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브린자'는 남자 작가이다. 전편인 《얼음에 갇힌 여자》에서 주인공인 '에리카' 형사를 통해 여성 피해자들에게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아, 이 작가는 세상을 두루 보려고 하는구나, 노력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피해자들에게 공감하고 연대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 남자 형사들로부터 따돌림 당하지만 고집스럽게 제 역할을 해내려는 에리카의 모습을 나는 무척 좋게 봤더랬다. 남자 작가라고 다들 그렇게 여성혐오적인 작품만 쓰란 법은 없지, 어떤 남자들은 성평등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 수도 있는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남자가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고 로버트 브린자는 성평등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 최소한 그러려고 노력하는 작가라고 나는 판단한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나이트 스토커》에서는 남자들이 피해자가 된다. 어쩌면 게이일지도 몰라 게이혐오에 촛점을 맞춰 수사중이다. 에리카가 맡은 사건의 시체를 부검하는 법의학자는 '아이작'이라는 남성인데 이 남자 역시 게이다. 에리카와 사이 좋게 지내면서 서로의 고민들을 말하기도 하고 함께 자주 저녁 식사도 한다. 그 날도 아이작은 에리카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에리카는 곱게 차려입고 아이작을 방문했다. 긴 여름 드레스와 맵시 있는 머리, 대롱대롱 매달린 은제 귀걸이(p.137) 차림으로. '맵시 있는 머리'라는게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에리카가 평소의 출근하는 차림이 아닌, 여느 날과는 다른 '꾸민' 옷차림으로 아이작을 방문한거다. 그런 모습에 아이작은 놀라고 감탄한다.
"이야, 내 앞에 선 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은 누구시죠?" (p.137)
자, 아이작의 감탄은 타당하다. 우리가 영화에서 종종 보던 장면은 어떤가. 한껏 꾸민 차림으로 데이트를 하려고 하면 남자들이 항상 그런 여자에게 감탄하지 않는가. 꾸민다는 것은 상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음을 의미한다. 상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고, 이 자리에 신경쓰고 나왔다는 걸 티내고 싶고. 그래, 이런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렇게 차려입을 수 있고, 차려입은 만큼 내가 차려입었다는 걸, 신경썼다는 걸 상대로부터 듣고 싶은 마음도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니 아이작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감탄을 한 것이다. 그런데 에리카의 반응은 어떤가.
"내가 평소에는 창녀처럼 입고 다녔다는 말투 같군요." 그녀는 말했다. (p.137)
나는 에리카의 이 반응에 너무 놀랐다.
자, 생각해보자.
내가 오늘 데이트가 있다. 그래서 평소와는 다르게 좀 신경써서 옷을 차려입었다. 머리도 신경 쓰고 옷도 신경쓰고 평소에 하지 않던 귀걸이도 했다. 그렇게 상대와 저녁 식사를 하려고 한거다. 그렇게 차려입었더니 상대는 평소의 내 차림도 아는 터라 내 모습을 보고 우와, 하고 감탄할 수 있다.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자, 그러면, 상대가 내게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칭찬했을 때 내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은 어떤걸까?
일단 칭찬을 들었으니 '고맙다'고 반응할 수 있겠다. 에리카와 아이작은 일터에서 만난 사이이고 그러면서도 사적으로 가끔 사이좋게 식사하는 사이이니 '하하 고마워' 정도로 감사를 표현할 수도 있다. 혹은 위의 에리카의 반응처럼 무심히 넘기려는 듯, 평소에 내가 어땠길래 그래? 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려고 했다면, 나였다면, 그리고 내 주변의 다른 보통의 여자들이었다면,
내가 평소에는 어땠다고 그래?
내가 평소에는 날나리 같았어?
내가 평소에는 양아치 같았다는거야, 지금?
내가 평소에는 천박했어? 어?
내가 평소에는 거지같았니?
내가 평소에는 초라했어?
내가 평소엔 야하게 입고 다녔어?
뭐 이런 식의 반응들이 나올 수 있다. 날나리, 양아치, 거지(딱히 거지를 말할 것 같진 않지만)등등. 또 다른 단어들을 넣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상대에게 '내가 평소에 창녀같았나 보지?' 라는 말은 안할거다. 세상 어느 여자가 자신을 칭찬하는 남자에게 반응하면서 '나 창녀같았나보지? 나 창녀로 생각했나보네' 라는 반응을 보이는가. 어느 여자가 창녀라는 워딩을 입밖에 내는가. 친근한 사람과의 대화에서.
직장에서 만난 사이도, 친구 사이도, 연인 사이라도,
나 창녀같아? 라는 말은 대체 어느 여자가 한단 말인가. 하아.
