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엄마에게 처음이자 유일한, 순전한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태어난 것도 엄마를 기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아빠와 결혼했다는 일종의 증거물이었고, 배운 대로 사는 삶이 낳은 예상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프라납 삼촌은 달랐다. 삼촌은 엄마의 삶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이고 기쁨이었다. (-「지옥 천국」, 줌파 라히리, p.85)




'순전한 기쁨'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려고 했었다. '순전한 기쁨'이라니 대뜸 '줌파 라히리'의 「지옥 천국」이 떠올랐고, 당연한듯 프라납 삼촌이 떠올랐다. 화자의 엄마가 프라납 삼촌을 좋아하는 이야기라,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 하고자 하는 '한나 아렌트'의 전기와는 매우 결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또 아주 다른 건 아니었다. 줌파 라히리가 말하는 '순전한 기쁨'이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것에서 벗어난 다른 것에서 온다고 했을 때, 나 역시 지옥 천국의 엄마처럼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에서 그것을 찾는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어쨌든 그래서 지옥 천국의 인용문을 가져오려고 찾았는데, 아 이 미친 기억력의 왜곡이여... '순전한'은 기쁨에 붙은 수식어가 아니라 '행복'에 붙은 수식어였네. 나는 어제 내내 '순전한 기쁨'이야, 이건 순전한 기쁨이지, 줌파 라히리가 말한 바로 그거야, 했는데 아아, 순전한 행복 이었어...



마침 오늘 아침에 읽기 시작한 책에서도 얼라리여, '순전한 기쁨'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아니, 이것이 뭔일이래. 어제 하루종일 '순전한 기쁨'을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 전혀 다른 책에서 만나는 순전한 기쁨 이라니. 순전한 기쁨 이라는 워딩 자체가 그렇게 흔한 워딩이 아닌데, 계속 생각하는 것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삶이라니. 일전에 나는 내가 소설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냥 문학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포용하는 문학적인 삶...


아, 다시 말하지만 그러나, 줌파 라히리는 프라납 삼촌에게서 얻은 것이 순전한 '기쁨'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의 기억력은 왜곡되었어..




어제 동료랑 점심을 먹는데 어떤 얘기 끝에 동료가 '매일 만나는 것도 아닌데 만날 때 꼭 붙어있고 싶다'며 애인에 대한 얘기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렇겠지만 이 동료에게도 애인은 매우 중요하고 애인은 언제나 우선순위이다. 그러니 그토록 사랑하는 애인과 만나는 횟수는 항상 자기 바람보다 못미칠 것이고 그렇게 만나면 한시도 떨어져있고 싶지 않을것이며,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동료는 내게 한것이었다. 나는 하루종일 붙어있는 건 아무리 사랑해도 내게는 힘든일이며, 각자 좀 떨어져서 혼자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게 행복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혼자 있는 게 행복하다면, 나는 그게 섞여 있는 사람인거다. 어쨌든 이 동료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것은 사랑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퇴근길에 책을 읽었다.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알로이스 프린츠'의 《한나 아렌트》전기였다. 한나 아렌트라면 악의 평범성 이라든가 하이데거 정도로 그 유명세만 알던 터라 이번 기회에 읽어보자, 하고 빌려온 참이었다. 마침 표지를 보니 그렇게 어렵게 쓰여져 있을 것 같지도 않아. 게다가 이번달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에서도 언급되지 않던가.



















근데 이 책을 읽는 게 너무 좋은 거다. 한나 아렌트에 대해 내가 가진 지식은 전무한 상황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한나 아렌트가 태어나고 공부하고 연인을 만나고 스승을 뛰어넘는 철학자가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거다. 한나 아렌트는 특별히 여성주의를 염두에 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여성주의를 무시하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참정권에도 관심이 없었으니. 그녀의 그런 점이 어떤 남자들에게는 더 어필했던 것 같고.



한 다과모임에서 그녀느 역시 야스퍼스에게서 공부를 하고 있는 베노 폰 비제를 알게 되었다. 그는 훗날 문예학자로서 이름을 얻게 된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고 심지어는 결혼 얘기까지 있었다. 세 살 위인 폰 비제는 한나에게 매혹되었다. 특히 그녀의 눈에서 풍기는 '암시적인 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훗날 비망록에서 "그 눈을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두 번 다시 헤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움이 일었다"고 회상한다. 그에게는 한나가 '여성 참정권론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p.61)



1964년 10월 28일, 한나 아렌트의 모습이 독일 제2방송ZDF에 나왔다. "인물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권터 가우스가 그녀를 인터뷰했다. 가우스는 대담이 시작될 때 그녀가 이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첫 번째 여성이라고 말하며, 여성 해방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한나는 여성 해방 문제에 있어서 자신은 개인적으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아시다시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왔을 뿐이에요." (p.241)



굉장히 지명도 있는 사람이었던만큼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고 여성주의를 주장해주는 사람이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내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긴 하지만, 그녀가 특별히 여성주의를 염두에 두고 산 게 아니라도 남성들만 나왔던 프로그램에 '여성으로서' 나오게 된다는 것, 자신을 가르쳤던 스승보다 더 유명해졌다는 것등은 다른 여성들로 하여금 충분히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기사를 쓰고 나서는 수많은 유대인들로부터 공격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무너지거나 자기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던 것도 역시 마찬가지.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것에 목소리를 낸것도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을 했다'고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여성을 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충분히 다른 여성에게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보여진다. 물론 한나 아렌트가 살아있고 이런 나의 글을 본다면 '아니, 여성주의랑 엮지 말라니까 왜 니 맘대로 엮고있어!'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한 여성이 사회적으로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유명해지고 힘을 갖게 되는 것은 다른 여성들에게 너무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하는 바, 한나 아렌트가 '난 여성주의에 아무 역할도 안했어' 라고 해도 계속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나 아렌트가 제일 처음 만난 연인이 '하이데거'인만큼 하이데거 얘기를 안할 수가 없고, 하이데거 애기를 할라치면 일단 빡이 치는 건 또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인것이야...

한나 아렌트는 1906년에 태어났고 매우 총명해서 어릴 적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음에도 이른 나이에 대학에 진학했다. 한나는 학생으로 하이데거는 교수로 처음 만나게 되는데 그 때 하이데거의 나이가 35세. 하이데거가 1889년생이니 둘의 나이차이는 17년이고 그러니까 그 때 한나의 나이는 18세였던 거다. 씨부럴. 한나가 하이데거를 만나서 가르침을 받고 싶어 학교에 들어가긴 했지만, 이 총명하고 젊고 아름다운 한나에게 35세 중년남 하이데거는 반해버리고 마는 것이야. 그래서 지가 먼저 편지를 쓰고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둘 사이의 나이차이도 빡치지만, 교수와 학생이라는 관계도 빡치지만, 그당시 하이데거는 유부남이었다. 아내와 아들들도 있었다고. 그러면서 뻔뻔하게 어떻게 18세 여성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할 수가 있지? 정말이지 ... 어처구니가 없다.



하이데거는 기혼자였고 두 아들의 아버지였다. 처음부트 그는 한나에게 자신의 결혼과 경력을 위태롭게 하고 싶지 않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한나는 이 게임 규칙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고 온갖 궁리를 짜내는 게임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창문을 열어놓는다거나 램프를 켜놓는 것과 같은 비밀 신호를 정했다. 두 연인은 비밀이 들키면 어쩌나 늘 불안했다. (p.50)


그는 편지에서 그녀만큼 자신의 사상을 이해하는 이는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한나는 그의 좋은 정령이며, 그녀는 그의 사상에 영감을 주었다. 훗날 그는 그녀가 없었더라면 『존재와 시간』을 쓸 수 없었으리라고 고백한다.

