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회사나 일상에서 맨스플레인하려 드는 남자들을 볼 때마다 주장의 슛이 떠올랐다. 살면서 본 가장 의미심장한 슛이 아니었을까? 거기에 담긴 메시지는 매우 명확했다. "나의 킥은 느리고 우아하게 너희들의 ‘코칭‘을 넘어가지." 느리고 우아하고 통쾌했던, 잊지 못할 로빙슛! 러빙슛! - P60

하지만 언제까지나 같은 길만 걸을 수는 없잖아? - P91

아마추어 축구 선수로서 근육을 모으고 체력을 쌓는 일은 사회인으로서 돈을 모으고 커리어를 쌓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이 하루하루의 변화들이 남은 30대와 다가올 40대, 50대를 단단하게 다져 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앞으로도 (건)강한 몸을 위하여! - P156

실력은 노력을 먹고 자라지만, 요행수는 우연을 주워 먹고 자라는 법이다. - P164

세대차에 성별차까지 이중 코팅이 단단하게 되어 있으면 그 속의 얼굴이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렇게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이 또렷하면, 그룹을 이루고 있는 개체 간의 경계가 더욱 흐릿해서 곤란하다. - P181

축구뿐 아니라 유니폼을 입고 하는 모든 팀 스포츠들이 그렇겠지만, 때로 유니폼의 커다란 가시성은 그 안의 개인을 지나치게 비가시화한다. 한 사람의 개성이나 인격이 유니폼에 박힌 번호 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 P196

어떤 경기를 보든 축구장에서 바깥세상으로 나올 때는 항상 12시 1분의 신데렐라 같은 기분이 되곤 한다. 눈앞에 펼쳐져 있던 마법 같은 작은 세계가 끝이 나버린 느낌. 한바탕 좋은 꿈을 꾸었고 이제부터 다시 현실입니다, 라고 누군가 일러 주는 시간.
[...]
나는 조금 조바심이 났다. 그녀들이 그렇게 빛이 나기까지 어떤 시간들을 보냈는지 이제 조금은 알기에, 축구 경기의 여운에 취해서 자랑스레 앞다투어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끝나기 전에 차 안에서 보내는 오늘 밤이 뚝 끊기지 않기를 11시 59분의 신데렐라 같은 기분으로 간절히 바랐다. - P216

새삼 깨달았다. 자신의 부재를 누군가에게 미안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강자라는 것을. 미안할 수 없는, 누구도 그 미안함이 필요 없는 입장도 어딘가에는 늘 있으니까. - P220

일 나가고 아이 돌보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어떻게든 일상에 축구를 밀어 넣는 이 여정 자체가 어떻게든 골대 안으로 골을 밀어 넣어야 하는 하나의 축구 경기다. 기울어진 축구장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라는 걸 잘 알기에 모두들 최대한 모두의 일상에 축구가 들어갈 수 있도록 패스를 몰아주고 공간을 터 주고 리듬을 맞취 준다. 여기서 우리는 한 팀이다. - P270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이 ‘운동‘이 되는 순간이다. 일상에서 개인이 편견에 맞서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건 결국 편견의 가짓수를 줄여 나가는 싸움 아닐까. "여자가 00를 한다고?"라는 문장에서 00에 들어갈 단어의 숫자를 줄이는 것 같은.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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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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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요츠바랑 1, 아즈마 키요히코, 대원씨아이, 2004

너에게 닿기를 1, 시이나 카루호, 2007

오늘의 인생 (윈터 에디션 한정 양장본), 마스다 미리/이소담 역, 이봄, 2018

유리가면 1, 미우치 스즈에, 대원씨아이, 2010


<어린이 청소년>

있으려나 서점, 요시타케 신스케/고향옥 역, 온다, 2018

도서관을 훔친 아이, 알프레드 고메스 세르다/김정하 역, 클로이 그림, 풀빛미디어, 2018

개똥 브라더스, 미리베스 볼츠/김현우 역, 개암나무, 2013

리틀 야구왕, 김양희, 남기영 그림, 거북이북스, 2014

When Hitler Stole Pink Rabbit, Judith Kerr, Puffin, 2009


<비문학>

여행의 이유, 김영하, 문학동네, 2019

아직 도쿄, 임진아, 위즈덤하우스, 2019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이아림, 북라이프, 2018

