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어딘가 - 1993 뉴베리 아너 상 수상작
월터 딘 마이어스 지음, 이승숙 옮김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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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첫번째로 만난 청소년소설이다. ‘뉴베리 아너 상‘ 수상작이라는 표시에 끌려 펼치고 단숨에 읽었다. 간결한 문장과 빠른 전개로 주절주절 쓸데없이 길게 늘이지 않아서 좋았다.

얼굴도 모르고 살아온 아버지와 아들의 서먹한 만남이지만, 함께 떠난 여정에서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흡인력 있게 읽혔다. 생이 얼마남지 않은 걸 감지한 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거였다.

한 개인의 삶에서도 진실을 밝히는 일은 목숨을 걸만큼 중요한 일인데, 하물며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우린 세월호 사고 1000일이 다 되도록 온갖 거짓과 방해로 명확한 진상 규명이 되지 않은 채 살고 있다.

비록 좋은 사람은 아닐지라도, 아들이 원망하지 않도록 진실을 알리려는 아버지의 노력은 가상하다. 또한 언제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마진에 대한 지미의 믿음과 사랑도 뭉클하게 느껴졌다. 인생에 어떤 일이 생겨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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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주운 한자
김동돈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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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길에서 주운 한자」라는 제목처럼 저자가 여행이나 일상에서 발견한 한자를 뜻과 음은 물론 합자와 어원을 살피고, 다른 쓰임새의 예도 곁들였다.

이야기 한편이 끝날 때마다 정리문제를 풀어보도록 하여 한자공부도 할 수 있다. 허벅지나 손바닥에 써보라는 권유로, 펜과 종이가 없어도 바로 연습할 수 있어 재밌다. ^^

저자의 한자 실력과 해박함은 하루 아침에 생긴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루에 3시간씩 대략 10년 정도 투자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329쪽)는 1만 시간 법칙의 좋은 예가 아닐까 짐작된다.

블로그에 쓴 글로 꾸민 책이라 한 편 분량이 짧아 부담없이 읽힌다. 특히 문장 종결어미가 `~보았어요, ~같아요, ~말이죠` 로 끝나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근함이 느껴진다.

내가 익히 아는 한자를 확인하는 즐거움과 전혀 생소한 한자를 알게 되는 기쁨도 있다. 보통 사람은 무심히 보고 끄덕였을 한문 표기나 해설에서 오류를 찾아낸 저자의 세심함이 놀랍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게 확실하다.

내가 가본 경복궁. 광한루 현판이나 추사고택 주련 해설엔 눈이 번쩍 떠졌고, 내고향 당진을 오가는 길에도 들르지 못한 스산(서산)이 많이 나와서 꼭 가보고 싶은 열망이 덤으로 생겼다.

여행에서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갖느냐는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자에 관심을 가진 저자 덕분에 앞으로는 현판이나 주련 등 한자를 눈여겨 보게 될 듯하다.^^

봄.여름.가을.겨울길에 주운 한자로 구성한 글들이 때론 너무 짧게 끝나, 좀더 길고 깊이 있게 들려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단순히 한자 공부 책이 아니라 저자의 생각을 잘 버무려 한문으로 풀어가는 에세이로 집필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겨울길에서 주운 한자편이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나도 한자는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보는 한자도 많았다. 평소에 한자 어원은 궁금해도 합자는 깊이 있게 따져보지 않았는데, 합자를 알아야 제대로 된 한자풀이를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254쪽 어떤 전설에서 무학대사의 출생내력을 알았고, 327쪽에서 목례가 아닌 묵례(말없이 고개만 숙이는 인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335쪽 연양갱의 연(이길 련)에서 `이기다`가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물을 붓고 반죽을 이기다`라는 걸 새삼 알았다. 또한 340쪽 제사 사( )가 `제물은 별로 마련하지 못하고 축원의 말만 길게 하는 봄철의 제사를 의미하는데, 봄철은 번식과 파종의 시기라서 제물 마련이 어렵다는 것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옥의 티... 332쪽 위 네째줄 `그러나 일? 정치인으로서의 김영삼~` 에서 `개`자가 빠진 거 아닐까?

