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남편

두 주일 쯤 전에 남편의 동문회를 우리 주관으로 치렀다.
부부동반 모임이라 오십 명은 족히 되었다.
멍멍 두 마리에 삼계탕 열 다섯 마리를 먹어치웠다.
수은주가 최고로 올라간 날이었다. 

그저께는 시누이가 계원들을 이끌고 입성했다.
우리가 사는 곳은 물 좋고 산 좋은 곳이다.
그래서 휴가철이면 나도 덩달아 바쁘다.
남편이 한 번 오라고 했더니 작년에는 네 명이 와서 하루 밤을 묵어가더니
이번에는 여덟 명이 와서 이틀을 묵고 갔다.
물론 펜션을 얻어줬다. 저녁 밥도 한끼 해줬다.
아는 사람의 집이기는 하지만 이 휴가의 피크에 공짜일리는 만무할 터.
흉을 좀 보자면 일 년 가도 전화 한 통 없다.
묵고 가고 잘 지내고 간다던가, 집에 가서라도 잘 지내고 왔다라던가 전화 한 통 없다.
남편은 예의 없는 것은 질색인 사람인데 자기 피붙이니까 별말 없다
한다는 말이 “누나가 사회생활을 안해봐서 몰라서 그래. 심성은 착하지.”
그전 같으면 “착한 사람 다 더위 먹어서 죽었나?” 했을 텐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대꾸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넘어갔다. 

카드를 가지고 가서 3개월 할부로 방값을 결재하고 오니
남편이 냉동실을 열어보라고 했다.
마트에서 이것 하나 사들고 걸어오다가 아는 사람을 열 명도 더 만났단다.

나름, 귀여운 남편이다.

그리고 이건
43만원짜리 아이스크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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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8-0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한편 속이 쓰리셨겠지만 더위사냥에 더위가 날아가셨겠어요. 귀여운 남편이란 제목에 걸맞네요.ㅎㅎ

gimssim 2010-08-05 22:21   좋아요 0 | URL
남편은 제 눈치 보느라 펜션에 방값 계산 했냐고 물어보지도 못합니다.
당분간 눈치 좀 보게 그냥 둘겁니다.ㅎㅎ

마녀고양이 2010-08-05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 분개해서 읽다가 마지막 43만원에서 빵 터져버렸네요.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성의가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누군가는 신경써서 챙겨주는건데, 나 몰라라 하는 분들 참 많아요. 딸아이가 윗집 아이랑 학습지 수업을 받는데, 매번 우리집에서 하려면 신경 많이 쓰이거든요, 과학 준비물도 다 제가 준비하고.. 그런데 그 엄마 고맙다는 말 한번 없습니다. 제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겠죠? ^^

gimssim 2010-08-05 22:23   좋아요 0 | URL
멀리 보면 내가 베풀면 나도 그만큼 또 받게 되는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러기가 쉽지가 않아요.
저흰 휴가비 100만원쯤 나올텐데, 벌써 반은 날아간거죠.
좋은 일에 쓴 거라 위로하고 넘어갑니다.

양철나무꾼 2010-08-05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남편에게 시누이 정신과 상담을 받아 보게 하라고 권했다가,
(제 직업 상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처지였는데...)
이혼할 뻔 했습니다.

부부보다는 피붙이가 조금 앞인가 봅니다~

그래도 아는 사람 열명도 넘게 만나면서 사수한 저'아이스크림'맛나겠는걸요~^^

gimssim 2010-08-05 22:24   좋아요 0 | URL
이틀이나 지났는데 뭔 심뽄지 아직 안먹고 있어요.
찬 것을 워낙 싫어해서이기도 하지만 남편이 알면 '반항'하는 거라 생각할 걸요. ㅎㅎ

pjy 2010-08-05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팔을 안으로 굽는거죠~ 흥! 췟~췟~ 근데 왜 귀엽다는거지? 이러다가,,,

아이구야~ 대단한 아이스크림에서 캬캬캬캬캬~ 그렇죠~ 귀여운 남편입니다요

gimssim 2010-08-06 07:15   좋아요 0 | URL
글을 쓰면서 눈믈 한 방울 흘렸어요.
작년 겨울 서울에서 친정 오빠가 내려왔는데
명색이 글쟁인데 분위기 좋은 펜션이라도 얻어줬어야 하는데
잠만 자고간단 구실로 5만원짜리 모텔을 잡아줬었거든요.
물론 바다가 보이는 곳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게 뭐야, 병~신" 머리 한 대 쥐어박았어요.

그 '귀여운' 남편은 제 눈치 보느라 고분고분 합니다. ㅎㅎ

양철나무꾼 2010-08-06 13:53   좋아요 0 | URL
중전님,이 댓글 보고 '동변상련'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도 또르르 눈물 한방울 흘렸습니다.

때로는 눈물 한방울 흘리면서 위로가 되는 마음도 있나봅니다.

중전님,쥐어 박으신 머리 제가 '호~'해 드릴게요,헤~^------^

pjy 2010-08-06 13:55   좋아요 0 | URL
여기서 '귀여운' 에 대한 안타까운 진실이 드러나네요~~
아주 멋지고, 좋은, 이쁜, 환상적인, 착한 등등을 제외한 나머지가 귀여운거죠^^;
눈치보고 있으니 다른? 뇌물이 들어올때까지 쫌 더 냅두시죠!

gimssim 2010-08-06 19:3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일반적으로 귀여운 것 하곤 거리가 멀죠,
'나름'이란 단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걸요.

blanca 2010-08-06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3만원 ㅋㅋㅋ 중전님 그 심정 십분 공감가면서 귀여우시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희 남편은 주로 비비빅으로 저를 달래려 해요^^;;

gimssim 2010-08-06 19:40   좋아요 0 | URL
대한민국 아줌마들은 다 공감할 걸요.
다음달부터 용돈에서 5만원씩 차감해 나갈까 고려중입니다.
하는 거 봐가면서 ㅎㅎㅎ

순오기 2010-08-07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3만원짜리 더위사냥~~~~~ 눈물겨워요.
아니 동생도 아니고 누나인데~~ 그걸 모를까요?
참 어이없는... 하긴 나도 누군가의 시누이니까 입 다물어야지.ㅜㅜ
남편분, 애교있으시네요. ㅋㅋ

gimssim 2010-08-08 08:03   좋아요 0 | URL
더운 여름에 속 좀 터집니다.
'가면서 간다고 전화 한통 못해' 한마디 했다고 삐쳐 있어요.
그렇다고 겁낼 대한민국 아줌마도 아니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