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그네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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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다 읽고 나서 북글을 쓰기 전에 두 가지를 하고 싶었다. 하나는 1989년에 코스타 가브라스가 발표한 <뮤직 박스>라는 영화를 보는 것과 다른 하나는 최근에 출간된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평전을 읽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전자는 가능했지만, 후자는 시간 부족으로 미처 하지 못했다. 그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와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데뷔작 <저지대>를 통해 그녀의 작품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았는데, 이번에는 그녀의 가장 최신작인 <숨그네>를 만났다. 보통의 독서 속도라면 금세 다 읽으리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깨져 버렸다. 그녀의 글에 담긴 숨결의 무거움을 탓이었을까? <숨그네>를 읽는 동안, 나의 책읽기 진도는 여느 때와 비교해서 현저하게 느려졌다. 짤막한 이야기가 빚어내는 편린을 긴 호흡으로 읽어야 했다.

 

<숨그네>의 주인공은 헤르타 뮐러와 공동 작업을 하던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문학적 페르소나 레오폴드 아우베르크다. 히틀러의 충실한 파시스트 동맹국으로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루마니아는 2차 세계대전 말기, 서쪽으로 맹렬하게 진격하던 러시아에게 점령당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살던 독일계 주민을 모두 러시아 수용소로 이송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겨울바람이 그렇게 매섭게 불던 어느 날, 레오를 포함한 일단의 작센족들은 가축 화차에 실려 러시아의 모처로 끌려간다.

 

그리고 앞으로 5년간 레오는 배고픈 천사심장삽을 벗 삼아, 할머니의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말을 주문처럼 곱씹으며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선다. 한창 자랄 나이의 청소년에게 목숨을 겨우 연명할 정도의 빵과 양배추 수프는 턱없이 부족한 음식이었다.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분신인 레오는 허기를 이기지 못해, 음식쓰레기를 뒤져 감자껍질을 집어 먹는다. 아마 그는 한 개의 감자조각을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기꺼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팔아넘겼을 것이다. 그만큼 그가 가졌던 허기를 달래기 위한 욕망은 절박했고, 어떤 방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크기에 비례해서 그의 절망은 커져만 갔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지상과제는 그들이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향수마저도 사치로 치부해버린다.

 

먹는 것만큼이나 생존을 위해 절실하게 필요했던 입성 또한 레오에게는 큰 걱정거리였다.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차례로 죽어나가는 사람의 옷을 벗기는 데 추호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인간성 말살의 현장을 헤르타 뮐러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들에게 닥친 걱정은 시체가 사후경직을 일으키기 전에 신속하게 쓸 만한 옷가지를 챙기는 것이었다. 도대체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 작가는 생생한 육성으로 독자에게 들려준다. 이런 비참함 때문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은 점점 더디어져 간다.

 

한편, 생존을 위한 어떤 기술도 가지지 않은 레오는 수용소의 기계적인 노동을 자신이 그리는 판타지 속의 예술로 승화시켜 나간다. 그런 판타지야말로, 권태와 무료가 지배하는 수용소 생활을 맨 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을까? 이제는 친근해진 배고픈 천사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주위를 맴돌고 먹는 것과 추위를 피하기 위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만이 악다구니를 부리는 수용소라는 폐쇄적 공간이 주는 공포는 종종 한밤중에 간수에게 불려나가 담벼락에 서는 섬망(譫妄)으로 이어진다. 가족이라는 희망의 끈은, 어느 날 어머니가 보내준 대리형제의 사진으로 산산조각이 난다. 갓 태어난 자신의 대리형제가 가족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대체할 거라는 망상이 레오를 괴롭힌다. 과연 이런 참혹한 수용소의 현실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고향으로 복귀하더라도 과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오랜 교정 생활 끝에 출소한 늙은 재소자가 사회를 등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런데 정말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궁금하게 했던 것은, 레오와 다른 작센족들이 과연 아무 죄 없이 러시아로 끌려갔을 까라는 의문이었다. 전 오스트리아 대통령이었던 쿠르트 발트하임, 현 로마 교황 베네딕토 16세 그리고 좋은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귄터 그라스의 과거에 드리워진 나치의 그림자가 버티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더더욱 <숨그네>의 북글을 쓰기 전에 코스타 가브라스의 <뮤직 박스>를 보고 싶었다. 자신의 가족에게마저 자신의 끔찍한 전쟁범죄를 철저하게 위장한 어느 파시스트 전범의 이야기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나에게 전후 억울하게러시아의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의 고통을 당한 무고한 양민들에 대한 동정심과 더불어 나치 군대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조국의 재건을 위해 부족한 노동력을 벌충하기 위해 점령국 주민들을 강제 동원한 러시아에 대한 이해라는 양가적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도 17세 레오가 체험한 5년간의 수용소 생활을 단순하게 시대의 비극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오스카 파스티오르가 짊어져야만 했던 버거운 삶의 무게가 그대로 전이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숨그네>를 다 읽고 나서, 자꾸만 미뤄오던 숙제를 다 마친 것 같이 후련했다. 뉴욕타임스에서는 헤르타 뮐러는 귄터 그라스 이후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 작가(German writer)로 소개를 하고 있는데, 왠지 그녀의 조국 루마니아가 휘발해 버린 느낌이 들어서 아쉬운 마음이다. 언젠가 독서모임에서 작가의 정체성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 독일 작가로 귀결이 되었던 것 같다. 숨그네, 심장삽, 볼빵 같이 그녀가 구사하는 독일식 조어(造語)가 과문한 독자에게 원전 그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이 작가의 책임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노벨문학상 수상작, 역시나 어렵다.


[뱀다리] 9년 전에 노벨상의 후광으로 그녀의 작품들이 연달아 5권 소개가 된 뒤, 저자의 신간이나 구간 출간소식이 들리지 않아 아쉽다. 그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후자의 경우에는 신간이 계속 나오는 데도 소개가 되지 않아 더 그렇다. 창비에서 올 12월에 대작 <까떼드랄에서의 대화>가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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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9-10-02 0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지대‘를 읽었는데 딱히 기억나는 내용이 없네요. 제 독서가 워낙 깊은 읽기가 부족해서 늘 아쉽습니다. 지난 주말에 읽은 ‘그날의 비밀‘을 보니 직접적인 학살이나 유대인말살정책에 관여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상당수의 ‘전범‘들이 집유로 풀려나서 잘 살았더라구요. ‘작센족‘들의 유무죄에 대한 의문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레삭매냐 2019-10-02 09:27   좋아요 1 | URL
작센 족이라는 이유로 무고하게
러시아 수용소로 끌려 가게 되었다
고 하는데...

안슐루스나 나치의 체코 병합 당시
연도에서 환호하던 독일계 주민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습니다.

