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 큰딸로 태어난 여자들의 성장과 치유의 심리학
리세터 스하위테마커르.비스 엔트호번 지음, 이상원 옮김 / 갈매나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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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첫째 딸이다. 

이십대 초반에 다녔던 첫 직장에서 내 상사는 나에게  '너 맏딸 컴플렉스 있어' 라고 했다. 나는 그제야 '뭐라고, 나한테 그런 게 있다고?' 하고 놀랐었는데, 확실히 내가 첫째 딸이기 때문에 가졌어야 했던 성격들을 나는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훗날 여러번 했다. 지금도 물론 그렇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른 첫째 딸들 역시 나랑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는 상황을 통제하려 하고, 일을 적절히 분배하려고 하며, 그러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원하든 원치않든 리더가 되려고 한다. 손아랫사람을 배려하고 누구보다 성실하며, 따뜻한 마음도 가지고 있다. 첫째로 태어났다는 특성상 부모에게도 처음 부모가 되는 경험이었으므로 나는 온갖 주변 어른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고, 아마도 그것은 내가 자라면서 사랑을 받고 표현하는 데 자연스럽게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당당하다' 는 말을 많이 듣게 했을 것이다. 약한 사람을 보살피고 싶어하고 진지한 것이,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가 첫째이기 때문에 가진 특징일까? 나는 물어야 했다.


저자들은 네덜란드에서 맏딸들만 모아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를 기획했다고 하는데, 그 안에서 맏딸들이 공통된 자기들 특징이라고 말한 성격들이, 과연 '맏딸이기에'가능한 성격이기만 했을까? 라고 물어보면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맏딸이기에 그런 공통된 특성을 가진 것은 맞을 것이지만, 맏딸이기에 응당 그런 성격을 가질 확률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맏딸만의 특징만은 아니라는 것. 배려심, 자상함, 진지함, 이해심, 당당함 등등이 어떻게 맏딸들의 특징이기만 하겠는가. 확률적으로 더 높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겠다.


맏딸들은 비슷한 방향으로 발달하게 된다고 이 책은 말하는데, 다른 형제들보다 아이큐가 높다거나, 유머감각 대신 진지함을 갖게 된다는 것은 내가 가진 특징이 아니다. 게다가 이 책에서는 맏딸이 아버지에게 얼마나 큰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지 말하는데, 하하하하, 나는 아버지를 내가 태어나 처음 겪은 한남이라고 말하는 사람으로서 전혀 '아니올시다' 라고 대꾸하고 싶다. '모든 맏딸이 그렇진 않아' 라는 말이 이 책을 읽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마는, 그렇다고 또 '대부분의 맏딸이 그렇긴 하지' 라고 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고, 그러다보면 이 책을 읽다가 종국에는 '이 책을 내가 왜 읽고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차피 이 책 읽는다고 내가 크게 위로 받는 것도 아니고 삶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며, 읽으면서 '어 이건 맞네' 하든가 '이건 아닌데'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부질없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것인가...



사실 이 책도 자기 방향에 있어서 오락가락 하는게 아닌가 싶은게, 우리가 사람이다보니까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 또 이런저런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소제목이 <막내 출신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인 꼭지에서, 이런 문장이 나오는 거다.



대부분 맏딸들의 가장 친한 친구가 맏딸 출신으로 조사되긴 했지만 막내 출신과 각별히 친해지는 맏딸도 적지 않다. (p.147)



위의 문장을 읽다가 나는 여러번 갸웃했는데, 대체 쓰나 안쓰나.. 별 의미없는 문장이 아닌가 싶어진거다. 맏딸은 맏딸이랑 친해,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니야... 라면, 뭐 어쩌라고?? 이렇게 되지 않나?


아무튼, 나도 꼽아보니 내가 지금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대부분이 맏딸이었다. 게다가 제일 좋아하는 모임은 하하하하 맏딸로만 구성되어 있다. 물론 한 명이 오빠가 있긴 하지만, 오빠 있는 집의 첫째 딸은 맏딸과 같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지만 이 책은 맏딸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위로 오빠가 있는 딸인 경우에도 맏딸 역할은 여전하다. 이런 딸들은 "오빠는 아무 일도 안 해요."라고 입을 모아 말하면서 무슨 뜻인지 알지 않느냐고 눈짓을 해보인다. 알고말고. 맏아들은 제일 먼저 학교에 입학하고 용돈이나 귀가 시간 등 일상생활의 토대를 닦아둔다. 여동생이 남자들의 세계를 알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노쇄해 보살핌이 필요할 때가 되면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후이다. 그러면 여동생이 맏딸이 되어 오빠의 빈자리를 채우며 책임을 떠맡기 일쑤이다. (p.14-15)




내 모임 구성원들도 맏딸, 내가 금요일에 만나려는 친구도 맏딸, 내가 중국에 같이 여행가려는 친구도 맏딸... 내 주변은 맏딸로만 구성되어 있는가....  아무튼 이 책은 맏딸들의 특성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면 읽어보면 좋다고 하는데, 이 책 읽는다고 뭐가 그렇게 확 인생의 답이 찾아지거나 하진 않는다. 아버지와의 유대감 부분에서는 진짜 좀 짜증났던 게, 대부분의 모든 첫째 딸들은 자기 아버지를 미워하고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맏딸들의 특성이지 않을까. 일전에 페미니즘 공부차 모여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아버지 얘기가 나오자 강사분도 그 말씀을 하셨던 거다. 한국에서 태어난 첫째딸들에게 아버지는 미움의 대상이라고. 첫째딸이야말로 자신의 어머니가 왜, 어떻게 고생하는지, 그게 어디에서 오는지 가장 먼저, 가장 오래 보아왔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이 책은 네덜란드 학자들이 쓴건데, 아마도 대한민국이 아닌 곳에서는 그런 걸 볼 일이 없었던 거 아닐까... 아무튼 아버지와의 유대감 같은 거, 나는 아닙니다, 아니고요.




재미있는 건 이성애자인 맏딸의 연애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나는 오래전부터 친구들에게 '누나 있는 남자랑 사귀는 게 제일 낫다'고 말하고 다녔던 바 있다. 여동생 있는 남자랑은 확실히 다르다, 그나마 제일 애들이 좀 인간답게 잡혀있다, 고 나만의 이론을 주장하고 다녔었는데, 이 책에서는 내 주장이 사실이라고 말해주고 있다(자매품으로 '여자상사 밑에서 첫직장생활 시작한 남자가 좀 낫다'도 있습니다). 통계적으로다가. 첫째 딸과 막내아들의 만남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데, 그 막내는 형이 있는 막내랑은 또 다르다. 누나 있는 막내아들이 좋아. 그건 이미 내가 살면서 경험으로 체득한 바 있는데, 책에서도 말해준다. 하하하하. 누나들 밑에서 자란 남자가 그나마 낫다. 



다시 말해 이성애자인 맏딸은 누나 한둘과 함께 자란 막내아들과 가장 잘 맞는다. 형들이 있는 막내아들도 괜찮지만 더 좋은 것은 누나들이 있는 막내라고 한다. (p.183)



내가 살면서 만나본 남자들을 토대로 해 내가 내린 결론이긴 하지만, 누나 있는 남자가 반드시 맏딸한테만 어울리는 건 아니다. 나는 이성애자 여자들이 대체적으로 누나 밑에서 자란 남자들과 사귀는 것이 '그나마 나을 것'이라고 본다. 아무튼, 내가 사귀었던 누나 있는 막내 생각 나면서 아련아련해지는 시간이었다. (응?)




