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넘어지는 연습 -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걸을 수 있도록
조준호 지음 / 생각정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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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에서 전 유도선수 조준호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책 읽는 모습이 신선했다. 그는 유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간 날 때 '논어' 등 인문도서 읽기가 취미란다.

"공자의 논어는 옆에 끼고 살았다. 삶에 필요한 성찰은 감사하게도 이미 과거에 철학자들이 다 해놨으니까. 우리는 따르기만 하면 된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충분히 사색하고 고민할 시간이 모자라서 공자의 사색과 고민에 기대었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는 중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며 현재 용인대학교 유도 코치인 조준호 선수의 책 '잘 넘어지는 연습(생각정원)'을 읽었다. 그는 넘어질 수밖에 없는 삶이라면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기보다 잘 넘어지는 연습을 통해 여유를 갖고 서서히 일어나라고 말한다. "어차피 넘어질 수밖에 없다면 잘 넘어질 것, 아프지 않게, 다치지 않게, 그래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유도와 사이클 선수는 잘 넘어지는 연습부터 한단다. 여러 번 넘어져본 사람이 넘어지는 이유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과 대입해도 좋을 구절이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 스스로를 다독이는 응원이 필요하다.

 

그는 태릉선수촌에 들어가고 국가대표가 되었지만 3년 동안 일곱 번의 국제대회 내내 1회전에서 탈락했다. 한때 좌절하기도 했지만 다른 선수에게 기술을 배우고 체력을 키우며 더 단단해졌다. 누군가는 그에게 동메달이 아쉽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재능보다는 노력의 힘이었기에 충분히 만족한단다. 세 평의 유도장이 아닌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에 26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 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만으로 유도장을 차렸지만 6개월 동안 회원이 없어 고전하면서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한 달에 열 권 이상의 책을 읽는 다독가가 되었고 독서토론 모임에도 열심히 참여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어 나갔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유도장도 정상 궤도에 올랐다.

 

돌이켜보면 호기롭게 은퇴하고 유도장을 차릴 때 나는 많이 조급했던것 같다. 내가 은퇴한 운동선수 신분이 됐을때 사람들이 보낸 동정과 걱정의 눈빛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안정적으로 지속해오던 일을 그만두는 것은 나의 소신있는 선택이기 이전에 제 기능을 다해 재활용도 어려운 재료로 낙인 찍히는 일이었다. 그 찝찝한 동정과 씁쓸한 걱정들은 나를 자꾸만 실패자로, 중간에 포기한 나약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무너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에게 '그리고'의 시간을 주지 못했다.

 

넘어진 다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렇다.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넘어지자마자 벌떡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잠깐은 창피함을 견뎌야 하고, 상처를 살펴야 하며, 가빠진 호흡을 골라야 한다. 그래야 잘 일어날 수 있다. 유도에서도 낙법을 친 다음에 벌떡 일어나지 않는다. 잠시 숨을 고른다음 천천히 일어나 도복을 단정하게 정리한다. 그래서 '잘 넘어지는 일'과 '잘 일어서는 일' 사이에는 '그리고'가 필요하다.

'그리고'는 넘어져서 입은 상처와 통증을 찬찬히 바라볼 여유다. 왜 넘어졌는지에 대한, 다시 넘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일어서서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계획이다."

 

저자는 젊은 나이지만 삶의 깊이가 있고 나름의 철학이 있다. 은퇴 후 특별한 꿈은 없지만 매일 열정의 삶을 살면서 몰입할 것이 있음에 감사했다. 어릴 때부터 유도를 했지만 이기려고 기를 쓰는 선수가 아닌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선수로 자랄 수 있도록 한 부모의 남다른 교육철학도 빛났다.

우리도서관에서 1027일에 '잘 넘어지는 연습'을 주제로 조준호 강연회가 열린다. 아직 꿈을 찾지 못했거나,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청소년에게 도움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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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0-22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넘어지는 연습. 제목이 참 좋군요. 다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넘어지면 안 되니까, 넘어질 때도 요령이 있겠군요.

저는 기대했던 일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실망을 덜 하는 방법을 생각하곤 합니다. 실패도 즐길 수 있는 경지에 가 있으면
좋겠어요.