헤르타 뮐러의 책들은 역자가 모두
달라서인지 몰라도 같은 작가가 쓴
책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뒷북소녀 2019-11-05 1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리커버판. 저는 리커버판 별로 안 좋아해서요...
이 작품은 저도 조만간 읽어보려고 찜해뒀던 책이랍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일시적인 관심보다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것 같아요.
독자도, 출판사도요.^^

레삭매냐 2019-11-08 16:52   좋아요 0 | URL
ㅋㅋ 사실 이 리뷰도 표지갈이
아니 리뷰갈이랍니다.

헤르타 뮐러의 책들은 노벨상 수상
즈음해서 왕창 읽었었는데 저하고
는 맞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게다가 그 뒤에는 신간 소식도 없고.
아마 그렇게 가는 모양입니다...
 
남쪽바다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 지음, 안금영 옮김 / 사람과책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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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솔직히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다음에 읽어야 할 책들이 줄지어 서 있고, 또 읽다만 책들도 순서대로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지금 독서를 와중에도 하는 마당에 그런 고민이 끼어들 틈이 없다. 게다가 읽던 책에서 새로운 미지의 작가나 책이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바로 점프를 감행한다. 지난주에 만난 산티아고 감보아의 <밤 기도>에서 나는 스페인 출신 작가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을 알게 됐다. 아니 어쩌면 그전에 볼라뇨를 통해 알게 되었을 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내에 소개된 책이 두 권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23년 전에. 한 권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지만 다른 한 권은 절판된 책이었다. 그리고 바로 중고로 주문했다. 어제 내 손에 들어왔고, 바로 읽기 모드로 돌입했다. 몬탈반의 1979년작 <남쪽 바다>와의 만남이 시작됐다.

 

시작은 바르셀로나의 어느 악당들의 폭주다. 짧은 추격전은 끝나고,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된다. 저명한 재벌급 인사 스튜어트 페드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프랑코의 죽음으로 기나긴 독재가 끝나고 바야흐로 스페인 민주화가 시작된 직후로 보인다. 고인의 미망인 미마와 변호사가 사립 탐정 페페 카르발로(진짜 주인공이다!)를 찾아와 사건을 의뢰한다. 그런데 그들은 카르발로에게 살인사건의 원인이나 이유가 아닌 스튜어트 페드렐이 지난 죽기 전 1년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느냐에 대한 조사를 요구한다. 시작부터 기묘하다.

 

비스쿠테르라는 기가 막힌 리오하 요리를 만들 줄 아는 조수를 둔 카르발로는 반 프랑코 운동 전력 때문에 아메리카에서 20년 간 망명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단 그의 도덕적 경력에 대해서는 검증 완료. 아마도 중년으로 보이는 카르발로의 주변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를 흠모하는 여성들이 끊이질 않는다. 고인의 딸 예스/예시카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아 한 가지 더, 더럽게 재밌는 책을 불태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카르발로를 친구들은 분서광이라고 부른다. 책쟁이로서 다 읽은 책을 그것도 더럽게 재밌다는 책을 주저하지 않고 불태우는 느낌은 어떨지 조금 궁금해졌다. 이건 중고로 팔거나 나눔하는 것보다도 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닌가. 도발적이다.

 

스튜어트 페드렐의 전적을 조사하는 와중에 카르발로는 고인이 부유한 색정광이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러면서도 동시에 남쪽 바다를 꿈꾸는 이상주의자였다는 점도. 그가 남긴 남쪽 바다에 대한 메시지가 담긴 쪽지를 단서로 스튜어트 페드렐의 행적을 추적하는 장면은 역시나 당대 스페인 최고의 작가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간에 빵구를 낼 듯이 마셔대는 블랑 데 블랑 같은 포도주에 대한 탐닉과 자신에게 오는 여자들이라면 마다하지 않는다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유능한 사립 탐정 카르발로를 규정하는 어떤 상징과도 같은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푸스테르와 함께 독서광이자 교수 세르지오 베세르의 집에 가서 양파를 곁들이지 않은 정통 발렌시아식 빠에야 요리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스튜어트 페드렐이 남긴 단서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장면은 정말 멋졌다. <황무지>는 독서광에게 쉬운 편이었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남쪽 바다의 운율까지 들먹이며 1959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살바토레 콰시모도의 시까지 연결하는 장면에서는 살짝 전율하기도 했던 것 같다. 참고로 콰시모도의 작품은 국내에 번역된 게 없다.

 

그렇게 소설의 절반 정도를 노닥거리며 보낸 카르발로는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다. 그런데 정작 이 소설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누가 스튜어트 페드렐을 죽였는가라는 탐정소설 방식의 추적이 아니다. 내 진짜 관심은 스페인내전에서 승리한 파시스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철권통치를 끝낸 스페인의 민주화 과정이다. 프랑코 치하에서의 강제된 금욕주의는 찬하의 바람둥이 카르발로의 엽색으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과연 정치가 들끓는 개인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남쪽 바다라는 이상향으로 가고자 했던 스튜어트 페드렐 역시 카르발로와 다를 바가 없는 색정광이었다. 다만 전자가 자제력을 가졌다면 후자는 전혀 그러지 못했고, 결국 비참하게 누군가의 칼을 맞고 죽은 것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바르셀로나 그중에서도 지금은 쇠락한 산마힌 지구의 개발은 주도한 것이 바로 스튜어트 페드렐, 플라나스 그리고 문트 후작 악당 삼총사였다. 프랑코 시절 경제성장 신화는 우리가 현실에서 목격하기도 했던 날림공사, 부동산특혜로 점철된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노라고 몬탈반 작가는 카르발로의 입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산마힌을 비롯한 대다수 대중들은 원조 파시스트 프랑코 치하가 좋았다는 흘러간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세상에 이럴 수가! 사회 정의나 복지 혹은 공정한 분배 따위는 모르겠고 그저 오늘의 내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는 식의 논의가 이미 그 시절에도 대중들이 나누는 어젠다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주인 없는 땅이었던 공유지 개발로 한몫 챙겼던 악당들이 이번에는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20년 만에 다시 산마힌을 노리고 있었다. 자유시장경제주의를 신봉하는 기업가 행세를 하는 악당들에게 민중들은 오래된 착취의 대상이었다. 그러면서도 대를 이어 그래도 프랑코 시절이 좋았지를 노래하는 그네들의 모습이 왜 그렇게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한바탕 소동을 겪고 카르발로는 사건을 해결한다. 모두가 원하는 방식으로. 어차피 소설에 나오는 사건은 해결되게 되어 있지 않던가. 에타(ETA) 조직원 행세를 하는 빵집 주인의 바람난 아내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가외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이런 이재에 밝은 인간 같으니라구. 몬탈반 작가가 슬쩍슬쩍 흘리는 카르발로의 과거도 흥미롭다. 한 때 교사로도 활약하기도 하고, 수형생활도 한 것으로 추정되고 프랑코 반독재 운동의 경력을 가진 캐릭터 설정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사건 해결을 위해 프랑코 독재정치를 찬양하는 이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결국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도망친 운명의 귀결이 어떠했는지 보여 주면서 소설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렇게 말끔하게 사건을 처리한 카르발로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다리는 작은 비극을 마주한다. 아무래도 몬탈반의 다른 작품인 <문신>도 읽어봐야겠다. 왜 이렇게 좋은 작가의 책들은 소개가 되지 않는지 그저 아쉬울 뿐이다.