한나는 예속적이라고 할 정도로 그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녀는 "내 사랑으로 인해 당신이 더 힘들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묵묵히 순종하며 그의 은밀한 지시에 따랐다. 사랑에 있어서도 그는 선생이었고 그녀는 제자였다. (p.55)




한나도 하이데거를 사랑해서 둘은 사랑하지만, 하이데거는 한나를 자신의 지적인 '동반자'로 보기 보다는 보조자 취급을 했다. 너는 내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똑똑한 여성이지만, 너 스스로 혼자 설만큼 똑똑한 건 아니야, 정도의 느낌이랄까. 나중에 한나가 하이데거보다 더 유명해지고난 뒤에도 한나의 작업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는 게 합의되어 있었다.



한나는 자신이 하이데거의 수호자이며, 그의 정신적 균형과 철학적 작업의 수호자임을 느꼈다. 그녀의 말에서 위대한 마법사 하이데거에 대한 옛 경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하이데거의 '컨디션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고, 그가 마련해준 귀빈석에 앉아 그의 강연도 들었으며 강연 내용에도 감탄했다. 그녀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는 물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나가 언제나 '마치 글을 한 줄도 쓰지 않았고, 앞으로도 쓰지 않을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두 사람의 암묵적 합의였다. (p.157)


한나와 하이데거가 동시에 싫어지는 일은, 하이데거의 아내를 만나 친해지려고 했던 일이다. 한나는 '하인리히 블뤼허'랑 결혼해 사이좋게 오래 살았지만, 하이데거를 인생에서 지울 수 없었다. 그가 나치당에 들어갔었다는 사실 때문에 끝내 괴로워하면서도 그러나 하이데거랑 오래오래 알고 지내고 싶어했다. 하이데거는 자신과 한나의 오래전 관계를 아내에게 말했는데, 아니, 어느 아내가 자신의 남편과 사랑했던 여자를 다정하고 친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미국에 정착해 살면서 독일에 방문할 때면 하이데거를 찾아가는 한나를 하이데거의 아내가 반가이 맞을 리 없다. 하이데거와 한나 둘만 있게 두지 않으려 하고 질투하며 표독스럽게 구는데, 이에 한나는 너무 짜증을 내는 거다. 누가 나를 다정하게 대하지 않으면 짜증나는 건 모두에게 마찬가지겠지만, 아니, 그 아내가 어떻게 친절하게 한나를 대하냐고. 이 둘을 소개시킨 하이데거는 대체 뭐하는 놈이야... 삼십대 중반의 유부남 주제에 18세 제자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더니, 나중엔 '나 한나랑 사랑하는 사이였어' 이러면서 아내에게 소개해.. 철학은 뭡니까?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는 뭐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대체 하이데거라는 이 '남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었던거야? 철학이 뭔데?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철학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왜 때문에 아내에게 자신이 젊은 시절 바람폈던 여자를 소개시켜주고 사이가 좋기를 바라는가... 삶을 쥐뿔도 모르는데?

한나는 그녀가 짜증낸다고 너무 신경질적이라고 남편에게 편지 보내면서, 하이데거의 정치적 과오들도 뒤에서 아내가 조종한거였다고 쓴다. 하아- 아내가 조종했다는 것이 팩트인지도 모르겠지만, 설사 그렇다해도 아내가 그러라고 했다고 나치당에 들어간 게 뭐 아무 잘못 없는 게 되는가.. 자신의 머리로 판단 못하는부분?


나는 한나 아렌트가 참 좋아졌는데, 저 부분에서만큼은 진짜 딥빡이 온다. 아니, 아내의 입장이 되어보면 말이다, 한나가 집에 딱 왔어. 그러면 " 꺅 >.< 너무 좋아, 반가워요, 남편의 전 내연녀, 내집처럼 편히 머물러요~" 이게 되는가? 쯧쯧...

물론 저거 가능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자기가 화낼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든 자기중심적인지라 자기 기분, 자기 상황이 먼저지. 한나는 자기 기분에 충실했던 거야...




인상적인 건 남편 '하인리히'와의 관계였다. 뉴욕으로 건너가서 하인리히는 거기에서 일자리를 구해 강의를 하는데, 한나는 주중에 남편과 떨어져야 할 일이 많다. 여행을 비롯해서 강연 초청까지 여기저기 막 다녀야 하는, 역마살 낀 삶을 살고 있는 것. 실질적으로 남편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거다. 그럼에도 그녀는 당신이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한다. 지금 내 옆에 껌딱지처럼 딱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니어도, 나는 여기 비행기 타고 먼 곳에 와있고 당신은 거기, 아주 먼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내 옆에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하는 삶이라니. 이 지점이 아까 말한 회사 동료와는 전혀 다른 지점이고 또 나랑은 같은 지점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니까 반드시 육체적 물리적으로 내 옆에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사람의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가 함께하고 내 영혼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이 한나가 아주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28년동안 함께 살았어. 그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어." (p.248)



그녀는 열정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즐겼다. 메리 매카시는 한나가 일찍이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마치 자기 자신도 잊은 듯이 꼼짝도 않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있을 때도 있고 눈을 뜨고 있을 때도 있었다. 방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나 까치발로 살금살금 그녀 곁을 지나가야 했다. 한나는 은거할 수 있는 그런 국면이 필요했다. 그녀에게는 그다음 다시 대중 속으로 들어가 토론하는 일도 그만큼 중요했다.

그런 식으로 고요히 생각하는 국면이 지난 다음에 그녀가 말을 거는 최초의 사람은 대부분 하인리히 블뤼허였다. 그와의 대화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연장하는 것과 같았다. (p.279)




한나는 사유하는 사람이었다. 사유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할수밖에 없다. 사유란 무릇 그런 것이니까. 그런 그녀가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연장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아닌 타인. 이것은 얼마나 고맙고 또 다행한 존재인가. 24시간 365일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니어도, 각자가 서로 떨어져있더라도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다니, 너무 좋지 않은가. 그건 하인리히에게도 또 한나에게도 서로가 자신과의 대화를 연장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사람은 생애 그렇게 자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예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거라고 보인다.




한나 아렌트에 대해 얘기하면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유대인 학살 당시 나치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석한다. 그당시 현재의 법률로 그를 처벌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느끼고, 또한 그녀는 아이히만이 그저 어리숙한 한 남자였다는 것에 당황한다. 그럼으로써 악의 평범성을 주장하게 되는데, 한나 아렌트가 생각하는 것을 확인하고자 하고 그것으로 사유하면서 말과 행동을 하는 이 모든 과정이 열정적이라, 아 그녀가 자꾸 위로 쑥쑥 올라갈 수밖에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는 좀 길지만 인용해보겠다.




덴마크 정부는 독일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고집스럽게 거부했고, 유대인 별 표시를 받아들이라는 요구에 대해 덴마크왕은 자신이 그 별을 다는 첫 번째 사람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런 식으로 '저변이 더 확대된' 저항은 놀라운 효과가 있었다. 독일의 지휘관들은 기이할 정도로 양보를 하며 어쩔 줄 몰라 했고, 베를린에서 오는 지시들을 무시하고 믿지 않게 되었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그들의 "냉혹함"은 "햇볕 속의 버터처럼 녹아버렸다." 이렇게 부드러워지는 것이 바로 한나 아렌트가 이미 전체주의에 대한 책에서 기술한 전체주의 체제의 한 속성을 시사한다. 그런 식의 체제는 아무리 살인적이고 파괴적이라 하더라도, 어떤 단호하고 연대적인 저항이 나타나면 대단히 쉽게 내부적으로 와해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본질이 기이할 정도로 아무런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무실체성을 한나 아렌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영혼 없는 괴물로 내세우는 데 반대한다. 그를 그런 식으로 악마화한다면, 비록 악마적인 위대함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적합하지 않은 어떤 위대성을 부여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악마화는 사람들이 아무런 대항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내맡겨져 있는 검은 세력과 관계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일깨운다. 이 외견상의 어두운 세력 뒤에는 사람들이 어떤 대항 행동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대단히 현실적인 조직이 숨어 있었다. 사람들이 힘을 합헤 공동으로 사태를 이끌어가는 것은 명령과 복종과 무책임에 근거를 둔 모든 테러 체제보다 언제나 영향력이 크고 또 "깊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아이히만을 "어릿광대"라고 불렀고 그가 체현한 악을 "평범"하다고 했던 것이다. (p.233-234)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를 괴물로 보지 않고 평범하게 봤다는 것, 게다가 유대인 학살을 돕는 유대인이 있었다고 쓴 것 때문에 한나는 유대인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는다. 그녀와 친한 사람들조차도 그녀를 비난한다. 그녀가 나치의 악을 극소화 시키고 있다는 것.

