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모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6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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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페터 한트케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 이 책을 읽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페터 한트케가 노벨문학상을 지난주에 수상했고 작가의 작품에 대한 호기심으로 좀비처럼 도서관으로 가서 그의 책들을 한 무더기 빌렸다. 다행히도 그의 책들은 분량이 적어서 읽는데 부담이 없었다.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이십대의 패기넘치는 청년 페터 한트케가 1966년 발표한 <관객모독>은 하나의 선언이고 도발이다. 기존의 연극이 어떠해야 한다는 모든 주장과 질서를 청년 한트케는 과감하게 파괴한다. 네 명의 배우가 등장한다고 하는데, 배우들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저 독자는 선언처럼 발표되는 내레이션을 따라갈 따름이다.

 

우리는 연극 무대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아마도 하나의 사건이 아닐까. 그런데 작가는 아무런 사건도 그리고 호기심도 가지지 말라고 선포한다. 내가 만약 관객이라면 이런 황당한 사태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기존의 매표, 극장까지 도착 그리고 암막이 올라간 다음 무언가 기대하는 일단의 과정을 훈련받은 관객들에게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말라니.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 와중에 청년 작가는 자신만의 언어유희를 마음껏 구사하고 관객을 농락한다. , 아무래도 적응이 잘되지 않는다. 그저 청년의 패기를 따라가는 것조차도 버거웠다고 고백해야지 싶다. 주체이면서 동시에 객체가 되어 버린 현대인의 심정을 대변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패전 20년이 지난 뒤 이제 바야흐로 유럽의 주인공으로 다시 부상하게 된 게르만 민족의 영혼에 대한 준열한 꾸짖음이라고 해석을 해야 할까?

 

어느 시점에서 느닷없이 관객은 준비된 욕설을 들어 먹는다. 아마 어느 누구도 장황하게 나열되는 대상화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오 마이 갓! 내가 도대체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거지?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연극은 막을 내린다.

 

청년의 소설은 대단히 실험적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다. 그리고 나는 <관객모독>을 읽으면서 다음의 이미지들이 연상됐다. 연출에 있어 완벽을 추구했다는 스탠리 큐브릭, 영화에 코믹한 그리스 희곡 요소들을 도입한 우디 앨런의 <마이티 아프로디테> 그리고 마지막 라스 폰 트리에의 비극 <도그빌> 말이다. 내 마음 속에 발생한 상관관계를 설명하자면 또 한바닥 정도는 써야겠지. 한트케의 욕설 덕분인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문득 그냥 어느 문청이 써제낀 치기발랄한 문학이 비평가들의 능수능란한 비평 솜씨에 힘입어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 번에는 <골키퍼>를 읽어봐야겠다.

 

[뱀다리] , 명백하게 이 리뷰는 노벨문학상 기념 나도 숟가락 얹기라고 자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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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10-14 1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숟가락 얹으러 준비(한트케 책 읽기)해야겠어요... ^^;;

레삭매냐 2019-10-14 19:44   좋아요 0 | URL
싸이러스 브로 고고씽~입니다.

stella.K 2019-10-14 19: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을 읽으셨군요.
전 전에 사 놓은 책을 이번 기회에 읽으신 것도 아니고 도서관에서 빌리기까지!
정말 진지하고 진정한 독자이십니다.
솔직히 우리나라는 시도 안 읽지만 희곡은 더더욱 안 읽지요.
더구나 이런 초현실적인 작품은...
노벨상 기념이면 어떻습니까?ㅋ

레삭매냐 2019-10-14 19:45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저도 아마 볼라뇨의 팬이 아니었다면 그의
시집은 읽지 않았을 겁니다...

페소아의 시집들도 샀는데 와 닿지가 않아
설라무네 짜비.

<관객모독> 읽고 나서 바로 <골키퍼>에
도전 중입니다.

Falstaff 2019-10-14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뱀다리가 진짜 재밌어요. ^^

레삭매냐 2019-10-15 10:11   좋아요 0 | URL
순수한 자백이지요...