리뷰 쓰려고 하다가 뭔가 이리저리 왔다갔다 중신없이 되어버렸는데, 이 책 읽는다고 딱히 뭔가 위로가 되고 힘을 얻고 그런 것도 아니고, 다만 아아, 나만 그런 건 아니고 맏딸들 대부분이 그러는구나,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겠다. 그러나 또 그것이 다가 아닌게, 그렇지만 또 그렇지 않은 맏딸들도 있지..이것도 동시에 알게 되어버려서. 결론 내자면, 많은 맏딸들이 공통된 맏딸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정도가 아닐까. 뭐, 그렇다는 거다. 



아래 문장은 내게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앞으로 살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문장이라 생각돼 인용해둔다.



맏딸인 당신은 자신의 행복뿐 아니라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 남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를 분명히 인식해야 남들 챙기느라 기진맥진해지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사람들이 당신 없이도 해나갈 수 있다는 점을 믿어야 한다. 기억하라. 물론 당신이 하면 조금 더 낫겠지만 어떻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로 물러서 있을 줄 알아야 한다. (p.106)



세상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고 했다. 난 말도 안 된다고,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다.
-루시 반 펠트Lucy Van Pelt(찰스 슐츠Charles M. Schulz의 만화 <피너츠Peanuts>에 등장하는 맏딸) (p.25 재인용)

2007년 <사이언스Science>지에는 맏아이가 평균 이상의 지능을 보인다는 내용이 실렸다. 전 세계 IQ 평균은 90에서 110 사이인데 맏이들은 이보다 2~3점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IQ 3점은 별것 아니라 여겨질지 모르지만 전문가들은 이것이 결정적 차이를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p.41)

맏딸들은 결국 비슷한 방향으로 발달하게 된다. 맏딸들은 자기 형제자매보다도 다른 맏딸들과 더 많이 닮았다. 착한 아이, 뭐든 잘 하는 아이가 되어 내 자리를 안전하게 진킨다는 믿음응ㄹ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p.98)

맏딸들은 온갖 잡다한 일들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 된다. 자녀나 동료들이 남에게 하는 말이든, 남들이 하는 생각이든, 늦은 밤에 베란다에서 나와 우는 이웃집 고양이든, 기후 변화든 다 마찬가지다. 맏딸들은 이 모든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감을 느낀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할 때 수많은 맏딸들이 책임감을 언급하는 것도 그래서 놀랍지 않다. 기억도 안 나는 오래전부터 남들의 모범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p.105)

형제자매 관계 1503건(인원수로는 3552명)에 달하는 영국 가구 패널 좌를 바탕으로 학업 열망과 성취도를 살펴본 결과, 부모의 교육 수준과 직업 지위의 영향을 고려한 상황에서도 맏이들은 동생들에 비해 교육받으려는 열망이 7%나 높았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맏딸들은 맏아들에 비해 열망이 13% 더 높았다는 점이다. 맏딸들은 야망이 있었다. 삶과 자기 자신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내고자 했다. 동기부여가 가장 잘된 집단 역시 맏딸들이었다. (p.33-34)

때로 맏딸들은 그런 성실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오늘은 어떤 일에도 나서지 않겠어, 가만히 앉아서 남들이 나설 때까지 기다릴 거야.‘ 하고 결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로젝트 마감 기한이 다가오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면 결국 성실한 맏딸이 떠맡게 된다. ‘좋아, 내가 해주지.‘ 라면서.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아이의 스포츠클럽이든 친구들 모임이든 마찬가지다. 맏딸이 있는 곳 어디서나 맏딸은 필요한 일을 맡아 훌륭하게 해낸다. (p.107)

경계를 확실히 하고 그 경계를 지켜라. 누가 어머니를 위해 장을 볼지, 산책을 모시고 나갈지, 사무실 문을 마지막으로 잠글지 정해라. 무언가 바꾸려는 사람은 자기 입장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Yes‘ 만큼이나 ‘No‘라는 말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 운명을 자기 손에 넣은 셈이다. 이렇게 할 수 있어야 성실성은 강력한 자질로 남는다. (p.108)

맏딸들은 전체를 보는 눈과 조직하는 기술을 타고난다. 집으로 들어서기만 해도 무엇이 필요한지 보이고 곧 일을 분배할 수 있다. 사람들은 불평이나 질문 없이 맏딸의 지시를 따른다. 그 의견이 옳다고 보기 때문이다. 맏딸의 권위는 인정받는다. 물론 맏딸은 자신이 리더라고 전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늘 하던 일을 할 뿐이니 말이다. 늘 총대를 메는 것은 맏딸이다. 아니면 다른 누가 한다는 말인가?
농담조로 자신을 프로 간섭꾼이라고 부르는 맏딸들도 있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남들 일에 관여를 한다. (p.108-109)

1985년에 출간된 책 [나는 왜 나인가The Birth Order Book)에 소개된 결과를 보자. 외동이나 첫째 집단에서는 예외 없이 누군가가 쪽지를 집어 들고 읽었다고 한다. 둘째나 막내 집단에서는 누구도 쪽지를 먼저 집어 들지 않았다. 둘째들은 늦게라도 그럭저럭 과업을 따라갔지만 막내들은 잡담에 빠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고 한다. 첫째와 외동들은 훌륭한 발표를 한 반면 둘째는 간혹 훌륭했고 막내들은 그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자기는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막내들에게 말해줘야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결국은 모든 참석자들이 자신들이 정확히 출생 순위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음을 깨닫고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맏이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과업을 해냈던 반면 막내들은 누군가가 할 일을 알려주기까지 기다리면서 놀고 있었던 것이다. (p.10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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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2-1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맏딸인데, 언제부터인가 아 내가 맏이라서 가지게 되는 특성이라는 게 있구나 라는 걸 느껴요. 실제로 친한 친구들도 맏딸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구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가끔, 둘째나 막내면 좋았겠다. 훨씬 자유로왔겠다 라는 마음이 들기도 하죠..^^;;;

다락방 2019-02-18 10:44   좋아요 0 | URL
맏딸은 맏딸을 알아보는걸까요, 비연님? 비연님 맏딸, 저도 맏딸, 밑에 유부만두 님도 맏딸.. 지금 이 공간의 모두가 맏딸....

유부만두 2019-02-17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맏딸.... 흠...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어요.

다락방 2019-02-18 10:44   좋아요 0 | URL
아아, 제 주변엔 왜 이다지도 맏딸들만 많단 말입니까! 그건 제가 맏딸이기 때문입니까!
 
















