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붕괴 이후 헌책방에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1980년대의 이념서적들.헐값으로 사들여서 이 책 저 책 읽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는 사구체 논쟁을 다룬 책도 있었죠..가장 화제가 되던 책은 역시 이진경<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아침 1986)이었는데(이하 사사방으로 약칭) 일명 사사방.하지만 이 책을 실제로 끝까지 독파한 이는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힘겹게 정독했습니다.지금 그 책을 보니 줄도 긋고 여백에 이것 저것 써놓고 한 흔적이 있구만요.읽은 당시의 느낌으로는 박현채의 식민지 반봉건 사회론이나 종속이론은 맑시즘의 아류이고 역시 진짜 정통파는 소련이라고 주장하고 있군...하는 정도였습니다.이 책의 각주도 꽤 열심히 읽은 기억이 나는데 각주에 소개된 책 중 가장 읽고 싶었던 것이 변증법 논리학의 핵심범주인 모순론을 깊이 파고든 슈틸러<모순의 변증법>이었습니다.이 책과 슈틸러의 또다른 저서인 <사회발전의 변증법>은 2000년 넘어서 헌책방에서 찾아내서 샀습니다.

  사구체 논쟁 중 식민지 반봉건 사회론과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차이는 워낙 명확하니까 그 대립각이 분명히 이해되었지만, NDR(민족민주 혁명)-CA(제헌의회)그룹과 PD파는 왜 대립되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둘다 식민지 반봉건 및 주변부 자본주의론을 비판하는 입장이었는데요.제가 NL 쪽의 주장에 그다지 공명하기 않았기 때문에 헌책방에서도 먼저 산 것은 PD파의 무크<현실과 과학>과 NDR의 무크<노동해방문학>이었습니다.몇 권 나왔는데 학습용으로 한 권 씩만 샀지요.역시 이 양파의 차이점은 잘 모르겠더군요.그러다가 다시 이진경의 사사방을 읽었는데 윤소영을 되게 비판한 것이 눈에 들어왔어요.알튀세 주의자라는 거죠."이상하다...윤소영은 <현실과 과학>쪽 아닌가...그런데 왜 같은 편을 이진경은 비난했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PD파 출판사인 벼리에서 낸 책 중 주체사상 비판서인 <주체사상 비판>두 권을 산  며칠 뒤 역시 그 출판사에서 나온 <민족자본가 논쟁>을 헌책방에서 읽다가 갑자기 민족자본가 문제를 알아보고 싶었습니다.그래서 산 책이 조기준<한국자본주의 성립사론>.이 책에선 김성수 일가의 기업을 민족자본으로 봤습니다.이진경은 물론이고 NL파에서도 김성수를 민족자본가라고 보지는 않조.그래서 사실은 중국 쪽의 논쟁을 알아보려고 산 책이 김용석 편<식민지 반봉건 사회론 연구>(아침 1986)과 김대환 외 <중국사회성격 논쟁>(창작과 비평 1988)이었습니다.특히 이 책은 모택동 사상이 정통파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이론투쟁이 있었는지에 초점을 두고 읽었습니다만 역시 어렵더군요.단 말로만 듣던 중국 트로츠키 주의자 중 최고 논객이라는 엄영봉의 논문을 읽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또 제가 신간회 운동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 사회성격 논쟁>에 나온 도진순의 논문이 1920년대 코민테른의 민족_식민지 문제 논쟁을 다루고 있어서 열심히 읽은 기억이 납니다.쿠시넨이니 로이니 하는 이름은 지금도 생각나네요.그뒤로 도진순은 이승만과 김구 관련 저술을 해서 저도 최근에 열심히 읽었습니다.

  민족자본가 논쟁을 좀 더 심도 깊게 공부하기 위해 종속이론 계열 책과 그 해설서를 봤는데 유아사 타케오<제 3세계의 경제구조>는 트로츠키를 깊이 있게 다루어서 인상이 깊었습니다.이 책을 통해서 이진경 류의 이론에서 좀 멀어졌다고 할까요.프랭크나 아민이 유통주의자이고 (물론 브로델이나 왈러스타인도 그렇습니다만)그러니 트로츠키주의자다...그러므로 정통이 아니다...하는 식의 논법이 왠지 탐탁치가 않게 되었습니다.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역시 유아사<민족문제의 사적구죠>조용범 역 (한울1985)를 읽었는데 베버,트로츠키는 물론 독일의 프리드리히 리스트,독일 사민당의 룩셈부르크,카우츠키,베른슈타인 논쟁은 물론 그 후의 프란츠 파농 및 제 3세계 민족주의까지 다루어 감탄을 연발했습니다.특히 이 책을 통하여 다카시마 젠야를 알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다카시마의 민족과 계급의 변증법은 제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학설이었고 특히 그는 경제학을 사회사상 속에 용해하여 수많은 철학자들의 사상과 경제사를 함께 다루어서 그 웅장함에 매료되었지요.

  NL 쪽 이야기도 해봅시다.이 계열의 무크는 <녹두서평>이 있는데 이상하게 이 곳 광주 광역시 헌책방에선 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대신 조진경<민족 자주화 운동론>은 최근에도 보이더군요.10년전엔가 김영환의 <강철서신>이 복사본으로 헌책방에 나왔는데 좀 새삼스럽더군요.그땐 저자인 김영환은 이미 우익으로 전향하여 조갑제와 함께 북한민주화운동인가를 하고 있었을 때이니까요.김씨는 지금은 뉴라이트 계간지인 <시대정신>편집인이 되어 있습니다.이번 주 위클리 경향2008년 11월 25일자에 사회구성체 논쟁 특집기사가 나왔습니다.사사방이 최근 개정증보판이 나와 마련한 기사인 듯합니다만 여기에 정철영(조진경의 본명)씨가 "나는 개인적으로는 최민 등 제헌의회 쪽과 가까웠지 NL진영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는 내용이 있네요.그리고 정씨는 NL론의 이론적 공급처가 한국민족민주전선이라고 밝혔습니다.저도 그런 이야기는 들었는데 직접 그런 고백을 들으니 맞는 소문인것 같습니다.거 예전에 구국의 소리 방송이라는 게 있었다고 했죠.김영환 씨도 그 녹취록으로 공부했다고 하더군요.정 씨에 따르면 남한의 신식민지 국각독점자본론에 대한 북한의 비판이 한민전을 통해 나왔고 이것이 NL의 식민지 반자본주의론으로 정리되었다고 합니다.그래서 이론적 치밀함에서는 좀 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솔직히 말해서 북한에서 나온 책을 보면 인문사회과학 수준이 좀 거시기하더라구요.국수주의에다가 수령님 만만세 위주고요.

