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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읽기를 권함 - 우리시대 어느 간서치가 들려주는 책을 읽는 이유
김무곤 지음 / 더숲 / 2011년 10월
평점 :
<종이책 읽기를 권함>이란 제목이 나의 귀를 간질였다. 내 귓가에 ‘책 같이 읽자’라고 담담하게 속삭이는 듯했다.
실은 최근 몇 달 동안 책과 소원해졌다. 책을 읽는 소소한 재미, 그리고 책을 읽고자 했던 탐욕, 허영 그 모든 것의 의미가 사라지고 책을 펼치는 것조차 너무 버거운 짐처럼 여겨졌다. 그저 늘어졌다. 그 늘어짐이 반등을 찍은 것인지, 슬슬 책들이 나를 부르는 듯하다. 책은 뒷전이고 다른 일들에 허덕이다보니, 알 수 없는 허기와 갈증, 불안 등이 다시금 나를 휩쓸고, 다시금 책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색하고 서먹하다. 그런데 그 모든 고민들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왜 나는 책을 읽는가?”란 질문에 아직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여전히 답답하고, 책 속의 길을 여전히 안개 속이지만, 그 속의 즐거움, 쾌락만으로도 충분히 책을 읽어야 한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명쾌했다.
종이책이 주는 즐거움, 손끝을 스치는 책의 촉감 등을 공유하다보니, 어느새 ‘책’의 길이 훤히 열리는 듯하다. 책을 읽을 때, 정신의 팽팽한 탄력을 늦출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이 깊이 와 닿는다. 오롯이 나와의 시간, 나만의 유희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모든 감각들이 깨어났다. 책을 통해 지난한 삶의 고통을 잊고자 책을 펼치는데, 책이 주는 고통의 깊은 맛이 또한 책 읽는 즐거움이란다. 근데 왜 심장은 거세게 팔딱거리는 것일까? 늘어난 고무줄처럼 축 쳐져 있던 뇌세포들도 활력을 되찾고 아우성친다. 책읽는 쾌락, 책에 대한 탐닉을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꾸준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듯하다.
존재 이유, 그 삶의 의미들은 책을 읽는 소일거리로도 나름 충분한 듯하다.
책 읽기에 따라오는 이런 고통이야말로 사실은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다. 모든 쾌락은 고통의 시간 뒤에 온다. 책 읽기 또한 그러하다. 소설을 읽든, 만화로 읽든, 물리학 전문서를 읽든, 그 모든 책 읽기의 최종 목적은 쾌락이다. 깊은 쾌락일수록 깊은 고통을 요구한다. 오랜 괴로움 끝에 결실을 맺은 짝사랑처럼, 긴 낮밤과 많은 피를 흘리고 얻은 성처럼, 반나절 사투를 벌인 다랑어를 잡아 올린 늙은 어부처럼, 기쁨은 고통에 비례하여 커진다.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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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읽기를 권함>을 주석이 무척이나 이색적이다. 주석이 빼곡하게 들어선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하나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석을 쓰는 데 본문 못지 않은 공을 들인 노고가 여실히 들어난다. 책이 책을 소개하는 역할에 충실한 듯, 책의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소설처럼>(다이엘 페나크, 문학과지성사, 2004)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