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 언니 - 반양장 창비아동문고 14
권정생 / 창비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공지영의 <착한 여자>를 읽다가 짜증이 일어서 하권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착해도 너무 착하고 바보 같이 참기만 하는 이야기는 책이나 드라마나 내 취향이 아니다. 몽실언니 역시 그럴까 해서 걱정을 잔뜩하고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하지만, 이 언니야는 좀 달랐다. 간간이 자기 생각을 정리도 하고, 자기 속내를 드러내면서 - 물론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겠지만 - 상대의 눈을 들여다 보기 때문에, 몽실 언니는 끝 까지 읽어 냈다.  

독립만을 바라고 살던 몽실네 일가족이 돌아온 고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들은 동포의 따뜻한 포옹대신 “해방 거지”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리고 먹고 살 일이 급급한 어머니는 돈 벌러 일 떠난 남편을 버리고 새 남편 집으로 들어 갔다. 따라 나선 몽실이에겐 힘들고 혼란스러운 일의 연속이고, 이게 인생이려니, 그리고 팔자려니 살아낸다. 용케도 어린 몽실이에게는 용기와 사랑이 있었기에,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정을 나누면서 살아낸다.

동생들을 업어 키우는 몽실이를, 내 아이는 별 감정 없이 읽어냈다. 불쌍하다, 는 한 마디 뿐, 별 이야기를 덧 붙여 내지 않는다. “기구하다” 는 말은 너무 어렵고, “바보같다”는 말은 너무 야멸차다. 한 나라 사람들 끼리 서로 죽이고 해하는 세상에서, 몽실은 가족의 경계선을 자꾸 넓혀서 사람들을 보듬고 사랑한다. 미워하지 않고 자기가 먼저 손을 내민다. 

힘들고 처참한 시대의 삶이라 뭐라 할 수도 없다. 이야기가 연재되던 시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몽실이와 공비 사이의 우정 어린 장면을 삭제했어야 했단다. 착한 공비가 그렇게 무서운 내용이었을까. 더 무서운 내용들은 어머니도, 아버지도 둘씩 생기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다른 동생들이 셋이나 생기는 몽실이 인생아니었을까, 동화라고 끝 장면을 막연한 해피엔딩으로 놓지 않았다. 열심히 사는 몽실이 남편은 열심히 사는 장애인이고, 여전히 열심히 정직하게 가난하게 산다. 권정생 선생님의 삶도 이보다 더 낫지는 않았겠지. 그의 소박하다 못해 남루한 오두막이 떠오른다.  

단, 이철수 선생님의 삽화에 기대가 컸는데 책 내용과 다른 그림이 많다. (난남이와 손을 잡고 간 시장 장면에서 그림 속 난남이는 몽실에게 업혀있는 식으로)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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