 헌 책방에서 제가 산 NL계의 책으로는 대동,힘 등의 출판사에서 나온 것입니다.북한냄새가 나고 주체사상 해설서도 몇 권 있지요.조선통사 등의 역사책도 북한원전 붐을 타고 나왔던 것이 헌 책방에 나돌아다니기에 샀습니다.제가 과도한 존칭 쓰는 관행을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지  북한에서 쓰는 교시하시었다는 둥 하는 표현을 안 좋아합니다.통혁당 관련 문건도 북한 쪽 것은 확실히 다르더군요.요즘 문근영 씨의 외조부가 통혁당 장기수 출신이라서 통혁당에 대한 관심이 반짝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한때 통혁당 사건에 관심이 있어서 헌책방에서 이것 저것 사모았습니다.통혁당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합시다.

 북한에서 나오는 역사책에서 김일성 찬양하는 건 좀 지겨워서 남한연구가가 쓴 김일성 전기를 몇 권 샀는데 그 중 NL계인 이재화<근현대 민족해방운동사>(백산서당)이 괜찮았습니다.특히 이 책의 앞편에는 남한의 김일성연구서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상당히 치밀한 연구를 한 흔적이 보이더군요.이재화 씨는 요즘 뭐하는지 궁금했습니다.이 씨는 소련에서 나온 레닌 전기를 번역하기도 했지요.

  광주서점가에도 사사방 개정판이 깔렸더군요.20년 전 나온 내용은 그대로고 그 뒤편에 논문이 몇편 딸려있네요.어느 정도 화제를 모을까요.제가 위에서 소개한 책 거의 대부분은 이제 헌책방에서나 구입할 수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개정판 사사방의 생명은 언제까지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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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혁명을 옹호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는 듯합니다.한때는 유럽이나 미국의 지식인 중에도 옹호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는데 이젠 찾아보기 힘듭니다.문화혁명은 재앙이었고 지식인들의 지옥이었으며 중국 현대사에서 잊어버리고 싶은 시기였다고 중국인들 스스로가 이야기합니다.더군다나 최근에 중화사상으로 새로운 무장을 하고 있는 중국정부는 공자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으니 당연히 반 공자 캠페인이 절정에 달했던 문혁시기는 덮어버리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그렇지만 제대로된 문혁평가는 시작해보지도 않은 것 아닌가요? 지금처럼 문혁을 매도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관제해석을 지나치게 추종하는 분위기에 묻힌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요즘 우리나라에도 알려지고 있는 한사오궁은 "문혁은 극단적인 폭력도 있었지만 당과 간부의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기층민의 해방운동의 성격도 있었다"했습니다.당시 세계를 휩쓸던 68혁명의 한자락을 차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게 만드는 말입니다.특히 문혁을 계기로 중국에선 큰 절하는 풍습이 없어졌다고 합니다.예전 뉴스에서 보았습니다만 등소평이 살아 있을 때 큰 홍수가 진 마을을 친히 방문했는데 현지 주민 그 누구도 등소평과 악수하면서 두 손을 잡거나, 악수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사람을 볼 수 없었습니다.제가 이런 모습을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보기 때문에 지금도 기억합니다.권위주의 관행이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좋겠죠.

  지금 문혁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책들은 소설이든 역사책이든 모두 문혁은 지옥같은 수난의 시대였다는 평가 일색입니다.해리슨 솔즈베리<새로운 황제>에 나오는 주덕이나 류소기의 수난을 읽다 보면 그들이 불쌍해서 눈물까지 날 지경입니다.주덕은 미국의 아그네스 스메들리가 높이 평가한 남자 아닙니까.그녀의 주덕 전기인 <위대한 길>은 구식 군벌이 공산주의형 인간으로 변해 어떻게 새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기였는데...그 주덕이 홍위병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하고 두들겨 맞고...류소기와 그의 부인 왕광미의 수난도 유명하지요.역시 주자파로 몰린 등소평은 그 가족들까지 고난을 당해 그의 딸이 결국 불구의 몸이 되고 말기도 하구요.우리나라에도 팬이 많은 신영복 씨가 번역한 <시인의 죽음>,<사람아 아.사람아> 역시 문혁 당시의 어두운 모습을 그린 책입니다.영어권에 널리 알렬진 니엔 쳉<생과 사>역시 문혁당시의 악몽같은 생활을 그린 자서전적인 이야기지요.패어뱅크스의 <중국사>엔 이 <생과 사>가 문혁 당시의 상황을 잘 묘사했다고 참고문헌으로도 나와 있습니다.연변 지식인중에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김학철 씨가 자신이 문혁 때 당한 수난을 그린 <20세기의 신화>역시 문혁은 광기어린 소동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여하간 문혁은 괴로운 시기였다는 책은 차고 넘칩니다.

 문혁 비판은 반드시 4인방 비판을 동반합니다.특히 강청은 못된 여자의 상징처럼 등장하지요.그런 강청을 인터뷰해서 책으로 펴낸 것이 록산 위트케<강청>입니다.30년 전에 태창문화사에서 펴냈습니다.예전 광주에 미국 문화원이 있을 때 거기서 이 책의 원저를 봤는데 저자인 록산 위트케의 사진이 뒷표지에 한가득 있었습니다,굉장한 미인이었죠.미모자랑을 하고 싶어서 그런 사진을 책표지에 실었을까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것도 같았습니다.이젠 할머니가 되었겠지요. 에드가 스노가 모택동을 만나 인터뷰하여 1930년대의 고전인 중국의 붉은 별을 썼듯이 위트케 자신은 강청을 인터뷰하여 불후의 명저를  남기려는 야심이 있었다고 합니다.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은 것 같군요.이 책은 강청의 전기이긴 하지만 문혁의 정당성을 논리적으로 밀고 나가는 책은 아닙니다.강청의 입을 빌린 일종의 해명이라는 성격은 있지만.

