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돋을새김, 조대웅 - 요약본이라 정작 보려고 했던 5권인데 맘에 들지 않아 한편으로 밀어두다. 최근 것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시서화에 깃든 조선의 마음], 경남대박물관에 있는 일본 데라우치문고 보물로 반환된 것이라고 한다. 데라우치는 일제의 조선 초대총독이다. 그 인물이 가져간 것이라고 하는데, 고려말 조선의 주요인물들의 글씨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해두었다. 한번 경남대 박물관에 들르시면 보시길...학문적으로도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것도 곁들여있다. 논문에 이런저런 배경들이 상세히 들어있다.
[예술을 뚫고 들어간 사람들], 푸른사상 - 아마 제목탓이었겠다. 동아일보에2000년전후해서 인물탐방을 했던 기사인 모양이다. 건축관련 인물이 3-4명인데 문외한으로도 이것은 아니다 싶다. 몇몇 화가의 그림 몇쪽의 흔적을 남겨둔다. 권옥연 [고목이 있는 초가], 서세옥 [고목],[태양을 다루는 사람들]-봤던 그림흔적, 민경갑 [목련이 있는 삶] 
1. [이쾌대], 열화당 - 북으로 간 화가 가운데 한명이다. 그의 자화상을 보노라면 막 빚어놓은 도자기를 보는 듯하다. 평면의 그림이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아마 많이 알려진 그림은 [군상4],[군상3,2,1], 형도 화가로 유명하다. 


2. [백남준, 그 치열한 삶과 예술],열음사 - 이것도 동아일보에 연재된 것이다. 시리즈와 드러나게 부각된 글 위주로 보는데, 시간 순에 이어 별반 맥락이 끊기지 않는다. 백남준이 동경대에서 쇤베르크 연구를 했고 부자집 아들로 마르크스의 영향과 늘 사회와 예술의 역할에 고민을 끈을 놓치않았던 삶, 최근 백남준미술관?인가 관장의 인터뷰 기사, 몇권의 책의 편린도 있는지라 다른 관심을 갖게 만들어 이렇게 훑어보게 된다. 몇몇 인상적인 대목만 잊지 않을 요량으로 남겨둔다.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역으로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다는데, 그 조지오웰의 [1984년]의 사회-정치적 의미에 대해서는 왜 들은 바가 없었던 것일까? 무지일까? 그냥 세계적인 예술가로 이용하려던 그런 것이었던가? 진보진영에서도 처음듣는 이야기일뿐... 아무튼 여러 의문이 든다.  

 


 


   
 

우리가 예술을 한답시고 사회정치적 문제들로부터 이탈한다면 우리의 행동은 모은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플럭서스는 인간의 정신을 현혹시키고 소비하는 것에 중지신호를 보내는, 이를테면 사회적인 것이다. 따라서 플럭서스는 이 사회에 기능하지 않는 상품으로서의 예술품을 명백히 반대한다.

 
   

 

이런 것으로 일종의 전위예술가, 행위예술가로 치부되었던 모양이다. 사회와 긴장성이 없으며 예술은 부르조아 문화적 가치로 전락하고 만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70년대 초반까지 텔레비전 작품으로 이어져있다. 제목만으로도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흐름들을 읽을 수 있다. [TV 부처]-당신과 당신아들딸들은 여전히TV앞의 부처는 아닌가? [TV 브라], 그리고 이 TV앞에 자장이 있는 물체를 갖다대어 TV 메세지를 변용하게 하는 [TV 자석], [텔레비전 가든],[TV 물고기], 그리고 미약하나마 소통의 가능성을 타진한 [텔레비전 달]을 통해 상업적인 TV가 아니라 유기적이고 자연적인 TV를 갈구한다. [글로벌 그루브], 1973년의 [정보초고속도로]로 클린턴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라고 했던 그의 예술이 진폭을 일으켰던 파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려를 놓지 않은 것 같다. 

