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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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는 일흔살 이적요시인이 사랑한 열일곱살 소녀의 이름이자 책의 제목이다. ' 아 나는 한은교를 사랑했다'는 서두의 한 구절이 일흔이라는 나이의 선입견으로 선뜻 와닿지 않았지만 책을 덮고난 지금은 시인이 인용한 '사랑에는 나이가 없다'라고 말한 파스칼의 말에 충분히 공감을 한다. 마흔이 느끼는 이 마음은 고스란히 일흔에도 전달되겠지.

소설은 편지형식으로 되어 있고 이적요시인의 죽음 1주기를 즈음해서 편지의 개봉을 부탁한 Q변호사가 화자로 나오는 구성이다. 은교를 사이에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제자 서지우와 노시인의 편지, Q변호사와 은교의 생각이 교차되는 시점은 언뜻 추리소설을 읽는 스릴감을 맛보게 한다. 은교를 보고 첫눈에 반한 노시인은 '사랑의 발화와 그 성장, 소멸은 생물학적 나이와 관계가 없다'는 말로서 사랑의 감정을 합리화 하지만, 서지우에 대한 질투와 배신의 모멸감으로 서지우를 죽음으로 내몰고 자신도 생을 마감한다.    

마치 삼류소설같은 내용은 셰익스피어, 보들레르, 엘리엇등의 싯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고급스러운 문체로 재탄생한다. 사회적 통념에 기인한 고정관념으로 보면 분명 통속소설이지만 삶과 죽음, 거짓과 진실, 사랑과 애증의 사이를 절묘하게 표현한 소설이다. 한달만에 쓴 폭풍같은 소설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독자도 폭풍처럼 읽어 내려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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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6-15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십대에 이런 이야기는 미쳤나봐 웬 주책하지만 이젠 이해가 되려고 해요

세실 2010-06-15 09:39   좋아요 0 | URL
그쵸.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일기일회 一期一會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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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봄에는 향기로운 꽃그늘 아래서, 여름에는 장맛비를 피해 천막을 치고서, 가을에는 마음까지 물들이는 단풍나무 아래서, 겨울에는 예고없이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청중은 스님의 말씀에 고요히 귀를 기울인다. 이 모임이 아름다운 것은 말씀의 행간에 침묵이 있고, 서로 귀 기울이며 존재의 기쁨을 함께 누리기 때문이다." 

책날개에 적혀 있는 사계절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내용이 시사하듯이 이 책은 법정스님이 길상사에서 이루어진 법회와 뉴욕 불광사, 명동성당, 교보문고등에서 여러해동안 법문한 내용을 엮은 법문집이다. 

법정스님의 다른 책처럼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대중적인 글, 시사적이며, 마음이 맑아지는 내용들을 다루었기에 읽는 내내 행복했다. 이 책은 행복한 삶, 참된 사랑, 진정으로 잘 사는 삶, 생명의 기적, 용서, 친절 등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삶의 지혜를 이야기 한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는 요즘 그들 곁에 좋은 친구나 좋은 스승이 있어 짐을 내려 놓을 수 있다다면 비극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법정스님의 가르침이 울림으로 다가온다.

'지금 이 순간은 생애 단 한번의 시간이며, 지금 이 만남은 생애 단 한번의 인연'을 뜻하는 제목처럼 현재의 삶을 소중히 생각하고,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소중한 인연을 가꾸어 가야겠다. 진정한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라는 맑은 가난의 의미를 곰씹어 본다. 늘 곁에 두고 욕심이 생길때,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들때, 밑줄 그어놓은 글귀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며 진정한 내려놓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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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17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찜만 혀놓고...사지못한 책이여요.ㅠㅠ

세실 2010-05-17 00:09   좋아요 0 | URL
곁에 두고 마음이 심난할때 읽으면 좋아요.
밑줄 쫘악, 띠지 군데군데 붙여 놓았습니다.

후애(厚愛) 2010-05-17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법정스님 책을 읽고 있는데 너무 좋아요.
마음이 편안해지고요.^^

2010-05-17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1 0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1 0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10-05-20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하고 앞쪽 보다가 다른 책을 보아야해서 미뤄두었는데 틈틈이 보아야겠어요.^^

세실 2010-05-20 14:24   좋아요 0 | URL
네. 아무 페이지나 열어서 읽어도 좋아요.
두고두고 기억하면 좋을 책입니다.
 