  문혁을 가장 옹호하는 책 중에 한수인<모택동 전기>김자동 역 일월서각 1986가 있습니다.우리나라에서 나온 모택동 전기 중엔 가장 두툼한 분량을 자랑하는 책이죠.4권으로 나왔는데 전부 합해 1000쪽 가까이 됩니다.지금은 글씨를 크게 해서 쪽수를 늘리지만 이 책이 번역될 때만 해도 출판계에 아직 그런 잔머리가 없었을 때였죠.빽빽한 글이 박힌 자세한 전기입니다.몇 년전 나온 장융,존 홀리데이 공저의 모택동전도 한수인의 전기보단 얇습니다.한수인은 평소에도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말했던 마오이스트.그런 그녀인만큼 모택동은 물론 문화혁명도 호의적으로 묘사했는데 특히 주자파를 냉혹하게 비판하고 4인방을 혁명의 옹호자라고 띄워주는 묘사를 책의 곳곳에 넣었습니다.게다가 티벳의 달라이라마가  CIA의 주구였던 사실도 간략하지만 지적했습니다.이건 사실이지만 달라이라마 열풍이 대단한 우리나라에선 혹시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온통 문혁의 부정적인 면만 그린 책들의 홍수 속에서 한수인의 이 모택동 전기는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이 한수인이란 여성은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전혀 생소한 인물은 아닙니다.옛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가가 쓴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 하나를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지금은 저 세상 사람이 된 후라이 보이 곽규석 씨가 있었습니다.한때 전국 노래자랑 사회자이기도 했는데 이 분의 애창곡이 앤디 윌리엄즈의 사랑은 아름다워라입니다.이 노래는 영화<모정>1955 의 주제곡인데 이 영화가 한수인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겁니다.한수인 역은 톱스타인 제니퍼 존스가 맡았고 그녀의 애인은 역시 톱스타인 윌리엄 홀덴이 맡았습니다.홀덴은 수용소 영화의 고전인 <제 17포로수용소>의 주연을 하기도 했죠.한수인은 중국인 혼혈의 백인입니다.그의 애인은 영화에서 나왔듯이 한국전쟁 취재 중 전사하지요.영화 역시 그 애인의 전사 소식을 듣는 장면이 끝부분에 나옵니다.슬픔에 잠긴 제니퍼 존스가 언덕 위에서 애인을 그리는 장면에서 앤디 윌리엄즈의 노래가 나오지요. 재밌는 것은 한수인은 마오주의자인데 이 영화에서 중국 공산당원으로 나오는 이들은 불쾌한 인물로 그려진다는 것입니다.저 역시 한수인의 모택동 전기를 읽기 전엔 한수인이 반공주의자인지 알았습니다.장개석 지지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니까요.그녀가 마오주의자인 걸 알고 난 뒤 그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케이블에서 가끔 방영합니다)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그 영화가 나올 때는 반공주의자였나?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만 글쎄요.알 길이 없네요.그녀의 또 한 작품은 역시 중국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중공 30년>이 있습니다.중공이라는 명칭이 있던 80년대에 번역되었기 때문에 번역서 제목에 중공이 들어갑니다.국공내전 말기에서 문혁까지의 중국사를 그린 역사소설입니다.이 책은 절판되었고 저 역시 헌 책방에서 찾아냈습니다.

 중국공산당의 관제해석이 아닌 제대로 된 문혁평가를 한 번 해보고자 합니다.제가 가지고 있는 책들 역시 문혁에 비판하는 책들이 대부분인데 다행히 한수인의 모택동 전기가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아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고 있습니다.최근 조반파 홍위병이었던 천이난이 <문화대혁명 또다른 기억>장윤미 역 그린비2008을 썼는데 홍위병에게도 할 말이 있다는 생각을 책으로 썼다고 하네요. 새로운 문혁해석의 문을 열 것도 같습니다.저는 전자우편 주소에 ZAOFANYOULI를 쓰고 있을 만큼 중국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중국사에 관심이 많으니 예의 주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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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8-11-18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대혁명 또다른 기억>에 대한 서평자로서는 적임이신데요.^^ 기대해보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1-19 14:03   좋아요 0 | URL
먼저 우리나라의 문혁논쟁을 정리할까 생각중입니다.리영희의 문혁론을 둘러싼 논쟁이지요.제가 요즘 중국사 공부를 한지 오래되어 당장 문혁자체에 대한 평가를 하기 위해선 상당한 준비운동이 필요할 거예요.

바람돌이 2008-11-18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시대를 평가한다는게 정말 어렵죠. 더더군다나 문혁처럼 모든 것이 뒤바뀌고 모든 가치관이 무너져 내린 시대란.... 뭔가를 이루기 위해 강박적으로 그것에 올인하는 유아적 혁명?? 지금은 워낙에 문화혁명의 비판적인 분위기가 강하고 소설이나 연구서들도 대부분 비판쪽에 몰려있죠. 그런 비판들이 또한 공감도 가고요. 하지만 노이에자이트님 말대로 분명히 다른 면도 있었을테고 그것을 살펴보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겠죠? 이제쯤이면 그런 시도가 시작되어야 할 때라는 것도....

노이에자이트 2008-11-19 14:16   좋아요 0 | URL
문혁을 68혁명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 제 시각입니다.한편 문혁 와중에도 여전히 중화주의 정책은 일관되었다고 봅니다.문혁당시 북한과 사이가 안 좋아진 사연도 자세히 탐구해 볼만합니다.바람돌이 님은 모정이란 영화를 알고 계시는지요?

