우를 받으며 살아온 내가 어떻게 아름다운 영혼을 지닐 수 있겠는가? 나는 내면도 외면도 아름답지 않다. 언니가 빈번히 정확하게 지적했듯 적지 않은 적개심을 품고 있다. 지독하게 수줍음을 타고, 영원히 성마르며, 자신에게만 집착한다. - P310

"어머니가 술을 드셨어요. 아주 오랫동안,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요. 음악가셨던 어머니는 자기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시골의 성직자와 결혼하면서 경력을 포기하셔야 했죠. 나중에야 성직자 아내로 사는 게 적성과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셨고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숀은 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어둠이 더욱 짙어진 까닭에 나는 그 시선을 개의치 않았다.
"어머니도 힘드셨겠죠. 치료도 받으시고, 몇 년동안 병원도 다니셨죠. 술을 입에 대지 않고 몇 달을 버티기도 했는데, 그러다가도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곤 하셨어요." - P424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19-05-03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을래요, 그래서 ㄱ이 페이퍼 첫 문단만 읽었어요.

다락방 2019-05-03 09:3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저는 참 좋았습니다! >.<

유부만두 2019-10-22 22:03   좋아요 0 | URL
다 읽었어요! 전 후반부 클라이맥스보다
전반부가 더 좋았어요. 차근차근 긴장이 쌓이는 거요. 남자들이 슬슬 치대는 건 싫었고요. 흥미진진진 독서였어요! 아, 좋다. 요즘 책 안 읽혔는데 체한 게 쑥 내려가는 기분이에요. ㅎㅎ

다락방 2019-10-23 07:42   좋아요 0 | URL
저도 전반부가 특히 좋았어요. 주인공에 대한 게 조금씩 드러나잖아요. 주인공을 드러내는 작가의 방식이 매우 똑똑하다고 생각됐어요. 천잰가.. 싶을만큼요.
제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다른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는 걸 보면 너무 좋은데 지금이 딱 그러네요. 히히.
좋습니다, 좋아요!

유부만두 2019-10-23 07:4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 점이 맘에 들었어요. 얼굴 얘기가 많네 .., 싶었는데 그런 사연이 하나씩... 정보가 하나씩 드러나고 마을 얘기도 하나씩 나오는 과정이 세련되서 좋았어요. 후반부 육탄전은 뭐랄까 파리의 노틀담 스럽기도 하고요.
주인공이 넓게 세상을 살아가게 되서 기쁜 수요일(잉?) 입니다. 그래도 전 파충류는 별로임 ㅋ

다락방 2019-10-23 08:26   좋아요 0 | URL
저도 집에 진짜 뱀이 있다는 이 책을 읽고 너무 싫어서 ㅋㅋ 아 정말 싫다 무서워 만약 그러면 어떡하지 ㅋㅋ 이러면서 너무 무서웠어요 ㅠㅠ

이제 [희생양들의 섬] 읽으시는 겁니까? 후훗.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고 있는 책이 진도가 안나간다는 것은 무척 괴로운일인데, 왜냐하면 다음에 읽고 싶은 책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한 권 가지고 질질 끌고 있으면 그 다음 읽고 싶은 책들을 읽을 수 있는 시간도 한없이 늘어져버려. 그러니 진도가 안나가는 책이 있다면 신속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 책을 계속 읽을 것인가, 말것인가...


나 역시 이 책을 계속 읽을 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갈등에 휩싸여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보고 결정하자 생각했다. 리뷰들이 다 좋았다. 고전에 비할만큼 좋다는 게 아닌가. 그래, 열심히, 끝까지 읽어보자. 그러면 내 안에 뭉클한 감정이 솟아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다음 책 읽을 기간을 하염없이 연장하고 또 연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 책을 왜!! 읽기 힘들었을까? 내용도 내용이지만(남자 작가들은 왜 여자주인공을 미모의 십대 소녀로 그리는걸까? 진짜 빻은 판타지로부터 벗어나지를 못하는듯), 나는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남자 주인공이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몰랐다면 좀 더 진도가 잘 나갈 수 있었을텐데, 몰입하려고 하면 할수록 남자 주인공 얼굴에 니콜라스 케이지 겹쳐버리고, 어쩌면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그것은 너무나 심한 방해가 되었던 것. 영화를 보면 등장인물에 몰입해 나 역시 니콜라스 케이지가 맡은 역인 '코렐리'를 사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 속의 코렐리와 내가 알고 있는 니콜라스 케이지는...










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하면 안되는 것이고,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 모두 잘생기거나 예쁠 필요는 전혀 없고, 그리고 잘생기거나 예쁜 전형적인 인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로맨스 로맨스 로맨스 하는데 니콜라스 케이지 떠올라 버려가지고 나는 사랑을 느낄 수가 없어. 아아, 왜그래, 나여. 나여, 생각해봐라. 너 현실속에서 잘생긴 남자들만 사랑했냐? 아니, 오히려 잘생긴 것과는 거리가 먼 남자들을 사랑했지. 그러니 이것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알아, 아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내면 아니겠니. 아름다운 내면...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을 사랑하자....