한나의 강의는 매우 유명하고 교수로서 이름도 높아 대학마다 그녀를 교수로 모시려 하고 그녀의 강의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머무르는 미국에서 너무 비난을 받아 매스컴의 초대에는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도 여기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로부터 악의 평범성 때문에 등을 돌렸는데, 그녀가 언제나 스승이라고 생각했던 '카를 야스퍼스'는 그녀의 말을 지지하고 또한 남편 '하인리히'도 그녀 편이다. 단지 편으로써 편이 아닌, 그 말을 이해해주는 것. 나는 이런 지점들이 그녀가 인생에서 가진 행운이라고 보여진다.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한나 아렌트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알겠다. 사실 그건 지금 적용해도 틀린 말이 아니고. 강남역 살인사건에 있어서 가해자가 과연 '괴물'이어서, 그가 '근본 악'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일을 저지른걸까? 그가 다른 남성들과는 매우 다른 사람이었나? 악의 평범성은, 이런 부분에서도 적용되는 거 아닐까?



그러나 내가 그 당시의 유대인이었다면 나는 한나 아렌트의 편에 섰을까? 한나 아렌트의 손을 들어주었을까? 잘 모르겠다. 나치로부터 고통을 받았던 유대인의 입장에서 '그 악이 특별했던 게 아니야, 평범했던 거야, 그를 영웅화 시키지마'라는 말을, '아 맞다 그렇지' 하며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나라면 한나 아렌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언지 알겠는데, 그 당시에 그 피해자속의 나였다면 나 역시도 한나 아렌트를 비난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자, 다시 순전한 기쁨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순전한 기쁨을 느꼈다.

한나 아렌트의 탄생과 삶 전반에 걸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정말 기뻤다. 기뻤다는 단어가 책의 내용상으로 적절하진 않겠지만, 한 권의 책을 읽고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는 것, 한 위대한 여성에 대해 알게 됐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책을 읽는다는 게 너무 기뻤던 거다. 책 너무 좋다. 책을 한 권 읽음으로써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와는 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이 기분. 내가 조금 더 달라지 기분, 책을 읽기 전보다 뭔가 더 채워진 기분. 나는 이것이 너무 기뻤다. 너무 짜릿했다. 이것은 짜릿하고도 순전한 기쁨이야. 어제 퇴근길에 순전한 기쁨이란 단어를 떠올리면서, 그러나 회사 동료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순전한 기쁨은 자기만의 몫이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늘 붙어있고 싶은 마음, 그래서 붙어 있을 때 행복한 그 마음은 누군들 모를까. 그러나 굳이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나는 이런 게 더 기쁜거다. 심지어 최고의 기쁨이야. 우선순위의 기쁨이다. 그러니까 좀전과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좀 전보다 내가 더 채워진 것 같은 이 순간, 책을 읽는 이 순간,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에 대해 감동하고 생각하고 돌이켜보는 이 순간. 이 순전한 기쁨이라니! 이걸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 책과도 대화를 하게 되지만 나와도 대화를 하게 된다. 나는 이런 순간이 순수하게 너무나 기쁜 것이다. 순전한 기쁨!!



기쁨도 각자의 몫이고 행복의 기준도 저마다 다른 것이고 그러니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에 끼어들어 멋대로 조언해서는 안되지만, 그렇지만... 나는 사람들아, 책을 읽어라! 하고 오지랖을 부리고 싶은 것이다. 누가 오지랖 떠는 거 보는 거 세상 싫지만, 그래서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렇지만... 여러분, 책은 읽어야 해! 책은 나 자신과 풍부한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얼마나 좋은지 몰라. 삶이 충만해진다고!!




한나 아렌트는 제일 처음 하이데거를 선생으로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지만, 어느 순간 스승을 앞지르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나는 이것도 너무나 너무나 좋다. 이런 실재한 여성을 책으로 만날 수 있다니, 아 진짜 너무 좋지 않은가. 나는 한나 아렌트를 더 읽어봐야겠다.

지금 기분으로는 이 책을 읽은 게 너무 기뻐서 책장 한 칸을 온통 한나 아렌트로 채우고 싶다.






















아, 아침부터 페이퍼를 너무 열정적으로 썼더니 출출하네. 백설기 뜯어먹고 있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오레오도 있고 귤도 있고 백설기도 있고 커피도 있고.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책 만세!



덧붙임) 바로 위에 링크한 《한나 아렌트의 말》사려고 했는데 내가 이미 사둔 책이란다... 네??????????? 나는 기억에 없는데?????????? 그러면 내 책장에 이 책이 있단 말이야????????????? ㅜㅜ




마르타는 편물공장에서 일거리를 맡아왔다. 67세의 나이로 낯선 세계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거의 집에 머물면서 한나와 하인리히를 위해 살림을 했다. - P109

알프레드 케이진은 한나가 친구들 사이에 끼친 첫 번째 영향을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40대 후반의 그녀를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매력적이고 정열적인 유대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상냥하고 재치 있고 혀가 매서운 만큼이나 여성적이었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교양이 있었다. 새로운 우정에 매혹되면 그녀의 유대인 용모와 칼칼한 목소리는 명상에 잠긴 듯한 다정함으로 변했다. […] 그녀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왜냐하면 그녀의 새로운 고향과 영문학에 대한 관심은 그녀의 억양과 열정과 마찬가지로 그녀 자신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 P122

야스퍼스가 하이데거를 ‘순수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다면 그녀는 ‘비겁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정말 인격이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이데거가 무너진 후 처음 쓴 글 「휴머니즘에 관하여」도 그녀는 좋게 보지 않았다. "문명을 욕하고 존재Sein를 y자[Seyn]로 쓰면서 토트나우베르크에서 살았던 삶은 사실 쥐구멍 속으로 숨는 것과 같아요. 그렇게 숨어든 건 순례를 하듯 자신을 찾아와 경탄을 표하는 사람들만 보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 P125

한나는 뉴욕에서 충만한 삶을 살았다. 요구 사항이 많은 직업을 갖고 있었고, 마음에 담고 있는 책을 썼으며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러나 한나의 어머니는 그렇다고 할 수 없었다. 마르타 아렌트에게 미국은 영영 낯선 존재였다. 그녀는 95번가의 가구 딸린 방에서 은둔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사위를 잘 이해하지 못햇다. 하인리히는 여러 직업을 전전한 끝에 다시 재야학자로 살아갔다. 그는 독자적인 철학적 구상으로 전 서구 사상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지고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 밖에도 그는 한나가 책을 쓰는 데 자극과 조언을 주는 대화 상대자였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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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20-01-15 13: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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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1-15 14:26   좋아요 1 | URL
아이고 별말씀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매우 좋아하고 있다)