파란여우 2008-11-19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청은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선 사진으로 한국땅에 상륙했었죠. 그 때문에 모택동의 강청도 측천무후처럼 못되먹은 철의 여인으로 반공주의 시절에 각인된 경험이 있습니다만. 전 장개석과 그의 부인 일가가 저지른 부정부패가 더 악독하다고 보는 입장이긴 합니다. 민주라는 이름에 가리워진 고름이었지요. 그건 그렇고 곽규석과 모정, 윌리엄 홀덴, 한수인 등 정말 이 페이퍼는 시리즈로 기대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1-19 14:13   좋아요 0 | URL
제가 구입한 1977~1978년 주간조선에선 해외 넌픽션 물중 4인방 재판을 비롯한 문혁당시를 다룬 글이 꽤 많이 실렸습니다.그때가 세계언론의 주목이 강청을 비롯한 4인방에게 쏟아졌지요.
송씨일가를 다룬 넌픽션인 시그레이브<송씨왕조>는 장경국 총통 시절 대만에선 금서였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장개석은 물론 손문까지 도마에 올려놓고 난도질했지요.시그레이브의 동북아 역사시리즈는 재미있지요.그와 그의 부인이 함께 쓴 <야마시다 골드>에는 박정희 시절 한일유착에 관계한 야쿠자들의 활약도 나옵니다.한 번 참고하시길.
나이답지 않게 옛날 연예인들에게 관심이 많답니다.그래서 우리 어머니나 아버지도 가물가물한 연예비화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곽규석 씨는 말년에 목회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로그인 2008-11-20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혁명과는 동떨어진 외람된 의문이 하나 있는데요. 국공내전과 중국혁명에 조선인들이 미친 영향은 어느 정도인가요? 누군가는 중국혁명을 조선인들이 만들어주었다 - 여건을 조성해주었다는 정도로 이해됩니다 - 고도 하던데 저는 아리랑의 이미지 강하게 남아서인지 중국혁명하면 물속의 소금이란 말이 떠오르는데 중국혁명을 만들어주었다는 주장이 흥미롭기도 하고 국수주의적 시각인것은 아닌지 여러모로 궁금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9-12-26 21:40   좋아요 0 | URL
조중우호가 굳건했을 때는 중국인들도 그런 생각을 가졌겠지요.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겁니다.8,15직후 국공내전 참전 조선인들이 북한에 들어올 때 제지를 받은 적이 있지요.한국전쟁 때도 국공내전에 참여한 북한출신들은 초기에 꽤 강한 전투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북한이 유엔군에 몰릴 때에는 북한군이 만주 쪽으로 피신을 가기도 하지요.국공내전 때 조선사람들이 도와주었으니 우리도 도와준다는 의식이 당시 중국인들에겐 있었나 봅니다.한국전 때 만주의 조선족들이 대거 중공군으로 참전하기도 하고 그래서 전후 중국정부는 그 고마움에 연변 자치주 설립을 허가해주기도 합니다.
해방전 북한에 있던 친 중공 정파가 조선 신민당입니다.모택동의 신민주주의 혁명을 따서 신민당이지요.
국공내전 당시 조선인 운동가들 중 임시정부에 실망한 이들은 연안의 중공정권으로 많이 갔고 조선의용군들은 용맹을 떨치기도 했지요.김학철 씨가 조선의용군 출신입니다.
전 통일부 장관이었던 이종석 씨는 김일성 연구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북한과 중국 관계를 깊이 연구했으니 그의 책을 보십시오.
전 통일부 장관이었던 정세현 씨는 모택동 국제정치사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요.저는 그 책을 제가 읽은 모택동 사상서 중 가장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유감스럽게도 현재는 절판.
북한 정권 초기 중공 출신으로 가장 고위직에 오른 이는 무정인데 그는 대장정에도 참가한 역전의 용사입니다만 한국전쟁 중 작전에서 실패하고 처형당합니다.

쟈니 2008-11-20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중국에서는 공자가 새록새록 떠오르는 태양같은 느낌이 들때가 있어요. 1980년대 이전에 쓰여졌던 중국철학책에서는 그야말로 신랄하게 공자를 비롯한 유가 사상을 비판했었는데. 시대가 요구하는 바일지도 모르죠..
문화혁명은 잘 아는게 없는데, 워낙 안좋은 쪽으로만 한국에서 이야기가 되어서 늘 그 이면이 궁금해요.

노이에자이트 2008-11-20 12:57   좋아요 0 | URL
문혁의 전과정을 알고 싶으면 산케이 신문 편<모택동 비록> 문학사상사 가 낫습니다.권력투쟁 위주의 서술이지만 우선은 그런 편에서 접근하는 게 손쉽지요.비교적 온건한 평가는 리영희<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을 보십시오.

에링 2008-11-23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역사에 관심을 하나씩 가져 보려고 하는 학생입니다. ^^
페이퍼를 읽다가 68혁명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알라딘에서 관련서적을 찾아보니까 잘 안찾아지네요. 혹시 68혁명에 대해 다룬 쉽고 좋은 책 있으시면 추천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 당시에 이러한 혁명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참 궁금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11-23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초여름 촛불 시위 광주집회 때 연사로 등장하여 인터넷에도 나온 조지 카치아피카스가 쓴 <신좌파의 상상력>이 68혁명의 고전입니다.그외 1960년대 사회운동 전반을 다룬 것은 타리크 알리<1960년대 자서전>이 있습니다.68혁명의 배경설명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프랑스에선 68혁명이 드골의 하야를 가져오는데 궁금하면 드골 전기도 보시기 바랍니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 때엔 드러나지 않던 박정희 찬양론은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정부 때 나타나기 시작하여 열풍이라는 말을 써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박정희를 긍정적으로 보는가 부정적으로 보는가 를 떠나서 왜 김영삼 정부 때부터 그런 흐름이 생겼는지도 흥미로운 연구과제가 될 것입니다.1997년 7월호 월간 말 지에 박정희 열풍에 관해 강만길 씨가 한 말이 있어서 여기 인용해 봅니다.

---역사를 해석하면 가장 나쁜 것이 뭔지 알아요.왕이나 대통령 같은 지도자 개인에 초점을 맞춰서 그 시대를 보는 것이 가장 나쁜 역사해석 방법입니다.흔히 영웅이 시대를 만드느냐 시대가 영웅을 만드느냐 하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어느 개인의 지도력에 의해서 거대한 역사가, 한 민족의 역사가  움직이지는 않습니다.그것은 역사학의 에이비시입니다.

 질문:꼭 박정희가 아니었더라도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을 거란 말입니까?

---박정희가 없었더라도 우리는 60년대 산업화로 갈 수 밖에 없었어요.그런데 군인인,특히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가 산업화 과정을 지도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재벌중심의 경제체제로 되어 엄청난 부작용을 남기고 있잖습니까.정치,사회.문화적으로도 군사정권의 독소가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고요.그걸 하나하나 제거해 가는 데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바쳐야 할 지 모릅니다.

질문:그런데 선생님의 제자들인 고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박정희가 복제하고 싶은 인물로 나왔더군요.

---고려대 학생들에게서 그런 조사 결과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내가 학생들에게 이런 얘길 했어요.자살하고 싶은 심정이라고.우리의 역사교육이 얼마나 잘못되었으면...우리 역사를 ,뭐랄까요.근현대사를 중요하게 가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옳게도 못가르쳤어요.물론 나를 포함해서...내가 이런 말을 하면 뭣하지만 역사학계의 책임이 큽니다...이하 생략.