내가 진짜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 중요한 거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이 나에게 속삭였는지 모른다. 코렐리의 내면은 추하지 않았으니까 사랑에 빠질 수 있지, 그럴 수 있지, 그렇지만... 니콜라스 케이지.....를 도무지 사랑할 자신이 나는 없네. 포기하겠소..



그러다가 내가 여자 주인공이 긴가민가 헷갈려서, 설마 페넬로페 크루즈였나, 싶어서 다시 영화정보를 찾아보니, 이런 ㅋㅋㅋㅋㅋㅋㅋㅋ 여자 주인공 '펠라기아'는 페넬로페 크루즈가 맞잖아! 아니 씨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자는 너무 예쁘잖아 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아 세상의 예쁜 여자들이여, 왜이렇게 남자의 내면만 보고 사랑하나요..... 우리 너무 남자의 미모 안보고 사랑에 빠지는 거 아닙니까. 주의합시다. 하아-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서로 적으로 맞서 전쟁중인 상황에서 이탈리아 장교 '코렐리'는 부대를 이끌고 그리스로 와 지내게 된다. 그 때 코렐리가 묵었던 곳이 '펠라기아'의 집. 어쨌든 현재 서로 싸우고 있지 않은 상황이고 서로 적이지만 도울 건 도와가면서 살아가다가 코렐리와 펠라기아는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러다 전쟁이 터지고 코렐리가 계속 그리스에 있다가는 죽을 운명이라 야밤에 몰래 그리스를 떠나게 된다. 그들은 수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전쟁이 끝나면'에 대해 많은 상황들을 상상하곤 했다. 전쟁이 끝나면 결혼을 하자, 아이를 낳자, 의사가 될거야(펠라기아), 음악가가 될거야(코렐리) 등 많은 미래를 그렸던 것. 코렐리는 그리스를 떠나면서 펠라기아에게 돌아오겠다고 말한다. 펠라기아 역시 그가 돌아오겠다고 한 말을 믿고 기다린다. 믿고 기다렸는데,



시간은 흐르고 흘러 코렐리가 70대가 되어버린.....



이보세요들.



나는 끝까지 코렐리가 돌아오지 않을까봐 너무 초조했다. 그런데 그들이 재회하긴 했으되 70대라니. 님들 뭐에염? 지금 뭐하는거에염? 사람 말라죽일라고 그러는거에염?



그 긴 시간동안 펠라기아는 다른 사람과 연애도 사랑도 하지 않고 코렐리를 기다렸다. 자신의 집앞에 버려진 전쟁 고아를 딸로 받아들이며 키웠고,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살던 집이 불탔고, 딸이 아이를 낳아 손자까지 있는 상황. 그 사이 언젠가부터 그녀에게 세계 곳곳으로부터 엽서가 도착한다.



앞뒤 없이 쓰인 그리스어로 된 의문의 엽서가 세계 전역에서부터 오기 시작한 것은 이때쯤이었다."당신은 이곳을 좋아할 거예요. 모든 집이 진흙으로 만들어졌답니다." 라고 쓰인 엽서가 산타페에서 왔다. 에든버러에서는 "성 꼭대기에 부는 바람은 정말 최고예요." 비엔나에서는 "여기 한 러시아 병사의 동상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걸 '이름 없는 강간범 기념비'라고 부르죠."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카니발 시즌이에요. 거리는 오줌과 가슴이 터질듯하게 아름다운 여인들로 가득 찼답니다." 런던에서는 "미친 사람들, 끔찍한 안개." 파리에서는 "탈장대와 탈장 부목만 파는 가게를 찾았어요." 글래스고에서는 "검댕과 술 취해 쓰러져 있는 인간들뿐이랍니다." 모스크바에서는 "지하철 속의 예술 작품." 마드리드로부터는 "너무 더워요. 모든 게 잠들어 있답니다." 케이프타운에서는 "훌륭한 과일과 썩은 파스타." 캘커타에서도 "먼지 속에 파묻혔습니다. 끝이 없는 설사." (p.455)



펠라기아는 이 엽서를 받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혼인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혹시 코렐리인가, 한순간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코렐리는 죽었을 거고, 그리스어를 알지도 못한다. 그러니 아닐 것이다. 그렇게 엽서는 계속, 계속 온다.




나이는 70대였지만 어느 정도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안토니오 코렐리는 무쇠로 된 프라이팬을 살짝 피했다. 그러고 나서는 그것이 자기 뒤의 창문을 박살내는 소리에 몸을 움츠린다. "이 나쁜 놈아." 펠라기아가 소리를 질렀다. "이 나쁜 인간! 평생을 기다렸는데, 평생 동안 슬퍼하면서, 평생 당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살아있으면서 나를 바보로 만들다니. 감히 어떻게 약속을 어겨? 이 배신자야!"

코렐리는 갈비뼈에 빗자루의 날카로운 꼬챙이가 꽂히기 전에 뒤로 물러서며 담에 기대어 항복의 의미로 손을 들어 올렸다. "말했잖소, 당신이 결혼한 줄 알았다고."

"결혼이라구?" 그녀가 격분하여 외쳤다. "결혼이라구? 내 팔자에 무슨 결혼? 고맙군, 이 나쁜 놈아." 그러고 나서 그를 다시 한 번 찌르고 빗자루 손잡이로 머리를 때리려고 한다.

