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청님의 페이퍼에서 '장진주사'를 보고 생각 나서 끼적여본다.

지난 토요일 KBS TV '한국사 전' (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프로그램)에서 송강 정철이 나왔다. 기축옥사를 몰고 온 정치인 송강에 대한 평가와 시인으로 본 송강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지만, 내가 그것을 왈가왈부할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덮어두고, 엄청나게 술을 좋아해 늘 취해서 정사를 봤다는 송강. 보기 딱한 임금께서 "딱 한잔만 마시라"고 은잔을 하사하셨는데, 송강이 두드려 펴서 늘렸다는 그 은잔이 가보로 전해지고 있었다. 하여간 이렇게 술을 좋아했으니 '장진주사'는 당연히 송강이 쓸만한 시였다. ^^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1'에 실렸는데, 내가 사는 빛고을에서 가까운 담양은 가사문학의 산실로 송강 정철의 고향 마을인 지실마을과 그의 정자인 '송강정'을 둘러볼 수 있다. 마노아샘과 소곤거렸던 '여름방학 광주이벤트'를 한다면, 바로 가사문학의 산실인 담양을 안내하려고 한다. 소쇄원과 더불어 송강정, 식영정, 환벽당, 취가정, 명옥헌... 등 누정문화를 흠뻑 맛볼 수 있다. 식영정 옆에 거대하게 솟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멋대가리 없는 '가사문학관'까지 둘러 보면, 가사문학의 자료도 만끽할 수 있다.

자, 본론으로 돌아와 '장진주사'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 유홍준선생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1'권 302~303쪽에 실린 내용을 옮겨본다. 물론 나도 공감하고 동의하기 때문이지만. ^^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세하면서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에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졸라매어 지고 가나
화려한 꽃상여에 만인이 울며 가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속에 가기만 하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쌀쌀한 바람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무엇하리

  이만한 낭만과 호기라면 한번쯤 가져볼 만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내가 송강의 '장진주사'를 무작정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내게는 그럴 만한 풍류도 허무도 없다. 더더욱 마지막 구절 "원숭이 휘파람"이라는 표현은 아주 못마땅하다. 송강은 원숭이를 본 일도 없었을뿐더러 동시대 독자인들 그런 이국의 짐승을 알 리 만무한데 왜, 그것도 마지막 구절에 집어넣었는가? 만약에 '송장메뚜기 뛰놀 때'라고 했으면 확연히 그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여기에서 송강과 송강시대 지식인의 한 단편을 본다. 모든 것을 자기 정서에 내맡기지 못하는 불안감, 뭔가 남 모를 유식한 끼가 있어야 차원이 높아 보이고, 이국적인 냄새도 약간 풍겨야 촌스러움을 벗어날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나는 자신감의 상실증인 것이다.

  나는 송강의 이 허구성을 우리 시대의 민족문학, 민족예술에서도 수없이 보아왔다. 평론, 시, 그림, 음악, 연극 모든 분야에서 부질없이 유식한 체하기도 하고 모더니즘 냄새를 풍기고 인용하지 않아도 좋을 명저의 구절을 인용하고......

  송강이 성리학의 세계관에 입각해 사물을 인식한 것은 그가 넘기 어려운 성벽 안쪽 일이었음을 용인하지만 나는 이 '원숭이 정서'만은 이해도 용서도 못한다.
--------------------------------------------------------유홍준의 글, 일부 옮김---------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8-01-23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시리즈도 사두고 못 읽은 무수한 책 중에 하나였어요ㅠ.ㅠ
유홍준씨의 의견에 크게 공감해요. 여름방학 광주 이벤트 꼭 추진해요^^ㅎㅎㅎ

순오기 2008-01-23 08:36   좋아요 0 | URL
저도 줄줄이 사두었지만,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읽어요.
광주이벤트 참여하실분은 요 책부터 읽으라고~ 지금부터 분위기 띄울까요?^^
야양청스교 교주님부터 차례로 이벤트를 하시던데, 내가 순5기라 나도 이벤트 해야되는 분위기? ㅎㅎ

2008-01-23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23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23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Journey 2008-01-23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담양에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도 실행은 못하고 있지요.
그런데, 여름방학 이벤트가 뭐에요? 궁금*궁금 ^^

순오기 2008-01-23 23:12   좋아요 0 | URL
앗, 용이랑슬이랑님이시닷! 방가방가~^^
여름방학광주이벤트~~~~?? 조금 더 있다가 불어버릴게요!
오프에서 만나면 훨~ 먼저 불어버릴지도...^^

2008-01-24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1-24 00:59   좋아요 0 | URL
아하~ 그러시구나.
영어로? 헉~난 영어울렁증 300% 켁켁!!

