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신화는 언제나 외모가 아니라 실은 행동을 처방하려고 했다. 여성끼리의 경쟁이 신화의 일부가 된 것도 여성을 서로 분열시키기 위해서였다. 여성이 젊고 처녀라면 "아름다운" 것은 경험이 부족하고 성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성이 나이 들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여성의 힘이 강해지기 때문이고, 그래서 여성의 세대 간 연결을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 P36

우리는여성이 언제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을 거라고 가정하지만, 그러한 가정의 대부분은 아무리 멀리 잡아도 1830년대에 나온 것이다. 이때 처음 따뜻한 가정을 찬양하고 숭배하는 열풍이 일어났고 아름다움의 지표가 만들어졌다. - P37

한 경제학자는 만일 당신이 여성이라면 "노년에 가난할 확률이 60퍼센트다" 103라고 한다. 미국 여성 노인의 평균 소득은 남성 노인의 평균 소득의 58퍼센트였다.104 영국에서도 외로운 여성 노인이 외로운 남 성 노인보다 네 배 많고, 이 가운데 소득 보조금이 필요한 여성은 남성보다 두 배 많다.105 서독에서도 은퇴한 여성들이 거의 연금을 반밖에 받지 못한다.106 미국에서는 은퇴한 여성의 20퍼센트만 개인연금이 있다.107 전 세계적으로도 여성 임금노동자의 6퍼만센트만 2000년에 연금을 받는다.108 우리 문화에서 여성 노인이 되는것이 두렵다면, 그저 안색이 나빠지는 탓만이 아니다. 여성이 PBQ에 매달리는 것은 그것의 위협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평생 열심히 일하느니 젊어서 교환가치가 가장 높을 때 자신의 성적 매력에 투자하는 편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 P96

흔히 잡지를 폄하하지만 잡지가 아주 중요한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성의 대중문화다. 여성지는 그냥 잡지가 아니다. 여성 독자와 여성지의 관계는 남성 독자와 남성지의 관계와 사뭇 다르다. 둘을 하나의 범주에 넣을 수 없을 정도다. 파퓰러메카닉스Popular Mechanics)나<뉴스위크>를 읽는 남성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문화, 일반적으로 남성 지향적인 그런 문화가 가진 수많은 시각 가운데 하나를 그냥 가볍게 볼 뿐이다. 그러나 <글래머>를 읽는 여성은 손이 여성 지향적인 대중문화를 들고 있다. - P120

남성도 이런 여성의 종교에 경외심을 느낀다. "아름다움"에 토대를 둔 카스트 제도가 마치 영원한 진리에서 비롯된 것인 양 그것을 옹호한다. 다른 것에서는 이런 종류의 무조건적 믿음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것은 당연하게 여긴다. 20세기 들어 진리가 상대적이고 인식이 주관적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다른 분야의 생각들은 대부분 크게 바뀌었다. 그러나 "아름다움" 의 카스트 제도는 양자물리학을 연구하고 민족학을 연구하고 시민의 권리에 관한 법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옳고 영원할 거라고 믿는다. 무신론자도, TV 뉴스에 회의적인 사람도, 지구가 일주일 만에 창조되었다고 믿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신조처럼 무비판적으로 믿는다. - P146

남성은 어떤 여성이든 그 아름다움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만 자신에게는 판단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신내린 권리로 여긴다. 그리고 그런 권리가 남성 문화에 그렇게 중요한 권리가 된 것은, 예전에 존재하던 남성의 특권 가운데 지금도 검토되지 않고 온전히 남은 유일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신이나 자연 또는어떤 절대적 권위자가 모든 여성에게 행사하도록 모든 남성에게 주었다고 일반적으로 믿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에게 행사한 다른 권리, 즉 여성을 통제하는 다른 길을 영원히 잃은 지금, 그에 대한보상으로 그런 권리를 한층 가혹하게 날마다 행사하는 것이다. - P147

산업혁명 뒤 여성이 "분리된 영역"으로 쫓겨나면서 종교적·영적인 것은 여성적인 것이 되었다. 이는 다시 중산층 여성이 공적생활과 분리된 것을 정당화했다. - P152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신앙심도 아름다움의 의식과 마찬가지로 이중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그것은 남성 지배적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교육받은 한가한 중산층 여성이 반란에 에너지를 쓰지 못하도록 하여 오히려 이익이 되게 해주었다. 그리고 여성의 관점에서 그것은 경제적으로 생산적이지 않은 그들의 삶에 의미를 주었다. - P153

현실의 남성은 무광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말이기 때문에 외모가 말을 가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여성은 지위에 관계없이 모두 반짝거린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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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best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은 Laurie, Sarah, Jack, Oscar 이렇게 네 명이다. 이들의 관계를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복잡할 게 없는 관계여서 너무 간단하다고 생각한 나는, 죄송하게도 보부아르를 떠올린다. 『보부아르, 여성의 탄생』을 읽으면서 인물 관계를 정리한다는 게, 하다 보니 사랑의 화살표 대잔치가 되어 버렸다.

 

















다시 이 책으로 돌아와서. 로리의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로리는 이렇게 쓴다.

 


She came running, panic-stricken, as soon as I yelled, as if some sixth sense had alerted her to the fact that the love of her life was in trouble. (310p)

 


열다섯 살 때부터 함께 했던 두 사람은 이제 헤어진다. 한 사람은 다른 세계를 향해 떠났다. 인사도 없이, 아무런 준비 없이 그렇게 이별을 맞이한다. love of my life는 한 사람이어야 할까. 두 사람일 수 있을까. 아니, love of my life는 정말 가능할까. 가능한 일일까.  마리 루티는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사랑을 지속성과 동일시하도록 훈련받는다. 어느 정도냐 하면, 우리는 지속되는 관계가 우리를 아무리 비참하게 만들지라도 그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우리는 지속되지 않는 관계는 아무리 즐겁다 해도 - 아무리 생기 있고, 활력이 넘치고, 자신을 탈바꿈시키는 경험이라 해도 실패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장기적인 안정과 결부시키는 성향은 우리 마음속에 너무도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사람들은 감히 그 대안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250)

 


우리가 아는 모든 이야기의 끝이 해피엔딩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랑을 장기적인 안정과 결부시키는 이런 성향은 우리 마음속에 너무도 깊이 뿌리 박혀 있어, 드라마 종영이 가까워질 때 시청자들은 당당히 해피엔딩을 요구하고, 작가는 스토리를 수정해 주인공인 두 사람을 오래오래 행복하게 함께 살게 한다’. 그 이야기는 우리가 모르는 채로 영원히 남겨져있다. 정확히는 숨겨져 있다.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 가장 완벽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라 생각했다. 이루어지지 않은 혼자만의 사랑. 완성되지 않은 사랑. 짝사랑. 오직 그런 사랑만이 손상되지 않은 채로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산소가 없으니 부패할 수 없다고 믿었다. 섹스만이 그 절정이라고 단언하는 건 아니지만, 상승 곡선의 어느 지점에서 섹스라는 정점을 찍은 사랑에게 남은 건 파국뿐이라고 생각했다. 친애하는 알라딘 이웃이 <second best>라는 페이퍼에서 쓴 것과 같은 이유다.