[뱀다리] 소설에서 누군가 1977년 선거에 투표했냐는 질문이 등장하는데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만한 그런 선거가 아니었다. 유럽의 마지막 파시스트 프랑코가 죽은 뒤, 무려 41년 만에 스페인에서 최초로 치러진 민주주의 선거였다. 노력한 만큼 보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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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9-26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작품이 꽤 많은거 같은데 국내엔 단 두 권 뿐이라니 아쉽습니다. 범죄소설이 문학상까지 받고 꼭 읽고 싶은데 구할 수가 없네요. 일단 중고알림을 신청했네요. 늘 보석같은 책 알려주시니 감사해요.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19-09-26 13:33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제가 위키피디아로 검색해
보니 어디서는 16편의 소설에 또 어디
서는 자그마치 25편의 소설의 주인공
으로 등장한다고 하네요.

1972년부터 2004년까지 페페 카르발
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 나
왔다고 합니다.

암튼 프랑코 사후 스페인 사회를 엿볼
수 있는 사회파 소설로도 충분히 가치
가 있었습니다.

격려 감사합니다.
 
밤 기도
산티아고 감보아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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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송병선 교수의 초역으로 콜롬비아 보고타 출신 산티아고 감보아의 <밤 기도>가 소개됐다. 나는 다시 한 번 세계는 넓고 내가 모르는 괜찮은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밤 기도>는 그동안 10편의 소설을 발표한 감보아 작가가 지난 2012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감보아 작가와 한국의 인연은 3년 전에 그가 문학 수다를 위해 서울국제문학축제에 참석한 것으로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당시 <시인과 비행사>라는 짧은 에세이가 소개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출판사들에서 사전에 준비해서 책이라도 출간했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2009년에 발표한 <네크로폴리스>라는 작품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감보아 작가의 작은아버지가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래저래 우리와 인연이 있는 작가가 아닐 수 없다.

 

<밤 기도>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형식의 소설이다. 두바이에서 방콕을 거쳐 도쿄로 가려던 콜롬비아 출신 27세 청년 철학자(국립대학 박사 과정) 마누엘 만리케가 태국 경찰에 의해 마약 소지죄로 체포된다. 지난 24년 동안 작가이자 외교관으로 유럽에서 활동해온 델리주재 콜롬비아 영사는 대사관계가 없는 태국의 자국 교포를 구하기 위해 정부의 명령으로 방콕으로 향한다. 사건을 맡은 태국 검사는 처음부터 까놓고 섹스관광과 그 이상을 위해 자국을 찾은 외국인들에 대한 경멸을 감추지 않는다. 어쨌든 방쾅 교도소에 갇힌 피의자 만리케는 자신의 죄를 법정에서 인정하면 비교적 관대한 30년형을 아니면 사형도 선고 받을 수 있다는 말을 영사는 전해 듣는다.

 

소설의 진행은 영사, 만리케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성전환 수술자로 보이는 세 명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패멀라 앤더슨처럼 되고 싶어하는 세 번째 인물에 대한 정보는 모호하기만 하다. 영사의 진술이 현재 태국 교정시설에 구금된 만리케를 구하는 데 집중된다. 영사는 만리케와의 첫 대면을 통해 자신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청년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단번에 깨닫는다. 반면 만리케의 진술은 자신의 성장과정과 별 볼 일 없는 은행원으로 식탁의 독재자이자 콜롬비아 대통령이자 우파 민병대의 지도자였던 알바로 우리베를 지지하는 아버지 알베르토에 대한 회상으로 가득하다. 아슬아슬한 콜롬비아의 평범하고 아슬아슬한중산층 가정 출신의 소년 마누엘에게 삶은 무의미해 보일 따름이었다. , 여기서 중요한 인물에 대한 소개가 하나 빠졌군. 마누엘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했던 자신의 누나 후아나. 그녀 때문에 마누엘은 삶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외부로 발산하는 그라피티 예술가로서 자신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본 후아나는 국립대학 사회학과로 진학하면서 파시스트 아버지와 개인적 전쟁을 시작한다.

 

후아나가 거침없이 파시스트라고 부르는 아버지는 그녀를 게릴라로 간주한다. 이것을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세대 간의 갈등으로 보아야 할까. 다시 영사가 개입해서 마누엘의 스승이었던 자신의 친구 구스타보의 도움으로 마누엘의 과거를 추적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마누엘의 과거는 정말 클린 그 자체였다. 그는 몇 년 전 실종된 누나 후아나를 찾기 위해 그야말로 세계의 절반을 가로지르는 모험을 시작했고, 방콕에서 횡액을 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마누엘은 왜 다음 기착지였던 도쿄로 가려고 했는지 궁금해진다. 감보아 작가는 희미하지만 강력한 단서라는 떡밥들을 통해 <밤 기도>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구성한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바로 후아나의 실종이었다. 후아나가 실종된 것은 200811월 그리고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차라리 공개적으로 죽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나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실종이라는 죽음과 삶의 경계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실종자 가족들은 희망고문이라는 지옥을 경험해야 한다. 후아나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그녀가 게릴라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장녀의 실종에 절망한 알베르토는 비로소 우파 정권의 실체를 알게 되고, 근본적인 변신을 하게 된다. 마누엘은 그런 아버지를 난생 처음 존경하게 되지만, 어머니 베르타는 그런 남편을 조롱한 기회만을 노린다. 개인의 정치적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감보아 작가는 만리케 가정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준다.

 

3년 만에 실낱같은 단서를 추적해 가던 마누엘은 누나 후아나가 도쿄에서 에스코트 서비스를 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된다. 키토와 상파울루, 두바이, 방콕을 거쳐 도쿄에 이르는 장대한 여정을 후아나가 했다는 사실에 독자는 마누엘 역시 비슷한 코스를 밟으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27세 청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일견 무모해 보이는 누이 찾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나는 소설 <밤 기도>의 진짜 주인공이 마누엘 만리케가 아니라 어쩌면 작가 출신 외교관인 델리 영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외교관들에게 콜롬비아 영사 같은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을까? 나는 왠지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직접 경험해 봐서 잘 알지만 말이다. 자신을 파산으로 몰아넣을 지도 모를 도쿄행을 감행하고, 대사관계가 없는 이란에서 다른 목적을 지니고 이동대사관 서비스를 하겠다는 명목으로 테헤란으로 건너가는 그의 열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울러 마누엘이 아주 결백한 사나이가 아니라는 점도 동시에 깨닫게 된다. 도대체 내가 간과한 진실은 무엇이고, 마누엘의 부탁으로 후아나 구하기에 나선 영사는 목적을 이룰 것인가.

