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사둔지는 꽤 되었는데, 소설이란 걸 알면서도 도대체 '뱀이 깨어나는 마을'이란 게 뭘까,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뱀은 뱀..을 말하는걸까? 마을에 뱀이 나타난다니, 그걸로 이야기가 된단 말인가, 하고 자꾸 읽기를 미뤄뒀달까. 아아, 그러나 너무나 지루하고 진도가 안나갔던 코렐리의 만돌린 다음에 읽게된 이 책은 진짜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러분, 독서가 지지부진 하다면, 뱀이 깨어나는 마을을 읽으세요. 다시 독서의 환상적 세계로 안내합니다... 으하하하핫
클래라는 수의사로 일하며 조용한 마을에서 산다. 혼자 있고 싶어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불편해한다.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건 정말이지 그녀가 싫어하는 일이고,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 역시 정말 별로다. 그래서 친구도 만들지 않았고 연애도 하지 않는다. 이런 성격은 책의 초반부터 너무 잘 보여지는데, 와, 어쩌면 이런 캐릭터를 이렇게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작가 천재... 나는 감탄하며 읽어갔다.
그렇지만 그녀는 두려움에 맞서려는 용기를 가지고 있고(책 속에서도 다른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누구보다 용감하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작고 약한 존재에 대해 보살피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비록 다른 사람의 시선을 똑바로 받아내는 걸 힘들어하지만,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능력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뒤돌아서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사는 마을에 뱀이 나타난다. 숲과 함께하는 마을이니 풀뱀이 어쩌다 보이는거야 이상할 게 없지만, 이 뱀들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에 나타나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처음 그녀가 집 안의 뱀을 보게된 것도 마을 주민의 신고 때문이었는데, 갓난 아기의 몸 위에 살모사가 잠들어 있었던 것. 단순히 겨울잠에서 깨어난 뱀이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뱀이 '집 안'에 들어오는데, 이에 클래라는 이 원인을 찾고 해결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이 마을의 50년전 끔찍한 사건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거다.
와, 진짜 뱀이라니. 게다가 어떤 집에는 뱀이 수십마리가 들어와 모든 방안에 있다. 나는 이 '혼자 있고자 하는' 생생한 캐릭터의 클래라와, 그리고 그녀가 세상과 사람을 보는 방식에도 매력을 느꼈지만, 정말 뱀이 나타나는 마을에 대해서도 자꾸만 그 이야기가 궁금해져 책장 넘기기를 멈추기가 힘들었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데, 하면서 아홉시에 자려고 마음먹었던 노동절에, 아홉시 십분전에 이 책을 집어드는 바람에 열 시가 되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자정이 되어버린 사건... 자정 즈음에 다시 갈등했다. 끝까지 읽고 잘까, 내일을 위해 이쯤에서 잠들어야 할까. 나는 결국 후자를 택했는데, 그러나 잠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잠을 자면 꿈에 뱀을 볼 것 같아서 너무 무서운거다. 게다가 뱀이 한 마리도 아니고 수십마리가 나와서 꿈틀댈 것 같아 너무 무서운 거야.
여러분, 이 책은 자기 전에 읽지 마세요!! ㅠㅠ
그렇지만, 자기 전에 침대에 앉아 책 읽는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책장을 덮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서,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침대에 앉아 잠들기 전에 좋은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앞으로 남은 삶들을 살고 싶다고. 혼자라면 혼자인대로, 누군가와 함께라면 함께인대로, 내가 잠들기 전에 책 읽는 시간은 계속 가져가고 싶다. 크-
이 시간에서 행복을 느낀 건 이 책이 '좋은'책이었던 게 참 크다.
클래라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어하는 사람이었지만, 잘못된 걸 바로 잡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한다. 고립되고 싶었지만 의지와 다르게 자꾸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면서,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그저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으로 대해주려고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세상 속에 섞이는 것이 반드시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할 목표인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클래라가 이제 세상을 좀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해나간다는 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상처를 천천히 극복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아, 그리고 로맨스..