세실 2018-10-23 10:29   좋아요 0 | URL
넘어지는 연습부터하고, 넘어진후에는 ‘그리고‘를 생각하며 숨을 고르래요. 넘어진 이유를 생각하는거죠.
서른한살의 청년이 이리 인생을 알다니... 역시 독서의 힘이더라구요^^

실망을 덜하는 방법 생각하기. 굿 입니다. 실패를 즐기는 경지...캬~~
최근에 후회하는 일이 있었는데 글을 쓰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해결되네요.
역시 글쓰기는 치유의 힘이 있어요^^

희망찬샘 2018-10-23 0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이야기예요. 지금껏 너무나도 넘어지지 않으려 애를 써 왔구나 싶네요.

세실 2018-10-23 10:34   좋아요 0 | URL
아.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신... 저도 그랬거든요.
그래도 생각지 않은 방향에서 넘어지더라구요.
그럴때 즉각 대응보다는 잠시 숨 고르기...
참 멋진 청년이죠^^

수퍼남매맘 2018-10-23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운동선수셨던 분이 쓰신 책이군요. 급 호감이 가네요.
회복적 탄력성이 뛰어난 분 같네요.

세실 2018-10-25 08:44   좋아요 0 | URL
네 스물여섯에 은퇴하고 제2의 인생을 일찍 준비한 분!
회복 탄력성 좋으세요~~
토요일 강의 기대하고 있어요. 진솔할듯요^^
 
이토록 고고한 연예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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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빛이 고운 가을에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집에만 있기에는 몸이 들썩인다. 이럴 때 가벼운 소설이 끌린다. 소설을 선택하는 기준은 평소에 눈여겨본 저자의 책이다. 김탁환 소설가는 고전문학을 전공한 대학교수에서 전업 작가가 되었다.

 

딸아이가 집에 왔을때 적극 추천한 책 '이토록 고고한 연예(김탁환 저. 북스피어)'를 둘이 함께 읽었다. 다 읽은 후에 나는 딸에게 "대체 누구와의 연애담이지?"하고 말했다. 제목을 '이토록 고고한 연애'로 읽은 것이다. 고정관념이란...

      

오래 전 이외수의 소설 '벽오금학도'를 읽었을 때의 몰입감이다. 모처럼 근사한 소설 읽는 재미를 즐겼다. 주인공 달문은 연암 박지원의 소설 '광문자전'의 주인공 광문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달문은 청계천 수표교 거지패 왕초이며 광대였다. 정의로운 성품과 다재다능한 재주로 역사서에 기록된 실존 인물이다. 저자는 매설가(소설가)가 꿈인 인삼가게 주인 모독의 눈으로 조선시대 서민들의 궁핍한 삶, 탐관오리의 횡포를 이겨내고자 노력한 달문의 휴머니즘을 려냈다.


달문의 외모를 평가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광문은 외모가 추악하고, 말솜씨도 남을 감동시킬 만하지 못하며, 입이 커서 두 주먹이 들락날락했다.' 반면에 달문을 평생 사모했던 기생 운심은 달문을 이 나라 최고의 미남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움이란 바위처럼 불변하는 게 아니라 움직이며 채워 나가는 거랍니다. 잘리거나 뽑힌 나무보다 잎을 피우고 가지를 뻗는 나무가 훨씬 아름다운 법이죠. 달문 오라버니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아름다움을 채워나가는 사내는 없어요. 분명히 더럽고 추한 자리였는데 순간순간 뜻밖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채우니 놀라고 탄복하죠. 달문 오라버니도 자신이 그런 재주를 지녔다는 걸 알아요. 아름다움이 무엇이란 걸 아는 사내는 만 명에 한 명 될까 말까 하고, 그 아름다움을 솜씨 좋게 만드는 사내는 그걸 아는 만 명 중에서 또 한두 명이랍니다. 모독 오라버니는 이런 게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 적 없죠?"

 

달문은 비루한 거지이며 광대였지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진정한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평생 한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바람처럼 떠돌기를 원하는 사람이었지만, 어디선가 도움이 필요할 때 나타나는 '홍길동' 이었다. 소설에는 간헐적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곁들인 '열하일기'와 활빈당의 활약도, '구운몽'을 들려준다. 저자의 고전문학 전공이 빛나는 순간이다. 달문은 누군가 생판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도용해 자칫 죽음을 당할수도 있었지만 용서하는 넓은 아량을 베풀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 믿음을 중요시하는 삶 자체였다.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에 반했다.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이 멋지네.  닮고 싶은 달문이다. 외모는 말고, 성격만! 

