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중 연예인들에 얽힌 비화 등등을 좋아합니다.비틀즈나 롤링 스톤즈의 이야기를 하면 지적이고 카라의 구하라나 원더걸스의 유빈이 광주출신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면 저속하고 속없다는 소리를 하는 인간들의 사고방식 속에 든 이중구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꼬부랑 글씨 쓰는 나라들의 연예인들보다는 아무래도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더 친근하고 무엇보다도 이름들이 익숙해서 좋지요.그중에서 요즘 인기있는 소녀시대는 동아리들의 이름을 다 아는데 저는 수영이라는 누나가 겁나게 이쁩디다.올해 수능을 본 모양인데 여고생이건 여대생이건 이쁘면 무조건 누나라고 부르는 제 특유의 호칭 덕에 누나가 된 처자이지요.허리가 가늘고 다리도 늘씬하여 옷거리가 좋기도 합니다.올해 6월에 광주에 왔는데 사회를 보더라구요.거리가 너무 멀어서 잘 안보이니까 안타까웠습니다.그런데 수영에 대해 인터넷에 뜨는 댓글을 보면 필리핀 사람 같이 생겼다느니 동남아 스타일이라느니 하는 글이 있던데 이게 칭찬은 아닙니다.아마 우리 수영 누나가 좀 까무잡잡해서 그런 모양인데 언제부터 동남아 사람처럼 생겼다는 말이 비하하는 표현이 되었을까요...상당히 오래된 관행이나 전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 알고 보면 그다지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우리나라 회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삼겹살도 대중화된 것은 3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마찬가지로 동남아 사람들이 한때 우리나라에서 선망의 대상조차 된 때가 불과 얼마 안 된 과거입니다.
1977년 무렵 동경 가요제가 한창 인기를 얻은 때입니다.데비 분이 "You Light up My Life"라는 노래로 상을 타서 우리나라에도 한창 애창되던 거의 동시에 필리핀 남자 가수 프레디 아길라가 "아낙"이라는 노래로 역시 큰 인기를 모읍니다.이 노래는 가출해 버린 아들을 그리는 아버지의 심정을 그린 노래입니다.필리핀은 영어가 거의 공용어가 된 나라이지만 그 가수는 타갈로그 말로 이 노래를 불렀지요.애절한 멜로디를 좋아하는 이들의 사랑을 받은 이 노래는 미국이나 유럽의 백인가수들의 노래 못지 않은 인기를 얻어 우리나라 가수들이 번안해서 부르기도 했습니다.그때 가출한 청소년들이 이 노래를 듣고 귀가하기도 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지요.그때 청소년들 역시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으며...문제아들이 많고...선생 알기를 우습게 안다...등등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이제 그들도 40대가 넘어 자기들이 듣던 똑같은 말은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이때 필리핀은 그 유명한 마르코스 대통령 시대.
1990년대엔 프로축구와 프로농구가 생겼습니다.80년대의 프로야구,프로씨름의 인기를 보고 생긴 것이지요.90년대 초반 경, 외국에서 온 축구 선수 중에 태국 출신의 피아퐁이 대단한 인기를 모았습니다.실력도 있는데다가 용모가 준수했지요.요즘 같으면 꽃미남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실력도 좋고 미모도 되니 어딜 가나 인기와 환호성을 몰고 다녔습니다.2000년대에 그와 비길 수 있는 축구선수는 샤샤 정도가 있었지요.피아퐁이 인기를 얻던 시대만 해도 그가 태국인이라 해서 비하나 무시를 하던 사람은 없던 시절입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인기 외에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의 피플파워를 부러워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때는 1986년 2월,필리핀에서 민중들이 대규모 시위로 마르코스를 몰아낸 대사건이 일어났습니다.이미 1983년 가을, 정적인 아키노를 암살하여 정권의 말기적인 모습을 보인 마르코스는 결국 후원자인 미국으로서도 어떻게 도움을 줄 형편이 안 될 정도로 무리를 거듭하다가 물러나게 되었지요.당시 필리핀의 정신적 지도자라는 하이메 신 추기경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위대 편에 서서 엄청난 지지와 인기를 모았고 이 소식을 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를 필리핀의 정의 구현사제단 정도를 이끄는 지도자로 보기도 했습니다.당연히 당시 5공화국의 전두환은 뭐냐....하는 내외의 시선이 따가웠는지 정부는 필리핀과 우리는 다르다면서 괜히 도둑이 제발 저린 듯한 논평을 내는 등 수선을 피웠지요.게다가 우리도 그 이듬해인 1987년 6월 항쟁으로 필리핀처럼 독재자를 몰아낼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만 결국 6,29선언으로 어정쩡하게 끝나버렸고 전두환과 똑같은 정당에서 나온 노태우 후보가 대선에서 이겨 대통령이 되고 말았습니다.그러자 죽은 아들 불알 만지기 식으로 이한열 장례식 때 청와대로 밀고 갔어야 했다는 둥,온갖 가정법이 난무했지만 이런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우리는 필리핀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심지어 어떤 이는 한국사람들은 필리핀 사람들 똥구멍이나 핥아줘야 한다는 극단적인 말까지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아키노의 부인인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이 된 뒤 미군기지가 있던 수빅에서 미군들을 내보내자 민족자주를 강조하던 이들은 더 부러워서 한마디씩 했습니다.필리핀은 미군도 보내버렸네....주한미군은 언제나 나가나....설마 21세기에도 저들이 머물러 있는 건 아니겠지...에이...아무리 그래도 21세기엔 물러가겠지...등등...필리핀이 부럽다...등등...