나는 이 소설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러나 뻔한 로맨스로 끝나버릴까봐 너무 두려웠다. 어떤 면에서 로맨스가 끼어들기를 바랐으면서도, 그러나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너무 뻔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달까. 그러나 우리의 샤론 볼턴은 이야기를 뻔하게 만들지 않았고, 세상 속으로 발을 디딘 클래라가 다른 식으로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보다 나는 그녀의 책 《희생자의 섬》을 먼저 읽었는데, 희생자의 섬 주인공도 의사였고, 이 책에서 주인공은 수의사다. 혹시 이 작가는 의학을 전공하였나 싶어 작가 소개를 봤는데, 그런 말은 적혀 있지 않았다. 춤, 연기, 경영, 홍보를 공부했다고 하는데(대단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의학은 거기 없었다. 그렇다면 의사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기 위해 그리고 이 책에서처럼 수의사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녀는 또 얼마만큼의 취재와 공부를 한걸까. 약간 불안한 장면들이 없진 않았지만(왜 남자가 예쁘다고 해주는 걸로 좀 나아지는 걸까?), 기본적으로 처음부터 참 좋다, 너무 좋다 이러면서 읽었고 나중엔 '천재인가...' 막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어. 샤론 볼턴이 매해 책을 내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 국내에 번역된 건 두 권 밖에 없다. 출판사, 힘내! 더 내줘요, 더!
무엇보다 남자가 구원해주는 서사 될까봐, 너무 좋았으니까 제발 그런 식으로 끝내지 말아줘... 했는데 흙흙 ㅠㅠ 샤론 볼턴님, 제가 앞으로 님 책은 닥치고 다 읽을게요!
어제 갑작스레 여차저차하여 친구랑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운동을 또! 못갔고 ㅠㅠ 아니 근데 5월이라 시간표 바뀐 거 인지하지 못한 부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양꼬치가 구워지는 테이블 앞에서 나는 내가 이 책에 밑줄 그은 부분을 친구에게 읽어주었다. 세 단락쯤 읽어줬는데, 친구는 너무 좋다고, 자기도 읽고 싶다고 했다. 정말이지 모처럼 책에 흥분해서 막 읽어줬네. 그런데 나 책 좀 잘 읽는듯? 아무튼 나는 이런 시간들도 너무 좋다. 책의 어느 구절이 좋아서 누군가에게 읽어주는 일, 그걸 듣고 친구 역시 궁금해 하는 일. 책 이야기 나누는 거 진짜 짱인 것 같아. 정말이지, 책 읽으면서 사는 삶을 쭉 이어나가고 싶다.
그러다보니 생각나는데, 며칠전에 혼자 술을 마시면서 <세계테마기행: 호주편>을 보게 됐다. 바다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배를 몰아주는 선장의 인터뷰가 잠깐 등장했는데, 그는 그 일을 아주 오래 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매우 좋아하고 있었다.
"나는 내 직업이 좋고 특히 다른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아요."
백발의 선장님은 이렇게 말했는데, 사람들이 저마다 세상을 사는 방식은 다양하구나, 새삼 느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다니. 많은 친구가 좋다고 말하는 선장님인 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다양한 곳, 내가 있는 곳과는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자신이 움직여 다른 곳으로 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들이 있듯이, 선장님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거다. 바다낚시를 하기 위해 다른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모이는데, 와, 너무 근사하잖아?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그러나 세계 곳곳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세계 곳곳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방법'은 이렇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소화해낼 수 있구나. 역시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살아가는 방식은 너무나 다양해! 뭔가 짜릿해지는 거다.
그는 오래, 열심히 일했고, 그래서 꿈에 그리던 집에 살게 됐다고 했다. 넓은 초원 위에 있는 집은, 와, 너무 근사해서, 포치에 앉아서 초록초록한 자연을 보며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아주 많은 시간들을 멍때릴 수도 있고!!

저 가운데 사진 보면, 이게 선장님 포치에 앉아서 보는 풍경인거다. 세상에..... 해가 질 때나 해가 뜰 때는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하겠지.