 

달문의 삶을 소개하며 저자는 말했다. “달문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를 다시 만날지 확신하기 어렵다. 내 인생에 한없이 좋은 사람을 써야 한다면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겨울 뜨거운 촛불의 발걸음을 기억하는 독자에게 즐거움과 위로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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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08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지원을 좋아하죠 김탁환 작가가~

세실 2018-10-09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오랜만에 재미있게, 술술 읽은 소설책이었어요^^

페크pek0501 2018-10-22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세실 님도 ‘벽오금학도‘를 읽으셨군요? 저는 그 당시 이외수 작가의 팬이라서 그 당시까지 나온 소설은 대부분 읽었답니다.
우리는 닮은꼴~~ 인 것 같습니다. 읽은 책이 똑같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요...ㅋㅋ

세실 2018-10-23 10:37   좋아요 0 | URL
저 벽오금학도 읽으면서 소설 읽는 맛을 만끽했어요~~ 마치 환타지 같은^^
그니깐요. 독서취향 저격!
늘 감사합니다~~~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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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으로 미소 지어지는 사람이 있다. 유난히 까만 눈동자, 수줍게 웃는 모습이 예쁜, 조분 조분 다정한 목소리는 마냥 기대고 싶어진다.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그녀는 김살로메 작가다. 만날때면 늘 과분한 사랑으로 잠시 주춤했던 내 이기심이 부끄러워진다. 

 

내게 친언니 같은 따뜻한 사람이기에, 첫 작품 '라요하네의 우산'을 읽고 한동안 먹먹했다. 나와는 동 떨어진 평범하지 않은,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겉모습에서 느껴지는 온실 속 화초가 아닌, 어릴 적 힘들었던 기억이 내공으로 승화한 깊이가 묻어났다. "안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을 보냈다. 수몰민으로 대도시에 버려진 채 십대와 청춘을 버겁게 앓았다. 그 시절의 트라우마가 글쓰기의 자양분이 되었다. 아픈 어제가 모여 꽃핀 오늘로 거듭나는, 치유로서의 글쓰기에 매혹을 느꼈다."

 

두번째 책,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은 일천 글자 미니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따뜻한 책이다. 물론 말랑말랑한 신변잡기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녀의 일상을 엿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몽테뉴, 프로이트, 마키아벨리, 장자, 롤랑 바르트 등 묵직한 철학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호밀밭의 파수꾼, 데미안, 롤리타, 숨그네등 그녀가 애정하는 책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녀의 책 읽는 취향, 책과 삶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이야기도 참 좋다.

 

엄마가 노심초사하는 것만큼 자식들은 다급하지 않으며, 엄마가 애면글면하는 것만큼 자식들은 힘겨워하지도 않는다. 자식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빨리 크고 앞서 간다. 독립 못하는 것은 자식이 아니라 엄마이다. 자식은 잘 알아서 하는데 괜히 엄마는 뒷북을 친다. 자식의 홀로서기를 막는 가장 큰 적은 엄마가 아닌지, 자식에게서 한시라도 자유로울 수 없는 엄마, 그게 모성인 걸 어쩌란 말이냐."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불안하고 노심초사하는, 애타는 모습이 복합된 '애면글면'이라는 표현이 와 닿는다. 자식들은 알아서 공부하고,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엄마가 발목을 잡는다. 무더운 여름날, 공부하느라 애쓰는 두 아이가 안쓰럽지만 대견하게 잘 견디고 있다.   

 

"주책없이 후하게 구는 것은 사람들의 호의를 사는데는 서투른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호의를 얻을 자의 수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산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신선함과 혼란스러움을 동시에 맛보게 해주는 말이다. (중략)

 

"받아버린 것은 이미 계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은 앞으로 후대 받을 것밖에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왕은 남에게 후하게 주다가 줄 것이 없어질수록 그만큼 심복을 잃는다." 

받는다는 것에 고마운 맘이 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문제는 그 유효 기간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지나친 베풂은 사람들로 하여금 후대를 기약하게 하고, 그럼에도 착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선행을 하리라는 것. 한편으로는 호의를 기대하는 그 사람들을 잃을까봐, 주는 것조차 조절해야 하는 군주까지 있게 된다는 무섭고 서늘한 통찰. 몽테뉴의 저 한마디는 순한 사람과 탐욕스런 사람이 함께 살아가도록 운명적으로 조직화된게 인간사라는 것을 깊숙한 찌름으로 보여준다.