 

나는 감보아의 책에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별이 된 로베르토 볼라뇨의 향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일찍이 볼라뇨가 자신의 작품에서 그랬던 것처럼, 감보아 역시 무수한 내가 전혀 들어 보지도 못한 숱한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을 소개한다. 대표 주자는 스페인 출신 작가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이었다. 나는 순전히 감보아 덕분에 그의 책이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호르헤 볼피의 이름을 책에서 발견하는 순간, 너무나도 반가웠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자신이 번역하고 싶은 책을 우선적으로 번역한다는 역자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 세상에 구원은 존재하는가. 내가 타인을 구원한다는 것도 어렵지만 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나 스스로의 구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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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9-23 0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계는 넓고 내가 모르는 괜찮은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시는 일이 레삭매냐님이 알라딘에서 맡은 바 역할 같아 보일 때가 많아요. 오늘도 한 건 하시네요.

전 처음에 감보아를 김보아로 읽고, 송병선 쌤이 한국어를 스페인어로 초역한 건가보다 생각했지 뭐예요 ㅋㅋㅋㅋ

레삭매냐 2019-09-23 09:48   좋아요 0 | URL
역시 우리의 비어 아니 호프
시오님의 센스란... 김.보.아. 따악

그나마 영미권 작가는 어줍잖은
영어로 더듬더듬 한다지만,
그외 문화권에 대해서는 정말 노답
이지요.

순전히 출판사와 역자에 의존해야
하는 시츄가 참 거시키하지요.

겨울호랑이 2019-09-25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는 이들에게 인정받기는 쉬워도, 가까운 이들에게서 인정받는 이는 극히 드문 것처럼, 타인에 대한 구원보다 자신의 구원이 어려움을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레삭매냐 2019-09-25 10:00   좋아요 1 | URL
성경에 나오는 문구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선지자/예언자가 오히려 자신의 고향에서
는 인정받지 못한다였던가요...

본질적으로 삶이라는 게 자신의 구원을
위한 길일 지도 모르는데, 나를 구원하는
일에 너무 무심한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
이 드네요.
 
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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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모 토울스의 데뷔작 <우아한 연인>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발표된 포이즌의 <폴런 에인절(Fallen Angel)>의 뮤직 비디오 생각이 났다. 작은 마을을 떠나 성공을 꿈꾸면서 LA로 떠나온 어느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말이다. 작가의 두 번째 소설 <모스크바의 소설>을 읽었으니 당연히 첫 번째 소설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작가의 고급스러운 취향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보스턴에서 태어나 예일대와 스탠포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토울스는 21년 동안 월스트리트에서 투자전문가로 활약했고 지금도 맨해튼에 살고 있다고 한다. 소설에 드러나는 그의 취향이 어디에서 연유된 것이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데뷔작의 제목부터 젊은 조지 워싱턴이 일찍이 발표한 사교 생활을 위한 110가지 행동 규칙에서 따왔다. 그리고 <우아한 연인>에 등장하는 1930년대 맨해튼의 카튼 클럽을 비롯한 그 유명한 재즈클럽과 나이트클럽 그리고 고급 레스토랑에 대한 리서치의 결과는 정말 대단했다. 어느 비평에서는 <우아한 연인>1938년을 무대로 한 <섹스 앤 더 시티>라고 하는데 그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소설은 1966년 모마(MOMA)에서 기획한 워커 에번스의 사진전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남편과 전시회를 찾은 54세의 케이티 콘텐트는 사진전에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남자 팅커 그레이의 사진을 보게 된다. 그리고 기나긴 29년 전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플래시백이 시작된다. 룸메이트이자 절친 이브 로스와 비서로 일하던 케이티는 1937년 퍼스트 나잇에 그리니치 빌리지의 2류 재즈 바에서 운명의 남자 팅커 그레이와 만난다. 하루하루의 노동으로 대도시 생활을 즐기던 그녀들에게 팅커 그레이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청년이었다. 학력이면 학력, 집안이면 집안, 훌륭한 교양까지 갖춘 팅커의 매력에 이브와 케이티 모두 빨려 들기 시작한다.

 

내러티브가 묘한 삼각관계로 진행되려던 순간, 팅커가 운전하던 자동차가 전복사고를 당하면서 세 주인공들의 운명은 엇갈리기 시작한다. 심각한 사고 후유증을 겪고 그 아름다웠던 얼굴이 상하게 된 이브를 팅커는 그야말로 신사도를 발휘해서 보듬으려고 한다. 어쩌면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겠다는 시골 처녀 이브 로스 양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갑자기 23각 경기에서 튕겨져 나온 화자 케이티는 나름대로의 꿈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뉴욕의 갑부라도 된 듯이 고급 의상실에 가서 멋진 드레스에 돈을 펑펑 쓰고, 홀로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술과 식사를 즐기고, 자신을 승진시켜 주겠다는 법률사무소의 제안을 뒤로 하고 무모해 보이는 출판사 편집자 조수로서의 새로운 경력을 발진시킨다.

 

오리지널 <섹스 앤 더 시티>에 등장하는 캐리 브래드쇼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당돌한 여성 케이티의 일대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들이 작성하는 서류나 타이핑하는 일에 도무지 만족할 수 없었던 케이티의 모습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른 채 러시아를 떠나 신대륙 미국에 상륙한 케이티의 프롤레타리아 계급 아버지의 도전정신이 연상됐다.

 

그런데 이브가 올라탄 성공의 사다리는 불안정, 그 자체다. 남녀 간의 애정이라기보다 신사의 책임감에서 시작된 이브와 팅커의 관계는 미세한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 관계의 종착점은 과연 어디일까? 겨울에서 시작되어 봄과 여름이라는 계절의 변화와 시간을 거치면서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난관에 빠진 이브의 연애전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케이티의 모험은 계속된다. 부유한 제지사업가 월러스 월코트와 만나 썸을 타기도 하고, 때마침 스페인에서 터진 내전에 참전하기 위해 월러스가 떠나자 이번에는 팅커가 월러스의 공백을 채우기도 한다. 그 와중에 미국 문학적 전통을 과시하기 위해 소로우의 <월든>에 등장하는 나만의 북극성을 찾으라는 조언도 나오고, 빗시와 약속시간에 앞서 시간 때우려고 들어간 헌책방에서 자기네 나라 국부(國父)가 청년 시절에 쓴 사교생활을 위한 행동 규칙에 대한 책을 단돈 15센트에 건지기도 하는 장면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아한 연인>의 주인공 케이티 콘텐트 양이야말로 현대판 신데렐라라고 불러야 하나. 주변에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부유한 청년들이 그야말로 줄지어 등장하질 않나, 그들의 도움으로 보통 사람 같으면 언감생심으로 보이는 상류 계급 인사들과 교류가 끊이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케이티 콘텐트는 캐리 브래드쇼의 전생 같아 보인다. 다만 400달러짜리 마놀로 샌달을 신고 50달러짜리 브런치를 즐기며, 일상의 수다와 파티에서 만난 남자 아니면 미스터 빅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시절이 다를 뿐.