"당신 아버지 말씀이 옳았군요. 당신에게 야만적인 면이 있다고 하셨지."

"야만? 왜 그러면 안 돼? 이 돼지야, 그러면 안 돼?"

"나는 돌아왔었소. 1946년에. 마을 어귀를 도는데 거기서 당신이 아기의 입에 당신의 손가락을 넣고 있더군. 너무나 행복해 보였지."

"내가 결혼했다고? 누가 그래요? 누군가 내 현관에 두고 간 아기를 입양한 거라면 어쩔 건데요? 물어볼 수도 없었나요? 실례합니다만 이 아이가 당신의 아이인가요? 그렇게 물을 수 없었냐고?"

"제발, 그만 때리시오. 나는 매년 돌아왔소. 당신도 알고 있겠지. 나를 봤으니. 올 때마다 당신은 아이와 있더군. 너무 괴로워 말도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당신을 봐야만 했소."

"괴로워? 내 귀를 믿을 수 없군. 당신이? 괴로워요?"

"10년 동안 ……" 코렐리가 이어갔다. "……10년 동안 너무 괴로워서 당신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소. 그런 다음 생각했지. 그래, 좋아. 내가 3년 동안이나 떨어져 있었으니 아마 펠라기아는 내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아니면 내가 자기를 잊어버렸다고 생각했을 거야. 어쩌면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졌을지도. 그녀가 행복하다면 괜찮아. 하지만 그래도 나는 매년 돌아왔소. 그저 당신이 잘 있는지 보기 위해. 그것이 배신이요?"

"그러면 제 남편 본 적 있어요? 그리고 당신에게 달려갔는데 당신이 사라져 버리고 없을 때 제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 보셨나요? 제 마음에 대해서 말이에요." (p.484-485)




글쎄. 너무 괴로워서 상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도무지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다. 나는 상대가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는 사람인데. 너무 괴로워서 죽이고 싶다니. 대체 그런 마음은 뭘까. 빻은 마음임에 틀림없어... 아무튼.


이 대화를 보는데 세상 답답했다. 코렐리는 돌아왔다. 그러나 자신이 찾아온 펠라기아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결혼했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낳았다고 생각해서 그녀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런 채로 몇십년을 그녀를 그리워하고, 그녀를 위한 곡을 작곡해 연주하고, 그리고 엽서를 보낸다. 아니 세상 머저리 아닌가. 이런 미련퉁이가 또 세상에 있을까. 물어봤으면 됐잖아. 침묵은 가장 큰 오해를 만들기도 한다. 왜 묻지 않고 제멋대로 생각해? 어떤 상황이 있을 줄 알고? 물어보면 되잖아.



자, 내가 돌아왔어요, 당신을 보려고 돌아왔어요, 그런데 당신 결혼한건가요?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룬거에요? 이제 내가 당신 앞에 나타나면 안되는건가요?


물으면 되잖아? 묻고 대답을 들으면 그 다음이 진행되잖아? 왜 묻지도 않고 나타나지도 않아? 그리웠잖아. 그리워서 엽서도 보냈고 해마다 보러왔잖아. 근데 왜 묻지도 않아서 서로 외롭고 괴롭게 늙어가게 만든거야, 대체 왜?

더 환장하겠는 지점은, 그 엽서는 역시나 코렐리가 보냈다는 것이다. 그리스어를 배웠대. 심지어, 아테네에 25년간 거주하기도 했대. 이 쌍놈아! 같은 나라 안에 살면서도 그렇게 얼굴 안보여주고 그리워하게 냅둔거야 이 써글놈의 새끼야?!




"당신이 내 엽서를 받은 것을 알고 있소." 그가 말했다.

"그리스어로 되어있더군요. 왜 그리스어를 배웠어요?"

"전쟁이 끝나고 전모를 알게 되었소. 아비시니아, 리비아, 유대인의 박해, 잔학행위, 수천 명이나 되는 미확인 정치범들, 이 모든 것을. 나는 내가 침략자였다는 게 수치스러웠소. 너무나 부끄러워 이탈리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 그래서 한 25년 동안 아테네에서 살았소. 나는 그리스 시민이오. 그렇지만 자주 이탈리아에 가지. 여름에는 투스카니로 가오."(p.486)



진짜 대환장포인트...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 몇 십년을 보지 못하고 살았다. 억울한건, 코렐리는 그래도 해마다 펠라기아를 봤어. 물론 펠라기아가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고 생각하며 자기도 괴로워했겠지만, 펠라기아는 코렐리를 몇십년간 보지도 못했단거다.



좋냐? 어? 좋아? 평생 그리워만 하니까 좋디? 어? 만족하냐 이 써글놈아?



그리워하다가 다 늙었다고. 그리워하며 평생을 보냈다고. 칠십대에 만나면 함께할 시간이 너무 짧잖아 이 써글놈아. 진작 찾아왔으면 물어보지. 왜 서로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로 내버려둔거야. 좋아했으면서, 그리워했으면서, 다른 사람을 그렇게 사랑할 엄두도 못냈으면서. 이 세상 멍충.....








어휴..

내 속이 다 타들어가버렸어....