나는 언제나 포치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던 터라, 저 집이 너무 이상적으로 느껴졌다. 얼마나 돈을 모으면 저런 데서 사는 게 가능할까. 내가 살아생전 저런 집에 사는 게 가능할까? 일생의 어느 순간만큼은 저런 곳에서 저런 풍경을 보며 한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초저녁이면 저런 곳에서 조용히 먹고 마시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다가, 밤이면 침대로 쏙 들어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마무리할 수 있다면, 으- 천국.....
어제 뱀이 깨어나는 마을을 다 읽고 자, 다음 책은 뭐가 좋을까 하고 책장 앞에 가 섰는데, 내 책장에 내가 사두고 안읽은 책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다음 읽을 책은 없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래서 역시 사람은 책을 사야해...하게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꺼내들고 온 책은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의 《가난한 사람들》인데, 오늘 출근길에 앞에 조금 읽고 깜짝 놀랐다. 아니, 정말 가난하고도 가난한 사람들의 얘기잖아? 아아.. 제목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뱀이 깨어나는 마을은 정말 뱀이 꿈틀대는 이야기였고, 가난한 사람들은 정말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야...
9시가 되면 커피나 사러 다녀와야지.
"오늘밤부터 당장 뱀 포획에 나서서 녀석들을 잡아야죠" 키치가 말했다. 나는 홀 안을 둘러보았고 흔들림 없이 주목하는 사람들, 고개를 끄덕거리는 이들, 그리고 흉측하게 번뜩이는 눈동자들을 확인했다. 자신보다 약한 대상을 주저 않고 학대하려 드는 사람들의 모습과 별다르지 않았다. 인간은 얼마나 자주 합법적인 이유를 들어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고 벌이는 것일까?" - P58
나는 위엄 있는 분위기를 풍기는 그가 환경청이나 환경식품농무부에서 나온 인물인지 궁금했다. 그가 어디에서 왔든 자리를 기꺼이 양보하고 계단에서 내려갈 마음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하는 인물이었다. 반면에 나는 남들이 함부로 쳐다보게 만드는 쪽이었다. - P60
"스크러피, 얌전히 있어!" "괜찮아요." 내가 작게 말했다. 스크러피의 복슬복슬하고 성격 좋아 보이는 얼굴을 보면서 사람을 용모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 개들이 얼마나 상냥한지, 동물만 있는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지 생각했다. - P70
"난 문 앞을 지킬게. 미안해, 친구들. 뱀은 정말 질색이라." "병신!" 비웃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발음이 거셌다. 그들은 너무 시끄러웠다. 남자들이란, 조금 전까지 겁쟁이였다가 금세 용감한 척 허세를 부린단 말인가. 겁먹은 한 떼의 무리들이 이제는 모험에 나선 소년 일당이 되어 있었다. - P79
계단을 가볍게 뛰어오르는 발소리가 들리자 나는 극도로 안도했다. 남의 도움을 기다리는 내 모습은 이날 밤 가장 실망스러웠던 일이었다. 어른이 된 후로 한 번도 남자에게 의지해본 적도 없고 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데 아주 익숙한 나인데 처음으로 진짜 위험을 맞닥뜨리게 되자 감상적으로 변해버렸다. - P90
"조금 불안해 보이는 군요. 내가 운전을 할까요?" 맷이 말했다. 나는 시동을 걸면서 어떤 그럴듯한 변명을 들먹여야 할지 생각했다. 나는 야생동물을 다루는 일을 한다. 가장 외딴 마을에서 가장 적막한 거리의 맨 끝에 살고 있다. 의도적으로 이웃들의 이름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다. 쇼핑도 우편 주문만 이용했다. 혼자 있기 위해 뭘 더 해야 한단 말인가? - P103
나는 병원까지 십 킬로미터를 가는 동안 아무 말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침묵이 필요해 다른 사람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싶을 때 쓰는 익숙한 기술이 있었다. 나는 머릿속의 어느 한 곳으로 숨을 수 있다. 세상과 격리된 그곳에 있을 때면 바로 옆에서 누가 말을 걸어도 들리지 않았다. 필요할 때마다 사라질 수 있는 기술인 것이다. - P104