전호인 2008-01-23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년에는 선조에게 완전히 찍혀(?) 귀양살이로 비참하게 살다가 가신 실패한 정치인이었던 셈이죠. 그렇게 말년을 살았기에 애환이 묻어나는 주옥같은 글을 많이 남긴 것은 아닐까를 생각해 봅니다.

순오기 2008-01-24 01:00   좋아요 0 | URL
그렇다고 나오더군요. 너무 커버린 송강을 선조가 팽~ 해버렸다고!
그냥 시인으로만 있었다면 참 빛났을거란 아쉬움이...
 
스켈레톤 크루-안개
최고의 이야기

2008년 첫 영화로 <미스트>를 보았다. 12월 영화후기 당첨으로 받게 된 관람권 지급이 15일까지인데 깜박 잊고, '라일락 피면'을 읽고 있는데, 20여쪽 남겨둔 밤8시 34분에 확~ 생각나서 부랴부랴 달려가 봤던 영화다. 스티븐 킹 매니아지만, 조금은 기대치에 못 미쳐서 후기를 쓰지 않고 있었다. 헌데 어떤 분이 콜롬버스 홈페이지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영화라고 제목을 달았기에 할 수 없이 끼적인다. 잘못 된 정보는 수정해야 할 것 같아서... 스티븐 킹 원작을 스티븐만 보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요기부터 2단락은 라주미힌 님 서재에서 복사했음을 밝힙니다 ^^ 허락은 안 받았는데... ) 
'미스트(The Mist)'는 스티븐 킹의 스켈레톤 크루라는 소설에 들어 있는 첫 작품이다. '쇼생크 탈출', '그린마일'로 함께 호흡을 맞춰 온 프랭크 다라본트가 아주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에 소규모 개봉을 하고도 제작비를 뛰어넘는 흥행 수입을 거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티븐 킹 자신이 뽑은 영화 10위에 '미스트'를 뽑지 않을 걸 보면, 영화의 완성도를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 관심이 많고 늘 영화를 즐겨보는 스티븐 킹은, 자신의 원작소설 영화를 스스로 순위에 올릴 수 있기를 간절히 빌고 있을 것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은 현재 '크립쇼', '셀', 'From a Buick 8'이 영화화 중이고, 이중 '셀'은 '나는 전설이다' 원작 소설에 바치는 헌정작으로 휴대폰 좀비들이 대거 등장하는 영화인데 흥행을 기대해 볼 만하다.

소설 원작과 영화는 다르지만, 원작소설 '스켈레톤 크루'에 실린 '안개'를 읽은 우리 애들은 아직 영화보기를 보류하고 있다.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먼저 본 나는 그런대로 좋았다. 생존을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탈출한 결말이 너무나 허탈해서, 도대체 이 영화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야? 2% 찜찜하긴 하지만 바로 이게 스티븐 킹 원작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안개에 둘러싸인 소도시, 그 안개 속에서 사람을 해치는 괴물을 목격한 사람들의 공포는 극에 달한다. 마트에 갇혀 패닉상태에 빠져버린 사람들은 지구의 종말과 신의 심판을 예언하는 사이코 여자에게 빠져버린다. 귀가 얇은 인간들의 군중심리와 극도의 공포감이 사람을 어떻게 몰아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살 떨리지만 재미있다. 오로지 한 목숨 살겠다고 난리를 치는 그들을 보며, 정신을 제대로 챙기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제 한 목숨 살려고 아둥바둥거리는 무리 속에서도 이타적인 삶을 선택한 용기 있는 행동이 감동을 준다.

