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지고 있는 삼성 출판사 <제 3세대 한국문학 김성동 편> 앞 쪽의 작가 사진은 색채 흑백 다 있는데 30대와 20대 사진이다.그 중 환속하기 전 북한산 금선암에서 찍은 사진은 29살 때 것인데 빡빡 깎은 머리가 둥그스럼하니 참 이쁘장하다.작가 생활할 때 찍은 사진에 나온 모습도 잘 생겼다.세월의 심술이야 유명하지 않은가.절세미녀를 쭈글쭈글 할머니로 만들지를 않나,돌주먹으로 세상을 호령하던 복서도 나이가 들어 신인에게 두들겨 맞게 만들어 버리지를 않나...그 잘 생긴 김성동 씨가 올해로 만 61세(1947년 생).올해 1월호 월간조선 인터뷰 기사에 나온 흑백사진을 보니 머리가 샜다.나이든 테가 완연하다.6년 째 경기도 용문산에서 노모와 살고 있는 중. 1981년에 결혼한 것만 알았는데 두 번 결혼을 청산하고 처자식 없이 산에서 산다고.신앙은 안 버리고 불단을 집에 만들어 예불을 드리고 있다(첫째 결혼에서 아들이 있었는데 이제 30이 가깝겠군).지금도 컴퓨터 안하고 원고지에 육필로 글을 쓰고 있으며, 자가용은 없이  부식거리를 사러 왕복 3시간 거리의 시장을 걸어서 이동한다고 한다.

   삼성 판 작품선에는 그가 해방전후사를 배경으로 한 장편을 쓰려고 충남 대덕의 산골로 칩거하던 때의 사진이 있다.그런데 이번 월간조선의 인터뷰를 읽으니 그 소설이 필화를 겪었구나.좌익을 다루었다고 문예중앙에 2회 째 연재 중 중단했다고 한다.1983년의 일이다.중앙일보에서도 같은 이유로 중간하차당한 작품이 있다고.그가 작품활동을 그다지 활발하게 하지 못한 사연이 여기에 있었나보다.그는 <녹색평론>에 <염불처럼 서러워서>란 제목으로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는데 올해 5-6월호(녹색평론은 격월간 잡지다)에서는 빨치산 투쟁하던 이들의 최후를 이야기했다.나는 이 에세이를 읽고 생각나는 책이 있었다.몇년전엔가 그가 천자문 책을 냈는데 마치 문익환 목사나 백기완 씨의 느낌이 났다.천자문 책도 이렇게 쓸 수 있구나...생각했는데,그 에세이에서는 이현상 부대의 노동자 출신 지휘관 박영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그리고 통명산 전투도...이 산은 나도 가보았다.곡성에서 화순으로 가는 곳에 있는데 숲이 우거지고 물이 시워하게 콸콸 흐른다.거기서 화순 쪽으로 더 가면 첩첩산중.지금도 숲이 우거져 대낮에도 어둡다.도로에 차도 잘 안 다닌다.화순으로 들어가면 백아산이다.조정래 <태백산맥>을 자세히 읽은 사람들은 백아산의 소년 빨치산을 알 거다.경제학자이면서 한국 근현대사가인 박현채 씨가 바로 그 모델이었다는 소년....그가 연락책으로 오르내렸다는 산들...그 에세이에선 월북시인 이태준의 북한살이도 들려준다.북에서 버림받은 문인...

   녹색평론에서 그의 에세이를 읽던 무렵 안재성<이현상 평전>을 읽게 되었다.안 씨는 한때 노동소설로 유명했던 인물.40줄에 접어들면서부터 역사물을 쓰기 시작했는데 경성 콤그룹에 관심이 있는지 이관술,이순금,김삼룡,이주하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거다.그렇군...결국 이현상을 다루는구나....그런데 이 책에 김성동 씨가 장문의 추천사를 쓰는데 아예 박헌영 선생이니,이현상 선생이니 하는 호칭을 쓰고 있다.아...그래...남로당과 박헌영을 한국혁명의 정통으로 여기는구나...하고 생각했다.예전 권운상이 <녹슬은 해방구>에서 경성 콤그룹을 정통으로 내세웠다고 했지.그럼 김성동 씨가 앞으로 쓸 장편소설도 역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었다.이제 김성동 씨도 솔직하게 말하자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임경석 씨가 박헌영 전기를 쓰기 전에 박갑동<박헌영>(인간사)이 있었는데 이 책은 나중에 박씨가 고백했듯이 정보기관이 빼고 더하고 했기에 좀 문제가 있었다.그 다음은 고준석<비운의 혁명가 박헌영> 유영구 역 (도서출판 글)이 있었는데 나는 구할 수가 없었다.출판사도 없어져 버렸다.이 출판사에선 현대사 연구자들이 많이 인용하는 책을 한 권 냈다.유영구<남북을 오고간 사람들>.공작원 이야기다.이 책의 첫 장이 성시백을 다뤘다.고준석 씨는 바로 이 성시백 계열 인사였다.성시백은 김일성의 북로당에서 보낸 공작원.남한정세 수집은 물론 남로당 견제임무도 있었다.고영민이란 이름으로 나온 <해방정국의 증언>( 사계절)도 고준석 씨 책이다.여기서 권위있는 선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게 바로 성시백을 가리킨다.성시백 계열의 인물이 박헌영 전기를 쓴다....무슨 내용인지 궁금하다.도서관에도 없고...그리고 하성수<남로당사>(세계)도 고준석 작품이다.나는 이 책이 <비운의 혁명가 박헌영>이길 바란다,내가 소장하고 있으니까.하지만 현재로선 아닌 것 같다.박갑동 씨는 김남식(남로당 연구로 유명한 전향인사)씨도 성시백 계열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성시백 얘기는 나중에 또 할 때가 있을터이니 여기서 그만 두기로 하자.