 


만약 내가 그 날 나의 욕망에 굴복해 그랑 잔다면 그 날은 그와 나의 첫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이 될거라고 나는 생각한거다. 나는 그렇게 한 번 자고 잊혀지는 여자가 되는게 너무 싫었다. 나는 계속 만나고 싶었다. 우리는 그 후에도 몇 번 더 만났고 번번이 그는 나에게 끌림을 이야기했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야' 라고 말하면서도 함께 밤을 보내지 않은 건 나의 그런 마음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자면 끝장이다, 그게 바로 관계의 끝이다. <second best, from 다락방님 서재>

 


소설 속에서 로리와 오스카는 결혼한다. 사랑의 결실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결국 결혼이라는 공인된 사회적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그 사람은 이제 그녀의 남편이 되었고, 그녀는 이제 그의 아내가 되었다. 로리의 이름이 바뀌고 두 사람은 그렇게 함께 산다. 그렇다면, 그렇다고 한다면 이제 두 사람은 각자에게 love of my life라고 할 수 있을까.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는 사랑이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억압적인 요소가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동거는 다른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내가 사랑하는 책 『The Love Hypothesis』에서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Sleeping in the same room meant seeing embarrassing pajamas, taking turns to use the bathroom, hearing the swish of someone trying to find a comfortable position under the sheets loud and clear in the dark. Sleeping in the same room meant – No, Nope. It was a terrible idea. (209)

 


특히 ‘taking turns to use the bathroom’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나는 이 대목의 한글 버전을 알고 있다. 『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이다.



 













근데 그 사랑하는 사람과 나흘 이상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비비고 똥 교대로 싸고 하면 이 몰아, 접신의 경지가 매우 훼손되는 것이다. 한계점은 3일 정도다. 생선도 손님도 사흘 지나면 냄새가 난다. (56)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렇다. 사랑은 깨지기 너무 쉬운 상태이고,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다. 언젠가, 반드시 변하기 마련이고, 그리고는 돌아보지 않은 채 그렇게 제 길로 간다. 변하지 않은 사랑이라는 게 가능한가. love of my life는 가능한가. 사랑은, 사랑은 정말 실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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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2-02-20 0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情이 되는 걸까요?;;; 아마도?

단발머리 2022-02-20 12:34   좋아요 1 | URL
저... 어제밤에 이렇게 써놓고서 그러게 답이 뭘까? 했거든요. 유부만두님 댓글이 정답인가 봐요. 답은 정(정, 한자)입니다.
정과 참깨스틱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유부만두 2022-02-20 12:43   좋아요 1 | URL
참깨스틱 댓글 지웠는데 보셨군요 ㅋㅋㅋ

단발머리 2022-02-20 12:5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암요암요 저 어제부터 강냉이 먹고 있는데 급 마음이 참깨스틱에게로 가고 있다죠! 🏃🏻‍♀️🏃🏻‍♀️🏃🏻‍♀️

수이 2022-02-20 1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실재한다고 보지만 몸 섞고 마음 섞고 그렇게 해서 보다 더 나아가는 연인 관계는 그다지 많이 실재한다고 보지 않아요. 에 그리고 [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 인용구 들고 문득 든 생각은 역시 주말 부부가 답인가 갸우뚱입니다. 주말 부부로 30년을 살다가 각자 은퇴하고 노년에 24시간 365일 내내 붙어 살아가는 노년 부부의 삶을 살다가 이러다가 우리 둘 다 죽겠다 숨 막혀서 라고 황혼 이혼하신 어느 커플이 떠올랐습니다. 오바.

단발머리 2022-02-20 13:17   좋아요 2 | URL
서로간의 거리와 공간이 필요한 거 같기는 해요. 멀었던 거리가 갑자기 좁혀졌을 때 우리가 인간인 이상... 싫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외가 있기는 한데, 모두 소설에 나오는 인간들이죠. 이를 테면 <The Love Hypothesis>의 애덤이나 <검은 꽃>의 연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2-02-20 15:33   좋아요 2 | URL
1억 명의 커플 중 한 커플로 예상되는 수치입니다 ㅋㅋㅋ

다락방 2022-02-20 2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번주 분량 읽으면서 오스카는 역시 세컨드 베스트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최고의 상대와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제일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지 않나 싶었고요. 로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동안 가장 함께 오래 지낸 친구인 사라보다 더 먼저 잭에게 연락하죠. 물론 잭은 이미 그 상실감을 알고 있다고 하긴 하지만, 로리는 그 순간 잭이 필요했던 거예요. 아직 장례식장에 오지 않은, 심지어 내일 오게될 남편보다 더요. 어쩌면 대부분의 인간은 가장 소중한 인연은 저기 어디 밀어둔채로 그보다 덜 소중한 존재를 옆에 두며 살아가는게 아닐까, 역시 사랑은 이기적이다, 생각했어요.

아, 페이퍼 쓰러 가야겠네요.

단발머리 2022-02-21 14:1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페이퍼 보고 왔어요. 세컨드 베스트의 주체를 서로 다르게 보고 있다는 걸 전, 확인했습니다 ㅎㅎㅎ 사랑은 이기적이고, 곁에 있던, 곁에 있지 않던, 사랑이라는 그 어떤 생각, 태도, 감정도 퇴색하기 마련이니까요.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겠다, 전 그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다락방님, 오늘도 열일하세요!!!

공쟝쟝 2022-02-23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인지 보부아르 관계도는....... ㅋㅋㅋ 볼때 마다 빵 터진다능.... 으잉?! 하게 되는 지점...