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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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어본건 처음이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표지와 제목이 평범하지 않은 내용임을 짐작하게 한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제목이 주는 느낌이 좋다. 어둡고 칙칙한 가족의 일상을 다룬 소설인데 작가 특유의 유쾌, 상쾌함과  해피엔딩의 마무리가 따듯한 미소를 자아낸다.

   
  그렇게 엉겁결에 재구성된 우리 가족의 평균 나이는 사십구 세였다.                      p.42  
                                                                                                                  

한 줄에서 보여주듯이 각각의 구성원은 차마 가족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구차하다. 삼류 영화 한편 찍고 쫄딱 망해 결국 엄마 집으로 들어온 삼남매중 유일하게 대학을 나온 오인모 48세, 진한 립스틱을 즐겨 바르고 화장품 외판원 일을 하는 일흔이 넘은 엄마, 하루종일 먹고 자는 일이 전부인 전과 5범의 몸무게 120킬로그램 거구인 52살 형 오한모(오함모), 두번째 이혼을 하고, 피자 한판을 혼자만 먹는 이기적인 딸 민경이를 데리고 와 함께 살게된 마흔 세살 오미연까지 참으로 징글징글한 가족이야기이다.

   
  하지만 인생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법이다. 지루한 일상과 수많은 시행착오, 어리석은 욕망과 부주의한 선택...... 인생은 단지 구십 분의 플롯을 멋지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곳곳에 널려 있는 함정을 피해 평생 동안 도망다녀야 하는 일이리라.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해피엔딩을 꿈꾸면서 말이다.                                          p.45  
   

이보다 더 일그러진 가족의 모습이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한 복잡한 가족사와 남보다 못한 관계처럼 으르렁거리며 폭력을 휘두르고 끝없는 욕설을 퍼 붓는 가족의 모습은 어쩜 멀지 않은 미래에 자주 보게 될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대규모 실업자가 양산되는 현실에서 부모에 의지해 사는 캥거루족들의 모습을 떠올리는건 비하일까?

다행히 그들에게는 엄마라는 구심점이 있었다.

   
  자식들이 장성해 머리가 희끗해져가는 중년이 되었어도 엄마 눈엔 그저 노란 주둥이를 내밀고 먹을 것을 더 달라고 짖어대는 제비 새끼들처럼 안쓰러워 보였을까? 그래서 비록 자식들이 모두 세상에 나가 무참히 깨지고 돌아왔어도 그저 품을 떠났던 자식들이 다시 돌아온 게 기쁘기만 한 걸까?                                                                       p.58  
   

한없이 희생적인 엄마상을 보여준 노모는 전파상 구씨와 바람이 나 미연이를 낳고 아버지의 손짓에 집으로 돌아온 화려한 과거가 있다. 그런 엄마이기에 자식들의 실패와 어긋남까지도 그저 '내 탓이요' 하고 포용할 수 있는 아량이 있는 것일까? 

평소에는 남남처럼 지내던 가족이 가출했던 민경이를 찾아오게 하고, 오함마가 '크게 한 건' 하고 외국으로 달아났을때 대신해서 죽을 만큼 맞아 주었으며, 엄마가 황혼에 다시 만난 전파상 구씨와 행복하게 살도록 피해주는 아량을 베풀게 한다. 역시 가족은 결정적인 순간에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 

칙칙한 가족의 일상이 즐겁게 기억되는 건 소설 속에 감초처럼 등장한 헤밍웨이의 작품 이야기다. 현실과 이상이 결합된 화자의 독백과 소설속 다양한 내용은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무식한 오함마까지 <노인과 바다>를 읽고 고뇌하는 모습은 다소 코믹하기까지 하다.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해주는 엄마의 후원과 믿음, 아이러니 하게도 각각 새로운 가족과의 만남으로 그들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가면서 해피엔딩의 결말을 맺게 된다. 아름다운 결말이라서 참으로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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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4-25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많은 분들이 좋게 평하셔서 보고 싶어요.
징글징글하게 엮인 가족이지만 결정적일 때 제대로 역할을 하는 가족이군요.^^

세실 2010-04-25 01:10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한없이 일그러진 가족의 모습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래도 가족이더라구요. 무거운 주제를 코믹하게 그려낸 작가의 역량도 좋았습니다.