 올 여름인가 인터넷 여론광장에 박정희 논쟁이 벌어졌는데 댓글 중에 아주 흥미로운 것이 있어서 지금도 그 주요내용을 기억하고 있습니다."저희 부모님은 박정희 대톨령과 육영수 여사께서 무료로 나누어 준 식량을 타서 당시 사람들이 굶주림을 면했다고 말씀하십니다."이런 내용인데 글쎄요.저도 어린 시절이긴 하지만 박정희 장군이 집권하던 시절 무료로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습니다.댓글에 나온 홈피를 찾아가 봤더니 글쓴이는 20대 초중반의 남자였습니다.아마 1950년대 미군의 구호물자로 나온 밀가루를 받은 것을 착각했나 봅니다.박정희 사망 이후 태어난 사람이라서 이승만 시대,제2공화국,박졍희 시대가 기억속에서 막 헝크러진 상태가 아니었을까요? 초중고교의 한국사 시간에도 현대사 분야는 잘 배우지도 않거니와 대학의 역사학과에도 현대사 전공교수는 드뭅니다.현대사는 그동안 역사학자보다는 정치학자나 저널리스트들이 하던 분야라는 느낌이 더 강했으니까요.

  요즘 박정희 찬양론자들의 글을 천천히 읽어보고 있습니다.조갑제,이인화,이동하 등이지요.일본의 구로다 가쓰히로,가미야 후지,다나카 아키라 의 글도 읽어 보려고 합니다.제가 생각하는 박정희는 좋다 싫다를 떠나서 무섭다는 느낌이 듭니다.냉정한 철권통치자...그런 인상이 강하지요.그런데 10.26사태 직전인 1979년 10월에 찍은 사진엔 그의 애견인 방울이가 나와 있습니다.당시 20대였던 박근혜 씨가 어린애 안듯 안고 아버지인 박정희 장군과 찍은 사진인데 그 개가 굉장히 귀여웠거든요.그 사진을 보니 10,26 이후 그 귀여운 개가 어떻게 되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옛말에 사람은 미워해도 개는 미워하지 말라...그런 말이 있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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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11-13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안은 장면의 서류가방에서 훔친 설이라는 것이 지배적이죠. 박정희 찬양론자들이야 솔방울로 폭탄을 만들고 모래로 쌀을 만들었다는 수령님의 전설처럼 국민을 기아상태에서 구제해준 메시아로 인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배고파 죽겠는데 일단 먹여만 주면 눈깔 깔고 꼬리를 치는 것이 개의 본성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개도 진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고 정서적으로 교감합니다. 당장 기아를 면한 사람들이 그 후에도 환상에 젖어 주인을 모시는 습성은 개만도 못하죠. 갑제옹은 세대가 그래서 이해하겠는데 이인화는 참 독특한 사람이에요.

노이에자이트 2008-11-14 12:55   좋아요 0 | URL
파란여우 님이 분노가 폭발하셨군요.장면 정권 때 이전인 이승만 정부 말기에 미국 오레건 대학 교수 팀이 와서 5개년 계획의 골자를 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저는 두가지 방향으로 공부 윤곽을 잡으려고 하는데 하나는 박정희 시대경제정책이고 하나는 박정희 향수의 원인입니다.
이인화 씨와 이문열 씨는 영남남인 살리기와 양반문화 살리기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요.그런 점에선 고종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 이태진,한영우도 같은 부류입니다.역시 이들도 박정희 살리기 운동가들.

바람돌이 2008-11-13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놈의 박정희 열풍은 참 오래가요. 제가 사는 동네는 특히 심하다고나 할까요? 제 친정아버지는 심한 박빠이신데 예전에 거기에 대들다가 밥상이 엎어졌다죠. ㅎㅎ (물론 제가 엎은건 절대 아닙니다. ㅎㅎ)
연세드신 분들의 그런 생각이야 이제 정말 어쩔수 없다 싶지만 요즘 젊은 세대의 박통열풍은 정말 심각하다 싶습니다. 학교에서의 근현대사 교육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죠. 그러다보니 요즘 근현대사 교과서 파동이 더 심각하게 느껴지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11-14 12:48   좋아요 0 | URL
이 곳은 광주 광역시라서 박정희 열풍은 잘 모르겠습니다.저희 부모님들도 군사정권 반대파라서요.어머니는 박정희는 반대하고 그가 기른 개가 무사한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습니다.
제가 윗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학교교육도 그렇고 부모들의 박정희 찬양이 대를 이어 오는 것 같습니다.

비로그인 2008-11-14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군이래 가난을 못벗어나던 우리에게 가난을 벗어나게 해준 분이다." 이말도 단골이죠. 박정희에 대해 비판하면 "니가 그 시대를 살아봤느냐 아니면 말을 말아라 살아보지도 않고 뭘 아느냐." 이런 유치한 말이 돌아오면 "그러는 당신은 단군이래로부터 지금까지 다 겪어봤냐 단군 때 부터 겪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아라."라고 유치하게 답해준답니다. 장면 정권의 계획을 강탈했다고 하면 "계획만 있으면 뭘하냐 추진을 해야지"라고 하는데 그러면 "계획을 실행하는데 필요한 자금이 어디서 났냐? 그게 다 누구 희생이냐? 왜 그 분들의 희생에는 눈감고 독재자만 찬양하냐?" 라고 하면 "왜 김일성은 욕안하고 박정희만 욕하냐? 너 빨갱이냐?"라는 공식과도 같은 대답이 돌아오더라구요. 진중권씨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읽어 보고 싶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11-14 12:52   좋아요 0 | URL
중장년 이상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입니다.진중권 씨 책 외에 아예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도 읽어 보십시오.그 책에 현재의 박정희 열풍과는 미묘한 차이가 나는 해석이 꽤 있습니다.박정희 찬양서를 통해 박정희 열풍을 비판하는 기상천외한 방법이 있죠.
근데 박정희 가족이 키운 그 강아지는 되게 귀여웠어요.

비로그인 2008-11-15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보다 어린 친구들도 똑같은 말을 하는걸 보면 애늙은이라고 해야 할까요?
진중권,이문열 논쟁을 읽어봤었는데요 진짜 웃겨서 혼났어요. 상대방의 논리로 상대방을 뭉개버리더라구요. 논리로 못당하니까 논쟁에 임하는 태도나 말투가 건방지다고 트집잡더라구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욕하는 꼴이죠.