잠자냥 2020-01-15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나 아렌트는 하이데거와의 그 *빻은* 관계 때문에 이상하게 손이 안 가더라고요. 그래도 더 읽어봐야겠지요. ㅎㅎ
(똑똑한 사람이 어쩌다 그런 사랑을;; 음..)
우리가 읽은 <나 시몬 베유>의 시몬 베유는 다락방 님이 페이퍼에서 구구절절 쓰신 바로 그 지점 때문에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주장을 비판했지요. 저는 ‘악의 평범성‘도 공감하지만, 시몬 베유의 비판도 이해가 가요. 암튼 두 여성 다 멋지긴 합니다. ㅎㅎ

그나저나 하이데거 이야기 하시면서 흥분하셨나봐요. ㅋㅋㅋ아렌트 관련 네 번째 인용문에서 ˝한나는 예쏙적이라고 할 정도로 그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p.55) 예쏙적 ㅋㅋㅋㅋㅋㅋ 너무 예속되었다고 생각하셨나봐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1-15 14:38   좋아요 1 | URL
한나 아렌트가 하이데거와 사랑에 빠지고 또 그것을 평생에 걸쳐 가져간건(심지어 중간에 그가 그녀로부터도 비난당할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너무 어릴 때 만난 첫사랑 혹은 첫남자 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하이데거가 더 싫고요. 제 경우에도 제 첫사랑을 잊는데 되게 오래 걸렸거든요. 그나마 나중에는 다른 시각으로 그 일을 바라볼 수도 있게 되었고요(그건 사랑이 아니었어요). 한나 아렌트에게 어릴 적에 만난 스승이자 남자인 하이데거는 너무 강한 사람이었고 잊지 못할 사람이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한나 아렌트가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란 생각을 안해볼 수가 없어요. 그랬다면 한나 아렌트도 사랑에 빠진 그 당시라면 몰라도, 나중에는 하이데거와 하이데거와의 관계 그리고 하이데거 아내와의 관계도 다르게 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뭐, 이건 지금의 제 생각이지만 말입니다.

시몬 베유는 보부아르와도 선을 그었는데 한나 아렌트를 비판했군요.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뭐랄까. 멋진 여성이 다른 멋진 여성을 비판하는 게 너무 멋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부아르, 시몬 베유, 한나 아렌트. 각자 자기 주장을 가지고 멋져서 너무 좋아요. 세상에 멋진 여자가 많아서 좋군요. 물론 아직 충분하진 않습니다. 더 나와야 해요, 더!


하이데거 너무 싫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싫어. 하여간 철학한다는 남자들은 죄다 별로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저 [나, 시몬 베유]는 안읽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20-01-16 07:50   좋아요 0 | URL
[나, 시몬 베유]를 읽으면서, 한나 아렌트의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을 비판하는 걸 읽으면서, 시몬 베유라는 사람 대단하구나 했어요. 자기만의 경험을 토대로 사상을 발전시키고 (꼭 사상이라고 지칭할 필요도 없지만) 그에 기인하여 다른 사람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건전한 상황인 것 같다. 시몬 베유와 한나 아렌트가 다 훌륭해보기에 하는 지점이었죠. ..

그나저나 한나 아렌트가 하이데거에게 푹 빠져 산 건... 아쉬운 일이지만, 그 심정에 대해 뭐라 말할 순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라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있게 마련인지라. 하이데거가.. 나쁜 넘인거죠. 흥. (라고 비난의 화살을 하이데거에게 확 돌려버린다)..

아 아침부터 졸린데 이 글 읽고 깼어요. 요즘 넘 피곤해서 책이 잘 안 읽혀지는 게 넘 괴롭구나 생각하며 출근했거든요. 책만 읽으며 살 순 없겠죠.. 먹기도 해야 하고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직장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출근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피곤할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책 읽을 시간이 줄 수 밖에 없고.. 악의 순환고리에요. 쩝.

다락방 2020-01-16 08:15   좋아요 1 | URL
제가 시몬 베유 책을 세 권을 사서 그 중에 두 권을 읽고 한 권을 팔았거든요. 근데 그 한 권이 바로 [나, 시몬 베유] 였어요. 하아. 어제 잠자냥 님의 댓글과 오늘 비연 님의 이 댓글을 읽으니 제가 무슨짓을 한건지..너무 후회가 밀려오네요. 안그래도 새책 팔면서 팔까말까 엄청 망설였는데... 팔지말걸. 저 너무 악의 평범성 비판한 부분 읽고 싶고요... 그렇다면 저는 정가에 사서 중고가로 팔고 다시 정가에 사야 하는걸까요? 슬픔 ㅠㅠ 그렇지만 너무 읽고 싶네요. 제가 왜 팔았을까요? ㅠㅠ


저도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의 관계에서는 하이데거가 나쁜놈이라고 생각해요. 아주 뻔뻔한 새끼에요. 나이도 훌쩍 많은 유부남이 어디 어린 여학생에게 사랑한다고 껄떡댑니까? 그러면서 들키지 않으려고 숨겨가며 만나고. 진짜 제일 싫어요. 나쁜 새끼...

저도 회사 안다니고 책만 읽으면 얼마나 신날까 생각하는데... 그런데 회사를 안다니면 책을 또 어떻게 사죠 ㅠㅠ
인생이란 게 이런건가 봅니다. 하나를 취하기 위해 하나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
인생....

비연님, 오늘도 화이팅요! ㅠㅠ

잠자냥 2020-01-16 11:13   좋아요 1 | URL
ㅎㅎ 댓글 달고 보니 제가 한나 아렌트를 비난(?)한 거 같군요. ㅋㅋㅋㅋ 아니 왜 그런 남자를 만나! 하면서요.물론 하이데거가 나쁜 노....옴이지요. 에휴. 거기에는 덧붙일 말도 없어요.

다락방님 그 책을 그렇게 팔아버리셨군요!
그럴 땐 도서관을 이용하시는 거예욧....
전 시몬 베유가 아렌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보기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지적하는 점이 정말 당차 보였습니다. ㅎㅎㅎ 근데 또 그게 그냥 비난이 아니라 말이 되니까 더 멋진!

다락방 2020-01-16 11:34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제가 도서관도 검색해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도서관에 없더군요..
앗. 해가 바뀌었으니 신청해야겠어요!!

(잠시후) 희망도서 신청하고 왔어요! 그런데 한나 아렌트 비판하는 부분 너무 멋있어서 결국 구매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무슨짓을 한것인가 내가 ㅠㅠ

단발머리 2020-01-18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나 아렌트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두 다락방님 이 페이퍼를 읽어야 할 듯합니다!!! 너무 좋으네요!!
저 역시 <나, 시몬 베유>에서 한나 아렌트에 대한 시몬 베유의 가열차고 야무진 비판이 기억나요.
시몬 베유 같은 유대인 생존자들의 비난을 예상했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나 아렌트의 학자적 고집과 확신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됐구요.

전 그래픽노블 <한나 아렌트, 세번의 탈출>에서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서술하면서 ‘마음에 그늘이 졌다‘ 그 표현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더라구요. 사랑이라는 관계 속에서도 제자라니..... ㅠㅠ 슬퍼요.

다락방 2020-01-20 10:09   좋아요 0 | URL
저도 한나 아렌트를 읽게 되어서 너무 좋았어요. 이 책을 읽을 때 얼마나 독서에 대한 사랑이 샘솟던지요. 도대체 이렇게나 좋은 독서를 왜 국민 전체가 하지 않는걸까요? 사람들은 왜 책을 안읽을까요, 단발머리님? 이렇게나 좋은데??