레이철과 브라이언 델라크루아는 마지막으로 이메일이 오가고 여섯달 후 봄, 사우스엔드의 바에서 다시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그곳이 자기 아파트에서 몇 블록 거리였고 그날 밤, 여름이 다가오는 게 느껴진 첫날, 길거리에서 습기와 희망의 냄새가 났기 때문에 거기에 오게 되었다. 그녀는 그날 오후 이혼을 마무리 지은 후라 용기를 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그 바에 갔다. 그녀는 대인공포가 악화되는 것이 걱정되었으며 그걸 극복하고 싶었고, 자신의 신경을 다스릴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날은 5월이었고, 초겨울 이후로 그녀는 거의 집을 나서지 않았다. (p.131)





나는 어릴적부터 한결같이 여름을 좋아했지만, 봄이 오는 무렵 역시 좋아했다. 겨울에서 봄으로 막 바뀌려는 때, 바로 그 때. 그러니까 지금 같은 때. 그 때는 공기가 달라지는 걸 느낀다. 봄냄새라 일컬을만한 그 무엇, 그 어떤 냄새가 공기중에 떠돌고, 어? 봄이 오는 냄새네? 하면서 봄이 오려고 하는구나, 설레이게 된다. 나는 겨울의 추위에 대해서라면 힘들지 않지만 겨울이 가져오는 건조함이 싫고 어두움이 싫다. 출근길도 어둡고 퇴근길도 어두운 게 싫어. 그런데 며칠전부터 퇴근하려는데, 이전만큼 어둡질 않았다. 아, 계절이 바뀌는구나. 계절이 바뀌고 있어!


'브라이언 델라크루아'는 여름이 다가오는 걸 느끼고 '습기와 희망의 냄새'가 났다고 한다. 나는 그게 뭔지 너무 잘 알겠어! 내가 봄이 오는 걸 느낄 때, 그 때 봄이 오는 냄새가 난다고 하는, 바로 그런 게 아닐까. 계절이 바뀌는 걸 냄새로 알고 또 느끼다니, 브라이언이 좋아졌다. 당신,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는 그런 사람이군요!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좋다. 아, 빨리 여름이 왔으면! 아무리 땀이 많이 나도, 아무리 뜨거워도, 나는 여름이 좋아!




하지만 봄이 왔고, 느긋하고 밝은 목소리가, 아이들이 지르는 소리가, 인도를 굴러가는 유모차 바퀴 소리가, 방충망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길거리에 돌아왔다. (p.132)




계절이 바뀌면 냄새로도 알고 보이는 것들로도 알고 소리로도 안다. 산책하노라면 푸릇푸릇한 풀과 나무들이 모습을 보이고 꽃들도 서서히 피기 시작하니까. 일자산에 가면 새들도 시끄럽게 울곤 한다. 매미랑 귀뚜라미가 겨울에는 울지 않잖아요. 나는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는 게 진짜 너무 좋다. 내가 그걸 느낄 수 있어서 좋고, 그걸 느끼는 사람들이 좋아.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 것이라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도 느껴지는 게 아닐까.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걸 내가 알고 느끼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이 눈치채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들켜버리는 것.

브라이언은 처음 만난 후부터, 자주 만난 것도 아니고 또 어쩌다 우연히 만나게 되면 만남과 만남사이 텀도 길었지만, 그러나 레이첼을 사랑하고 있다. 푹 빠져있어. 그렇다고 그녀에게 사귀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데이트 신청을 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그는 또 유부남이기도 했어. 그저 뉴스에 나오는 그녀를 보거나 어쩌다 마주친 그녀를 보게되었을 때 반가워할뿐. 한 번은 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녀를 대하는 그가 뭔가 서두르는 것 같고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반 년이 지나 그를 우연히 만나서 그 때의 일을 묻는다. 그 때 왜 그런거냐고.



"이혼으로 가는 중이었지만 당시엔 유부남이었죠. 그리고 세일즈맨이고, 그 결혼을 도덕주의자 고객에게 팔던 참이었고요."

"거기까진 알겠어요."

"그러던 중 당신이 길거리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걸 봤고 내가 먼저 선수를 치지 않으면 그가 알아보겠구나 싶다 보니, 진짜 초조할 때 그러듯이 잔뜩 흥분해서 완전히 망쳐버린 거죠."

"그가 알아본다는 거요, 뭘 알아봐요?"

그는 고개를 갸웃 기울이더니 그녀를 향해 한쪽 눈썹을 추켜세웠다.

"정말 그 말을 해야 해요?"

"설명을 해야 알죠."

"당신한테 끌리는 내 마음이죠, 레이철. 헤어진 아내가 그걸로 트집잡곤 했어요. '또 뉴스에 나오는 당신 여자친구 봐?' 친구들도 알았죠. 내가 비콘 가 한복판에서 멍청하게 입 벌리고 있었으면 잭 아헌도 감 잡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치코피에서 만났을 때부터요. 왜 이래요."

"당신이야말로 왜 이래요. 난 몰랐는걸요."

"아, 어, 그렇군요. 하기야 당신이 왜 그러겠어요?"

"말을 하지 그랬어요."

"이메일로? 그 그림처럼 완벽한 남편하고 같이 읽으라고?"

"완벽괴는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나야 몰랐죠. 게다가, 난 유부남이었고."

"부인은 어떻게 됐어요?"

"헤어졌어요. 캐나다로 돌아갔죠." (p.151)




레이철은 브라이언이 자신을 좋아하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런 기미가 딱히 보이지 않았으니까. 레이철은 열심히 일을 해서 커리어를 쌓아갔고,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도 했다. 레이철은 잘 나가는 것 같았는데, 전쟁을 보도하는 동안 공황장애가 찾아왔고, 눈 앞에서 죽음을 보면서 커다란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됐다. 커리어는 무너졌고, 커리어가 무너짐과 동시에 남편은 그녀를 떠나갔다. 그가 좋아했던 건 그녀가 아니라 앞으로 그 커리어로 성공해서 자신에게도 어떤 도움이 될 것 같은 그녀였다. 이렇게 공황장애를 앓고 힘들어하고 외출을 하지 못하는 그녀가 아니었다. 결국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고 바에 들렀다가 6개월만에 우연히, 브라이언을 만나게 된 것. 그런 브라이언은 그 사이에 그녀를 사실 좋아하고 있었음을, 그리고 자신이 유부남이었다가 이혼하게 됐음을 얘기했다.



브라이언과 레이철이 처음 만나고난 후 그들이 서로에게 호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애시당초 레이철이 어린 시절부터 궁금했던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사설탐정인 브라이언을 찾아가게 되어 둘이 아는 사이가 되었는데, 브라이언은 그 일을 진행해주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그들 사이의 접점은 사라져버린 거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 브라이언은 레이철에게 이메일을 보냈었다. 자신이 커리어를 망쳤다고, 자신은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자신의 뉴스를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때에, 브라이언은 '너만큼 진실한 사람은 없다'며, 그녀의 뉴스를 보고 그녀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은 그러니까, 호감을 넘어선 사랑이었던 것. 브라이언은 다른 여자랑 결혼해 살고 있었지만, 그녀를 향한 호감을 아내에게 들켜버리고 만다. 무엇이 먼저인줄은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아내랑 이혼했으니까. 레이철 역시 브라이언의 존재를 알고, 어쩌다 그에게 이메일을 받으면 시니컬하게 답장을 하면서, 다른 남자랑 결혼해 살고 있었다. 그러다 이혼을 했고. 이렇게 다시 싱글이 된 브라이언과 레이철은 재회하게 된다.



