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 광대
권리 지음 / 산지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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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스에서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분양 주택과 임대 주택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정책을 고수하는 단지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 읽고 있는 자크 스트라우스가 살던 198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에 따른 아파르트헤이트가 존재했다면, 2023년 대한민국에서는 부에 따른 그야말로 치졸한 차별정책이 백주대낮에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종차별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아프리카너들처럼 우리나라에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왔다.

 

어제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권리 작가의 <폭식 광대>에도 그런 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단편이 하나 실려 있더라. 원래는 문제적 표제작부터 시작하려고 했으나... 어쨌든. 제목은 <구멍>. 대한민국의 중심 강남의 어딘가에 위치한 게딱지 마을에 작은 빨간 벌레가 등장하면서 발생한 구멍이 문제였다. 별것도 아닌 작은 벌레들이 지반을 갉아 먹어서 초라한 판잣집들을 연쇄 붕괴시키고 있었다.

 

어느 사회나 별것 아닌 것들이 항상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던가. 부에 따른 노골적 차별을 부추기는 언론과 사회 풍조가 나에게는 게딱지 마을을 넘어 그 근처의 백년구에 즐비한 고층 아파트들마저 붕괴시킬 기세의 작은 빨간 벌레와 동의어로 읽혔다.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백년구의 구청장이 이름도 무시무시한 불도저로 바뀌면서 또 다른 욕망이 스물스물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재개발이라는 괴물이었다. 눈엣가시 같았던 게딱지 마을을 불도저로 싹 밀어 버리고 뉴타운 혹은 녹지공원 그리고 천연지하수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불도저 구청장은 선보였다.

 

권리 작가가 구사하는 <구멍>에는 건설 아파트 공화국이 가진 모든 추악한 민낯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이야 어찌 되던 말든 나만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실체가 솟아오른다. 어떻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씁쓸해지는 모르겠다. 너무 현실을 동조해서일까? 결국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공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경고가 이어진다.

 

<광인을 위한 해학곡>에서는 도대체 이해 불가한 현대 미술계 비판의 장이 열린다. 아무리 예술이 주관적 해석의 영역이라고 하지만, 피카소가 창조한 추상미술이 기득권화된 이래 팝아트 등등 고전 미술만 보고 자란 나로서는 도무지 주석이나 해석을 읽고도 이해할 수 없고 또 이해하고 싶지도 않게 되었다. 어쩌면 이런 난해한 해석으로 미술을 대중과 분리시키려는 그런 음모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프랑스의 저명한 예술가 장 콕도를 모방한 게 분명해 보이는 장곡도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추적하는 것으로 <광인을 위한 해학곡>은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아니 제목에서부터 예술가들이야말로 광인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선언이 아니었을까.

 

고전 미술가들이 창조를 담당했다면, 최근 현대 행위예술가들은 어렵게 만들어진 창조를 파괴하는데 중점을 두지 않았나 싶다. 평론가와 예술가들의 협잡 같은 컬래버도 인상적이다. 누군가에게는 예술 작품을 파괴하는 파렴치한 행위가 평론가들의 멋진 포장 버프에 힘입어 전무후무한 예술적 행위로 거듭나기도 하니 말이다. 어쩌면 나도 MOMA를 찾아 한편에서는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감탄하다가, 또 폴락이나 앤디 워홀의 변기나 수프 깡통 사진을 보고는 또 다른 차원의 격찬(1도 알지도 못하면서)을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 예술은 어쩌면 거대한 자본과 미디어가 총동원된 멋진 사기가 아닐까... 암튼 그렇다고.

 

<해파리>도 인상적이긴 했지만, 본 프로인 <폭식 광대>로 속히 넘어가자. 무려 12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긴 하지만 폭식이라는 기괴한 관음증에 현혹된 우리 대중의 실상을 고발하는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은 좀 유행이 지나긴 했지만, 한 때 먹방이 대유행한 적이 있다. 어마 무시한 음식들을 그야말로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이듯 입안에 집어넣는 퍼포먼스에 감탄했던 적이 있다. 무도에서 국수를 흡입한 어느 방송인 생각이 바로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도 어마어마한 식성을 자랑하는 이들이 너튜브로 무대를 옮겨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한다. 사람들은 화면에 등장하는 폭식 광대들의 퍼포먼스에 열광한다. 미디어에 공개된 화제는 바로 수익으로 직결된다. 자서전도 대필해서 인세도 벌고, 각종 굿즈들도 만들어서 짭짤한 부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행사장과 미디어 출연 요구도 쇄도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모두 돈을 벌기 위한 그런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문제는 소설에 등장하는 폭식 광대가 그렇게 허겁지겁 집어삼킨 음식들을 소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소화가 아닌 저장 방식을 선택(?)했던 폭식 광대는 결국 방송에서 토하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런데 어쩌면 폭식 광대의 추락은 예정된 수순이 아니었을까. 우리도 매일 같이 쏟아지는 너튜브 비주얼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그 내용들을 미처 소화시키지도 못한 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나도 어느덧 너튜브 중독자가 되었지만, 의도적으로 먹방이나 여행 콘텐츠는 기피한다. 왜 나의 즐거움을 타인의 그것에 의존해야 한단 말인가. 구독이나 시청으로 그들의 수익에 일조하고 싶은 생각이 1도 없다. 내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잘 먹고(기본적으로!) 잘 사니 무슨 걱정할 필요가 있겠냐고.

 

마지막은 오래 전에 가수 마돈나의 뮤직비디오에서 본 문구로 대신하련다.

타인의 허락에 따라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은 가련하다.”

 

[뱀다리] <폭식 광대>로 드디어 올해 100권 읽기 돌파했다.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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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2-25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 권 읽기 돌파, 축하합니다!!!

레삭매냐 2023-12-25 23:38   좋아요 0 | URL
가까스로 채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