왬! 라스트 크리스마스
앤드류 리즐리 지음, 김희숙.윤승희 옮김 / 마르코폴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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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매니아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려서 가요를 듣지 않았다. 왜냐구? 너무 구려서. 그 시절에는 팝송만 들었다. 누군가 가요를 듣는다고 하면, 단체로 다구리를 쳤다. 그 다음에는 헤비메틀에 미쳐 살았고. 또 그 다음에는 클래식의 세계에 흠뻑 영혼을 팔아먹었다. 지금은 다시 아이돌들이 부르는 가요를 즐겨 듣는다. 요즘 아이돌과 오래 전, 팝의 공통점을 가사를 모른다는 점이다. 신기하지. 나의 어릴 적 우상이었던 조지 마이클 형은 이제 고인이 되었다. 아주 오랜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이건 외전으로, 언젠가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거리에서 만났다. 들어 보니 내 덕분에 음악에 미친 그 친구는 음악다방을 차렸다고 했다. 아니 이럴 수가. 그 때 나는 죽어라 가요를 듣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에게 나는 배신자였다. 그에게 나의 배신을 알리지 않았다.

 

중고서점에서 <!>의 멤버였던 앤드류 리즐리의 자서전을 보는 순간, 이건 사야돼!가 절로 흘러 나왔다. <라스트 크리스마스>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영국 부시 미즈 시절, 팝스타를 꿈꾸던 두 소년이 만나 훗날 세계적 팝 듀오가 되는 <!>의 태동기가 그려진다. 요그(조지 마이클)는 그리스계 혈통으로 자신의 이름과 외모 특히 그의 골칫거리였던 곱슬머리 때문에 호남자 앤드류 리즐리에게 심한 열등감을 느꼈다. 그의 절친 미스터 리즐리에 의하면, 요그는 자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범생이었던 모양이다.

 

둘은 영국 사회에서 약간이방인이었던 모양이다. 미스터 리즐리는 이집트계 그리고 요그는 그리스 혈통의 남자였다. 여튼 그렇게 의기투합한 두 청소년들은 밴드를 결성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작업에 들어갔다.

 

요그와 앤드류가 청소년기를 보낸 1970년대말과 198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자 마거릿 대처가 집권한 영국은 무기력증이 휩쓸고 있었다. 세계적 불경기와 민영화 바람으로 영국에서는 대규모 실업과 파업이 일상화되었다. 그런 저간의 사정은 1982년 발표된 왬의 데뷔 싱글 <Wham Rap! (Enjoy What You Do)>의 가사에도 잘 나타난다. 일자리가 있건 없건 간에 하고 싶은 걸 즐기라고.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듣던 유행가 가사에 이런 심오한 뜻이 있을 줄이야.

 

물론 훗날 세계를 주름잡게 되는 왬이 처음부터 잘 나가는 그런 밴드는 아니었다. 처음에 앤드류와 요그가 만든 밴드 이름은 <더 이그제큐티브>였고, 숱한 멤버 체인지를 겪으면서 듀오로 이너비전과 계약하게 된다.

 

당시 음악계는 MTV의 등장으로 듣는 음악의 시대에서 보는 음악의 시대로 극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왬의 선배격인 듀란 듀란 그리고 스팬다우 발레를 비롯한 거의 모든 밴드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감각적이면서 멋진 그리고 자극적인 뮤직비디오를 만드는데 투자를 아까지 않았다. 왬이 레코드사와 계약하고 초반부까지만 해도 미스터 리즐리는 곡을 만드는데 있어 요그의 친구이자 음악적 동지였다. 왬의 최고 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는 <Careless Whisper>만 하더라도 공동 작사가와 작곡가로 미스터 리즐리가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지 않았던가. 다른 건 몰라도 음악에 있어 욕심쟁이였던 요그(팝스타가 되기 위해 조지 마이클이라는 예명을 정했다)가 친구에 대한 호의를 베풀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 명곡을 십대 후반의 청년들이 1981년에 대강의 모티프를 잡았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훗날 세계적 싱어송라이터로 발돋움하게 되는 조지 마이클이 이 곡을 만들면서 거의 완벽을 추구하는 바람에 곡의 시그니처가 된 초반의 색소폰 연주자를 11번인가 갈아 치웠다고 했던가. 지금도 절로 곡의 가사가 외워지는 <Careless Whisper>를 대학 시절 어느 맥줏집에서 같이 듣던 동기는 나이트클럽 부루스 타임에 스텝이 쩍쩍 붙는다는 말을 내게 했었지. 그저 이 곡을 노래로만 알았지, 댄스 플로어에서도 즐기는 명곡인지는 그땐 미처 몰랐다.

