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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플러 - 가장 진실한 허구, 퍼렇게 빛나는 문장들
존 밴빌 지음, 이수경 옮김 / 이터널북스 / 2023년 12월
평점 :
8년을 기다렸다, <닥터 코페르니쿠스>를 만나고 나서. 존 밴빌의 “혁명 3부작” 중에 두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케플러>가 드디어 출간됐다. 그리고 존 밴빌의 책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펀딩을 해서 지난 토요일에 받아서 어제 다 읽을 수 있었지만 일부러 완독을 하루 끌었다. 그만큼 재밌다는 말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받아 들여, 수천년 동안 점성술 혹은 미신에 가까웠던 천문학을 새로운 학문의 경지로 끌어 올린 문제적 인물이 바로 슈바벤 바일데어슈타트 출신의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였다.
존 밴빌은 새로운 세계관을 창시자였던 코페르니쿠스에서 출발해서 아이작 뉴턴에 이르는 근대 자연철학자 열전 가운데 중간다리 역할로 케플러를 골랐다. 전작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이것이 전기소설인지, 아니면 바로 옆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은 관찰예능인지 모를 정도의 몰입감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케플러의 아버지는 허풍장이 용병이었고, 어머니 카타리나는 타고난 독설가였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박쥐 날개 같이 요즘으로 치면 마약에 가까운,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는 대단히 위험한 물품을 취급하던 자연치료사, 당시 말로 하자면 마녀에 가까운 그런 인물이었다. 이런 연대기적 흐름 대신, 소설은 1600년 그러니까 새로운 세기에 프라하 근처의 베나테크성으로 가족들과 함께 덴마크 출신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학자 튀코 브라헤를 만나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당대 유수의 지식인이었던 케플러의 성공은 역설적이게도 점성술에 힘입었다. 그 어느 때보다 혹독했던 겨울의 추위와 튀르크 군단의 침공을 예언하면서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쓴 <우주의 신비>보다 더 큰 관심을 모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케플러가 발견했다는 전체의 세 법칙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관심이 없는 분야다 보니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발견이었는지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그보다 루터 교도로서 자신이 믿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가톨릭 신앙이 대세였던 그라츠와 린츠 그리고 합스부르크 군주 밑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봉사해야 했던 인간 케플러의 고뇌에 더 관심이 갔다.
아내 바르바라 뮐러에게 케플러는 놀랍게도 세 번째 남편이었다.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수전노 같은 이미지의 장인과 바르바라에게 협공당하는 장면은 네이트판에 등장할 법한 스토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우주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 전력투구하던 위대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역시 우리네 같은 그런 일상과 싸워야 했단 말이지.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는 그런 풍경이 문득 살갑게 다가왔다.
생존과 알량한 재산을 지키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한 장인과 달리 케플러는 평생 종교적 신념을 지킨 인물이었다. 케플러가 루터 교도로서 정체성을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면 그의 신산한 삶에 한줄기 빛이 비추게 되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제국의 황제였던 루돌프 2세 앞에서도 눈치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떠들던 자가 바로 케플러가 아니었던가. 동행한 브라헤가 그렇게 눈치를 주는데도 외골수였던 케플러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다. 끝까지 십진법 체계이기 때문에 모든 수가 9로 나뉜다는 황제의 화두를 설명하는 장면은 케플러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존 밴빌식 해석이 아닐 수 없다.
훗날 화성 전쟁으로 알려진, 화성의 공전 궤도를 알아 내기 위해 무려 70번이나 되는 엄청난 계산을 마다하지 않고 7년이란 세월을 투자한 사나이가 바로 케플러였다. 어쩌면 그에게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의 운행과 천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만한 어떤 하나의 놀이가 아니었을까. 자신이 하고 싶은 그런 놀이를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요하네스 케플러라는 문제적 인물이 가진 다양성의 본질과 인간 내면을 꿰뚫어 보는 듯한 저자의 서사에 놀랄 수밖에 없다. 물론 상당 부분을 후대에 쓰인 글들을 참조했겠지만, 그것을 뼈대로 해서 지근거리에서 자신이 직접 본 것을 글로 옮긴 것 같은 전언적 서술에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의붓딸 레기나와의 관계에서 특히 그런 점이 느껴졌다.