그들이 처음부터 서로 싱글이며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표현했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이미 모든 일들이 벌어져 여기까지 온 마당에 그런 것들을 가정한들 무슨 소용일까. 다만 어떤 사람들은, 어떤 실패들을 경험한 뒤에, 어떤 상처들을 경험한 뒤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자신 역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운이 좋고 나쁜 것과도 또 다른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아주 빨리, 어린 나이에 자신의 상대 옆에 착- 하고 안착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돌고 돌아, 저기 멀리까지 갔다와서, 또 마음에 많은 스크래치들을 내고나서야 안정을 찾게 되기도 하니까.



브라이언이 아내가 있었을 당시,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 레이철을 좋아했다는 걸 그의 아내는 어떻게 알았을까. 그는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들켰을까. 나는 브라이언이 그 자리에서, 아내 앞에서 뉴스를 보며 '레이철 너무 좋아, 짱이야, 레이첼 만세' 라고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브라이언은, 자신이 유부남이니까, 자신의 마음은 드러나서는 안되는 거니까, 게다가 아무리 이혼할 거라 해도 어쨌든 아내 앞이니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로 그저 뉴스에 나오는 레이철을 보았을 것이며,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달랐던거야. 다름이 있었기 때문에 아내는 그가 그녀를 향한 특별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걸 짐작하게 되었을 것이고, 브라이언은 들켰을 것이다. 그조차도 그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두려워하지 않나.


그렇다면, 그가 아내와 사이가 나빴다고는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 그리고 생각 속에 레이철이 있었다면, 브라이언이 함께 산 건, 옆에 육체적으로 함께 있는 아내가 아니라 레이철이 아니었을까? 나는 뉴스를 보면서 아내에게 마음을 들켜버린 장면에서, 레오와 에미가 툭, 생각나버리고 말았다. 레오는,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자신에게 애인이 있지만, 자신이 함께 산 건 에미였음을.



파멜라가 이곳으로 오기로 한 거죠. 그런데 내가 그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에미 당신이랑 보냈어요. 그사이에 내가 공간을 떠나 누구 곁에 있었을까요? 에미 당신 곁에 있었어요. 내가 나의 비밀스러운 내면에서는 누구랑 살았을까요? 에미 당신이랑 살았어요. 언제나, 오로지 당신과 함께 였어요. 그리고 내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환상에 등장하는 하나의 얼굴 또한 당신 얼굴이었어요. (p.334-335)




레오에겐 파멜라 라는 애인이 있었다. 그리고 좀 멀리 떨어져 지내고 있는 파멜라가 레오를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오기로 했다. 그러나 레오는 그 기다림의 시간을 에미랑 보냈다. 에미랑 만나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섹스를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이메일만 주고 받았을 뿐. 그저 이메일로 대화를 했을 뿐인데, 레오는 그것이 우리가 곁에 있었던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것이 내면에서 에미랑 살고 있던 것이란 걸 깨닫는다. 진실한 대화란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우리가 함께한다는 건 그 내면을 나누는 일일 테니까. 내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보이는 것, 물론 백프로를 드러낼 수는 없겠지만,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같은 걸 느끼노라면, 그것이 타인에게도 보이는 게 아닐까. 그렇게 레오가 에미에 대한 마음을 스스로 깨달았다면, 레이철에 대한 브라이언의 마음은 그의 아내가 눈치챘다.




6개월만에 싱글로서 당당히 레이철과 재회하게 된 브라이언은, 눈앞에서 그녀를 놓칠까봐 겁난다. 그녀가 그냥 사라져버릴까 겁나. 그래서 얘기한다.



"나를 스토커로 여기고 발걸음을 빨리한다고 개인적인 모욕으로 여기진 않을게요. 약속합니다. 그냥 여기 이대로 서서 다시는 당신을 만나지 않을 테니까."

그녀는 멈춰 섰다. 돌아섰다. 그녀가 삼십 초 전에 지나쳤던 골목 어귀에 서 있는 그를 보았다. 그는 두 손을 모으고 가로등 아래 서 있었고, 움직이지 않았다. 정장 위에 레인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저녁 조금 더 있다 들어갈 거라면, 열 걸음 뒤에서 따라가면서 어디든 당신 원하는 곳에서 한잔 살게요."

그녀는 오랫동안 그를 쳐다보았다. 가슴 속 참새가 파닥거림을 멈추고 굳었던 목덜미가 풀렸음을 깨달을 만큼 오랫동안. 집에서 문을 닫아 걸고 안전하게 있었을 때만큼 평온한 기분이었다.

"다섯 걸음으로 해요." 그녀는 말했다. (p.145)


다섯 걸음... 뭘까?

원, 투, 쓰리, 포, 다섯걸음....

사랑에는 다섯걸음.....



계절이 바뀌는 것도 느낄 수 있지만, 내가 바뀌는 것도 느낄 수 있다. 나를 둘러싼 것이 바뀌는 기운. 이를테면 사랑이 시작될 때, 사랑에 빠져들 때. 그러니까 나에게 누군가가 생기려 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상대가 되고자 해서, 그래서 우리 사이에 새로운 기류가 형성될 때, 우리는, 적어도 나는 그것이 느껴진다. 아, 나를 둘러싼 공기가 바뀌는구나, 나를 둘러싼 기운이 바뀌고 있어.

바로 저 장면에서, 레이철도 느끼지 않았을까. 아, 바뀌겠구나, 바뀌겠어, 나를 둘러싼 공기가 이제 바뀔 것 같아.



그들은 연인이 된다.



"대부분 경우 난 자신 있어요. 이성적인 어른으로서의 나? 자기 일 알아서 챙겨요. 다만 한밤중에 어두운 바에서 나 자신의 좋아하지 않는 점에 대해 묻는 여자만 접근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가 있거든요." (p.155)



나는 이 '아주 작은 일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결정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 아주 작은 일부. 다른 사람이 접근하려 한다면 짜증이 나고 방어벽을 세우게 되고 정이 떨어지게도 되는 그런 부분이, 어느 한 사람에 대해서라면 한없이 포용하게 되는, 그런 일부. 그 접근이 싫지 않은, 허락을 하게 되는 그런 일부. 그런 아주 작은 일부가 사실은 사랑을 결정하게 되는 아주 큰 부분이 되는 것이고, 그 작은 일부를 느낄 때, 아 나를 둘러싼 공기가 달라지겠구나, 를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데니스 루헤인'의 책은 이번이 세번째다. 그간 읽은 두 권의 책은 그의 명성을 익히 들었음에도 내게는 딱히 재미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재미있다. 바로 다음장이 궁금해 계속해서 책장을 넘겨야만 했다. 끝부분이 영 마음에 안들긴 했지만, 뭐랄까, 끝에가서 맥이 풀린 듯한 느낌이긴 했지만, 끝에 가서는 좀 이해도 안되긴 했지만, 그래도 엄청 재미있게 읽었다. 이것은 표면적으로 사기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러나 본질적으로 사랑 이야기. 데니스 루헤인이 이런 사랑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인줄은 내가 몰랐네? 덕분에 데니스 루헤인의 다른 책들도 더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빨리 봄이 되고 빨리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 조금 더 밝아지고 조금 더 환해지고 조금 더 다채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색색깔로 활짝 피어있는 꽃들을 보고 그러다 이내 뜨거움이 찾아들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생기있게 살아갈 수 있을텐데.