   
  정보하이테크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것은 국부적 마취제에 불과하다. 따라서 예견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했다. 지금 더 더 국부적인 자본의 발싸개쯤으로 쓰려는 현실을 한편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 가능성을 넘나들긴 하지만 말이다.

아름다운 음만이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 역시 음의 하나이고 그 자연적인 것을 음악으로 넓히는 것.처럼 예술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했던 점은 확연한 것 같다. 좀더 찾아봐야하겠지만, 말미 대담진행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중은 언제나 신화를 기다리고 있으며 감동할 만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들의 역할은 크다.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중이 우매하다고 하는 것은.....자가당착이다.  대중이 예술을 찾아오는 예는 매우 드물다...예술가나 예술의 역할이 보다 사회적이어야 한다는 나의 신념은 변함이 없다.

 
   

 이런 내용이었다.


3. [구스타프 클림트, 정적의 조화], 박홍규, 가산북스 - 이 책은 어제 빌렸다. 수중에 넣고 조금 더 강독을 한다. 1900년대 오스트리아 빈을 지금 여기 2000년의 수도 서울에 비교한다. 자본주의가 기동력을 얻고 쟁쟁한 모든 분야의 내놓으라는 인물들이 즐비하던 빈은 현실처럼, 빈부의 차이, 주거의 차이, 일의 늪, 성의 이중성으로 큰 차이가 없다한다. 아마 이주헌의 소개도 읽어봐야겠지만 사회적 정치적 입장들에 대한 충분한 조사가 없었던 듯, 내내 편협한 비평에 문제제기를 한다. 그냥 알려진 그림들은 그리이스 신화를 배경으로 한 상징화가 많은데도 신*아류의 연애편지 속화로만 읽히는 모양이다.  

그런 점에서 더욱 [철학] [의학] [법학] [신학]의 작품 속의 인물들을 분석해내는 관점이라곤 아예 다뤄지지 않는 언론이다. 전시회가 있다고 해도 이 책말고 귀동냥으로도 들은 적이 없다. 단테의 신곡을 주머니에 넣고, 매일 작업을 한 클림트는 대머리에 샌달을 신고다니고 지저분하다고 했다. 고흐보단 덜 했겠지만, 그가 나누고 싶거나 사회적맥락은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는 몽매한 현실이 어이가 없다는 저자의 말씀이다. 종교,예술,음악,건축...두루두루 종합화에 대한 관심으로 별도의 분리파 전시회도 주관한다고 한다.

4.
그런면에서 젊은 소장학자의 책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도 눈여겨볼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그렇긴 하지만, 행복한 삶, 좋은 삶과 살림살이 경제에 대한 고민을 이렇게 깊숙이 올라가야할 정도로 인류는 정신없이 내달려왔다 한다. 그 인물들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만큼 모든 것들을 공동체, 사회에 근거를 두고 종합적으로 생각을 전제해나간 인물이 없다한다. 특히 우리가 신화로 모시고 살고 있는 경제에 대해서 말이다. 학문의 분기점만큼이다. 모든 것을 사회라는 것에서 제것만 취하는 아둔을 말하는 지금을 돌이켜보면 크게 다른 바가 없다. 

 