 

내 성격상 많이 주지도 많이 받지도 못한다. 선배에겐 밥 한끼 얻어 먹으면 커피라도 사야 하고, 후배에겐 밥을 얻어 먹으면 불편해 다음에 꼭 사야 한다. 특히 후배에게 커피 쿠폰이라도 받으면 커피 쿠폰에 얹어 케잌 쿠폰이라도 보내야 편하다. 가끔계획에 없는(?) 선물을 받으면 좌불안석이다. 언젠가 갚아야 한다는 기브 앤 테이크 심리가 작용한다. 지금도 머리속에 아직 보내지 못한 리스트가 맴돈다. 어쩌면 무심한 친구의 말처럼 안주고 안받기가 편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성격은 받는 것도 좋아하고, 주는 것도 좋아는지라....지나치지 않는 절제가 필요할듯.

 

제대로 읽는다는 명분하에 내게 눈도장 찍힌 책들은 대개 지저분해져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에 매료된 상태에서는 밑줄 긋지 않을 수 없고, 책갈피를 접는 것도 모자라 옮겨 적고 싶은 구절엔 별표들이 넘쳐난다. 책이 더러워진만큼 애정의 강도가 높아졌다고나 할까.

빨리 읽고 많이 읽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적게 읽더라도 깊게 다가와 읽는 이의 영혼을 한 방 때려줄 수 있는 서늘함, 그것이 제대로 된 읽기이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책을 읽을 때 밑줄 긋고, 별표들이 넘쳐나는 느낌을 안다. 책이 좋아 다른 이에게 추천하고, 독서모임에 포함하면 세 번 읽게된다. 물론 두번째 읽을때는 밑줄 그은 내용 위주로 읽는다. 책을 덮고 밑줄 그은 내용중 기억하고 싶은 구절은 노트에 옮겨 적으면 가끔 떠오른다. 다독보다 정독의 중요함을 새삼 느낀다.

 

김살로메 작가는 성실하다. 거의 매일 일천 글자 쓰기를 실천한 정성을 안다. 새벽에 깨어 고요한 시간에 글쓰기는 얼마나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일까. 그녀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즐길줄 안다. 에세이는 일천 글자의 단아함과 절제, 적재적소에 맞는 문장, 책 이야기로 가득하다. 술술 읽히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무더운 여름날, 열심히 펌프질해서 끌어 올린 물 한 사발, 몸속까지 시원해지는 청량함을 가득 담은 사이다 같은 책, 작가다.

 

다음주 목요일 포은중앙도서관에서 그녀를 위한 강연이 열린다. 하루 연가 내고 가급적 참석하려 한다. 우리가 만난지 벌써 2년 6개월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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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7-01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리뷰 정말 좋아요. 담아야할 걸 다 담는 리뷰예요. 저도 읽어볼게요!

세실 2018-07-01 21:21   좋아요 0 | URL
어머 다락방님 칭찬에 춤추고
싶어요~~감사합니다^^
이 책 강추합니다!
청주엔 하루종일 많은 비가 내려요. 비 피해는 없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프레이야 2018-07-02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주 비피해 없기를. 목요일 봐요~

세실 2018-07-02 22:20   좋아요 0 | URL
다행히 소강상태랍니다^^
목요일 뵈요~~ 2년 반만에^^

라로 2018-07-02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몽테뉴 수상록 얘기는 나도 읽으면서 뜨끔했어~~~ㅎㅎㅎㅎㅎ.
내 얘기 같아서~~~.ㅋㅋㅋ
암튼 다락방님 말처럼 자기 리뷰는 정말 좋아! 뭐 물론 내가 늘 한 말이긴 하지만~~~.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나도 거의 다 읽어가고 있는데 막바지에 접어드니 좀 아쉽네.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암튼 목욜 모임 즐거운 시간 되길!!! 내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세실 2018-07-02 22:26   좋아요 1 | URL
몽테뉴 수상록...
정 많으신 언니ㅎㅎ
과하지 않은 베품 좋아요^^
책과 삶의 자연스러운 연결고리가 특히 좋은 책.
칭찬은 저를 춤 추게 해요. 늘 감사드려요~~
여운이 길게 남는 책!
이 기회에 언니도 확 와요~~ 내일 출발? 에구 보고싶어라~
기회 되면 호미곶도 가면 좋겠다. 바다 본지 두 달 넘었어용^^

다크아이즈 2018-07-02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리뷰인 글이네요 애정 넘치고 꼼꼼한 리뷰 고맙습니다~~

세실 2018-07-02 22:27   좋아요 0 | URL
다크님 무슨 그런 겸손하신 말씀을~~
책 참 좋아요.
정갈하고 간결하면서 깊이 있어요~
목욜 뵈요^^
끝나고 호미곶 가요.

