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마음
오늘 아침 눈뜨자마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여자 디제이는 자신의 첫사랑에 대해 얘기했다. 지금이라면 전혀 달랐겠지만, 대학시절 사귀었던 첫사랑 남친에게 왜그렇게 매달렸는지 모르겠다고. 심지어 그 남자는 바람을 피우기까지 했는데, 그걸 알면서도 헤어지기 싫어서 매달리고 고가의 지갑까지 선물로 주었었다는 거다. 같이 방송하던 게스트도 왜그랬냐고 하고, 디제이 역시도 왜그랬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데, 나 역시도 의문이었다.
'왜 그랬을까?'
바람을 피운 건 나를 배신하는 행위인데, 나를 속이는 행위인데, 나를 잠시라도 밀어둔 것인데, 왜 그런 남자에게 날 떠나지 말라고 매달린걸까?
어제 자기전에 침대에 누웠다가, 갑자기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영화속의 자쿠지 신이 너무 보고 싶었다. 둘만 있는 공간에서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는 그 씬이 갑자기 너무 보고싶은거다. 그 영화속에서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장면. 그 장면이 보고 싶어서 틀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너 때문에 그 먼 데 있는 한인마켓가서 네가 좋아한다는 요구르트도 사왔다'고 하는 피터에게 '그 요구르트가 그렇게 맛있었나 보지?' 하고 부러 엉뚱하게 대답하는 라라 진을 보고 좋아서 웃었다. 그 때의 실망하는 남자의 표정과 행동이란. 그런데,
그 남자의 전(前)여친은 그 둘의 관계를 떼어놓고 싶어 라라 진에게 '네 남자친구가 어제 내 방에 왔었다'고 말한다. 게다가 라라 진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머리끈이 왜 피터의 전여친에게 가 있는걸까. 라라 진은 너무 속이 상하고, 전날 밤의 다정함이 다 뭐였나 싶다. 라라 진은 피터에게 묻는다.
"너 어젯밤에 젠 방에 갔었어?"
"그거 설명할게,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내 머리끈도 젠 줬고?"
"...그건...."
라라 진은 우리 그만 끝내자며 혼자 집으로 돌아오고, 피터는 그 날밤 라라 진을 찾아와 오해를 풀고자 한다. 얘기를 좀 나누자고 한다. 그런 피터에게 라라 진은 이렇게 말한다.
"항상 밀려나는 것도, 척하는 것도 지겨워."
나는 이 자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라 진은,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에게 '밀려나는' 상대이고 싶지도 않고, 그들의 관계에 대해 거짓으로 '척'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한다면, 밀려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밀려나는' 상대이고 싶지 않다. 뒤로 제껴두는 상대가 되고 싶진 않아. 함께 있으면서 마음 아프고 속상한 관계보다는, 혼자면서 자유로운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내가 밀려나는 사람이라는 것, 내가 우리의 관계를 '척'해야 한다는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해서는 안될짓이다. 그리고 결국은 그런 자세가 나를 우선 순위에서 밀어두지 않는 상대를 만나게 한다고 생각하고. 왜냐하면, 피터는, 오해를 풀지 못하고 서로 기분이 안좋은 상황에서 헤어지는 와중에도 라라 진에게 이렇게 말했으니까.
"넌 밀린 적 없단 거 알아줘."
내가 나를 밀려나는 위치에 두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그런 자세로 살아야, 나를 밀어두는 상대를 만나지 않을 수 있다. 오늘 아침 라디오 디제이는 대학시절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한 쪽으로 제껴두는 걸 허용했기 때문에, 그 나쁜 관계에 매달렸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 나쁜 관계에 왜, 도대체 어째서, 왜, 왜 매달린걸까?
이 책을 쓴 공저자로서 나와 내 동료들은
독자들에게 두 가지를 약속한다. 첫 번째로 우리는 여기서 여남 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것이며, 여러분은 다시는
이전 같은 방식으로 여자, 또는 남자, 또는 여남 관계를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이 책을 읽는 건 감정적으로 힘겨운
여정이 될 것이다. (p.35)
5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는 《여자는 인질이다》로 정했다. 4월에 이미 이 책의 앞 몇 장을 읽어본 나로서는 꽤 힘겨운 독서가 될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오늘 아침 라디오 디제이가 바람 핀 남친에게조차 매달렸던 그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도 다시 처음부터 읽을 생각인데, 자, 여러분, 5월에도 우리 열심히 읽고 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