단발머리 2022-03-04 23:12   좋아요 0 | URL
보부아르님 체력도 좋으셨나봐요. 책 쓰시랴 강의 하시랴 사랑 하시랴.... 무척 바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뉴욕규림일기



저자가 뉴욕을 여행하면서 겪은 일을 기록한 책이다. 간단한 스케치와 영수증, 그리고 짧은 글로 이루어진 책이다. 유쾌하고 재미있다. 이렇게 뉴욕 곳곳을 여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생각한다.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은 뉴욕공립도서관과 센트럴 파크.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런 꿈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2. James and the Giant Peach



뉴욕 이야기 2. 너투브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플레이타임 2시간 29, 재생속도 1.25. 주인공은 James이고 Peach로 인해 인생이 바뀌니까, Peach가 중요하다. 방임하고 학대하는 두 명의 고모에게서 도망치고, 망망대해를 건너, 상어의 공격을 피해, Earthworm을 미끼로 삼아 갈매기의 도움으로 Giant Peach를 타고 도착한 그 곳. 파라다이스, 천국, 유토피아, 꿈의 이상향이 미국 뉴욕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하긴 다른 곳을 상상하려고 해도 그런 곳이 없기는 하다. 기회의 땅 미국에서 지네, 지렁이, 메뚜기, glow-worm(개똥벌레 유충), 거미, 무당벌레, 누에는 모두 재취업에 성공한다. 미국이야말로 진정한 'A Promised Land'. James Giant Peach에 대한 모험담을 계속 들려 달라는 요청에 책을 쓰게 되는데, 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을 써서 셀럽이 된 게 아니라, 셀럽이 책을 쓰는 현실과도 비슷하다.


예전에 읽을 때는 '역경 - 희망 - 탈출 - 꿈의 실현', 즉 모험담으로서의 줄거리만 보였다면, 이번에 읽을 때는 중간중간 나오는 노래가 재미있었다. 이를테면, Centipede가 몸에 묻었던 페인트가 지워져 다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기쁨에 차서 불렀던 이런 노래.







셰익스피어 읽을 때 몰랐던 rhyme의 기막힌 즐거움을, 난 여기에서 찾았다.

 

















3. 페미니즘 정치사상사


 

읽지 않았는데 어김없이 찾아오는 반납 기일. 전날 헐레벌떡 읽기 시작해 딱 한 챕터 읽었다. <한나 아렌트와 페미니즘 정치학>.

 


그녀는 "우리가 진정으로 행하는 것은 무엇인지 사색"하려면 활동적 삶을 재성찰할 뿐만 아니라, 젠더가 활동적 삶과 연관되는 방법까지 설명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결국인간의 조건』은 포괄적인 해방의 기획이 되지 못했다. 그녀는 공적/사적 영역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으나, 젠더에 무지했던 탓에 이 영역들이 역사적으로 여성의 종속을 강화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동시대의 소외를 분석하면서 자유에만 주목했기 때문에 여성이 공적 세계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찰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그녀는 자신의 정치이론에 내재된 남성중심주의 탓에 자신이 우리에게 설명하려 했던 인간의 조건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었던 셈이다. (384)

 


한나 아렌트의 의도 저 너머를 살피려는, 살펴보려는 저자의 노력이 아무리 눈물겹다 해도, 결론은 아렌트는 그 부분에 대해 무지했다는 이야기 아닌가. 아렌트는 그리스 시대에 보이지 않았던 여성의 존재를,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했던 건 아닌가. 그렇게 굳게 믿었던 건 아닌가. 천천히 읽어야 할 책이라 구매하려 했더니 절판된 책이란다. 다시 대출해야 한다. 이런.

 
















4.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2,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3

 


아껴서 읽는 사기 시리즈. 외롭고 힘들 때, 꿀꿀하고 적적할 때, 읽고 있는 책이 어려울 때. 이 시리즈를 꺼내 읽는다. 곶감 아끼듯이 아껴보았으나, 벌써 3권째. 평생을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했는데, 철천지원수가 눈을 감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 오자서의 마음은 어땠을까. 마음속 깊은 한을 결국 풀어내지 못한 인생.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억울하고 서럽고 답답하고 구슬픈. 인생을 구성하는 주된 감정은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얼마큼 불쌍하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도 이런 유머에 사로잡히는 나. 이런 내가 싫다.

 


















5. 요즘 읽는 책

 


『People we meet on vacation』은 겨울이라서 여름 기분 내려고 읽는 책이고, 『One day in December』는 친구들이랑 한 주에 2-3챕터씩 읽고 있다. 요즘 재미있는 책은 암소 숭배, 돼지 혐오가 나오는문화의 수수께끼』이고, 페이퍼 5개가 밀려 있는 책은 『인종 토크』.

 

읽는 건 조금씩이라도 읽고 있는데 쓰는 건 잘 안 된다. 개인적으로 심란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밤낮으로 나라 걱정. 전혀 쓸데없다는 나라 걱정을 밤낮으로 하고 있다. 설마, 했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던 기억, 어제처럼 선명한 기억들이 자꾸 떠오른다.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던 그 날, 6 00분의 그 암울했던 순간이 머리에 스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번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가 모두 마음에 안 들고, 찍을 사람이 하나도 없고, 누가 대통령이 돼도 상관이 없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에 대한 호의, 나에 대한 관심, 나에 대한 생각, 나에 대한 그 모든 것을 다 모아 모아, 3 9일에 현명한 선택을 강권하고 싶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말고. 그분들에게는 그분들의 또 다른 세계가, 무속의 새 하늘이 펼쳐질 것이다. 상관 없다는 사람.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 없다는 사람. 그 누구에게나 부탁하고 싶어진다. 윤석열이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검찰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언론 파산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안 되잖아요. 당신보다 무식한 사람은 안 되잖아요.

 


그래서. 명단을 작성하고 있다. 전화를 돌려야지. 조용히 살고자 하는 나는, 또 그렇게 통화 버튼을 누르고. 이건 안 되잖아요. 아니잖아요.

 


나도 책 읽고 싶다. 전화 돌리기 싫다. 부탁하는 말, 하기 싫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듣고 싶지 않다. 책 읽고 싶다. 우아하게 혹은 차분하게. 책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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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2-19 08: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유머는 너무 고퀄?이라서....이런 상황,저런 상황에서도 그냥 풉~하고 웃어주고야 마는 너무나 선한 유머감각!!^^
단발머리님은 그런 자신이 싫다고 하셔도 저는 또 그런 선한 유머를 가진 단발머리님이 넘 사랑스러운 거 있죠?ㅋㅋㅋ
선거는....아, 또 잠 못이루고 계신 거죠??
설마...했던 걱정들이 요즘 생각만 하면, 잠을 못이룰 정도로 걱정되고 불안하네요ㅜㅜ
제가 아침마다 기도하고 있으니...잘 되겠죠?? 잘 될껍니다....잘 되어야 될텐데...
잘된다!!잘된다!!!