(절레절레)




"아직도 내 반지를 끼고 있군."

"손가락에 관절염이 있어 못 뺐을 뿐이에요." (p.487)



반지를 평생 끼고 있었지만 만나지 못했었다. 그리워만 했다.



"그 사람은 당신을 만나기 전 제 약혼자였죠."

"약혼자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소?"

"당신이 질투할 테니까요."

"물론 질투했겠지. 내가 처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글쎄요, 당신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당신도 제가 처음은 아니셨잖아요?"

"최고였지."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낀 코렐리는 스스로를 억눌렀다. (p.488)




최고였잖아. 최고인데 왜 그냥 내버려둔거야, 대체 왜...

최고라며.

최고라며.







몇 초 동안 그들은 서로를 바라본다. 그녀는 볼을 붉히며 코바느질로 주의를 돌린다. 그렇게 시선을 갑자기 돌려버리면 그를 무시하는 게 될 거야. 하지만 뻔뻔하게도 그녀는 그런 행동으로 그의 관심을 한 순간 더 잡아둘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몇 초 후, 다시 몰래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시선을 그가 바로 낚아챈다. 정말 분하고 창피하다.
그녀는 그만해야겠다고 결심하고서도, 그가 일에 깊이 빠져있다고 확신하고 올려다보다가 다시 들키고 만다. 아, 정말 이러면 안 돼! ‘앞으로 30분 동안은 절대로 쳐다보지 않을 테야‘ 결심해도 소용없다. 그녀는 다시 쳐다보고, 그의 눈은 다시 깜박인다.
그가 자신과 게임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작전을 바꿔야지. 절대로 먼저 눈을 돌리지 않을 테야. 그녀는 단단히 마음먹고 눈을 올려 뜬다. - P235

몇 시간이나 지난 것 같다. 그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얼굴 근육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눈은 여전히 그녀에게 고정한 채, 율동적으로 콧구멍을 벌름거리고 귀를 흔드는 게 아닌가? 또 말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코끝을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펠라기아의 입가를 잡아당기기 시작한 미소는 멈출 줄 모르고, 마침내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진 그녀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눈을 깜박였다. 그러자 코렐리가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며 바보처럼 울부짖는다. "내가 이겼다, 내가 이겼다." - P235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19-05-02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장 터지는데요?!?! 뭐 이런 넘이, 책이 다 있을까요?! 전 안읽겠습니다. ^^;;

다락방 2019-05-02 12:42   좋아요 0 | URL
네, 안 읽으셔도 전혀 아깝지 않을 책입니다. 패쓰하세요~~

syo 2019-05-02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뜩이나 개똥같은 작잔데 다락방님의 솜씨를 거치고 나니 소똥같은 작자로 규모가 커지네요. 역시!!

다락방 2019-05-02 17:36   좋아요 0 | URL
페르귄트와 솔베이지 보다는 낫다고 해야할까요. 페르귄트는 죽기 직전에 솔베이지에게 오잖아요. 아 짜증나는 놈들이에요 진짜. 흥!

syo 2019-05-02 17:38   좋아요 0 | URL
흥! 으로부터 어떤 매서운 분노가 느껴진다?? 공감을 넘어 동감 수준의 분노가....

다락방 2019-05-02 17:39   좋아요 0 | URL
제가 아무리 개떡같이 말해도 쇼님이 찰떡같이 알아들어서 너무 좋아요.....(수줍)

syo 2019-05-02 17:45   좋아요 0 | URL
우리의 우정이 무르익어 곱게 갈면 쫀득쫀득한 찰떡을 만들어 먹을 정도가 된 것이로군요 😤

다락방 2019-05-02 17:50   좋아요 0 | URL
우정은 역시 무르익어야 제 맛 아니겠습니까. 후훗.

다락방 2019-05-02 17:51   좋아요 0 | URL
아 쇼님, 근데 나 지금 엄청 재미난 소설 읽는다? 너무 재미있어서 미치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계속 읽고 싶은데 막 할 일도 너무 많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05-02 17:52   좋아요 0 | URL
뱀이 깨어나는 마을??

다락방 2019-05-02 17:56   좋아요 0 | URL
네네네네네네네네네네네네!! 작가 천재 ㅠㅠ

syo 2019-05-02 17:5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이러시는 거 오랜만에 보네요. 그렇다면 체크해둬야겠어요.
 
















꼭 다시 읽어봐야지 하고 내내 벼르던 책이었는데, 마침 일요일 오전에 이 책 생각이 났다. 조카들이 아직 제집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까먹을까봐 책장으로 가 이 책을 꺼내왔다. 조카들을 보내고 목욕탕에 다녀오고, 백화점과 시장에 다녀오고, 저녁을 먹고, 그렇게 그 날 해야지 마음 먹은 것들을 다 해낸 뒤에 이 책을 펴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게된 책은, 내가 예상한 그대로, 읽자마자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었는데, 처음 읽었던 몇 해전에도 그랬지만(아마 십년도 넘은것 같다), 어떻게 이 관계가 가능했을까, 싶다.