노벨상 까면서도 또 궁금해서
엮이게 되는.

초딩 2019-10-19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싸고 얇고 올해 노벨상 수장자의 책이라 샀습니다. ㅎㅎ
독자 모독 당했어요

레삭매냐 2019-10-19 21:06   좋아요 0 | URL
저도 만약에 구입했다면 -

저자가 이 책을 발표할 당시 24세
라는 점을 고려하신다면...

북프리쿠키 2019-10-19 1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관객‘모독‘에 골키퍼‘불안‘에 소망없는 ‘불행‘까지 겪어본 바로 당분간 ‘긴 이별‘을 하고 싶네요^^;

레삭매냐 2019-10-19 21:16   좋아요 1 | URL
제가 읽고 있는 한트케의 저술에
따르면 <관객모독> <골키퍼> 같이
청년 시절에 쓴 작품과 <긴 이별>
처럼 장년기에 접어 들어 쓴 작품
은 좀 결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전자의 실험정신은 아무래도 지금
의 그것과는 다른 듯 하고...

좀 더 한트케를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북프리쿠키 2019-10-19 21:23   좋아요 1 | URL
네네 1970년대 이후 턴 해서 그런지 ㅎ 소망없는 불행부터는 좀 편해졌어요.
긴이별에대한 짧은편지는 텀을 두고 읽어볼려구요~
올가님도 만만치 않던데 저도 레삭님 따라갈께요 ㅎㅎ

coolcat329 2019-10-20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연극을 20년전 대학로에서 봤는데, 관객에게 물바가지를 뿌려서 그 물을 피하느라 긴장한 기억밖엔 없습니다. 공짜표라 본건데 더 이상 할말은 없네요ㅠㅠ

레삭매냐 2019-10-20 18:57   좋아요 0 | URL
아니 관객들에게 물을 멕이려고
하다니... 진짜 모독의 정수를
보여 주었나 봅니다 :>

책은 참, 한 숨만 나오더라구요.
 
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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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책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로운 작가라면 더더욱 환영이다. 그래서 해마다 부커상(보수적인 노벨문학상보다 좀 더 다양하고 선택의 폭이 넓다) 후보작에 오르는 작품들을 눈여겨보는 편이다. 올해도 케빈 배리나 맥스 포터 같은 작가들에 대해 알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알게 된 데이빗 설로이는 다음 달에 한국을 찾는다고 한다. 싸인 받으러 가야지. 부커상 숏리스트가 발표되자 곧바로 작년 수상작에 대한 관심이 갔다. 그렇지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 애나 번스의 <밀크맨>이었지. 부커상 수상작이 우리에게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년 정도 필요한 것 같다. 그렇다면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책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솔직하게 말해서 애나 번스의 세 번째 소설 <밀크맨>의 장벽은 드높다. 우선 수백 년 동안 지속된 북아일랜드 분쟁(the Troubles)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소설의 전개를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오래 전에 세계 분쟁지역의 아일랜드 공화군(IRA) 덕분에 북아일랜드 상황에 관심을 가졌는데, 아무래도 우리의 일도 아니고 하다 보니 관심이 줄어들었다. 그동안 평화협정이 맺어졌고, 가톨릭교도의 IRA와 신교도 UDA 모두 무기를 내려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고위 정치권의 노력과 막대한 재정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과거사에 대한 상이한 시각 때문에 여전한 갈등이 임시적으로 봉합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소설의 몰입을 방해하는 두 번째 요인은 애나 번스 작가가 구사하는 캐릭터들의 철저한 익명성이다.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18세의 소녀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어쩌면-남자친구”, 주변 인물들 역시 핵소년”, “셋째 형부등으로 불린다. 참고로 그녀는 걸어다니는 소녀라고 불린다나. 애나 번스는 전체주의적 부족사회같은 북아일랜드 공동체의 지나친 관심이 버거운 십대 소녀의 감성을 대입해서 기술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캐릭터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현대 영미문학 스타일의 짧게 치고 나가는 문장이 아니라 너무 길어서 몰입이 쉽지 않았다.

