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우물물을 길어먹을 때 여자들은 우물가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양동이에 담아 머리에 이고 운반했습니다.이 양동이는 함석으로 되어 있었고요.농촌에도 70년대 후반 들어 폼푸와 수도가 보급되면서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다니는 여인의 모습은 희귀한 풍경이 되었습니다.그런데 옛날 이야기를 읽어보면 동네 개구장이들이 물동이를 돌을 던져 깼다는데 함석이 깨질 리는 없죠.그러면 이 물동이는 양동이가 아니고 무엇이었을까요.
양동이는 동이에서 나온 말입니다.양동이 이전엔 동이가 있었는데 이것은 질그릇의 일종입니다.질그릇이란 단어는 많이 들어봤어도 이게 구체적으로 뭘로 만드는 건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쉽게 말해 흙을 구워 만든 것입니다.흙을 구워 원통을 만들고 양 옆에 손으로 운반할 수 있는 손잡이를 단 것이죠.그러니 돌을 던져 깰 수 있던 겁니다.당연히 동이는 양동이보다 더 무거웠으니 여기에 물을 담아 운반하는 여자들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동이를 지고 다니던 여자들은 양동이가 나오자 세상 좋아졌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동이처럼 생겼는데 훨씬 작게 만든 것이 방구리입니다.식당 같은 데서 뜨거운 국을 담아 내오는 질그릇보다 좀 더 크게 생긴 것이 바로 방구리죠.
물을 담는 용기 중에 대야와 다라이가 있는데 대야는 우리나라에서는 세수대야를 의미합니다.하지만 원래 다라이는 일본말로 테(손)와 아라이(씻다)의 합성어입니다.일본에서는 세수대야도 다라이라고 하고, 큰 통도 다라이라고 합니다.그런데 이 단어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좀 변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세수대야를 다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요즘 방송에서는 다라이는 일본어니까 순화어로 대야라고 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대야는 세수대야고 다라이는 흔히 붉은 색의 고무다라이를 말합니다.일본어의 원래 뜻이 어찌되었건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쓰고 있지요.스텐레스로 만든 다라이는 간단히 스뎅 다라이라고 합니다.순화어 쓴답시고 다라이를 대야라고 하면 아직은 이상한 사람 취급 받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이 대신 언제부터 양동이를 쓰게 되었을까요? 40년대나 50년대 소설에는 동이는 나와도 양동이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여기서 동이 앞에 붙은 양은 서양을 뜻합니다.양주 양담배 할 때의 그 양입니다.우리 고유의 것은 질그릇으로 만든 동이니까 함석으로 만든 새로운 동이라고 해서 양동이란 명칭이 나왔을 것입니다.
다라이라는 물건 역시 옛날엔 없었으니 일본어를 빌렸을 것입니다.우리나라에서는 대야는 세수대야를 의미하니, 다라이를 대야라고 순화하여야 한다고 학자와 방송에서 아무리 반복해도 일상생활에서 다라이라는 단어는 계속 쓰일 것입니다.다라이 할 때 사람들은 세수대야가 아닌 붉은 고무 다라이를 떠올릴테니까요.
양동이는 그 물건 자체가 거의 멸종된 상태라 일상생활에서 쓸일이 없지만 다라이는 지금도 유용한 물건이라서 방송언어와 일반적인 용법과의 괴리는 계속될 것입니다.아마 아나운서들도 일상 생활에서는 다라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까요? 그리고 혹시 요즘도 양동이를 본 적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