헬렌 한프는 뉴욕에 살면서 런던 채링크로스 84번지에 있는 고서점의 존재를 알게 되고, 자신이 원하는 책을 구매할 수 있는지 묻는 편지를 띄운다. 1949년의 일이다. 고서점의 직원은 그 편지에 답장해주고 헬렌 한프가 원했던 책들의 2/3 가량을 보내주면서 이 편지를 주고 받는 관계가 시작되는데, 이 편지는 1969년까지, 20년간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책과 청구서, 책값만 주고받게 되는 게 아니라, 런던이 식량배급 받던 어려운 때임을 아는 헬렌은 달걀, 고기, 통조림을 선물로 보내주기 시작한다. 이에 응답하고자 서점 직원들도 저마다 손수 짠 식탁보와 아름다운 책을 보내주고. 게다가 서점 직원 한 명과 주고받던 편지는, 그 서점의 다른 직원들과 또 서점 직원의 가족들, 그리고 서점 직원의 이웃에게 까지도 이어진다. 관계가 쭉쭉 뻗어간달까.



다른 말인데,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흐름도 이와 같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상대만 보이고 상대만 중요하다. 상대를 알아가기 위해 《비포 선라이즈》,《비포 선셋》이 있었다면, 이제 함께하는 그들은 세상과 어울리게 된다. 그렇게 《비포 미드나잇》이 있다. 이런 식의 흐름이라니, 너무 좋잖아? (비포 컬렉션, 꼭 사야지!)


















자,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이 실제로 있었던 아름다운 사연이 너무 좋아서, 재작년이었나, 런던에 갔을 때 채링크로스 84번지를 찾아갔었다. 그 주변에 여전히 고서점은 많았지만, 내가 기대한 이 서점, [마크스 & Co. 중고서적]은 보이질 않았다. 찾아 헤매다가 보이지 않아 다른 서점에 가 물어보니, '네가 말하는 그 서점이 뭔지 아는데, 그 서점은 이제 없어' 라고 말했다. 슬픔의 새드니스... 가서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시무룩)




알라딘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몇 번에 걸쳐 나는 책을 나누고 있었다. 중고서점 생긴 뒤에 중고로 팔기도 했고 또 가끔은 단체에 기부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가끔은 읽고 싶은 사람에게 보내는 것. 이왕 보내는 거, 선물 받는 기분을 느끼게 하자 싶어 택배비도 내가 부담해 보내는데, 나는 그저 내가 읽지 않는 책을 선물로 주고 싶은 마음이므로, 받는 사람에게 어떤 기대를 하진 않았다. 다만, '잘 받았다'고, 무사히 받았는지만 알려주면 충분했다. 혹여라도 이 책을 받고 나에게 보답해야 한다고 느낄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무얼 받자고 보내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얼마전에 낯선 번호로부터 문자메세지를 받았다. 나로부터 책 나눔으로 책 한 권을 받게 되었는데 잘 읽었다며, 커피 두 잔과 케익 한 조각을 기프티콘으로 보낸 거였다. 커피 두 잔에 케익 하나.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아 놀랐지만, 굉장히 새로운 감동이 찾아왔다. 커피 두 잔에 케익 하나의 가격이면, 나로부터 중고로 받은 책이 아니라 새 책을 사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중고책을 산 다면 두 권을 살 금액이었다. 그런데 그 분은 나로부터 중고책을 받고서는 커피 두 잔과 케익이라는, 새책을 뛰어넘는 금액의 선물을 보내신거다. 이걸 순전히 '돈'으로만 따진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 커피 두잔과 케익이라는 선물에는 돈 이상의 것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 선물을 받고 한동안 '인간은 대체 뭘까' 생각했다. 인간은 대체 뭐길래, 돈으로만 보면 더 손해인 일을 이렇게 한걸까? 새 책을 사고도 남았을텐데, 왜 중고책을 받아놓고 커피 두 잔에 케익 하나를 보낸걸까?



나는 엄마와 함께 까페에 가 커피 두 잔에 케익한 조각을 앞에 두고 이 사연을 얘기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엄마, 인간 너무 신기하지 않아? 뭘까? 덜한 것 받고 더한 것을 내주잖아. 돈으로 따지면 손해인데."



그러자 엄마는 말했다.



"너한테 받은 게 고마웠나보지.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고."



물론 이렇게 책 나눔을 했을 때 고맙다고 표현한 사람들은 그 전에도 있었다. 칠봉이만 해도 내가 이 공간에서 처음 책나눔을 했을 때, 나로부터 책을 받고 영화예매티켓 네 장을 보냈었으니까. (아, 잠깐만, 눈물 좀 닦고요.) 그런데 이 커피 두 잔과 케익 한 조각이 참 뭐랄까, 받는 순간부터 되게 마음에 남았다. 뭘까, 이건 대체 뭘까. 인간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인간.. 뭘까? 도무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어. 인간...아, 인간이여...