단발머리 2022-02-19 09:11   좋아요 4 | URL
저, 저 책 저 페이지 펼쳐서 식구들 다 보여줬는데 다들 심드렁해가지고 ㅋㅋㅋㅋ 웃기지 않냐고 조금 강요하고 그랬습니다^^

저도 아침마다 기도하고 있어요. 오늘부터는 밤에도 기도할거에요. 거기는 무속이랑 신천지랑 합작이더라구요.
책나무님도 넘 걱정하지 마시구요. 이번주에 친구 만났는데 ‘샤이 이재명‘이라고 하더라구요. 희망이 있어요, 아직은요!!!!!!!!!

기억의집 2022-02-19 10: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월의 뉴욕 가보고 싶어요. 하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일단 접고 유툽의 하루데이라는 분 보면서 달래는 중입니다.

원서… 읽어야지 하면서도 안 되네요.

나라걱정에 저도 하루종일 뭐가 안 잡힙니다. 요즘 애들 말로 열심히 밭 갈아 겠어요 근데 주변에 윤 찍겠다는 분이 그렇게 많지 않던데.. 도대체 여론조사는 왜 그렇게 높게나오는지 알다가도모를 일입니다!!!

단발머리 2022-02-19 10:49   좋아요 2 | URL
바로 ‘하루데이‘ 검색 들어갑니다. 요즘은 브이로그가 너무 잘 나와요. 설정이라는 면을 부인할 수 없지만. 암튼 보여지는 모습들은 넘 근사하더라구요.

원서는... 전 친구들이랑 같이 읽어서 조금씩 읽고 있는데, 오디오북 틀어놓고 읽으니 속도가 붙더라구요. 속속들이 공부하겠다 그런 생각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주변에 윤 찍는다는 분 계시는데, 부끄러워 하기는 하세요. 부끄러운 사람이 왜 이렇게 지지율이 높은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근데 트럼프 힐러리 때도 선거 당일에도 힐러리 당선확률 98퍼센트라 했잖아요. 전, 구글 트렌드랑 바닥 민심을 믿어보려고요. 아, 그리고 샤이 이재명도요!!!

기억의집 2022-02-19 10: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첫번째 뉴욕규림의 그림 넘 아기자기하고 귀여워요!! 제 스탈입니다~

단발머리 2022-02-19 10:50   좋아요 2 | URL
그림이, 컴퓨터용 수성 싸이펜으로 슥슥 그린것 같고요. 뒤에 글만 나오는 페이지도 있는데 거기도 그 펜으로 쓴 듯 두꺼운 필체가 특징입니다. 그림도 마음에 드시고 뉴욕도 좋아하신다면 강추입니다 ㅎㅎㅎㅎㅎㅎ

기억의집 2022-02-19 10:51   좋아요 3 | URL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단발머리 2022-02-19 10:53   좋아요 2 | URL
아주 좋은 선택입니다, 기억의집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ini74 2022-02-19 1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 쓱쓱 그려진 듯한 그림도 내용도 재미있네요 제임스와 복숭아, 책도 좋고 영화도 재미있게 봤어요. 아이랑 참 좋아했지요.
전 이미 이 동네에선 빨갱이라 ㅠㅠ

단발머리 2022-02-19 10:53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 그냥 슥슥 그린것 같은데 느낌이 있어서 좋아요. 글도 좋구요. 자유여행이라 막 여기여기 꼭 가야지 그런 것보다는 구경하다가 아이스크림 사 먹고 카페 가서 놀고 그런 모습들이 참 좋았어요. 아!! 특히 문구점 투어도 자주 하는데 그 부분도 재미있고요.

이미 빨갱이신 분이라면 설득에 어려움 있을 것 같아요. 저도 항상 조심하면서 슬슬 이야기를 꺼내고.... 참 어려운 일이에요.

페넬로페 2022-02-19 11: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화를 돌리시는 이 거국적 애정과 용기, 실천력!
전 그저 무력감에 빠져듭니다.
세상과 사람들이 어찌 이리 이기적이고
또 무지한지요!
이러다 나라가 망할것 같아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단발머리 2022-02-19 11:31   좋아요 3 | URL
거국적 애정과 용기, 실천력이라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ㅠㅠ 페넬로페님!!
얼마 전에 친구 1에게 슬쩍 이야기를 꺼냈더니, 아... 찍을 사람이 없다고... 그래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더니 친구 2가 그래도 윤석열은 아니다, 넘 무식하다, 그러는 거에요. 더 이야기를 나눠보니 일단 친구 1은 이재명 쪽으로 간 상태입니다. 우리는 왜 우리의 지지를 부끄러워하나요ㅠㅠㅠ
어제 아빠 생파에서는 이모에게 작전 들어갔는데, 심상정 좋으시다고 하셔서... 네, 이모 맞아요. 하면서, 제가 최근에 개발한 기술 들어갔는데, 이모가... 그래그래, 윤석열은 아닌데... 그러나, 아시나요? 윤석열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들 투표할 모양이에요. 그럼 어째야 하죠? 이재명을 찍어야 이재명이 되는 거에요. 아.... 슬프다. 숯불갈비와 회냉면 사이사이 대화는 이어지고. 다시 한 번 확인 전화 해야할 것 같아요.

전, 윤석열의 족발열차와 어퍼컷, 적폐 수사 발언, 신천지 및 언론과의 유착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복수를 원하는 마음 일면 이해도 되고요. 결국 이쪽에서도 힘을 모으는 수밖에 없는데....

저, 왜 유명한 사람 아니에요, 페넬로페님? ㅠㅠㅠㅠㅠㅠㅠ 저도 지지선언 하고 있단 말이에요 ㅠㅠㅠ

수이 2022-02-19 11: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뉴욕규림일기 챙겨가면서 이토록 열심히 활동하시는데 우리 한 마음 그대로 그렇게 제발 좋은 결과 나오기를 고대해봅니다. 샤이하게 저도 활동해봐야겠습니다.