나는 아직도 결말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없어, 영화의 제목처럼 여전히 안개에 휩싸여 있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에 대한 일침인지, 성급하게 목숨을 걸지 말라는 경고인지 모르겠다. 원작소설을 읽어보면 알 수 있으려나~~~ 우리 아들이 서재에 올린 리뷰를 연결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phistopheles 2008-01-20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밖에 있던 괴물들은 마트 안의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재들 왜저래...좀 오바하는 거 아니야." 라고요.

순오기 2008-01-21 02:35   좋아요 0 | URL
쟤들 왜 저래? ㅎㅎ
요즘 TV에 나오는 인간들 보며 하고 싶은 말이에욧! ㅠㅠ

라로 2008-01-2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예고보고 제 스탈의 영화가 아닌걸 알고 안봤는데~.ㅎㅎ
공포영화는 잘 안봐요,,,하지만 님의 리뷰를 보니 안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ㅎㅎㅎ
근데 아드님의 리뷰를 보니 이해가 더 잘되네요~.ㅎㅎ

순오기 2008-01-21 02:35   좋아요 0 | URL
난, 스티븐 킹 영화 잘 봐요. 명쾌하지 않다 하면서도 개봉하면 또 달려가는... 킹 영화는 단순 공포가 아니라면서! ^^
 
나는 전설이다

책으로 나와 호응을 받은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영화가 책을 앞서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아마도 책을 읽어 내용이나 결말, 반전까지 좌르르 꿰고 있어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게 가장 크지 않을까? 또한 글이 보여주는 상상의 공간을 영상이 다 보여줄 수도 없거니와 상상력의 자유를 빼앗긴다는 것도 한 이유일 수 있겠다.

'나는 전설이다'는 책을 접하기 전에 영화를 봤기에, 우리 아이들은 영화쪽에 더 높은 점수를 주었다. 아이들을 위해 환타지류의 책을 줄줄이 사주면서도, 나는 절대 안 본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도 애들은 보고 또 보는데도 나는 한 권도 안 읽었다. 하지만, 영화는 나오는 족족 다 봤다는... ^^ "엄마는 왜 이런 책 안 읽어? 우리한테는 사 주면서." "엄마가 읽어야 할 책이 얼마나 많은데, 현실에 아무 도움 안되는 환타지까지 읽을 시간이 어딨어!" 라는게 내 변명이다. ^^ 

이 책은 둘째와 막내가 남긴 감상글을 보니, 영화와 많이 다르다고 해서 봐야될 것 같다. 아들녀석은 자기 서재에 올렸고, 막내 글을 올린다.

나는 전설이다       -6학년 000-

  나는 보통 책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게 되지만 ‘나는 전설이다’는 영화를 먼저 봤으므로 과연 책 결말은 어떨지 두근두근 거렸다. 드디어 책이 오고, 그 두꺼운 쪽수에 기쁨의 함성을 질렀지만 절반은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 모음집이었다. 생각보다 ‘나는 전설이다’의 내용은 짧았다.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전염병, 햇빛을 받으면 죽는 내용, 최후의 생존자인 로버트 네빌 등 기본적인 내용은 당연히 똑같았지만 세세한 내용들은 많이 달랐다. 바이러스를 잘못 건드려서 전염병이 일어난 영화와는 달리 책에서는 먼지 폭풍과 모기, 파리 등에 의해 바이러스가 퍼뜨려진다. 또한 그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살아 있는 사람이 존재 했다. 그리고 영화에서 네빌과 함께 하다가 감염되어서 죽은 개!! 책에서도 그 개가 나온다. 비록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개지만 나중에 그 개도 감염되어 죽고 만다. 영화를 보고 혼자 남은 네빌이 불쌍해서 울었던 만큼 책에서도 코가 찡했다. 물론 결말은 완전히 달랐다. ‘나는 전설이다’의 전설이라는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고나 할까.