 

이런 장벽을 헤쳐 나가면 오롯하게 2018년 부커상에 빛나는 <밀크맨>의 고갱이를 만나볼 수 있다. 중년(41)의 반대파 준군사 조직원이자 지역 영웅으로 간주되는 밀크맨은 소녀를 스토킹한다. 그는 왜 주인공(18)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주인공은 그저 부족사회로부터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운 나머지, 18세기 혹은 19세기 소설(<아이반호>)에 집착하면서 자신을 그들로부터 소외시키고 차단하고 싶을 뿐이다. 주인공의 엄마에게 딸들은 그저 때가 되면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출산해야 하는 존재로 비친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릴 적, 끔찍한 트라우마 덕분에 우울증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나셨다.

 

주인공 소녀는 그놈의 밀크맨과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관계를 부풀리고 확대 재생산한다. 소설에서는 유비통신으로 표현되는 가짜 뉴스 덕분에 그녀는 졸지에 행실이 나쁜 여자가 되었다. 주인공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령처럼 그녀에게 다가온 밀크맨은 그녀의 모든 것 심지어 상상까지도 들여다보는 느낌을 준다. 자동차 정비공인 그녀의 어쩌면-남자친구(20)가 어쩌면 큰형부가 됐을 지도 모를 첫째 언니의 남자친구처럼 자동차 폭탄으로 죽을 지도 모른다고 했던가.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공간(북아일랜드)에는 각종 폭력이 난무한다. 바다 너머 저편의 나라는 팔백년 동안 걸어다니는 소녀가 사는 곳을 식민지로 지배했다. 그리고 신교도들을 대거 유입시켜 종교 갈등을 유발시켰다. 같은 뿌리를 가진 종교지만 다른 방식의 믿음으로 갈등은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국가 수호자와 반대파들이 등장했다. 무장 경찰들은 밀크맨으로 대표되는 반대파들을 도청 감시하고, 개들을 잔혹하게 학살했다. 그 와중에 죽은 고양이의 사체를 묻어 주기 위해 나선 걸어다니는 소녀, 가운데언니는 상도를 벗어난 사람으로 치부되어 루머와 수치스러운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뭐 그 세계에서는 놀랍지도 않은 설정이었지만.

 

설상가상으로 밀크맨의 개입으로 걸어다니는 소녀의 주변에는 잇달아 불행이 발생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독을 먹이는 알약소녀에게 당한 걸어다니는 소녀는 전통 비법에 의한 구토와 주변 기도꾼들의 도움으로 살아나지만, 그녀에 대한 부당한 시선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모든 게 잘못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스스로 고립과 소외를 선택한 주인공 걸어다니는 소녀의 결정이 오히려 주변인들에게서 상도를 벗어난 행동으로 간주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밀크맨이 매복한 무장 경찰의 총을 맞는 사건이 발생하고, 걸어다니는 소녀의 엄마의 고백이 이어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역설적으로 사랑하지도 않는 누군가와 무작정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비극은 또 어떻게 설명한 것인가.

저자가 설정한 어쩌면-남자친구에 대한 진실, 밀크맨의 정체성 등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후반에 대거 포진되어 있다. 사태가 진정되고 나서 클럽에 간 걸어다니는 소녀가 아무개 아들 아무개에게 폭행을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여성들이 보여준 연대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설사 그들의 행동이 걸어다니는 소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말이다.

 

애나 번스의 <밀크맨>은 상당히 정치적 소설이면서도 동시에 비극적 시대를 경험한 개인의 서사이기도 하다. 소설의 상당 부분에 작가가 직접 체험한 자전적 이야기들이 녹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충분한 보상이 따르는 그런 독서의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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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댓 맨 이즈
데이비드 솔로이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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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us love what is eternal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지난달엔가 이달에 데이빗 설로이 작가가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예전에 사두었다가 지금껏 펴보지 않았던 설로이 작가의 <올 댓 맨 이즈><스프링>을 펴들었다. 곧 이어 <올 댓 맨 이즈>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고 과연 설로이 작가가 방한하기 전에 책이 나올지 궁금했는데 다행히 지난 주말이 시작되기 전에 책을 주문해서 받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분량이 제법 되긴 했지만 고대해 마지않던 책이라 그런지 기대감으로 금방 읽었다.