노이에자이트 2008-11-15 15:10   좋아요 0 | URL
사람은 가장 많은 거짓을 부모와 교사에게서 배웁니다.저는 진중권 씨의 논박도 좋지만 좀 더 실증적인 자료를 모아서 박정희 체제,특히 경제정책을 공부하면서 박정희 신화의 실체가 뭔지 파고 들어가려고 합니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의 올림픽을 성공리에 마친 한국인들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일종의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습니다.약간의 우월감도 이때 나타났지요.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그러한 사고방식이 자신을 객관화하거나 역지사지하는 데에까지는 나가지 못했습니다.재일학자로서 한국인의 대외관을 연구하는 정대균 씨가 <1992년 L.A.폭동에 관한 한국매체들의 보도 및 논평의 특징>이라는 글을 썼는데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 많습니다.그는 세가지로 당시 우리나라 매체들의 특징을 추렸습니다.

  첫째.폭동에는 흑인 뿐이 아니라 히스패닉 계나 백인들도 참가했는데 굳이 흑인들만을 강조하여 흑인폭동이라고 했다.이는 흑인들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차별을 드러낸 것이다.

  둘째.한국상점들이 집중적으로 약탈과 방화의 대상이 된 것은 한국상인들이 평소 흑인이나 히스패닉 계 손님들에 대해 차별하거나 지역사회를 착취한다는 사실에 대한 보복적 성격이 있는데 이를 미국매체들은 지적했지만 한국매체들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

  세째.미국에서 교포들이 정착해서 성공하면 우리 민족이 우수하다는 증거라고 한다.폭동 직후 교포들의 단합대회 모습을 방영하면서 "한번도 남을 짓밟거나 침략해 본 적이 없는 민족답게 울분을 누르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보도했다.여러 민족이 사는 곳이므로 다른 민족과 어떻게 함께 살 수 있을까,이해하고 유대를 맺을 수 있을까를 논해야 하는데 자민족 중심주의나 민족우월감을 내세웠다.실정이 어떻다고 바른 말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권위주의와 집단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진실을 말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서머싯 모옴은 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남겼습니다.그 중 우리나라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매우 재밌는 중편인 <아우트 스테이션>이 있습니다.모옴 특유의 맵고 톡 쏘는 풍자가 일품인데,여기엔 말레이지아에 온 한 백인 남자가 나옵니다.그는 현지인들과 어울릴 생각도 안하고 그들을 못난 이들로만 봅니다.그가 주인공(작가인 모옴의 분신)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에이...저 검둥이들..."그러자 주인공이 점잖게 지적합니다."저들은 흑인이 아니라 아시아인입니다."그러자 거기에 대한 답은."흑인이나 아시아인이나 검둥이잖아요..."이었습니다.그런데 이런 반응은 단지 백인의 우월주의라고만 단정할 수 있을까요.저는 주변에서 동남아인들을 검둥이나 흑인이라고 지칭하는 경우를 상당히 많이 봤습니다.제가 어릴 때만 해도 동남아인들을 특별히 얕보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그땐 아예 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오는 일 자체가 드물었으니까요.동남아 인들을 우습게 보고 방송에서 희화화하는 회수가 늘기 시작한 것은 그 쪽 출신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일입니다.그래서 언제부턴가 동남아 스타일이란 말은 촌스럽고 빈상으로 생겼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습니다.특히 젊은 여성에게 이 말은 언제부터인가 모욕적인 느낌을 주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한쪽이 동남아인인 경우 그 아이들이 우리나라 학교에서 놀림 받을 때 "야. 이 검둥아.아프리카로 가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금만 살이 거무스름하면 우선 아프리카를 연상하고 아프리카 하면 미개와 야만을 연상합니다.이미 초등학교 정도 들어갈 나이가 되면 이제 그런 사고방식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되죠.마치 모옴의 소설에 나온 그 백인남자와 비슷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이건 오리엔탈리즘도 아니고,백인우월주의도 아니고,뭘까요?

 아직도 L.A.흑인폭동이라고 흑인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나온다면 이제는 흑인이라는 말은 뺍시다.그냥 L.A.폭동이지요.방송에서도 동남아인들을 비하하는 말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사람 개인 개인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라에는 국격이 있다고 합니다.한국이라는 나라가 국격을 갖춘 나라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인종비하 발언을 삼가는 관행을 뿌리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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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11-10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안산에서 필리핀 출신의 이주여성이 한국경찰이 되었다고 신문과 방송을 장식했잖아요? 분명 의미 있는 변화지만 그 한 사람이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다 들어줄 순 없고 딱 한 사람 고용해놓고 마치 이주노동자 일반에 대한 권리가 향상된 것 처럼 말해서도 안될거에요. 세째 내용의 경우에서처럼 우리민족은 성공적으로 정착했지만 계속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보고 게을러서 그런다느니 하는 말은 2등국민의식 같아요. 예전에 우리가 들었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숭실대의 이옥순씨는 이를 복제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르더군요. 복제한(내면화한) 오리엔탈리즘을 타자에 적용하고 타자를 규정짓는 것은 박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르고요. 영국이 식민지 인도를 바라보던 관점을 한국도 그대로 인도를 바라본다는 비판이었죠. 이주한인들이나 그들을 바라보는 국내의 시선은 주류 백인 사회에 가까워지는 것을 민족적 쾌거로 여겼던 모양이네요. 이 세번째 특징은 오늘 처음 알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11-11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옥순씨는 인도 열풍을 지적한 학자인 것 같은데요.우리가 인도인을 보는 눈이 마치 예전 구한말 우리나라에 온 서양인 같다는 것 아닙니까.철저한 타자화이지요.
늘 피해자라는 것만 강조하니 우리도 남에게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하지요.또 가해자 의식을 가지기 싫으니 일부러 예전 수난의 역사를 들먹이는지도 모릅니다.외국 땅에서 성공한 한국인에 대한 지나친 찬양은 피해의식의 보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후애(厚愛) 2008-11-12 0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몰랐던 사실을 노이에자이트님의 글을 보고 알았어요. 이곳에도 LA폭동이 아니라 LA흑인폭동이라 부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제가 미국 오기 전 제 동네에서 가끔씩 아이들이건 학생들이건 무조건 백인들보다 흑인들을 보면 도망가는 경우를 보았지요. 이목구비가 다 똑같은데 단지 피부의 빛깔이 다르다 하여 차별 하는 건 너무 심한 것 같아요.
예전에 제가 알던 언니한테 혼혈인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이 우리나라 학교에 다녔는데 한달도 못 되어 학교를 중단을 했답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돌을 던지거나 험한 욕을 퍼붓거나 매일 괴롭히는 바람에 학교를 포기 했는데 그대신에 그 아이의 성격이 100% 변해 버렸답니다. 순진하고 착한 아이였는데......가끔씩 저를 보면 인사도 잘 하고 항상 해맑게 웃던 아이였지요. 그 뒤로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더군요. 그리고 아이의 엄마도요.
정말 안타깝고 슬퍼요.