 

데뷔작으로 보기에는 기대이상으로 세련되고, 스타일이나 고전들을 인용하는데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 에이모 토울스의 <우아한 연인>은 나무랄 데가 없는 듯 싶다. 내러티브를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주는 놀라운 관계의 묵직한 한 방도 준비되어 있다. 다만 <모스크바의 신사>에서도 그랬듯이 지나치게 귀족 취향적이고,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동경이 나에게는 좀 불편하게 다가왔다. 어딘가에서는 피츠제럴드와 커포티의 재현이라는 글을 본 것 같은데 아쉽게도 두 작가 모두 잘 읽어 보지 않아서 그런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도 내릴 수가 없었다. 맹목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추종하는 것도 배격하는 편이라서 말이다.

 

그냥 쉬어 가며 읽어 보려고 폈던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다른 책들을 집을 수가 없었다. 단 두 편의 소설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에이모 토울스의 문학적 재능과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에 꼭 들었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글쓰기의 정수를 맛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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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9-15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스크바를 1/3쯤 읽다 덮었는데, 이 작가의 작품을 다시 도전해봐야 겠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 문제가 있었나 싶네요.

레삭매냐 2019-09-15 19:38   좋아요 1 | URL
미국 고급문학의 선두 주자라고나 할까요.

고급진 개인의 취향이 아주 잘 드러나는
그런 작품들을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
다.

1/3이나 읽으셨다니 아쉽습니다. 좀 더 분
발하시면 에이모 토울스 문학의 고갱이를
접수하시리라 믿슙니다 넵.

coolcat329 2019-09-15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가보네요.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고 너무 좋았던지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지금도 쓰고 있네요^^ 늘 좋은 소설 알려주시니 감사해요 ^^

Falstaff 2019-09-15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어째 이 글을 못 봤을까요.
토울스의 새 책이 나왔는데 아직도 뭉개고 있었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ㅋㅋㅋㅋ

레삭매냐 2019-09-17 16:39   좋아요 0 | URL
예전에 나온 책인데, 이번에 새단장
을 하고 출간된 것 같습니다.

‘모스크바‘ 디자인으로 가는가 보네요.

stella.K 2019-09-17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스크바 읽은 사람들은 이 책을 궁금해 하던데 절판이라고 아쉬워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쁘게 잘 나왔군요.
조지 워싱턴의 책이 미니북으로 끼어 있다는데 그걸 토대로 썼나요?
저도 고급 취향 좀 거시기하긴 하지만 궁금하긴 하네요.
모스크바 신사 첨 나왔을 때 출판사에서 한 권 보내주겠다는 걸
정중히 거절했는데 그때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ㅠ

레삭매냐 2019-09-17 17:07   좋아요 1 | URL
원래 판권이 은행나무에 있던 것을
현대문학에서 가져온 것 같습니다.

<모스크바>가 반응이 좋아서 내친
김에 데뷔작도 달린 것으로 추정됩
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에는 미니북이
없어서 확인이 안되네요.

아니 그런 좋은 오퍼를 왜 왜 왜
거절하셨던 가요 ㅋㅋㅋ accept !

stella.K 2019-09-17 18:30   좋아요 1 | URL
그땐 베스트셀러가 될 줄 몰랐죠.ㅠㅠㅋㅋㅋ
 
일본 제국 패망사 - 태평양전쟁 1936~1945 걸작 논픽션 17
존 톨랜드 지음, 박병화.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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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15일은 일본 패전 74주년이었다. 자신들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에 대해 사과와 반성을 거부하고 있는 전범국가 일본은 한국을 상대로 새로운 동아시아 패권을 위한 경제전쟁을 시작했다. 동시에 우리는 기존의 1965년 패러다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태평양전쟁의 기원과 전개과정을 통사적으로 다룬, 1970년에 발표되어 이듬해 미국 퓰리처상에 빛나는 존 톨랜드의 대작 <일본 제국 패망사>(원제는 떠오르는 태양”)의 출간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전쟁국가의 망상을 저버리지 못하는 아베 정권의 기원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톨랜드의 논픽션은 정확하게 짚어낸다.

 

톨랜드 저자는 1936225게코쿠조라고 명명한 장에서 일왕(천황이라는 표현을 굳이 쓰고 싶지 않다) 지지한다는 일단의 젊은 황도파 청년 장교들이 주축이 되어 쿠데타를 일으킨 사건으로부터 태평양전쟁의 기원을 추적한다. 사실 전쟁은 1931년 만주사변이라는 이름으로 만주 주둔 일본 관동군 출신 이시하라 간지의 주도 아래 진행 중이었다.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 내항 이래, 일본은 탈아입구라는 구호 아래 근대화를 추진했다. 메이지 유신은 부국강병이라는 기치로 군국주의 일본의 탄생을 예고했다. 조슈번과 사쓰마번이 연합한 삿초동맹으로 토막에 성공한 근대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연이은 승리로 그야말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특히 러시아와의 전쟁은 페르시아 전쟁 이라 옥키덴트에 눌린 오리엔트의 기념비적인 승리로 꼽을 만했다.

 

독일 히틀러의 나치가 레벤스라움이라는 이름으로 동방 진출을 도모해서 슬라브 민족의 노예화 그리고 러시아 정복이라는 대망을 꿈꾸었다면,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의 꿈은 한반도를 넘어 중국 대륙 진출이라는 센고쿠 시대 오다 노부나가의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황도파 청년들은 이미 일본 정국을 장악한 군부의 실세들이 좀 더 강력한 제국주의 정책을 실시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서 쿠데타를 기획했다. 군부의 일부 세력들은 그들의 대의에 동의하기도 했지만, 대세는 그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황도파의 쿠데타 당시, 3, 5대 조선 총독을 지낸 총리 출신 사이토 마코토가 청년 군인들에게 살해당한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보다 강력한 군국화를 주장하는 황도파들을 제압하고 간신히 사태를 수습했지만 1년 뒤, 중국의 루거우차오 사건이 발발하면서 일본은 중국을 상대로 한 전면전에 돌입하게 된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네덜란드를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 초반의 형세처럼 중일전쟁에서 일본군을 압도적인 전력을 바탕으로 난징과 상하이 같은 대도시들을 잇달아 함락시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항복을 거부하고 충칭으로 임시수도를 옮기고 지구전에 돌입한다. 이른바 용과 사무라이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어쩌면 이때부터 일본의 패전은 확정된 게 아니었을까.

