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 6학년이던 2001년에 시작된 초등학교 학부모독서회 활동이 벌써 8년째다. 이번 2월에 막내가 졸업하니까 엄마도 같이 독서회를 졸업하게 된다. 그래도 중학교 학부모독서회와 마을 어머니독서회까지 하고 있으니 한달에 3권은 의무적으로 읽게 될 것이다. 학부모독서회를 하면서 얻은 가장 큰 기쁨은 장편읽기에 도전하여 대하소설을 읽어냈다는 것이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알 수 있는 '한강, 태백산맥, 아리랑, 토지, 봄날'을 읽고 토론하면서 우리의 가슴은 뜨거웠고, 감동으로 출렁인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박경리와 조정래작가는 우리 가슴에 위대한 작가로 자리매김되었고, 봄날은 5.18현장을 겪은 광주사람들이라 그 절절함에 눈물 흘린 토론이었다.










특히 조정래 작가는 대하소설 세 편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을 쓰느라 마흔에서 예순까지 20년 세월을 바쳤다는 작가 후기를 읽으며 눈물이 났다. 초등 4학년이던 아들이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갔다 와 결혼해서 그의 아들이 태어난 세월을 헤아려보며 뼈를 깎는 고통으로 잉태하여 출산하기까지의 작가정신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디.
"기나긴 소설을 쓰면서 끊임없이 시달려온 외로움과 괴로움과 고달픔과 암담함 같은 것들을 이겨내려고 몸부림쳐 온 나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눈물겨웠노라는 작가의 고백은, 미련하게 해 나가야 하는 끝없이 긴 중노동을 하면서 생긴 직업병이 여섯가지나 된다는 말씀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누적된 과로로 생겨난 '기침병', 신경을 과민하게 써서 생긴 '위궤양', 너무나 오래 앉아 있어 생긴 '둔부의 종기', '이대로 죽는 모양이구나' 하며 한 달간 원고지 한 장 쓸 수 없이 치열하게 앓았던 '극심한 몸살', 너무나 글씨를 많이 써 생긴 작가에게 치명적인 '오른팔 마미', 너무 오래 앉아 있어 장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 '탈장'. 그 탈장의 상태로 7개월을 버티며 '한강'을 끝내고 작가후기까지 쓰고 입원해 수술 받았다는, 이 위대한 작가 정신에 더 이상의 사족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런 육체적 고통도 소설을 만들어가는 정신적 괴로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내가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나지'하는 두려움으로 잠이 들었다 하니 그 고통을 말로 다 할 수 없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한다. 결국 이런 괴로움을 견디고 이겨내는 것은 '노력'이었노라고, 왜 그런 고통을 당하면서 쓰는거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작가의 삶이라고 대답한단다.
앞에 쓴 작품이 뒤에 쓰는 작품의 적이었다는 말씀. 전 작품보다 월등하지는 못하더라도 같은 높이로 써 내야 하는것. 그것이 작가가 피할 수 없는 숙명이고, 그 숙명을 이기기 위한 싸움에서 당하는 작가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단다. 세 편의 대하소설에 등장한 인물들만 해도 거의 1,200여명이 되는데, 그 중 단역이라 할지라도 전편의 누구와 같아서는 안 되기에, 그 인물의 성격과 이름이 딱 부합되게 짓느라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 줄도 못 쓰고 끙끙대기도 했다는 말씀을 읽으며, 주인공이 아니라고 가볍게 스쳐 지나쳤을 사람들이나 분위기 묘사를 대충 훑어 읽었음에 죄송함이 더욱 커졌다.
우리 민족의 역사지만 '인류 보편성'의 명제를 띄고 있기에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작가의 말씀에 공감한다. 기득권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행하는 횡포와 오류를 직시하며 밝혀내야 하는 작가. 사회성과 역사성을 자연스럽게 엮어내면서 예술적 가치까지 담아야 하는 완벽한 조화가 '인류의 스승'인 작가의 역할이라는 말씀에 찬사를 드린다.
이제 스스로에게 지웠던 짐을 내려놓고, 편안하고 여유롭게 손자 재면이를 위한 동화도 쓰고, 중.단편과 장편도 쓰면서 죽는 날까지 소설을 쓸 작정이라고 한다.
아들이 대학생이 되자 '태백산맥'을 원고지에 완전히 베끼라 하며, 다 베끼고 나면 뭔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문장 공부, 인생 공부, 역사 공부... 특히 작가의 아들로서 최소한 아버지가 어느 정도의 고생을 겪어냈는지 체득시킬 필요가 있었다 하였다. 부모 사후 50년 동안 그 저작권을 보유하려면 그 정도의 어려움은 치러봐야 기본 자격을 갖추는 것이라 생각하였노라고. 이제 며느리도 똑같이 원고지에 정성들여 베끼고 있으니 세 벌의 "태백산맥"이 탄생할 것이고, 손자가 장성하면 그 때 한 벌이 더 나올 수도 있겠다고 한다.
작가는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빼어난 단편 50편만 베껴보면 더 무슨 문학 강의 들을 필요가 없으며, 책은 백 번 읽는 것보다는 한 번 베끼는 게 낫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남은 여생은, 20년 동안 글 감옥에 갇혀있는 자신과 함께 징역살이 하며 옥바라지를 한 아내를 위해, 아내가 봉사한 두 배로 갚아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해 주겠노라는 말로 마무리 하였다.
7 년의 독서회 활동으로 장편과 대하소설을 읽은 우리들은, 스스로가 기특하고 뿌듯해서 등을 토닥여주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앞으로도 고전읽기와 장편읽기는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