저는 도서관에 [나, 시몬 베유] 희망도서로 신청했습니다. 제가 왜 섣불리 그걸 팔아버려가지고... 그러니까 돈에 눈이 어두워서 읽지도 않고 팔았습니다. 아, 한심한 인간이여... 이렇게 금세 읽고싶어질줄은 나는 몰랐네. 흑흑. 한나 아렌트 비판에 대한 부분은 너무 읽어보고 싶어요. 한 똑똑한 여자가 다른 똑똑한 여자를 비난하는 글이라니. 너무 멋져요 ㅠㅠ

저는 [한나 아렌트의 말] 사려고 했는데 이미 구매한 도서라고 해서 어제 책장 앞으로 가 대체 어디에 있나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찾아냈다고 합니다. 찾아서 책상에 꺼내두었는데, 그렇게 읽으려고 책상에 꺼내둔 책이 또 쌓이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또 안읽고 다시 정리한다며 싹 다 넣어두겠지요. 인생은 뭔지... 킁킁.

 
한나 아렌트 - 세계 사랑으로 어둠을 밝힌 정치철학자의 삶,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도서 누구나 인간 시리즈 1
알로이스 프린츠 지음, 김경연 옮김 / 이화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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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랑 사상까지 모두 어렵지 않게 쓰여있어서 매우 좋았다. 나처럼 한나 아렌트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이라면, 한나 아렌트에 대한 입문서로 매우 유익하니 추천추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구매할 예정. 책장 한 칸을 차곡차곡 한나 아렌트로 채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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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소녀 Wow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위즈너 그림, 도나 조 나폴리 글, 심연희 옮김 / 보물창고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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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폭력과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 독립과 해방, 자유의 이야기이지만,
시작부터 인어 ‘소녀‘와 ‘아저씨‘가 나와서 끝까지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몰입 진짜 너무 안되고 계속 ‘이 아저씨는 이 소녀의 이 모습을 계속 보고있단 말인가‘ 하면서 토할것 같음.
아저씨 나오는 줄 알았으면 안샀을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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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1-14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기분이 너무 더럽다... ㅜㅜ

극복하자 ㅠㅠ

그렇게혜윰 2020-01-14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비드위즈너가 왜 그랬을까여??? ㅠㅠ

다락방 2020-01-15 07:27   좋아요 0 | URL
다른 분들의 리뷰 보면(구매자는 없었지만) 다 좋다고 되어 있었어요. 별다섯, 별넷..
그렇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싫어하는 류의 이야기가 처음에 나와서 너무 힘들었어요 ㅠㅠ

유부만두 2020-01-1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죠... 충격 크셨죠. ㅠ ㅠ. 그루밍 성폭력이랑 세빌리아 이발사 생각난다고 제가 트윗에 썼었어요. ;;;

힘든 장면 많았지만 전 인어공주 이야기가 다시 쓰이면 폭력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친구가 손 내밀고 협력하는 게 좋았어요.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 읽으셨어요? 그건 더 무서워요.

다락방 2020-01-15 07:33   좋아요 1 | URL
성인이 미성년을 향한 폭력을 휘두르는데 미성년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이 이야기가 아주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진 않고요, 그루밍 성폭력보다 더 싫은게 저는 소녀가 ‘인어‘라는 이유로 상의를 탈의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매일 보는 ‘아저씨‘가 있고요. 정말 토할것 같았어요.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싫어하는 류의 이야기에요. 누구든 좋아할 순 없는 이야기지만 저는 성인의 미성년 성폭행은 뭐가 됐든 ‘무서워서‘ 싫은 게 아니라 트라우마 건드려서 싫어합니다. 너무 싫어요.
 
















지난 일년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해오면서 소위 '벽돌책'이라 불리는 것들도 여러권 읽었다. 마지막에 읽었던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그중에서도 절정이었는데, 그 책을 다 읽은 걸 스스로 대견해했다. 이 책까지 읽었으니 세상에 읽지 못할 책이 어딨을까, 다른 책들은 이제 모두 쉽다...라고 생각하면서, 이달의 책인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읽기를 좀 미루고 있었다. 어차피 1월에 다 읽으면 되는거고, 고작, 겨우, 400페이지의 책인데 뭘. 2-3일이면 끝내지 않겠어? 하하하하. 그렇게 나는 뒤로 미루면서 다른 책들을 읽어가는 와중에, 다른 멤버들은 이 책을 시작하더라. 으응, 시작하세요, 난 좀 늦게 가지만 어쨌든 완독할테니까,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런 마음으로 여유 빵빵이었는데, 어제 멤버 1이 자신은 서문만 읽었다고 하고, 며칠전 멤버2는 '제2의 성보다 어렵다'고 하길래, 뭐, 일 얘기고, 나는 일하는 사람인데 뭐, 아하하하하하하하, 그러면 살짝 발을 담갔다가 후루룩 그 김에 다 읽어버릴까? 하고는 어제 이 책을 펼쳤다.


그러니까 내 머릿속에서는,


아, 어렵다 그래서 쫄아서 시작했는데, 책장 빨리 넘어가던데요? 다 읽었어요.


이거 할라 그랬거든?


그런데 나는 이 책의 서문조차도 다 읽지 못했다. 제2의 성보다 어렵다는 멤버의 말을 떠올리며, 와, 그 말이 사실이었어...적극동의하였으며, 그래도 서문은 다 읽었다는 다른 멤버의 말에 서문은 다 읽고 자자 하였지만, 넘겨도 넘겨도 힘들게 넘겨도 서문이 끝나지 않는 것이었다. 하아-


오늘은 여기까지. 그렇게 나는 서문 읽는 것 조차도 포기합니다.

서문이여...




노동은 경제적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뿐 아니라 사회적 · 정치적 주체를 탄생시킨다. 다시 말해 임금관계는 소득과 자본을 창출할 뿐 아니라, 규율에 따르는 개인, 통치 가능한 주체, 가치 있는 시민, 책임감 있는 가족 구성원을 낳는다. 실제로 노동이 개인의 삶과 사회의 상象에서 차지하는 구심적 역할을 감안하면, 노동은 다양한 주체성에 대한 탐구에서 중요한 지점을 점할 수밖에 없다. (p.22)



나는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 했던 것부터 지금까지 20년 이상을 일해오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을 하는건데, 물론 그 사이에 이십대 중반에 2개월쯤의 공백기간이 있었다. 잠깐 백수로 지냈던 시간. 한 직장에서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까지 2개월의 텀이 있었던건데, 그 2개월을 나는 '그간 열심히 일했으니 충분히 놀고, 충분히 쉬고 그 다음에 직장을 구하자' 하였지만, 그런 마음은 며칠 가지 않았다. 오전에 집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라 치면 '너 왜 집에 있니'란 물음에 답하는 것이 너무 짜증이 났다. 그전에 분명 일했고 또 앞으로 일할 것이 분명함에도 나는 그 2개월간 나를 무가치하고 쓸모없게 느꼈다.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자, 라고 생각하였지만 사실 뭘 해야할지도 잘 몰랐고 또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그 사이에 내가 한 일이라고는 운전면허 1종을 따둔 것이었는데, 이러면서도 스스로가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놀면서 하는 게 이렇게 없어서야, 원. 막상 내 친구는 나한테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고 지청구를 늘어 놓았지만.


어쨌든 충분히 놀고 싶었지만 노는 것도 뜻대로 안되어 다시 취직을 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르렀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매일매일 수차례 그만두고 싶다. 점잖게 '그만두고 싶다'로 그치는 게 아니라, '씨발 그만두고 말지'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일 수도 있고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직장이란, 물론 그렇지 않은 직장도 있겠지만, 계급이 가장 확실히 보여지는 곳이고 상사의 명령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곳이다. 특히나 나처럼 제조업이라면, 임원들이 전부 나이 많은 남자들이라면 더하다. 이 안에서 살아남으면서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여자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남자들 역시나 일터에서 많은 고충을 겪어야겠지만, 여자는 거기에 몇가지를 더한다고 해도 좋다. 우리 회사에 임원중에 여자가 없는 것만 봐도 증명되는 게 아닌가.