다크아이즈 2018-07-02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호미곶 좋아요, 갑시다 ㅋ

세실 2018-07-03 23:56   좋아요 0 | URL
콜!
팜언니 사랑해요~~
술 마셔서 그러는거 아님. 진심~~♡♡♡♡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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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고흐 미술관에 다녀왔다. 넓은 담광장을 지나면 보이는 아담한 미술관에 들어서며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인상적인 그림은 해바라기, 꽃 피는 아몬드나무, 고흐의 방이었다. 그리고 마음에서 잊혀졌다.

 

도서관 인문도서 코너에서 반고흐, 영혼의 편지(빈센트 반 고흐 저.예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고흐의 후원자이며 동반자였던 네 살 어린 동생 테오와 주고 받았던 편지를 모아 엮었다. 내가 기억하는 고흐는 40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생애를 살면서 지독한 가난과 고독, 병마에 시달렸던 불운의 화가였다. 형을 평생 보살펴야했던 동생 테오에 대한 연민도 있었다. 정작 고흐의 마음은 들여다보지 못했다. 책을 읽고 나니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에 감탄하며 연민이 밀려왔다. 고흐 미술관에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미술관에 하루 종일 머물며 그림을 찬찬히 보고 싶다. 미술관 가기 전 이 책을 읽고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 안에서 전에는 찾지 못했던 색채의 힘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그건 아주 거대하고 강력한 어떤 것이었다.”

10년 동안 900여점의 작품을 남기며 죽기 전까지 그림을 그렸지만 생전에 팔린 유화 작품은 단 한 점이었다. 고흐는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할 만큼 그림에 빠져 살았다. 유화 물감 살 돈이 없어 데생을 그렸는데 살아있는 동안 그림이 팔렸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p.14

 

무언가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부주의해지기 쉬워서 이따금 엉뚱하거나 충격적이고, 관습과 예절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사람들이 그것을 나쁘게 받아들이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p.19

 

사람이 왜 평범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 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p.107

 

2년 전 형이 여기로 왔을 때만 해도 난 우리가 이토록 서로 의지하게 될지 몰랐단다. 하지만 이제 아파트에 나 혼자 남고보니 텅 빈 느낌이구나. 적당한 사람을 구해 함께 지낼 생각이지만, 형을 대신할 만한 사람은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형이 지식과 세상에 대한 명석한 시각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란다. 그러니 형이 더 나이 들기 전에 유명해질 거라고 확신한다. 형 덕분에 난 많은 화가들을 알게 되었지. 그들 역시 형에 대해 아주 좋게 생각한다. 형은 새로운 생각의 챔피언이거든.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생각한다면, 더 정확히 말해 낡은 생각들을 뒤집는 일의 챔피언이라 해야겠지. 평범함 때문에 퇴보했거나 그 가치를 잃어버린 생각들에 대해 말이다. 게다가 형은 항상 남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란다.         p.161 

 

 

이번에 그린 작품은 나의 방이다. 여기서만은 색채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것을 단순화하면서 방에 더 많은 스타일을 주었고, 전체적으로 휴식이나 수면의 인상을 주고 싶었다. 사실 이 그림을 어떻게 보는가는 마음 상태와 상상력에 달려 있다.

벽은 창백한 보라색이고, 바닥에는 붉은 타일이 깔려 있다. 침대의 나무 부분과 의자는 신선한 버터 같은 노란색이고, 시트와 베개는 라임의 밝은 녹색, 담요는 진홍색이다. 창문은 녹색, 세면대는 오렌지색, 세숫대야는 파란색이다. 그리고 문은 라일락색. 

그게 전부다. 문이 닫힌 이 방에서는 다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가구를 그리는 선이 완강한 것은 침해받지 않는 휴식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벽에는 초상화와 거울, 수건, 약간의 옷이 걸려 있다. 그림 안에 흰색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테두리는 흰색이 좋겠지.

이 그림은 내가 강제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데 대한 일종의 복수로 그렸다.          p.214 

 

자신을 새장에 갇힌 새로 표현한 고흐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테오에게 의지했고,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했다. 고갱과의 관계에서 우발적으로 귀를 자른 것도 외로움의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며 선물한 그림꽃이 활짝 핀 아몬드 나무’, 푸른색과 노란색의 조합이 부드럽고 매혹적이라고 표현한 아를의 포럼 광장에 있는 밤의 카페 테라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참 따뜻했다. 불꽃같은 그림에 대한 열정과 부단한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고흐가 사랑한 마을 남프랑스 아를에 가고 싶다. 그가 서성대던 해질녘 카페거리, 론 강변, 고즈넉한 아를 골목을 거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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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5-10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테오와의 편지가 포함되어 있는 책을 읽었습니다. 출판사는 다른 책에서.
고흐가 예술가라서 그런지 글을 잘 쓰는구나, 생각하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직 예술에만 몰두하며 사는 삶은 어떤 것인지 헤아려 보게 되네요.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은 저절로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재능과 노력의 함수 관계가 궁금해지네요...