노이에자이트 2008-11-12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한 번 뿌리내린 용어는 고치기 힘듭니다.아직도 흑인폭동이라고 하지요.재미동포들도 그 용어를 그대로 쓰는군요.
그 혼혈인 아들이 겪은 일은 두고 두고 평생의 상처가 될 것 같습니다.늘 패해의식에 젖어사는 이들은 자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비로그인 2008-11-12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이 앞다퉈 인도를 갔다와서는 요란하게 깨달음을 얻었네 말았네 -어찌보면 호들갑에 가까운- 인터뷰나 기사들과 유명인들을 잘 꼬집었어요. 도대체 뭘 얻고 왔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말이죠. <우리안의 오리엔탈리즘>이란 책이었는데 저도 그 책 읽고 뜨끔했었죠. 아주 좋은 처방제였어요. 그때가 막 제대했을 때라 세상물정 모르던 때라 기존의 사고나 가치관에 익숙해있을 때였거든요. 그래서 저도 저개발국가들을 말할 때 자주 따라붙는 수식어인 '시간이 멈춰진(듯한)'이란 말을 싫어하죠. 아주 오만한 사고라고 생각해요.

노이에자이트 2008-11-12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책에는 한비야 씨도 도마 위에 오른 것 같던데요.
대체로 타자화된 대상은 구체적인 인간보다는 실체가 없는 피사체 같은 느낌으로 보지요.그래서 아프리카에 수 많은 나라들이 많은데 그냥 아프리카라고만 합니다.사실은 무슨 나라가 있는지도 모르구요.
 

  한때 현존하는 인물 중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이오덕 동지였습니다.저는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인물에게 동무나 동지라고 하지요.안타깝게도 지금은 저 먼 곳에 계십니다.어린이를 사랑하고 청소년을 사랑하는 것은 물론 작은 미물들까지도 아낄 줄 알았던 진정한 생태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그리고 우리 글의 구수한 맛을 살려서 글 쓸 줄 아는 분이었지요.그래서 저도 그의 문체를 모방하려고 무척 애를 쓴답니다.꼬부랑 글씨나 어려운 한자단어도 안 써보려고 하구요.올해 10~11월에는 유독  두들겨 맞은 학생 이야기가 인터넷에 많이 뜨네요.민주화의 성지라는 이 곳 광주도 그런 사건이 났네요.이오덕 동지는 교사 생활을 오래 했지만 어린이 사랑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특히 어린이나 청소년에 대한 권위주의적 통제에 반대했지요.심지어 어린이들에게 차렷 ! 하고 줄세우는 것도 싫어했답니다.당연히 체벌에 대해서도 반대했지요.그 어떤 말로도 옳다고 할 수 없다고 거부했습니다.다음은 그의 주장의 골자를 요약한 것입니다.출처는 이오덕<내가 무슨 선생노릇을 했다고>삼인 2005년 에 있는 수필 '체벌이라는 도깨비 방망이'입니다.

   1.체벌을 사랑의 매라고 하는 것은 속임수 말이다.이런 속임수 말은 제발 교육자들만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체벌은 효과도 없다.체벌 당한 아이들의 반감과 원망은 체벌을 해본 교사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어린이의 인격을 무시하고 평생에 상처로 남을 체벌을 가하는 교사들도 있다.나도 선생노릇하면서 아이들의 손바닥을 때리거나 한 일이 있었다.그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이다.

  2.우리나라 교육현장의 열악함,경쟁을 시켜야 하는 상황 등을 들어 체벌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 하는 교사들도 있다.그러나 이런 태도는 친일파들이 "일본놈들이 강압적으로 시키니 어쩔 수 없었다" 고 변명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비록 현재 교육환경이 열악하다 해도 체벌의 최종책임은 교사가 져야 하는 것이다.또 말 안 듣는 아이를 때려서라도 키워서 가르쳐 달라는 부모도 있는 모양인데 이래서야 그 매맞는 아이가 너무 가엾지 않은가.

   3.체벌로 인해 상해를 당한 학생이 생긴 사건에 대해 재판부가 가해 교사에게  실형을 내린 일이 있었다.그러자 교사들이 반발하고,교총(당시엔 교원노조가 없던 시절임)의 한 관계자는 "열악한 환경에서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교육에 임해온 일선 교사들이 이번 판결로 회의에 빠질 것을 생각하니 교육의 앞날이 걱정된다.사랑의 매가 형사고발의 대상이 된다면 교육계의 불행이다.체벌교사에 대한 유죄선고는 학생과 교사간의 인화를 해치고 교단을 황폐화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그러면 체벌을 해야만 학생과 교사가 인화 단결할 수 있단 말이냐.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아이들을 소중히 하는 정신이 없음을 보여준다.앞으로 결성될 교원노조는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4.교원단체는 교원의 이익보단 아이들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해야 한다.자유와 창조의 삶을 몸으로 익히고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생명을.