나는 로저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에든버러에서 공부할 당시 강의를 들었으며, 그의 열정은 내가 파충류 연구를 선택하게 된 요인 중 하나였다. 그는 늘 하던 대로 두 뺨에 입을 맞추었다. 호의는 잘 알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싶었다. 다른 사람이 얼굴을 건드리는 게 정말 싫으니까. - P113
"오소리, 여우, 각종 사슴, 온갖 종류의 영국 새, 또 요즘 갈수록 많아지는 뱀도 돌봐요." 내가 짜증이 난 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파충류 전문가에게는 역시 이상한 선택 같군. 큰 동물원에서 일하는 게 낫지 않아?" 사람들은 왜 그럴까? 생전 처음 만난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려 드는 이유가 뭘까? 당연히 나는 전에도 이런 질문을 받았었고, 보통은 동물원 수의사 자리가 빈 곳이 거의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 P122
나는 그녀를 쳐다보고 다시 바이얼릿에세 고개를 돌렸다. "그를 묶었던 건 이해할 수 있어요. 특히 그가 폭력적으로 굴었다면요. 그런데 굶긴 이유는 뭐죠? 그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어요?" "기도를 위해서라고 그랬어." 바이얼릿이 대답했다. "사람들이 그 집으로 가거나 아니면 그를 교회에 데려갔거든. 목사님이랑 다른 몇몇이. 그들 역시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서 그와 함께 몇 시간이고 기도를 했어. 악마를 몰아내려고. 그렇지만 소용없는 것 같았어. 며칠이 지나서 얼프레드는 여전한 상태로 멍든 손목에서 피를 흘리고 절뚝거리며 돌아다녔으니까." "아, 정말 황당해요. 말도 안 된다고요. 그는 악마에 씐 게 아니죠. 아팠던 거예요. 병원에 보냈어야죠." 샐리는 인내심이 바닥났다. "맞아. 그게 옳아 보이지 않았거든. 그런데 목사님과 많은 남자들이,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그렇게 확신하는 것 같았어. 나 같은 사람이 뭘 할 수 있었겠어?" 바이얼릿이 말했다. - P283
많은 사람들은 평범한 미래를 이야기하며 나를 격려하려 했다. ‘사람들이 전부 외모에만 집착하지는 않는단다, 클래라. 너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거야.‘ 마치 볼썽사나운 외모를 가진 사람은 저절로 더 좋은 내면을 지니게 된다는 듯, 아니면 외모의 결함을 내면의 뭔가로 당연히 보충해야 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친절한 사람들은 틀렸다. 나의 내면은 아름답지 않다. 사람들이 나를 기피하고, 주정뱅이들은 나를 안줏거리 삼아 짓궂은 농담을 하고, 길에서 십 대들이 조롱하고 놀리며 따라오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옷가게에서 옷을 사려 할 때 점원조차 다가오지 않는데 어떻게 평범해질 수 있단 말인가? 평생 그런 대우를 받으며 살아온 내가 어떻게 아름다운 영혼을 지닐 수 있겠는가? 나는 내면도 외면도 아름답지 않다. 언니가 빈번히 정확하게 지적했듯 적지 않은 적개심을 품고 있다. 지독하게 수줍음을 타고, 영원히 성마르며, 자신에게만 집착한다. - P310
"어머니가 술을 드셨어요. 아주 오랫동안,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요. 음악가셨던 어머니는 자기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시골의 성직자와 결혼하면서 경력을 포기하셔야 했죠. 나중에야 성직자 아내로 사는 게 적성과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셨고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숀은 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어둠이 더욱 짙어진 까닭에 나는 그 시선을 개의치 않았다. "어머니도 힘드셨겠죠. 치료도 받으시고, 몇 년동안 병원도 다니셨죠. 술을 입에 대지 않고 몇 달을 버티기도 했는데, 그러다가도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곤 하셨어요." - 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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