 

우선 <올 댓 맨 이즈>는 장편인가 아니면 단편소설집인가. 형식으로 보면 아무래도 후자에 가깝다. 4월부터 12월까지 모두 9편의 남자 주인공들(제목이 말해준다)이 차례로 등장해서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어쩔 땐, 주인공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면 어디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사건들을 매개로 설로이 작가는 21세기 유럽의 풍경을 담아낸다. 무언가 흥미진진한 일들이 벌어지길 바라며 유럽의 각처를 여행하는 17세 소년 사이먼과 퍼디낸드가 첫 번째 세그먼트를 장식한다. 우연히 만난 지인의 거처를 찾아 기식하는 그네들의 모습에서 한 때 세계를 지배했던 식민주의자들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한다. 내가 오래 전에 찾은 베를린의 모습은 우중충하고 추운 5월의 어느 날로 기억될 따름인데. 내 사진을 찍어 주려다 자신의 카메라를 떨어뜨린 여학생도 있었지. 생각이 좀 다른 친구 간의 여정이 내게는 좀 아슬아슬하게 다가온다.

 

프랑스 릴에 사는 베르나르의 사이프러스 행은 또 어떤가. 학교를 중퇴하고 외삼촌에 호의에 기대야 함에도, 다짜고짜 휴가를 요청하는 철부지의 모습이 눈에 거슬리는 걸 보면 나도 꼰대인가 보다. 나도 베르나르처럼 같이 호주 배낭여행에 가기로 했던 후배가 사정으로 가지 못하게 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타의에 의해 나홀로 여행에 나선 베르나르의 처지가 절절하게 이해가 됐다. 그리고 광고와 달리 전혀 쿨하지 않은 호텔에 묵게 된 베르나르의 여행 동료가 되다시피 한 샌드라와 샤미언 모녀 사이에 벌어지는 일대 사건은 라틴 남자가 지닌 남성성에 대한 일종의 판타지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로맨스를 꿈꾸는 이십대 청년의 발칙한 상상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중세 연구를 하는 카렐이라는 청년은 자신이 폴란드 여자친구의 아버지에게 고급 SUV를 배달하는 도중에 접촉사고로 도장비를 물어 주어야 하는 사고를 친다. 그건 곧 합류한 여자친구가 던진 폭탄선언에 비하며 아무 것도 아니다. 임신이라니... 아마 카렐이라는 친구의 미래에는 임신이나 결혼이라는 계획은 들어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 한 차례의 불장난으로 그는 생각했던 모양이다. 당장 직면한 문제보다 천 년 전, 중세 어원 연구에 정력을 쏟는 이상주의자는 현실적 해결책을 여자친구에게 제시해 보지만 결과는 답답하기만 하다.

 

어떤 남자는 런던에서 매춘을 하는 고향 출신 여성에게 연정을 품고 그녀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고객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자신이 엑스팻(expatriate)으로 거주하는 크로아티아에 갔다가 현지인에게 사기를 당하는 남자도 등장한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네덜란드인 한스피터르는 버젓하게 애인도 만나고 네덜란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만 그에게는 친구 하나 없다. 자신의 운에 마가 끼었다는 말에 그는 푸닥거리에 능하다는 무당 혹은 점쟁이를 찾아가 들으나마나 싶은 이야기를 듣고 50유로를 뜯긴다. 그러니까 되는 놈은 무얼 해도 되고, 안 되는 놈은 무얼 해도 안 된다는 말일까.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더 나이를 먹어가고, 그들에게 닥친 문제들도 십대의 그것과는 결을 달리한다. 덴마크에 사는 황색언론 종사자인 크리스티안은 장관의 스캔들을 어떻게 폭로해서 자신이 일하고 있는 회사에 긍정적인 돈벌이로 만들 것인지 고민한다.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지금 살고 있는 삶의 조건보다 더 나은 조건을 만들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폭로전에 나서야 한다는 게 크리스티안의 속마음이다. 그런데 자신 역시 비슷한 처지가 아니었던가. 팩트 체크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소송 전에 휘말리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방패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크리스티안은 오늘도 스캔들을 향해 돌진한다.