  절절이 어린이와 청소년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지는 글입니다.어쩐지 우리의 이오덕 동지가 분노하는 모습도 그려지는군요. 저는 폭력의 가장 큰 피해계층인 여성을 대변하는 여성단체들이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체벌문제를 진지하게 제기하여 체벌반대 운동을 성폭행 근절 운동과 함께 추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여성단체가 나선다 해도 교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교사들은 참여하지 않을 거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생명을 사랑하는 여성의 마음에 호소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거라고 믿고 싶습니다.물론 남자교사들도 참여한다면 더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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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6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06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8-11-07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려서 몸이 약해서 합기도장을 다녔어요. 처음엔 굉장히 무서웠죠. 무슨 이유에서인지 관장님은 저를 다른 수련생에 비해 생각해주곤 했는데요. 도장에서 자주 듣는말이 있었어요. 가정과 학교에서 부족한 인성교육을 신체단련을 통해 하겠다고요. 아마 지금도 많은 도장들이 이런 명분쯤은 걸고 있을거에요. 선후배간 질서를 흐리거나 지도자의 입회 없이 대련을 하거나 학교에서 사고를 치거나 하면 정말 몸이 떨릴정도로 맞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맞고나서 관장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게 불문율이었죠. 그러지 않으면 추가로 체벌이 가해졌어요. 그런데 당시만해도 수련생 부모들이 진짜로 그런걸 고마워했어요. 물론 허벅지가 시커멓게 되도록 맞은걸 보고 속상함을 넘어 분통터지는 부모들도 있었겠죠. 그런데 도장에 항의하러 온 부모는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지금 그렇게 때렸다가는 그 도장은 문을 닫게 될거에요. 그래서 예전의 도장 운영환경이 좋았다고 푸념하는 나이든 관장들이 꽤 있을거라 생각해보곤해요. 가혹하게 때리고도 당당했으니까요. 그런데 수련생들이 고개를 숙이는건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맞는것이 두려워서지 존경해서가 절대 아니거든요. 학교도 마찬가지죠 모든 교사들이 그러는건 아니지만 공포정치 처럼 학생들이 꼼작 못하는것 그게 교권이고 그런 상황이 교권이 확립된 환경이라는거죠. 도장이든 학교든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병영문화죠. 저는 2000년에 입대했는데 오히려 부대의 내무생활보다 도장이나 학교가 소위 '빡쎘죠' 졸업생들이 비록 자신은 재학 중에 그렇게 맞았어도 동생들은 그런 환경에서 공부하지 않도록 사회운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줘야 하는데 인습을 마치 금과옥조로 여기죠. 싸이월드 광장 이라는 게시판에 보면 종종 그런사람들을 볼 수 있죠. 이용자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인걸 생각해 볼 때 그들의 증상은 뇌경색이라 부르는게 적당한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08-11-07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체벌 자체보다 그것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풍토입니다.체벌은 일제시대때 뿌리내린 관행이 아닌 것 같습니다.일제 시대 때 학교 다닌 이들의 회고록을 보면 당시 명문 중학생들은 선배가 후배를 못 살게 굴고 기합주는 관행이 없었다고 합니다.엘리트 의식이 있었기 때문인지 그런 폭력적인 짓을 품위없다고 여겼던 모양입니다.교사의 체벌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학생들끼리 후배 기합주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학생들도 문제지요.교사들에게 배운 대물림입니다.
군대에선 하다 못해 구타금지 교육도 있고 가끔 가다 참모총장 지휘서신이라며 구타엄금 지시도 오지요.또 구타한 이는 처벌 받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만 학교현장에선 관행이라며 묵인되어 오고 있습니다.21세기에는 학교나 군대에서 구타가 없어질 줄 알았는데...

쟈니 2008-11-07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수학선생(저는 이사람에겐 '님'을 안붙입니다.)이 특정 아이를 혼내거나 때리곤 해서 늘 수업시간에 긴장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같은 반 친구가 곧잘 걸리곤 했죠. 그 친구가 교탁 앞에서 고개 숙이고 서있는데, 수학 선생은 때리기 전에 시계를 풀죠. 마치 나 이제 너를 패겠다 하는 시그널.. 그럼 앉아있는 아이들은.. 그저, "선생님 때리지 마세요"라고 말로만 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런데. 그 수학 선생은 우릴 보고 싱긋 웃고.. 아.. 정말 많은 시간이 흘러도, 그 사람은 기억에서 지울 수 없습니다. 아마 폭력의 속성이 무엇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된거 같아요.
그리고 폭력 앞에서 나를 비롯한 학생들은 참 무기력한 느낌 들었습니다. 저 사람이 왜 내 친구를 때리지? 그리고 왜 우린 그저 때리지 마세요 란 말 밖에 못하나... 이런..

노이에자이트님 글을 보니 갑자기 그 사람이 생각나네요.
학교 내 학생들간의 폭력이나 왕따도 결국, 그 시초는 체벌이겠죠.

노이에자이트 2008-11-08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종의 사디스트가 아니었을까요? 학생들이 만약 역도선수나 보디빌더의 힘을 가졌다면 그렇게 못했겠죠? 학교에 몇 명 씩 있는 미친 개였군요.그래서 이오덕 동지는 사랑의 매라는 말은 교육자만이라도 쓰지 말라고 했는데 결국 저 세상에 가신 후에도 그런 말을 계속 쓰는 세상을 보고 있을 것 같아요.교사의 폭력 앞에서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는 학생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가시장미 2008-11-15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오랜만에 들려서 밀린 페이퍼를 한꺼번에 읽어봅니다. ^^ 저도 체벌때문에 상처받았던 학생 중 한 명인데.. 아프거나 원망스럽거나.. 그런 생각보다는 매에 굴복해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 그런 현실이 혐오스러웠던 것 같아요. 정말 교육 현장이 그런 곳이라면 다시는 발을 딛고 싶지도 않았죠. 자퇴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으니깐요.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이 꿈이었어요. 지금도 다른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꾸준히 해 왔는데, 역시 선생이라는 일이 잘 맞고 끌리는 것 같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교직을 이수하거나 교대나 교육대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공교육현장에 몸을 담고 싶지 않아서였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어리석었다고 생각되는데, 학교라는 집단이 몇 사람의 생각이 바뀐다고 해서 쉽게 바로잡힐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아예 눈을 돌리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사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접하면서 매를 드는 일은 거의 없었기에 그 길이 낫겠다고 생각했죠. 지금도 그런 생각은 변함없구요..

우리나라 교육현장이 빨리 바로잡혔으면 좋겠네요. 체벌 문제 뿐 아니라 입시문제도 그렇구요. 오늘도 예전에 가르치던 고등학생 아이들에게 연락이 왔는데, 수능을 보고나서도 아이들이 많이 괴로워하더군요. 대학대학대학..목숨걸고 가는 대학인데, 사실 가고 나면 별 것도 없는 게 또 현실이잖아요. 거기까지 생각하면.. 참.. 슬퍼집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1-15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에 체벌에 관한 소식이 오르면 학생 시절 체벌이나 언어폭력으로 괴로움을 당했다는 사연을 댓글로 엄청나게 달더군요.체벌이 있는 한 이런 일은 계속 될 것입니다.
가시장미 님 같은 사연때문에 교사가 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수능 끝나자 광주 시내 번화가에 경찰차가 상주하기 시작했습니다.글쎄요...여하튼 저는 청소년보다 어른들이 더 싸가지 없는 것들이 많다고 여기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