헬렌 한프는 잘 알려진 작가가 아니었다. 가난하게 살았고, 어쩌다 일이 들어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나는, 그런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다. 그렇게 가진 돈을 조금씩 보내서 책을 한두권씩 구입하면서도(한꺼번에 많이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은 없다!), 그러면서도 그 서점의 직원들에게 달걀, 고기, 통조림을 보내는거다!! 인간... 진짜 뭘까? 뭐지? 내가 많아서가 아니라, 나누고 싶어 나누는 삶이라니.. 인간..뭔가요?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가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친절하고 자상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p.46)











저희는 모두 당신 편지를 좋아하고, 어떻게 생긴 분인지 상상해보곤 해요. 저는 당신이 젊고 아주 세련되고 총명할 거라고 생각해요. ‘노老‘ 바틴 씨는 당신이 멋진 유머 감각을 지닌 사람이지만 좀 학구적으로 생겼을 거라고 그래요. 사진 한 장 보내주시지 않겠어요? 한 장 있었으면 좋겠어요.


- P25

당신의 수많은 자상한 선물에 과연 보답할 길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언젠가 영국 여행을 결심하신다면, 머물고 싶은 한 언제까지나 쓰실 수 있는 침대가 오크필트 코트 37호에 있다는 것뿐입니다. - P76

친애하는 헬렌,
다시 편지를 받고 반가웠습니다. 네, 우린 아직 여기 있습니다. 갈수록 나이가 들고 바빠지지만 더 부자가 되지는 않는군요. - P138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9-04-29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요일 아침 따뜻한 사연 , 따뜻한 글이네요.
‘여전히 여기에’라는 말이 얼마나 뭉클한 말인지.

다락방 2019-05-01 17:22   좋아요 0 | URL
여전히 여기에, 라는 말은 저 역시 하면서도 뭉클한 말이에요. 정말 좋지요?

저는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을 포기할 수가 없어요. 가끔은 이해안될 정도로 너무나 따뜻하거든요.
나인님, 5월의 첫날 잘 보내고 계신가요?
:)

비연 2019-04-29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훈훈해지는 글이네요. 저도 이 <채링크로스 84번지> 읽으면서 그들의 그 따뜻한 교류가, 한번도 보지 않으나 통하는 마음들이 참 고맙게 느껴졌었습니다. 사람이 정성을 다해 표현해도 상대가 제대로 받아주지 않으면 그 정성이란 게 무의미한 것처럼 흩어지기 마련인데, 정성이 화답을 받는 것만큼 사는 데 힘이 되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락방님의 글이 오늘 하루, 제게 버틸 힘을 주네요. 그리고 커피와 케잌을 선물한 어느 님으로부터도.

다락방 2019-05-01 17:23   좋아요 1 | URL
너무 좋지요? 오래전에 읽었을 때도 좋았는데, 다시 읽어도 역시 좋더라고요. 좋은 책은 시간이 흘러 다시 읽어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마 십 년 후에 읽어도 또 여전히 좋겠지요. 같은 책을 읽고 이 책 참 좋지? 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 역시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여기에서 계속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누면서 지내도록해요, 비연님. 이렇게 가끔은 아주 따뜻한 이야기들을 우리가 서로에게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
 
복잡한 마음
















오늘 아침 눈뜨자마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여자 디제이는 자신의 첫사랑에 대해 얘기했다. 지금이라면 전혀 달랐겠지만, 대학시절 사귀었던 첫사랑 남친에게 왜그렇게 매달렸는지 모르겠다고. 심지어 그 남자는 바람을 피우기까지 했는데, 그걸 알면서도 헤어지기 싫어서 매달리고 고가의 지갑까지 선물로 주었었다는 거다. 같이 방송하던 게스트도 왜그랬냐고 하고, 디제이 역시도 왜그랬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데, 나 역시도 의문이었다.



'왜 그랬을까?'



바람을 피운 건 나를 배신하는 행위인데, 나를 속이는 행위인데, 나를 잠시라도 밀어둔 것인데, 왜 그런 남자에게 날 떠나지 말라고 매달린걸까?




어제 자기전에 침대에 누웠다가, 갑자기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영화속의 자쿠지 신이 너무 보고 싶었다. 둘만 있는 공간에서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는 그 씬이 갑자기 너무 보고싶은거다. 그 영화속에서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장면. 그 장면이 보고 싶어서 틀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너 때문에 그 먼 데 있는 한인마켓가서 네가 좋아한다는 요구르트도 사왔다'고 하는 피터에게 '그 요구르트가 그렇게 맛있었나 보지?' 하고 부러 엉뚱하게 대답하는 라라 진을 보고 좋아서 웃었다. 그 때의 실망하는 남자의 표정과 행동이란. 그런데,


그 남자의 전(前)여친은 그 둘의 관계를 떼어놓고 싶어 라라 진에게 '네 남자친구가 어제 내 방에 왔었다'고 말한다. 게다가 라라 진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머리끈이 왜 피터의 전여친에게 가 있는걸까. 라라 진은 너무 속이 상하고, 전날 밤의 다정함이 다 뭐였나 싶다. 라라 진은 피터에게 묻는다.


"너 어젯밤에 젠 방에 갔었어?"

"그거 설명할게,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내 머리끈도 젠 줬고?"

"...그건...."



라라 진은 우리 그만 끝내자며 혼자 집으로 돌아오고, 피터는 그 날밤 라라 진을 찾아와 오해를 풀고자 한다. 얘기를 좀 나누자고 한다. 그런 피터에게 라라 진은 이렇게 말한다.



"항상 밀려나는 것도, 척하는 것도 지겨워."