자신을 발탁한 튀코 브라헤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장년의 변덕스러운 브라헤 특의 오만함과 허영심에 질린 케플러는 그의 존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 역시 천문학계에서 코페르니쿠스를 계승해서 나름 빼어난 커리어를 쌓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자신이 크리스티안 롱베르나 텡나겔 같은 브라헤의 조수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과음 때문에 발생한 방광염으로 사망한 브라헤가 남긴 천문관측 자료들은 결국 그의 유언에 따라 케플러가 상속받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던 케플러에게 브라헤가 남긴 자료들은 그야말로 노다지가 아니었을까.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루돌프력을 만드는 수고 역시 케플러의 몫이 되었다.
브라헤 사후, 케플러는 제국의 공식 수학자가 되었지만 군주들이 원하던 점성술사로서의 역할에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자신을 지지해주던 루돌프 2세가 강제로 퇴위되고 경쟁자 마티아스 그리고 자신과 악연으로 얽힌 페르디난트 2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케플러의 운명 역시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30년전쟁>이라는 대전란 가운데, 가톨릭 신앙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페르디난트 2세의 치하에서 곡예에 가까운 줄타기를 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케플러의 모습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자신에게 한푼의 유산도 상속하지 않은 아내 바르바라는 끝내 케플러의 “꿈”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었다. 의붓딸 레기나 역시 27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바르바라와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도 유년기를 못 넘기고 사망했다. 우주의 신비와 질서를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친 케플러에게 삶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통의 원천이기도 했다.
소설 후반에 아주 짧게 페르디난트 2세의 총사령관으로 전장에서 맹활약한 발렌슈타인과의 인연도 등장한다. 구두쇠 황제는 자신이 케플러에게 지급하기로 약속한 돈을 발렌슈타인에게 떠넘긴다. 케플러를 천문학자라기보다 자신의 개인 연금술사나 점성술사 정도로 받아들인 발렌슈타인은 케플러가 바라던 후원을 해주지 않았다. 전장에서 승승장구하던 발렌슈타인이 황제의 총애를 잃고 몰락해 버리면서, 케플러는 연구와 책의 인쇄를 위한 자금줄이 막혀 버렸다. 다시 한 번 황제에게 자금 출연을 호소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케플러는 1630년 11월 15일 레겐스부르크에서 사망했다.
르네상스 부흥으로 촉발된 인문주의와 자연철학의 세례, 새로운 세계관을 상징하는 종교개혁 그리고 인쇄술의 진보에 힘입어 요하네스 케플러는 “새로운 천문학”의 길을 닦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식들과 부인을 차례로 잃었고, 어머니 카타리나는 마녀 재판에 회부되어 송사로 수년간 시달려야 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케플러는 신이 창조한 우주의 질서와 신비를 밝히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케플러의 인생 후반기는 역병과 기근이 끊이지 않던 30년 전쟁이라는 대전란의 시기였다는 점이다. 다사다난한 개인사, 종교적 핍박과 역경의 시절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케플러의 3법칙과 훗날 뉴턴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행성 간의 중력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는 사실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단순하게 근대 천문학자 정도로만 알고 있던 케플러가 품고 있던 다채로운 삶의 스펙트럼을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무대에 올려 독자에게 소개한 저자 존 밴빌의 의도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혁명 3부작”의 마지막 주자인 아이작 뉴턴이 등장하는 <뉴턴 레터>의 출간도 기대해 본다.
[뱀다리] 인별그램에서 케플러에 대한 피드가 있나 해서 검색해 보니, 죄다 걸그룹 케플러에 대한 피드만 보여서 좀 실망했다. 21세기에는 천체와 행성 전문가 케플러보다 아티스트 케플러의 유명세가 더 강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