단발머리 2022-02-19 20:35   좋아요 0 | URL
샤이하고 스므스하게 부탁드려요. 비타님 좋아하는 친구들 있잖아요. 막 비타님 좋아하고 비타님 말이라면 잘 믿어주는 친구들이요. 그런 친구들에게는.... 내 부탁 이거 하나, 못 들어줘? 뭐, 이런 방법도 있겠습니다. 흐미 ㅠㅠㅠㅠ

얄라알라 2022-02-19 11: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등학교 동창에게 오랜만에 연락 받았는데, 친구 역시 단발머리님과 같은 뜨거운 마음을 한 걸음이나마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였더라고요. 정작 저도, 불안 불안, 설마설마, 트럼프-힐러리 때...., 설마 경악, 하면서도 작은 행동도 한 게 없네요


* 저도 어제 새벽에 <만화가의 여행> 읽으면서, 저자가 유럽과 모로코 여행하며 그림 그린 걸 봤는데 뉴욕규림일기와도 겹치네요^^ 규림일기도 찾아볼게요^^ 감사드려요

단발머리 2022-02-19 20:36   좋아요 1 | URL
그 친구 참 용기 있는 친구네요. 사실, 그런 이야기 쉽지 않잖아요. 저도 안철수를 20대 후반부터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면... 참 그렇습니다.

전 <만화가의 여행> 찾아보려고요. 제 스탈일 것 같은 예감이 마구마구 듭니다^^
 





 














『The Seven Husbands of Evelyn Hugo』는 일생 말기에 회고록을 쓰려는 Evelyn Hugo의 과거와 그녀의 작업을 돕는 Monique의 현재가 겹쳐지며 서술된다. 일곱 명의 남편을 가졌던 에블린과 이혼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니크. 자신이 가진 아름다움을 통해 가난에서 탈출해 최고의 자리에 오른 에블린과 그녀가 가르쳐준 기술(?)을 토대로 더 나은 자리에 오르려는 모니크. 모니크의 제일 중요한 질문, 최종 질문은 이것이다. 7명의 남편 중에 에블린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녀의 진짜 사랑은 누구였을까. 중간 정도 읽으면 답을 알 수 있는데 알려 줄수는 없겠다

 

 


모니크가 아빠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He told me he wanted to do work that invigorated him. He said, “You have to do that, too, Monique. When you’re older. You have to find a job that makes your heart feel big instead of one that makes it feel small. OK? You promise me that? (89p)

 


heart feel big. 가슴 벅차게 하는 일이라. 자신을 작게 느끼게 하는 일 대신, 가슴 뛰게 하는 일을 하라고. 그런 일을 하라고 모니크의 아빠가 말한다. 6살의 모니크에게 약속하자고 한다.

 


어디 일만 그럴까. 가슴 뛰게 하는 사람이 있고, 펄떡이는 가슴조차 냉랭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만나면 기분 좋은 사람이 있고, 만날 때마다 기분 상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딸에게 주는 레시피』에서 공지영은 말했다. 친구와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그래, 괜찮아. 나 오늘 쫌 멋진 거 같애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친구는 좋은 친구. 친구와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초라해 보인다면 그 친구는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 할 친구. (정확히는 아니고, 대략적인 내용이 그랬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에서 잭 니콜슨은 연인에게 고백한다. ‘당신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어요.’ 결국 좋은 우정이란, 좋은 사랑이란 그런 게 아닐까. 나를 더 나은 내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힘. 내 안에 숨어있는 근사한 내 모습을 발견해 주는 힘. 그리고 그것에 대해 알려주는 힘.

 



자기 과시와 인정 욕구에 목숨을 거는 우리 인간이, 우리 사람 종이 타인에게 기대하는 건 뭘까. 정확한 상황 인식, 냉철한 사태 파악, 객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판단. 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이해와 공감, 지지와 격려가 아닐까. 그 앞에 따뜻한이 추가되면 더욱 그럴 테고.

 


heart feel big. 가슴 벅차게 만드는 사람을 만났다. 라떼를 마시고, 책 이야기를 한참 하고 나니, 가슴이 한껏 벅차올라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한참이나 숨을 가다듬어야 했다. 엘리베이터 속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근사해 보였다. 그 사람도 그랬으면, 그 사람도 그걸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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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2-02-10 04: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런 사람을 만나고 오셨다니 부러워요!

단발머리 2022-02-10 18:06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이게 웬 횡재인가 했습니다^^

책읽는나무 2022-02-10 07: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가슴 벅차게 만들어 주는 사람@.@
만남의 시간동안 책 얘기를 내내 할 수 있는 사람!!!! 독서 수준이 비슷한 사람이라 그게 가능한 사람!!!
부럽기도 하고, 왠지 어마어마한 모임인 것같아 보입니다ㅋㅋㅋ
원서 책에 대한 이야기라니....@.@
거기다 울프언니!!!!

단발머리 2022-02-10 18:08   좋아요 2 | URL
어마어마한 모임은 아닌데 책이랑 커피가 같이 있으니까 그래 보이는 것 같아요. 원서는 그림을 위해서 찬조 출연했어요 (부끄럽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사진에는 원서 아니겠습니까?
울프언니 책은 슬쩍 넘겨봤는데 번역자 이름에 혹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ini74 2022-02-10 1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라하게 만드는 친구 ㅠㅠ가끔 있죠 야 자랑할려면 돈 내고 해 하고 싶은 ㅎㅎ 무심하게 놓여진 책들이 넘 예쁩니다 ~

단발머리 2022-02-10 18:09   좋아요 1 | URL
저는 진짜 자랑 잘 들어줄 수 있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돈만 많이 내시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 예쁘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심하게 하는 것 같던데, 사실은 전문가의 손길입니다^^

다락방 2022-02-10 12: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과 커피와 디저트와 친구라니. 아 역시 행복은 가까이에 있는 거였어요!! >.<

단발머리 2022-02-10 18:11   좋아요 1 | URL
맞아요, 다락방님.
저는 좋아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 거 딱 하나만 말해보라 하면 ‘조용한 커피숍에서 커피랑 케익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거‘만 생각나요. 완전 비싼 커피, 전문가가 해준 커피 아니라고 해도 말이죠. 행복은 커피숍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2-02-10 1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라떼 마시기 전에 낮맥 마신 친구는 행복해 죽으려고 했을 거 같아요. 좋은 사람 만나고 오면 반짝반짝 빛이 나고 내가 더 예뻐지고 더 환해지고 더 건강해지는 느낌 있죠. 그 사람도 좀 알았으면 2 :)

단발머리 2022-02-10 18:12   좋아요 1 | URL
네,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더라구요. 낮맥이 주는 즐거움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반짝반짝 빛이 나고 더 예뻐지는 느낌을 제가 알고 있다는 걸, 그 친구가 안다는 걸, 제가 알고 있습니다. 푸핫!!!
 


