 

중반을 넘으면서 소설은 <올 댓 맨 이즈>의 주인공들을 비로소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것도 설로이 작가의 설정이었을까. 한 때 세계에서 철의 남자라고 불릴 정도로 성공을 거둔 알렉산드르는 심각한 소송전의 패배로 이제 파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니 이미 그는 파산한 상태다. 현재 자신의 쌍둥이 자녀의 어머니인 동거녀는 결별을 선언하고, 파산한 배우자의 재산의 상당 부분을 요구한다. 사실 알렉산드르는 언제 자살을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상태다. 마지막 여행일 지도 모르는 지중해 코르푸 섬을 찾아, 자신의 전담 변호사로부터 현재 재정 상황을 보고 받는다. 보통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생활 유지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이 보장되는 자산이 있지만, 그에게는 무의미할 따름이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 되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다. 알렉산드르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영국 귀족은 파산한 그가 식사 값을 내길 바랄 따름이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 이제 이야기는 돌고 돌아 마지막 세그먼트의 주인공 토니 파슨을 만날 차례가 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뫼비우스의 띠 같은 구성의 소설인가. 토니는 첫 번째 세그먼트에 등장한 사이먼의 할아버지다. 토니 역시 영국을 떠나 이탈리아 아르젠타의 별장을 찾은 엑스팻이다. 손자 사이먼이 쓴 시를 감상하고, 나홀로 여행을 즐긴다. 그가 받았다는 기사 작위도 심장수술과 불의의 교통사고라는 현실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렇게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토니는 체험한다. 지난 이십년 동안, 부부라기보다 동반자 같은 존재였던 조애너가 뉴욕에서 야간비행기로 토니를 간호하기 위해 찾아온 장면도 인상적이다. 그런데 그들이 별거하게 된 원인 제공자가 토니가 아니라 조애너였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그래 맞아 살아 보니 인생은 농담이 아니더라. 과연 이런 성찰을 십대 소년이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나도 그 시절에는 영원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점에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또 역설적으로 미래의 엘리트로 옥스퍼드에 입학한 사이먼은 자신의 시에서 영원한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 그리고 존재의 질감에 몰입하는 무아지경의 순간에 대해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세대를 초월한 영원에 대한 갈구라고 해석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삶 속에서 페리투라(덧없음)를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에테르나(영원)를 추구할 것인가. 이에 대해 삶에 대한 정답은 없다는 가치중립적인 명제만이 떠오를 따름이다.


유럽의 곳곳을 도는 9명의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데이빗 설로이의 <올 댓 맨 이즈>는 과연 매력적인 독서 체험의 시간들이었다. 단순해 보이는 십대들의 욕망으로부터 시작해서, 성장통을 겪는 청년의 기묘한 나홀로 여행, 연정으로 폭력을 휘둘러 일자리를 잃게 되는 남자, 여자친구의 폭탄선언에 충격 먹은 중세 연구자, 파산 위기에 내몰린 거부 그리고 이제 죽음을 앞둔 노인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그런 내면의 이야기들이 내뿜는 아우라는 황홀했다. 이번 방한과 <올 댓 맨 이즈>의 출간에 힘입어 그의 다른 작품들도 계속해서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최근작인 <터뷸런스>가 기대된다. , 이제 오늘 작가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가서 무슨 질문을 할까, 행복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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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0-07 1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께서는 세계문학작품을 정말 폭넓게 읽으십니다. 문학작품을 많이 접하지 못했는데 레삭매냐님 덕분에 대리만족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19-10-07 11:3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그저 이러저러한 경로로 알게 된 작가
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줄기차게 읽고
있답니다.
 