  영화에서는 감염자들을 좀비로밖에 보지 않았는데 책에서의 감염자들은 흡혈귀가 되었다. 그리고 대처 방법도 말뚝, 마늘 등 흡혈귀 퇴치 방법들이었다. 중세의 미신과 현대의 생활이 만난 셈이다. 그렇게 흡혈귀 퇴치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네빌에게 대낮에 만난 살아있는 여인을 만난다. 처음에는 그 여인을 의심하며 마늘을 앞에 들어내 보이고 꼬치꼬치 캐묻던 네빌이 나중에는 그 여인을 믿으며 바이러스에 걸리면 고쳐 주겠다고 했다. 완전히 믿으며 신뢰하게 된 두 사람. 그러나 아침이 되어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데 그 여자는 네빌을 기절시키고 쪽지를 남기고 떠난다. 그 여자는 감염자였지만, 대낮에 활동 할 수 있고 이성을 지닌 자였다. 이런 돌연변이 바이러스 보유자들의 집단이 자기들을 죽인 네빌을 잡고, 네빌은 그들 앞에서 약을 먹고 자살한다. 그리고 그는 전설이 되었다. 시작부분에서부터 끝부분까지 흥분되는 책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영상을 먼저 접했기 때문인지 내게는 영화가 더 감동적이었다. 비록 책 결말과 완전히 달랐지만 백신을 발견해 사람들을 구한 영화의 결말도 좋은 결말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뽀송이 2008-01-19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책과 영화가 다른점이 많다고 들었어요.
저도 책은 못 읽어 봤어요.
그래도 순오기님~ 전 판타지 쬐끔 좋아해요.^^
엄마도 읽으삼!! 책만 사주지 마시고욤!!

순오기 2008-01-20 12:00   좋아요 0 | URL
판타지 소설도 엄청나게 사주면서 절대로 안 읽는 엄마!ㅋㅋ
학교도서실에서 빌려온 '나니아 연대기'는 여러편 봤는데, 몇 편 읽으니 그게 그거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잘 안 읽어요.ㅠㅠ
 

큰딸이 6학년이던 2001년에 시작된 초등학교 학부모독서회 활동이 벌써 8년째다. 이번 2월에 막내가 졸업하니까 엄마도 같이 독서회를 졸업하게 된다. 그래도 중학교 학부모독서회와 마을 어머니독서회까지 하고 있으니 한달에 3권은 의무적으로 읽게 될 것이다. 학부모독서회를 하면서 얻은 가장 큰 기쁨은 장편읽기에 도전하여 대하소설을 읽어냈다는 것이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알 수 있는 '한강, 태백산맥, 아리랑, 토지, 봄날'을 읽고 토론하면서 우리의 가슴은 뜨거웠고, 감동으로 출렁인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박경리와 조정래작가는 우리 가슴에 위대한 작가로 자리매김되었고, 봄날은 5.18현장을 겪은 광주사람들이라 그 절절함에 눈물 흘린 토론이었다. 

 

 

  

 

 

 

 

 

특히 조정래 작가는 대하소설 세 편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을 쓰느라 마흔에서 예순까지 20년 세월을 바쳤다는 작가 후기를 읽으며 눈물이 났다. 초등 4학년이던 아들이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갔다 와 결혼해서 그의 아들이 태어난 세월을 헤아려보며 뼈를 깎는 고통으로 잉태하여 출산하기까지의 작가정신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디. 

 "기나긴 소설을 쓰면서 끊임없이 시달려온 외로움과 괴로움과 고달픔과 암담함 같은 것들을 이겨내려고 몸부림쳐 온 나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눈물겨웠노라는 작가의 고백은, 미련하게 해 나가야 하는 끝없이 긴 중노동을 하면서 생긴 직업병이 여섯가지나 된다는 말씀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누적된 과로로 생겨난 '기침병',  신경을 과민하게 써서 생긴 '위궤양', 너무나 오래 앉아 있어 생긴 '둔부의 종기', '이대로 죽는 모양이구나' 하며 한 달간 원고지 한 장 쓸 수 없이 치열하게 앓았던 '극심한 몸살', 너무나 글씨를 많이 써 생긴 작가에게 치명적인 '오른팔 마미', 너무 오래 앉아 있어 장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 '탈장'.  그 탈장의 상태로 7개월을 버티며 '한강'을 끝내고 작가후기까지 쓰고 입원해 수술 받았다는, 이 위대한 작가 정신에 더 이상의 사족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런 육체적 고통도 소설을 만들어가는 정신적 괴로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내가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나지'하는 두려움으로 잠이 들었다 하니 그 고통을 말로 다 할 수 없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한다. 결국 이런 괴로움을 견디고 이겨내는 것은 '노력'이었노라고, 왜 그런 고통을 당하면서 쓰는거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작가의 삶이라고 대답한단다.