2010-04-26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26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10-05-05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지 코믹해 보이는 표지와 제목과는 달리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책이군요. 저도 보고싶어서 찜해둡니다.^^

세실 2010-05-05 09:21   좋아요 0 | URL
코믹하면서도 참 징글징글한 책이죠. 칙칙하지 않아서 좋아요. ㅎ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 김이설 소설집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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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자욱의 얼굴

찬란하게 눈부신 봄날이라고 하기엔 많이 춥다. 앙상한 나무에 새싹을 돋워줄 맑은 햇살이 그립다. 아직도 겨울인가 싶은 날엔 여운이 남는 그런 소설이 그립다. 아이들과 서점에 가면 제일 먼저 들르게 되는 곳은 베스트셀러 코너. 이 책, 마치 누군가가 할퀴기라도 한듯한 상처 자욱의 얼굴 그림이 섬뜩함으로 다가온다. 작가 이름이 반갑다. 아 잊고 있었다.

삶이 고단할때, 행복이라는 단어가 멀게만 느껴질때 가끔 책이든, 사람이든 위안을 받고 싶다. 이성으로는 다른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위안을 삼는 것(?)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내 삶이 더 우울할 뿐이고, 차라리 상처 투성이의 삶을 보면서 '그래 이보다는 낫다'는 위안이 더 현실적이다.  

나는 아직 삶을 모른다

책을 덮고 며칠은 열세살 소녀의 여운이 떠나지 않았다. 먹고 자는 생리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에 온 삶을 소비해야 하는 그녀에게 ' 나는 치마보다도 다리에 쫙 달라붙는 스타킹이 신고 싶었다' 는 소박한 바램마저 사치일 뿐이다. 노숙을 하고, "씨발, 뭘 봐."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 뱉으며, 단돈 몇푼 때문에 몸을 팔면서도 죄의식은 전혀 없는 그냥 하루 일과일 뿐이다. 믿고 의지하던 키다리 아저씨 같았던 '흰얼굴'이 기자라는 것을 알았을때도 시니컬하다. 그녀에게 과연 미래는 있는 것일까?

요즘도 부모의 도움없이 과연 대학을 갈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비싼 등록금, 방값, 생활비는 가끔 뉴스에 보도되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 내내 학원 한번 다니지 않고 사립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그 아이들이 과연 졸업은 할까 하는 걱정이 된다. '엄마들'에는 대리모로 등록금을 마련하는 여대생이 나온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라는 위안을 하지만 적어도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범위안에서 무리가 없어야 하지 않을까. 부채를 떠넘기고 도망간 가장과, 50이 넘은 나이에 목욕탕 때밀이리를 해야 하는 엄마 사이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없겠지.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하는건 무책임한 것이리라. 

'순애보'는 주인공 '나'를 휴게소에 덩그라니 남겨둔채 사내와 바람이 나서 도망간 엄마 대신에 휴게소에서 만난 남자를 '아빠'라 부르며 함께 사는 이야기다. 밤마다 바다가 보이는 항구에 가는 것이 그나마 그녀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말을 더듬지만 착한 치우와 가정을 꾸몄다면 나름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환상통' 정말 불행은 함께 오는 것일까? 암은 유전적인 요인이 크다고 하지만 엄마와 딸이 순차적으로 암에 걸려 서로의 병간호를 해주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까. 더군다나 불임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암을 발견했다면, 이어지는 남편과의 이혼은 꼭 해야 할까? 하는 반문이 남지만 자식에 대한 욕심이 많은 우리네 이기에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시선을 허공에 둔 엄마의 두 눈가가 검었다. 은희야. 엄마가 길게 발음했다. "억울하지 않니?"  
   

'오늘처럼 고요히'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아이도 있는 엄마가 남편 몰래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고, 몸을 파는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더군다나 남편이 죽고 남편의 형과 함께 사는 것이 요즘 세상에 가능할까?  

그들의 삶을 어떻게 보듬어 주어야 할까?

책을 읽으면서 처음엔 화가 나고 짜증도 울컥 치밀었다. 천안함의 침몰이라는 대형 사고, 온갖 암투로 상처를 주는 정치권, 눈을 뜨면 어두운 이야기뿐인 요즘 꼭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할까 하는 이기심도 작용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주변에도 분명 존재하는 처절한 삶의 모습들이다.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될 우리 이웃들의 모습인 것이다. 사회면에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건 사고가 참으로 많다. 

두 어린 딸의 엄마이기도 한 작가도 아이들에게 예쁜 글, 아름다운 글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크겠지. 하지만 누군가는 나서서 일깨워주고, 세상이 그리 녹녹치 않은 곳이라고 알려주어야 겠지. 이 세상은 분명 아름다운 것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성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의 어릴적 불우한 성장과정 속에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연 그들의 삶을 어떻게 보듬어 주어야 할까?    