갈라파고스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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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아이필드에서 나온 <갈라파고스>를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다윈 진화론의 발생지인 갈라파고스 제도를 앞세운 한 때 나의 최애작가 커트 보네거트의 기발한 상상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완독하지 못했다. 아마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

 

그리고 수년이 흘러 다시 새롭게 에프출판사에서 출간된 <갈라파고스>와 만나게 되었다. 잠시 <고양이 요람>과 헷갈렸지만 바로 궤도를 바로 잡을 수가 있었다. , 이 책이 내가 예전에 읽다가 실패한 <갈라파고스>구나!

 

화끈하게 스포일러로 소설을 시작해 보자. , 그렇다면 마치 전지전능한 신처럼 등장해서 백만 년 뒤의 이야기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방대한 내러티브의 화자는 누구일까? 꾸준하게 읽을 독자라면 알게 되겠지만 그는 바로 커트 보네거트의 문학적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저명한 SF작가 킬고어 트라우트의 아들 레온 트라우트다. 그가 어떻게 해서 갈라파고스에서 새로운 현생 인류의 조상이 되는 무리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갈라파고스>를 읽어 보시라. 후회하시지 않을 것이다.

 

시간적 배경은 1986년 에콰도르의 과야킬 항구. 공황인지 경제위기 때문인지 에콰도르 경제는 파산이 났고, 사람들은 먹을 게 없어 굶주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판국에 엘도라도 호텔에 머물고 있던 6명의 여행객들은 갈라파고스 제도행 호화유람선 바이아데다윈호에 탑승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네거트는 친절하게도 모든 이들이 갈라파고스에는 가지 못할 거라는 예언과 함께 곧 죽을 이들의 이름 앞에 별표를 붙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인류의 진화가 그렇듯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잇달아 벌어지면서 때로는 물고기를 잡아먹는데 특화된 뇌조차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줄어든 현생 인류의 모습과 비교해 가며 재미진 썰을 줄창 풀어낸다. 한편, 레온 트라우트는 미 해병대의 일원으로 참전한 베트남에서 자신의 동료들을 수류탄으로 죽인 베트남 할머니에게 총질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여전히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던지는 저자의 일관된 주장 앞에 숙연해진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 뭐 그런 것 때문에 레온은 스웨덴으로 정치적 망명을 감행하고, 우리에게도 <말뫼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잘 알려진 말뫼에 가서 바이아데다윈호 제작에 참여하기도 한다. 물론 그도 거기에서 죽었다. 그러니까 반유령 같은 존재로 보네거트가 소설에서 계속해서 언급하는 내세의 파란 터널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이야기를 택한 멋진 사나이기도 하다. 그렇게 가는 거지.

 

