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물에게 길을 묻다 3 / 천양희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지요 

날마다 살기 위해 일만 하고 살았지요 

일만 하고 사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요 

일터는 오래 바람 잘 날 없고 

인파는 술렁이며 소용돌이쳤지요 

누가 목소리를 높이기라도 하면 

소리는 나에게까지 울렸지요 

일자리 바뀌고 삶은 또 솟구쳤지요 

그때 나는 지하 속 노숙자들을 생각했지요 

실직자들을 떠올리기도 했지요 

그러다 문득 길가의 취객들을 힐끗 보았지요 

어둠속에 웅크리고 추위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생도 똑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람같이 사는 것이었지요 

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사람으로 살수록 삶은 더 붐볐지요 

오늘도 나는 사람 속에서 아우성치지요 

사람같이 살고 싶어, 살아가고 싶어 

 

연두부님글

* 열자의 천서天瑞편에서  

 

2.

늪, 목포에서 /박철



여자는 아팠다 여자는 십 여분이 넘지 않는 간격으로 계속 몸을 뒤척였다
일이 끝나자마자 벗은 그대로 수이 잠이 든 그니였다 그러나 이내 깊이 잠이
들었는가 싶더니 채 30여분을 넘기지 않고 양미간에 주름을 세우며 몸을 움
직여 댔다 맑은 이마에선 어느새 유리가루 같은 작은 땀방울이 솟아났다 목
줄기 아래로 젖은 기운이 피부를 덮고 있었다 사내가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을 때 여자는 다시 눈을 떴다 이마를 짚어 보니 따가운 열기가 그대
로 손끝에 전해왔다 여자는 아팠다 사내는 옷을 입은 몸으로 상체를 구부려
여자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댔다 누가 보면 우스운 꼴이었다 여자
는 눈을 마주하며 그대로 있었다 사내는 여자가 덮은 이불 위로 그의 상체를
포개어 구리고 앉았다 여자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두 눈만 멀뚱히 뜬 채
천정을 향할 뿐이다 그러다 여자의 손이 사내의 머릿결에 와 닿았다 다 부
질없는 일이었다 골목 뒤에 해장국집이 있어요 꼭 식사하고 서울 올라가요
이름이 뭐냐 지양이에요 그게 네 암호구나 다시 만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때는 몸이 건강할거야...... 여자는 아팠다 사내는 탁자위에 놓인 기차표
를 집어들었다 여자가 슬픈 눈으로 기차표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창 밖을 바
라보며 잠시 서 있었다 바람은 멎어 있었지만 제법 굵은 빗줄기가 어둠을 놓
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내는 기차표의 접힌 선을 손가락으로 문지르
며 한동안 망설였다 사내는 자신이 깊은 늪에 잠시 갇혀있다는 생각을 했다
늪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늪의 한가운데 한 여자가 더욱 깊이 빠져드는 그림
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손을 뻗을 수는 없을까 그렇다한들 어떻게 이 늪을 빠
져나갈 수 있을까 비는 그치지 않을 기세였다 사내는 접혔던 창문의 커튼을
내리고 돌아섰다 여자는 그때까지 눈을 뜨고 있었다 사내가 돌아서 나선 후,
계단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그리고 문밖을 나서 빗줄기 내리는 세
상을 향해 질주할 때까지 여자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누워 있었다

오빠아----
사내는 달려나갔고, 빗줄기를 뚫고,
그런 외마디가 사내를 쫓아오고 있었다
 


3.

조금새끼/김선태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 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나고요? 아시다시피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

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

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달 후 밖으

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은 훗날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

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이 나오다가

도 금새 눈물이 나는 건 왜 일까요? 도대체 이 꾀죄죄하고 소금기 묻은

말이 자꾸만 서럽도록 아름다워지는 건 왜 일까요? 아무래도 그건 예

나 지금이나 이 한마디 속에 온금동 사람들의 삶과 운명이 죄다 들어

있기 때문 아니겠는지요.

 
 

4.                                                                                                                                       

 이것이 날개다 / 문인수 




뇌성마비 중증 지체. 언어장애인 마흔 두살 라정식 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

이들의 평균 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 중이다.

떠먹여 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 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 0%·$&*%ㅒ#@!$#*? (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 주실거죠?)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뜨렸다.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뱀발. 

1. 창비 300번 기년시선집 뒷 커버 리드 제목은 [우리시대의 시는 사람을 되찾아야 합니다.]이다. 시인마다 한편씩 이 주제에 어울리게 골라놓았다.  간간이 마음을 주었던 시들이 떠오르고, 스쳐지나쳐 미처 보지 못했던 열매들이 그렇게 맺혀 있다. 오늘 이곳 책방에서 책들을 챙겨 막 책읽기를 시작할 무렵, 이곳 목포 친구들에게서 전화다. 비도 흩날리고, 조금 삶을 거슬러 올라가다나니 그렇게 맺힌다. 아마 조금만 더 올라가면 서러울 것이다. 서러워 눈물이라도 한웅큼 흘러내릴 만큼. 시집을 읽다가 이곳 다순금마을도(따순마을-온금..) 있고, 시집엔 노란 부분이 없어진 풍경도 있다. 그러다가 1. 4를 읽다가 뜨끔하고 만다. 움찔하다 들켜버린 지금을 만난다. 그 알량한 정상?인 중심주의???!!! 제목이 식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준 마음을 생각해서 ... ... 연두부님 글이 먼댓글이 되질 않네...쯧... 

2. 사람도 살음도 살 ㅁ, 삶도 이 시들로 마음들이 미동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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