 

행운의 여신이 왬에게 미소를 보냈고, 1983년에 발표된 그들의 데뷔 앨범 <판타스틱>이 영국에서 대성공하면서 비로소 왬이 세계적 밴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영국을 넘어 전 세계 소녀팬들의 우상이 된 두 영국 청년들의 야심은 컸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영국 시장의 성공만으로는 야심가였던 조지 마이클은 만족할 수가 없었다. 결국 팝의 본토 미국 시장을 공략해야만 했다. 한편, 유명세를 타기 위해 팀의 매니지먼트사에서는 온갖 종류의 자극적 루머를 마다하지 않았다. 미스터 리즐리가 죄인 역할을 맡았다면, 조지 마이클은 성자 역할을 맡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Club Tropicana>의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로케이션 촬영지였던 이비사섬에서 조지 마이클은 앤드류에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밝힌다. 자신이 게이라고. 하지만 당시는 1980년대였고, 지금과 또 상황이 달랐다. 유리 멘탈(?)이었던 조지 마이클은 자신들의 음악적 성공을 위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철저하게 숨겼다. 건강하고 순수한 쾌락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이미지가 그들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팬을 속였던 걸까? 모르겠다, 지금의 기준에서 40년 전의 팝스타들의 행적에 대해 판단하는 게 옳은지 말이다.

 

어쨌든 왬이 세계 정상의 밴드로 우뚝 서게 되는 결정적 음악적 성취는 바로 두 번째 앨범이었던 <Make It Big>1984년 발표되면서였다. 전작 <판타스틱>이 치기 어린 두 청년들의 장난기 이런 그런 음악적 시도였다면, <Make It Big>이 차원이 다른 그런 음악들을 선보였다. 색소폰 전주만 들어도 짜릿해지는 <Careless Whisper>는 차치하고서라도, <Wake Me Up Befor You Go Go>를 필두로 해서 <Everything She Wants> 그리고 <Freedom>의 잇단 대흥행 그리고 전미투어까지 대성공시키면서 왬은 단순하게 영국 밴드가 아닌 그야말로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이런 성공의 이면에는 또한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가 합심해서 창조한 왬의 결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고 한다. 차트 성적에 유난히 집착하는 조지 마이클과 달리 미스터 리즐리는 순수하게 대규모 밴드와 함께 하는 투어를 온전하게 즐겼다. 하지만 솔로 아티스트로 불타는 야망을 가지고 있던 조지 마이클에게 왬은 어쩌면 하나의 굴레였을 지도 모르겠다. 밴드에서의 비중도 지나치게 조지 마이클에게 기울면서 두 친구의 불화설은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언론의 지나친 관심 덕분에 정상에 섰던 두 친구의 밴드가 결국 해체될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이 아니었을까.

 

심지어 둘이 합작해서 만든 <Careless Whisper>는 조지 마이클의 솔로곡으로 발표가 되었다. 미스터 리즐리가 많은 면에서 음악적으로 자신보다 출중했던 친구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들였다면 그 또한 이상하지 않았을까? 자서전에서 미스터 리즐리는 상당 부분을 그런 오해들을 해소하는데 할애한다. 어쩌면 이제 고인이 된 친구에 대한 마지막 예우였을 지도 모르겠다.