나는 이 자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라 진은,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에게 '밀려나는' 상대이고 싶지도 않고, 그들의 관계에 대해 거짓으로 '척'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한다면, 밀려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밀려나는' 상대이고 싶지 않다. 뒤로 제껴두는 상대가 되고 싶진 않아. 함께 있으면서 마음 아프고 속상한 관계보다는, 혼자면서 자유로운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내가 밀려나는 사람이라는 것, 내가 우리의 관계를 '척'해야 한다는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해서는 안될짓이다. 그리고 결국은 그런 자세가 나를 우선 순위에서 밀어두지 않는 상대를 만나게 한다고 생각하고. 왜냐하면, 피터는, 오해를 풀지 못하고 서로 기분이 안좋은 상황에서 헤어지는 와중에도 라라 진에게 이렇게 말했으니까.



"넌 밀린 적 없단 거 알아줘."



내가 나를 밀려나는 위치에 두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그런 자세로 살아야, 나를 밀어두는 상대를 만나지 않을 수 있다. 오늘 아침 라디오 디제이는 대학시절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한 쪽으로 제껴두는 걸 허용했기 때문에, 그 나쁜 관계에 매달렸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 나쁜 관계에 왜, 도대체 어째서, 왜, 왜 매달린걸까?




이 책을 쓴 공저자로서 나와 내 동료들은 독자들에게 두 가지를 약속한다. 첫 번째로 우리는 여기서 여남 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것이며, 여러분은 다시는 이전 같은 방식으로 여자, 또는 남자, 또는 여남 관계를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이 책을 읽는 건 감정적으로 힘겨운 여정이 될 것이다. (p.35)



5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는 《여자는 인질이다》로 정했다. 4월에 이미 이 책의 앞 몇 장을 읽어본 나로서는 꽤 힘겨운 독서가 될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오늘 아침 라디오 디제이가 바람 핀 남친에게조차 매달렸던 그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도 다시 처음부터 읽을 생각인데, 자, 여러분, 5월에도 우리 열심히 읽고 씁시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9-04-29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5월의 책을 미리 공수해놓은 단발머리입니다. 5월에도 여성주의책 같이 읽기, 같이 하고 싶습니다.

참, 피터의 자쿠지 신은 사랑입니다💜

다락방 2019-05-01 17:19   좋아요 0 | URL
항상 함께해주셔서 감사해요, 단발머리님. 단발머리님 덕에 제가 꾸준히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 5월에도 읽으면서 열심히 이야기 나누도록 해요.

피터의 자쿠지 신은 너무 좋아서 저는 어제도 자기 전에 보면서 미소지었답니다. 라라 진의 천연덕스러움 크- 너무 좋아요! >.<

공쟝쟝 2019-04-30 0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가 눈에 화악! 꽂혀요!!
캘리번과 마녀가 너무 좋고 어려웠어요 ㅜㅜ저 혁명의 영점이랑 가부장제의 창조 빨랑읽고 (아쉽지만 여자전쟁은 패스하고 5월도서루 직진할게여🙋🏻‍♀️) 다락방님 따라서 고고🏃🏽‍♀️🏃🏽‍♀️

다락방 2019-05-01 17:20   좋아요 1 | URL
캘리번과 마녀가 저도 어려웠어요. 저는 혁명의 영점은 더 어렵더라고요 ㅠㅠ
네, 쟝쟝님 부지런히 따라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읽고 항상 글 남겨주시는 것도 너무 좋고 고마워요! 쟝쟝님도 읽고 쓰는 게 반복될수록 성큼성큼 앞으로 걷는 게 막 느껴져요. 이렇게 같이 책 읽는 게 쟝쟝 님께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는 생각에 무척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그렇답니다. 우리 할 수 있는 한 함께해요!

공쟝쟝 2019-05-01 21:24   좋아요 0 | URL
어렵긴 하지만 ㅎㅎ 한분야의 책을 꾸준히 함께 읽고 나누는 건 저에겐 정말 귀하고 고마운 경험이예요~ 함께해요 ^.^

블랙겟타 2019-05-01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슬그머니 매달 참여하는 것으로... ^^;;;

앞장에서 미리 감정적으로 힘겨운 여정이 될 내용이라고 말해두는군요. ㅠㅠ

다락방 2019-05-01 17:21   좋아요 1 | URL
블랙겟타 님이 함께한다고 해주신 순간부터 저는 정말이지 감사하고 기쁘답니다.
그리고 5월 도서는 블랙겟타님도 각오하고 읽으셔야 할 거에요. 아주 세게 시작하는 책이거든요.
그렇지만 주저앉지 말고 우리 함께 읽고 써보도록 합시다. 화이팅!!

블랙겟타 2019-05-01 17:56   좋아요 1 | URL
저역시 이렇게 함께 읽으면서 얻어가는 것이 많기때문에 감사하죠.
이번 책은 각오 단단히 먹겠습니다!!
(๑•̀ㅂ•́)و✧
 
여자 전쟁 - 잔혹한 세상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여성을 기록하다
수 로이드 로버츠 지음, 심수미 옮김 / 클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체적으로 다 힘든 내용이었지만 특히 마지막에 계속 강간에 대해 다룰 때는 더했다. 평화유지군이 미성년자 성매수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너무 충격이었는데, 이런 걸로 충격받는 나는 아직도 남성이란 성별에 대해 기대하고 있는가, 라고 스스로 되묻게 만들었다. 순진하게도, 평화유지군이라면 평화에 더 힘쓸 줄 알았지 뭐야. 고통에 가담할 줄은 몰랐어. 아, 나는 아직도 너무 순진했구나.


