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
위베르 지음, 케라스코에트 그림, 윤진 옮김 / 인벤션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매주 일요일마다 도서관에서 간다. 나에게는 주간행사가 되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이렇게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은 도서관이 유일하지 않은가. 우리 같은 책쟁이들에게 도서관은 축복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좋은 책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특정하게 읽어야 하는 책(?)이 없다면 나는 도서관에서 주로 금방 읽을 수 있는 그래픽노블들을 선호한다. 오늘은 위베르의 <보테>라는 특이한 그래픽노블을 만났다. 다 읽고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절판된 책이라고 한다. 오호 그것 참. 책쟁이 눈에는 그렇게 절판된 책들만 보이는가.

 

남쪽나라라는 곳에 모뤼(morue:불어 대구)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이 아가씨는 스스로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도 생선 벗기는 일만 해서 몸에서 대구 비린내가 나서 이름까지도 모뤼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녀는 어머니와 대모 밑에서 하녀처럼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았다. 약간 신데렐라 필이라고나 할까. 영주님의 행차 구경도 하고 싶은데 악랄한 대모는 그럴 시간에 일이나 하라고 핀잔을 주었던가.

 

자신의 이런 신세를 한탄하고 살던 어느날, 모뤼는 맙이라는 요정을 만나 자신의 신세를 말한다. 아 그 때 요정이 개구리 모양새를 하고 있었던가. 암튼, 맘씨 좋은(?) 요정은 모뤼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모뤼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그런데 요정의 축복을 살펴 보면, 그것은 상대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했던가. 다른 이들과 있을 때, 더 아름다워 보인다는 말이었을까.

 

모뤼는 이 아름다움을 밑천으로 신분상승의 꿈마저 이루게 된다. 대모의 남편을 비롯해서 동네 모든 남자들이 모뤼에게 들이대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그래. 대모를 비롯한 여자들은 작당해서 모뤼를 해치려고 한다. 심지어 모뤼 모녀가 도망친 나무에 불지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무섭지 않은가. 못생겼을 때도 당하던 핍박의 강도는 아름다워 진 후에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결국 모뤼의 어머니는 나무에서 떨어져 돌아가시고, 모뤼마저 죽을 위기에 등장한 지역 영주 외드. 외드가 모뤼를 보고 사랑에 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니던가.

 

부엌데기에서 어느 순간 지역 영주의 부인이 된 모뤼는 이름마저 보테(Beaute: 불어 아름다움)으로 바꾸고 꿈에 그리던 신분상승을 성취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 보테가 마냥 행복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맙 요정이 등장해서, ‘아름다움을 자극한다. 외드는 보잘 것 없는 영주이니 보다 나은 사람을 고르라는 유혹이었다. 징징대는 보테의 성화에 외드는 돈을 벌고, 영예를 얻기 위해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성을 떠난다.

 

보테의 초상화 제작을 맡은 화가마저, 화폭에 그녀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가 없다고 좌절하고 스스로 목을 매고 만다. 이거야말로 아름다움의 축복이 아니라, 비극의 제조기가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제작된 보테의 초상화가 남쪽나라 막상스 왕의 손에 들어가고, 예외 없이 막상스 왕마저 아름다움의 포로가 되고 만다. 아니 누구든 보테를 보는 순간, 그녀의 아름다운 매력에 노예 같은 포로가 되어 버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조금 클리셰이 같이 들린다. 기존의 북쪽나라에서 온 왕비를 내친 막상스의 새로운 왕비 보테는 자신의 남쪽나라 백성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문제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재원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나 자신의 여동생이 부정하다는 이유로 남쪽나라 궁정에서 내쳐져서 고국으로 돌아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자, 뿔이 난 북쪽나라 임금인 상글리에(sanglier: 불어 멧돼지) 왕은 남쪽나라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미남자에 남부러울 것 없었던 막상스 왕은 그저 새로운 왕비 보테의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나라가 망하던 말던 상관없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을 연출한다. 게다가 질투에 눈먼 막상스 왕은 자신을 따르는 기사들은 물론이고, 대신들도 질투해서 어처구니 없는 패착을 저지른다. 그나마 자신의 누이 클로딘 공주(그녀는 보테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름답지 못하다)의 조언으로 왕국이 유지되지만, 결국 전쟁에 패해 상글리에에게 죽고 만다.

 

아니 아름다움이 이렇게 비극의 씨앗이 된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전쟁이 시작된 이유 중의 하나가 보테를 보게 된 상글리에의 억누를 수 없는 그런 욕망이 아니었던가. 전쟁 포로가 되어 자신의 딸 마린과 함께 북쪽나라로 끌려간 보테. 그리고 그런 보테를 잊지 못해, 남쪽나라에 남아서 클로딘 공주와 연합해서 북쪽나라에 대한 반란을 획책하는 외드 영주의 모습이 그저 애처로울 따름이다. 모든 걸 다 쥐고 흔들던 상글리에 역시 보테의 아름다운 저주에 걸려 패가망신하게 된다.

 

이 기이하면서도 오묘한 매력을 품고 있는 그래픽 노블 <보테>가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아름다움이 어쩌면 축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그런 말일까. 아름다움으로 모든 걸 이룬 보테의 신세를 보면 그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거두어 달라는 보테의 요청에, 맙 요정인 비꼬는 말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지적하기도 한다. 무언가를 희망하지만, 그 희망이 이루어지면 또 그것으로 족하거나 넘친다고 불평을 하는 게 우리네 인간의 모습이라고 요정은 말한다. 어쩌면 이게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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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9-04 16: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도서관가면 엄마는 책 읽고 그 옆에 아이들은 문제지 풀고 있어요 ㅎㅎ
같이 책 읽으면 좋을 텐데요.
이 책도 관심 가네요.

레삭매냐 2023-09-04 18:53   좋아요 2 | URL
우연히 얻어 걸린 책인데
아주 재밌게 읽었답니다 :>

저희 동네에 새로운 그림책박물관
이라는 곳이 생겼다고 하던데
주말에 한 번 가볼까 합니다.

미미 2023-09-04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쾌적하고 시원한데다 자리도 많은데 뉴스 기사 보면
카공족들이 민폐라고 하더군요. 도서관이 부족한 지역인지...

레삭매냐님 리뷰 읽으면서
얼마전에 본 <마스크걸>이 생각났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다시금 되씹게 하는 스토리네요.^^

레삭매냐 2023-09-04 18:54   좋아요 1 | URL
저희 동네가 책으로 유명한(?)
동네인데 몇 년 전에 도서관 리모델링
으로 홍역을 치렀답니다.

기존처럼 칸막이 열람실 유지를 해달
라며, 소송전까지 갔었죠.
도서관이 언제부터 독서실이 되었는지
답답할 노릇입니다.

미미님의 말씀을 다시 곱씹어 보니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가 떠올랐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