나 역시도 매일 그만두고 싶어하고 어떤 날은 심하게 그만두고 싶어서 사직서를 내기도 했다. 임원은 내 앞에서 내가 제출한 사직서를 찢어버렸고 그래서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관두고자 하면서도 사실 많은 부분 내가 직장인, 회사원이기 때문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도 어느 순간에는 안정적으로 여겨진다. 조직적으로 일하는 거, 일을 분담하는 거, 직급이 올라갈수록 책임감을 느끼는 것도 내가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겪을 수 있고 알게된 것들이다. 복도에서 다른 팀의 직원들을 만났을 때 반가이 인사를 하노라면, '내가 회사에 다니지 않았으면 다 모르고 살았을 사람들이겠지'라는 생각에 슬몃 웃음도 난다. 정말 그러고 싶진 않지만, 일하는 시간과 일하는 곳에서의 에너지 모두 내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에 이토록 많은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고, 일에 이토록 많은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나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내 의지와는 다르게, 나는 일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나올테니 이 책이 어려울 리가 없잖아? 쉬워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나 나는 서문의 책장 한 장을 넘기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그래도 서문만이라도 읽고 자자 하다가 읽어도 읽어도 서문이 안끝나, 대체 서문이 어디까지야, 하고 뒤로 넘겨보니 60페이지를 넘어가더라. 하아. 그래, 서문만..서문만.. 하였지만 너무 안되어서.. 아 포기다, 하고 서문도 다 읽지 못했다. 어떻게 제2의 성보다 어려울 수 있지, 어떻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요?




그렇게 서문의 반을 채 읽지도 못한 채 지쳤다가, '한나 아렌트'를 만난다. 무려 '서문'에서 한나 아렌트가 나와. 네?




여기서 나는 일과 노동의 관계에 주목하게 된다. 이 책의 목적을 고려하여 나는 두 용어를 서로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사용할 것이다. 이로서 자주 그러나 변덕스럽게 제기되곤 하는 둘 사이의 차이를 거칠게 다루고자 한다. 이 문제에 관한 중요한 학자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를 들 수 있을 것이다. (1958) 아렌트는 생물학적 존재로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활동으로서의 노동labor 과 대상 세계를 창조하는 활동으로서의 일work을 구분함으로써 세 번째 범주의 활동, 즉 행위action의 특이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행위는 공적 영역에서의 정치적 활동을 뜻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더 확장적이며 가치 있는 활동으로 그려지는 것은 노동-보다 정확히는 살아 있는 노동living labor-이다. 여기서 살아 있는 노동은 자본이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활용하는 인간의 집단적이고 창조적인 역량으로 개념화되면서, 비판적 관점과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동시에 이끌어 낸다. (p.31)



위의 31페이지 인용문....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나는 모르겠다. 다만, 한나 아렌트를 언급했다는 것만 알겠다. 나는 이 책의 서문을 삼십몇페이지에서 읽다가 던져버린다. 그리고 아아, 모르겠다, 한나 아렌트를 읽고 다시 시도하자, 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내가 오늘 들고온 책은 무엇?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모르겠다.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건지, 잘 가고 있는건지. 1월 도서 너무 어려워서 미쳐버릴 것 같구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제가 이 한나 아렌트를 끝낸 다음에 다시 1월의 도서로 돌아갈게요. 아니 1월 도서는 무슨 제목부터 이렇게 길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주말에 중년의 남자연예인들의 문자대화가 이슈가 되었다. 그런 내용들을 주고받는다는 게 더이상 충격이진 않았다. 어차피 대학생들의 단톡방이 청년이 되면 정준영 승리의 단톡방이 되고, 그들이 고스란히 자라 그런 중년이 되는 것이니까. 그들은 그러니까 자신들이 살던 그대로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 어른이란 말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대학생이 청년이 되고 청년이 중년이 되면서 그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대로, 바로 거기에서 멈춰있다.



중년의 인기있는 남자 배우들이라면 분명 경제적 여유도 있을 터였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것은 시간적 여유도 동시에 가질 수 있음을 뜻한다. 이제는 예전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돈이 충분히 있는 상황. 그렇다면 인생을 좀 더 다른 식으로 살아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중년의 여유를 가진 남성들의 대화가 고작 '성매매'와 '골프' 밖에 없냐는 거다. 그 가득찬 대화창으로 하는 말이라고는 고작 골프와 성매매가 전부라니. 너무 한심하지 않은가. 자신들이 가진 시간과 돈으로 생각할 수있는 게 그것 뿐이란 말인가, 정녕. 너무 한심하다, 너무. 여성을 성적대상화 하는 게 하는 일의 전부야. 여성을 사고 팔고 '떡치는 게' 시간과 돈을 잔뜩 가진 자들이 할 수 있는 전부라니. 여성을 그저 성적 도구로 보는 것도 끔찍하지만, 그 나이에 그것밖에 못하는 것도 너무 한심하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기 발전을 더 하기에 아주 유리한 조건에 놓여있으면서도 어떻게 그래, 어떻게. 그럴거면 공부하고 싶어하고 열심히 살고 싶어하고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싶어하고 시야를 넓히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그 돈을 다 기부해라 진짜.. 머릿속에 골프랑 성매매밖에 없는 삶... 그런 삶은 도대체 스스로에게 어떤 만족을 가져올까. 게다가 가장 친한 친구와 나누는 대화가 그것 뿐이라니. 아니 그게 정말 스스로 괜찮아요? 다른 여자의 나이를 묻고 몸매를 묻고 자빠뜨리자는 의기투합하는 게, 그게 친구와 나누는 대화의 전부인 게, 그게 정말 스스로 만족스러워? 그래?


그런 중년의 남성들에게 매일 일기 쓰는 걸 권합니다.

일기를 쓰세요. 매일. 매일 쓰세요. 짧게라도 일기를 쓰세요.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보세요.

그러고도 그런 삶을 여전히 살게 된다면, 당신이 진정한 한심이.... 가망없는 한심이......






아무튼 나는 한나 아렌트를 읽을 것이고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도 읽을 것이다. 완독해야지.

아니 근데 내가 페이퍼 쓰려고 이 책을 검색하는데


'우리는 왜 이토록'


까지만 쳐도 안나오고


'우리는 왜 그토록'


까지만 쳐도 안나와서 대체 왜 안나와, 왜. 이토록 아니면 그토록인것 같은데, 왜?

하고 어제 내가 독서앱 IReadItNow 에 올린 걸 보니,


'우리는 왜 이렇게'



였어..... 나여........




아무튼 1월의 도서는 매우 어렵습니다, 매우. 여러분 열심히 읽고 글 써요!! 뽜샤!!

나는 완독할 수 있을 것인가. 두구두구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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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1-13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어렵다는 다락방님 말씀이 다 이해가 되고(어렵다는 말 제일 먼저 한 사람), 그리고 그 슬픔과 절망에 깊이 공감하지만,
그런데도 이렇게 멋진 페이퍼가 탄생한거에 대해서는 이 책에게 고마워해야할 듯 합니다.
한나 아렌트,를 읽으면 도움이 될까요? 저는 어제밤까지 하염없이 어깨 뒤로 글자를 던지다가 결국 오늘 아침에는 다른 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42쪽의 위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1-13 09:41   좋아요 0 | URL
한나 아렌트를 읽으면 도움이 된다고는...말씀드리지 못하겠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너무 다른 책으로 도망가고 싶었지 말입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도 이 책은 글자만 읽는 것으로 그 소임을 다할 것 같아요. 내용파악까지는 무리일듯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도 어깨 뒤로 글자를 던지는 걸로... 하아-

블랙겟타 2020-01-13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장으로 진입하시면요.. 이젠 베버가 자주나온답니다..(소근소근)

다락방 2020-01-13 10:23   좋아요 0 | URL
뭐..뭐...뭐....뭐라고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비연 2020-01-1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문 읽는 중인 저로선, 스타트는 빨랐으나 느림보 궁뱅이인 저로선 정말.. 서러움이.