그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통해 다뤄온 도서들, 특히 《페미사이드》,《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와 연결되는 내용이 많다. 이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저 책에서 나오는 내용과 겹치는데, 마찬가지로 이 모든 것들에 맞서 싸우려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겹친다. 페미사이드와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에서는 사례들이 다 나온 후에 마지막 결론으로 희망에 찬 부분을 얘기했다면, 《여자, 전쟁》은 매 꼭지마다 이 모든 부당함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수 로이드 로버츠는 벌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취재하고 거기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과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옳지 않다고 말하며 고통받는 편의 서려는 여자들의 노력이 그러나 언제나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고통을 주고자 하는 남성 세력이 워낙에 강했으므로. 소위 알탕 카르텔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면에서 저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고 했지만, 미성년 강간을 비롯하여 전쟁 강간까지 봐주기에 힘을 쏟는다. 



'문화'라는 것이 대체 뭘까에 대해서도 한참 생각해야 했다. 내가 생각한다고 결론 내려진 건 아니지만, 문화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성기를 잘라내는 일들, 어린 아이를 신부로 팔아버리는 일들이, 그러나 그 나라를 벗어나 다른 나라에 가도 여전히 그들 사이에 단단한 중심이 되어 유지되어 왔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것은 마땅히 그러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학대라면, 그것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용인해야 하는걸까? 여성의 성기를 잘라내는데? 어린 아이를 신부로 팔아치우는데? 수 로이드 로버츠는, "우리는 문화적 차이를 받아들이고 관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때때로 닫힌 문 뒤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학대를 허용하기도 한다" 고 자신의 책을 빌어 말한다.




어제 SNS 를 통해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아동 구조 연합> 관련 연설을 보게됐다.






영상을 보면 알게되겠지만,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아동 포르노에 관련된 괴로운 일들을, 말하기도 듣기도 고통스러운 그것을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현실을 직시해야 그 다음 과정을 밟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내가 저 연설을 듣는 자리에 있었어도 그러했겠지만, 영상을 보면서도 '그 사실을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듣고 싶지 않다고. 아동 포르노라는 말만 들어도 괴로운데, 그것이 어떤 것인지 설명을 듣는 것은 또 얼마나 괴로울까. 그러나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미안하지만 여러분들이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여성주의 책을 읽는 것, 페미사이드와 강간에 관한 이 고통스러운 일들에 대해 읽는 것으 바로 여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읽는 것은 물론 괴롭지만, 아는 것 역시 괴롭지만, 알아야 한다. 알아야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해 알고 또 거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 눈을 감고 보지 않으려고 하기보다 두 눈 부릅뜨고 알고자 하는 것. 그것이 그 다음으로 갈 수 있는 길이며 또 더 강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읽을 것이다. 계속 두 눈을 부릅뜨고 있을 것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9-04-24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화유지군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 도우러 갔던 NGO 직원들 일부도 돕는 일은 하지 않고 ‘나쁜‘ 일만 하고 있다는 뉴스도 최근에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단체들 이름에 ‘children‘ 들어가 있고, 그런 거 보면 정말 피가 거꾸로 솟구치죠.
인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자신들이 하는 일의 정당성 또는 의미와 자신의 욕구,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을 구별해버리는 그런 ‘뇌 구조‘를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락방님의 ˝괴롭지만, 알아야 한다˝는 문장에 밑줄을 긋습니다.
맞아요.
괴롭지만 우리는, 알아야 해요......

다락방 2019-04-24 11:07   좋아요 1 | URL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러나 알면 많은 것들이 달라지죠.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이 연설에서 잔인한 현실에 대해 말을 하고 그 후에 그러므로 우리가 이 단체를 도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것 같아요. 이런걸 보면 여자들은 계속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거기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저는 평화유지군의 행태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나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제 자신의 순진함에 너무 놀라고요. 그런 한편, 내가 아무리 나쁘게 상상해도 세상 남자들은 내 상상보다 더한 나쁜 짓을 저지르는구나 싶어요. 세상이 너무 절망적이에요, 단발머리님...

비연 2019-04-24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내용... 정말 힘들고 괴롭네요. 선듯 읽겠다고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이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생각하고 이해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 괴롭지만 알아야 할 일들이 많아서 마음이 참 심란해요...ㅜ

다락방 2019-04-24 11:15   좋아요 0 | URL
매 장마다 맞서 싸우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함께 실려있어서 좋긴한데, 고통에 대한 얘기는 정말이지 무뎌지지 않네요. 이 세상은 전체적으로 다 여성을 혐오하고 성적대상화 하고 있어요. 게다가 거기에 미성년자까지 동원되니.. 세상을 다 갈아엎어야 하는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어요.ㅜㅜ

2019-04-24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24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24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24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