일반적으로 여성은 서로에게 심리적·사회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서로에게 너무 많이 바라는 경향이 있다.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하찮은 실수, 가장 사소한 실망은 종종 확대되어 분개로 이어진다. (『여성과 광기』, 35)  

 


『여성과 광기』에서 위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그녀가 말하는 바를 바로 알았다. 그녀의 이 문장이 놀라웠던 이유는, 그녀가 이야기하는 진실을 내가 모르던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이처럼 명시적으로말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페미니즘 책을 이만큼(혹은 요만큼) 읽어왔던 내가, 그 진실을 책 속의 문장으로 대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나는 적잖이 당황하고 적잖이 놀랐다.

 


가부장제는 여성이 태생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인간 남성을 기준점으로 상정하고, 여성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그에 부족한상태의 인간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부장제다.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은 노력을 통해 남성에 도달할 수 없다. 여성과 남성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생물학적 차이이기 때문이고, 자연적인 인간 여성이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성의 운명이란 자신의 한계 안에서살아가는 것일 수밖에 없다. 또한, 가부장제는 여성에게 모성을 비롯한 여성성을 강요함으로써,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정서의 극한을 요구한다. (어머니인 여성이 자신의 안위와 자식의 생존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남성보다 부족한여성에게 남성을 초월한감정적 기대를 요구하는 것이 가부장제다. 따라서, 가부장제를 살아가는 남성과 여성은 모두 여성에게 엄격할 수밖에 없는데, 여성은 남성보다 불리한 위치에서 각고의 노력을 해야만 비로소 남성에 가까워진 인간상으로 구현될 수 있다. 여성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를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한편으로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때의 위대한 페미니스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일반 여성뿐 아니라, 저명한 페미니스트들조차 가족으로부터 학대당하고, 무시당하며, 억압받았던 개인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어머니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그들을 미치게만드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를 떠나지 않고서는, 어머니로 상징되는 가부장제의 억압에서 탈출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새로운 이상을 밝혀낼 수 없었다. 가장 큰 사랑을 원하는 어머니에게 가장 큰 실망을 안겨주고, 가장 큰 조력자가 되어야 할 사람이 가장 강력한 억압의 주체가 될 때, 그들은 어머니를 떠나고, 부모를 떠나고, 가정을 떠나고, 함께 살던 남자에게서 떠났다.

 
















페미니즘의 기본을 아주 쉽게, 동시에 아주 선명한 언어로 밝혀주는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에는 이런 문단이 나온다.

 


아무튼 페미니즘이 비아프리카적이라고 하니까, 나는 이제 스스로를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친한 친구 하나가 나더러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남자를 미워한다는 뜻이라고 말해주더군요.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를 남자를 미워하지 않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더 나중에는 남자를 미워하지 않으며 남자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14)

 


이 문단을 특히 좋아했던 건,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와 함께 살며, 아들을 둔 어머니이며, 미니스커트와 롱원피스를 입고, 핫핑크 립스틱을 즐겨 바르는 페미니스트인데, 나의 이런 선택 혹은 성향이 페미니즘의 중요한 가치들과 충돌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이 문단이 단번에 날려 주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볼 수 없는 문제라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 역시 페미니즘을 말하는 중요한 정의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그 나름의 한계를 한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나는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이런 제안이 충분히 의미 있다고 보았다.

 

 

재능 있는 여성들을 공격하는 것은 페미니즘 운동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기량이 뛰어나고 표현에 능통한 여성들 - 유명하고, 기명 기사를 쓰고, 출간 계약을 하고, 그야말로 어떤 것이든 능력있는 여성들 - 은 혁명에 대한 반역자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는 내게도, 케이트 밀릿에게도, 나오미 웨이스타인에게도 일어났던 일이다. (110)

 


위대한 선배 페미니스트들은 달랐다. 그들의 상황은 지금처럼 녹록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제까지만 해도 마녀', '창녀였고, ‘정신병자였으며, ‘사회 부적응자였다. 그들은 다른 그 무엇보다 미친 년’ 이었다. 새로운 세대를 열어가는 그들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 곁에는 오직 자매들뿐이었다. 이 세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미친생각을 공유하는 그들은 서로에게 아버지였고, 어머니였으며, 언니였고, 동생이었다. 남편이었고, 애인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자매였다. 피를 나눈 자매보다 훨씬 더 강력한 연결 고리로, 그들은 서로에게 묶여있었다. 그래서, 그들 간에 이견이 발생할 때, 그것을 의견의 차이로 해석할 만한 여유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그들은 다른 생각, 다른 의견을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서로 간에 평등해야 한다는 강박이 그들 사이에 공고했기에, 책을 내거나 명성을 쌓은 여성들은 배신자라는 비난을 견뎌내야 할 뿐만 아니라, 친구 어쩌면 가장 가까운 친구를 잃을 수도 있었다. 천재, 천재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베티는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자주 썼다. 우리가 전부 눈을 아래로 깔거나 다른 곳을 쳐다보거나 당황하거나 기분이 더러워진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도 베티는 본인 모습 그대로 존경받을 자격이 있었다. 역사를 바꾼 수많은 남자들이 그랬듯, 베티 역시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성미가 고약하고 난폭하며 거칠고 말도 안 되게 집요했다. 그리고 통제 불능의 술꾼이었다. (220)


 

천재란 어떤 사람들일까. 천재는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는 못하는 그 무언가를 먼저이해하고, ‘먼저말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을 천재의 특성이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특별히 동시대 사람들은 천재의 천재적인 면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천재의 생각 중 극히 일부를 대중이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했을 때, 사람들은 그 천재에게 열광하고, 그에게 합당한 찬사와 명예를 그에게 돌려줄 것이다. 2세대 페미니즘 물결이 거세게 밀려올 때, 많은 천재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했다. 각성의 결과로, 그들은 억압받았던 여성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었다. 나름의 설명과 해법을 가지고, 지구상 가장 큰 소수집단인 여성의 해방과 성차별 해소를 위해 그들은 힘을 합쳤다.