그나저나 ˝오전에 집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라 치면 ‘너 왜 집에 있니‘란 물음에 답하는 것이 너무 짜증이 났다. 그전에 분명 일했고 또 앞으로 일할 것이 분명함에도 나는 그 2개월간 나를 무가치하고 쓸모없게 느꼈다.˝ 이거 저도 느꼈던 거에요 ㅋㅋㅋㅋㅋㅋ 정말이지 잠깐 쉬는데도 어찌나 눈치가 보이고 어찌나 힘들던지.

다락방 2020-01-13 11:05   좋아요 0 | URL
비연님, 쇼님과 저와 비연님이... 아직 서문중입니다. 그런데 서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정녕 ㅠㅠ

누구도 뭐라하지 않았는데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여겼던 그 짧은 시간이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이 책을 읽으면 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을까요? 열심히 읽는 게 답인데 열심히 읽을 수 없게끔 어렵네요 ㅠㅠ

moonnight 2020-01-13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책은 다락방님께 맡깁니다ㅎㅎ; 주진모가 해킹되어 돈 요구받았다는 문자가 그런 내용이었나보네요 장동건까지@_@;;; 저는 뭐, 그러려니 합니다. 실망스럽지도 않아요ㅠㅠ;

다락방 2020-01-13 13:19   좋아요 0 | URL
해킹해서 공개한 사람도 한남인듯 합니다. 저 중년의 배우들이 주고받은 여성의 사진들이 얼굴 하나 가리지 않고 그대로 공개되었어요. 하아.. 어찌나 한심한지.

어떤 아이돌은 공개하지 말라고 돈을 줬다고 하는데, 그 사람은 공개되면 어떤 것들이 잇었을까요.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단톡방속에서 자라는 한국의 자랑스런 남자들이네요.

꼬마요정 2020-01-13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왜 이렇게 열심히 오래 일하는가.... 이건 분명 세뇌당해서일거에요.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다들 일하냐구요. 우린 모두 매트릭스 안에서 일 하는 게 당연한거고, 노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세뇌당한 게 틀림 없어요. 솔직히 노는 게 훠얼씬 좋은데 말이죠. 일을 줄여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못 하고, 한나 아렌트는 너무 어려운 말로 노동과 일과 제3의 범주를 말하네요.

해킹당했다는 기사만 보고 내용은 아예 안 봤지만 안 봐도 뻔한 거였군요. 요즘 김용의 영웅문 읽다 보니, 저 남자들에게 무공을 연마하라고 하고 싶네요. 마음 수양도 좀 닦고... 아니면 기 수련을 하거나 주짓수를 배우거나 요가를 하거나...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관심이라고는 여자, 여자랑 같이 골프 뭐 이런 건가요... 아니면 ‘제 2의 성‘을 읽던지... 뭐 본능 본능 하는데 성욕도 충분히 참아지는 거니까요. 그러고보니 그것도 세뇌당한 거 같아요. 남자의 성욕은 참을 수 없다. 뭔 멍멍이 소리인지...

음.... 너무 흥분했어요. 잠시 심호흡하고, 벌써 월요일 점심이에요 ㅎㅎㅎ 곧 주말이 올 거에요. 우리 한 주 힘내요!!!

다락방 2020-01-13 13:22   좋아요 1 | URL
꼬마요정님, 제가 아직 서문도 다 읽지 못해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책의 본문에 들어가면 우리가 너무 열심히 일하도록 세뇌당했다는 내용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읽으면서 차차 글로 풀어보도록 하지요. 가능하다면 말입니다.

저도 저들이 제2의 성을 읽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여가를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 지금과는 확실히 삶의 질이 달라질텐데요.
남자배우들하고 골프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성매매를 하는듯 하더군요. 여성의 사진 돌려보며 품평하고요. 너무 한심하죠, 너무. 머릿속에 골프랑 성매매 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보부아르를 읽는것이야말로 저들이 해야할 일인데요..

주말을 기다리며 오늘도 잘 견뎌봅시다, 꼬마요정님!

hnine 2020-01-13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그런 책이군요.
우리는 왜 이렇게 열심히 오래 일하는가. 일 안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일 하는 것보다 더 어렵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일 안하면서 마음 편하기란, 쉽지 않더라고요.
living labor, 그러니까 이게 제일 이상적이란 말인거죠? 인용문 읽어보았습니다 ^^

다락방 2020-01-13 13:24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과 마르크스를 다 다룬다고 하니 엄청 흥미롭고 그래서 제대로 읽고 또 제대로 글을 써보고 싶은데, 서문부터 막혀서 미치겠어요. 이렇게 어려운 책을 과연 완독할 수 있을것인지.. 솔직히 글자만 읽을 것 같습니다 ㅠㅠ
독서근육 붙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가봐요 ㅠㅠㅠ

유부만두 2020-01-15 0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는 멋집니다. 펼치기 전입니다.
아렌트, 베버... 책 제목은 알고요;;;

다락방 2020-01-25 12:28   좋아요 0 | URL
아렌트와 베버가 아니어도 이 책은 충분히 어렵네요 ㅠㅠ 진도가 안나가요 ㅠㅠ

공쟝쟝 2020-01-24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이 글 다시 읽고 갑자기 작년 이맘때 캘리번과 마녀 읽으면서 대캘리번- 셰익스피어 뒤적뒤적하시던 락방님 생각나서 내적 미소 짓다가 갑니다..

다락방 2020-01-25 12:29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그런 일이 있었지요!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당시에 백프로 이해한 게 아니라 하더라도 이렇게 또 비슷한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더 알게 되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여기에 3월 도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까지 읽어주면 뽝- 더 단단해지겠죠?
자, 읽읍시다!
 















'로버트 브린자'는 남자 작가이다. 전편인 《얼음에 갇힌 여자》에서 주인공인 '에리카' 형사를 통해 여성 피해자들에게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아, 이 작가는 세상을 두루 보려고 하는구나, 노력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피해자들에게 공감하고 연대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 남자 형사들로부터 따돌림 당하지만 고집스럽게 제 역할을 해내려는 에리카의 모습을 나는 무척 좋게 봤더랬다. 남자 작가라고 다들 그렇게 여성혐오적인 작품만 쓰란 법은 없지, 어떤 남자들은 성평등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 수도 있는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남자가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고 로버트 브린자는 성평등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 최소한 그러려고 노력하는 작가라고 나는 판단한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나이트 스토커》에서는 남자들이 피해자가 된다. 어쩌면 게이일지도 몰라 게이혐오에 촛점을 맞춰 수사중이다. 에리카가 맡은 사건의 시체를 부검하는 법의학자는 '아이작'이라는 남성인데 이 남자 역시 게이다. 에리카와 사이 좋게 지내면서 서로의 고민들을 말하기도 하고 함께 자주 저녁 식사도 한다. 그 날도 아이작은 에리카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에리카는 곱게 차려입고 아이작을 방문했다. 긴 여름 드레스와 맵시 있는 머리, 대롱대롱 매달린 은제 귀걸이(p.137) 차림으로. '맵시 있는 머리'라는게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에리카가 평소의 출근하는 차림이 아닌, 여느 날과는 다른 '꾸민' 옷차림으로 아이작을 방문한거다. 그런 모습에 아이작은 놀라고 감탄한다.