    김성동 씨 일가는 참 곡절많은 세월을 겪었다.부친과 큰 삼촌은 우익에게, 외삼촌은 좌익에게 죽었다.어머니는 이 충격으로 평생을 홧병으로 고생하게 된다.어머니도 좌익여맹운동을 하다가 우익에게 고문을 심하게 당하기도 했다.그의 단편<엄마와 개구리>엔 엄마가 우익들에게 모진 구타를 당해 마치 개구리처럼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는 어린애 이야기가 나온다.김 씨가 환갑이니 어머니도 80줄은 되었을 터.이제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늙어간다.

   김성동 씨가 장편으로 해방전후사를 쓰기를 기다리고 있다. 좌익운동을 한 아버지를 둔 소설가로서 이문열 씨와 이문구 씨가 있지만 두 작가는 아버지의 선택을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 아니다.더군다나 이문열 씨 같은 경우는.하지만 김 씨는 60이 되어 자신의 심중을 솔직히 밝혔다.그런 마음으로 쓰는 격동의 한국해방전후사...어떤 모양을 띄고 세상에 나올 것인가.한가지 바라고 싶은 것.이번 월간조선 인터뷰를 보니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다.건강도 생각해서 좀 줄였으면 좋겠다.그리고 독실한 불교신자라 고기는 못먹어도 야채나 과일이나마 좋은 것을 섭취하기를.<만다라>같은 빼어난 작품이 나오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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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9-04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성동씨가 환갑이 넘었군요. 허긴 제가 만다라의 땡초 지산스님을 멋지게 보던 시절도 벌써 이십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언젠가 어떤 인터뷰에서(잘 생각이 안남) 더 늙어 글을 쓸 수 없기 전에 남북한의 이야기를 길게 한번 써 보고 싶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만. 그게 한국해방전후사군요. 이문열이 쓰는 한국해방전후사라면 웃어 넘길텐데 김성동이니 기대를 해봅니다. 안재성의 [이현상 평전]은 보관함에 묵히는 책입니다만 저에게 추천해주실 수 있는 책인지 궁금합니다. 일례로 [경성트로이카]를 괜찮게 읽은적이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04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성기 주연의 만다라가 1981년에 나왔으니 세월이 많이 지났죠.이 해에 첫 결혼을 하고 아들도 생깁니다.
안재성 평전에도 이관술,이순금은 나오구요.거기에 남부군 이야기를 추가했죠.이태 <남부군>과 함께 읽으시면 되는데 안재성 책에 비해 감상적이고 허무주의냄새가 좀 강하죠.노가원<남도부>가 지리산 빨치산 기록물 중에선 제일 나은데 요즘은 절판되었으니 임경석<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의 기록>에 나오는 남도부 편을 참조하시면 될 거에요.

순오기 2008-09-07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다라는 고등학교 교복을 벗으면서 처음 접했던 책이고 영화였죠~ 영화를 먼저 만났나?
그 김성동씨가 환갑을 넘었고 나는 지천명을 목전에 두고~~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네요.
화순 백아산은 가봤는데 태백산맥은 작년 문학기행을 앞두고 3권까지 읽고는 끝~ 광주와서 살면서 처음 도전했다가 전라도 말이 입에 붙지 않아 못 읽고는 2차 3차 시도했으나 아직도 완독하지 못한 넘어야 할 산맥이랍니다.ㅜㅜ

노이에자이트 2008-09-07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아산에서 곡성 오산 면 가는 쪽이 산이 깊고 물이 시원한 시내가 많은데 더 좋은 것은 사람들이 많이 안 온다는 점이죠.교복을 벗는다...책 보실 땐 옷을 벗고 읽는 습관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하하하.. 이런 군사정권 때의 우스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