헌팅턴 무도병이라는 희귀 질병의 유전 보인자를 가지지 않은 동생 대신 바이아데다윈호의 무능한 선장 아돌프 폰 클라이스트가 살아남은 현생인류의 조상이 되었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고작 백년도 못하는 인류가 백만 년 뒤의 일까지 어떻게 걱정한단 말인가. 다만, 커트 보네거트가 계속해서 소설에서 언급하듯이 우리 인류가 지구별에 사는 동안에는 오염을 막을 수 없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반전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이웃 페루와의 전쟁 그리고 잇달아 벌어진 에콰도르 민중들의 폭동으로 엘로라도 호텔은 물론이고 신판 노아의 방주라고 할 수 있는 바이아데다윈호 마저 약탈당하고 만다. , 그렇다면 이렇다 할 장비나 변변한 자원도 없이 설상가상으로 무능하기 짝이 없는 아돌프 선장의 지휘 아래 노아의 방주 시즌 2에 올라선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 세기 최고의 SF작가 중의 한 명이라고 불릴 만한 커트 보네거트는 신판 노아의 방주에서 인류 진화 과정에서 우연이라는 강력한 요소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 광의의 의미에서 진화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꼭 선의가 좋은 결과를 빚어내는 것도 아니고, 실수가 파멸적 결과를 초래하다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보네거트는 다소 비관적인 견지에서 미래를 예견했지만, 그 미래세대인 우리는 여전히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보네거트 선생, 내세의 파란 터널에서 언젠가 우리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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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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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다 읽고 나서 북글을 쓰기 전에 두 가지를 하고 싶었다. 하나는 1989년에 코스타 가브라스가 발표한 <뮤직 박스>라는 영화를 보는 것과 다른 하나는 최근에 출간된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평전을 읽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전자는 가능했지만, 후자는 시간 부족으로 미처 하지 못했다. 그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와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데뷔작 <저지대>를 통해 그녀의 작품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았는데, 이번에는 그녀의 가장 최신작인 <숨그네>를 만났다. 보통의 독서 속도라면 금세 다 읽으리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깨져 버렸다. 그녀의 글에 담긴 숨결의 무거움을 탓이었을까? <숨그네>를 읽는 동안, 나의 책읽기 진도는 여느 때와 비교해서 현저하게 느려졌다. 짤막한 이야기가 빚어내는 편린을 긴 호흡으로 읽어야 했다.

 

<숨그네>의 주인공은 헤르타 뮐러와 공동 작업을 하던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문학적 페르소나 레오폴드 아우베르크다. 히틀러의 충실한 파시스트 동맹국으로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루마니아는 2차 세계대전 말기, 서쪽으로 맹렬하게 진격하던 러시아에게 점령당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살던 독일계 주민을 모두 러시아 수용소로 이송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겨울바람이 그렇게 매섭게 불던 어느 날, 레오를 포함한 일단의 작센족들은 가축 화차에 실려 러시아의 모처로 끌려간다.

 

그리고 앞으로 5년간 레오는 배고픈 천사심장삽을 벗 삼아, 할머니의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말을 주문처럼 곱씹으며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선다. 한창 자랄 나이의 청소년에게 목숨을 겨우 연명할 정도의 빵과 양배추 수프는 턱없이 부족한 음식이었다.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분신인 레오는 허기를 이기지 못해, 음식쓰레기를 뒤져 감자껍질을 집어 먹는다. 아마 그는 한 개의 감자조각을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기꺼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팔아넘겼을 것이다. 그만큼 그가 가졌던 허기를 달래기 위한 욕망은 절박했고, 어떤 방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크기에 비례해서 그의 절망은 커져만 갔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지상과제는 그들이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향수마저도 사치로 치부해버린다.

 

먹는 것만큼이나 생존을 위해 절실하게 필요했던 입성 또한 레오에게는 큰 걱정거리였다.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차례로 죽어나가는 사람의 옷을 벗기는 데 추호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인간성 말살의 현장을 헤르타 뮐러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들에게 닥친 걱정은 시체가 사후경직을 일으키기 전에 신속하게 쓸 만한 옷가지를 챙기는 것이었다. 도대체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 작가는 생생한 육성으로 독자에게 들려준다. 이런 비참함 때문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은 점점 더디어져 간다.

 