결국은 브라이언과 레이철이 사랑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어떤 사람들은 기어코 언젠가는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사랑하게 될 줄 알았다.

시링하게 될 줄 알았어, 우리 처음 만난 그날에.












그녀는 옆으로 비켜섰고 레이철은 딱 학자 부부의 집처럼 보이는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과 거실 벽과 부엌 창문 아래를 차지한 책장, 화사한 색의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졌지만 전혀 덧칠하지 않은 벽, 제3세계 국가에서 가져온 제각각 다른 상태의 여러 도자기 상과 가면, 벽에 걸린 아이티 미술품. 레이철은 어머니를 따라 이런 집을 수십 군데 다녀보았다. 거실 붙박이 선반에 꽂힌 레코드판이 무엇일지, 욕실 바구니를 점령한 잡지는 무엇일지, 부엌 라디오는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 채널에 고정되어 있으리라는 겄까지 그녀는 다 알았다. (p.52)

새삼스레 그를 잃은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경험했듯이, 인생은 분리의 연속이라는 오랜 의심이 다시금 떠올랐다. 인물들이 무대에 나오고,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래 나오긴 하지만, 결국엔 다들 퇴장한다.
세워놓은 차까지 와서 그녀는 그의 집을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친구로 있어 줘서. 그녀는 생각했다. (p.94)

사람이 평생 매일 사진을 찍어도, 여전히 자기 진실을- 핵심을 보는 이들에게서 감출 수 있으리라고 그녀는 짐작했다. 어머니는 그녀 앞에 스무해 동안 매일 섰으나 레이철은 어머니가 보여주려고 마음먹은 것만 알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 앞에 4*6, 5*7, 8*10 사이즈의 초첮 맞고, 초점 나가고, 노출 과다, 조명 부족한 사진들 속에서 아버지가 그녀를 마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는 알 수 없는 존재였다.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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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9-02-21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니스 루헤인이 세번째 책을...! 다락님은 여전히 책 많이 읽으시는군요. 저는 삶이 팍팍해졌다고 할까요. 책도 거의 못읽는 삶을 살고 있어요 ㅠㅠ 한번 궤도 밖으로 튕겨나가면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네요. 이 책도 읽고싶고 저 책도 읽고싶은데, 지금 새벽 2시42분에, 이렇게 푸념만 하고 있다니.ㅠㅠ 아무튼 데니스 루헤인은 믿어도 되는 작가인데 다락방님이 보증까지 서주시네요^^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9-02-21 06:23   좋아요 0 | URL
데니스 루헤인이 세번째 책을 낸 건 아니고요 제가 읽은 데니스 루헤인 책 중 세번째란 뜻이었어요. 근데 이 책 재미있고 좋더라고요! 덕분에 다른 책도 봐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저도 책이 잘 안읽혀서 못읽겠는 때가 가끔 찾아오더라고요. 그럴 때 왜이러지 초조해하면 오히려 더 스트레스 받는 것 같아요. 그래 읽지말자, 내버려두면 다시 책을 읽게 되는 때가 오더라고요.
책을 요즘 잘 못읽으셔서 알라딘에 뜸하신가요, 마태우스님? 자주 뵈면 좋을텐데요!!
 
















《캘리번과 마녀》는 각 장이 시작할 때마다 인용구들이 삽입되어 있다. 2장 <노동축적과 여성의 지위하락>에 삽입된 인용구(p.98)는 이것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있어서 파편화된 상품이었다. 그녀의 감정과 선택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와 심장은 등뼈와 손에서 분리되어 있었고, 자궁과 질에서 분열되어 있었다. 그녀의 등뼈와 근육은 밭일로 내몰렸고, 손은 백인을 간호하고 양육해야 했고, 그의 성적 즐거움에 봉사하는 그녀의 질은 자궁으로 가는 통로였으며, 자궁은 그가 자본을 투자하는 장소였다. 성행위가 자본투자 행위며, 그 결과 태어나는 아이는 축적된 잉여였다 …….

-바바라 오몰라드, 「암흑의 핵심」, 1983



나는 저 바바라 오몰라드의 문장을 읽고 흥분해, 저 책을 읽고 싶어졌다. 그냥 모든 게  다 들어있지 않은가!! 아마도 단편이거나 한 게 아닐까, 아니면 논문인걸까. 검색창에 '암흑의 핵심'을 넣어봤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만 수두룩하게 나오더라. 그래서 '바바라 오몰라드'를 넣고 검색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 몰라 네이버에 넣고 검색했지만, 그래도 나오지 않았다.



'바바라 오몰라드'는 누구이며, 저 인용문의 출처는 도대체 내가 어떻게 읽을 수 있는 것인가. 원서라도 똭- 검색이 된다면 아무 출판사에나 들이밀고, 이 책 좀 내주시면 안될까요, 해볼 수 있을텐데 아무것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혹시, 어쩌면, ㅁㄹ 님은 아시지 않을까.....(  ")


내용이 내용이니만큼 캘리번과 마녀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고 있다. 포스트잇 붙여가면서, 색연필로 밑줄 그어가면서. 그런데 이 색연필..아마도 그 뭣이냐, 무슨 어린이책 살 때 굿즈로 받았던 것 같은데, 타미 줄까 하다가 그냥 내가 쓰고 있는데, 너무 좋다! 하나의 색연필 안에 여러가지 색깔이 들어 있어서 밑줄 그을 때마다 색이 다르고, 줄 쳐지는 느낌도 좋아서 공부하는 느낌이 아주 제대로인거다. 앞으로 밑줄은 이 색연필로만 긋고 싶은데, 그런데 이런 색연필은 도대체 뭐라고 검색해서 사야 하는건지를 모르겠다. 내게는 형광펜이나 볼펜보다 훨씬 좋은 것이다!!




이런 색연필 뭐라고 검색해서 사는건가요? 혼합색연필? 믹스컬러 색연필? 알 수가 없다... '컬러는 우리안에?' 아, 모르겠다.....다 가진 색연필? 아..모르겠다.....



아무튼 바바라 오몰라드의 암흑의 핵심이 궁금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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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2-12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색연필로 줄긋기 하는데... 이게 형광펜이나 볼펜과는 또 다른 맛이라. ㅎㅎㅎ 아 이 책도 읽고 싶어요~

다락방 2019-02-12 09:53   좋아요 1 | URL
맞아요. 또 다른 맛 ㅋㅋㅋ 이걸로 밑줄 그으면서 보는데 막 공부하는 느낌 들고 너무 좋아요! ㅋㅋㅋ 쟁여두고 싶어요.
비연님도 이 책 읽으세요!
근데 전 이 책 어렵네요 ㅠㅠ

단발머리 2019-02-12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저 색연필에 빠져서는 읽고 있는 모든 책을 빨주노초파남보로 아름답게 색칠하였더랬죠.
근데 이름을 모르겠네요, 무지개 색연필 아닐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같은 마음으로 ㅁㄹ님을 기다려봅니다^^

다락방 2019-02-12 09:54   좋아요 0 | URL
오오.. 무지개 색연필? 그건 또 생각도 못해봤네요. 무지개 색연필로 검색해야겠어요. 어쨌든 검색해서 찾게 되면 쟁여둬야 겠어요. 저 색연필 밑줄 그을 때마다 완전히 다른 색들의 향연이라 너무 씐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쯤되면 줄긋기 위해 책을 읽는 건 아닌지.... 흐음...