그러면 언제부터 동남아에 대한 비하와 멸시가 나타나기 시작했을까요.그것은 1990년대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 공단에 등장하던 무렵이었습니다.힘들고 어려운 일에 종사하던 그들을 보면서 뭔지 모를 우월감을 가지고 무시하기 시작하지요.예전에 호남선 타고 서울역 내리면 역전에서 지게 지고 다니면서 무거운 짐 들어주고 돈 받는 늙수구레한 남자들은 거의 전부가 전라도 출신이었습니다.그외에도 밑바닥 직업군에도 숱한 전라도 사람들이 있었지요.지금은 뉴라이트 지도자였던 김진홍 목사가 젊은 시절 빈민운동을 할 때 서울의 빈민가는 거의 대부분 전라도에서 올라온 이들이 살고 있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었습니다.그러면서 받았던 온갖 멸시와 소외,무시를 이젠 동남아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받게 된 것이지요.이와 동시에 연변에서 온 조선계 중국인들에 대한 시선 역시 거의 동남아 이주 노동자를 보는 시선과 비슷하게 되어갑니다.1995년 무렵 한 월간지에는 사장님 때리지 마세요 라는 이주 노동자들의 실태를 담은 르포가 나오기도 합니다.
동남아 스럽다는 말이 촌스럽다는 뜻을 담게 된 것은 2000년대를 들어서 거의 뿌리를 내렸습니다.특히 소개팅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이 말을 하면 그날 소개팅은 종치게 되지요.그에 비례해서 최상의 찬사는 뉴요커나 밀라노 스타일이 되었습니다.저는 뉴욕하면 액션영화에서 본 빈민가가 생각나던데 언제부터 뉴요커가 멋지고 세련된 사람의 상징이 되었는지 거시기하더군요.아침 겸 점심으로 먹는 것을 아점이라고 했는데 언제부턴지 꼬부랑 말을 써서 브런치가 되더라구요.여하튼 그에 반비례해서 동남아 스타일은 점점 촌스러움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고 맙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그렇게 큰 취급을 안했지만 올해 여름엔 예전 60년대 말 서독에 파견된 우리나라 광부와 간호원(그때는 간호사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지요)들이 고국을 방문해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외국에서 온 노동자들을 학대한다는 말을 듣고 정말 가슴이 아팠다.우리나라도 어려운 시절 외국에 가서 돈벌던 시절이 있었다.그런데 이제 좀 먹고 산다고 예전 우리와 똑같은 심정으로 우리나라에 온 사람들을 이렇게 대해서야 되겠는가.동포 여러분의 자성을 호소한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알아야 하지 않느냐는 소박한 이야기였습니다.무슨 어려운 용어가 필요없지요.서독광부...간호원...아마 누구보다도 그들의 호소였기에 더 절실했겠지요.
사족삼아 얘길 하자면 제가 미인에 관해서 꽤 깊이 연구했기 때문에 미스월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압니다.아시아 권에서 네명이 나왔는데 그중 두명은 필리핀인이고 두 명은 일본인입니다.객관적으로 봐도 동남아인들의 눈이 크고 둥글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에 비해서 더 점수가 후한 모양입니다.우리가 동남아 미모에 대해 가진 편견이 우리가 좀 잘살게 된 뒤에 나온 허위의식이 섞인 우월감에서 나온 것임을 이런 데이타를 통해 알게 됩니다.소녀시대의 수영이 필리핀 사람을 닮았다는 말이 비하하는 뜻을 담지 않는 시대가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