세실 2018-05-11 20:15   좋아요 0 | URL
저도 고흐가 글을 이리도 잘 쓰는지 이책 통해서 알았습니다.
천재지요...
단순하게,
세상과 무심하게 살아야 할듯 합니다.
최저 생계비로...
밥 먹는 시간과 잠 사는 시간도 아까웠다니..감이 오지 않아요.
재능과 노력이 교집합일때 빛을 바라겠지요?
평범한 사람은 중간. 저처럼요.ㅎ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 자연을 닮은 시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에 다녀왔다. 두 분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 주셨다. 평소에 자주 걸으셔서 성큼성큼 앞서 나가고 다리 아픈 내색도 하지 않으셨다. 수줍은 신혼부부처럼 손 꼭 잡고 하트도 날리며 사진 찍어달라고 하셨다. 꽃향기 맡으며 감탄사를 쉴 새 없이 날리는 엄마는 마냥 소녀 같으셨다. 한 달에 한번 모시고 다녀야지 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우연히 정호승 시인의 동시집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를 펼쳤는데 시인의 말이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잠시 엄마 품에 안겨 잠들어보세요. 그동안 참았던 서러움의 눈물이 다 녹아내리고 세상을 살아갈 힘과 사랑을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엄마 무릎에 대고 누워 잠든 적이 언제였을까? 엄마랑 나란히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던 때가 언제였을까? 내가 힘들 때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힘을 주시는 분은 늘 엄마였다. 어릴 적 엄마는 수챗구멍에 뜨거운 물을 붓지 못하게 하셨다. 하수구에 사는 생물들이 놀란다는 이유였다. 또한 밥을 드실 때마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먹을 밥은 남겨 놓으셨다. 밥이 부족해 엄마가 덜 드시는 날도 있었다


 “엄마를 따라 산길을 가다가/무심코 솔잎을 한 움큼 뽑아 길에 뿌렸다/그러자 엄마가 갑자기 화난 목소리로/호승아 하고 나를 부르더니/내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겼다/니는 누가 니 머리카락을 갑자기 뽑으면 안 아프겠나/말은 못 하지만 이 소나무가 얼마나 아프겠노/앞으로는 이런 나무들도 니 몸 아끼듯이 해라/, 알았심더/나는 난생 처음 엄마한테 꾸중을 듣고/눈물이 글썽했다.”

 

부모님은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꽃 한 송이 꺾지 않으셨고, 다른 사람이 힘들게 농사지은 고구마 한 톨 탐하지 않으셨다. 삶 속에서 남을 배려하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법을 자연스럽게 보여 주셨다.

동시를 읽으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유년시절의 추억도 떠올리게 된다. 시인의 말처럼 동시를 읽으며 잠시 어린이가 되어도 좋다. 이 시집은 특히 어른이 읽으면 좋을 글이 가득하다

    

사계절의 시작 이라는 단어는 ‘~을 보다에서 어원 했다고 한다. 산과 들, 주변에 피어난 꽃, 연두 빛 나뭇잎을 많이 보라는 의미에서 봄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오늘은 어버이날! 더 늦기 전에 부모님 모시고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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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5-04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실!! 뭉클하다. 👍

세실 2018-05-05 08:15   좋아요 0 | URL
어제 정현이가 학원에서 쓴 어버이날 편지 받고는 울컥했네요.
생각이 참 많은 아이...
내리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페크pek0501 2018-05-07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 적 엄마는 수챗구멍에 뜨거운 물을 붓지 못하게 하셨다. 하수구에 사는 생물들이 놀란다는 이유였다.˝
- 저는 생각 못했어요. 부엌 개수대와 수세미를 소독한답시고 뜨거운 물을 마구 부었어요.
자기도 모르게 짓는 인간의 죄란 얼마나 많을까요?

세실 2018-05-09 19:43   좋아요 0 | URL
요즘 일회용 쓰지 않기 하는중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
우리 부모님들은 대부분 법 없이도 사실 분들이죠.
개수대 소독은 베이킹파우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