ㅁㄹ 님이 답을 주시지 않을까, 저도 기다려봅니다. 많은 것들을 아시는 분..이것도 아실 것 같은데 ㅠㅠ

다락방 2019-02-12 09:57   좋아요 0 | URL
꺅 >.<
단발머리님, 무지개 색연필로 검색하니 나왔어요. 막 주문을 마친 상태입니다. 저 스무개 주문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란 여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02-12 10:04   좋아요 1 | URL
진짜요????? 진짜 무지개 색연필이었어요? 생각나는대로 붙인 이름인데, 그게 맞았단 말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냥 막 던졌는데 그게 맞는 말이었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무개 주문했다면.... 한 자루 있으면 10권, 아니 20권은 줄 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이십 곱하기 이십??
400권 확보!! 와~~~ 스케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02-12 10:07   좋아요 0 | URL
아 취소하고 열 개로 줄여야겠다. 이놈의 스케일은 그냥 아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9-02-12 11:16   좋아요 0 | URL
저도 이거 하나 있는데.. 라고 반가운 마음에 쭈욱 읽다보니.. 락방님. 20개.. 아니 줄여서 10개 주문..헉.

비연 2019-02-12 11:18   좋아요 0 | URL
https://smartstore.naver.com/dnara/products/3845185740?NaPm=ct%3Djs14zfk8%7Cci%3Dda2d213fac09d9fbcde8b1640fa683f51e80a8ed%7Ctr%3Dslsl%7Csn%3D583975%7Cic%3D%7Chk%3Dbaea878b90eba1aae60dcd9a5ad05e7ab6822d9d

이런 거죠?

다락방 2019-02-12 11:19   좋아요 1 | URL
네네 줄여서 10개 주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링크 올리신 바로 그곳에서 샀어요. 네이버페이로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02-12 11:21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의 거침없는 주문을 부른 나의 소소한 기억력이 새삼 자랑스러운 아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02-12 11:34   좋아요 0 | URL
지름신을 몰고 오셨습니다, 단발머리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겟타 2019-02-12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영부영하다가.. ㅜㅜ 베트남에서 못 읽으셨던 다락방님 보다 더 늦네요..
빠르게 합류.. ^^:; 해서. 곧 따라 갈께요.

어? 저도 저 색연필을 단발머리님 말처럼 무지개색연필로 알고 있어요.

다락방 2019-02-12 10:01   좋아요 1 | URL
블랙겟타님, 읽고 얼른 글 좀 써주세요. 저는 이게 좀 어려워서요. 다른 분들의 글을 읽어야 비로소 좀 이해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이 책 진도가 잘 안나가요. 제게는 백래시, 페미사이드,우리의의지에 반하여 보다 이 책이 더 어렵네요. 제 지식이 너무 얕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여러방면에 지식을 갖고 있어야할 것 같더라고요.

저건 무지개색연필로 검색했더니 나와서 왕창 주문해버렸어요 ㅋㅋㅋ

블랙겟타 2019-02-12 10:12   좋아요 0 | URL
네. 저라고 딱히 다락방님의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요...ㅎㅎㅎㅎ^^;;
오늘부터 많이 읽어서 얼른 글 쓸게요.

아 무지개색연필이 맞았네요 ㅎㅎ 그런데.. 응? 스,,스무개?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02-12 10:17   좋아요 1 | URL
방금 정신차리고 열개로 줄여서 다시 샀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19-02-12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라서 무지개 색연필 검색

다락방 2019-02-12 12:20   좋아요 0 | URL
공부가 잘되는 느낌적 느낌입니다.
(필기구 탓하는 건 공부못하는 사람의 전형적 특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02-12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들은 마치 <색연필과 마녀> 페이퍼에 달림직한 것들이네요 ㅎㅎㅎㅎㅎ 그 경우 마녀는 단발님인가 다락방님인가.....

다락방 2019-02-12 13:32   좋아요 0 | URL
우리 둘다 마녀하는거죠. 이곳은 마녀의 세계. 웰컴투 마녀월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이바 2019-02-12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줄긋기는 여기서 시작된 건가요?ㅋㅋㅋㅋ 다락방님 글을 보니 저도 바바라 오몰라드가 궁금해 검색해보았습니다.

바바라 오몰라드가 쓴 ‘암흑의 핵심‘은 1995년에 발표된 에세이네요.
https://philpapers.org/rec/OMOHOD
https://alanahpierce.wordpress.com/2011/04/05/hearts-of-darkness-by-barbara-omolade/

간단한 바이오그래피는 여기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archives.qc.cuny.edu/finding_aids/Omolade
https://www.sarahlawrence.edu/archives/collections/finding-aids/b/barbara-omolade-papers1.html

다락방 2019-02-12 15:41   좋아요 0 | URL
에이바님, 아니, 에이바님 아니십니까! 에이바님!! (일단 와락- 끌어안는다) 반가워요 ㅠㅠ

링크해주신 걸 구글번역을 통해 내용 봤거든요. 와, 엄청 흥미로운데(얼마전에 읽었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생각도 나고요. 거기서도 흑인여성에 대한 성착취-노예를 더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써도-가 나왔었거든요), 국내 번역본은 없는가보네요. 이런 것 좀 국내에서 번역해서 내주면 좋을텐데요.

그나저나 저는 어떻게 검색해야할지도 몰랐는데 이렇듯 링크를 척- 주시니 감사합니다, 에이바님. 후훗.

단발머리 2019-02-12 15:54   좋아요 0 | URL
저도 ‘암흑의 핵심‘은 콘래드 밖에 몰라서 궁금했는데 와우!!

이런 링크 너무 고급져요.
저도 얼른 따라가 읽어봐야겠어요.

다락방 2019-02-12 15:57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 님, 번역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진짜 간절하게 들어요. 흑흑 ㅠㅠ

단발머리 2019-02-12 16:01   좋아요 0 | URL
출판사에 전화하시면 어떠실런지요.....
저는 아직 안 읽어봤지만 그런 마음이 아주 강하게 드네요. ㅠㅠ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다시 여름, 한정판 리커버)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몇 해전에 류근 시인 산문집 읽고 대실망 했었는데 박준은 그보다 낫지만, ‘남자 시인의 산문집’은 읽지 않는 걸로 결정했다. 박준은 시만 읽고 류근은 시도 안읽어야지. 이병률도 아무것도 안읽어야지. 이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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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2-12 0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톤 산문집도 싫었어 ㅎㅎ

단발머리 2019-02-12 07:42   좋아요 0 | URL
좋아요, 하는 쓸쓸한 마음...
다락방님 조언에 나도 에피톤 안 읽을꺼야 결심하는 아침. 다락방님, 굿모닝^^

다락방 2019-02-12 15:45   좋아요 0 | URL
그 책 안읽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어요. 패쓰하세요 ㅎㅎ

보물선 2019-02-12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오글거리시나요? ㅋㅋ

다락방 2019-02-12 08:53   좋아요 4 | URL
뭐랄까, 남자시인들 특유의 감성이 있는 것 같아요. 오글거리고 찌질한 ㅋㅋㅋㅋㅋㅋㅋㅋ 넘나 제 취향 아닌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왜 그 노래 있잖아요, 김건모의 <미안해요>

그대여~ 밥 한 번 못사주고 미안해요~ 이러는 거. 밥도 못사주는 찌질함에 미안하다고 울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싫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물선 2019-02-12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그러네요. ㅎㅎㅎㅎ

뒷북소녀 2019-02-1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에피톤도 산문집 있었어요?ㅋㅋ 저는 이석원도요.