8주에 완성하는 홈요가, 이유주, 김영사, 2018

요가 교과서, 골디 카펠오렌/김수진 역, 프로제, 2018

아무튼 요가, 박상아, 위고, 2019

고민이 고민입니다, 하지현, 인플루엔셜, 2019

교토의 밤 산책자, 이다혜, 한겨례출판, 2019

아무튼 술, 김혼비, 제철소, 2019

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 문영대, 컬처그라퍼, 2012

변월룡 1916-1990, 국립현대 미술관 도록, 2016

1만권 독서법, 인나미 아쓰시/장은주 역, 위즈덤하우스, 2017

먹고 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노지양, 북라이프, 2018


<문학>

부끄러움, 아니 에르노/이재룡 역, 비채, 2019

진이 지니, 정유정, 은행나무, 2019


<영화>

논-픽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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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9-06-01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가 시작한 거 티난다.

목나무 2019-06-01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언제 저랑 요가 한판 하시겠습니까. ^^

유부만두 2019-06-10 09:4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언젠간?
 

손목과 무릎이 드러나게 작아진 코트를 입은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옆에는 큰 짐가방이 있고 먼 길을 떠나는 듯 기차길 옆에 서 있다. 


작가 주디스 커는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에서 느낄 수 있듯이 '손님'을 두팔 벌리고 받아들인다. 낯설 수 있지, 두렵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들이 여기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면 도와줘야 하지 않아? 느긋하게 손님을 대하는 시선은 그의 경험에서 나왔다. 


호호 할머니 작가의 여유로운 모습에서는 잘 몰랐는데 그의 어린 시절은 분홍 토끼와 함께 히틀러가 훔쳐가 버렸다. 이 동화책은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고있다. 


1930년 초반 히틀러가 세력을 장악해 가자 유태인 안나는 가족과 함께 스위스로 망명한다. 이제 막 열 살이 되는 안나는 친구들과 제대로 된 이별도 못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국경을 건너 아주 다른 상황으로 들어선다. 그나마 다행으로 안나 곁엔 부모와 오빠 맥스, 그리고 낯선 방법으로 다가서는 친구들이 있다. 잠시 부모와 떨어져 있게 될 때 안나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생생하고 다시 새로운 장소, 프랑스에 와서 모르는 언어와 풍습 속에 당황하고 좌절하는 모습은 측은하다. 이제 또 한 번 낯선 도시 런던에 도착해 큰 가방 옆에서 작아진 코트를 입고 선 안나는 이 '어려운 아동기'를 견뎌내는 자신을 생각한다.


2차 대전 중 숨어살다 수용소로 끌려가는 안네 프랑크에 비하면 (불행을 비교하다니, 이런 끔찍한 독자야) 동명의 주인공 안네/안나는 가족과 함께 살아 있고 학교도 다니니 얼마나 다행일까 싶지만 아이의 매일은 불안과 차별 앞에 놓여있다. 삶의 기본 이었던 안정은 낡은 분홍 토끼 인형과 함께 멀리 남겨졌고 이제 아이는 가족의 손을 잡고, 때론 살짝 놓으면서 걸어가야 한다. 진정 '난민'이라고 느끼고 좌절할 때도 있지만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다. 잔잔하고 차분하게 쓰여진 이야기지만 계속 불안하고 측은한 심정으로 읽었다. 집을 잃고 떠도는 생활이니까. 


이 아이가 자라나서 멋진 그림책 작가가 되어서 정말 기뻤다. 

주디스 커 작가님, 편히 쉬세요. 이젠 그 분홍 토끼를 다시 만나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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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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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28> 에서 이미 지니가 눈을 떴는지도 모르겠다. 교차되는 여러 생과 선택들. 힘찬 문장과 생생한 장면 속에서 정신없이 달렸다. 하지만 설명이 너무 많아 종종 김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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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5-26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벌써 읽으셨나이까. 빠르십니다. ㅋㅋ
리뷰를 보니 역시나 재미는 보장된 소설인 것 같네요. ^^

유부만두 2019-05-31 06:30   좋아요 1 | URL
실은..재미는 전작들 보다 덜해. 따뜻하다고 홍보를 하긴 하던데, 실은 ‘지니‘가 그냥 도구로 쓰인 느낌이고 작가의 개입, 설명이 너무 많아서 좀..

2019-06-01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01 0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