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람의 행복
어제 토요일, 사십여 명 남편의 고등학교 동문모임을 저희 주관으로 치르느라 거의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눈도장 찍는 것을 거를 수는 없어서 새벽기도회에 갔다가 오늘은 좀 일찍 돌아와서 잠깐 눈을 붙였습니다.
두어 시간 잔 것 같습니다.
제가 종횡무진 쓰던 거실을 집에 온 아들녀석에게 뺏기고, 저는 서재방으로 밀렸습니다.
사실은 이 공간은 우리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입니다.
지난 봄, 이사를 와서 커튼을 달았는데, 새로 장만하지 않고 쓰던 것을 그대로 달았더니 두 번 접힌 단을 뜯어내어도 이렇게 깡중하니 20센티는 모자랍니다.
그전 같으면 새로 해서 달았을 터이지만 이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좀 모라라면 어떻습니까?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수필가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이 떠오릅니다.
실직한 남편과 직장에 다니는 아내. 그 아내를 위해 남편은 점심상을 준비합니다.
아내는 아침밥을 거르고 출근을 했습니다.
쌀은 어떻게 마련하여 흰쌀밥을 했지만 반찬까지는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따뜻한 쌀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메모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잠자리에서 눈을 뜨니 그 깡충한 거튼 아래로 창틀 가득 파란 하늘이 걸려있었습니다.
책상 뒤로 겨우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파트 3층이지만 마치 <소공녀>의 세라가 쓰는 그 다락방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제, 남편 동문 부인들과, 서빙 하는 중간중간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좁은 공간에서 좀 모자라는 듯이 살아야겠다고들 했습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고, 있다고 해도 고등학생이니 하루 종일 집에 없습니다.
방도 여러 개, 텔레비전도 두 대 이상이니 각기 다른 방에서,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본다는 겁니다.
퇴근시간들이 들쑥날쑥이니 부부지만 밥도 따로 먹을 때가 많다는 겁니다.
너무 풍족하게 잘 사는 것이 문제가 되는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었습니다.
평균수명이 엄청 늘었는데 그렇게 삼사십 년을 어떻게 더 살 거냐고, 그렇게 사는 것은 너무 슬픈 거 아니냐고, 제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모두들 다소 난감한 얼굴들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부부가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물리적으로도 타이트한 환경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우스개 소리 하나 하고 지나갑니다.
아무리 잘 살아도 절대 두 개를 사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냉장고입니다.
우리 집 이야깁니다.
열한시 쯤 책을 읽고 있던 저는 우유라도 한 잔 마실까 싶어서 주방으로 갑니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우리 집의 늙어가는 ‘새나라의 어린이’는 그 무렵 이미 한숨자고 물을 마시러 역시 주방으로 옵니다.
주방에서 부부는 조우를 했습니다.
“어머, ㅇㅇ씨(남편의이름), 여기서 뵙네요. 반가와요.” 했더니
지구력은 있어도 순발력은 ‘꽝’인, 더구나 잠에 취한 남편은 ‘이 여자가 미쳤나?’ 하는 표정으로 잠시 저를 바라보더니 한다는 소리가 “지금이 몇 신데 아직까지 안자고 있어?”
가끔은 이 작은 다락방에 남편을 초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둘이 나란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 뛰던 시절을 마음껏 그리워해보아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