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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 ㅣ 생각하는 숲 1
셸 실버스타인 지음, 이재명 옮김 / 시공주니어 / 2017년 1월
평점 :
요즘 도통 책읽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이라고 해두자. 그래서 이럴 때에 치트키로 보통 쓰는 게 그래픽 노블이다. 뭐 동화도 좋다. 아니 내가 이럴 때마다 읽는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싱글맨>도 좋을 것 같다. 아니 인생책이라 할 만한 윌라 캐더의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도 좋지 않을까.
오늘은 카페꼼마에 들렀다가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만났다. 한 50쪽 정도 되던가. 무려 천 만이나 되는 사람이 읽었다고(?) 혹은 팔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 나중에 알게 됐다. 그림책으로 글보다 여백이 더 많은 책이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어느 소년과 나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소년은 나무에게 무언가를 끊임 없이 요구한다. 그 모습에서 아이 시절에 부모님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려서는 현미경을 사달라고 졸랐더랬지. 그렇게 얻어낸 현미경으로 많은 관찰들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그 다음에는 전축을 그리고 그 다음에는 30권 짜리 동아대백과사전을 사달라고 졸랐었다. 뭐 대충 그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정말 원했던 건.
소년은 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그리고 나무 타기를 즐기면서 성장해간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대략 다섯 번 정도의 만남 정도였나. 두 번째부터 소년의 구체적 요청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 같다. 돈이 필요한 소년에게 나무는 사과를 내주었다. 나무에게 얻은 사과를 가지고 소년은 대처에 나가 사과를 팔아 돈을 벌었나. 그 다음에 장년이 된 소년은 집이 필요하다고, 이것 봐라 점점 더 스케일이 커진다. 우리 어머니는 그걸 큰 도적이라고 표현하셨던가.
뭐든 말만 하면 아낌없이 내주는 나무는 무리한 요구에도 절대 ‘노’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네 번째 노년이 된 소년은 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거 정말 선 넘는게 아닌가? 결국 나무는 통째로 자신을 내준다. 노인이 된 소년은 베어낸 나무로 배를 타고 떠난다. 순간, 나는 이 이야기에는 돌아옴과 떠남의 서사가 있음을 파악한다. 그리고 더불어 성경에도 등장하는 탕자 아들에 대한 서사도 동시에 연상됐다.
아직 끝나지 않았나? 뭐가 더 남았나 싶은 순간에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된 소년이 등장한다. 아주 바닥까지 긁어갈 셈인가.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 밑둥에 앉아 지난 세월을 회상하는 소년. 이거야말로 우리네 모습과 판박이가 아닌가 말이다. 배은망덕한 소년에 나를 대입하면, 그대로 해답이 된다. 나는 그걸 인정하지 않을텐가.
‘하~’하는 짧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막을 새도 없이. 그게 바로 나의 모습이었구나.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부모에게 무언가 받아내는 걸 당연스럽게 여기는 소년이 바로 나였구나. 부모가 되어 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했던가. 절절히 옳은 말씀이다. 지난 주말에 여주 곤충박물관을 오가느라 고생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 넉다운이 되어 누워 있는데, 평소에 그런 말을 하지 않던 꼬맹이가 운전하느라 수고했고 비싼 사마귀 곤충표본을 사줘서 고맙다고 하는데, 좀 찡했다. 나도 그동안 아낌없이 나눠 주는 나무들에게 충분히 받아먹었으니, 이제는 또 나눠줄 차례가 되었구나 싶었다.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