뱀발. 어제 잠깐 들춰본다는 것이 한국조각사연구의 조각 가운데 이곳 조각공원에 있는 가슴훵한 가슴 속 구름이 겹쳐있는 사진이 나와 뜨끔한다. 구본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마음을 표현한 작가라는 사실이 그렇다. 그리고 단청무늬가 그렇게 많고, 그렇게 품이 많은 드는 작업인줄 알면서도 색감과 꿈틀거리는 문양에 정신줄을 놓다. 백년전이나 오백년전이나 사회와 삶을 빠져나간 짓들에 늘 정신못차리는 것이 우리인가보다. 만약 오백년전쯤부터 다시 살아보라고 하면 어떨까. 잘 살아낼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사회적인 것도 동물이라는 것도, 사회적동물이란 의미를 잊어버리려 발버둥치고, 그런 있지도 않은 개인에 기반해 제도를 만들고 괴물을 만들고 사회를 발라낸 예술가와 음악가와 조각가와 법학자와 의사와 종교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다.       그래도 굿모닝 미스터 백, 아니 jun 해야겠지!!!  물론 뒷북이지만서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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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내내, 새벽 길을 거닐고 싶은데, 마음만 그 시간에 깨어거닌다. 어젠 책방나서는 길. 이*원형이 한밭 강변에서 전화가 왔다. 냉큼 달려가고 싶은데 말이다. 아쉬움을 이렇게 꽉 누르고 삭혀야 하다니, 칠월도 그러하다. 밤과 새벽 무더위와 장마, 하늘과 바다, 백일홍과 별처럼 파릇한 벼한포기한포기, 새와 물고기... 그리고 이어지는 세상의 밤... ...  화알 짝....칠월의 꽁지를 떼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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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에게 길을 묻다 3 / 천양희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지요 

날마다 살기 위해 일만 하고 살았지요 

일만 하고 사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요 

일터는 오래 바람 잘 날 없고 

인파는 술렁이며 소용돌이쳤지요 

누가 목소리를 높이기라도 하면 

소리는 나에게까지 울렸지요 

일자리 바뀌고 삶은 또 솟구쳤지요 

그때 나는 지하 속 노숙자들을 생각했지요 

실직자들을 떠올리기도 했지요 

그러다 문득 길가의 취객들을 힐끗 보았지요 

어둠속에 웅크리고 추위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생도 똑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람같이 사는 것이었지요 

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사람으로 살수록 삶은 더 붐볐지요 

오늘도 나는 사람 속에서 아우성치지요 

사람같이 살고 싶어, 살아가고 싶어 

 

연두부님글

* 열자의 천서天瑞편에서  

 

2.

늪, 목포에서 /박철



여자는 아팠다 여자는 십 여분이 넘지 않는 간격으로 계속 몸을 뒤척였다
일이 끝나자마자 벗은 그대로 수이 잠이 든 그니였다 그러나 이내 깊이 잠이
들었는가 싶더니 채 30여분을 넘기지 않고 양미간에 주름을 세우며 몸을 움
직여 댔다 맑은 이마에선 어느새 유리가루 같은 작은 땀방울이 솟아났다 목
줄기 아래로 젖은 기운이 피부를 덮고 있었다 사내가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을 때 여자는 다시 눈을 떴다 이마를 짚어 보니 따가운 열기가 그대
로 손끝에 전해왔다 여자는 아팠다 사내는 옷을 입은 몸으로 상체를 구부려
여자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댔다 누가 보면 우스운 꼴이었다 여자
는 눈을 마주하며 그대로 있었다 사내는 여자가 덮은 이불 위로 그의 상체를
포개어 구리고 앉았다 여자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두 눈만 멀뚱히 뜬 채
천정을 향할 뿐이다 그러다 여자의 손이 사내의 머릿결에 와 닿았다 다 부
질없는 일이었다 골목 뒤에 해장국집이 있어요 꼭 식사하고 서울 올라가요
이름이 뭐냐 지양이에요 그게 네 암호구나 다시 만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때는 몸이 건강할거야...... 여자는 아팠다 사내는 탁자위에 놓인 기차표
를 집어들었다 여자가 슬픈 눈으로 기차표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창 밖을 바
라보며 잠시 서 있었다 바람은 멎어 있었지만 제법 굵은 빗줄기가 어둠을 놓
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내는 기차표의 접힌 선을 손가락으로 문지르
며 한동안 망설였다 사내는 자신이 깊은 늪에 잠시 갇혀있다는 생각을 했다
늪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늪의 한가운데 한 여자가 더욱 깊이 빠져드는 그림
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손을 뻗을 수는 없을까 그렇다한들 어떻게 이 늪을 빠
져나갈 수 있을까 비는 그치지 않을 기세였다 사내는 접혔던 창문의 커튼을
내리고 돌아섰다 여자는 그때까지 눈을 뜨고 있었다 사내가 돌아서 나선 후,
계단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그리고 문밖을 나서 빗줄기 내리는 세
상을 향해 질주할 때까지 여자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누워 있었다