나는 저 워딩에서 남자 작가의 한계를 느꼈다. 전(前)작에서 소수자의 삶, 여성들이 직장에서 무시당하는 삶, 피해자에게 연대하는 여성을 실컷 보여주려고 노력한 작가였지만, 그러나 그가 남자임은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저기서 왜 창녀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가. 우아함의 반대로 여자들은 창녀를 생각하지 않는다. 고상함의 반대, 아름다움의 반대, 지적인 것의 상대어로 여자들은 창녀를 떠올리지 않는다고. 우아하다는 칭찬에 평소에 창녀로 봤냐는 대답은 정말이지, 남자 머리에서만 나올 수 있는 거다. 맹세코 나의 경우 단 한 번도, 나의 평소와 다른 모습을 칭찬하는 상대에게 '왜? 나 평소에 창녀같았어?' 라고 되물은 적이 없다. 우아함의 상대어로 바로 창녀를 들이밀다니. 대체 이게 어디에서 튀어나오는 상식이야, 어디서 튀어나오는 대응이야. 우아함의 상대어로 창녀를 바로 끌어올 수 있는 거, 아무리 주인공이 여자라지만, 그런 여자의 입을 빌어 '창녀'를 언급하다니. 너무 성녀와 창녀 이분법이 머릿속에 박혀있는 거 아닌가.
나는, 우리는, 여자들은,
성녀와 창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우아할 수도 있고 덜 우아할 수도 있고 초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아한 것의 상대어가 창녀같다는 생각은, 우리는, 여자로 살아오면서 하지 않는다.
내가 여성인 친구들을 만나 '와 오늘 옷 되게 잘받는다' 라는 말을 한다거나, '머리 잘랐어? 잘 어울려'라는 말을 한다거나, 뭐 기타등등 어떤 칭찬을 할 때 그 누구도 '나 평소에 창녀같았지'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대체 머릿속이 어떤 구조로 되어있으면 저기서 우아하다는 칭찬에 창녀로 받아치냐. 이건 진짜 남자 작가라서 그런거야.
남자들에게 창녀는 뭘까.
창녀가 뭡니까, 남자들이여.
도대체 남자들은 창녀를 뭐라고 생각하길래 머릿속에서 창녀를 지워내지 못하고 아무때나 구분도 못하고 튀어나와버려.
진짜 .. 하아-
좆같은 새끼들 진짜.
그러니까 아무리 소수자에 대한 연대를 보여주려고 해도, 공평한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해도, 이번 책에서는 승진하고 싶어하는 에리카를 보여주는데, 그러니까 야망 있는 에리카. 그럼에도 어쩔 수없이 뿌리박힌 여성혐오가 그 안에 있는 것 같다. 세상 어느 여자가 저기서 저렇게 말하냐고.
"내가 평소에는 창녀처럼 입고 다녔다는 말투 같군요."
대체 저게 무슨 말이야. 심지어 에리카는 전작에서 우리가 창녀의 죽음이든 창녀가 아닌 사람의 죽음이든 평등하고 똑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열변했잖아.
"오늘까지는
앤드리아 더글러스-브라운의 죽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신문과 인터넷 사이트, 텔레비전 뉴스에 앤드리아 사진이 도배됐고,
국가적 양심의 문제로까지 번졌죠. 그렇습니다, 앤드리아가 특권을 누렸던 건 사실입니다. 반면 타티아나 이바노바, 미르카
브라토바, 카톨리나 토도로바와 아이비 노리스는 어떤가요?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그런 험한 삶을 살았을까요? 아닐겁니다. 상황이
달랐다면, 그들도 앤드리아처럼 윤택한 삶을 살았을지도 몰라요. 내가 구태여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 나라에서 매일같이 행해지는
대로 이들을 계급화하지는 말자고요. 이 다섯 사람 모두 끔찍하게 살해됐어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겁에 질려 죽어
갔습니다. 이들은 모두 평등하고, 똑같은 피해자이며, 공정한 시선으로 주목을 받아야 합니다." (p.355)
머릿속에 졸라 창녀창녀창녀창녀 있는건가봐. 하아. 재미있게 읽다가 아, 이것이 바로 남자 작가의 한계로구나, 생각했다. 남자란 어쩔 수가 없어. 머릿속에서 창녀를 지워낼 수 없는건가봐. 우아함에 바로 창녀로 받아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나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말, 내 여자친구들로부터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말. 그 말을 '로버트 루인자'가 에리카의 입을 통해 한다. 정말이지, 실망 대실망이다. 하아.
우아함의 상대어는 창녀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