한편, 생존을 위한 어떤 기술도 가지지 않은 레오는 수용소의 기계적인 노동을 자신이 그리는 판타지 속의 예술로 승화시켜 나간다. 그런 판타지야말로, 권태와 무료가 지배하는 수용소 생활을 맨 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을까? 이제는 친근해진 배고픈 천사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주위를 맴돌고 먹는 것과 추위를 피하기 위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만이 악다구니를 부리는 수용소라는 폐쇄적 공간이 주는 공포는 종종 한밤중에 간수에게 불려나가 담벼락에 서는 섬망(譫妄)으로 이어진다. 가족이라는 희망의 끈은, 어느 날 어머니가 보내준 대리형제의 사진으로 산산조각이 난다. 갓 태어난 자신의 대리형제가 가족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대체할 거라는 망상이 레오를 괴롭힌다. 과연 이런 참혹한 수용소의 현실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고향으로 복귀하더라도 과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오랜 교정 생활 끝에 출소한 늙은 재소자가 사회를 등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런데 정말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궁금하게 했던 것은, 레오와 다른 작센족들이 과연 아무 죄 없이 러시아로 끌려갔을 까라는 의문이었다. 전 오스트리아 대통령이었던 쿠르트 발트하임, 현 로마 교황 베네딕토 16세 그리고 좋은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귄터 그라스의 과거에 드리워진 나치의 그림자가 버티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더더욱 <숨그네>의 북글을 쓰기 전에 코스타 가브라스의 <뮤직 박스>를 보고 싶었다. 자신의 가족에게마저 자신의 끔찍한 전쟁범죄를 철저하게 위장한 어느 파시스트 전범의 이야기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나에게 전후 억울하게러시아의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의 고통을 당한 무고한 양민들에 대한 동정심과 더불어 나치 군대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조국의 재건을 위해 부족한 노동력을 벌충하기 위해 점령국 주민들을 강제 동원한 러시아에 대한 이해라는 양가적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도 17세 레오가 체험한 5년간의 수용소 생활을 단순하게 시대의 비극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오스카 파스티오르가 짊어져야만 했던 버거운 삶의 무게가 그대로 전이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숨그네>를 다 읽고 나서, 자꾸만 미뤄오던 숙제를 다 마친 것 같이 후련했다. 뉴욕타임스에서는 헤르타 뮐러는 귄터 그라스 이후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 작가(German writer)로 소개를 하고 있는데, 왠지 그녀의 조국 루마니아가 휘발해 버린 느낌이 들어서 아쉬운 마음이다. 언젠가 독서모임에서 작가의 정체성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 독일 작가로 귀결이 되었던 것 같다. 숨그네, 심장삽, 볼빵 같이 그녀가 구사하는 독일식 조어(造語)가 과문한 독자에게 원전 그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이 작가의 책임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노벨문학상 수상작, 역시나 어렵다.


[뱀다리] 9년 전에 노벨상의 후광으로 그녀의 작품들이 연달아 5권 소개가 된 뒤, 저자의 신간이나 구간 출간소식이 들리지 않아 아쉽다. 그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후자의 경우에는 신간이 계속 나오는 데도 소개가 되지 않아 더 그렇다. 창비에서 올 12월에 대작 <까떼드랄에서의 대화>가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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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9-10-02 0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지대‘를 읽었는데 딱히 기억나는 내용이 없네요. 제 독서가 워낙 깊은 읽기가 부족해서 늘 아쉽습니다. 지난 주말에 읽은 ‘그날의 비밀‘을 보니 직접적인 학살이나 유대인말살정책에 관여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상당수의 ‘전범‘들이 집유로 풀려나서 잘 살았더라구요. ‘작센족‘들의 유무죄에 대한 의문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레삭매냐 2019-10-02 09:27   좋아요 1 | URL
작센 족이라는 이유로 무고하게
러시아 수용소로 끌려 가게 되었다
고 하는데...

안슐루스나 나치의 체코 병합 당시
연도에서 환호하던 독일계 주민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습니다.

헤르타 뮐러의 책들은 역자가 모두
달라서인지 몰라도 같은 작가가 쓴
책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뒷북소녀 2019-11-05 1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리커버판. 저는 리커버판 별로 안 좋아해서요...
이 작품은 저도 조만간 읽어보려고 찜해뒀던 책이랍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일시적인 관심보다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것 같아요.
독자도, 출판사도요.^^

레삭매냐 2019-11-08 16:52   좋아요 0 | URL
ㅋㅋ 사실 이 리뷰도 표지갈이
아니 리뷰갈이랍니다.

헤르타 뮐러의 책들은 노벨상 수상
즈음해서 왕창 읽었었는데 저하고
는 맞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게다가 그 뒤에는 신간 소식도 없고.
아마 그렇게 가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