 

하지만, 그들은 천재였다. 그래서 그들은 천재들이 할 법한 기이하고 이해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부정적인 언행의 상당 부분을 자매들에게 쏟아부었다. 자매애에 대한 기대와 천재 페미니스트들의 행동은 여성 간의 연대와 성장에 커다란 해악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그지없지만, 어찌하면 좋겠나. 그들도 똑같았다. 그들도 남성 천재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기적이고 독단적이고 고집불통이었다. 자신 아닌 다른 사람에게 대중적 관심이 옮겨져 가는 것을 참지 못했고, 억울해했고, 그리고 싸웠다. 의견이 다른 것을 이유로, 지지를 표명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은 계속 싸웠다. 안타깝고 또 아쉬운 대목이라 하겠다.

 


이 부분은 꼭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 적는다. 지금은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저명인사이지만, 『여성과 광기』가 출간되었을 때만 해도 체슬러는 그냥 평범한 정신의학자였다. 그녀와 그녀의 저작을 주의해서 보는 사람도, 매체도 없을 때였다. 그때 에이드리언 리치가 서평을 쓴다.

 


한 달쯤 지날 무렵, 《여성과 광기》에 대한 에이드리언 리치의 극찬이 담긴 긴 서평이 《뉴욕 타임스 북 리뷰》 표지에 실렸다. 내 세대에 그토록 화려한 칭찬을 받은 페미니즘 작품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판매 부수가 급증했고 담당 편집자는 승리의 냄새를 맡았다. 그렇다. 신문 하나가 그 정도의 결정권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유로 나는 에이드리언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에이드리언, 당신이 어디에 있든, 나는 당신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삶이 변화된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그렇듯이요. 당신이 쓴 서평 때문에 그들은 내 책을 읽게 됐을 테니까요. (163)

 


필리스 체슬러는 20년 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지면에 주디스 루이스 허먼의 대표 작품트라우마』를 소개하며 마음의 빚을 갚았다고 말했다. 체슬러는 또한 페미니즘의 전설 앤드리아 드워킨의 책을 수시로 소개하며 그의 책이 널리 읽히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에이드리언 리치와 필리스 체슬러, 그리고 앤드리아 드워킨의 연결이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마치 픽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서로간의 질시와 반목이 만연하던 시대, 서로를 미칠 듯 사랑하면서도 죽일 듯 미워하던 시대에, 이들이 보여준 연대와 지지, 사랑과 헌신이 너무 아름다웠다. 환상처럼 느껴졌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훌륭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부러워지는, 그런 순간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인덱스를 다 떼고 반납해야 한다. 바로 한 번 더 읽으려고 똑같은 책을 주문했고, 원서도 주문했다. 바다 건너, 지금 내게 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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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제적 이성애와 무성애의 섬 (feat. 수하님)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3-02-05 22:58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를 다 읽었다. (53쪽밖에 안 된다. 이 책 안 사신 분, 한 분도 안 계시길!!) 다 읽지 않은 상태에서 썼던 글(강제적 이성애와 정희진 만세!,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315994)에서의 내 예상이 옳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끝부분에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활동가이자 학자인 앤, 크리스틴, 샤론과 에이드리언 리치와의 서신이 포함되어 있는데, 상대방
 
 
수이 2022-02-02 15: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다 건너에서 주문할래요!

단발머리 2022-02-02 16:14   좋아요 3 | URL
2주, 14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하트하트)

2022-02-02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02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02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2-02-02 16: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지금 저는 막 벨 훅스의 <사랑은 사치일까>를 읽었는데 비슷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상 페미니스트의 자매애에서 문제가 되는 저 시기와 질투같은 건 페미니스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자체의 문제라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부장적 문화속에서 살아오면서 더 증폭되는거 아닌가 같은 생각도 하고요.
농담삼아 하는 말 중에 어떤 사람이 나를 어느정도 사랑하는지를 알려면 내게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그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하는가가 아니라, 좋은 일이 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는가로 봐야한다지요. 실제로 후자가 더 어렵습니다. 심지어 가족끼리도요.

단발머리 2022-02-02 19:30   좋아요 3 | URL
저도 바람돌이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여자들만 그렇다거나 페미니스트들만 그런 게 아니라 인간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안타까운 건 천재들이 대거 등장했던 제2 페미니즘의 시대에 여성들이 자신들의 ‘그러함‘을 인지하지 못했던 점입니다. 너무 순진했다고도 볼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삶이 너무나 처절했기에 그정도의 여유도 없었다고, 전 생각합니다.
벨훅스의 책에서, ‘페미니즘은 자기의 것이라 우겨대는 백인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흑인 페미니스트들의 분노‘가 기억나네요.

좋은 일이 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다른 사람에게만 그런게 아니라 저 자신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부럽다~~ 를 넘어서 어머, 잘됐네~~ 라고 진심으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그런 관계가 진짜 친구이고, 우정이겠죠.

독서괭 2022-02-02 18: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훌륭한 글이어서 나중에 피씨로 다시 읽고 댓글 다시 달려고요. 저도 남편 두고 아들 둔 페미니스트로서 매우 공감합니다. 단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단발머리 2022-02-02 19:32   좋아요 3 | URL
독서괭님이 다시 읽어준다 하시니 감사하고 또 부끄럽네요. 앞으로도 우리 나눌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요.
연휴가 다 지나갔네요. 뭐, 홀가분하게 기뻐해야 하는 시간인가 싶습니다. 독서괭님, 새해 복 많이많이 받으시길요^^

다락방 2022-02-03 08:3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지난 시간을 살아오면서 제가 가장 미워한 사람들 중에 당연히 여성들도 있었지만 또 제가 늘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도 여성이 다수를 차지합니다. 저를 가장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도 여성이 훨씬 더 많고요. 물론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 중에도 여성이 있지만요. 그리고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제가 여성의 편에 서려고 한다는 걸 이유로 그걸 붙잡고 늘어지며 저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저는 그게 너무 끔찍한 경험이었어서 정말 오래 그 일로 괴로워했고,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정체화하는 걸 하지 말자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모든건 행동이 말해줄것이다, 하면서요.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떤 말이나 행동에 실망하게 됐을 때, ‘너는 페미라면서 왜..‘ 라는 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도 더 냉혹한 잣대를 여성에게 드리운 적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저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저 사람과 내가 같은 방향을 보고있다 해도 저 사람의 우선순위와 나의 우선순위가 다르고,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익히고 배우고 있습니다.

단발머리 님의 이 글이 너무 좋아서 책장에서 오래 잠자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를 오늘 꺼내왔어요.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서문에서부터 좋아요. 70이 넘은 여성이 글을 쓰고 기록한다는게요. 지난 시간을 돌이키며 이런 기록을 남겨준게 너무 좋네요.

