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 교수인 박홍규 씨는 특이하다.법학 교수인데도 수험법학 교재보다는 광범위한 인문사회교양 서적을 쓰거나 번역하는 데 더 열심이다.특히 그의 글을 보면 아나키즘을 상당히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윌리암 고드윈 전기를 냈고 우리나라엔 거의 잘 알려지지 않은 우크라이나의 아나키스트 마흐노를 소개하기도 했다.사법시험이나 공무원 시험을 보려고 법대를 지망한 학생들이 박 씨를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더군다나 그는 경향신문에다가 한나라 당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고 있다.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에서 살면서도 그런 식이다.진짜 쓴소리 전문이다.권위주의적인 이 나라의 관행에 대해서는 그의 펜 끝이 용서없이 찌른다.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라고 번역하면 안 된다,자율주의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가 우리나라의 제도권 교육의 통제와 억압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아나키스트 교육운동을 하면서 남녀평등,반전평화,모든 계급의 학생들이 똑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기,체벌 엄금 등을 실현하는 모던 스쿨을 통해 열성적인 활동을 하던 프란시스코 페레(1859-1909).그의 생애를 그린 전기를 박 씨가 쓴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더군다나 번역서 제목도 눈에 띈다.<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우물 깊은 집2002).연기자 김혜자 씨도 같은 제목의 책을 썼는데.
페레가 살던 시대의 스페인은 전제정치에다가 보수적 가톨릭의 교권주의가 교육을 지배했다.학교는 거의 다 성직자들의 도그마를 주입하는 곳이었고 체벌이 일상적이었다.남녀공학이 금지되었으며 공화주의사상을 선전하는 것은 지옥에나 갈 일로 간주되었다.프랑스에서 몇 년 살면서 드레퓨스 사건을 목격한 그는 자신이 드레퓨스 같다고 느꼈고 공화주의 사상으로 무장하여 귀국한다,하지만 공화정체가 등장하면서 예전의 운동가들이 권력 맛에 취해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자 점점 아나키즘을 받아들이면서 자율적인 인간,기존의 사상에 반항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드는 교육을 해보고자 모던 스쿨을 만들게 된다.교사가 체벌을 가하는 것은 물론 폭언도 금하게 하며 획일적 교육을 없애기 위해 단일 교과서도 없이 수업을 진행한다.경쟁을 위한 시험도 없다.자연과 동물을 사랑하게 한다.페레는 투우 금지론자였다.그 결실은 20세기 말에 실현된다.그가 비명에 가고 난 한참 뒤,그가 활약하던 바르셀로나 지역이 투우를 금지한 것이다.
반 교권자였던 그를 가톨릭 교회가 좋아할 리 없다.1909년 모로코에서 일어난 해방운동 진압이 뜻대로 안 된 스페인 정부는 기혼남성까지 징집하려는 계획을 세운다.반전 평화사상가인 페레가 반대운동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결국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정부와 교회는 이를 기화로 페레가 국가 변란 음모를 꾸몄다며 체포하여 총살형에 처했다.그 장소가 바로 몬주익.황영조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달리던 곳으로 유명한 바로 그 곳이다.
나는 박홍규 씨를 통해 페레를 처음 알았다.학교체벌과 획일적인 교육에 반감이 컸기에 그의 교육사상은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다.그런데 페레에 관한 책은 나온 것이 그 한 권 뿐.아쉽기 이를 데 없다.체벌 반대로 유명한 또 한명의 교육사상가 이탈리아의 돈 보스코(1815-1888)는 그런 면에서 공부하기가 한결 낫다.그가 가톨릭 성직자라서 그런지 가톨릭 계열 출판사에서 전기가 몇 종 있고 그의 회고록도 다 번역되어 있다.그리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종교전문 출판사에서 내는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값이 괜찮다.10000원이 안 되는 사상서도 많고 소설도 5000원 내외면 살 수 있는 것이 많다.
돈 보스코 역시 학생존중을 강조한다.교사는 학생을 사랑하는 것 뿐 아니라 학생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오로지 사랑! 성직자이기에 가톨릭 교리를 강조하는 것은 그런다 쳐도 권위주의를 배제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그의 교육관은 나를 단번에 사로잡았다.하지만 나는 그의 생애를 자세히 알기전엔 가톨릭에서도 진보파로 알았다.진보적인 교육관의 소유자이니 마치 해방신학자 같은 인물이 아닐까 생각한 것.그러나 그는 정치이념으로는 거의 보수반동에 가까웠다.학생을 그렇게 사랑한 인물이 왜....하지만 어쩌랴.1848년 이후 전 유럽을 휩쓸던 혁명의 물결은 약소민족의 해방운동으로 이어졌다.이탈리아엔 오스트리아의 압제를 타도하기 위해 카부르,마치니,가리발디가 운동을 시작했다.여기에 로마 교황청은 방해공작을 시작했는데 돈 보스코는 철두철미하게 교황청과 가톨릭 교권을 옹호하는 인물이었다.교육사상가로서 거의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던 페레와 보스코는 여기서 정말 극명한 대조를 보이게 된다.그러나 나는 보스코가 그런 반동사상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를 싫어할 수는 없었다.그의 회고록이나 전기에는 이상하게도1848년 이후 이야기의 분량은 적다.그 사연을 알 것도 같은데...
박홍규 씨는 교사들을 상대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체벌반대를 주장하면서, "교사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교사가 학생인권을 억압하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하자 교사들의 반박이 대단했다고 한다.현장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의 잠꼬대 정도로 간주했나보다.사람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나도 알고 보면 피해자야....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며 살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나타나서 너도 가해자가 될 수 있어! 하고 지적하면 심기가 불편해지는 법.박 씨는 교육현장의 억압과 교사의 통제가 사회의 억압구조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는 교육이라는 단어도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가르쳐서 키운다? 진정한 사랑은 학생이 스스로 자라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하기야 교육이라고 하면 우선 학생을 관리하고 통제할 생각만 하는 이들에게 이런 말이 무슨 소용있으랴.부모와 교사의 억압,그리고 이를 합리화해주는 효도 이데올로기,군사부일체 이데올로기.
체벌,폭언,강제적인 두발 검사....그래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대한민국 인권은 학교 교문앞에서 스톱한다.
*****알라딘 동무 여러분. 애들,아이들이란 말 대신 어린이나 청소년이란 단어를 써주세요.어린이나 청소년이란 단어 뒤에는 여러분이라는 존대어를 쓸 수 있지만 애 여러분,아이들 여러분이란 말은 어색하잖아요.그리고 일제시대 때 방정환 선생이 주장했지만 아직도 안 되는 운동-어린이 청소년에게 존대말 쓰는 습관ㅡ특히 처음 본 어린이나 청소년에겐 반드시 공대해 주세요.우리 모두 순수하고 해맑은 세상을 만들어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