256쪽 무학대사 전설에서, 아이를 갖게 된 아내에게까지 일을 시킬 수 없어 1년을 기한으로 관전 50전을 빌렸는데...기한 내에 갚지 못해 만삭의 아내가 끌려가다 아기를 낳는다. 기한이 1년인데 임신한 아내가 만삭이 되다니, 뭔가 안 맞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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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3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6-06-06 08:50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습니다~ 너무 늦어서 죄송할 뿐이지요.^^

무해한모리군 2016-06-0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자를 잘 읽고 싶습니다! 보관함에 쓱

순오기 2016-06-06 08:50   좋아요 0 | URL
한자를 알면 글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요~^^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 꽃도 피우지 못한 아이들, 꿈도 키우지 못한 아이들을 수장시킨 나라. 절대 되풀이해선 안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우리나라. 80년 5월 광주와 14년의 세월호는 하나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우리나라가 슬프고 부끄럽다. 잘못을 단죄하고 벌하지 않는 것, 오류를 바로잡지 않는 것 또한 반복되다니... 그래도 모두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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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서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 초등학생들을 위한 세계 거장들의 그림책 5
로버트 프로스트 글, 수잔 제퍼스 그림, 이상희 옮김 / 살림어린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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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 '시애틀 추장'의 수잔 제퍼스 그림으로 재탄생한 그림책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는 단숨에 35년 전 학창시절로 되돌려 놓았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 암송해야 할 추천시가 여러 편 있었는데
그 리스트에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있었다.
감성적인 여고생들은 프로스트에 빠져서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도 좋아했었다.^^

여학생 때 읊었던 시와 세 아이를 키워낸 중년의 엄마로 읽는 시의 맛은 다르다.
학창시절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내가 가야할 인생길에 미련을 두지 않는 선택을 꿈꾸게 했다면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는 아저씨가 왜 숲에 갔는지
그가 '지켜야 할 약속'은 무엇인지 곰곰 생각케 한다.

또한 수잔 제퍼스의 겨울 그림에 압도되어 지난 겨울 눈쌓인 산행이 떠오른다.
수잔 제퍼스의 그림만큼 아름다웠던 우리동네 어등산의 눈꽃은 서비스!^^

나는 이 그림책의 화자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저씨와 늘 함께했던 말은, 그 숲에서 아저씨가 한 모든 걸 지켜보고
말(語)이 아닌 말(馬)의 눈길과 침묵으로 들려준다.

아저씨는 혼자가 아니다.
마을과 숲으로 오가는 길을 늘 함께 한 동반자는 말이다.
말은 모든 신경을 아저씨에게 집중한다.
말의 눈길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느닷없는 부엉이의 날갯짓에 혼비백산한 아저씨~
동물들은 놀라서 달아나지만 말은 그 자리에 있다.

놀라 자빠졌던 아저씨가 천사의 날개를 그려낸 것도 말은 지켜보았고~^^

놀란 작은 동물들이 덤불속으로 숨어든 것도 지켜보았다.

말은 '난 숲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알고 있어!' 혼자 생각했다.^^

하지만, 한 해 중 가장 어두운 저녁 숲과 꽁꽁 얼어붙은 호수 사이서 서서
아저씨가 무얼 하려는지 말은 알 수 없었다.

마차에서 꺼낸 마른풀과 씨앗 주머니를 들고 어디로 가는지를....
방울을 딸랑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아저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말방울 소리 말고는 스쳐가는 바람 소리뿐인 그 숲에서 삼매경에 빠졌다.
지난 겨울 눈이 폭폭 쌓인 숲에서 나도 저런 순간을 맞이했었다.
심호흡을 하면서 빠져든 그 황홀경과 무이지경을~~~~ 나는 알지!^^

폴폴 날리는 눈송이 소리뿐인 그 숲에서 아저씨는 무얼 했을까?
소리없는 침묵으로 누구와 소통하고 교감했는지...

하지만 말은 짐작했을 거야.
아저씨가 두손 가득 들고 간 마른풀과 씨앗을 어떻게 했는지...

친절한 아저씨는 말에게 돌아와 손을 얹으며 눈빛으로 말했을 거야.
눈 쌓인 숲속에서 먹이를 구할 수 없는 친구들에게 주었다는 것을...

말은 아저씨의 다음 행보를 알고 있지.
아저씨가 아무리 숲을 좋아해도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새들이 나무에 깃들고
숲속 동물들이 편안한 잠자리에 들 듯이

아저씨도 편안한 잠자리에 들기 위해 한참을 더 가야 한다는 것을...

눈쌓인 숲에서 나눈 말과 아저씨의 교감을 독자도 느낄 수 있다.
아저씨가 숲속 동물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듯이
인간과 자연은 서로 돕고 도우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절제된 한 편의 시와 그림으로 전해준 멋진 그림책이다.

카테고리를 '청소년과 같이 읽을 책'으로 분류한 건
시 한편에 담긴 철학과 인생의 진수를 그림과 같이 감상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수잔 제퍼스의 그림에 매료된 독자를 위한 서비스로 <시애틀 추장> 그림 몇 컷 추가한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눈에 보이는대로 그리는 법'을 알려주신 그의 어머니에게 존경을 보낸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엄마들이 꿈꾸던 '어머니'상이라는 것도 알려드리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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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4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25 0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퍼남매맘 2013-03-25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잔 제퍼슨의 다른 그림책도 알려 주시고, 고맙습니다. 학교 도서실 가서 찾아봐야겠어요.
고등학생 때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암송하셨다니 좋은 국어선생님이셨나 봅니다.