이 책의 저자는 현재 우리 지역에 살고 있는 자랑스러운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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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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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매서운 바람이 세차게 불어 심난했던 오늘, 햇살 가득한 봄날이 그립다. 매년 가을을 앓았는데 요즘 매사 심드렁하고 의욕 상실한 듯한 일상이 봄앓이를 할듯 하다. 무언가 삶의 활력소, 설레임의 대상이 필요하다. 다락방님의 공개구혼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칠뻔한 레오와 에미의 사랑이 그래서 더 애틋하게 다가왔나 보다.

출장길 기차안에서 순식간에 읽어버린 후 소리내어 울지는 못하고 흐느끼면서 내다본 창밖 풍경은 봄이기 보다는 추운 겨울같은 황량한 느낌이었다. 언뜻 지나친 책에는 그들의 뒷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하지만 왠지 이쯤에서 멈춰야 할 듯 하다. 

만약 미래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상대가 나타난다면  레오와 에미처럼 메일로만 주고 받다가, 가슴이 터질듯한 그리움이 일면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후버 카페 같은 곳에서 찾으려 애쓰지 말고 '이 사람일것이다' 하는 서로의 느낌만 간직한채 만남을 대신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과연 가능하긴 할까?

에미의 두번째 사랑이라는 것만 빼면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이다. 언어 심리학 조교수인 레오와 웹 디자이너인 에미의 정기구독을 취소하는 메일의 착오로 시작된 만남. 문자나 전화통화보다는 훨씬 정제되는 글을 통해서 상대방에 대해 알아가며 서서히 호감을 갖게되고, 2분뒤, 1분뒤, 50초뒤로 이어지는 메일의 대화글이 보여주듯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서로를 갈망하게 된다.

레오가 애인이었던 마들레네에게 했던 말은 에미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준다.

   
  그 여자는 나를 휘저어놓고, 들뜨게 한다. 종종 그 여자를 달로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꼭 그 마음 만큼 그 여자를 달에서 도로 데려오고 싶어진다. 나한테는 이 지상에서 그 여자가 필요하다. 그 여자는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졌고 영리하며 재치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여자는 온라인에서지만 내 곁에 있다는 점이다.  
   

잠들기 전 메일에 쓴 레오의 인사가 참 따듯하다. 아 멋져라. 
    
   
  새벽 세시예요, 북풍이 부나요? 굿나잇.  
   

그렇게 아무일 없이 평생을 함께 할 줄 알았던 그들의 사랑은 에미의 남편이 알게되면서 혼란속으로 빠지게 된다. 결국 한번의 만남도 갖지 못한채 레오의 떠남으로 그들의 사랑은 끝이 난다.

   
 

레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어요. 제 감정이 모니터를 벗어난 거예요. 전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고 베른하르트는 그걸 알아차렸어요. 추워요. 북풍이 불어오고 있어요. 이제 우리 어떡하죠? 

10초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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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봄앓이를 할 수 밖에....

쉽게 타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인스턴트식 사랑이 아닌 글을 통해서 서서히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느린 사랑은 어떨까? 우표를 붙여야 하고, 직접 우체국까지 가야하는 수고로움 없이 컴퓨터 자판을 통해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때로는 나의 생활에 대해. 때로는 내가 추구하는 것들에 대해 함께 공유하는 것은 어떨까?   

마음을 애써 감추며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그들의 사랑이 읽는내내 안타까웠다.
레오......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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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3-26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세실님. 이 리뷰는 스포일러 다량 포함이로군요!! ㅎㅎ

인용하신 부분은 저도 엄청 좋아하는 부분이에요.

[그 여자는 나를 휘저어놓고, 들뜨게 한다. 종종 그 여자를 달로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꼭 그 마음 만큼 그 여자를 달에서 도로 데려오고 싶어진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잡힌달까요. 봄앓이에 담긴 속뜻은 아픈데 봄앓이라는 단어 자체는 참 예뻐요. 그쵸? 사랑같은건가봐요, 봄앓이는.

세실님.

레오와 에미가 한게, 이메일 속에 들어가 있던 그 감정들이, 사랑이겠죠? 그것도 사랑인게 맞죠?