 

결국 왬은 1986628일 웸블리에서 가진 파이널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7년에 걸친 대항해를 마무리지었다. 해체와 더불어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조지 마이클은 다음해에 솔로 데뷔 앨범 <Faith>를 발표하면서 레전드 슈퍼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슈퍼스타 친구의 버프를 받았지만, 미스터 리즐리의 솔로 앨범은 폭망했고 그는 영원히 음악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전에 잠시 레이서로서 활동도 했지만 그 역시 그의 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왬의 자서전 <라스트 크리스마스>에서 미스터 리즐리는 상당 부분을 청소년 시절, 왬의 태동기 그리고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진솔하게 진행한다. 왬 이후에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는 아주 간략하게 그리고 2016년 크리스마스날 날아온 비보를 전하는 것으로 자서전의 대미를 마친다.

 

음악으로만 접하던 어린 시절 우상이 직접 저술한 자서전을 통해 만나는 경험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책에 나오는 노래들을 찾아 다시 듣고, 또 이런저런 감상에 젖었다가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영국의 평범한 청년들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팝스타가 되겠다는 자신들의 꿈에 도전하는 과정은 아름다웠다. 그들의 곡/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일자리를 찾아 집을 나가라는 부모님의 명령은 1981년 뿐 아니라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명제다. 이십대의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는 자신들이 처한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노래에 담았고, 그들과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이 그에 반응했던 게 아닐까.

 

인기 절정의 팝스타가 되었지만,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또다른 거대한 도전에 나선 조지 마이클의 내면세계에 대한 묘사도 마음에 들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성공을 거머쥔 청년들에게 조언을 건네줄 멘토의 존재가 부재했다는 점도 아쉽게 다가왔다. 특히 조지 마이클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터놓고 의논할 상대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이번 시즌에도 어김없이 거리에는 <라스트 크리스마스>의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하도 들어서 절로 싱어롱을 하게 된다. 나에게 <라스트 크리스마스>는 그런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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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2-23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Wham 저도 알지는 못해도 많이 들었는데 와! 요그라는 이름 참 이색적이네요 그리스를 연결해서 상상해 본적도 없었는데 레삭매냐님 덕분에 좋아했던, 좋아하는 조지 마이클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네요^^

레삭매냐 2023-12-23 22:59   좋아요 0 | URL
지난 여름에 넷플릭스에서 <왬!>
다큐가 나왔다고 하는데...

저는 넷플 구독자가 아닌지라 아직
도 못봤네요 ^^ 진짜 재밌다고 하
던데 말이죠.

항상 음악만 듣다가 책으로 만나니
또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coolcat329 2024-01-10 1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혹시 넷플릭스 왬 다큐보셨나요?
초딩 6때 처음으로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는데 그게 바로 조지 마이클이었어요. AFKN에서 faith 뮤직비디오 보고 세상에! 하고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ㅋㅋ
내 나이에 보면 안될 거 같은데 보고는 싶고 혼자 흠모했었네요. 어릴 때는 외모가 좀 아니었는데 데뷔하고 섹시해지면서 여성팬이 폭발적으로 늘자 본인도 당황하고 괴로워했다죠. 자신의 정체성을 세상은 모르니 얼마나 혼자 힘들었을지.

레삭매냐 2024-01-10 12:59   좋아요 1 | URL
아 저도 독서모임에서 저희 동지분께서
넷플 <왬!> 다큐 소개를 해주셔서 보고
는 싶었으나 넷플 계정이 없는 관계로
못 봤네요.

그러니깐요, <Faith> 시절 조지 마이클
은 정말 !!! 쨩쨩쨩 ~ 저도 에프켄에서
뮤비 보고 기냥...

조지 마이클의 성정체성은 책에 보니
이미 1집 <클럽 트로피카나> 뮤비
찍을 적에 앤드류 리즐리에게 고백했
다고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