오빠아----
사내는 달려나갔고, 빗줄기를 뚫고,
그런 외마디가 사내를 쫓아오고 있었다
 


3.

조금새끼/김선태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 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나고요? 아시다시피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

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

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달 후 밖으

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은 훗날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

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이 나오다가

도 금새 눈물이 나는 건 왜 일까요? 도대체 이 꾀죄죄하고 소금기 묻은

말이 자꾸만 서럽도록 아름다워지는 건 왜 일까요? 아무래도 그건 예

나 지금이나 이 한마디 속에 온금동 사람들의 삶과 운명이 죄다 들어

있기 때문 아니겠는지요.

 
 

4.                                                                                                                                       

 이것이 날개다 / 문인수 




뇌성마비 중증 지체. 언어장애인 마흔 두살 라정식 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

이들의 평균 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 중이다.

떠먹여 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 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 0%·$&*%ㅒ#@!$#*? (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 주실거죠?)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뜨렸다.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뱀발. 

1. 창비 300번 기년시선집 뒷 커버 리드 제목은 [우리시대의 시는 사람을 되찾아야 합니다.]이다. 시인마다 한편씩 이 주제에 어울리게 골라놓았다.  간간이 마음을 주었던 시들이 떠오르고, 스쳐지나쳐 미처 보지 못했던 열매들이 그렇게 맺혀 있다. 오늘 이곳 책방에서 책들을 챙겨 막 책읽기를 시작할 무렵, 이곳 목포 친구들에게서 전화다. 비도 흩날리고, 조금 삶을 거슬러 올라가다나니 그렇게 맺힌다. 아마 조금만 더 올라가면 서러울 것이다. 서러워 눈물이라도 한웅큼 흘러내릴 만큼. 시집을 읽다가 이곳 다순금마을도(따순마을-온금..) 있고, 시집엔 노란 부분이 없어진 풍경도 있다. 그러다가 1. 4를 읽다가 뜨끔하고 만다. 움찔하다 들켜버린 지금을 만난다. 그 알량한 정상?인 중심주의???!!! 제목이 식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준 마음을 생각해서 ... ... 연두부님 글이 먼댓글이 되질 않네...쯧... 

2. 사람도 살음도 살 ㅁ, 삶도 이 시들로 마음들이 미동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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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편 위로 영산강이 바다와 접하는 지점이 보이고, 여기저기 배들이 정박해있는 갓바위를 등지고 있다. 오랫만에 마실 삼아 나선 산엔 연신 새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 원추리꽃, 엉겅퀴의 색에 정신을 뺏기다가 밤이 이슥해졌음을 알아채린다.  6k  60' 

영산강 노래라두...한..점 콕...wonseok.tistory.com/5 왜 달라붙지 않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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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제가 낳은 야수이고, 오늘은 지난 십년의 숙성이다.