 

대전쟁(1차 세계대전) 이후 대영제국의 뒤를 이어 세계제국으로 태평양 경쟁에 뛰어든 미국은 자신들의 미래 시장으로 점찍은 중국이 일본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전략적으로 원하지 않았다. 일본의 명분 없는 전쟁을 비난하면서 비밀리에 장제스 정부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히틀러의 나치 부대가 블리츠크리크로 폴란드 전역을 석권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1940년 구데리안과 로멜이 이끄는 독일 기갑부대가 프랑스를 패배시키자, 일본은 재빠르게 힘없는 프랑스 비시 정부의 인도차이나 식민지들을 접수했다. , 과연 미국은 그런 일본의 팽창주의를 허용할 것인가?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한 때 일본의 후원자였던 미국은 경쟁자를 넘어 가상의 적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운명의 1941622, 독일은 마침내 불가침조약을 맺은 러시아를 침공한다. 파죽지세로 서부 러시아를 휩쓴 독일 전쟁기계의 빼어난 활약에 고무된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연전에 맺은 삼국동맹에서 자신들만 소외되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일본 해군의 지미파들은 미국의 압도적인 생산력을 잘 알고 있기에 미국과의 전쟁을 가능하면 피하고자 했다. 하지만 고착된 중국전선 상황을 타파하고 싶었던 일본 육군 지도자들은 미국 정부의 가혹한 평화협상 조건에 경악한 나머지 물불 가리지 않고 개전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내 일본 자산 동결 조치, 전략물자 수출 제한 그리고 막판의 석유 금수조치가 최후의 결정타가 아니었을까. 톨랜드에 따르면 일본 군부는 미국 정부에 상당한 양보를 할 의향이 있었지만, 중국에서 일본군의 전면 철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한편으로는 평화협상을 진행하면서도 동시에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이미 일본군의 암호를 대부분 해독하고 있었던 미국 지도자들은 일본의 이런 이중적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제 개전은 기정사실이 되었고, 다만 언제 그리고 어디냐는 문제만 남았다.

 

사실 개전까지 상당한 부분을 톨랜드 저자는 할양하고 있는데, 일본 제국의 흥망사에서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전쟁 자체에 관심 있는 나같은 독자가 아니라면 쉽사리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대성공이었다. 다만, 훗날 미해군의 주축이 되는 항공모함을 격침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흠이긴 했지만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관과 나구모 강습부대가 이룬 전과로 미 태평양함대에 상당한 타격을 가하고, 일본은 그동안 동남아시아에서 그들이 원하던 침략전쟁을 수행할 시간을 버는데 성공했다.

 

개전 초기 일본군의 주공은 세 방향으로 진행됐다. 이마무라 히토시의 자바 공략, 혼마 마사하루의 필리핀 진공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했던 야마시타 도모유키의 말레이 반도와 싱가포르 진격이었다. 사실 전쟁 초기 일본군이 상대한 적군은 식민지 질서유지를 위한 2선 부대가 전부였다. 영국은 본토 방위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동양의 진주라 불린 요새이자 전략 거점인 싱가포르를 방위할 여력이 조금도 없었다. 대영제국에게 싱가포르 함락은 어쩌면 또 다른 제국의 몰락을 상징했는지도 모르겠다. 필리핀 총독이었던 맥아더는 꼴사납게 자신의 책임을 다른 웨인라이트에게 떠넘기고 호주로 도주해 버렸다. 아무리 봐도 맥아더의 군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실제와 너무 다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비교적 자유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지휘관이었던 혼마 장군이 바탄의 죽음의 행진 때문에 전후 교수형을 당한 장면은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전범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으니 말이다.

 

초반에 일본에게 한 방 먹은 미국은 손 놓고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둘리틀 특공대를 조직해서 도쿄 공습에 나선다. 개전 이래 연전연승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미국의 복수전이었다. 진주만 기습의 성공으로 자신감에 고취된 일본 해군은 이번에는 거의 도박에 가까운 작전에 나서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태평양전쟁의 변곡점이 된 미드웨이 해전이었다. 역사가 언제나 그렇듯, 간발의 차이로 엇갈린 행운의 여신이 보낸 우연 그리고 일본군의 동태를 정확하게 판단한 미군 정보부대의 활약으로 일본군의 다음 목적지가 미드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미군은 194264일부터 7일까지 나흘간 벌어진 전투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 해군에게 항공모함 아카기, 히류, 소류 그리고 카가 4척 격침이라는 궤멸적 타격을 가했다. 미 해군을 미드웨이로 유인해서 격멸하겠다는 야마모토 사령관의 작전은 실패하고, 역으로 자신들이 애지중지하는 기도부타이휘하 항공모함들을 적에게 내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더 치명적인 사실은 진주만 기습을 경험한 유능하고 숙련된 함재기 조종사들을 잃었다는 점이다. 함재기와 조종사의 손실, 모두 일본으로서는 감당이 안 되는 피해였다.

 

미드웨이 해전이 바다 전쟁의 승부령이었다면,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 전투는 육지에서의 기점이었다. 일본 대본영에서도 역시나 승세를 잡은 미군의 반격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빨리 그들이 생각한 최남단의 과달카날(일본명 가다루카나루)에서부터 시작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과달카날 전투는 194287일 시작되었고, 6만에 달하는 미군 병사들이 전선에 투입되었고, 31,000명의 일본군 중에 2만 명이 죽었다. 일본군은 과달카날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닫고 처음부터 미해병대에게 빼앗긴 헨더슨 비행장을 되찾기 위해 대단위 부대를 투입해서 초전에 승부를 걸었어야 했는데, 미군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소규모 부대를 투입해서 소모시켜 버렸다. 그동안 미군은 계속해서 병력을 증원하고 산더미 같은 보급물자로 일본군을 압도했다. 결국 그들은 중기관총 같은 화기로 무장한 미군 진지로 야간에 훗날 반자이 돌격으로 알려진 무모한 진격을 시도하다 결국 일패도지해 버렸다. 중국 전선에서 작전의 신으로 칭송받은 쓰지 마사노부 중좌가 작전에 참가해서 연속된 오판으로 1만 명의 장병의 목숨을 헛되게 만들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과달카날에서 일본군을 괴롭힌 적은 미군뿐만이 아니었다. 말라리아와 부족한 보급 물자로 일본군은 녹색 지옥에서 사방에서 날아드는 미군의 포탄과 총탄 뿐 아니라 굶주림과도 싸워야 했다. 보급 문제는 태평양전쟁의 모든 전선에서 고질적 문제였다. 일본군의 주식은 밥이었는데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면 그곳으로 미군의 포화가 작렬했으니 말이다. 현지 사정을 전혀 모르는 작전 참모들은 그놈의 세이신(정신) 타령을 했지만, 맨손과 허약한 육신으로 잘 쉬고 잘 먹은 미군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과달카날 3차전에서는 만주에 주둔 중이던 관동군 정예 2사단까지 동원했지만 패배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더 슬롯으로 알려진 수송로에서 미해군에게 격침당하는 수송선의 피해도 일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승리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속히 손절하고 퇴각해야 했지만, 도쿄의 대본영은 패전 사실을 은폐하고 축소하는 것에만 연연했다. 망하는 조직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가.