순오기 2013-03-25 08:58   좋아요 0 | URL
수잔 제퍼스의 다른 책 <히어서와의 노래>도 있는데 우리집에 없어서 못 찍었네요.
우리 학창시절엔 시 외우기는 기본이었어요.^^
지금은 입시공부만 하느라 많은 걸 놓치고 있어 안타깝지요.ㅠ

2013-03-25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3-03-25 08:59   좋아요 0 | URL
아~ 바쁜데 폐를 끼친거 같아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맨홀 사계절 1318 문고 78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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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지난 주부터 어제(8.16)까지, 나는 책 속의 주인공 '나'처럼 맨홀에 빠졌었다. 

'자사고 취소 신청'이라는 막내 학교의 충격적인 선언에 1.2학년 440여명과 학부모들은 집단공황에 빠졌고, 교육청과 재단에 문제의 해결과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와 토론을 하면 할수록 절대 나올 수 없는 맨홀에 빠진 것과 같았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맨홀에서 빠져나올 사다리를 찾기 위해 기꺼이 몇날 며칠 금쪽같은 시간과 몸을 바쳤고, 어제 교육청과 재단과 학부모 대표가 참여한 가운데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그래서 나도 맨홀에서 빠져나와 홀가분하게 리뷰를 쓰게 되었고.^^

 

 

2010년 <합★체>로 사계절문학상을 받은 젊은 작가 박지리는 이렇게 말한다.

"소설가를 꿈꾼 적은 없다. 그래서 아직 소설이 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모른다.  모르면서도 뭔가를 쓰긴 쓴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소설이 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른다면서 써낸 두 편의 장편소설을 다 읽은 소감은 '대단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전작도 그랬지만 이 작품도 묘사가 뛰어나 문장을 읽으면 저절로 머릿 속에 풍경이 떠올랐고, 청소년보호센터에서 짜여진 일정을 보내는 주인공의 상황과 심리도 손바닥을 들여다 보듯 공감되었다. 소설이 뭔지 모른다는 작가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시간 같았던 과거와 현재를 엇갈려 진술하며 독자를 빠져나올 수 없는 독서의 맨홀로 몰아 넣는다.

 

오랜동안 아버지의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죽음과도 같은 공포를 견뎌야 했던 주인공 '나'는 아버지가 죽는다면 자기 남매의 손에 의해서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화재현장에서 16명을 구하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소방영웅으로 죽었다. 아버지만 없다면 천국 같을 거라 생각했던 가족과 일상의 평화로움에도 소년의 마음 속엔 분노만 커져 갔다. 소방영웅이 된 아버지의 가면을 벗기고 진실을 발설하지 못한 무력감과 부끄러움은, 결국 증오했던 아버지를 닮은 꼴이 되어 졸지에 친구들과 함께 살인자가 된다.

 

그래, 난 한 번쯤 인간을 이렇게 패 보고 싶었어. 나만 늘 병신같이 당하란 법은 없으니까. 인간은 웬만해선 죽지도 않잖아. 밤마다 죽을 듯이 맞으면서도 다음 날이면 끈질기게 살아나는 게 인간이잖아. (227쪽)

 

자식은 그 부모가 하는 걸 본대로 배운대로 행한다. 어른들 말씀이 주정뱅이 자식 주정뱅이 되고, 바람둥이 자식 바람둥이 되며, 폭력 부모의 자식도 폭력을 휘두른다고.... 내 성장기 경험도 이런 말을 증명하는 듯했다.

 

  왜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 이토록 노력해야 하는 건지, 정작 그 사람은 우리 누구에게도 미안하다는 그 짧은 사과의 말도 한 적이 없고, 세상 영웅이 되어 죽었으니 이제와서 우리의 용서 따위는 필요로 하지도 않을 텐데, 왜 피해자인 우리가 그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 이렇게 애를 쓰고 서로 싸우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건지.

  용서를 하고 나면 내 마음이 가장 편안해질 거라고?

  그따위 속임수는 쓰지 마, 누가 편안해지고 싶대? 누가 그딴 걸로 행복해지고 싶다 했냐고. 자기 상처를 판 대가로 행복을 얻는 거라면 차라리 불행한 게 훨씬 양심적인 거 아니야?(160쪽)

 

소방관인 아버지는 죽음의 공포 때문에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른 건 아닐까 짐작되지만, 명쾌하게 진술하진 않는다. 생명을 담보로 한 특수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정기적인 심리치료를 받고, 가족도 같은 혜택을 받고 배려받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도피처이자 구원처인 '맨홀'은 지친 발걸음을 불러 들인다. 맨홀의 은유와 상징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온 도시를 헤매고 다녔지만 해 질 녘이 되어 걸음이 멈춘 곳은 결국 맨홀 앞이었다. 나는 맨홀 뚜껑을 열고 그 익숙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몸은 너무나 지쳐 있었고 내가 누운 자리는 그 어느 곳보다 안락했다.