프레이야 2010-03-26 08:43   좋아요 0 | URL
앗, 다락방님. 와락~
아래 댓글쓰고 클릭 하니까 락방님의 댓글이 위에 먼저 뜨네요.
거봐요, 세실님 ㅎㅎ

다락방 2010-03-26 09:10   좋아요 0 | URL
ㅎㅎ 프레이야님 ♡

세실 2010-03-26 09:13   좋아요 0 | URL
100% 님 덕분에 읽게 된 책입니다.
유일한 남자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시큰둥한 반응입니다. 그런 슬픈 결말은 싫다고 하네요. 그리고 제 얘기 듣고나니 책 한권 읽은것 같다는 뭐 대수롭지 않음...친구도 관둘까봐요. ㅎㅎ
사랑 맞죠. 아주 큰 사랑.
언뜻 둘의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이 보여지잖아요.
보고싶을때 보고, 만나고 싶을때 만나면 여운이 오래 가지 않죠.
무언가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가슴 터질듯한 사랑...느꼈습니다.
아 가슴 아픈 사랑 레오와 에미.

프레이야 2010-03-26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다락방님의 방문이 있을 듯해요 ㅎㅎ
워낙 이 책 전도사였잖아요.(씽긋^^)
세실님, 이 책 보셨군요.
봄바람이 매서워요. 아직은요.
그래도 오늘 따스한 봄날하루 맞으세요.

세실 2010-03-26 09:16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도 읽으셨나요.
님의 느낌 궁금합니다.
오늘은 모처럼 집에서 쉬고 있어요.
아이들 학교 데려다 주느라 잠깐 나갔는데 매섭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뒹글거리며 책이랑 놀아야 겠습니다.

프레이야 2010-03-26 10:00   좋아요 0 | URL
헤헤.. 리뷰도 썼지요.^^
뒹굴거리며 책이랑 노는 거, 아주 좋지요.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세실님.

세실 2010-03-26 10:11   좋아요 0 | URL
어머 님 못 찾겠어요.
어디다 꼭꼭 숨겨놓으셨을까요...

다락방 2010-03-26 10:50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은 [일곱번째 파도]에 관한 리뷰만 쓰신걸로 기억하는데요, 저는. 그 리뷰에서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언급하셨고 말입니다.

:)

프레이야 2010-03-26 11:41   좋아요 0 | URL
앗, 맞아요 맞아.ㅎㅎ 다락방님 말씀이요.
이렇게 요즘 깜박거리며 산다우~ 치매? 흑흑..
일곱번째 파도, 리뷰로 묶어썼다지요.ㅋ

세실 2010-03-26 17:55   좋아요 0 | URL
아 일곱번재 파도...
읽어야 할까요? 그냥 이렇게 마음 아파하며 지내는 것도 괜찮을듯 한데.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요. 영원한 이별. 넘 슬프긴 하겠지만요.

다락방 2010-03-26 17:59   좋아요 0 | URL
세실님. 꼭 읽지는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음, 저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의 결말이 대단히 완벽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일단은 새벽 세시 결말의 여운을 좀 더 가져가는게 좋을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나중에, 나중에 읽어도 될 것 같아요.

세실 2010-03-26 23:31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이메일 사랑 다운 완벽한 결말이었어요.
많이 슬프기는 하지만 그래서 더욱 애착이 가는지도...
그래야 맞는 거잖아요.
여름 즈음에 볼래요^*^

2010-03-26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6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0-03-26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그렇군요. 에궁. 우짜지요. 힘내셔요

세실 2010-03-26 17:50   좋아요 0 | URL
호호호 그래서 이렇게 힘내려고 하루 쉰답니다.
3일 연휴에서 2일 남았습니다.
님도 해피한 주말 보내세요^*^

hnine 2010-03-26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도서관에서 이 책 빌려와서 책상위에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랍니다.
세실님은 늘 에너지가 떨어질 날이 없는, 활기 있는 모습으로만 연상되었었는데 세상에 365일 그렇기만 할 수는 없는것이겠지요. 워낙 날씨도 이랬다 저랬다 하고 해가 좀 짱~ 하고 나면 우리들 기분도 나아지지 않으려나 싶네요. 저는 오늘 남편이 다린이 데리고 어딜 가서 저 혼자 영화보고 돌아다니다 들어왔답니다.

세실 2010-03-27 00:23   좋아요 0 | URL
아 님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합니다. 각자 느끼는 감정은 조금씩 다르겠죠.
에너자이저..ㅎㅎ
애써 노력하는 부분이지만, 요즘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이랄까. 청주가 좁아서 그런지 왠지 아는 사람 만나면 머쓱할듯 하여 아직도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니지 못합니다. 오전에 영화보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는데요.
무슨 영화 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