"이야, 내 앞에 선 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은 누구시죠?" (p.137)



자, 아이작의 감탄은 타당하다. 우리가 영화에서 종종 보던 장면은 어떤가. 한껏 꾸민 차림으로 데이트를 하려고 하면 남자들이 항상 그런 여자에게 감탄하지 않는가. 꾸민다는 것은 상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음을 의미한다. 상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고, 이 자리에 신경쓰고 나왔다는 걸 티내고 싶고. 그래, 이런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렇게 차려입을 수 있고, 차려입은 만큼 내가 차려입었다는 걸, 신경썼다는 걸 상대로부터 듣고 싶은 마음도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니 아이작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감탄을 한 것이다. 그런데 에리카의 반응은 어떤가.




"내가 평소에는 창녀처럼 입고 다녔다는 말투 같군요." 그녀는 말했다. (p.137)



나는 에리카의 이 반응에 너무 놀랐다.

자, 생각해보자.

내가 오늘 데이트가 있다. 그래서 평소와는 다르게 좀 신경써서 옷을 차려입었다. 머리도 신경 쓰고 옷도 신경쓰고 평소에 하지 않던 귀걸이도 했다. 그렇게 상대와 저녁 식사를 하려고 한거다. 그렇게 차려입었더니 상대는 평소의 내 차림도 아는 터라 내 모습을 보고 우와, 하고 감탄할 수 있다.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자, 그러면, 상대가 내게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칭찬했을 때 내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은 어떤걸까?



일단 칭찬을 들었으니 '고맙다'고 반응할 수 있겠다. 에리카와 아이작은 일터에서 만난 사이이고 그러면서도 사적으로 가끔 사이좋게 식사하는 사이이니 '하하 고마워' 정도로 감사를 표현할 수도 있다. 혹은 위의 에리카의 반응처럼 무심히 넘기려는 듯, 평소에 내가 어땠길래 그래? 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려고 했다면, 나였다면, 그리고 내 주변의 다른 보통의 여자들이었다면,



내가 평소에는 어땠다고 그래?

내가 평소에는 날나리 같았어?

내가 평소에는 양아치 같았다는거야, 지금?

내가 평소에는 천박했어? 어?

내가 평소에는 거지같았니?

내가 평소에는 초라했어?

내가 평소엔 야하게 입고 다녔어?



뭐 이런 식의 반응들이 나올 수 있다. 날나리, 양아치, 거지(딱히 거지를 말할 것 같진 않지만)등등. 또 다른 단어들을 넣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상대에게 '내가 평소에 창녀같았나 보지?' 라는 말은 안할거다. 세상 어느 여자가 자신을 칭찬하는 남자에게 반응하면서 '나 창녀같았나보지? 나 창녀로 생각했나보네' 라는 반응을 보이는가. 어느 여자가 창녀라는 워딩을 입밖에 내는가. 친근한 사람과의 대화에서.


직장에서 만난 사이도, 친구 사이도, 연인 사이라도,

나 창녀같아? 라는 말은 대체 어느 여자가 한단 말인가. 하아.



나는 저 워딩에서 남자 작가의 한계를 느꼈다. 전(前)작에서 소수자의 삶, 여성들이 직장에서 무시당하는 삶, 피해자에게 연대하는 여성을 실컷 보여주려고 노력한 작가였지만, 그러나 그가 남자임은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저기서 왜 창녀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가. 우아함의 반대로 여자들은 창녀를 생각하지 않는다. 고상함의 반대, 아름다움의 반대, 지적인 것의 상대어로 여자들은 창녀를 떠올리지 않는다고. 우아하다는 칭찬에 평소에 창녀로 봤냐는 대답은 정말이지, 남자 머리에서만 나올 수 있는 거다. 맹세코 나의 경우 단 한 번도, 나의 평소와 다른 모습을 칭찬하는 상대에게 '왜? 나 평소에 창녀같았어?' 라고 되물은 적이 없다. 우아함의 상대어로 바로 창녀를 들이밀다니. 대체 이게 어디에서 튀어나오는 상식이야, 어디서 튀어나오는 대응이야. 우아함의 상대어로 창녀를 바로 끌어올 수 있는 거, 아무리 주인공이 여자라지만, 그런 여자의 입을 빌어 '창녀'를 언급하다니. 너무 성녀와 창녀 이분법이 머릿속에 박혀있는 거 아닌가.


나는, 우리는, 여자들은,

성녀와 창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우아할 수도 있고 덜 우아할 수도 있고 초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아한 것의 상대어가 창녀같다는 생각은, 우리는, 여자로 살아오면서 하지 않는다.

내가 여성인 친구들을 만나 '와 오늘 옷 되게 잘받는다' 라는 말을 한다거나, '머리 잘랐어? 잘 어울려'라는 말을 한다거나, 뭐 기타등등 어떤 칭찬을 할 때 그 누구도 '나 평소에 창녀같았지'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대체 머릿속이 어떤 구조로 되어있으면 저기서 우아하다는 칭찬에 창녀로 받아치냐. 이건 진짜 남자 작가라서 그런거야.



남자들에게 창녀는 뭘까.

창녀가 뭡니까, 남자들이여.

도대체 남자들은 창녀를 뭐라고 생각하길래 머릿속에서 창녀를 지워내지 못하고 아무때나 구분도 못하고 튀어나와버려.

진짜 .. 하아-

좆같은 새끼들 진짜.



그러니까 아무리 소수자에 대한 연대를 보여주려고 해도, 공평한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해도, 이번 책에서는 승진하고 싶어하는 에리카를 보여주는데, 그러니까 야망 있는 에리카. 그럼에도 어쩔 수없이 뿌리박힌 여성혐오가 그 안에 있는 것 같다. 세상 어느 여자가 저기서 저렇게 말하냐고.


"내가 평소에는 창녀처럼 입고 다녔다는 말투 같군요."



대체 저게 무슨 말이야. 심지어 에리카는 전작에서 우리가 창녀의 죽음이든 창녀가 아닌 사람의 죽음이든 평등하고 똑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열변했잖아.




"오늘까지는 앤드리아 더글러스-브라운의 죽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신문과 인터넷 사이트, 텔레비전 뉴스에 앤드리아 사진이 도배됐고, 국가적 양심의 문제로까지 번졌죠. 그렇습니다, 앤드리아가 특권을 누렸던 건 사실입니다. 반면 타티아나 이바노바, 미르카 브라토바, 카톨리나 토도로바와 아이비 노리스는 어떤가요?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그런 험한 삶을 살았을까요? 아닐겁니다. 상황이 달랐다면, 그들도 앤드리아처럼 윤택한 삶을 살았을지도 몰라요. 내가 구태여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 나라에서 매일같이 행해지는 대로 이들을 계급화하지는 말자고요. 이 다섯 사람 모두 끔찍하게 살해됐어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겁에 질려 죽어 갔습니다. 이들은 모두 평등하고, 똑같은 피해자이며, 공정한 시선으로 주목을 받아야 합니다." (p.355)




머릿속에 졸라 창녀창녀창녀창녀 있는건가봐. 하아. 재미있게 읽다가 아, 이것이 바로 남자 작가의 한계로구나, 생각했다. 남자란 어쩔 수가 없어. 머릿속에서 창녀를 지워낼 수 없는건가봐. 우아함에 바로 창녀로 받아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나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말, 내 여자친구들로부터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말. 그 말을 '로버트 루인자'가 에리카의 입을 통해 한다. 정말이지, 실망 대실망이다. 하아.



우아함의 상대어는 창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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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1-09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서재의 달인 등극 축하드리며 새해복많이 받으셔요^^

다락방 2020-01-10 09:1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카스피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0-01-09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