뒤풀이, 부문운동이란 것, 소비자와 생산을 가르고, 소비자운동과 노동운동을 가르고, 그 장벽은 쉬이 넘어서지 못할 것이란 것, 그 성이란 것이 나름대로 집착이 있어, 나름대로 서열이 있어 쉽게 양보하지 않으리란 것. 그러니 더 불안해지는 정규직은 비정규직에 자신의 기득권을 내놓지 않고, 더 쫙 붙들게 될 수 밖에 없다는 현실. 공공성을 갖는 기관들의 혁신이나 개혁은 이렇게 해서 어려운 것이고 늘 타겟이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필요하지 않으면 정리해야 한다. 개혁대상이므로 정리해야 한다는 것. 구태를 갖고 있으므로 정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나온다. 공공 가치, 상위의 가치가 더 우세하므로 하위의 노동자로서 갖는 가치는 더 부족하다. 공공가치가 더 지체된다면 하는 순환논리에 대한 해답으로, 그래서 정리해도 싸다. 공공가치라는 명분아래 노동자로서 권익과 그 이득을 지켜내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공공가치가 더 중요하므로 더 중요하지 않는 가치는 잘라내도 된다.

이땅에 살면서 경쟁력이 없다면 퇴출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고, 은근히 약자들에게, 조금 낫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칼날을 들이댄다. 그렇다면, 사람이란 것이 이것저것 부위별로 나누고 조각낼 수 있는 것이라면, 병든자도 노인도, 사고로 장애를 가진 이들은 모두 경쟁력이 떨어지므로 거꾸로 이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한다가 맞는다.

부문운동도 서열이 있는 것이므로 노동도, 농민도 중요하고, 다른 부문은 서열에서 한참 떨어지는 것이므로 중요하고 비중을 별반 둘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 기껏 필요해도 보조적인 위상밖에 가질 수 없다라고 하는 것들. 아마 세뇌의 기억은 아닐까? 세상의 것들을 물건이나 조립가능한 것으로 보는 기계주의자들의 생각은 아닐까? 그토록 단순한 논리를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현실아닐까? 현실이 그렇게 돌아가다보니 어느새 물들어서 똑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아프지 않고, 나는 사고나지 않고, 나는 늙지 않고, 나는 대박을 맞을 것이고, 나는 짤리지 않을 것이고.......나는 결코 약자가 되지 않을 만큼 능력이 있다는 자만으로 늘 나날을 충전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도도함이 살아있는 것을 서열로 줄을 세우고, 도식화하고, 부속품처럼 갈아 낄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불감의 흔적이 그렇게 내비춘다.

이런 말없는 동의가 모든 일터를 룰렛게임에 버금가는 s,a,b.c.d 순환시스템으로 상대평가의 늪으로 빠뜨렸다. 그리고 그 해악이 어디에 미치는지도 묻지 못하게 한다. 당연한 것으로, 나는 아니다란 평가의 악순환. 누가 점수를 매기는지, 누가 서열을 매기는지도 인식을 애써하지 않으려 하면서 말이다.

사고나는 이도 말이없고, 아픈이도 말이없고, 늙은 이도 말이 없고, 부채에 신음하는 이도 말이없고, 짤린이도 말이없고, 약자는 늘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세상이므로, 그렇게 잘나가는 이들은 또 다시 서로를 가려내고 총을 서로의 머리에 겨눈다.