다락방 2019-02-14 13:25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이석원 한 권 읽고 제 타입 아니다, 멀찌감치 밀어버렸답니다. ㅎㅎ
 

다낭에 갔을 때 친구와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레스토랑에 들렀다. 우리는 항상 여행지에 가면 첫날 밤에는 스테이크를 먹으며 이 여행을 즐기자고 건배를 하곤 했다. 그 날도 그랬는데, 마침 우리 옆에는 한국인 젊은 남녀커플이 앉아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온 것 같아 거의 다 먹어갔고, 테이블이 바싹 붙어있는 탓에, 그들이 와인을 잔으로 주문해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커플은 아주 젊어 보였는데, 그러니까 20대로 보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명절에 해외로 둘이 여행을 올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스테이크와 와인을 먹을 수 있었을까. 나는 20대 때에는 외국에 가는 걸 생각해보지 못했었는데(29살에 뉴욕에 가긴 했지만), 어떻게 이들은 이렇게 젊은 나이에 올 수 있었을까. 동남아라는 여행지의 특성상 비행기값도, 호텔비도, 물가도 저렴하니 마음먹으면 오지 못할 이유야 없지만, 정말 나 때랑은 많이 다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보면 동남아로 여행갔을 때는 유독 젊은 커플이 많이 보였다.



친구와 신나서 와인을 시키고 스테이크를 주문해 먹었다. 리조또와 사이드도 주문해 먹었고.





그런데 자꾸 옆 테이블이 신경쓰였다.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젊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낯선 나라에 여행왔다는 게. 낯선 곳에 와 낯선 사람들 틈에서 낯선 언어로 음식을 주문하고, 그리고 그 시간을 온전히 함께 보내는 것. 그것은 얼마나 좋을까. 내가 저 나이때는 해보지 못했던 것. 그러고보면 나는 한 번도 연애중인 남자와 함께 이국을 여행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해보지 못한 걸 저렇게 젊은 나이에 해보는 그들이 마냥 부러웠다. 저들은 지금 저들이 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알까.


















김금희의 짧은 소설을 읽고 있다. 부모와의 이야기, 친구들의 이야기, 연인들의 이야기등, 많은 짧은 이야기들에 많은 사람들의 많은 사연이 담겨있는데, 그러다보니 여행에 대한 것도 많다. 친구들끼리 여행 간것도 있지만 연인들이 간 것도 있어.



한동안 상조와 윤경은 원피스에 대한 기억을 맞춰보기 위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아야 했다. 하나의 기억이 더해지면 그것을 상쇄하는 전혀 다른 기억이 등장하는, 극성이 다른 기억이 또 다른 기억을 밀어내는 듯한 시간이었다. 원피스가 상조의 집에 있다고 확신하는 지점부터 상조는 동의하지 않았다. 윤경은 둘이 교토 여행을 갔을 때 그 원피스를 입었고 료칸에 두고 오는 바람에 상조네 집 주소로 돌려받았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상조는 여행에서 윤경이 그런 원피스를 입었다는 사실마저 기억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윤경은 이성적으로라면 꼼꼼히 삭제해야 했지만 불행히도 아이폰의 아이클라우드에 저절로 저장되어버린 사진들을 뒤적여 그들이 은각사를 배경으로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을 보내주어야 했다. 사진에서 둘은 웃고 있었다. (원피스를 돌려줘, p.19)




이성적이라는 건 뭘까. 어쩌면 상조는 여행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처럼, 사진 조차 말끔히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 관련된 물건도 다 버렸을지도 모르고. 그러나 윤경은 아이클라우드를 뒤지면 그들이 함께한 여행에 관련된 사진을 찾아낼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아이클라우드를 부러 뒤지는 게 아니어도, 그저 그 자리에 늘 그랬던 것처럼 있다. 나는 아예 삭제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성적으로라면? 그렇다면 꼼꼼히 지워야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내가 왜 사진을 지워야하는지 모르겠다. 내 지갑속에도 여전히 사진은 고이 간직되어 있다.



윤이 파리 살롱에 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프랑스인 사장이 파리에서 직접 사용했던 온갖 낡은 물건들과 대대손손 찍은 흑백의 가족사진들과 책들과 프랑스풍 자수로 된 테이블보가 덮여 있는 이곳이 윤과 경이 떠났던 파리 여행을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 둘은 연애를 시작한 지 8개월 남짓된 무렵이었고 그들의 감정은 반짝였다. 마치 밤이면 더욱 빛나는 에펠탑처럼. (파리 살롱, p.64-66)




윤은 경과 다퉜다. 다투고 나서 처음 만나는 걸 파리 살롱으로 정했다. 그들의 반짝이던 파리 여행을 떠올리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곳으로 경을 불러냈다. 그러나 경은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았고, 나타나지도 않았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함께한 여행인데 누군가에게는 내내 기억되고 간직될 수 있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지워버려야 할 무엇일런지도 모른다. 나는 지갑에 고이 사진을 간직하고, 핸드폰에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지만, 내가 그렇게 기억하고자 하는 상대는 다른 연애를 시작하기에 앞서 모든 것들을 삭제하고, 지워내고, 잊었을런지도 모른다. 그건 내가 알 수 없다. 그건 그가 그 자신에게 하는 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나는 나의 기억과 나의 핸드폰에만 관여할 수 있을 뿐이다.



윤이 경과 파리를 갔다니, 연애를 시작한 지 8개월차에 갔다니, 나는 그것도 너무 신기했다. 파리라면, 동남아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곳인데, 이들은 어떻게 그렇게 갈 수 있었을까. 그들은 그 여행을 어떤 기억으로 남겼을까. 어떤 추억을 쌓았을까. 그곳에서 그들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일본에 간 상조와 윤경은 어떻고. 윤경이 즐겨 입던 원피스를 입고 함께 여행했던 일본은, 각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상조와 윤경은 헤어진 지 일년째인데, 그 사이에 그들 사이에는 또 다른 어떤 이야기들이 쓰여졌을까. 윤경이 클라우드를 뒤져서 사진을 찾아냈다는 것은, 사실 그 사이에는 굳이 그 사진을 볼 일이 없었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상조는, 기억에도 없는 만큼 부러 사진들을 지워냇을지도 모른다. 다른 여자와 연애를 할 경우, 전여자친구와의 여행사진을 핸드폰에 남겨두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 있으니까. 그랬을테니까.



어쩌면 지금은 이렇게나 많은 젊은 커플들이 함께 외국으로 여행가기도 하는 모양이구나, 새삼 생각했다. 나는 여태 살면서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해보고 싶었으나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을, 다른 사람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해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의 젊음과, 함께할 수 있는 여행이 부러웠다. 여행을 가서 반드시 즐거우리란 보장은 없지만, 함께 여행지를 고르고 예약을 하고, 함께 비행기를 타고, 함께 낯선 곳에 도착해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함께 걷는 일은 분명 특별한 일이니까. 그 시간들은 그대로 그 당시에 차곡차곡 쌓였을 테니까.