 

한편, 미군 역시 일본의 해군과 육군처럼 전쟁의 향방을 정하는데 있어 이견을 보였다. 맥아더로 대표되는 미육군은 방어가 두터운 뉴브리턴의 라바울을 건너뛰고 뉴기니를 거쳐 맥아더 자신의 개인적 복수를 위해 필리핀 진공을 주창했다. 대신 해군은 개구리 뜀뛰기 전법(leapfrog)이라 명명된 작전으로 솔로몬 제도를 제압하고 마셜 제도, 길버트 제도 그리고 마리아나 제도를 거쳐 타이완으로 가는 주공을 원했다. 1942년 미영소 연합군은 북아프리카 상륙작전, 엘알라메인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 그리고 미드웨이와 과달카날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전세를 뒤집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여전히 유럽 대륙에서 제2전선을 열어 소련에 대한 독일의 압박을 줄여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태평양전쟁을 도맡은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맥아더의 공력 루트보다 태평양함대 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공력 루트가 훨씬 더 합리적이고 적은 피해로 일본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 뉴조지아 그리고 부건빌을 제압하는데 성공한 니미츠 부대의 다음 목적지는 길버트 제도 타라와 환초의 베티오섬이었다. 베티오섬의 수비 사령관 시바자키 케이지 소장은 토치카와 벙커 그리고 참호로 잘 무장된 채, 미군의 상륙에 대비했고 미군 해병대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항복을 수치로 여기는 일본군은 죽는 순간까지 미군에 저항했고, 미군 지휘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병력 손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계속되는 사이판, 오키나와 그리고 이오지마 전역에서 미군은 더욱 강력한 일본군의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일본과 미국이 맞붙은 태평양전쟁은 끝없는 소모전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선박이 격침되고, 숱한 함재기들이 수장됐다. 총동원 체제에 돌입한 미국의 가공할 만한 생산력을 일본은 도저히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과달카날 이래 일선의 병사들에 대한 보급은 고질적 문제였다. 뉴기니 전역에서도 그리고 뒤이은 필리핀 전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설사 보급할 물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해권과 제공권을 미군에게 모두 빼앗긴 상태에서 수송선을 띄우는 일은 거의 자살행위였다. 군부 주도 아래, 제 아무리 민간 수요를 억제하고 오로지 전쟁을 위한 생산에 박차를 가해도, 시간이 갈수록 미국의 엄청난 생산력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일본 해군은 처음부터 개전에 반대했던 게 아닐까.

 

한편, 일본이 동남아시아 제국을 침략하면서 내세운 대동아경영권의 허실은 곧 드러났다. 각국의 민족주의자들에게 일본은 해방자로 자처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구미 식민제국을 대신한 새로운 지배자였을 뿐이었다. 개전의 이유가 미국의 각종 금수 조치를 타개하고, 천연자원 획득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일본 제국의 본질을 깨달은 현지인들이 그들에게 자발적으로 협력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그나마 일본이 승기를 잡았을 때는 잠잠했겠지만, 각지에서 일본군이 연달아 미군에게 패배하면서 그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선전한 아시아 민중에 의한 대동아경영권은 처음부터 일본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질서를 위장하기 위한 선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 전쟁의 무대는 마리아나 제도의 사이판이었다. 사이판마저 미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면 제국의 심장부 도쿄까지 보잉사에서 새로 개발한 슈퍼포트리스 B-29 폭격기의 공습권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절대방어선을 주창하던 일본군의 저항이 처절할 수밖에 없었다. 사이판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어 미군의 침공에 대비하겠다는 일본 대본영의 전략은 수송작전의 참담한 실패와 원래 사이판에 투입되기로 되어 있던 중국 대륙의 관동군 부대가 국민당 부대의 선전으로 중국 전선에 묶이게 되면서 빈약한 병력으로 7만 명에 달하는 미군 상륙부대를 상대하게 되었다.

 

타라와 전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군은 막강한 육해공군력을 동원해서 철저하게 일본군 진지를 포격 및 폭격해서 저항하고 저항을 누른 뒤 상륙거점에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하는 미군을 상대로 그다지 의미 있는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옥쇄 돌격이 이어진다. 그리고 진주만 강습부대를 이끌었던 나구모 주이치 중장을 비롯한 수비대 고위 지휘관들은 자살한다. 다른 전역과 달리 사이판에는 당시 25,000명 가량의 일본 민간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동안 일본 정부의 미영귀축이라는 선전에 속아 집단자살이 이루어지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톨랜드는 당시 생존자의 증언을 논픽션에 담아, 사실성을 극대화시켰다. 사이판 실함으로 도조 히데키 내각이 붕괴되고, 역시 조선 총독을 지낸 군인 출신 고이소 구니아키가 총리대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제 일본은 별다른 반전 역시 패전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한편 육군의 대표선수 맥아더는 전략적 의미를 가지지 못한 필리핀 공략으로 개인적 복수전에 나서게 된다. 민다나오와 레이테 그리고 루손을 해방시키겠다는 맥아더의 전략은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연합군 수뇌부가 최종 목표로 설정한 추축국의 무조건 항복이라는 대전략 차원에 판단해 볼 때, 무의미한 작전이었다. 태평양의 모든 제해권과 제공권을 미국이 장악한 마당에, 필리핀 주둔 일본군이 미군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 수 있단 말인가. 오래 전, 히틀러가 현지 사수를 고집하다가 스탈린그라드에서 낭패를 당했던 것처럼 일본의 군 지휘부 역시 비슷한 오류를 필리핀 전선에서 범했다. 그리고 자그마치 33만 명이나 되는 일본군이 1944년과 1945년 필리핀 전역에서 죽었다.

 

어쨌든 필리핀을 사수하기 위해 대본영에서는 말레이의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맹장 야마시타 도모유키를 필리핀 방면 사령관으로 파견한다. 총리대신 도조와의 불화로 싱가포르 함락 이후, 소련군의 남하를 대비한다는 핑계로 만주에 가 있던 야마시타 대장은 그렇게 사지로 들어갔다. 2-26사건을 일으킨 황도파의 중심인물 중의 하나가 야마시타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도조가 그를 기피한 것도 황도파 쿠데타의 주역이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전쟁이 끝난 뒤, 야마시타는 마닐라 대학살의 책임을 물어 교수형 당했다.