앞에 쓴 작품이 뒤에 쓰는 작품의 적이었다는 말씀. 전 작품보다 월등하지는 못하더라도 같은 높이로 써 내야 하는것. 그것이 작가가 피할 수 없는 숙명이고, 그 숙명을 이기기 위한 싸움에서 당하는 작가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단다. 세 편의 대하소설에 등장한 인물들만 해도 거의 1,200여명이 되는데, 그 중 단역이라 할지라도 전편의 누구와 같아서는 안 되기에, 그 인물의 성격과 이름이 딱 부합되게 짓느라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 줄도 못 쓰고 끙끙대기도 했다는 말씀을 읽으며, 주인공이 아니라고 가볍게 스쳐 지나쳤을 사람들이나  분위기 묘사를 대충 훑어 읽었음에 죄송함이 더욱 커졌다. 

우리 민족의 역사지만 '인류 보편성'의 명제를 띄고 있기에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작가의 말씀에 공감한다. 기득권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행하는 횡포와 오류를 직시하며 밝혀내야 하는 작가. 사회성과 역사성을 자연스럽게 엮어내면서 예술적 가치까지 담아야 하는 완벽한 조화가 '인류의 스승'인 작가의 역할이라는 말씀에 찬사를 드린다.  

이제 스스로에게 지웠던 짐을 내려놓고, 편안하고 여유롭게 손자 재면이를 위한 동화도 쓰고, 중.단편과 장편도 쓰면서 죽는 날까지 소설을 쓸 작정이라고 한다. 

아들이 대학생이 되자 '태백산맥'을 원고지에 완전히 베끼라 하며, 다 베끼고 나면 뭔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문장 공부, 인생 공부, 역사 공부... 특히 작가의 아들로서 최소한 아버지가 어느 정도의 고생을 겪어냈는지 체득시킬 필요가 있었다 하였다. 부모 사후 50년 동안 그 저작권을 보유하려면 그 정도의 어려움은 치러봐야 기본 자격을 갖추는 것이라 생각하였노라고.  이제 며느리도 똑같이 원고지에 정성들여 베끼고 있으니 세 벌의 "태백산맥"이 탄생할 것이고, 손자가 장성하면 그 때 한 벌이 더 나올 수도 있겠다고 한다.

작가는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빼어난 단편 50편만 베껴보면 더 무슨 문학 강의 들을 필요가 없으며, 책은 백 번 읽는 것보다는 한 번 베끼는 게 낫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남은 여생은, 20년 동안 글 감옥에 갇혀있는 자신과 함께 징역살이 하며 옥바라지를 한 아내를 위해, 아내가 봉사한 두 배로 갚아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해 주겠노라는 말로 마무리 하였다.

7 년의 독서회 활동으로 장편과 대하소설을 읽은 우리들은, 스스로가 기특하고 뿌듯해서 등을 토닥여주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앞으로도 고전읽기와 장편읽기는 계속 될 것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8-01-16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위인전도 쓰시던데 조만간 읽어볼까 해요. 소식하고 운동하신다고, 건강 문제 없다고 인터뷰 기사 보았는데 건강히 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순오기 2008-01-17 03:09   좋아요 0 | URL
아~ 위인전, 저도 제목만 봤는데 어떨지 궁금하긴 하더군요.
소식과 운동...건강지킴이죠.^^

프레이야 2008-01-17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 님 정말 대단하세요.
어머니독서회 활동은 두군데서 하시는군요.
대하소설 읽은지 참 오래되었어요. 한강을 읽고싶어져요.

순오기 2008-01-17 04:35   좋아요 0 | URL
독서회 세군데 하고 있지요. 2월까지는... ^^
대하소설 읽기가 쉽지는 않지요?
전, 이상하게 '태백산맥'읽기가 어렵네요. 세번째 도전에 3권까지 읽고는 또 멈춰있어요.ㅠㅠ 조정래씨 작품중에 많은이들이 최고로 치던데...

프레이야 2008-01-17 21:38   좋아요 0 | URL
저도 태백산맥 재밌게 읽었어요. 오래 되었네요.
님은 벌써 세번째라구요? 와~
그리고 홍명희의 임꺽정도 무지 재밌게 읽었구요.

