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물에게 길을 묻다 3 / 천양희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지요
날마다 살기 위해 일만 하고 살았지요
일만 하고 사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요
일터는 오래 바람 잘 날 없고
인파는 술렁이며 소용돌이쳤지요
누가 목소리를 높이기라도 하면
소리는 나에게까지 울렸지요
일자리 바뀌고 삶은 또 솟구쳤지요
그때 나는 지하 속 노숙자들을 생각했지요
실직자들을 떠올리기도 했지요
그러다 문득 길가의 취객들을 힐끗 보았지요
어둠속에 웅크리고 추위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생도 똑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람같이 사는 것이었지요
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사람으로 살수록 삶은 더 붐볐지요
오늘도 나는 사람 속에서 아우성치지요
사람같이 살고 싶어, 살아가고 싶어
연두부님글
그들이 처음왔을 때
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öller
(1892.1.14– 1984.3 6) was a Protestant pastor and social activist.
Als die Nazis die Kommunist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Kommunist.
나치가 공산당원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Sozialdemokraten einsperr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Sozialdemokrat.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Gewerkschafter holten,
habe ich nicht protestiert;
ich war ja kein Gewerkschafter.
그들이 노동조합원에게 갔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Jud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Jude.
그들이 유태인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Als sie mich holten,
gab es keinen mehr, der protestierte.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항의해 줄 누구도 더 이상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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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촛불 든 시민을 때리고 짓밟아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촛불집회에 가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용산 철거민들을 불태워 죽였을 때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철거민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일제고사를 거부한 전교조 선생님을 해직하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했을 때도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고 해고당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들이 시민들의 반대와 언론노조, 야당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언론악법을 국회에서 통과 시켰을 때도
나는 괜찮았다.
어차피 ‘개그콘서트’와 ‘1박2일’은 계속 볼 수 있을 거니까...
마침내 그들이 나와 내 가족을 잡아 갔을 때 (길거리로 내몰았을 때)
어떤 언론사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고
나와 함께 항의해줄
그 어떤 이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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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자의 천서天瑞편에서
2.
늪, 목포에서 /박철
여자는 아팠다 여자는 십 여분이 넘지 않는 간격으로 계속 몸을 뒤척였다
일이 끝나자마자 벗은 그대로 수이 잠이 든 그니였다 그러나 이내 깊이 잠이
들었는가 싶더니 채 30여분을 넘기지 않고 양미간에 주름을 세우며 몸을 움
직여 댔다 맑은 이마에선 어느새 유리가루 같은 작은 땀방울이 솟아났다 목
줄기 아래로 젖은 기운이 피부를 덮고 있었다 사내가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을 때 여자는 다시 눈을 떴다 이마를 짚어 보니 따가운 열기가 그대
로 손끝에 전해왔다 여자는 아팠다 사내는 옷을 입은 몸으로 상체를 구부려
여자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댔다 누가 보면 우스운 꼴이었다 여자
는 눈을 마주하며 그대로 있었다 사내는 여자가 덮은 이불 위로 그의 상체를
포개어 구리고 앉았다 여자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두 눈만 멀뚱히 뜬 채
천정을 향할 뿐이다 그러다 여자의 손이 사내의 머릿결에 와 닿았다 다 부
질없는 일이었다 골목 뒤에 해장국집이 있어요 꼭 식사하고 서울 올라가요
이름이 뭐냐 지양이에요 그게 네 암호구나 다시 만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때는 몸이 건강할거야...... 여자는 아팠다 사내는 탁자위에 놓인 기차표
를 집어들었다 여자가 슬픈 눈으로 기차표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창 밖을 바
라보며 잠시 서 있었다 바람은 멎어 있었지만 제법 굵은 빗줄기가 어둠을 놓
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내는 기차표의 접힌 선을 손가락으로 문지르
며 한동안 망설였다 사내는 자신이 깊은 늪에 잠시 갇혀있다는 생각을 했다
늪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늪의 한가운데 한 여자가 더욱 깊이 빠져드는 그림
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손을 뻗을 수는 없을까 그렇다한들 어떻게 이 늪을 빠
져나갈 수 있을까 비는 그치지 않을 기세였다 사내는 접혔던 창문의 커튼을
내리고 돌아섰다 여자는 그때까지 눈을 뜨고 있었다 사내가 돌아서 나선 후,
계단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그리고 문밖을 나서 빗줄기 내리는 세
상을 향해 질주할 때까지 여자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누워 있었다
오빠아----
사내는 달려나갔고, 빗줄기를 뚫고,
그런 외마디가 사내를 쫓아오고 있었다
3.
조금새끼/김선태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 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나고요? 아시다시피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
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
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달 후 밖으
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은 훗날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
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이 나오다가
도 금새 눈물이 나는 건 왜 일까요? 도대체 이 꾀죄죄하고 소금기 묻은
말이 자꾸만 서럽도록 아름다워지는 건 왜 일까요? 아무래도 그건 예
나 지금이나 이 한마디 속에 온금동 사람들의 삶과 운명이 죄다 들어
있기 때문 아니겠는지요.
4.
이것이 날개다 / 문인수
뇌성마비 중증 지체. 언어장애인 마흔 두살 라정식 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
이들의 평균 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 중이다.
떠먹여 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 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 0%·$&*%ㅒ#@!$#*? (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 주실거죠?)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뜨렸다.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뱀발.
1. 창비 300번 기년시선집 뒷 커버 리드 제목은 [우리시대의 시는 사람을 되찾아야 합니다.]이다. 시인마다 한편씩 이 주제에 어울리게 골라놓았다. 간간이 마음을 주었던 시들이 떠오르고, 스쳐지나쳐 미처 보지 못했던 열매들이 그렇게 맺혀 있다. 오늘 이곳 책방에서 책들을 챙겨 막 책읽기를 시작할 무렵, 이곳 목포 친구들에게서 전화다. 비도 흩날리고, 조금 삶을 거슬러 올라가다나니 그렇게 맺힌다. 아마 조금만 더 올라가면 서러울 것이다. 서러워 눈물이라도 한웅큼 흘러내릴 만큼. 시집을 읽다가 이곳 다순금마을도(따순마을-온금..) 있고, 시집엔 노란 부분이 없어진 풍경도 있다. 그러다가 1. 4를 읽다가 뜨끔하고 만다. 움찔하다 들켜버린 지금을 만난다. 그 알량한 정상?인 중심주의???!!! 제목이 식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준 마음을 생각해서 ... ... 연두부님 글이 먼댓글이 되질 않네...쯧...
2. 사람도 살음도 살 ㅁ, 삶도 이 시들로 마음들이 미동하였으면 좋겠다.