단발머리님, 우리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 읽고 쓰기를 멈추지 맙시다. 우리 계속 기록하기로 해요, 필리스 체슬러 처럼요!

단발머리 2022-02-04 19:31   좋아요 1 | URL
‘여성이라서‘에 반대하는 것이 페미니즘인데 ‘너는 페미라면서‘가 다시금 여성들을 옥죄는 현실이 참... 그렇습니다. 서로간에 완벽하게 같은 생각일 수 없겠지요. 의견 차이를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기는 하고요. 하지만, 저로서는 그럼에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어떤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도 또 복잡한 마음이 끼어들기도 하구요. 큰 틀에서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전 생각합니다. 포르노 논쟁으로 페미니즘 운동 전체가 타격받았던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구요.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계속해서 읽고 쓸 수 있을 거에요, 우리는요. 철분제 잘 챙겨먹고 요가 열심히 해서 꼬부랑 할머니가 되지 말자구요!!!

난티나무 2022-02-03 17: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단발머리님의 이 글 다시 읽을 거예요!
정올않페, 저도 사서 갖고 있는데 아직 시작 전이라 두근두근 ~~~~~^^

단발머리 2022-02-04 19:32   좋아요 1 | URL
예상보다 훨씬 놀랍고 감동적인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난티나무님을요^^

독서괭 2022-02-03 22: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부장제, 이를 떠받치고 있는 남성집단이라는 이 거대한 적을 상대로 똘똘 뭉쳐야 하다보니, 너무 이상적인 페미니스트상을 만들어놓고 개별성을 무시하게 된 거 아닌가..그런 생각이 드네요. 단발님 말씀대로 다양성을 포용할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 같고요. 너무 절박했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네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의 저 대목 저도 기억나요. 여성들이 더이상 집단으로서만 평가되지 않고 개별성이 존중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단발님 좋은 글 감사해요^^ 책장에서 잠자던 책을 꺼내오게 만드는 리뷰라니 얼마나 훌륭한지!!

단발머리 2022-02-04 19:42   좋아요 2 | URL
서로에게 더 많이 기대고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제2세대 페미니스트들을, 저는 쪼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구요. 그 전에 대략적으로 들었을 때는, 왜 그렇게 싸웠나, 왜 그렇게 서로를 미워했나, 이런 식으로만 생각했는데, 상황을 기억하는 체슬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이해되는 순간이 있더라구요. 한편으로는 그들의 피나는 경험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많이 부족하고 두서 없는 글인데 워낙 좋은 책이라 그런지 책장에서 잠자던 책을 꺼내시기도 하시네요 ㅎㅎㅎ
독서괭님 격려 말씀에 더 열심히 쓰고 싶어지네요! 좋은 밤 되세요!!

공쟝쟝 2022-02-08 14:07   좋아요 0 | URL
2세대 페미니스트들의 박터지는 열정적인 싸움과 갈등이 저는 아쉽지 않고 되려 좋아요! (그 안에서 개개인의 정서적 소진과 상처는 안타깝지만..) 그 운동과 논쟁들이 지금의 더 풍성하고 경합하고 또 더 다분히 나름의 무언가를 또닥또닥 만들어나가는 자양분이 된 것도 같고요. 갈등이 싫어서 대충 봉합한 뒤에 눈^^ 이렇게 하고 아무 문제 없는 척하는 것보다는 진지하게 치열하게 논쟁하는 방법도, 그 안에서 멋지게 싸우고도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도 앞선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을 통해 배웁니다. 체슬러의 책을 읽겠습니다!!! 아무래도 여수에서 책을 못읽었더니 너무 온 몸이 근질거려요!!!!

단발머리 2022-02-08 14:34   좋아요 1 | URL
이 책 읽고 나서 또 이야기해 주세요, 쟝쟝님. 전 이 책 읽고 그분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지만, 뭐랄까.
그런 모습들이 약간 ‘진보 진영‘ 내의 노선 갈등과 비슷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보수는 이익을 위해 결집하잖아요. 생각 필요 없이 그냥 나한테 이득이 되면 같은 편이잖아요. 막 서로 봐주고, 이해해주고, 그런단 말이지요. 진보는 안 그래요. 뭐가, 그렇게 참..... 말이 많아요. 저는 그런 거 엄청 좋아하고 완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다가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는 거죠. 건너서는 안 되는 강을, 구명조끼 없이 건너가구요. 물에 빠지고. 그럼 이쪽에서 못 구해줘. 그렇게 빠이빠이.
나중에 우리 또 이야기해요^^

공쟝쟝 2022-02-08 15:14   좋아요 1 | URL
보수쪽 사람들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고 어디서 자주 들었던 것 같아요 ㅋㅋㅋ 정치적 색이 인격적 성숙을 담보하진 않는 것 같기도 하고 ㅎㅎㅎ 그러고 보면 변화를 바라고 더 나아가고자 하는 (문자의미 그대로의)게 진보라면 상처와 분열은 필연일 지도 모르겠네요. 구명조끼 서로 입힌채로 투닥투닥 했음 좋긴 하겠다 ㅎㅎㅎㅎ
오늘 뉴스는 윤과 안이 갈등(?)하던데 말이죠ㅋㅋㅋ 좀 고소하기도 하네요?

단발머리 2022-02-08 15:39   좋아요 1 | URL
보수쪽 사람들이 그렇게 좋다고 하신 분은 모르겠지만, 보수 쪽 분들이 그렇게 따뜻하다고 하신 분은 알아요. 알라디너셨는데.... 안타깝네요. 어디서든 행복하세요 ㅠㅠㅠ 안녕히 가세요... 정치색이 인격적 성숙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훌륭한 보수주의자를 찾기가 어렵다. 물론 훌륭한 진보 인사도 그렇겠죠. 문제는 사람들은 보수가 그런거는 용서를 잘 해줘요. 걔네들 다 그렇지 뭐. 기준 자체가 낮으니까요. 진보에게는 택도 없는 일이구요.
전.... 구명조끼 입은채로 서로 말다툼하는 거 괜찮다고 봅니다. 아름다운 광경 아니더라도 그럴 수 있죠. 문제는 구명조끼 안 입고 혼자 강에 뛰어들면.... 어쩔라고 그래요?ㅠㅠㅠ
윤과 안의 갈등을 고소해하기에는 사태가 너무 엄중해서. 전 아직 고소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흐미....

2022-02-10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