부문운동의 회복은, 사회운동의 활성화는 내것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자각이다. 부문운동의 합이 간신히 내몸에 붙게되면 조금, 아주 조금 움직일 지 모른다는 자작이다. 하나씩 불감을 걷어내면 스스로 나의 삶을, 통증을 회복해내는 일이다. 조합원으로 개인이 아니라, 생협의 일원으로, 비정규직의 일원으로, 농민의 일원으로, 언론의 아픔을 조금씩 회복하는 일이다. 기계가 아니라 부속품처럼 저 멀리떨어지고 누군가 대행하겠지란 착각을 거두어내는 일이다. 우리 가족의 촘촘한 일상의 동선이 모두 그 부문운동에 그물로 이어져있다는 것을. 당신이 집착하며 이것만 중요하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조금씩 서로 나눠 아파하는데서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운동이란 것. 활동이란 것들이 마치 자본의 대차대조표처럼, 1년을 기간으로 일로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어쩌구저쩌구 서로를 쳐내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삶의 기간을 삶의 공백이나 동선을 감안한 활동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삶을 함께 기획하고 회복해내고, 다른 잣대로 서로를 평가하고 가져가는 일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살림살이, 살궁리와 삶 - 활동을 실무자가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아픔과 할 일들, 여건들을 부여잡고 밤새 토론하고 논의하고, 살림을 끌어내고 현실의 틈을 서로 만들어내는 일은 아닐까? 그저 대의나 여건이 나은 헌신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삶을 지금보다 낫게 살아내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다 할 수 있는 생각의 물꼬를 건드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정신없이 살다보니 정신 줄을 놔놓고 살아온 십년이 아니라, 몸으로 헌신해 몸이 닳고 망가지는 그런 나날이 아니라, 그래서 그(녀)와 함께 이렇게 살고 싶다. 최소한 5년은 이렇게 살아야지, 그렇게 살면 그 삶에 기부할 수 있는, 그(녀)의 삶을 변화시켜 5년뒤엔 이런 일을 함께 해봄직한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부문과 시간의 강박과 사람을 제외한 일에 집착을 조금이나마 벗어난다면?
 

뱀발.  

1. 진보는 늘 감탄하게 만들지 못한다. 한번도 그들의 뒤를 쫓다보면, 머리의 그늘, 분파의 그늘이 얼마나 깊고 깊은지, 절대 꿀리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모습을 보면 대견스럽다. 하지만 그런 강직이 시간이란 함수에 아무런 너-나-너-...의 그물을 바래고 삶에 퇴색해서 본연의 의지는 간 곳이 없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그들은 우리 삶을 포위해 그들의 삶으로 전락시켰음에도 아파하지 않는다.  

2. 내 손에 쥔 것만 아플 뿐..다른 이들이 아파하는 것을 아파하지 못한다. 내가 너무도 아프므로, 그래 그 아픈 것을 놓고 서로 엇갈려 손을 맞잡을 수는 없을 것인가? 그 통증이 고스란히 전달된다면 아주 조금 너-나-너...가 무척이나 아프고 외로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팽겨쳐진 삶들에 조금이라고 기운을 북돋을 수 있을까? 서로 원하는 것을 내것으로 끌어당기려하지 말고 느슨한 연대나 아픔. 그리고 삶의 감탄 1..생각의 뿌듯 1,2,3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3. 그리고 그토록 부여잡았던 강박에 벗어날 수는 없을까? 각론의 각개격파가 아니라 삶의 총론을 되짚어볼 수는 없을까? 부문운동의 유니온삽은 없을까? 아니면 5년 삶동지의 유니온 샵은 없을까? 생각도 몸도 가슴도, 손도 발도 서로 빌려줄 수 있다면, 그렇게 연습해본다면....아마 늦지 않을 수도...성큼성큼...감탄이란 것도 낳을 수도, 오늘이 어제가 낳은 야수가 아니라, 오늘이 지난 십년의 숙성만이 아니라 ... 늘 오늘이 어제의 감탄이 낳은 오늘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런 오늘의 누적이 또 다른 경로를 만들 수는 없을까? 불안에 치떠는 우리를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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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091012 죽음, 자유 그리고 사회
    from 木筆 2009-10-13 14:38 
    [칼 폴라니로 가는 여러 산책길에 대한 소묘]란 주제로 텍스트 [초국적자본주의인가 지역적계획경제인가]에 다른 색깔들을 배경삼아 자료를 만들어본다. 가장 잘배우고 알게하는 방법은 가르치는 것이란 말을 실감한다.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책들이 섞여 어디에 기록했는지도 깜박한다. 어쩌면 하고싶은 이야기는 산책길에 나서기전 준비사항에 있다. 경제인이란, 이분법에 의한 근대인, 직선적인 시간관이나 발전관에 녹아있는 우리는 다른 것을 상상하기 힘들다. 블로그의
 
 
2009-07-27 20: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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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8 08: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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