그 여행은 그러나 각자에게 다르게 기억될 수 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그들은 다툴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 여행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어, 라고 생각될 수도 있고, 우리는 여행으로 맞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아, 했을 수도 있다. 아, 그 사람하고 함께한 여행은 정말 달콤했는데, 라는 추억을 불러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 그들은 각자 다른 상대와 또다른 곳을 여행할 수도 있다. 아니면 같은 곳을 아예 다른 상대와 가게 될 수도 있고.



다낭에 가서 옆 테이블의 커플을 보고 마음이 복잡해졌던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외국으로 여행간 커플들을 보고 또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떤 사람들에겐 그저 로망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쉽게 실현되기도 한다는 것. 그러나 그 추억이 다르게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은 여러가지로 복잡한 생각이 들게 했다.


나는 항상 비행기를 같이 타보고 싶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앞으로는 그럴 수 있을지, 그조차도 잘 모르겠다.


그와 이국에서 만난 일은 있다. 내가 낯선 나라로 가고 그 역시 낯선 나라로 나를 만나기 위해 왔던 일. 우리는 각자 비행기를 예약하고 각자가 살고 있는 땅에서, 만나기 위해 서로의 나라로부터 떨어진 다른 나라에서 만났다. 나보다 조금 더 공항에 일찍 도착한 그는, 내가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낯선 나라에 도착해, 출구로 나가지 않고 환승 게이트로 가 헤매이는 동안, 입국 수속을 받기 위해 그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그는 바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나갔을 때 그는 거기에 있었고, 그렇게 만나자마자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었다. 내가, 이국에서, 그를 만난다.



나는 그 나라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공항에 있는 마트에 들어가 장을 보았다. 아마 우리가 지금 호텔로 들어가면 서로의 긴 비행시간으로 인해 피곤해 바깥으로 나오고 싶지 않을테니, 장을 좀 봐가지고 들어가자. 우리는 과일을 샀고 안주를 샀다. 각자가 서로를 위해 가지고 온 술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 룸서비스를 시켜두고 각자가 가져온 술을 꺼냈다. 나는 꽃다발도 준비해둔 터다. 한국에서부터 그 나라까지, 나는 꽃을 가지고 갔다.


나는 그 나라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술을 마셨고, 스테이크를 먹었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음악을 들었다. 내가 산책을 하는 동안 그는 수영을 했다. 함께 샤브샤브를 먹고 쇼핑을 했고 방향을 잃었을 땐 멈추어서서 지도를 들여다보며 방향을 찾기도 했다. 마사지를 받으러 가서는 나란히 엎드려 마사지 해주는 직원 분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를 마사지해주던 여자분은 한국의 이민호를 사랑한다 말했다. 여기선 누구나 이민호를 사랑해요, 어떻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나는 그 말을 듣다가 말했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러자 그녀는 놀랐다는 듯, 왜 그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때 그가 대답했다.



"She loves me."



나는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민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가 말해서, 나와, 그와, 그 곳에 있던 두 명의 마사지해주시던 분들이 함께 깔깔대고 웃었더랬다. 나는 그의 그런 점들을 좋아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내 사랑을 믿던 일. 그것에 자신을 가지던 일.



나는 그 나라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 나라가 처음이었으나, 그는 나 이전에 그곳에 다른 여자와 '함께' 그곳에 '들렀던' 적이 있다. 그러니 그곳에서 우리가 함께한 동안 그 시간은 또 우리에게 전혀 다르게 각자의 풍경으로 적혔을 수 있다. 나는 그곳에서 그에게 최선을 다했고 그 역시 그렇지만, 어쩌면 그는 틈틈이 지난 시간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묻지 않았고 물을 필요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어쩌면 지난 시간과 나와 함께 있던 시간을 나름대로 혼자 비교하고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내가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그곳에서 행복했다. 혼자 산책하러 호텔 바깥으로 나갔을 때, 그곳의 온도와 습도와 공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한껏 좋아했더랬다. 나는, 이곳이 좋아. 나는 동남아를 좋아한다! 그렇게 혼자 걸으면서 사진을 찍어 동생들과 엄마에게 보냈을 때, 엄마랑 동생 모두가 얘기했다.


"너 행복해 보여."



나는 그곳에서 행복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내가 잊고 싶지 않은 것을 상대는 잊고 싶어할 수 있다.

상조는 기억에도 없는 원피스를 윤경은 기어코 찾아내 들이밀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함께한 여행은 서로에게 각자 다른 식으로 적힐 수 있다.

함께한 파리가 기억을 불러내 우리를 다시 사이좋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파리 살롱을 약속 장소로 정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상대는 우리가 꼭 만나야 되느냐며 그 자리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내 핸드폰과 내 지갑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들은, 상대에게는 지워내야 할 것들이 되어있을 수도 있다.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면 기억나지 않는 것들.



그러나 이 모든 건 헤어졌을 때 얘기. 만약 둘이 여전히 진행중이라면, 좀 더 오래, 그리고 좀 더 오래 함께한다면 역시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건 고스란히 함께하는 추억이 되어 자꾸만 되씹어볼 이야기들이 될 수 있다. 우리 일본 갔을 때 말야, 라고 시작하는 얘기에, 어, 우리 은각사 앞에서 사진 찍었잖아, 라고 대응할 수 있고, 우리 파리갔을 때 말야, 응 근데 에펠탑 앞에 너무 춥지 않았어? 할 수도 있다. 우리 맛사지 받았을 때 당신이 웃겼잖아, 라고 하면 야, 근데 니가 나를 사랑하는 건 사실이잖아, 로 응수할 수도 있다. 헤어지지 않았다면, 여전히 함께라면. 그러면 부러 한 쪽이 지워낼 필요도 또 부러 한쪽이 기억할 필요도 없다. 함께 나란히 계속 차곡차곡 쌓아가는 둘만의 이야기가 될테니까.




다낭의 레스토랑에서 함께 와인과 스테이크를 먹던 그 젊은 커플은 그 날의 이야기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앞으로 오래오래 그 날을 얘기하며 함께 웃게될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만나 그 날의 이야기를 애써 지우려 하게될까. 어쩌면 어느 한 쪽은 지우지도 잊지도 못한 채로 계속 혼자 되새길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게 나쁜 건 아니니까. 반드시 함께해야만 아름다운 해피엔딩이 아닌 것처럼, 이제 그들이 함께가 아니라고 해서 새드엔딩인 것도 아니다. 함께라면 함께인 이유가 있을 것이고, 각자라면 또 각자인 이유가 있겠지. 인생의 그 지점에서 그들은 그 순간에 함께 했어야 했을 것이다. 나중에 어떤 모습이 되었든, 그 때라면 또 인생의 그 지점에서 그런 모습인 이유가 있을 것이고.




김금희는 자신의 짧은 단편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라고 말했지만, 나는 나의 그 낯선 나라에서의 시간들에 대해 저 말을 하고 싶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앞으로도 오래 그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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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2-11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어지지 않았다면..

다락방 2019-02-11 13:57   좋아요 1 | URL
그랬다면 지금과는 다른 이야기가 써지고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