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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알라딘 모님이 내 글에서 장영희교수님 느낌이 난다고 한다. 문학 리뷰를 주로 쓰고, 대부분이 긍정적인 내용 위주라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평소 존경하는 분의 글을 닮았다니 기분이 좋았다. 독서치료과정을 공부하면서 강사가 추천해준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새롭게 읽고는 따뜻함과 긍정적인 그러면서도 문학의 아름다운 결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글은 읽는내내 행복했다.
이 책은 고 장영희 교수의 1주년 유고집으로 <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조금은 유사한 문학과 일상의 만남이다. 그녀와 친분있는 화가 김점선의 그림 느낌이 나는 장지원의 삽화는 책의 내용과 어우러져 보는 즐거움을 준다. 전체 3부로 나뉘어져 있는 이 책은 1부에서는 책을 읽은 느낌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또는 유학시절에 만났던 사랑하는 사람들과 삶의 풍경에 대한 조각들이다.
앤 타일러의 소설 <바너비 스토리>에서
" 아, 물론이지요. 이제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천사를 만났습니다. 당신은 나의 천사이고, 나 역시 당신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천사가 될 수 있어요." p.15
책을 읽고 이런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할 일이다. 직장동료, 아이들, 주변 사람을 천사로 바라봐주면 그들도 나에게 좋은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사무실에서 마음이 맞지 않아 보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되는 사람이 있는데 이 글을 읽고나니 한줄기 빛이 비추는 느낌이다. 그녀를 나의 천사라 생각하고 장점만 바라보면 충분히 좋은 관계로 유지될 수 있을 느낌이랄까.
2부는 그녀가 사랑했던 문학작품의 원문, 번역된 글 그리고 작품에 대한 느낌을 간결하면서도 편안하게 들려준다. 개츠비가 평생을 사랑한 데이지의 배반으로 죽음을 맞기 직전의 장면을 인용한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히스클리프의 캐서린에 대한 지독한 사랑을 그리고 있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시가 특히 아름다운 에밀리 디킨슨의 <만약 내가>, 프로스트의 <자작나무>, 실버스타인의 <엄마와 하느님>등은 원문과 함께 꼭 기억하면 좋을 사랑스러운 글이다.
3부에는 그녀를 사랑했던 이해인 수녀님, 박완서 작가님이 쓴 1주기 추모글과 생존 사진을 보여준다. 하반신 불구라는 중증 장애와 암투병의 이중고로 힘든 시간을 보냈음에도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와 마지막까지 문학을 사랑했던 열정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살아가면서 남보다 뒤쳐지는 생각으로 우울할때,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속상함으로 불행하다는 느낌이 들때 이 책은 마음속 응어리를 점점 작아지게 한다. 초겨울의 스산함이 어릴적 엄마와 함께 따뜻한 아랫목에 누웠을때의 그 행복처럼 내 마음에 꽃비가 내린다. 그녀는 떠났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은은한 향기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고히 잠드소서!
If I can……
Emily Elizabeth Dickinson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
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
or cool one pain,
or help one fainting robin
onto his nest,
I shall not live in vain.
만약 내가……
에밀리 E. 디킨슨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친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간혹 아침에 눈을 뜨면 불현듯 의문 하나가 불쑥 고개를 쳐듭니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아등바등 무언가를 좇고 있지만 결국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딱히 돈인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명예도 아닙니다. 그냥 버릇처럼 무엇이든 손에 닿는 것은 움켜쥐면서 앞만 보고 뛰다 보면, 옆에서 아파하는 사람도, 둥지에서 떨어지는 기진맥진한 울새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뛰면서 마음이 흡족하고 행복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결국 내가 헛되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두려움은 늘 마음에 복병처럼 존재합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들판에 콩알을 넓게 깔아놓고 하늘에서 바늘 하나가 떨어져 그중 콩 한 알에 꽂히는 확률이라고 합니다. 그토록 귀한 생명 받아 태어나서, 나는 이렇게 헛되이 살다 갈 것인가.
누군가가 나로 인해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장영희가 왔다 간 흔적으로 이 세상이 손톱만큼이라도 더 좋아진다면, I shall not live in vain……. 태풍이 지나고 다시 태양이 내비치는 오후의 화두입니다.
Love Poem / Robert Bly
When we are in love, we love the grass,
And the barns, and the lightpoles,
And the small main streets abandoned all night.
사랑에 관한 시 / 로버트 블라이
사랑을 하게 되면 우리는 풀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헛간도, 가로등도
그리고 밤새 인적 끊긴 작은 중앙로들도.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미성숙한 사랑은 '당신이 필요해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고, 성숙한 사람은 '당신을 사랑해서 당신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기본 원칙은 내 삶 속에서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세상의 중심이 내 안에서 바깥으로 이동하여 마음이 한없이 커지고 순해집니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아름드리나무뿐 아니라 길옆에 숨어 있는 작은 풀 한 포기도, 하늘을 찌를 듯 높고 멋있는 빌딩뿐 아니라 초라한 헛간도, 휘황찬란하게 밝은 네온사인뿐 아니라 희미한 가로등도,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큰길뿐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는 외로운 길도,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들, 하잘것없는 것들까지 모두 애틋하고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사랑하므로 그 사람이 꼭 필요해서 '나와 당신'이 아니라 '나의 당신' 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 그게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