순오기 2008-01-18 00:52   좋아요 0 | URL
혜경님, 태백산맥 읽기를 세번째 도전했는데도 3권까지 밖에 못 읽었다는 말이에용. 작년 5월에 보성 태백산맥 배경지를 갔었는데도 말이죠.ㅠㅠ 홍명희의 임꺽정도 언젠가 도전해야할 책으로 선정하렵니다!

행복희망꿈 2008-01-17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하소설을 읽는다는건 정말 힘든일인것 같아요.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책을 정말 좋아하지 않고서는 엄두도 못낸다는~
순오기님은 책과 함께 살아가시는것 같아요.
늘 책과 함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순오기 2008-01-17 15:30   좋아요 0 | URL
저도 사놓고 몇년씩 끌다가 읽어요.ㅠㅠ 태백산맥은 3권에서 멈춰 5월이면 1년 되는데 아직도 못 읽었어요. 정말 큰 맘 먹어야 읽어요.^^
 

작년이었나요? '연리지'라는 영화가 있었죠. 저는 그 영화를 안 봐서 모르겠고요~~

지난 가을(10.15) 어머니독서회원들과 화순 운주사와 나주의 불회사로 가을 여행을 갔었죠. 전에 운주사는 와불 사진만 올렸었고, 이번엔 부처가 모인다는 '불회사' 진입로에서 보았던 '연리목' 사진을 올려보려고요. 불회사는 다른 곳에 비해 단풍이 늦게 든다는데 그때 예쁘게 단풍이 들기 시작했고, 절 마당엔 코스모스도 피어 있었죠. 자~ 일주문을 들어서면 세속과는 단절해야죠~~^^







연리지는 가지가 한 몸이 된 것이고, 연리목은 나무의 밑둥치가 한 몸이 된 것이라는군요. 처절한 몸부림인지 그리움인지 모르지만, 너무나 리얼해서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는데...... 연리목이나 연리지를 '사랑나무'라 한다는데, 아마도 생존을 위한 동거 아니었을까? 바위 아래 부분을 찍은 사진은 흔들려서 못 올리고...  야한 페이퍼라고 혼날까봐 겁나고, 새해 벽두부터 이런 거 올린다고 뭐랄지 모르지만, 살청님이 올린 사진을 보고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08-01-13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리지와 연리목이 그렇게 다른 것이군요.
전 실제로 본 적은 한번도 없어요. 와, 신기해요~

순오기 2008-01-13 01:58   좋아요 0 | URL
앗, 안 주무시고 님도 밤마실이에요? ^^
저도 몰랐는데, 이웃집 언니가 불회사 입구에 있다는 걸 알고 인터넷 검색해 왔더라고요. 다들 감탄하며 감상했었죠~~~

세실 2008-01-13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해 향일암에도 연리지가 있습니다. 보면서 참 신기해 했었는데....
자연의 신비가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순오기 2008-01-14 01:03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몇 곳에 있다는 말만 들었는데, 저도 처음 봤어요. 자연의 신비가 새삼 놀랍죠!

마노아 2008-01-14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청님의 비틀린 사람 이미지가 같이 떠올라요. 한계절 전의 모습이네요. 바람 내음이 나요. ^^

순오기 2008-01-14 20:20   좋아요 0 | URL
살청님 비틀린 사람 이미지와 살청님 서재에 올린 사진...그걸 보며 생각났거든요.
지난 가을의 일인데도 벌써 오래 전 일 같아요. 바람내음~~~~흠~~~~~! ^^

전호인 2008-01-14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고향에는 연리지가 많습니다. 충북 괴산군 칠성면쪽에 많습니다. 특히 저희 동네(괴산 청천 송면리)에도 연리지(소나무)가 있답니다. 글구 저희 선산(가족묘)의 단풍나무 또한 연리지로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거든요.

처음 인것 같네요.
첫방문에 사랑이란 글을 접하게 되어 더욱 즐겁군요.
즐찾하고 갑니다.

순오기 2008-01-15 02:07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전호인님!
저는 님의 서재에 마실도 가고 자주 뵈었는데, 인사는 처음인 것 같군요. 꾸벅^^
좋은 동네에서 사시네요. 소나무, 단풍나무 연리지도 보고 싶고...즐찾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