 

뒤이은 이오지마와 오키나와 전투에서 1억 총옥쇄 본토결전을 주장하는 대본영은 자신들의 무능력을 그대로 드러냈다. 특히 이오지마는 슈퍼포트리스 B-29의 폭격 기점으로 일본 본토 공격에 꼭 필요한 전략거점이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일본 역시 19446월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중장을 수비대 사령관으로 파견해서 미군의 내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달부터 이미 미군은 폭격과 함포 포격으로 침공을 준비한다. 한편, 상륙군의 교두보 확보 시점을 가장 취약하다고 판단한 해군은 구리바야시의 상륙군을 최대한 내륙으로 유인해서 일인십살(一人十殺)하겠다는 기존의 일본군의 방어계획과 전혀 다른 전술에 격렬하게 반대한다. 그리고 세 개의 비행장 수비와 바다 위에 떠 있는 미군 함정에 대한 공격도 해야 한다는 주장을 멈추지 않는다. 구리바야시는 함께 수비에 나서야 하는 해군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어서 타협을 하면서도 토치카와 벙커, 참호 그리고 지하 교통로를 건설해서 그야말로 이오지마를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과달카날 이래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일본군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옥쇄 돌격도 수비대 사령관은 금지했다. 1945219일부터 한 달 정도 진행된 이오지마 전투에서 일본군과 미군의 사상자는 총 5만 명에 달했다. 이런 식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원이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지 미군 지휘부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오키나와 전투에서도 막대한 사상자를 낸 미국은 결국 일본의 조기 항복을 유인하기 위해 유럽 전선을 끝낸 소련에게 대일전쟁에 참전할 것과 신형 폭탄의 사용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미군 지휘부가 194511월로 예정된 규슈 상륙을 감행했을 시, 미군 피해가 백만 명에 달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에 놀란 나머지 TNT 폭탄 2만 톤에 달하는 위력을 가진 원자폭탄을 일본의 8번째 큰 도시이자 군항이 위치한 히로시마에 투하하기로 결정한다. 히로시마에서만 무려 2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고 한다. 뒤이어 당시 미국이 보유하고 있던 마지막 원자폭탄을 나가사키에도 투하했다. 결국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던 일본 군부는 포츠담 회담에서 결정된 무조건 항복을 수락하기에 이른다. 그동안 몰랐던 사실인데, 일왕의 항복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일단의 근위사단의 청년 장교들이 다시 한 번 궁정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상명하복을 최고의 덕목으로 치던 일본 군부가 이끌었던 태평양전쟁이 하극상으로 시작해서 하극상으로 끝났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일본 제국 패망사>에서 아쉬운 점은 임팔 작전으로 알려진 일본군의 버마 침공 작전이 상대적으로 너무 간략하게 다뤄진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10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대륙에 묶어둔 중국 전선에 대한 부분도 태평양 전선의 기술에 비해 부족한 점도 눈에 띈다. 장제스의 국민당군이 전쟁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했다는 비판은 오류다. 만약 중국 대륙 전체를 일본군이 장악해서 불필요해진 병력들이 필리핀 전선이나 솔로몬 제도의 격전지에 투입되었다면 맥아더나 니미츠의 승리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의 원폭이 전쟁을 종전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정작 일본 군부를 원폭보다 더 심하게 압박한 것은 만주 전선에서 소련군의 개입이었다는 진술도 유의미한 역사적 사실의 발견이었다. 소련군은 딱 일주일 싸우고, 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비롯한 숱한 전리품을 챙길 수가 있었지 않았던가. 아마 역대 전사에서 이보다 남는 장사는 없었을 것 같다.

 

오래 전 소설 <대망>으로 유명한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태평양전쟁>(5)을 읽었다. 일본 종군기자 출신 극우 인사가 쓴 거의 소설에 가까운 내용이라 읽으면서 내내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태평양전쟁 전개의 대강의 흐름과 디테일에 대해 파악할 수가 있었다. 이번에 다시 만난 존 톨랜드의 <일본 제국 패망사>는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과 달리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비교적 균형 잡힌 시선으로 일본 제국의 패망을 추적한다. 서방에서 승승장구하는 독일이 세계정복이라도 하면, 자신들에게 떨어질 떡고물이 하나도 없지 않을까 하는 강박관념에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사로잡혔다. 그래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미국관의 전쟁이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시작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기회주의적 모습에서 태평양전쟁의 실체가 보였다. 패전 74년이 지나 다시 평화헌법을 버리고 전쟁국가로 거듭나려고 몸부림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군국주의의 유령이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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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9-05 11: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 되게 잘 찍으셨어요. 진짜 책에서 연기나는 느낌인데요??

리뷰 잘 쓰신 거야 너무 당연해서 언급하지 않은 것입니다.

레삭매냐 2019-09-05 11:46   좋아요 0 | URL
사진은 아침에 출근 하기 전에 막찍...

워낙 책의 분량이 방대해서 잊어 버릴
까봐 계속 업데이트 하면서 리뷰를 작성
했네요. 감사합니다.

stella.K 2019-09-05 15:27   좋아요 1 | URL
앗, 정말요! 책에서 불난 줄 알았어요.ㅋㅋㅋ
근데 전 못 읽을 것 같습니다.ㅠ

2019-09-05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9-05 13:10   좋아요 0 | URL
분량이 아주 방대합니다 ~
속으로 이거 물량작전으로 퓰리처상
을 받은 게 아니야 할 정도로 말이죠.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09-05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유럽/아프리카 전선과 태평양 전선에서 동시에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리라는 계산도 했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들이 동으로는 태평양, 서쪽으로는 중국 내륙, 남으로는 미얀마, 북으로는 만주에 걸쳐 전선을 확대시켜 고립되었음을 생각해본다면, 레삭매냐님께서 지적하신 강박관념과 오판 그리고 탐욕의 결과가 일본 군국주의자 스스로를 묶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레삭매냐 2019-09-05 13:13   좋아요 1 | URL
아주 명징한 지적이십니다 !

감당할 수도 없는 전선의 무리한 확대
가 결국 일본 패망의 원인이었다고 생
각합니다.

주변에 우호적인 나라들은 하나도 없
고 오직 적들만 쌓아 두었으니 이기
는 게 더 이상했을 것 같습니다.

초란공 2019-09-05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리하시느라 수고많으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무모한 전투를 개인적인 복수의 기회로 삼았던 맥아더는 <모비 딕>의 에이해브 선장 같단 생각이 드네요.^^;;

레삭매냐 2019-09-05 13:26   좋아요 1 | URL
재작년엔가 내 <모비 딕>을 읽어
보겠노라고 생각하고 기세 좋게
시작은 했지만 정작 다 읽진 못했
더라는.

맥아더는 정말 문제적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