  나는 편안해지고 싶었다. 엄마와 누나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집안을 그렇게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내가 아는 가장 불쌍한 여자들이었다. 둘을 기쁘고 즐겁게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내 모든 기억을 지워야 했다. 엄마 얼굴만 봐도 비쳐 보이는 폭력의 잔상, 누나의 마른 몸에 깃든 학대,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온몸에 불이 붙는 것 같은 내 환각에 차가운 물을 끼얹어 다 소각시켜야 했다. (163쪽)

 

폭력의 피해자였던 주인공이 한순간 가해자가 되었다. 요즘 학교에서 비일비재한 폭력의 이면에도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진 건 아닐까? 폭력을 막기 위해 학교에 지킴이 봉사자를 배치하고, 경찰이 순회한다고 폭력이 근절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상처받은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받을 수 있게 심리치료를 먼저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님이나 선생님, 심리학을 공부하거나 청소년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특히 가정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거나, 힘의 폭력에 저항하지 못한 경험을 가진 이들도 일독을 권한다. 나는 성장기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휘두른 폭력을 두어번 목격했고, 결혼하고 남편의 폭력에도 속수무책 어쩌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단 한번의 경험이지만 폭력앞에 무력했던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매를 들지 않았고, 어떤 경우에도 물리적인 힘으로 제압하지 않았다.

 

폭력이 폭력을 낳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도망쳤던 맨홀, 상처받은 남매를 보듬어주었던 맨홀은 악인이 영웅이 되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나'를 건져올릴 수 없는 괴물로 작용한다. 그러나 괴물 같은 '맨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폭력의 공포에 늘 함께였던 누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맨홀의 은유와 상징이 섬뜩하게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한 순간 빨려들어 나올 수 없는 맨홀이 없는지 발 밑을 살피고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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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2-08-18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타결이 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합체>는 하도 소문이 자자해서 소장하고 있고, 읽고 싶은 책이긴 한데 다른 책들에 밀려 아직 못 읽었어요. 그 작가님의 신작이네요. 기대가 됩니다.

순오기 2012-08-20 22:45   좋아요 0 | URL
합체도 맨홀도 청소년과 같이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특히 선생님은 꼭 읽어보면 좋겠구요.^^

글샘 2012-08-19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사고... 그거 '명'이 '박'할 문제가 많은 제도거든요~
일단은 기존의 '과학고, 외고'처럼 특목고 아이들이 수능 전형뿐 아니라 다양한 입학사정관 전형 등에서
새로 지정된 자사고들이 유리할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정권이 반짝 이상한 정책을 펼쳐서 '사립 살리기'를 꾀하고 있는 거여서... 사실은 과학고 빼고 외고까지 통틀어서 일반계로 바꿔야 정상이걸랑요. ^^

아이한테 흔들리지 말고, 내신 너무 신경쓰지 말고, 수능준비 열심히 하라고 하세요~
서울대는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가려면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 하구요.
그 외의 대학들은 전부 '수능 100% 전형이 있어서, 정시모집으로 가면 된다고 맘먹고 편하게 하라고 하세요~

학교가 문을 닫더라도, 아이들이 흔들리지 않게 부모가 도와주면 될 겁니다. ^^
자사고 취소야~ 뭐~
올해부터 신입생이 거의 들어가질 않고 있죠? 그건 대학들이 특별한 어드밴티지를 주지 않기때문인데~ 그것도 부모가 얄팍해서 그래요. 수능만 잘 하면, 흔들릴 게 없다~ 수능 불패!!! 이러고 알려 주심 됩니다.

순오기 2012-08-21 00:15   좋아요 0 | URL
자사고는 MB정권의 실패한 정책이죠.ㅠㅠ
우리아이는 자사고든 일반고든 전학하지 않을거니까 흔드리지 말라 했어요.
어제 만나고 왔는데, 2학년 아이들은 그 와중에도 열심히 공부했다고 하네요.
작년 12월까지도 전학가고 최종적으로 남은 아이들이라 심지가 굳어요.
전학간 아이들한테 들은게 많아서 남은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전학가지 말자고 한답니다.
도움 말씀 고맙습니다~ 어제 우리 딸에게 전했습니다.^^

글샘 2012-08-20 23:29   좋아요 0 | URL
오늘 뉴스에 나온 그 학교죠?
애들 전학 왕창 간다던... bm고등학교... ^^
자율학교로 입학한 아이들은 대입 전형에서 자율고 대상이구요.
내년부터 일반고로 전환한다 해도... 그 애들은 큰 피해 없을 겁니다.
무조건 수능이라니깐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